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송문 시창작 91

하루살이

하루살이 황송문 우리 꼭 하루만 살아요. / 단둘이서 산에 올라 남부럼잖게 하루만 살아요. 일상에는 만날 수 없는 그대 / 젊은 하늘을 푸르게만 봐요. 천년을 하루같이 살아요. / 하루를 천년같이 살아요. 영원히 사는 마음으로 / 하루를 구비구비 펴며 살아요. 골짜기가 산에서 존재하듯 / 내 속에 살아있는 그대여 우리 하루를 천년같이 살아요. // 산허리에 하루살이 솥을 걸고 불때 솔때 불때 솔때 / 소꿉놀이하며 천넌을 살아요.

황송문 시창작 2024.01.29

시를 읊는 의자

시를 읊는 의자 황송문 톱으로 / 오동나무를 베어내었는데, / 그 밑동에서 싹이 나고 자랐다. 시인이 그 등걸에 앉았을 때 / 하늘엔 구름꽃이 피고 / 땅엔 나뭇잎이 피어났다. / 자연은 신의 말씀, 시인이 말하기 전에 / 의자가 한 말은 상징과 은유였다. / 하늘에는 구름이 꽃피고 / 땅에는 나뭇잎이 피어 나고 / 나무의 뿌리와 줄기와 가지 / 종자가 구조를 형상화하고 았었 다. // 부산히 오르내리는 도관과 체관, / 뿌리와 줄기의 수력발전소에서 / 가지와 이파리 화력발전소에서 / 탄소동화작용으로 시를 읊고 있었다.

황송문 시창작 2024.01.22

콩나물 가족

콩나물 가족 황송문 봄이 오기 전 / 매화꽃이 피기 전 / 꽃샘바람이 시베리아 바람을 흉내 내느라 / 지평선상, 휑하니 열린 들녘을 / 휩쓸고 지나 가거나 말거나 / 우리 가족은 초가삼간 오순도순 콩나물을 길렀다. 할머니도 어머니도 누이들도 / 잠에서 깨어나면 표주박으로 / 옹배기에 고인 물을 떠서는 / 콩나물시루에 쪼르륵 쪼르륵 부었다. 어머니가 새벽마다 길어오시는 향나무 생울타리가의 샘물을 퍼붓고 나면 물방울은 휘몰이로 뚝뚝뚝 떨어지다다 / 자진모리로 두둑 뚜둑 떨어지다가 중중모리로 우뚝 뚝, 뚜욱 뚝 / 중몰이로 뚜욱 뚜욱 뚜욱 / 진양조로 쭈우욱 뚜우욱 / 기다림이 그리움이 되어 물의 종교로 자랐다. 초가집이나 기와집 밖에서는 / 꽃샘바람이 몸서리치게 불어도 / 장작불 지나간 구들의 윗목에서는 /..

황송문 시창작 2024.01.15

게 황송문 국회의사당 같은 / 갑각류 십각목의 절지동물이 / 둥근 등딱지로 납작 엎드려있다. / 대족(大足)은 이족(二足)이요 / 소족(小足)은 팔족(八足) 이요 안목(眼目)은 상천(上天)하고 / 거품은 버글버글 옆으로 실실 기는 행여 기득권 재산 명예 빼앗길까 / 딱지 안으로 겹눈을 움츠리고 요리조리 살피다가 / 표만 보이면 재빨리 나꿔채는 / 횡보(橫步)의 기재로다. 역사의 톱니바퀴에 낀 채 / 발목 잡는 한량들이 / 국회의사당처럼 엎어져 있다. 높은 세금 매기려면 / 나 잡아가 잡수라는 듯 / 등딱지만 내보이며 엎어져 있다.

황송문 시창작 2024.01.08

그리움 2

그리움 2 황송문 고향이 그리운 날 밤엔 호롱에 불이라도 켜보자. 말 못하는 호롱인들 그리움에 얼마나 속으로 울까 빈 가슴에 석유를 가득 채우고 성냥불을 붙여주자. 사무치게 피어오르는 향수의 불꽃 입에 물고 안으로 괸 울음 밖으로 울리니 창호지에 새어드는 문풍지 바람 밤새우는 물레소리 그리워 그리워 졸아드는 기름 소리에 달빛도 찾아와 쉬어 가리니---

황송문 시창작 2023.12.18

할머니는 감나무에 거름을 주셨느니라

할머니는 감나무에 거름을 주셨느니라 황송문 할머니는 돼지 족발을 삶을 때마다 우리에게는 고기만 주시고 국물은 국물도 없었느니라. 절에 가지고 가시곤 하셨기 때문이었느니라. 국물도 먹고 싶었는데 한 방울도 주는 법이 없이 족발 살코기만 주시곤 하셨느니라. 할머니는 국물을 어디다 쓰느냐고 궁금증이 동해서 여쭈었더니 감나무에 거름을 주셨다고 하셨느니라. 할머니가 입적하신 후 그 절을 찾아갔더니 연로하신 큰스님이 암자에서 반기셨느니라. 감나무의 홍시를 따주시면서 너의 할머니는 큰보살이었느니라. 오실 때마다 약을 가져오셔서 나의 무릎 관절, 골다공증을 치유하셨느니라. 감나무 열매 홍시처럼 떫은 기 없는 말씀으로 윤회로 윤회로 윤회전생으로 감나무 밑거름을 되뇌시었느니라.

황송문 시창작 2023.1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