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송문 대표시

보리를 밟으면서

SM사계 2010. 11. 4. 10:25

 

보리를 밟으면서

 

황송문 

 

 

 

 

보리를 밟으면서

언 뿌리를 생각한다.

아이들이 아비에게 대들 때처럼,

시린 가슴으로

아픔을 밟는 아픔으로

해동을 생각한다.

얼마나 교육을 시켜 줘 보았느냐고,

얼마나 유산을 남겨 줘 보았느냐고,

시퍼런 눈들이 대드는 것은

나의 무능임을

나는 안다.

뿌리를 위하여

씨알이 썩는 것처럼,

사랑할수록 무능해지는 것을

나는 안다.

내 아이들이 대어들 듯,

어릴 적 내가 대어 들면

말을 못하시고

눈을 감으시던 아버지처럼,

나 또한 눈을 감은 채

보리를 밟는다.

잠든 어린 것 곁에

이불을 덮어 주며

눈을 감는 것처럼,

나는 그렇게 눈을 감은 채

온종일 보리를 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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