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작품(단편소설) 초대

유주현 작 임진강 평설

SM사계 2012. 7. 30. 09:20

 

 

 

 

 

■ 유주현 작「臨津江」

분단 상황과 피해 의식

임진강가의 가난한 갈마을 청년 두 명이 미군 보초병의 총에 맞아 죽었다면 독자들은 의아해 할 것이다. 그리고 비명에 간 자식이 땅에 묻힐 때 노파가 목을 매어 죽었다면 더욱 놀랄 것이다. 이것은 우리 겨레가 겪은 일로서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이야기요 실제로 있는 이야기다. 남북 분단 상황에 처한 우리 겨레가 겪어야 했던 아픔은 오늘날까지도 이 작품을 통해서 읽는 이의 가슴을 황량한 강물로 일렁이게 한다.

겨울에 갈대를 베러 강을 건너다가 미군 보초병의 총에 맞아 죽은 덕수는 사실 6·25때 미군 낙오병을 형과 함께 구해 주었는데, 그 은공은 고사하고 오히려 그 보초병의 총에 맞아 죽었다는 반어적(反語的)인 이야기에는 날카로운 응시의 눈초리가 번득인다.

묵사(黙思) 유주현(柳周鉉)은 우리 겨레의 심층 심리에 자리 잡고 있는 뿌리 깊은 가난과 삶의 의식에 흐르는 인간적 의향을 냉엄한 눈초리로 꿰뚫어 보면서 작품으로 형상화한 것으로 보게 된다.

이 작품은 임진강가에 터전을 닦고 살아가는 서민들 가운데 한 가족의 처절한 슬픔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한 가족의 구성원은 반백이 다 된 노파와 그의 두 아들, 그리고 며느리로 되어 있다. 노파 피씨의 장남인 덕환은 서울에서 직업도 없는 건달로 떠도는가 하면, 차남인 덕수는 홀어머니를 모시고 어렵게 사는데 땔감으로 쓰이는 갈대를 베러 갔다가 미군 보초병의 총에 맞아 죽는다.

노파 피씨는 “어머니……”하고 부르는 죽은 아들의 부르짖음 소리가 귓가에 쟁쟁하게도 메아리로 들려오는 것만 같은 착각에 강 언덕으로 나와 헤매고 있었다. 아무 죄도 없이 총에 맞아 죽은 아들을 부르다가 주저앉아 푸념하는 노파의 이빨은 밉지 않게 뻐드러져 오히려 선하다고 표현되어 있다.

예부터 신라, 백제, 고구려의 국경지대가 되어 자주 동족의 피를 흘리게 한 임진강, 사람들의 숱한 원한을 삼킨 채 말없이 흐르는 임진강가에서 노파 피씨는 우리 편의 총에 맞아 죽은 아들의 죽음을 자신의 나이 탓으로 돌리는 것이었다. 노파는 59세로서 아홉수가 불길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노파 피씨는 아들이 죽은 이유를 아들 자신에게 두어 허물할 줄을 몰랐다. 그날의 일진과 어미 자신의 나이에다 탓을 둘망정 죽은 사람 자신에게는 죽어야 할 허물이나 죄가 없다고 생각한다. 얼음이 언 강을 건너 땔나무를 하려고 금지된 구역의 갈대밭으로 갔다가 비명에 간 아들의 죽음을 자기의 탓으로 돌렸다.

가령 “고드름 방에서 에미가 떤다구……” “이웃집 신 서방이 와서 가자구만 안 했더라두 그날의 일진은 모면했을 테지만……” 하는 구절에도 잘 나타나 있다.

가난과 삶의 의식을 형상화

며느리 박정임(朴貞妊)은 그 시어머니의 몰골을 보자 눈물이 핑 돈다. 울음으로 핏발이 가시지 않는 두 눈을 씀벅거리며 다소곳이 시어머니의 뒤를 따르는 정임의 몸은 메마르나마 젊음으로 팽창해 있다. 며느리는 며느리대로 자기의 팔자소관이라고 생각한다.

