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송문 대표시 46

꽃잎

꽃잎 황송문 내가 바라볼 때 너는 피어났고 내가 외면할 때 너는 시들었다. 나의 눈길에 너는 불이 붙었고 나의 손길에 너는 악기처럼 소리를 내어 굴벌처럼 불러 모았다. 네가 잉잉거리는 벌떼들을 불러들일 때 별은 빛나고, 내가 너의 꿀물에 젖을 때 달은 부끄러워했다. 네가 피어날 때 나는 살고 네가 시들 때 나는 죽었다. "사랑과 생명의 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름다운 말입니다. 사랑이 있는 곳에 생명이 있고, 생명이 있는 곳에 사랑이 있습니다. 사람 뿐아니라 모든 존재하는 사물은 존재하기 위한 힘이필요합니다. 힘이란 독자적으로는 생겨나지 않고 반드시 주체와 대상이라는 이성이 서로 잘 주고 받은 때 생겨납니다. 주역에서의 음양도 존재하기 위한 힘을 말합니다. 그러니 누구든지 존재하기 위해서는 사랑해야합..

황송문 대표시 2021.01.22

아름다운 것

아름다운 것 황송문 보내 놓고 돌아와 틀어박는 쐐기는 아름답다. 쐐기의 미학(美學)으로 눈물을 감추면서 피어나는 웃음꽃은 아름답다. 기다림에 주름 잡힌 얼굴로 쏟아져 내리는 햇살의 만남은 아름답다. 태양의 미소와 바람의 애무 눈짓하는 나무는 아름답고 지저귀는 새는 아름답다. 아름다운 것은 눈짓하는 나무와 지저귀는 새, 떠난 이의 뒤에서 헛웃음 치는 아픔이다. 보내 놓고 돌아와 짜깁는 신경의 잔을 기울이며 하루를 천년같이 기다리는 노을이다. 노을 담긴 그리움이 한(恨)으로 괴이어 떠낸 (詩)의 잔에 넘치는 술의 입술이다. 아름다운 것은 산불로 타오르던 나무 뚫린 가슴에 울며 울며 쐐기를 지르는 망각의 술, 기다림의 잔이다. ●여러 색채와 형태의 아름다움이 있겠습니다. 저는 그중에서도 자기의 고통은 뒤로 돌..

황송문 대표시 2021.01.14

능선

능선稜線 황송문 오르기 위해서 내려가는 나그네의 은밀한 탄력의 주막거리다. 옷깃을 스치는 바람결에도 살아나는 세포마다 등불이 켜지는 건널목이다, 날개옷이다. 음지(陰地)에 물드는 단풍같이 부끄럼을 타면서도 산뜻하게 웃을 적마다 볼이 파이는 베일 저쪽 신비로운 보조개…… 주기적으로 수시로 물이 오르는 뿌리에서 줄기 가지 이파리 끝까지 화끈거리면서 서늘하기도 한 알다가도 모를 숲 그늘이다. 불타는 단풍을 담요처럼 깔고 덮고 포도주에 얼근한 노을을 올려보는 女人의 무릎과 유방 사이의 어쩐지 아리송한 등산광이다. 개살구를 씹어 삼킬 때의 실눈이 감길 듯이 시큰거리는 봉우리에서 봉우리로 이어지는 산등성이의 곡선(曲線)…… 쑤시는 인생의 마디마디 오르기 위해서 쉬어 가는 주막거리의 재충전이다. 창백한 형광등 불빛 ..

황송문 대표시 2020.12.28

선풍

선풍禪風 황송문 노을이 물드는 산사에서 스님과 나는 법담(法談)을 한다. 꽃잎을 걸러 마신 승방에서 법주(法酒)는 나를 꽃피운다. 스님의 모시옷은 구름으로 떠 있고 나의 넥타이는 번뇌로 꼬여 있다. “자녀(子女)는 몇이나 두셨습니까?” “사리(舍利)는 몇이나 두셨습니까?” “더운데 넥타이를 풀으시죠.” “더워도 풀어서는 안 됩니다.” 목을 감아 맨 십자가 책임을 풀어 던질 수는 없다. 내 가정과 국가와 세계 가슴앓이 꽃들을 버릴 수는 없다. ●평설(評說) - 한 사람은 속세 인간이고 한 사람은 도를 닦는 스님인데, 각기 자기의 내공(內攻)으로 선문답(禪問答)을 주고 받는다. 그런데 스님의 선문(禪問)을 받아내는 속세 인간의 내 공이 만만치 않다. 대덕(大德)의 고승(高僧) 앞에 흐트러지지 않 은 자세로 ..

