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송문 대표수필

바둑을 두면서

SM사계 2012. 7. 30. 12:35

 

 

 

 

 

바둑을 두면서

 

나는 바둑을 두면서 인생을 생각한다. 인생이란 마치 바둑과도 같은 성질의 것이라고……. 과연 그렇다. 인생이란 바둑과도 같은 성질의 것이다. 바둑이란 처음 한 점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처럼, 인생이란 처음 태어나면서부터 시작된다.

바둑을 처음부터 잘 두어야 하듯이, 사람이란 우선 태어날 때 잘 태어나야 한다. 여기에서 잘 태어나야 한다는 말은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야 한다는 한 가지 뜻을 의미하는 것만은 아니다. 제대로 싹이 트고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생장과정의 적합한 환경이 요구된다는 뜻이다.

이것을 바둑에서는 정석(定石)이라고 말한다. 돌을 놓아야할 자리에 제대로 놓는 것이 바로 정석이다. 모든 사물은 적재적소에 두어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 어울려서 조화가 이루어지게 된다.

돈이 많은 가정에 태어났다고 해서 모두가 다 잘 되는 것은 아니다. 우선 가정의 분위기가 좋아야 한다. 대밭이나 삼밭에서 자란 쑥대는 꼿꼿하게 위로 올라가지만, 들판에서 자란 쑥대는 이리저리 옆으로만 뻗어나가게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환경이 중요시된다.

바둑을 살펴서 두어야 하듯, 인생이란 잘 살펴서 살아가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눈치 보라는 얘기도 아니요 눈치껏 살라는 얘기도 아니다. 자기 소신껏 살아가되 실수 없이 허송세월로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살아가야 한다는 얘기다.

그러므로 인생이란 정석을 놓아가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정석이란 바로 인간으로서 마땅히 가야할 길을 놓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 사람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란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행복하게 살다가 죽는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다만 자기의 마음을 다스려서 욕심을 줄이게 될 때 행복을 느낄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행복한 마음을 갖기 위해서는 욕심을 줄여서 적은 것에 만족을 느낄 줄 아는 안심입명(安心立命)의 경지로 들어가야 할 것이다.

짚방석 내지마라 낙엽엔들 못 앉으랴

솔불 켜지마라 어제 진 달 돋아온다

아이야 박주산채(薄酒山菜)일망정 없다 말고 내어라

이러한 산유가(山遊歌)를 누릴 수 있는 경지에서 겸손의 옷을 입고 살아야 한다. 무소유(無所有)와 무집착(無執着)으로 세속적인 번뇌에서 벗어나게 될 때 멀리 바라보고 여유를 갖게 되어 정석을 놓아갈 수 있게 된다. 욕심이 앞을 가리면 판단이 흐려져서 정석을 놓아가지 못하게 된다.

바둑을 두다 보면 잘못 두는 경우가 생기게 된다. 뜻하지 않은 실수를 저지르게도 되고, 다 된 밥에 재 뿌리는 과오를 범하게도 된다. 이와 같이 우리들의 삶이라는 것도 묘한 것이어서 본의 아니게 시행착오를 거듭하게도 된다.

바둑을 두다 보면 축(逐)으로 몰릴 때도 있게 되는데, 이러한 경우에는 꼼짝없이 죽을 수밖에 없다. 살릴만한 바둑이 있고, 살릴 수 없는 바둑이 있다. 축에 몰리기 전에 미리부터 조심하고 경거망동한 행동을 하지 말았어야 했었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서 유비무환(有備無患)의 정신으로 앞을 내다보고 대처해야만 했었다.

바둑에 있어서 축에 몰릴 때는 손을 떼어야 한다. 단념해야 한다. 마음을 비운 채 단념하고서 다른 빈 곳을 개척해야 한다. 그런데 감정이 앞서는 사람, 욕심에 눈이 어두운 사람은 축에 몰려도 죽는 게 아까워서 쉬이 단념하지 못하고 계속 살려보려고 집착하다가 완전히 몰살하게 된다. 너무 욕심을 부리게 되면 죽음을 면치 못하게 된다.

축에 몰리는 바둑은 단념해야 하듯이 죽음의 수렁으로 빠져드는 인간관계는 한시 바삐 청산해야 한다. 자기의 그 많은 바둑돌을, 그 금싸라기 같은 시간과 공간을 오살(誤殺)시킬 수는 없기 때문이다.

 

바둑이란 무엇입니까?

인생을 살펴 가는 것이다.

인생이란 무엇입니까?

정석을 놓아 가는 것이다.

정석이란 무엇입니까?

인지당행지도(人之當行之道)니라.

도란 무엇입니까?

시와 같은 것이다.

시란 무엇입니까?

죽은 수를 찾는 것이다.

바둑은 어떻게 두어야 합니까?

잘못 둔 인연은 단념해야 한다.

왜 단념해야 합니까?

인정에 이끌리면 갇히어 죽는다.

죽는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무(無)다.

무는 무엇입니까?

유(有)다.

유와 무는 무엇입니까?

있다가도 없어지는 바둑판이다.

바둑판은 무엇입니까?

인생이다.

인생이란 무엇입니까?

정석을 놓아가는 것이다.

-「기원(棋院)」에서-

 

바둑을 두다 보면 앞일을 내다보지 못하고 그릇 판단한 나머지 실수하여 이기지도 못하고 집도 짓지 못하여 패가(敗家)하는 경우를 보게 되는데, 우리들의 인생이라는 것도 이와 흡사하다.

축으로 몰리는 경우엔 빨리 손을 떼고 단념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붙들리면 몰려 죽는다는 것을 번연히 알면서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감정의 불이 이성의 물보다 더 승하기 때문이다.

사랑해서는 안 될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은 축에 몰린 사람이다. 이러한 사람은 그 사랑해서는 안 될 사람에게서 한시 바삐 손을 떼고 사랑해도 좋을 사람을 찾아 나서야 한다. 이것은 축에 몰리는 바둑판에서 떠나 다른 빈 곳을 개척하는 길이다.

바둑이란 잘 두거나 못 두거나 간에 일단 다 둔 바둑은 계산을 하게 된다. 이 인생의 계산은 정직하게 해야 한다. 남은 돌로 빈 곳을 메우면서 계산을 하듯이 일생 동안 삶에 대한 잘잘못을 계산하게 된다.

인생의 계산, 이 계산이 끝나면 바둑알이 통속으로 들어가듯이 무덤으로 들어간다. 하얀 바둑알과 검정 바둑알이 따로따로 나뉘어져 담겨지듯이, 영혼과 육신은 분리되어 사라지게 된다. 이것이 죽음이요 부활이다.

한 알의 바둑알로 시작하여 바둑판 가득히 메워 가다가 통속으로 들어가듯이, 한 마디 울음으로 시작된 인간의 역사가 마지막엔 잘잘못을 계산해 보면서 사라져가는 것이다.

하늘의 뜬구름처럼, 바둑판 위에서 있다가도 없어지는 바둑알처럼 있다가도 없어지는 인생, 우리들 인생이 바둑판의 이치에도 미치지 못한대서야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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