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송문 대표수필

목욕하는 여인들

SM사계 2012. 7. 30. 12:20

 

 

 

 

 

목욕하는 여인들

 

이 세상에서 여자의 몸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없고 신비로운 것은 없다. 여자의 몸에는 이 세상 삼라만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의 소성, 그 형상의 아름다움과 신비로움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름난 명화 중에는 미와 사랑의 여신을 그린 고대 나체화로서, 1942년에 완성된 산드로 봇티첼리(1444-1510)의 <비너스의 탄생>이 돋보인다. 여기에는 맑고 밝은 생명의 힘이 생생하게 일렁이고, 완전한 나체인 데에도 수치심 같은 게 전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청순한 아름다움이 살아난다.

이 세상에는 여성을 대상으로 한 그림과 음악과 문학작품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바 있는 파블로 네루다는 「여자의 몸」을 노래했었다.

그는, "여자의 몸 하얀 언덕, 하얀 다리, 몸을 맡기는 당신은 대지를 닮아 투박한 농부, 나의 육체가 당신을 파고, 그리고 대지의 밑바닥에서 어린애를 낳게 한다."고 하면서 마지막엔 "아아, 가슴의 컵! 딴전을 부리는 그 눈길! 아아, 은밀한 장미여! 아아, 느리고 슬피 울리는 당신의 목소리여! 그리운 몸이여, 나는 당신의 매력을 되씹으리. 나의 목마름, 끝없는 나의 소원, 희미한 나의 길이여! 영원한 목마름이 이어지고, 그리고 끝없는 아픔이 이어지는 어두운 하상"이라 노래했다.

그것은 은밀한 장미요 희미한 길이라 할 수 있다. 저만치의 거리에서 목욕하는 여인들, 그것은 영원한 신비의 수수께끼였다. 알 수 없는 은밀한 방이었다.

나의 기억 속에 살아 있는 여인들 중에는 시골의 생울타리가 휘돌아 쳐진 우물가 수채도랑에서 목욕하는 여인들이 있다.

여름밤이면 여인들이 그 샘도랑으로 나온다. 낮에 땀흘리며 밭을 매던 여인들이 샘도랑에 나와 목욕을 하게 되는데, 나는 그 여인들의 몸, 그 은밀한 장미를 어렴풋이 보게 되었다.

그해 여름, 나는 동무들과 함께 반딧불을 잡으러 쏘다녔다. 나는 반딧불을 병안에 잡아 넣고는 돌아오는 길에 아슴푸레한 달빛 속에서 목욕하는 그녀들을 보게 되었다. 물소리가 떨어질 때마다 간지러운지 키들거리는 처녀들의 웃음소리가 건너편 과수원에서 불어오는 수밀도 향기와 함께 날아오고 있었다.

그야말로 원시적인 생명력이 약동하는 곡선과 곡선이 펼쳐지고 있었다. 구름 속에서 구르던 달이 부끄러운 얼굴을 넌지시 드러낼 때면 그 곡선의 시야는 보다 선명한 윤곽을 드러냈다. 그러다가 그 달이 구름 속으로 숨어들면, 그녀들은 다시 은밀한 장미가 되고, 희미한 길이 되곤 했다.

이러한 상념이 자리한 나의 관념 속에서는 언제부턴가 한 편의 시가 살아서 꿈틀거리게 되었다. 현대 문명사회의 약아빠진 지식인과 대조되는 인물을 설정하여 순수한 세계를 추구하게 되었다.

 

가까이 가지도 않았습니다.

탐욕의 불을 켜고

바라본 일도 없습니다.

전설 속의 나무꾼처럼

옷을 숨기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그저

달님도 부끄러워

구름 속으로 숨는 밤

물소리를 들었을 뿐입니다.

죄가 있다면

그 소리 훔쳐 들은 죄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그 소리는 꽃잎이 되고 향기가 되었습니다.