며느리는 시집온 지 반 년 만에 남편을 잃은 것이다. 뱃속에는 이제 유복자라고 불리어야 할 핏덩이가 들어 있다. 석 달을 자란 남편의 첫 씨가 들어있는 것이다. 며느리는 며느리대로 남편의 죽음을 남편의 운명에다 핑계할 줄 모르고 자기 탓으로 돌렸다. 남편이 죽은 것은 갓 시집온 자기의 팔자가 기박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미군 보초병의 총에 맞아 죽은 사람은 노파 피씨의 작은 아들 덕수와 또 같은 마을의 신 서방, 이렇게 두 사람이었는데, 미군 장교가 신서방의 부인되는 창수 어머니에게 돈을 주게 된다. 그러나 그녀는 그 돈을 미군 장교가 보는 앞에서 짓밟아 버린다.

노파 피씨의 큰아들 덕환이는 서울에서 일정한 직업도 없이 떠돌다가 특수 절도죄를 짓고 6개월의 감옥살이를 하고 나온 뒤 할 일 없이 놀고 있는 처지인 데에도 시골집에서는 아주 잘 사는 것으로 알고 있다.

전과 3범의 덕환에게는 ‘들장미’라는 바의 여급 미스 최가 있다. 그녀는 덕환이 또다시 범죄의 길로 들어설까봐 걱정이 되어 조바심하면서 취직을 위해 백방으로 좇아다녔으나 신통치 않았다.

그러는 줄도 모르고 며느리 정임은 시어머니로 하여금 남편의 장사를 치른 뒤 서울로 가도록 권하였다. 죽은 남편의 형이 서울에서 잘 살고 있다니 의지할 곳이 없는 시어머니는 이제 그곳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노파 피씨는 며느리의 말에 펄쩍 뛰는 것이었다. 작은 아들을 덕망산에다 묻어두고 흙도 마르기 전에 호강하러 갈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오히려 며느리에게 뱃속에 밴 자식이나 낳아 놓고 가야지, 남의 자식한테 청상과부 노릇을 하라고 할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씨는 받아야겠으니 잘 크면 서울 큰아비한테 보내서 대학교까지 시켜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오막살이 문 앞에 이르러 웅성대는 사람들을 보자 별안간 울음을 터뜨리게 된다.

가난과 죽음과 현실

한편 서울 이태원 ‘시카고’ 다방에서 신문을 보다가 사건 기사를 읽고 동생의 죽음을 알게 된 덕환은 도둑질과 폭력으로 업을 삼는 무리의 일원인 현필(玄弼)의 뒤를 따른다. 주점에서 문태, 현필과 함께 술을 마시던 덕환은 동생이 미군의 총에 맞아 죽었다고 말하면서 울부짖는다.

그는 1·4 후퇴 때 동생과 함께 도망치다가 길을 잃은 미군을 두 명이나 숨겨주어 살렸었는데, 미군이 그의 동생 덕수를 총으로 쏘아 죽였다고 분개한다. 그는 또 엽전이 억울하게 죽었다고 하면서 동생이 적도 아닌 우리 편 미군의 총탄에 맞아 죽었다는 것도 가난에 돌렸다. 문제는 가난이 죄라는 것이었다. 가난하기 때문에 위험한 줄 알면서도 나무를 하러 갔다가 목숨을 빼앗긴 거라고 했다.

술이나 마시고 좀 취하라는 문태의 말을 들으며 덕환은 주먹으로 눈물을 자꾸 씻어냈다. 그는 동생의 죽음을 계기로 자기 자신을 자꾸 슬퍼했다. 가난하기 때문에 죽어간 동생을 빙자해서 뿌리칠 길 없는 유혹과 자신 없는 대결을 해야 했다.

그는 무엇인가 해야 한다는 절박감으로 인해서 슬퍼지는 마음을 어쩌지 못했고, 선이고 악이고 준법이고 범법이고를 가리기 이전에 무슨 짓인가를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초조감과 함께 웬지 자꾸 슬퍼지는 것이었다.

새로운 각오로 선량하게 살아보려던 덕환은 두 사람과 함께 기어코 도둑질을 나서고야 말았다. 세 사람은 새벽 세 시 반을 기해서 산기슭에 있는 벽돌집을 포위했고, 그 집 담장 안으로 들어가서 복면을 하고 3백만 환은 됨직한 돈 보따리를 훔쳐 나오는데 성공했다.

그런데 어디선가 “도둑이야!” 하는 고함소리에 당황한 세 사람 중 두 명은 미리 열어 놓은 대문으로 튀고, 덕환은 얼결에 담장을 넘어 산 위로 튀는 바람에 홀로 남게 되었다.

