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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기는 시와 울리는 시

웃기는 시와 울리는 시 황송문 노교수가 학생들에게 물었다. / "6.25가 몇 년도에 일어났느냐"라고. / 그러나 모두들 꿀 먹은 병어리였다. // 절망하기 싫은 명예교수가 /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서 다시 물었다. "올해가 단기 몇 년이냐"고. / 역시 모두들 꿀 먹은 벙어리였다. // 분단의 원인도 모르고 / 제 나라 생년도 모르는 반거들충이들 / 지구가 반칙을 일삼고 / 병이 깊어지니까 하늘도 노하여 / 빈 하늘에 헛수고를 한다.// 별들이 쏜살 같이 사정하며 떨어지는 / 하느님의 혼불 / 신(神)은 돌아가셨는가. // 달콤한 연인들 휴대폰 속에서 / 영어 컴퓨터 필수과목에 밀려 / 문사철(文史哲)이 종명(終命)을 고하자 / 마지막 씨있는 말을 하겠다고 / 노교수가 교탁에서 분신 자살했다. // 머리..

황송문 시창작 2023.07.10

샘도랑집 바우

샘도랑잡 바우 황송문 가까이 가지도 않았습니다. / 탐욕의 불을 켜고 / 바라본 일도 없습니다. 전설 속의 나무꾼처럼 / 옷을 숨기지도 않았습니다. / 그저 그저 / 달님도 부끄러워 / 구름 속으로 숨는 밤 / 물소리를 들었을 뿐입니다. / 죄가 있다면 / 그 소리 훔쳐들은 죄밖에 없습니다. / 그런데, 그런데, / 그 소리는 꽃잎이 되고 향기가 되었습니다. / 껍질 벗는 / 수밀도의 향기--- / 밤하늘엔 여인의 비눗물이 흘러갑니다. / 아씨가 선녀로 목욕하는 밤이면 / 샘도랑은 온통 별밭이 되어 / 가슴은 은하로 출렁이었습니다. / 손목 한번 잡은 일도 없습니다. / 얘기 한번 나눈 적도 없습 니다. / 다만 아슴푸레한 어둠 저편에서 / 떨어지는 물소리에 / 정신을 빼앗겼던 탓이 올시다. / 시원의 ..

황송문 시창작 2023.07.03

창변窓邊의 손

창변窓邊의 손 황송문 하나의 손바닥을 향하여 / 또 하나의 손바닥이 기어오른다. 차창 안의 손바닥을 향하여 / 차창 밖의 손바닥이 기어오른다. 줄리엣의 손을 향하여 / 로미오의 손이 담벼락을 기어오르듯 기어오르는 손바닥 사이에 차창이 막혀 있다. 유리창은 투명하지만 / 매정스럽게 차가웠다. / 차창 안의 손은 냉가슴 앓는 아들의 손 / 차창 밖의 손은 평생을 하루같이 산 어미의 손 / 신혼에 헤어졌던 남편과 아내의 손 / 손과 손이 붙들어 보려고 자맥질을 한다. / 손은, 오랜 풍상을 견디어내느라 주름진 손은 / 혹한을 견디어낸 소나무 껍질 같은 / 수없는 연륜의 손금이 어지럽다. / 암사지도보다도 잔인한 / 상처두성이 손이 꿈결처럼 기어오른다. / 얼굴을 만지려고, 세월을 만지려고 / 눈물을 만자려고 ..

황송문 시창작 2023.06.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