황송문 시창작 91

샘도랑집 바우

샘도랑잡 바우 황송문 가까이 가지도 않았습니다. / 탐욕의 불을 켜고 / 바라본 일도 없습니다. 전설 속의 나무꾼처럼 / 옷을 숨기지도 않았습니다. / 그저 그저 / 달님도 부끄러워 / 구름 속으로 숨는 밤 / 물소리를 들었을 뿐입니다. / 죄가 있다면 / 그 소리 훔쳐들은 죄밖에 없습니다. / 그런데, 그런데, / 그 소리는 꽃잎이 되고 향기가 되었습니다. / 껍질 벗는 / 수밀도의 향기--- / 밤하늘엔 여인의 비눗물이 흘러갑니다. / 아씨가 선녀로 목욕하는 밤이면 / 샘도랑은 온통 별밭이 되어 / 가슴은 은하로 출렁이었습니다. / 손목 한번 잡은 일도 없습니다. / 얘기 한번 나눈 적도 없습 니다. / 다만 아슴푸레한 어둠 저편에서 / 떨어지는 물소리에 / 정신을 빼앗겼던 탓이 올시다. / 시원의 ..

황송문 시창작 2023.07.03

창변窓邊의 손

창변窓邊의 손 황송문 하나의 손바닥을 향하여 / 또 하나의 손바닥이 기어오른다. 차창 안의 손바닥을 향하여 / 차창 밖의 손바닥이 기어오른다. 줄리엣의 손을 향하여 / 로미오의 손이 담벼락을 기어오르듯 기어오르는 손바닥 사이에 차창이 막혀 있다. 유리창은 투명하지만 / 매정스럽게 차가웠다. / 차창 안의 손은 냉가슴 앓는 아들의 손 / 차창 밖의 손은 평생을 하루같이 산 어미의 손 / 신혼에 헤어졌던 남편과 아내의 손 / 손과 손이 붙들어 보려고 자맥질을 한다. / 손은, 오랜 풍상을 견디어내느라 주름진 손은 / 혹한을 견디어낸 소나무 껍질 같은 / 수없는 연륜의 손금이 어지럽다. / 암사지도보다도 잔인한 / 상처두성이 손이 꿈결처럼 기어오른다. / 얼굴을 만지려고, 세월을 만지려고 / 눈물을 만자려고 ..

황송문 시창작 2023.06.26

능선稜線

능선 稜線 황송문 오르기 위해서 내려가는 나그네의 / 은밀한 탄력의 주막거리다./ 옷깃을 스치는 바람결에도 / 살아나는 세포마다 등불이 켜지는 / 거널목이다, 날개옷이다. / 음지에 물드는 단풍같이 / 부끄럼을 타면서도 산뜻하게 / 웃을적마다 볼이 패이는 / 베일 저쪽 신비로운 보조개--- / 주기적으로 수시로 물이 오르는 / 뿌리에서 가지 이파리 끝까지 / 화끈거리면서 서늘하기도 한 / 알다가도 모를 숲그늘이다./ 불타는 단풍을 담요처럼 깔고 덮고 / 포도주에 얼근한 노을을 올려보는 / 여인의 무릎과 유방 사이의 / 어쩐지 아리송한 등산광이다. / 개살구를 씹어 삼킬 때의 / 실눈이 감길듯이 시큰거리는 / 봉우리에서 봉우리로 이어지는 산등성이의 곡선--- / 쑤시는 인생의 마디마디 / 오르기 위해서 쉬..

황송문 시창작 2023.06.19

알래스카

알래스카 황송문 알래스카의 하늘과 산과 바다는 / 물음표로 가득했다. 물어도 물어도 끝이 없는 / 물음표와 물음표--- 알래스카의 구름과 눈과 파도는 / 느낌표로 가득했다. 느껴도 느껴도 끝이 없는 / 느낌표와 느낌표--- 밤이 없는 알래스카의 여름은 / 불타는 태양으로 가면을 벗는다. // 가식의 옷을 벗고 / 구리빛 등살을 드러낸다. 곰이 앞발로 물고기를 건져 먹듯 / 시원(始原)을 건져먹는 내 의식의 어망--- 알래스카는 / 내가 잡은 물고기의 싱싱한 회다. 관념의 껍질을 벗기고 / 고추장을 찍을 때 일제히 몰려온 물음표 느낌표가 / 만선으로 가득했다. -1987년 여름 미국 알래스카 코디악 섬에서

황송문 시창작 2023.06.12

하지감자

하지감자 황송문 멍든 빛깔의 하지감자는 / 엉골댁 욕쟁이 할머니. 쪼그라들면 쪼그라들수록 / 일본 순사 쏘아보던 눈빛이 산다. 일제에 징용 간 남편은 소식 없고 / 보쌈에 싸여가서 아가 하나 낳았다가 // 6.25 전장에 재가 되어 돌아온 후 / 걸찍한 욕만 살아서 푸른 독을 뿜는다. // 멍든 하지감자는 / 껍질을 까기가 힘이 든다. //. 사내놈들 보쌈에 싸여가는 동안 / 은장도를 가슴에 품은 채 벼르고 벼르던 // 그 날선 빛깔이 눈물이 되고 욕설이 되어 / 독을 품은 씨눈에서 은장도가 번득인다.

황송문 시창작 2023.06.05

칡차

칡차 황송문 오늘은 내 나라 칡차를 들자. 조상의 뼈가 묻힌 산 / 조상의 피가 흐른 산 조상 대대로 자자손손 / 뼈 중의 뼈, 살 중의 살이 묻힌 산 그 산 진액을 빨아 올려 / 사시장철 뿌리로 간작했다가 주리 틀어 짜낸 칡차를 받아 마시고 / 내가 누구인가를 생각하자. 칡뿌리 같이 목숨 질긴 우리의 역사 / 칡뿌리 같이 잘려나간 우리의 강토 내 흉한 손금 같은 산협에 / 죽지 않고 살아남은 뿌리의 정신 / 흙의 향기를 받아 마시자. 어제는 커피에 길들어 왔지만 / 어제는 정신없이 살아왔지만 / 오늘은 내 나라 칡차를 들자.

황송문 시창작 2023.05.29

선禪

선禪 황송문 중국인 화가는 아침부터 석굴암 대불을 그리고--- 일본인 교수는 그의 뒤에서 사진을 찍어대고--- 그의 뒤에 산처럼 앉은 나는 담담힌 미소로 내려보고--- *시작노트 - 세계평화교수아카데미가 청설되기 전해로 기억됩니다. 일본에서 35명의 교수들이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나는 설악산, 토함산으로 여행하는 동안에 와다나베 교수와 친해졌습니다. 마술대 교수인 그는 화가였는데, 토함산 해돋이 광경을 그리더니 일본신문에 그림과 함께 글을 실 어 보내왔습니다. 어느덧 50년 전 이야기입니다.

황송문 시창작 2023.05.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