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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서는

산에서는 황송문 산에서는 세속의 잡담을 지껄이지 말아라. 맑은 공기와 맑은 물 웃음 짓는 햇빛을 보아라. 나뭇잎 풀잎들은 손짓을 하고 꽃들이 반기거늘 먼지와 기름때를 왜 게워내느냐. 침묵하는 산이 입이 없어서 조용한 줄 아느냐. 바위처럼 묵언(黙言)으로 말하고 흙처럼 지평으로 참으며 청명한 하늘에 구름이 떠돌 듯 말 없는 가운데 산 높고 골 깊은 말, 우리도 그 말 없는 말로 고요함이 장을 서게 해야 하느니라. ●진리는 단순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복잡한 세상사도 문예 작품으로 거듭나게 되면 단순해지게 됩니다. 이것은 평범을 가장한 비범함이라 하겠습니다. 이 시에도 평범을 가장한 비범함이 스며있겠는데, 독자는 모호하게 은폐된 시어(詩語)를 눈치채야 합니다. 시어는 설명이 아니고 표현되어있기 때문입니다.

황송문 시전집 2021.01.29

망향가

망향가望鄕歌 황송문 어매여, 시골 울 엄매여! 어매 솜씨에 장맛이 달아 시래기국 잘도 끓여 주던 어매여! 어매 청춘 품앗이로 보낸 들녘 가르마 트인 논두렁길을 내 늘그막엔 밟아 볼라요! 冬至ㅅ날 팥죽을 먹다가 문득, 걸리던 어매여! 새알심이 걸려 넘기지를 못하고 그리버 그리버, 울 엄매 그리버서 빌딩 달 하염없이 바라보며 속을음 꺼익 꺼익 울었지러! 앵두나무 우물가로 시집오던 울 엄매! 새벽마다 맑은 물 길어와서는 정화수 축수 축수 치성을 드리더니 동백기름에 윤기 자르르한 머리카락은 뜬구름 세월에 파뿌리 되었지러! 아들이 유학을 간다고 송편을 쪄 가지고 달려오던 어매여! 九萬里長天에 월매나 시장허꼬? 비행기 속에서 먹어라, 잉! 점드락 갈라먼 월매나 시장허꼬 아이구 내 새끼, 내 새끼야! 돌아서며 눈물을..

황송문 시낭송 2021.01.25

꽃잎

꽃잎 황송문 내가 바라볼 때 너는 피어났고 내가 외면할 때 너는 시들었다. 나의 눈길에 너는 불이 붙었고 나의 손길에 너는 악기처럼 소리를 내어 굴벌처럼 불러 모았다. 네가 잉잉거리는 벌떼들을 불러들일 때 별은 빛나고, 내가 너의 꿀물에 젖을 때 달은 부끄러워했다. 네가 피어날 때 나는 살고 네가 시들 때 나는 죽었다. "사랑과 생명의 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름다운 말입니다. 사랑이 있는 곳에 생명이 있고, 생명이 있는 곳에 사랑이 있습니다. 사람 뿐아니라 모든 존재하는 사물은 존재하기 위한 힘이필요합니다. 힘이란 독자적으로는 생겨나지 않고 반드시 주체와 대상이라는 이성이 서로 잘 주고 받은 때 생겨납니다. 주역에서의 음양도 존재하기 위한 힘을 말합니다. 그러니 누구든지 존재하기 위해서는 사랑해야합..

황송문 대표시 2021.01.22

연애는

연애는 황송문 연애는 눈 오는 밤에 화롯가에서 해야 하느니라. 아무도 찾아올 이 없는 강설(降雪)의 산골 눈 쌓여 교교한 밤에 단둘이 화롯가에서 밤새도록 이야기꽃을 피워야 하느니라. 눈이 내리고 눈이 쌓여서 돌아갈 수 없는 밤 이야기도 조곤조곤 밤이랑 구워 먹으며 (아라비안 나이트처럼) 꿈같은 이야기를 늘여야 하느니라. 이야기를 끝없이 밤새도록 늘이고 늘이고 순백의 눈길 추억의 발자국을 남기며 밤새도록 늘여가야 하느니라. 연애는 눈 오는 밤에 화롯가에서 해야 하느니라. ●밤이란 정서(情緖)의 영양이 풍부합니다. 그래서 “문학의 밤”은 있어도 “문학의 낮”은 없습니다. 햇빛만 필요한 게 아니고 달빛도 필요하듯이, 역사만 필요한 게 아니라 신화도 필요하다 하겠습니다. “연애는 눈 오는 밤에 화롯가에서 해야”..

황송문 시전집 2021.01.18

아름다운 것

아름다운 것 황송문 보내 놓고 돌아와 틀어박는 쐐기는 아름답다. 쐐기의 미학(美學)으로 눈물을 감추면서 피어나는 웃음꽃은 아름답다. 기다림에 주름 잡힌 얼굴로 쏟아져 내리는 햇살의 만남은 아름답다. 태양의 미소와 바람의 애무 눈짓하는 나무는 아름답고 지저귀는 새는 아름답다. 아름다운 것은 눈짓하는 나무와 지저귀는 새, 떠난 이의 뒤에서 헛웃음 치는 아픔이다. 보내 놓고 돌아와 짜깁는 신경의 잔을 기울이며 하루를 천년같이 기다리는 노을이다. 노을 담긴 그리움이 한(恨)으로 괴이어 떠낸 (詩)의 잔에 넘치는 술의 입술이다. 아름다운 것은 산불로 타오르던 나무 뚫린 가슴에 울며 울며 쐐기를 지르는 망각의 술, 기다림의 잔이다. ●여러 색채와 형태의 아름다움이 있겠습니다. 저는 그중에서도 자기의 고통은 뒤로 돌..