황송문 대표시 2020.12.21

섣달

섣달 황송문 소복(素服)의 달 아래 다듬이질 소리 한창이다 . 고부(姑婦)의 방망이 딱뚝 똑딱 학울음도 한밤에 천리를 난다. 참기름 불은 죽창(竹窓) 가에 졸고 오동꽃 그늘엔 봉황(鳳凰)이 난다. 다듬잇돌 명주 올에 선을 그리며 설움을 두들기는 오롯한 그림자 떼 지어 날아가는 철새 울음 은대야 하늘에 산월(産月)이 떴다. ● 시작노트 - 시는 명료성과 모호성이 섞여있기 때문에 상징과 은유로 은폐되어 있는 詩語를 눈치채야겠습니다. 이 시는 흰옷 입은 고부간에 다듬이질을 하는데 그 소리가 딱뚝딱뚝이 아니라 딱뚝 똑딱으로 다르게 되어있습니다. 소리가 다른 까닭은 고부간의 처지가 다르기 때문이겠습 니다. 자식 잃은 설음과 남편 잃은 설음이겠지요. 産月이라는 말로 봐서 며느리는 산모가 되겠습니다. 6.25 전쟁 ..

황송문 대표시 2020.12.14

시-선운사 단풍 (황송문)

선운사 단풍 황송문 바람난 仙女들의 귓속말이다 발그레한 입시울 눈웃음이다. 열이 먹다 죽어도 모를 선악과의 사랑궁이다. 환장하게 타오르는 정념의 불꽃 합궁 속 상기된 사랑꽃이다 . 요염한 불꽃 요염한 불꽃 꽃속에서 꿀을 빠는 연인끼리 꽃물 짜 흩뿌리며 열꽃으로 내지르는 설측음이다 파열음이다 절정음이다. 빛깔과 소리가 바꿔치기 하는 첫날밤 터지는 아픔의 희열이다. 꽃핀 끝에 아기 배었다는 모나리자의 수수께끼다.

황송문 대표시 2020.12.06

샘도랑집 바우

샘도랑집 바우 황송문 가까이 가지도 않았습니다. 탐욕의 불을 켜고 바라본 일도 없습니다. 전설 속의 나무꾼처럼 옷을 숨기지도 않았습니다. 그저그저 달님도 부끄러워 구름 속으로 숨는 밤 물소리를 들었을 뿐입니다. 죄가 있다면 그 소리 훔쳐들은 죄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그 소리는 꽃잎이 되고 향기가 되었습니다. 꺼질 벗는 수밀도의 향기------ 밤하늘엔 여인의 비눗물이 흘러갑니다. 아씨가 선녀로 목욕하는 밤이면 샘도랑은 온통 별밭이 되어 가슴은 은하(銀河)로 출렁이었습니다. 손목 한 번 잡은 일도 없습니다. 얘기 한 번 나눈 적도 없습니다. 다만 아슴푸레한 어둠 저편에서 떨어지는 물소리에 정신을 빼앗겼던 탓이올시다. 시원(始原)의 유두(乳頭) 같은 물방울이 떨어질 때마다 머리카락으로 목덜미로 유..

황송문 대표시 2020.11.09

황송문의 시 - 돌

돌 황송문 불 속에서 한 천년 달구어지다가 산적이 되어 한 천년 숨어 살다가 칼날 같은 소슬바람에 염주를 집어들고 물 속에서 한 천년 원없이 구르다가 영겁의 돌이 되어 돌돌돌 구르다가 매촐한 목소리 가다듬고 일어나 神仙峰 花潭 先生 바둑알이 되어서 한 천년 雲霧 속에 잠겨 살다가 잡놈들 들끓는 俗界에 내려와 좋은 시 한 편만 남기고 죽으리. 의 마지막 행에 나오는 시 한 편, 이 시간의 유장함이야말로 '속도전'의 시대에 대한 얼마나 유쾌한 반동인가? 온 세상이 '찰라의 미학'에 눈멀어 찧고 까불 때, '나는 시 한편을 위해 일겁의 시간을 기다리노라'라는 호연한 태도는, 그 배후에 놓인 과장과 허세를 십분 감안하더라도, 부박해져만 가는 이 시대에 흔쾌히 받아들일만한 시간의식이 아닐 수 없다. - 한수영(연..

황송문 대표시 2020.11.06

까치밥 - 황송문

까치밥 황송문 우리 죽어 살아요 떨어지진 말고 죽은 듯이 살아요 꽃샘바람에도 떨어지지 않는 꽃잎처럼 어지러운 세상에서 떨어지지 말아요. 우리 곱게 곱게 익기로 해요 여름날의 모진 비바람을 견디어내고 금싸라기 가을볕에 단맛이 스미는 그런 성숙의 연륜대로 익기로 해요. 우리 죽은듯이 죽어 살아요 메주가 썩어서 장맛이 들고 떫은 감도 서리맞은 뒤에 맛들듯이 우리 곤난 받은 뒤에 단맛을 익혀요 정겹고 꽃답게 인생을 익혀요. 목이 시린 하늘 드높이 홍시로 익어 지내다가 새소식 가지고 오시는 까치에게 쭈구렁바가지로 쪼아 먹히고 이듬해 새봄에 속잎이 필 때 흙속에 묻혔다가 싹이 나는 섭리(攝理) 그렇게 물 흐르듯 순애(殉愛)하며 살아요. 열독제시 - 이 시에서 시인은 일부 사람들이 핏대를 세워 목소리를 높여야 제 몫..

황송문 대표시 2020.1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