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송문 대표시

황송문의 시 - 돌

SM사계 2020. 11. 6. 07:23

 

 

                                                  황송문

 

불 속에서 한 천년 달구어지다가

산적이 되어 한 천년 숨어 살다가

칼날 같은 소슬바람에 염주를 집어들고

 

물 속에서 한 천년 원없이 구르다가

영겁의 돌이 되어 돌돌돌 구르다가

매촐한 목소리 가다듬고 일어나  

 

神仙峰 花潭 先生 바둑알이 되어서

한 천년 雲霧 속에 잠겨 살다가

 

잡놈들 들끓는 俗界에 내려와

좋은 시 한 편만 남기고 죽으리.

 

<돌>의 마지막 행에 나오는 시 한 편, 이 시간의 유장함이야말로 '속도전'의 시대에 대한 얼마나 유쾌한 반동인가? 온 세상이 '찰라의 미학'에 눈멀어 찧고 까불 때, '나는 시 한편을 위해 일겁의 시간을 기다리노라'라는 호연한 태도는, 그 배후에 놓인 과장과 허세를 십분 감안하더라도, 부박해져만 가는 이 시대에 흔쾌히 받아들일만한 시간의식이 아닐 수 없다.

                                                                                                            - 한수영(연세대 교수,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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