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송문 대표수필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SM사계 2012. 7. 30. 12:41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나는 자다가 꿈속에서 고향을 볼 때가 있다. 꿈에 떡 얻어먹듯 그렇게 어쩌다가 고향 꿈을 꾸면서 흐느껴 울 때가 있다. 그 꿈속에서 뜸부기 소리를 들을 때가 있다.

뜸북 뜸북 뜸뜸뜸뜸……

낮에 듣지 못하는 뜸부기 소리를 잠자리에서 꿈에 듣는다. 낮에는 수돗물을 받아먹고 사는 도시 생활에 시달리다가도 밤에는 시골의 그 논배미에서 물을 물고 하늘을 보는 뜸부기 소리를 듣기도 한다.

수돗물 소리는 도시의 소리요 뜸부기 소리는 시골의 소리다. 수돗물 소리는 인공적으로 가공된 현실세계의 소리요 뜸부기 소리는 자연 그대로의 이상세계의 소리다.

나는 밤낮으로 이뤄지는 이 양면의 소리를 관념속에서 꼬무락거릴 때가 있다. 수돗물 받던 날 밤 꿈에 울던 그 뜸부기 소리에 푸른 하늘이 가슴에 드는 논배미마다 자운영 우려낸 물이 남실거렸다. 그 모포기 가득한 논배미에서 모포기 물어뜯으며 뜸부기가 울고 있었다.

내 가슴 가득히 실려 있는 그 논배미의 모포기를 물어뜯으며, 물을 물고 하늘 보는 뜸부기는 바로 내 향수심의 대변자였다. 나로 하여금 향수의 눈물을 자아내게 하는 뜸부기가 낮엔 나타나지는 못하고 잠자리의 꿈속에서 울고 있었다.

뜸부기 울던 나의 고향은 어머니의 가슴처럼 따뜻하고 편안하였다. 어머니의 품속은 아늑한 보금자리였다. 어릴 적 어머니의 등에 업혀갈 때의 그 아늑함과 편안함은 천국으로 가는 듯한 파라다이스였다.

나의 고향은 언제나 어머니처럼 그렇게 따뜻이 받아주는 너그러움이 있었다. 나는 고향의 그 너그러운 포용력에 끌리게 되고 고향을 찾게 된다. 고향은 내가 세상일에 실패했을 때에도, 풀이 죽어 귀향할 때에도 언제나 말없이 받아 주었다. 고향은 내가 남루한 차림으로 찾아 가더라도 업신여기는 법이 없이 언제나 변함없이 대하여 주었다.

 

마음 편한 식물성 바가지 같은 시

단기(檀紀)를 쓰던 달밤 교교한 음력의 시

사랑방 천정에선 메주가 뜨던

그 퀘퀘한 토속의 시를 쓰고 싶다.

인정이 많은 이웃들의 모닥불 같은 시

해질녘 초가지붕의 박꽃 같은 시

마당의 멍석 가에 모깃불 피던

그 포르스름한 실연기 같은 시를 쓰고 싶다.

겨울엔 춥고 여름엔 머리 빗겨지는

빨강 페인트의 슬레이트 지붕은 말고

나일론 끝에 목을 맨 플라스틱 바가지는 말고

뚝배기의 숭늉 내음 안개로 피는

정겨운 시, 푸짐한 시, 편안한 시,

더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고구마 한 소쿠리씩의 시를 쓰고 싶다.

고추잠자리 노을 속으로 빨려드는 시

저녁연기 얕게 깔리는 꿈속의 시

어스름 토담 고샅길 돌아갈 때의

멸치 넣고 끓임직한 은근한 시

그 시래깃국 냄새 나는 시를 쓰고 싶다.

-「시론(詩論)Ⅲ」-

 

제법 서늘해진 날씨 탓인지 우연히 떠오른 시다. 날씨가 추워지면 구들 목 생각이 간절해지듯, 세상이 추우면 추울수록 고향의 어머니를 떠올리게 되고, 향수의 안테나를 뽑아 올려 토속의 시어(詩語)로 교신하게 된다.

요즈음은 샘물 바가지에 버들잎을 띄워주고 살짝 돌아서며 볼을 붉히는 그런 소심(素心)의 순수언어를 찾아볼 길이 없다.

여름날 나그네에게 샘물 한 바가지 떠 주는 인정이 그리워진다. 행여 체할세라 버들잎을 띄워서 건네주는 마음이 그리워진다. 과수원에서 불어오는 그 시원한 바람같은 말씀이 그리워진다.

