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송문 대표수필

연날리기

SM사계 2012. 7. 30. 12:12

 

 

 

 

연날리기

 

나의 연은 하늘높이 날았다. 내가 날을 수 없는 하늘을 나의 연은 숫한 바람을 타고 잘도 날았다.

나는 연이 하늘 저 멀리 날을 수 있도록 연줄을 느슨하게 늦추어 주곤 하였다. 그러면서도 연줄을 가끔씩 잡아당기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연줄을 당겨주지 않으면 그 연은 하늘 높이 솟지 못하고 아래로 처져서 냇물로 떨어지지 않으면 나뭇가지에 걸릴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연을 하늘 높이 띄우기 위해서는, 연줄을 느슨하게 풀어주다가도 다시금 팽팽하게 감아 주고, 잡아당기면서 감았다가는 다시금 풀어 주어야 했다.

나의 연이 나에게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하늘 높이 솟아오르면 솟아오를수록 그 연은 점점 더 거세어지는 바람을 만나게 되었다. 한 곳에서만 부는 바람이 아니었다. 주변 여기 저기에서 불어오는 역풍은 나의 연을 가만히 놓아두지 않았다.

그것은 마치 먹이를 물고 끄는 물고기들처럼 창공을 유영(遊泳)하는 연을 괴롭혔다. 바람은 연을 끌어올리기도 하고 끌어내리기도 하였다. 이러한 바람에 걸릴 때마다 나의 연은 마치 약 먹은 피라미처럼 뱅뱅 맴돌기도 하고 곤두바질을 치기도 하는 것이었다.

이럴 때마다 나는 간이 콩알 만해져서 연줄을 조심조심 늦춰주곤 하였다. 내가 줄을 늦춰줄 때 연은 한걸음 물러서면서 자세를 가다듬게 되었다.

나의 연은 하늘 높이 오를수록 나에게서 멀리 떨어지고 싶어 하였다. 역풍(逆風)에 곤두박질을 치면서도 자꾸만 멀리 날아가고자 했다. 이것은 연의 어쩔 수 없는 숙명인지도 모른다.

멀리 날아가고자 하는 연과 그 연을 붙들고 있는 나와의 관계는 아주 가는 줄이 매개하고 있었다. 그 가는 연줄을 쥔 나의 손놀림에 의해서 절묘하게 움직여지고 있는 연은 바로 나의 전부였다. 나의 꿈, 나의 소망, 나의 사랑이었다. 그러한 까닭에 사랑으로 연결시켜 주는 연줄은 바로 나의 핏줄과도 같은 성질의 것이었다. 나의 온몸의 피가 한 가닥의 줄을 통해서 연에게 수혈되고 있었다.

그리하여 나의 연이 학처럼 비상할 때 나도 함께 비상한다. 연의 하늘은 바로 나의 하늘이요, 연의 비상은 바로 나의 비상이었다. 연은 곧 내 삶의 의미가 되어 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연은 바람의 숙명이었다. 연에게 있어서 바람은 삶이면서 죽음이기도 했다. 연은 바람을 타고 날았고, 그 바람에 구겨졌다.

동네 아이들은 연싸움을 걸어왔다. 아이들의 연줄에는 풀을 먹인 유리가루가 묻어있었지만, 나는 그것을 모르고 있었다. 두 개의 연은 서로 목을 감고 상대편의 연줄을 끊으려고 엉클어졌다.

어느 한 순간, 나의 연줄은 끊어지고, 연은 멀리멀리 날았다. 비로소 자유를 찾은 나의 연은 원이 없이 날았다. 나는 나의 곁을 떠나고 싶어 하던 그 풍연(風鳶)의 자유를 보았다.

마을 아이들이 연을 잡으려고 논두렁 밭고랑 할 것 없이 허겁지겁 뛰어가고 있었지만, 나는 그 연을 잡을 생각도 없이 바람에 날려가는 연을 망연히 바라만 보고 있었다.

