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송문 대표수필

등잔불 환타지아

SM사계 2012. 7. 30. 12:26

 

 

 

 

등잔불 환타지아

 

달달달달 다르륵-

달달달달 다르륵-

등잔불이 가물거리는 가운데 할머니는 밤새도록 물레를 돌리셨다. 나는 그 물레소리를 들으면서 꾸벅 꾸벅 졸았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잠이 들곤 했었다. 나는 잠속에서도 꿈속에서도 물레소리를 듣곤 했는데, 눈을 떠보면 할머니는 영락없이 물레를 돌리고 계셨다.

나는 어린 마음에도 할머니가 불쌍해 보였다. 남편을 잃고 자식을 잃고 홀로 되신 할머니는 물레를 돌리시다가도 문득 손을 멈추고 죽창문(竹窓門) 밖으로 귀를 기울이는 것이었다.

나도 할머니처럼 창밖으로 귀를 기울여 보면 대나무 이파리가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가 들릴 뿐이었다.

우리 집 대나무는 뒤란에 있었지만 앞집의 대나무는 그 집 뒤란 울타리를 이루고 있었기 때문에 바로 문만 열어도 마주 보였다.

대나무를 흔들고 지나가는 바람소리……. 그것은 어쩌면 할머니를 찾아온 혼령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그래서 무섭기도 하였다. 뱀이 풀숲을 스치고 지나가는 소리처럼 대나무 이파리는 사른사른 사른거렸다.

할머니로서는 남편과 자식이지만, 나로서는 할아버지가 되고 아버지가 되는 그 분들이 떠나간 세상은 마치 밤하늘의 별처럼 아득하여 이승에 다시 돌아올 리 만무지만 할머니는 행여나 하고 착각 속에서 기다려 보는 것만 같았다.

그러한 연유로 해서 할머니는 잠이 오지 않는 밤이면 자리에서 일어나 물레를 돌리시기 일쑤였다.

무엇을 그렇게 확인하고 싶어 하시는지 할머니는 그랬다. 귀를 창밖으로 모으시다가도 그게 사람의 발자국 소리가 아니고 대 이파리를 흔들고 지나가는 바람소리라는 것을 알게 되면 다시금 긴 한숨을 내리쉬고는 물레를 돌리시는 것이었다.

달달달달 다르륵-

달달달달 다르륵-

바른손으로 물레를 돌리면서 왼손으로는 실을 늘여 가락에 감으셨다. 왼손을 뒤쪽으로 빼면서 실을 뽑아 올릴 때 물레는 달달달달 소리를 내며 울었고, 뽑아 늘였던 실을 앞으로 내려밀면서 가락에 감을 때 물레는 다르륵- 소리를 내며 울었다.

그러니까 이 달달달달과 다르륵이 합하여서 내는 소리는 한이 맺힌 조선 여인의 울음 같은 것으로서 울음조차도 목이 메어 제대로 나와 주지 않는 목질(木質)의 떨림이었고 아픔이었다.

그것은 전쟁에서 죽은 자식을 뼛가루로 받아 들고 돌아오다 까물친 조선 여인의 넋두리 같은 울음이었다. 풀이 우거진 언덕에서 해가 기울도록 풀잎을 쥐어뜯으며 가슴을 쥐어뜯으며 울어대던 할머니의 목쉰 소리였다. 울음조차도 제대로 나와 주지 않아 꺽꺽 막혀버리곤 하는 다르륵 소리였다.

 

목화다방에

한 틀의 물레가 놓여 있었다.

수십 년 만에 햇볕을 받는

할머니의 뼈다귀처럼

물레는 앙상하게 낡아 있었다.

도시의 시가 타살되던 날 밤

다방으로 피신해 온 나는

물레 소리에 미쳐들고 있었다.

할머니의 진언처럼

사른사른 살아나는 물레 소리가.

