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잎 꽃잎 내가 바라볼 때 너는 피어났고 내가 외면할 때 너는 시들었다. 나의 눈길에 너는 불이 붙었고 나의 손길에 너는 악기처럼 소리를 내어 꿀벌들을 불러 모았다. 네가 잉잉거리는 벌떼들을 불러들일 때 별은 빛나고, 내가 너의 꿀물에 젖을 때 달은 부끄러워했다. 네가 피어날 때 나는 살고 네가 시들.. 황송문 대표시 2010.10.12
칡차 칡차 오늘은 내 나라 칡차를 들자. 조상의 뼈가 묻힌 산 조상의 피가 흐른 산 조상 대대로 자자손손 뼈 중의 뼈, 살 중의 살이 묻힌 산 그 산 진액을 빨아올려 사시장철 뿌리로 간직했다가 주리 틀어 짜낸 칡차를 받아 마시고 내가 누구인가를 생각하자. 칡뿌리 같이 목숨 질긴 우리의 역사 칡뿌리 같이 .. 황송문 대표시 2010.10.05
청보리 청보리 청보리의 푸른 정신으로 살고 싶다. 가난한 나라에 태어나 살아도 가난한 줄 모르게 수천 톤의 햇살을 받아들이는 양지바른 토양에서 보란 듯이 살고 싶다. 국어보다 영어를 더 잘 가르치는 그런 事大의 사내새끼가 아니라, 자가용 열쇠를 빙글빙글 돌리면서 어깨를 으쓱거린다거나, 면사포를 .. 황송문 대표시 2010.10.05
간장 간장 황송문 우리 조용히 썩기로 해요. 우리 기꺼이 죽기로 해요. 토속의 항아리 가득히 고여 삭아 내린 뒤에 맛으로 살아나는 삶, 우리 익어서 살기로 해요. 안으로 달여지는 삶, 뿌리 깊은 맛으로 은근한 사랑을 맛 들게 해요. 정겹게 익어 가자면 꽃답게 썩어 가자면 속맛이 우러날 때까지는 속삭는 .. 황송문 대표시 2010.08.26
자운영 자운영紫雲英 황송문 나는 그녀에게 꽃시계를 채워 주었고 그녀는 나에게 꽃목걸이를 걸어 주었다. 꿀벌들은 환상의 소리 잉잉거리며 우리들의 부끄러움을 축복해 주었다. 그러나, 우리들의 만남은 이별, 보자기로 구름 잡는 꿈길이었다. 세월이 가고 늙음이 왔다. 어느 저승에서라도 만나고 싶어도 .. 황송문 대표시 2010.08.24
시론 1 시론詩論 Ⅰ - 용수에서 떠낸 술 - 황송문 시를 쓰기 전에 인생을 정서하라. 가슴에 괸 술을 곱게 떠내어라. 성급하게 쥐어짜는 惡酒일랑 아예 꿈도 꾸지 말라. 詩는 썩는 의식의 항아리에 용수를 질러 놓고 기다리는 사상. 인생이 익을 때까지 기다리며 참는 꽃술의 아픔이다. 떫은 言語가 익느라고 썩.. 황송문 대표시 2010.08.24
망향가 망향가望鄕歌 Ⅱ 황송문 어매여, 시골 울 엄매여! 어매 솜씨에 장맛이 달아 시래기국 잘도 끓여 주던 어매여! 어매 청춘 품앗이로 보낸 들녘 가르마 트인 논두렁길을 내 늘그막엔 밟아 볼라요! 冬至ㅅ날 팥죽을 먹다가 문득, 걸리던 어매여! 새알심이 걸려 넘기지를 못하고 그리버 그리버, 울 엄매 그리.. 황송문 대표시 2010.08.19
돌 1 돌 Ⅰ 황송문 불 속에서 한 천년 달구어 지다가 산적이 되어 한 천년 숨어 살다가 칼날 같은 소슬바람에 염주를 집어 들고 물속에서 한 천년 원 없이 구르다가 영겁의 돌이 되어 돌돌돌 구르다가 매촐한 목소리 가다듬고 일어나 神仙峰 花潭 先生 바둑알이 되어서 한 천년 운무 속에 잠겨 살다가 잡놈.. 황송문 대표시 2010.08.19
까치밥 까치밥 황송문 우리 죽어 살아요. 떨어지진 말고 죽은 듯이 살아요. 꽃샘바람에도 떨어지지 않는 꽃잎처럼 어지러운 세상에서 떨어지지 말아요. 우리 곱게 곱게 익기로 해요. 여름날의 모진 비바람을 견디어 내고 금싸라기 가을볕에 단맛이 스미는 그런 성숙의 연륜대로 익기로 해요. 우리 죽은 듯이 .. 황송문 대표시 2010.0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