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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죽지 말라고

기죽지 말라고                                   황송문어머니는 가난한 살림에도 아침을 지을 때마다 무쇠솟 가운데 쌀 한 줌 얹으셨다.  보리밥 속에 달걀 노른자처럼 그 중심 밥만 오롯이 떠서 도시락을 싸주셨다.  가족은 꽁보리밥이지만나의 도시락은  보리밥 위에 쌀밥이 놓여도금한 지붕처럼 빛났다.  초등학교 장작난롯가에서  보란 듯이 펴놓고 먹게 된점심 도시락이 아른아른  뜨거운 눈시울에 어머니가 보인다.  - 89호(2024 봄)에서-

황송문 시창작 2024.05.20

기죽지 말라고

기죽지 말라고 황송문 어머니는 가난한 살림에도 아침을 지을 때마다 무쇠솟 가운데 쌀 한 줌 얹으셨다. 보리밥 속에 / 달걀 노른자처럼 그 중심 밥만 오롯이 떠서 도시락을 싸주셨다. 가족은 꽁보리밥이지만 / 나의 도시락은 보립밥 위에 쌀밥이 놓여 도금한 지붕처럼 빛났다. 초등학교 장작난로 가에서 보란듯이 펴놓고 먹게 된 점심 도시락이 아른아른 뜨거운 눈시울에 어머니가 보인다. 봄호(89호)에서

황송문 시창작 2024.03.18

봄이 오는 소리

봄이 오는 소리 황송문 물을 사랑하는 봄이 물소리를 내지르네 / 불을 사랑하는 봄이 불 지르며 다니네 / 물과 불을 중매 서는 바람은 / 박하사탕 먹고 피어오르는 / 아지 랑이 아질아질 신명 도지네. // 봄햇살이 물을 길어 올리네 / 느릅나무속잎 피는 굽이굽이마다 / 뿌리에서 줄기로 가지로 잎으로 / 박하사탕 화안하게 얼사 쿠 일어나네. 봄물결이 불을 안고 피어오르네 / 능선과 능선과 계곡과 계곡과 / 어깨와 어깨와 허리와 허리와 / 능선과 계곡끼리 능선과 계곡끼리 / 청실홍실 어우러져 꽃을 피우네. 봉오리 봉오리 젖꼭지 같은 꽃봉오리 / 달거리보다도 더 진한 꽃봉오리 능선에 오른 꽃은 해와 입 맞추고 / 해는 눈 녹은 골짜기에 내려 사랑의 궁전은 뿌리를 낳고 / 뿌리는 깽맥깽맥 물을 길어 올리네. /..

황송문 시창작 2024.03.11

꽃꽂이 여인

꽃꽂이 여인 황송문 그녀는 장미 입술로 웃는다. / 햇살을 사모하는 웃음꽃으로 / 루즈의 동그라미를 그리며 / 하늘을 온통 봉오리 채 웃는다. // 속눈썹 곱게 펼쳐 올리고 / 신비의 눈 그윽히 올려보면서 / 햇살 거슬러 웃음 쏘아 올린다. // 나는 그녀의 웃음을 훔쳐낸다. / 세상에 없는 웃음이므로 / 나는 웃음꽃을 가슴에 심는다. // 숲속의 새처럼 경쾌한 율동으로 / 꽃을 고르는 눈동자와 / 밑줄기를 자르는 그녀의 손 / 세련된 움직임 하나 하나에 / 꽃의 미소를 닮고 있다. 그녀가 화병에 꽃을 꽂을 때 / 나는 그녀를 가슴에 꽂는다. / 신의 손가락 하나 하나에 / 세상은 꽃밭으로 이루어진다. // 하나의 꽃 곁에 / 또 하나의 꽃을, / 꽃과 꽃을 정답게 꽂으면 / 꽃다운 꽃 그 사이사이로 /..

황송문 시창작 2024.03.04

삼국지

삼국지(三國志) 황송문 와리바시가 자장면을 삼킨다. / 자장면이 와리바시를 물들인다. / 와리바시와 자장면 싸움에 사발이 금간다. // 자장면을 감아올리던 / 와리바시가 부러져나가고 / 금 간 사발에 개 풀어진 자장면 / 되놈들 대가리에 황사가 인다. / 자장면은 식품이지만 / 와리바시는 소모품이지만 / 사발에는 품(品)을 붙일 수 없는 / 경천의 우러름이다. // 속까지 입을 벌리고 / 하늘 우러러 두 손 비는 백의 민족의 몸짓이다. / 흰옷의 눈물어림이다. // 하얀 순백의 사발에서는 / 복(福)자 희(喜)자 원추리 글씨가 햇살을 모셔들이지만 / 황하를 건너온 자장면에서는 홍위병의 깃발이 꿈틀거리고 / 고꾸라진 와리바시에서는 / 사무라이 칼날이 번쩍거린다.

황송문 시창작 2024.02.26

김치에게

김치에게 황송문 여보게 / 오랜만일세그려! / 정말 오랜만일세그려! 외국 말만 떠도는 / 타국을 떠돌다가 / 자넬 만나니 이젠 정말 살겠네그려! 말도 다르고 입맛도 다른 / 외국 사람들 틈에서 / 자넬 만나니 / 눈물겹게도 / 도봉산이 그리워지고 / 한강물이 그리워지네그려! // 여보게 / 이게 뭔가, 뭐겠는가 / 지진처럼 깊은 데서 찡하게 울려오고 / 가슴이 터질것 같은 이게 뭐겠는가. 할아버지는 짚신을 삼으시고 / 할머니는 물레를 돌리시던 곳 / 어머니랑 누이랑 목화 따던 곳 / 그곳을 꿈엔들 잊겠는가. / 세상 어딜가나 자네 없인 못 살겠네 그려! 어머니가 포기포기 담그시던 / 자네의 그 내 나라 맛을 / 어디 꿈엔들 잊겠는가. 내사내사 못 잊겠네 그려! - 1987년 8월 3일 미국 시카고에서

황송문 시창작 2024.02.19

산에서는

산에서는 황송문 산에서는 세속의 잡담을 지껄이지 말아라. 맑은 공기와 맑은 물 웃음짓는 햇빛을 보아라. 나뭇잎 풀잎은 손짓을 하고 꽃들이 반기거늘 먼지와 기름때를 왜 게워내느냐. 침묵하는 산이 입이 없는 줄 아느냐. 바람처럼 묵언으로 말하고 흙처럼 지평으로 참으며 청명한 하늘에 구름이 떠돌듯 말 없는 가운데 산 높고 골 깊은 말 우리도 그 말 없는 말로 변화무쌍해야 하느니라.

황송문 시창작 2024.0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