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송문 시창작 91

까치밥

까치밥 황송문 우리 죽어 살아요 / 떨어지진 말고 죽은 듯이 살아요. 꽃샘바람에도 떨어지지 않는 꽃잎처럼 / 어지러운 세상에서 떨어지지 말아요. 우리 곱게 곱게 익기로 해요 / 여름날의 모진 비바람을 견디어내고 금싸라기 가을볕에 단맛이 스미는 / 그런 성숙의 연륜대로 익기로 해요 우리 죽은 듯이 죽어 살아요 / 메주가 썩어서 장맛이 들고 떫은 감도 서리맞은 뒤에 맛들듯이 / 우리 고난 받은 뒤에 단맛을익혀요 정겹고 꽃답게 인생을 익혀요 목이 시린 하늘 드높이 / 홍시로 익어 지내다가 새소식 가지고 오시는 까치에게 / 쭈구렁바가지로 쪼아 먹히고 이듬해 새봄에 속잎이 필 때 / 흙속에 묻혔다가 싹이 나는 섭리 그렇게 물 흐르듯 순애(殉愛)하며 살아요. 이 시에서 시인은 일부 사람들이 핏대를 세워 목소리를 높..

황송문 시창작 2023.02.13

보리를 밟으면서

보리를 밟으면서 황송문 보리를 밟으면서 언 뿌리를 생각한다. 아이들이 아비에게 대들 때처럼 시린 가슴으로 아픔을 밟는 아픔으로 해동을 생각한다. 얼마나 교육을 시켜주었느냐고 얼마나 유산을 남겨주었느냐고 시퍼런 눈들이 대드는 것은 나의 무능임을 나는 안다. 뿌리를 위하여 씨알이 썩는 것처럼 사랑할수록 무능해지는 것을. 나는 안다. 내 아이들이 대어 들듯 어릴 적 내가 대어 들면 말을 못 하시고 눈을 감으시던 아버지처럼 나 또한 눈을 감은 채 보리를 밟는다. 잠든 어린것 곁에 이불을 덮어주며 눈을 감는 것처럼 나는 그렇게 눈을 감은 채 온종일 보리를 밟는다.

황송문 시창작 2023.01.24

선풍

선풍 황송문 노을이 물드는 산사에서 스님과 나는 법담을 한다. 꽃잎을 걸러 마신 승방에서 법주는 나를 꽃피운다. 스님의 모시옷은 구름으로 떠있고 나의 넥타이는 번뇌로 꼬여있다. "자녀를 몇이나 두셨습니까?" "사리는 몇이나 두셨습니까?" "더운데 넥타이를 풀으시지요." "더워도 풀어서는 안 됩니다." 목을 감아맨 십자가 책임을 풀어 던질 수는 없다. 내 가정과 국가와 세계 앓고 있는 꽃들을 버릴 수는 없다.

황송문 시창작 2023.01.16

겨울 고사목

겨울 고사목 황송문 눈이 쌓이면 은빛으로 말한다. 살아있다고 죽지 않고 살아있다고 지순(至純)한 소리로 온 산 골짜기마다 목쉰 소리로 쩌렁쩌렁 울린다. 비목(碑木)처럼 눈 덮인 나무의 비문(碑文)처럼 산짐승처럼 포효하는 몸짓 순간을 죽어서 영원을 사는 찬란한 슬픔의 은군자(隱君子)라고. *은군자(隱君子) - 부귀와 공명을 구하지 않고 숨어서 사는 사람. * 며칠간 컴 고장으로 방문을 못했습니다.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황송문 시창작 2023.01.09

새해의 기도

새해의 기도 황송문 주여, 새해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암담한 세상을 교정(校正) 보게 하소서. 뻔뻔스런 오자(誤字)는 빼어내고 억울한 활자는 바로 세우시어 세상을 온전히 바로잡아 주소서. 아무리 바라보아도 성한 데가 없는 이 나라 만신창이 되어 피흘리는 이 겨레 양심의 나침반가리키는대로 새 의인으로 거듭나게 하소서. 맑은 물을 길어오시던 어머니처럼 갈한 목을 축여 잠을 깨워 주시고 어둠을살라먹으며 떠오르는 아침의 나라 해를 바라보듯이 새희망의 꿈으로 거듭나게 하소서.

황송문 시창작 2023.0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