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송문 대표시

선풍

SM사계 2020. 12. 21. 00:10

 

 

선풍禪風

 

                                        황송문

 

노을이 물드는 산사에서

스님과 나는 법담(法談)을 한다.

 

꽃잎을 걸러 마신 승방에서

법주(法酒)는 나를 꽃피운다.

 

스님의 모시옷은 구름으로 떠 있고

나의 넥타이는 번뇌로 꼬여 있다.

 

“자녀(子女)는 몇이나 두셨습니까?”

“사리(舍利)는 몇이나 두셨습니까?”

 

“더운데 넥타이를 풀으시죠.”

“더워도 풀어서는 안 됩니다.”

 

목을 감아 맨 십자가

책임을 풀어 던질 수는 없다.

 

내 가정과 국가와 세계

가슴앓이 꽃들을 버릴 수는 없다.

 

●평설(評說) - 한 사람은 속세 인간이고 한 사람은 도를 닦는

스님인데, 각기 자기의 내공(內攻)으로 선문답(禪問答)을 주고

받는다. 그런데 스님의 선문(禪問)을 받아내는 속세 인간의 내

공이 만만치 않다. 대덕(大德)의 고승(高僧) 앞에 흐트러지지 않

은 자세로 똑바로 앉아서 속세 인간의 자세를 끝내 포기하지 않

은, 아니 포기할 수 없다고 당당히 맞선다. 대덕의 고승이 산중에

서 내공을 닦았다면 속세의 이 넥타이를 맨 사람은 바로 탁담에서

내공을 닦은 게 아니겠는가. 그 탁담에는 “앓고 있는 꽃”들이 가득

하니 황송문 시인의 시는 탈속의 시가 아니라 세속의 시임을 확인

케 하는 순간이다. - 한수영(문학평론가, 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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