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송문 대표시

샘도랑집 바우

SM사계 2020. 11. 9. 11:47

 

 

샘도랑집 바우

                                   황송문

 

가까이 가지도 않았습니다.

탐욕의 불을 켜고

바라본 일도 없습니다.

 

전설 속의 나무꾼처럼

옷을 숨기지도 않았습니다.

 

그저그저 달님도 부끄러워

구름 속으로 숨는 밤

물소리를 들었을 뿐입니다.

 

죄가 있다면

그 소리 훔쳐들은 죄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그 소리는 꽃잎이 되고 향기가 되었습니다.

 

꺼질 벗는

수밀도의 향기------

밤하늘엔 여인의 비눗물이 흘러갑니다.

 

아씨가 선녀로 목욕하는 밤이면

샘도랑은 온통 별밭이 되어

가슴은 은하(銀河)로 출렁이었습니다.

 

손목 한 번 잡은 일도 없습니다.

얘기 한 번  나눈 적도 없습니다.

 

다만 아슴푸레한 어둠 저편에서

떨어지는 물소리에

정신을 빼앗겼던 탓이올시다.

 

시원(始原)의 유두(乳頭) 같은

물방울이 떨어질 때마다

머리카락으로 목덜미로 유방으로 허리로

그리고 또------

 

곡선의 시야(視野) 굼틀금틀

어루만져보고 껴안아보던

그 달콤한 상상의 감주(甘酒)

죄가 있다면 이것이 죄올시다.

 

설 속의 나무꾼처럼

옷 하나 감추지도 못한 주제에

죄가 있다면

몰소리에 끌려간 죄밖에 없습니다.

-황송문 시선집 <시를 읊는 의자>(면문당) 47쪽에서-

 

인간의 욕망을 자극하기 위해 상상의 극한을 달리는 오늘날의 세태를 생각하면, 이웃집 여인의 목욕하는 소리를 훔쳐 듣고 춘정(春情)에 빠져버린 시골 총각의 일화는 아득한 전설처럼 들린다. 그러나 새겨 읽을수록 이 시는 몹시 고혹적이고 에로틱한 분위기를 새록새록 전해준다. 욕망을 억누르거나 발산시키는 것이 아니라, 차분하게 삶의 한 영역으로 감싸안으면서 순치시키는 이러한 화법(話法)이 황송문 시인의 애욕에 대한 형상화의 본령(本領)에 가깝다.

-한수영(연세대 교수, 문학평론가)

 

*이 시를 감상하시려는 분은 이혜정(한국시낭송예술협회 회장) 낭송가의 <이혜정의 시가 있는 해피톡> 황송문시5편 중 3회째 낭송에 있습니다. 스마트폰 카톡 이혜정의 해피톡에 들어가시면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특히 세번째 이어지는 <샘도랑집 바우>는 신비로운 음악과 함께 이혜정 회장의 세련된 낭송이 감동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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