너무너무 좋아서

나는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청죽 같은 자식을

전쟁에 보내놓고

사방팔방 치성을 드리던

할머니의 물레소리가

내 가슴 드르륵 물어 감고 있었다.

보기도 아까운 그 얼굴,

한줌의 재 되어 온 자식을 끌안다가

까물치던 할머니의 목쉰 소리 다르륵,

숨이 막혀 울지도 못하고

낮은 음자리 돌아 감기는

한의 물레 소리

가락에 시름을 감으며

지렁이 울음을 게워내고 있었다.

달 지는 밤이면

비언한 창호지 마주 앉아

남편 생각 자식 생각에

손을 멈추다가도

꺼지는 한숨 달달달달 다르륵

시름을 감아 돌리고 있었다.

-「물레」-

 

할머니가 바른손으로 물레를 돌리실 때 그 그림자는 벽으로 천정으로 날아다녔다. 할머니가 왼손으로 실을 뽑아 감을 때 그 그림자는 가물거리는 등잔불 주변에서 박쥐처럼 날아다녔다.

『할매, 졸립다. 그냥 자자.』

『건넌방에 가서 어미한테 자그라.』

『할매랑 잘란다.』

『늙은 할미 젖도 쭈글쭈글헌디 머가 좋아서 그러냐?』

밤이 깊어도 물레소리는 낮은 울음으로 돌아 감기면서 울고 있었다. 한이 많은 할머니가 가락에 시름을 감으면서, 그리고 벽으로 천정으로 사방 육면으로 그림자를 날려 띄우고 허쳐 뿌리면서 내는 그 은밀한 낮은 음을 들으면서 나는 잠에서 깨어났고, 또 다시 잠이 들곤 하였었다.

등잔불이 밤새도록 가물거리는 가운데 울려나는 물레소리에 잠을 설치게 되면 그 이튿날 나는 영락없이 늦잠이 들곤 하였다.

어머니는 해가 똥구멍에까지 내려왔다고 야단을 치시면서 일어나라고 했지만, 할머니는 나를 깨우는 방법이 달랐다.

할머니는 그 까칠까칠한 손으로 나의 꼬치를 만져보면서 노루처럼 캑캑 웃었다. 그리고는 어이구 내 새끼 내 새끼야 뿌렁구가 실혀서 씨를 많이 받것네 어쩌고 하게 되면 나는 그 껄끄라운 손을 피하여 자리에서 발딱 일어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할머니는 독신으로 죽은 아버지를 생각해서 그러는지 아들 삼형제는 낳아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했지만 나는 그대로 해드리지 못한 채 아들은 하나로 마감하고 있는 터였다.

어쩌다가 꿈에 떡 얻어먹듯 그렇게 고향에 가게 되면 나는 내가 살던 집에 들르게 된다. 집은 팔지 않은 채 선산을 봐줄 사람에게 빌려주고 있지만 왠지 내 집 같지가 않다.

뒤란의 대나무 숲은 여전히 푸르고, 내가 심은 은행나무가 놀랍게 자랐지만 분위기가 옛날 같지 않고 어쩐지 생소한 느낌이 들었다.

개나리 생울타리는 새마을운동에 밀려나 시멘트 담장으로 변해버렸고, 길을 넓힌다고 해서 마당은 반쪽이 되어 있었다.

우리 집 마당 절반을 떼어내어 넓힌 그 길로 지금까지 자동차 한번 들어온 일이 없다고 하니 죄 없는 마당만 없어진 셈이다.

대나무들도 대바람 소리를 데리고 오면서 알은체를 하는 것 같았지만 왠지 가슴이 썰렁하여 오래 머무를 수가 없었다.

나는 마당 이리 저리 서성거리다가 그 집을 나오고야 말았다. 선산에 묻히신 할머니 생각이 나면서 어디선가 물레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할머니의 손 그림자가 벽으로 천정으로 날아다니는 가운데 목쉰 소리로 다르륵 감겨 울던 그 물레소리가…….

달달달달 다르륵-

달달달달 다르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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