깊은 산속을 찾아 약수를 마시려 해도 거기엔 흥부 얘기에 나오는 식물성 바가지는 없고, 나일론 끈에 목을 맨 플라스틱 바가지가 기다리고 있기 마련이다.

나는 숨을 쉬지 않는 플라스틱 제품에 반발하고, 이러한 물질문명에 반동한다. 그렇다고 해서 역사를 거슬러 원시인이 되자는 것은 아니다. 번뇌의 넥타이를 풀어 버린다거나 가식의 양복을 벗어 버리려는 것도 아니다. 다만 잃어가는 원시적 생명감을 찾고 싶을 따름이다.

단기를 쓰고 음력을 쓰던 시절의 그 오순도순한 인정이 그리운 것이다. 물질문명, 과학문명이 발달한 오늘날보다도, 기능주의 배금주의가 득세하는 오늘날보다도 오히려 사람 사는 것 같았던 그 시절로의 심정적인 복귀를 원하는 것이다.

거짓말을 할 줄 모르는 시골 사람들은 가난해도 넉넉했고 여유가 있어 보였다. 그저 사람과 사람이 만나게 되면 정겨웠고 푸짐했고 편안했다. 무엇이든지 서로 주기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돈이 필요하기는 해도 오늘날처럼 이렇게까지 돈돈돈 하지도 않았다. 텔레비전이나 냉장고가 없어도 불편한 줄을 모르고 살았다. 선풍기가 없어도, 아이스크림이 없어도 짜증을 낼 줄 몰랐다.

고추잠자리 떼가 노을 속으로 빨려드는 그 강냉이 밭은 지금 생각만 해보아도 현란하기 그지없다. 환장하게 타오르는 강냉이 밭 고추잠자리 떼의 노을 속에 잠자리를 잡아다가 옥수숫대 껍질을 물어뜯어 벗겨내고 단물을 빨았었다. 초콜릿이나 누가바를 모르던 그때는 그것으로 만족했다.

그 병아리 시절이 그립다. 발톱과 부리가 날카로워지거나 말거나 거름자리 후비며 정신없이 살다가 제정신이 돌아와 문득 올려보는 하늘, 저 하늘 아래 산 너머 남촌이 왜 이리도 그리워지는 것일까.

초가집들이 의좋게 옹기종기 모여 있는 그 저녁 어스름 위로 밥 짓는 연기가 얕게 깔릴 무렵이면 그 꿈속같이 아련한 마을 동구 밖에서 어머니의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 어머니에게서는 청국장 냄새가 났었다. 멸치 넣고 끓임직한 시래깃국 냄새가 나는가 하면, 때로는 들깻묵 냄새도 나는 것이었다.

우리들의 식탁을 기름지게 하기 위하여 밭에서 거둔 소출로 참기름, 들기름을 짜시던 어머니의 그 박꽃 같은 소심(素心)이 나로 하여금 어쩌면 은근한 시, 편안한 시, 인정이 많은 이웃들의 모닥불 같은 시를 잉태케 하는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도 어머니의 그 치마폭에 휩싸이던 추억을 만지작거릴 때가 있다. 그 아늑한 어머니의 체온, 그 훈김은 사랑의 안개요, 고향의 시냇가 잔잔한 물비늘이다. 그 물비늘은 피곤한 내 영혼을 잠재우고 쉬게 하며 맑은 물로 씻어 내린다.

산 꿩이 푸드렁 솟아오를 때 산길 걷던 모자는 깜짝 놀라 풀숲에 엎어졌고, 어머니의 방어본능에 의해 치마폭 속에 감싸인 소년은 아늑한 그 속에서 푸른 하늘 높이 치솟아 오르는 장끼를 올려보고 있었지……

그 고소한 깻묵 냄새가 서늘한 바람을 타고 코끝으로 솔솔 풀려나오던 그 전설 같은 분위기를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어머니는 결국 나에게 깻묵 냄새를 남겼고, 나는 그 깻묵 냄새가 나는 시를 남기게 되었다. 깻묵 냄새가 나는 나의 시, 그것은 나의 체질이다. 누가 뭐라 해도 나는 깻묵 냄새를 좋아한다. 그것은 가을날 투명한 하늘에서 부서져 내리는 햇살을 받으며 깨알들이 녹아내리는 희생의 상징 시어(詩語)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시들어가는 풀밭에서 파랗게 개인 가을 하늘을 고요히 우러러보다가 주인에게 털리어 떨어지면서도 웃음을 선사하는 참깨에서 순애(殉愛)를 느낀다. 그리고 모든 음식에 들어가 맛을 내는 진액으로 남기 위해 기꺼이 짜이어지는 깨에서 모성(母性)을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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