덕환은 커다란 바위와 그 바위 사이에 자란 다복솔 사이에다 몸을 낑구고 하늘을 보았다. 그는 수건과 휴지로 목덜미와 손등의 끈적거리는 피를 닦아내면서 오늘이 죽은 동생의 장사날이라는 것을 생각한다.

그는 돈 보따리를 만져보면서 가난한 고향 사람들을 생각했다. 고향에 가면 으레 부려보는 자기의 허세에 생각이 미치자 한 집에 30만환씩 몽땅 갖다 뿌려 줄까 하고 생각한다. 어머니가 얼마나 자랑스러워하실까. 작은아들의 죽음으로 얻은 슬픔보다도 더 감격과 기쁨에 몸을 부들부들 떨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었다.

그는 “상여를 메고 가는 사람들 앞가슴에다 한 뭉치씩 안겨주자. 당신들도 이젠 가난하지 않다고 주며 모조리 안겨주자.” 하고 마음속으로 부르짖고 있었다.

한편 노파 피씨는 노송 세 그루가 서 있는 강 언덕 서낭당에 나와 빌고 있었다. 죽은 아들의 들것이 강기슭을 따라서 산모퉁이를 돌아간 지 한참 뒤에 이곳에 나와 강 저 편을 시름없이 바라보고 앉아 있었다. 눈물의 샘은 말라 없어졌는지 두 눈이 보숭보숭한 채로 아들의 시체를 상여도 못 태우고 들것에 실려 산으로 보냈다.

노파는 아침부터, 기둥이 쓰러지면 집은 무너지게 마련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러한 예감이 맞아갔으니 며느리가 쓰러진 것이었다. 며느리 정임은 남편의 시신이 들것에 담겨져 떠나자 통곡 끝에 사립문 안에서 졸도하는 바람에 피를 쏟았다.

서방님의 영험을 비웃는 노파

남편의 유복자도 아비 따라 승천하고 이제 남은 핏줄은 노파 피씨 자신뿐이었다. 서울에서 잘 산다는 큰 아들은 가난하고 구지레한 혈연이 아니라 자랑스러운 서낭님의 아들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노파 피씨는 큰아들을 그렇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사무치게 보고 싶을 때도 체념할 수 있었다. 그 습성화한 체념으로 해서 오늘도 큰아들이 혹시 돌아오기를 바라기는 했지만 사무치게 기다리지는 않았다.

노파는 버릇처럼 서낭에다가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았다. 한참 만에 눈을 뜨자 주위에서 돌 세 개를 주워서 수북이 쌓인 서낭돌 위에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정성껏 던졌다. 피씨는 우연히도 마지막 던질 돌이 또그르르 굴러 떨어지는 것을 보자 억누르고 있었던 심화(心火)가 터졌다.

노파 피씨는 무엄한 생각이라 한편 겁이 나면서도 서낭님이고 나발이고 평생을 빌며 살았는데 영험을 보여준 게 무엇이냐고 입을 비쭉 거렸다. 이미 비틀린 노파 피씨의 마음은 서낭님의 영험을 비웃을 수 있었다.

피씨는 늙은 소나무에다 대고 “네나 내나 죽어야 해! 사나운 꼴 보기 전에 죽어야 해!”하고 몸을 돌이켜 언덕 위에 우뚝 섰다. 그리고는 무엇인가 다급하게 서둘러야 하겠다는 생각에서 늙은 소나무 가지를 쳐다보았다. 서낭당을 지키면서 영험도 없는 늙은 소나무라고 입을 비쭉거렸다.

아들이 죽은 미군 부대의 초소께로 향하던 피씨의 시선은 오랜 동안 눈물을 머금은 채 머물러 있었다. 지금쯤은 아들의 시신이 흙속으로 들어갔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눈 속에 흙이 들어가면 어쩌나 하는 조바심에 주름투성이의 얼굴을 찌푸렸다.

마을로 들어오는 길에 보이던 사나이의 모습이 점점 가까워졌다. 서울의 덕환이가 저렇게 돌아오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눈물을 짜면서 피씨는 마을 사람들이 그에게 기별하겠다고 서두를 때 말린 것이 후회되었다. 사실은 아들의 주소를 분명히 알고 있지 못한 게 부끄러워서였다. 서울에 사람을 보내 봐야 찾지도 못할 것을 헛고생시킬 필요가 없어서 말렸던 것이다.

