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송문 시창작 91

실뜨기하면서

실뜨기하면서 황송문 실뜨기하면서 하느님의 말씀대로 사는법, 공생 공영하는 법을 배운다. 실의 양 끝을 매듭지어 두 손을 걸고 여러 모양을 만들어내듯이, 당신과 나 우리가 다함께 잘 주고받으면 행복한 인류가 되고, 건강한 지구가 된다고, 태초에 관계가 이어질 때부터 서로서로 끈끈하게 이어진 끈으로 빙벽과 준령을 넘어 역사를 꾸며왔다. 실뜨기는 존재와 존재의 색다른 접촉 손가락으로 우주를 엮어나간다. 실뜨기는 지구의 무한한 관계망을 관조하는 시작품 창작의 놀이 공간이라니---

황송문 시창작 2022.12.05

황송문 시 평설

황송문 시 평설 신석정 황 군은 학창 시절에도 퍽 과묵한 편이었다. 황 군은 그의 주소를 청춘의 오전에 두고 있는 믿음직한 시학도다. 만리 전정에 한눈파는 일 없이 시도에 정진하기를 바라되 바이마르에 침공해 온 나폴레옹에게 달려가 송시를 봉정한 괴테가 되기 전에 나폴레옹이 황제가 되었다는 말을 듣고 그에게 봉정하려던 악보를 찢어버린 베토벤적 시정신을 끝내 가슴에 지니고 나아가 우리 시단에 새로운 등불이 되어 주시를 바란다. - 1972년 8월 비사벌 초사에서 -

황송문 시창작 2022.11.28

황송문 시의 평설

황송문 시의 평설 정귀영 문학평론가 황송문 시인은 작품의 언어 공간에 한 치의 갭도 허용치 않는, 엄격한태도로 언어를 다룬다. 높은 이념의 소유자인 동시에 충실한 언어의 직공이다. 이 시인의 시세계는 이념의 고민에 피어나는 광명의 꽃이다. 사상적 이념과 예술적 언어가 장소를 같이 하여 시의 철학을 제시하고 내일의 대성을 예고하는 이 작품이 한국시의 성좌에 또 하나의 좌표를 그린다. 이념의 영원과 예술의 영원을 함께 약속하는 듯하다.

황송문 시창작 2022.11.14

선운사 단풍

선운사 단풍 황송문 바람난 선녀들의 귓속말이다. 발그레한 입시울 눈웃음이다. 열이 먹다 죽어도 모를 선악과의 사랑궁이다. 환장하게 타오르는 정념의 불꽃 합궁 속 상기된 사랑꽃이다. 요염한 불꽃 요염한 불꽃 꽃 속에서 꿀을 빠는 연인끼리 꽃물 짜 흩뿌리며 열꽃으로 내지르는 설측음이다 파열음이다 절 정음이다. 빛깔과 소리가 바꿔치기하는 첫날밤 터지는 아픔의 희열이다. 꽃핀 끝에 아기 배었다는 모나리자의 수수께끼다.

황송문 시창작 2022.11.07

무잎 송(頌)

무잎 송(頌) 황송문 기운 빠진 아내의 청을 듣고 / 무를 자르다가 머리 부분을 잘라서 접시에 담았다. 접시에 물을 붓고 / 창가에 모셔드렸더니 우리 집안에 경사가 났다. 아침 점심 저녁뿐 아니라 / 밤이나 낮이나 수시로 보게 되고 커피를 타 마시다가도 / 연인 바라보듯 그윽이 바라본다. 하마터면 예선에서 떨어져 / 탈락할 뻔한 원고가 최종심사원의 눈에 띄어 /최우수당선작으로 뽑히듯이, 우리집 접싯물 무잎 식구는 / 음식쓰레기통에 갈뻔했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온 효녀 심청 / 연꽃에서 피어난 왕비가 되었네.

황송문 시창작 2022.10.31

5번 척추

5번 척추 황송문 재활의학과 의사가 허리를 다친 적이 있느냐고 물었을 때 없다고 대답했다가 다친 적이 있다고 정정해야 했다. 45년 전 일본 유학 시절에 건축공사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 허리를 다친 후로 병원 신세를 진 기억이 살아났다. 그 후 세상을 열심히 사는 동안 힘든 일이 닥칠 때마다 죽으면 썩을 몸, 살 때 최선을 다하자고 개똥철학 같은 신념을 내비쳤다. 언젠가 시나브로 허리가 아프더니 왼쪽 허벅지에서 다리까지 한평생 과적을 견디며 혹사하던 죽으면 썩을 몸, 개똥철학을 반추한다.

황송문 시창작 2022.10.28

도시 빨래

도시 빨래 황송문 어머니는 아파트에서 빨래를 하셨네. 시골에서는 앞 냇물 뒷 냇물 오리발 같이 빨간 손을 물에 담구며 맑고 차가운 물에 빨래를 하듯이 그렇게 끝없이 빨래를 하셨네. 도시는 화장실이 빨래터인가 돌돌 말린 화장지를 풀어내리고 끝없이 끝도 없이 풀고 풀어서 세면기에 풀어 담그고 담그면서 향수에 젖어 도시 빨래를 하셨네. 가족들의 만류에도 한사코 화장지 빨래는 어머니 인생 인생을 치대며 빨다가 헹구다가 삭정이처럼 청춘은 굳어지고 영결종천, 지수화풍으로 가셨네. 화장지 빨래를 마지막으로 고향산천 하늘땅으로 돌아가셨네.

황송문 시창작 2022.10.15

가을 등산

가을 등산 황송문 단풍은 투피스 때가 되면 가식을 벗어던진다. 절반은 벗은 채 절반은 걸친 채 얼근한 하늘을 환장하게 좋아하는 골짜기의 물소리를 안주 삼아 우리 한 잔 하는 게 어때 인생길이 가파르면 쉬엄쉬엄 쉬어서 가고 일락서산 해떨어지면 병풍 같은 산허리에 천막을 치고 삼겹살 이라도 볶아놓고 둘러앉아서 우리 한 잔 하는 게 어때 세상살이가 어지러우면 청류에 발을 담그기도 하고 구름처럼 초연히 털고 일어나 반나의 수림 사이사이로 바람같이 속 편하게 정좌수랑 불러놓고 우리 한 잔 하는 게 어때

황송문 시창작 2022.1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