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길 산길 황송문 우정이란, 사랑이란, 또는 인연이란 산길 같다고 산들이 넌지시 말해 주었다. 자주 다니면 길이 나지만 다니지 않으면 길이 사라진다고 바람처럼 말해 주었었다. 다니지 않으면 수풀이 우거져 길은 사라지고 우정도, 사랑도, 인연도, 묵정밭처럼 쓸모없게 된다고. 황송문 시창작 2023.11.13
몽블랑 스페어 잉크 몽블랑 스페어 잉크 황송문 할아버지는 붓으로 상소문을 쓰시고 아버지는 연필로 서한문을 쓰시고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연필로 한글과 한문을 쓰다가 중학교 다닐 때부터는 펜으로 잉크를 찍어서 쓰다가 펌프 만년필과 튜브 만년필 조강지처 같은 만년필을 애지중지하다가 첩실 같은 볼펜과 떨어져 살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한 눈 똥그란 볼펜은 나를 노려보다가 생활의 기름이 다 떨어지면 쓰레기통 아무데나 버림을 받았다. 세월은 바야흐로 컴퓨터가 들어와 워드프로세서로 글을 쓰게 되었다. 그러나, 그러나 세상은 아무리 변해도 조강지처를 버릴 수는 없다. 전당포 먼지처럼 해묵은 만년필을 찾아내고 남대문 수입품 상가를 찾았다. 몽블랑 스페어 잉크를 찾았으나 하늘색 잉크가 보이지 않았다. 어두운 세상 같은 검은 잉크를 사서 들.. 황송문 시창작 2023.11.06
향수 향수 황송문 고추잠자리가 몰려오네 하늘에 빨간 수를 놓으며 한데 어울려 날아오네. 어느 고향에서 보내오기에 저리도 빻갛게 상기되어 오는가. 저렇게 찾아왔던 그 해는 참으로 건강한 여름이었지. 그대 꽃불 같은 우리들의 강냉이 밭에는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지. 잔모래로 이를 닦으시던 할아버지의 상투 끝에 맴돌던 잠자리같이 강냉이 이빨을 흉내내며 단물을 빨던 나의 눈앞에 떼지어 오는 고추잠자리는 누가 보낸 전령인가. 어디서 오는 전령이기에 노스탤지어의 손을 흔들며 저리도 붉게, 가슴 이리저리 맴돌며 오는가. 황송문 시창작 2023.1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