황송문 대표시 2021.01.14

알래스카 1

알래스카 1 황송문 알래스카의 하늘과 산과 바다는 물음표로 가득했다. 물어도 물어도 끝이 없는 물음표와 물음표…… 알래스카의 구름과 눈과 파도는 느낌표로 가득했다. 느껴도 느껴도 끝이 없는 느낌표와 느낌표…… 밤이 없는 알래스카의 여름은 불타는 태양으로 가면을 벗는다. 가식의 옷을 벗고 구릿빛 등살을 드러낸다. 곰이 앞발로 물고기를 건져 먹듯 시원(始原)을 건져 먹는 내 의식(意識)의 어망(魚網)…… 알래스카는 내가 잡은 물고기의 싱싱한 회다. 관념의 껍질을 벗기고 고추장을 찍을 때 일제히 몰려온 물음표 느낌표가 만선(滿船)으로 가득했다. *1987년 7월 12일, 미국 알래스카 코디악 섬에서 ●코디악은 알래스카에서 경비행기로 바꿔 타고 1시간쯤 가는 곳(섬)입니다. 낚시를 위해서 수속을 밟아 증서를 받..

황송문 시창작 2021.01.11

(詩)눈잎 황송문

눈잎 황송문 눈잎이 나를 흔드네. 이러지를 말고 정말 이러지를 말고 시골로 내려가라고 나를 흔들어대네. 이러지 말고 정말 이러지를 말고 청국장 끓는 고향으로 내려가려네. 장독대와 초가지붕과 배추밭 고랑 위로 수만리 꿈을 물어온 눈잎이 나를 흔들어 깨우네. ●시「눈잎」은 KBS TV의 ‘상쾌한 아침의 시’에 방영된 바 있는 작품입니다. 누구나 편하게 읽을 수 있지만, 아무나 쓸 수 없는 평범 속의 비범함이 촌스럽게 스며있는 작품이라 하겠습니다. ※ 2017년에 발간한 시집에 실린 시를 올렸습니다.

황송문 시창작 2021.01.08

사막을 거쳐왔더니

사막을 거쳐 왔더니 황송문 사막을 거쳐 왔더니 쓰레기 같은 잡념이 타버렸어요 사막을 거쳐 왔더니 갈증 심한 욕심이 타버렸어요 사막을 거쳐 왔더니 번뇌의 박테리아 번식하던 미움이 타버렸어요 사막을 거쳐 왔더니 타버린 생각의 잿더미에서 살아나는 그리움…… 사막을 거쳐 왔더니 그리움은 모래처럼 산이 되었어요. *1987년 8월 9일, 미국 마이애미 사하라 호텔에서 ●아상(我相)을 버리면 마음이 편해진다. 양보할 수도 있고 용서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소나무처럼 변치 않을 수 있고, 대나무처럼 속 을 비울 수도 있다. 이를 위해서는 사막을 견디며 오듯이 고난을 선 량하게 겪어야 한다. 바닷물에 마모되지 않고는 몽돌이 될 수 없듯이, 고난을 선량하게 극복하지 않고는 미움이 그리움으로 바뀔 수 없다. ●동영상 음반..

황송문 근작시 2021.01.04

새해 인사 드립니다

시론詩論 Ⅲ 황송문 마음 편한 식물성 바가지 같은 詩 檀紀를 쓰던 달밤 교교한 음력의 詩 사랑방 천장에선 메주가 뜨던 그 퀘퀘한 토속의 詩를 쓰고 싶다. 人情이 많은 이웃들의 모닥불 같은 詩 해질녘 초가지붕의 박꽃 같은 詩 마당의 멍석 가에 모깃불 피던 그 포르스름한 실연기 같은 詩를 쓰고 싶다. 겨울엔 춥고 여름엔 머리 벗겨지는 빨강 페인트의 슬레이트 지붕은 말고, 나일론 끝에 목을 맨 플라스틱 바가지는 말고, 뚝배기의 숭늉 내음 안개로 피는 정겨운 詩, 푸짐한 詩, 편안한 詩, 더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고구마 한 소쿠리씩의 詩를 쓰고 싶다. 고추잠자리 노을 속으로 빨려 드는 詩, 저녁연기 얕게 깔리는 꿈속의 詩, 어스름 토담 고샅길 돌아갈 때의 멸치 넣고 끓임직한 은근한 詩, 그 시래깃국 냄새나..

황송문 시창작 2020.12.31

산길

산길 황송문 우정이란, 사랑이란, 또는 인연이란 산길 같다고 산들이 넌지시 말해 주었었다. 자주 다니면 길이 나지만 다니지 않으면 길이 사라진다고 바람처럼 말해 주었었다. 다니지 않으면 수풀이 우거져 길은 사라지고 우정도, 사랑도, 인연도, 묵정밭처럼 쓸모없게 된다고. ●성서에는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고 했으며, 주역에는 道는 말씀(言)이라 했는데, 현대인은 관계가 있었다고 말합니다. 길흉화복(吉凶禍福) 모든 게 사람과 사람의 관계양상이라 하겠습니다. 새해에는 아름다운 관계로 편안한 자쾌(自快) 를 누리시기 바랍니다. 누가 뭐라 해도 기쁨이 충만한 호연 지기(浩然之氣)로 안심입명(安心立命)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새해를 맞으면서 황송문 절-

황송문 시창작 2020.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