촐촐한 밤이면 촐촐한 밤이면 황송문 촐촐한 밤이면 신석정 선생님을 떠올린다. 감 껍질이라도 지근거리면서 흰 물새 나는 호수를 꿈꾸는 선생님께 감 껍질은 없어도 포장마차 막걸리로 모실 수 있다면 반가워하시던 선생님, 기분 좋게 얼근하시면 송문아, 시론보다 더 중한 게 뭔지 아니? 그때는 대답을 못했지만 세월이 흘러 석정 선생님 '서정가'를 노래로 듣다가 강물처럼 강물처럼 정겹게 흘러가면서 남기는 인상은 훈김인지, 영원히 찍힌 인상도장인지 황송문 시창작 2022.10.11
토란잎처럼 토란잎처럼 황송문 아침 햇살에 영롱한 이슬 반짝이는 토란잎처럼 슬기롭게 살라고 어려운 주문을 하시는가. 미세먼지를 몰고 온 오탁의 빗방울일지라도 진주처럼 아름답게 하늘로 받들어 모시는, 아무리 험난한 세상에서도 티끌 하나 묻지 않는, 여기서 시련 고통이 저기서 복이 되리라는 소망의 눈물, 햇살과 함께 토란잎처럼 살라 하시네. 82호(2022. 여름)에서 황송문 시창작 2022.10.10
서울 막걸리 서울 막걸리 황송문 워싱턴 거리에서 흑인이 나를 보더니 헤이, 서울 막걸리 막걸리, 서울 막걸리 좋아. 서울 올림픽 팔팔 서울 올림픽 좋아. 한강변 밤하늘에 반원을 그리며 가로등 불빛이 빛나듯 까만 흑인의 얼굴, 그 입에서 말끝마다 하얀 이가 반짝였었네. 까만 워싱턴 밤하늘 불꽃처럼 흑인의 하얀 이빨이 빛났었다네. - 83호(2022 가을)에서- 황송문 시창작 2022.10.09
알래스카 1 알래스카 1 황송문 알래스카의 하늘과 산과 바다는 물음표로 가득했다. 물어도 물어도 끝이 없는 물음표와 물음표…… 알래스카의 구름과 눈과 파도는 느낌표로 가득했다. 느껴도 느껴도 끝이 없는 느낌표와 느낌표…… 밤이 없는 알래스카의 여름은 불타는 태양으로 가면을 벗는다. 가식의 옷을 벗고 구릿빛 등살을 드러낸다. 곰이 앞발로 물고기를 건져 먹듯 시원(始原)을 건져 먹는 내 의식(意識)의 어망(魚網)…… 알래스카는 내가 잡은 물고기의 싱싱한 회다. 관념의 껍질을 벗기고 고추장을 찍을 때 일제히 몰려온 물음표 느낌표가 만선(滿船)으로 가득했다. *1987년 7월 12일, 미국 알래스카 코디악 섬에서 ●코디악은 알래스카에서 경비행기로 바꿔 타고 1시간쯤 가는 곳(섬)입니다. 낚시를 위해서 수속을 밟아 증서를 받.. 황송문 시창작 2021.01.11
(詩)눈잎 황송문 눈잎 황송문 눈잎이 나를 흔드네. 이러지를 말고 정말 이러지를 말고 시골로 내려가라고 나를 흔들어대네. 이러지 말고 정말 이러지를 말고 청국장 끓는 고향으로 내려가려네. 장독대와 초가지붕과 배추밭 고랑 위로 수만리 꿈을 물어온 눈잎이 나를 흔들어 깨우네. ●시「눈잎」은 KBS TV의 ‘상쾌한 아침의 시’에 방영된 바 있는 작품입니다. 누구나 편하게 읽을 수 있지만, 아무나 쓸 수 없는 평범 속의 비범함이 촌스럽게 스며있는 작품이라 하겠습니다. ※ 2017년에 발간한 시집에 실린 시를 올렸습니다. 황송문 시창작 2021.01.08
