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
황송문
불 속에서 한 천년 달구어지다가
산적이 되어 한 천년 숨어 살다가
칼날 같은 소슬바람에 염주를 집어들고
물 속에서 한 천년 원없이 구르다가
영겁의 돌이 되어 돌돌돌 구르다가
매촐한 목소리 가다듬고 일어나
神仙峰 花潭 先生 바둑알이 되어서
한 천년 雲霧 속에 잠겨 살다가
잡놈들 들끓는 俗界에 내려와
좋은 시 한 편만 남기고 죽으리.
<돌>의 마지막 행에 나오는 시 한 편, 이 시간의 유장함이야말로 '속도전'의 시대에 대한 얼마나 유쾌한 반동인가? 온 세상이 '찰라의 미학'에 눈멀어 찧고 까불 때, '나는 시 한편을 위해 일겁의 시간을 기다리노라'라는 호연한 태도는, 그 배후에 놓인 과장과 허세를 십분 감안하더라도, 부박해져만 가는 이 시대에 흔쾌히 받아들일만한 시간의식이 아닐 수 없다.
- 한수영(연세대 교수,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