연의 자유, 그것은 나와의 단절이었다. 마지막 줄이 끊겨진 그 순간부터 우리의 인연은 끝났다. 그것은 날아가는 순간의 삶이면서 그 이후의 죽음이었다.

줄이 끊겨진 연, 날아가는 연, 달아나는 연, 그것은 환희이면서 절망이요, 시작이면서 끝이었다. 그것은 순간과 영원의 숨바꼭질과도 같은 것이었다.

세상을 살다 보면, 대추나무 연걸리듯 묘한 인연으로 얽히고 설킬 때가 있다. 때로는 기쁨으로 얼키다가도 때로는 슬픔으로 얽히는 것이었다.

때로는, 연을 그렇게 날렵내듯, 얽혔던 인연을 자르고 멀리멀리 떠나보낼 때가 있다. 나의 연이 하늘 높이 날아오르기를 바라듯, 행복을 빌면서 떠나보낼 때가 있다.

그러나 풍편에 들리는 소리는 나를 슬프게 했다. 떠난 이의 뒤에서 헛웃음을 치며 잔을 기울여야 했다. 아픈 가슴을 짜깁기하며 잔을 기울여야 했다. 구멍 뚫린 가슴에 울며울며 쐐기를 질러야 했다. 망각의 술을 기다림의 잔으로 들이켜야 했다.

 

내가 바라볼 때 너는 피어났고

내가 외면할 때 너는 시들었다.

나의 눈길에 너는 불이 붙었고,

나의 손길에 너는 악기처럼 소리를 내어

꿀벌들을 불러 모았다.

네가 잉잉거리는 벌떼들을 불러들일 때

별은 빛나고,

내가 너의 꿀물에 젖을 때

달은 부끄러워했다.

네가 피어날 때 나는 살고

네가 시들 때 나는 죽었다.

-「꽃잎」-

 

나의 연이 하늘 높이 날기를 바랐는데, 하늘 멀리 날아가고 싶어 하는 대로 제발 멀리 날기를 바랐는데 연은 한계가 있었다. 연은 자유가 구속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그는 이미 망가져 있었다. 다시는 날아오를 수 없는 연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하늘 저 멀리 나는 연을 따라가던 아이들이 돌아왔을 때 나는 형편없이 망가져버린 나의 연을 보았다. 아이의 손에 들리어진 나의 연, 나뭇가지에 걸려 찢겨지고 부러진 나의 연, 물에 젖은 나의 연은 나를 아프게 하였다.

나의 관심은 연에 있었고, 연의 관심은 하늘에 있었다. 그러나 연은 언제까지 하늘에서 유영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연의 꿈은 하늘에 있었지만, 그가 어김없이 돌아온 곳은 땅이었다.

하늘을 꿈꾸며 비상하다가 망가져 돌아온 나의 연, 그것은 다시 돌이킬 수 없는 처절한 비극의 상징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은 연의 줄과도 같은 심정의 인연을 사랑의 끈으로 생각하지만, 싫어하는 사람은 그것을 구속의 사슬로 생각한다. 사랑하는 사람은 그 연의 줄이 자기의 향상을 위해 보호해 주고 육성해 주는 따뜻한 손길로 느끼지만, 미워하는 사람은 그것이 오히려 자기를 구속하고 억압한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그는 그로부터 멀리 떠나게 되지만 결국은 자유가 구속임을 깨닫게 된다. 어느 누구로부터 간섭받지 않는 자유가 좋을 것 같지만 그것이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인간은 누구를 막론하고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보호받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공기나 햇빛의 고마움을 모르는 것처럼, 가장 가까운 이의 손길에 대한 고마움을 알지 못한다. 자유롭기 위해 그 손길을 벗어난다 해도 그것으로 행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다시 되돌아보게 된다.

망각의 술을 마시기도하며 기다림의 잔을 기울이기도 한다. 인간이란 인간과의 관계를 외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과 인간의 관계, 그 만남을 떠나서는 사랑의 기쁨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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