지난여름인가 집을 큰 집으로 바꿨다는 말만 들었지 가 본 일이 없었다. 아들의 체면을 상하게 할까봐 가보고 싶어도 차일피일 참아 왔었는데 이제는 그만인가 싶으니 또 눈이 구지레하게 젖어왔다.

임진강 가에 서 있는 소나무

노파 피씨는 무명으로 만든 허리띠를 끌렀다. 그 긴 허리띠로 올가미를 만들어 한 쪽 끝을 소나무 가지에 걸치고 비끌어 맸다. 그녀의 두 눈에는 핏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노파 피씨는 눈을 휘둥그렇게 벌리고 올가미를 찾았다. 그리고 목을 길게 뽑아 올가미 속에다 끼울 순간에는 한껏 발돋움을 했었기 때문에 한 쪽 발이 언덕에서 찌익 미끌어졌다. 마른 황토가 묻은 광목치맛자락이 파란 공간에서 흩날렸다. 두 다리가 몇 번인가 허공을 차고 까실하게 주굴쭈굴한 두 손이 공간을 헤엄치다가 축 늘어질 때 매달린 몸이 핑그르 돌았다.

이때 고향을 찾아온 덕환은 갈마을 어귀에서 복만이라는 토박이 젊은이를 만난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이젠 노인네나 서울루 모셔가시죠. 동네에서는 모두 그렇게 하실 걸루 알구 있는데.”하고 복만이 말하자 덕환은 적잖이 당황했으나 태연하게 입을 열었다.

“전부터두 모셔가려구는 했지. 허지만 고집이 세셔서. 시골 사람은 시골서 고생하며 살아야 한다는 거야. 고생을 면하면 죽는다나. 사람이란 모두 분복이 있어서 말이지.”

덕환은 껄껄거리고 공허한 웃음을 흘렸다. 덕환은 ‘새나라’ 담뱃갑을 꺼내 복만이에게 한 개 권한 다음 자기도 입에 물었다.

“이 갈마을이 아홉 가구인가?”

“열 가구죠.”

“복만이!”

“예?”

“어때? 한 집에 한 삼십만 환씩 노나주면 좀 살기가 나아질까? 뭣함 나은 데루 옮기지. 동네를 몽땅 말이야.”

복만이는 길 가운데 우뚝 서면서 얼빠진 사람처럼 이 서울에서 성공한 덕환이를 눈이 부시게 바라보았다.

“삼십만 환씩요?”

덕환은 어깨를 쭉 펴면서 말했다.

“평생을 가난에 찌들리는 이런 고장을 왜 떠나지 못하는지 몰라.”

그는 이 말 끝에 강뚝을 무심히 바라보다가 깜짝 놀랐다. 놀라며 소리쳤다.

“저기 소나무에 매달린 거 사람이 아닌가? 저 서낭에 말야!”

그 순간 복만이가 두 말 없이 후당탕 뛰기 시작하는 바람에 덕환도 몇 발자국 따라 뛰다가 다시 발길을 점잖게 떼어놓기 시작했다. 그는 이제 올 곳까지 다 온 것을 깨달았다.

늙은 소나무 세 그루가 서 있는, 어렸을 때 놀던 강 언덕과 이제 건널 수 없는 강, 장벽처럼 앞에 가로놓인 임진강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면서 그는 다시 한 번 조소를 흘렸다.

그는 저 서낭직이 소나무에다 목을 매고 죽은 여인의 치마폭 밑에다 가지고 온 돈을 몽땅 뿌려놓고 갈마을 사람들한테 골고루 나누어 가지라고 선언한 다음 표연히 강언덕을 등지는 자기 자신을 공상하고 있었다.

분단 상황과 被侵性

작가는 「임진강」에 나타난 비극의 원인을 가난에 두고 있다. 여기에는 한 개인과 가정의 가난은 물론이요, 한 마을과 사회 내지는 국가 민족의 가난까지의 입체성을 띠고 있다. 엽전이라는 말로 대칭되는 자학적 심리는 강대국에 짓눌려 만신창이가 되는 우리 민족의 아픔과 뼈저린 슬픔으로 나타나고 있다.

