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밥
황송문
우리 죽어 살아요 / 떨어지진 말고 죽은 듯이 살아요.
꽃샘바람에도 떨어지지 않는 꽃잎처럼 / 어지러운 세상에서 떨어지지 말아요.
우리 곱게 곱게 익기로 해요 / 여름날의 모진 비바람을 견디어내고
금싸라기 가을볕에 단맛이 스미는 / 그런 성숙의 연륜대로 익기로 해요
우리 죽은 듯이 죽어 살아요 / 메주가 썩어서 장맛이 들고
떫은 감도 서리맞은 뒤에 맛들듯이 / 우리 고난 받은 뒤에 단맛을익혀요
정겹고 꽃답게 인생을 익혀요
목이 시린 하늘 드높이 / 홍시로 익어 지내다가
새소식 가지고 오시는 까치에게 / 쭈구렁바가지로 쪼아 먹히고
이듬해 새봄에 속잎이 필 때 / 흙속에 묻혔다가 싹이 나는 섭리
그렇게 물 흐르듯 순애(殉愛)하며 살아요.
<열독제시> 이 시에서 시인은 일부 사람들이 핏대를 세워 목소리를 높여야 제 몫을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할 때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조용하지만 확신에 찬 메시지,
'죽어 살면서' 인생을 익히는 삶의 자세를 권장하는 이 목소리는 톤은 낮지만 울림이
깊다. 확고한 철학적 사고가 배경이 되어있음을 느낄 수 있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목소리'이다. 이 시에서 "죽어 살아요"라는 말은 얼핏 보면 조용히 고생을 견디며
살아야 한다는 말 같지만 곰곰히 음미해 보면 고난을 딛고 새로운 차원으로 거듭나
살아야 한다는 말이다.
-중국조선족고급중학교교과서 조선어문(필수1) 13-14쪽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