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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황의 미소

돈황의 미소 황송문 햇빛도 들지 않는 / 밀폐된 막고굴 속에서 / 천년 먼지 속에 꽃핀 미소를 바라본다. // 배시시 웃는 영산홍은 아니고 / 미소 살짝 스치는 살구꽃 언저리 / 뭐라 말할 수 없는 침묵의 꽃 / 세상 번뇌가 먼지를 먹고 거듭난 끝에 / 바위의 기지개가 미소꽃을 피웠네. // 아무리 어두운 흑암지옥에서도 / 아무리 숨막히는 무간지옥에서도 / 빙그레 미소하는 대자대비의 꽃 / 노을 한 자락 스치는 미소의 극락 // 접시의 참기름불 / 가물가물 스치는 극락 한나절 / 천 년 전 고승의 꽃노을을 보았네.

황송문 시창작 2023.10.23

도마질 소리

도마질 소리 황송문 새벽잠에서 깨어날 때 / 무의식의 늪에서 의식의 호수로 찰랑찰랑 남살남실 깨어날 때 일출처럼 환하게 솟아오르면서 / 다독거리면서 어루만지는 심장소리가 식물성으로 들려요. 아내가 식칼로 무를 써는 소리 / 당근과 오이를 써는 소리 / 양파와 풋고추 써는 소리가 들려요 행주치마가 검어질수록 김치찌개 얼큰한 맛이 살고 / 도마에 상처가 나듯 주름살이 깊어질수록 /들깨 갈아부은 토란국은 은은한 조선 여인의 손맛이 살아요.

황송문 시창작 2023.10.16

강의실 정경

강의실 정경 황송문 일본인 여교수 / 사미센의 목소리 / 화사하게 날리는 / 시쿠라 꽃잎 / 흑판엔 춤추는 히라가나. 중국인 여학생의 / 빨간 미소 / 매화 겨드랑에 이는 / 사춘의 바람 / 사성으로 오르내리는 / 물새소리. 미국인 여학생 / 웃음소리는 / 조선 닭 알 낳고 / 홰치는 소리 / 참깨밭에 쳐드는 / 햇살의 이빨. 호주인 학생 / 수염에서 떨어지는/ 계곡의 물소리 / 바람 소리. / 나는 말없는 / 石窟庵大佛--- 1975년 일본 남산대학에서

황송문 시창작 2023.1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