가난에 찌든 갈마을 사람들은 한결같이 순박하고 선량한 인물들이다. 아무리 어렵고 비참한 환경에 처할지라도 그 불행을 자기의 탓으로 돌리기 일쑤다. 노파 피씨는 아들의 죽음을 자기의 나이 탓으로 돌리는가 하면, 며느리 박정임은 기구한 자기의 팔자 탓으로 돌린다. 자기의 팔자가 사납기 때문에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어 남편이 죽었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덕환도 역시 동생의 죽음을 가난의 탓으로 돌린다. 가난하기 때문에 땔나무를 하러 위험을 무릅쓰고 얼어붙은 임진강을 건너 갈대밭으로 갔다는 것이었다.

덕환은 절도죄로 감옥을 살고 나온 전과자이지만 범죄의 그룹과 손을 떼고 새 출발을 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라든지, 훔쳐낸 돈을 마을 사람들에게 모두 나눠 주려고 하는 점으로 봐서 본질은 악하지 않은 데에도 어둠의 늪을 헤어나지 못한 채 수난을 겪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 작품에서 덕수의 타살과 노파의 자살이 중심 제재가 되는데, 덕수의 타살은 미군 보초병에 의한 타살이요, 노파의 자살은 서낭님을 비웃을 수밖에 없는 어떤 힘에 의한 자살이었다. 이 두 모자의 죽음은 가치 없는 개죽음에 속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누가 이 두 모자를 개죽음이 되게 하였는가 하는 피침성(被侵性)을 자각하게 된다.

이것은 어쩔 수 없이 당하기만 해왔던 우리 겨레의 아픔을 입체적으로 시사해 주기도 한다. 한국의 분단 문제는 미국과 소련에 책임이 있지만 그들은 우리들이 아파하는 만큼 절실하게 받아들이지는 않고 있다.

이러한 안목에서 보게 될 때 두 모자의 죽음은 어처구니없는 희생물로서, 거대한 이데올로기와 물량적인 힘에 의해서 평생을 두고 믿어왔던 서낭당의 신념은 너무도 힘없이 무너졌던 것이다. 우리는 이 작품을 통해서 분단 상황 하에서 겪어야했던 겨레의 아픔을 뼈저리게 공감하게 된다.

소설가 유주현(柳周鉉)은 1921년 경기도 여주에서 태어났다. 18세에 도일하여 와세다 대학 전문부 문과를 수학했다.

1948년 『백민(白民)』지에 단편 「번우(煩優)의 거리」가 당선되어 문단에 등장했는데, 6·25 동란 때는 공군문인단에 참가하여 기관지 『창공』의 편집 간사를 역임했고, 국방부 편수관을 거쳐 『신태양』지의 주간으로 65년까지 재직했다. 도서잡지윤리위원으로 위촉을 받기도 한 그는 75년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문예창작과 교수로 취임했다.

그의 작가정신에는 리얼리스트의 눈이 번득이는데, 인간과 역사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과 비판, 특이한 구성력으로 특유한 작품세계를 이루고 있다. 1백여 편이 넘은 단편과 26편의 장편소설로 원고지 총량 10여만 매에 달하는 작품을 발표한 그는 중편 문제작인 「남한산성(南漢山城)」을 필두로 본격적인 작업을 전개하여 역사와 사회적인 소재를 다루는 새 경지를 개척하였다.

전 5권으로 된 『조선총독부』는 기록문학의 대하적(大河的) 작품으로 씌어졌고, 「대원군」「대한제국」 등의 역사소설은 인간과 역사관의 깊이를 더한 작품으로 눈길을 끌고 있다.

그는 1958년 단편 「저 언덕을 향하여」로 제6회 아시아자유문학상을, 68년엔 『조선총독부』로 한국출판문화상 저작부문 본상을, 그리고 76년에는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본상 (대통령상)을 각각 수상했다. 여기에 소개한 단편 「임진강」은 62년에 발표한 소설로서 「장씨 일가」「기상도」와 함께 영역된 작품이기도 하다.

1979년 58세 때 척추골절로 와병, 집필을 중지하고 문학생활 30년을 정리하여 『유주현대표작선집』전 12권(후에 15권으로 보완)을 간행했는데, 81년엔 병세가 호전되어 대학 출강 등 일부 사회활동을 했으나 82년에 다시 병세가 악화되어 61세를 일기로 자택에서 얌전한 샌님 분위기 그대로 우리의 곁을 조용히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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