껍질 벗는

수밀도(水蜜桃)의 향기……

밤하늘엔 여인의 비눗물이 흘러갑니다.

아씨가 선녀로 목욕하는 밤이면

수채도랑은 온통 별밭이 되어

가슴은 은화로 출렁이었습니다.

손목 한번 잡은 일도 없습니다.

얘기 한번 나눈 적도 없습니다.

다만 아슴푸레한 어둠 저편에서

떨어지는 물소리에

정신을 빼앗겼던 탓이올시다.

시원(始原)의 유두(乳頭)같은

물방울이 떨어질 때마다

머리카락으로 목덜미로 유방으로 허리로

그리고 또……

곡선의 시야 굼틀굼틀

어루만져 보고 껴안아 보던

그 달콤한 상상의 감주(甘酒),

죄가 있다면 이것이 죄올시다.

전설 속의 나무꾼처럼

옷 하나 감추지도 못한 주제에

죄가 있다면

물소리에 끌려간 죄밖에 없습니다.

-「샘도랑집 바우」-

 

시골 여인들이 선녀들처럼 목욕하던 그 샘도랑은 온통 별밭이 되어 은하로 출렁이고 있었다. 어둠의 달빛 속 곡선의 시야로 떨어져 내리는 그 물소리, 그 물소리에 끌려간 사내의 순수한 발성을 통해서 나는 너무도 까지고 비열해진 현대 문명인들을 비판한 셈이 되었다.

사랑은 가슴으로 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오늘날엔 그러지 못한 것 같다. 전화 다이얼을 돌리고, 다방에서 만나면 경양식집으로 룸살롱으로 호텔로 전전하면서 몸으로 부딪치는 요지경, 거짓 연애가 판을 치는 세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심리적 반동으로 인해서 순수한 세계를 추구하는 지도 모른다. 지식이 없더라도 마음씨 고운사람, 목욕하는 여인들의 그 물소리를 들은 것만으로도 죄라도 지은 것으로 부끄러워하는 사람의 그 마음 세계가 그리운 것이다.

전설 속의 나무꾼 얘기는 우리들에게 인생의 멋스러운 면을 상기하게 한다. 사내들은 선녀의 옷을 감추고 싶어 한다. 그리하여 자기 곁에 붙들어 놓고 오래오래 살고 싶어 한다. 그러나 선녀란 어떠한 여인을 사랑하며 미화했을 경우라야 살아나게 된다. 사랑이 식어져서 미의식이 차단되는 경우에는 그 영상이 안개처럼 사라지게 된다.

그러므로 선녀의 옷을 감추고 싶어 하는 남성들은, 자기가 사랑하는 여인을 선녀로 미화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하늘로 사라지지 못하도록 옷을 숨기되 너무 가까이에 있지만 말고 신비로움이 유지될 수 있는 거리에서 가슴으로 사랑해야 할 것이다.

목욕하는 여인들… 그것은 나의 영상 속에 살아있는 한 폭의 그림이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시원스러운 그 샘도랑 물은 앵두나무 울타리 밑으로 흘러내렸다. 앵두나무 그늘 밑에서 모래알을 들먹이며 용솟음쳐 오르는 그 샘도랑은 신(神)의 신비로운 자궁이었다.

거기, 우물에서 비롯된 샘물줄기가 도랑을 타고 흘러 내렸다. 밭고랑 타고 가며 김을 매던 여인들이 나와서 목욕들을 하는 밤이면, 그 샘도랑은 온통 과즙이 풍부한 귓속말들로 소곤거리고 깔깔거리는 밤의 축제가 열렸다. 자궁 속의 자궁들의 축제였다.

 

'황송문 대표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등잔불 환타지아  (0) 2012.07.30
인생의 빨래  (0) 2012.07.30
망향의 노래  (0) 2012.07.30
연날리기   (0) 2012.07.30
자운영 환상  (0) 2012.07.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