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도랑집 바우
황송문
가까이 가지도 않았습니다.
탐욕의 불을 켜고
바라본 일도 없습니다.
전설 속의 나무꾼처럼
옷을 숨기지도 않았습니다.
그저그저 달님도 부끄러워
구름 속으로 숨는 밤
물소리를 들었을 뿐입니다.
죄가 있다면
그 소리 훔쳐들은 죄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그 소리는 꽃잎이 되고 향기가 되었습니다.
꺼질 벗는
수밀도의 향기------
밤하늘엔 여인의 비눗물이 흘러갑니다.
아씨가 선녀로 목욕하는 밤이면
샘도랑은 온통 별밭이 되어
가슴은 은하(銀河)로 출렁이었습니다.
손목 한 번 잡은 일도 없습니다.
얘기 한 번 나눈 적도 없습니다.
다만 아슴푸레한 어둠 저편에서
떨어지는 물소리에
정신을 빼앗겼던 탓이올시다.
시원(始原)의 유두(乳頭) 같은
물방울이 떨어질 때마다
머리카락으로 목덜미로 유방으로 허리로
그리고 또------
곡선의 시야(視野) 굼틀금틀
어루만져보고 껴안아보던
그 달콤한 상상의 감주(甘酒)
죄가 있다면 이것이 죄올시다.
설 속의 나무꾼처럼
옷 하나 감추지도 못한 주제에
죄가 있다면
몰소리에 끌려간 죄밖에 없습니다.
-황송문 시선집 <시를 읊는 의자>(면문당) 47쪽에서-
인간의 욕망을 자극하기 위해 상상의 극한을 달리는 오늘날의 세태를 생각하면, 이웃집 여인의 목욕하는 소리를 훔쳐 듣고 춘정(春情)에 빠져버린 시골 총각의 일화는 아득한 전설처럼 들린다. 그러나 새겨 읽을수록 이 시는 몹시 고혹적이고 에로틱한 분위기를 새록새록 전해준다. 욕망을 억누르거나 발산시키는 것이 아니라, 차분하게 삶의 한 영역으로 감싸안으면서 순치시키는 이러한 화법(話法)이 황송문 시인의 애욕에 대한 형상화의 본령(本領)에 가깝다.
-한수영(연세대 교수, 문학평론가)
*이 시를 감상하시려는 분은 이혜정(한국시낭송예술협회 회장) 낭송가의 <이혜정의 시가 있는 해피톡> 황송문시5편 중 3회째 낭송에 있습니다. 스마트폰 카톡 이혜정의 해피톡에 들어가시면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특히 세번째 이어지는 <샘도랑집 바우>는 신비로운 음악과 함께 이혜정 회장의 세련된 낭송이 감동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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