새해 인사 드립니다 시론詩論 Ⅲ 황송문 마음 편한 식물성 바가지 같은 詩 檀紀를 쓰던 달밤 교교한 음력의 詩 사랑방 천장에선 메주가 뜨던 그 퀘퀘한 토속의 詩를 쓰고 싶다. 人情이 많은 이웃들의 모닥불 같은 詩 해질녘 초가지붕의 박꽃 같은 詩 마당의 멍석 가에 모깃불 피던 그 포르스름한 실연기 같은 詩를 쓰고 싶다. 겨울엔 춥고 여름엔 머리 벗겨지는 빨강 페인트의 슬레이트 지붕은 말고, 나일론 끝에 목을 맨 플라스틱 바가지는 말고, 뚝배기의 숭늉 내음 안개로 피는 정겨운 詩, 푸짐한 詩, 편안한 詩, 더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고구마 한 소쿠리씩의 詩를 쓰고 싶다. 고추잠자리 노을 속으로 빨려 드는 詩, 저녁연기 얕게 깔리는 꿈속의 詩, 어스름 토담 고샅길 돌아갈 때의 멸치 넣고 끓임직한 은근한 詩, 그 시래깃국 냄새나.. 황송문 시창작 2020.12.31
산길 산길 황송문 우정이란, 사랑이란, 또는 인연이란 산길 같다고 산들이 넌지시 말해 주었었다. 자주 다니면 길이 나지만 다니지 않으면 길이 사라진다고 바람처럼 말해 주었었다. 다니지 않으면 수풀이 우거져 길은 사라지고 우정도, 사랑도, 인연도, 묵정밭처럼 쓸모없게 된다고. ●성서에는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고 했으며, 주역에는 道는 말씀(言)이라 했는데, 현대인은 관계가 있었다고 말합니다. 길흉화복(吉凶禍福) 모든 게 사람과 사람의 관계양상이라 하겠습니다. 새해에는 아름다운 관계로 편안한 자쾌(自快) 를 누리시기 바랍니다. 누가 뭐라 해도 기쁨이 충만한 호연 지기(浩然之氣)로 안심입명(安心立命)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새해를 맞으면서 황송문 절- 황송문 시창작 2020.12.30
가을 연주 가을 연주 황송문 달빛이 풀잎을 연주한다 달빛이 활을 쥐고 바이올린을 켜는 풀 푸른 소리 은하 이슬이 흐른다 강물이 비늘을 털고 반짝인다 악보의 눈들이 반짝인다. 풀꽃에 자지러지는 바람 천연의 머리카락이 흩날린다. 풀잎은 풀잎끼리 별빛은 별빛끼리 볼을 비벼대는 애무의 밤 지칠 줄 모르는 연주 나도 하나의 활이 된다. 황송문 시창작 2020.10.10
제3부 시의 표현 제3부 시의 표현 1. 의도와 표현 요즈음은 시를 쓴다고 하지만, 과거에는 시를 읊는다거나 시를 짓는다고 하였다. 시를 읊는다는 말은, 시가(詩歌)라는 말이 성행하던 시절에 시와 노래가 따로 구분되지 않고 같은 뜻으로 통용되던 그 시음(詩吟)을 가리켜 이르는 말이다. 그 다음으로 시와.. 황송문 시창작 2012.07.30
제2부 시의 구성 제2부 시의 구성 1. 주제의 설정 화가가 그림을 그릴 때라든지, 사진 작가가 사진을 찍으려고 할 때 우선 ‘무엇을 어떻게 그릴 것인가’라든지 ‘무엇을 어떻게 찍을 것인가’ 하고 구도(構圖)를 잡을 것이다. 시의 경우에도 이와 마찬가지로 무엇을 어떻게 쓸 것인가 하고 궁리하게 되는.. 황송문 시창작 2012.07.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