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장 간장 황송문 우리 조용히 썩기로 해요. 우리 기꺼이 죽기로 해요. 토속의 항아리 가득히 고여 삭아 내린 뒤에 맛으로 살아나는 삶, 우리 익어서 살기로 해요. 안으로 달여지는 삶, 뿌리 깊은 맛으로 은근한 사랑을 맛 들게 해요. 정겹게 익어 가자면 꽃답게 썩어 가자면 속맛이 우러날 때까지는 속삭는 .. 황송문 대표시 2010.08.26
자운영 자운영紫雲英 황송문 나는 그녀에게 꽃시계를 채워 주었고 그녀는 나에게 꽃목걸이를 걸어 주었다. 꿀벌들은 환상의 소리 잉잉거리며 우리들의 부끄러움을 축복해 주었다. 그러나, 우리들의 만남은 이별, 보자기로 구름 잡는 꿈길이었다. 세월이 가고 늙음이 왔다. 어느 저승에서라도 만나고 싶어도 .. 황송문 대표시 2010.08.24
시론 1 시론詩論 Ⅰ - 용수에서 떠낸 술 - 황송문 시를 쓰기 전에 인생을 정서하라. 가슴에 괸 술을 곱게 떠내어라. 성급하게 쥐어짜는 惡酒일랑 아예 꿈도 꾸지 말라. 詩는 썩는 의식의 항아리에 용수를 질러 놓고 기다리는 사상. 인생이 익을 때까지 기다리며 참는 꽃술의 아픔이다. 떫은 言語가 익느라고 썩.. 황송문 대표시 2010.08.24
망향가 망향가望鄕歌 Ⅱ 황송문 어매여, 시골 울 엄매여! 어매 솜씨에 장맛이 달아 시래기국 잘도 끓여 주던 어매여! 어매 청춘 품앗이로 보낸 들녘 가르마 트인 논두렁길을 내 늘그막엔 밟아 볼라요! 冬至ㅅ날 팥죽을 먹다가 문득, 걸리던 어매여! 새알심이 걸려 넘기지를 못하고 그리버 그리버, 울 엄매 그리.. 황송문 대표시 2010.08.19
돌 1 돌 Ⅰ 황송문 불 속에서 한 천년 달구어 지다가 산적이 되어 한 천년 숨어 살다가 칼날 같은 소슬바람에 염주를 집어 들고 물속에서 한 천년 원 없이 구르다가 영겁의 돌이 되어 돌돌돌 구르다가 매촐한 목소리 가다듬고 일어나 神仙峰 花潭 先生 바둑알이 되어서 한 천년 운무 속에 잠겨 살다가 잡놈.. 황송문 대표시 2010.08.19
까치밥 까치밥 황송문 우리 죽어 살아요. 떨어지진 말고 죽은 듯이 살아요. 꽃샘바람에도 떨어지지 않는 꽃잎처럼 어지러운 세상에서 떨어지지 말아요. 우리 곱게 곱게 익기로 해요. 여름날의 모진 비바람을 견디어 내고 금싸라기 가을볕에 단맛이 스미는 그런 성숙의 연륜대로 익기로 해요. 우리 죽은 듯이 .. 황송문 대표시 2010.08.10
섣달 섣달 황송문 소복의 달 아래 다듬이질 소리 한창이다. 姑婦의 방망이 딱뚝 똑딱 학 울음도 한밤에 千里를 난다. 참기름 불은 竹窓 가에 졸고 오동꽃 그늘엔 봉황이 난다. 다듬잇돌 명주 올에 線을 그리며 설움을 두들기는 오롯한 그림자 떼 지어 날아가는 철새 울음 은대야 하늘에 産月이 떴다. 황송문 대표시 2010.08.10
샘도랑집 바우 샘도랑집 바우 황송문 가까이 가지도 않았습니다. 탐욕의 불을 켜고 바라본 일도 없습니다. 전설 속의 나무꾼처럼 옷을 숨기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그저 달님도 부끄러워 구름 속으로 숨는 밤 물소리를 들었을 뿐입니다. 죄가 있다면 그 소리 훔쳐 들은 죄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그 소리는 꽃.. 황송문 대표시 2010.08.05
선풍 선풍(禪風) 황송문 노을이 물드는 山寺에서 스님과 나는 法談을 한다. 꽃잎을 걸러 마신 僧房에서 法酒는 나를 꽃피운다. 스님의 모시옷은 구름으로 떠있고 나의 넥타이는 煩惱로 꼬여있다. “자녀를 몇이나 두셨습니까?” “舍利는 몇이나 두셨습니까?” “더운데 넥타이를 푸시지요.” “더워도 풀.. 황송문 대표시 2010.08.04
포장마차에서/황송문 포장마차에서 황송문 그녀는 시를 쓰고 나는 잡문을 끄적였다. 잔잔한 눈으로 말하는 그녀의 시는 꿈이었다. 그녀가 호수 같은 눈으로 꿈꾸듯 속삭일 때 나는 허튼 소리를 하고 있었다. 그녀의 옥합(玉盒) 속 깊은 수심(水深)을 알지 못한 나는 참새처럼 짹짹거리고 있었다. 그녀가 내 입을 막을 때 내 .. 황송문 대표시 2010.08.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