臨津江
柳周鉉
강(江)은 어느 강이나 숱한 전설(傳說)과 애달픈 사연(事緣)을 삼킨 채 세월처럼 말없이 흐른다. 천년(千年)을 한 가지로 흐르면서 세월을 셈하는 것은 오로지 강물뿐이다.
사람들의 나깃한 정화(情話)와, 처절한 슬픔과, 열띤 의지를 흐름에 싣고 흘러흘러 오랜 세월을 헤이게 되면 전(傳)하는 이야기가 유역(流域)에 쌓이고, 그리고 흐트러진다. 이것이 전설이다. 풍토(風土)처럼 고유(固有)한 역사이기도 하다.
왠지 사람들은 강물을 따라 그 유역에다 터전을 닦고 살아가기를 좋아했다. 거기서부터 들(野)로 뻗고 메(山)허리로 오르기 시작했다.
풍옥(豊沃)한 들과 쓸모 있는 메를 겸하여 가진 강의 유역은 도시(都市)로 발전했다.
흔히 강물이지만 기름진 옥토(沃土)가 못 되고, 메가 있으나 쓸모가 없어 오직 메마를 수밖에 없는 고장이면서,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이 모여 메마르게 살아가는 지대가 있다. 많다.
왜 사람들은 알면서 그런 고장에서 살고 있는지 모른다.
피폐하고 메마를 대로 메마른 그런 곳에서 가난과 씨름하며 한사코 살아야 할 까닭이 무엇일까.
할배 아배의 뼈가 묻힌 고장이라 해서일까. 잔뼈가 굵어진 이른바 고향이라 해서 등지게 되지 않는 것인가.
집착(執着)일까.
타성일까.
아니면 크라이스트가 하느님을 빙자하며 달래고 강요하는 순종(順從)에의 귀의(歸依)일까.
이유는 그런 게 아닐지도 모른다.
그렇게 분명한 이유가 있는 게 아닌 것이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일지도 모른다.
‘던져진 위치’에서 ‘주어진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것이 그 고장 사람들의 인생일지도 모른다.
뙤약볕 아래, 자갈밭 길로 타박타박 걸어가다가 지쳐 쓰러지면 기껏 애매한 하늘에다 눈총을 주며 죽어가는 그것이 자기네에게 주어진 인생으로 알고 지루한 세월만 묵묵히 헤이는 게 그들의 삶일지도 모른다.
허나……여기 새삼스러운 이야기가 있었다.
태교(胎敎)가 아니면서 누구도 어쩔 수 없는 순직한 마음들이 새삼스러운 ‘이야기’를 남기고 있다.
“어머니이……”
에아리치며 들려오는 아들의 부르짖음이 귓가에 쟁쟁하여 강 언덕에 나와 헤매는 노파가 있었다.
노파의 머리털은 흐트러진 채 반백(半白)이고, 이마에 가로 패인 주름살의 이랑은 구차한 이력처럼 거무튀튀한 얼굴에 두드러져 있었다.
노파는 낯선 사람이 달래면 사뭇 덤벼들었다.
“우리 아들이 무슨 죄가 있다구 총에 맞아 죽었단 말요! 그 애는 정말 죽었어요. 정말 죽었죠, 어, 어이고오!”
강 언덕에 털석 주저앉아 푸념하는 노파의 이빨은 밉지 않게 뻐드러져 오히려 선(善)하다.
“먹어야지 살지만, 겨울엔 때야 산단 말요. 차라리 때지 않고 얼어 죽었으면 에미하구 함께나 있었을 걸.”
노파는 땅을 치며 쉰 목청을 쥐어짰다.
“강물이 저렇게 얼지만 않았어도 건너가지 않았어요!”
노파는 얼어붙은 강물을 탓했다.
누구나 헤엄을 쳐서 땔나무를 하러 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음력 정월 초이튿날 강물이 얼어붙은 게 탓이 될 수는 없지만 정녕 노파의 아들은 얼음을 타고 강을 건너 갈대(蘆)를 베러 갔다가 죽어 돌아온 것이다.
강(江)은 임진강(臨津江)이었다. 지금은 이북(以北) 함남(咸南) 마식령(馬息嶺)에서 근원하여 강원(江原)을 거쳐 경기(京畿)에 들어와 연천(漣川), 적성(積城), 고랑포(高浪浦), 문산(汶山)을 지나 하류(下流)가 되면, 달리 서울을 거쳐 흘러온 한강(漢江)과 눈짓하며 함께 바다로 뛰어드는 임진강이다.
예부터 신라, 백제, 고구려의 국경 지대가 되어 자주 동족의 피를 흘리게 한 임진의 강, 지금 또한 그 무슨 경계(境界)로서 갈라진 곳이 많다. 사람들의 숱한 원한을 삼킨 채 말 없이 흐른다.
“늘 건너가 갈대를 베어 왔어요. 그게 무슨 죄라구 우리 편 총에 맞아 죽는단 말요?”
노파는 다시 생각난 듯 주먹으로 늙은 소나무의 밑둥을 땅땅 치다가, 합장을 하다가 했다.
“내가 올해 아홉 수라우.”
아홉수라는 당신의 나이를 차라리 탓했다. 노파는 쉰아홉이라 했다.
노파의 말대로 아들은 비명(非命)에 죽었다. 강을 건너 땔나무를 하러 갔다가 미군 보초병의 총탄을 맞고 죽었다. 함께 두 사람이나 죽었다. 출입이 금지된 구역에 무성한 갈대가 탐이 나서 갔다가 죽어 돌아왔다.
“고드름 방에서 에미가 떤다구…… 이웃집 신(申)서방이 와서 가자구만 안했더라두 그날의 일진은 모면했을 테지만……”
어머니는 아들이 죽은 이유를 아들 자신에게 허물할 줄 몰랐다. 그날의 일진(日辰)과 어미의 나이에다 탓을 둘망정 죽은 사람 자신에게 죽어야 할 허물이나 죄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아들을 죽인 사람은 너무나 강자(强者)의 위치에 있는 까닭인지 인욕(忍辱)이 몸에 밴 까닭인지 두드러지게 시비할 염(念)을 내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다.
노파는 시름을 잊고 강 건너의 덕망산(德望山) 허리를 바라보며 오랜 동안 무엇인가 골똘한 생각에 잠겨 있었다.
이따금 강바람이 세차게 불어오면 살을 에이는 것처럼 매웠으나 노파는 개의하지 않았다.
그럴 때면 소나무 가지가 윙윙 울었다. 세 그루의 노송이 서 있는 언덕 위에 겨울 햇살이 밝게 부서지고 있었다. 그 늙은 소나무들은 서낭님(城隍堂)이었다. 서낭직이라 해도 좋다. 그 소나무들 밑에 가로 퍼진 참나무 가지에 헝겊 오리들이 매달려 있고 돌무덤이 거기 있으니까 소나무들은 차라리 서낭직이라 했다.
이태원(梨泰院)은 서울에 있다.
남산(南山) 남쪽 기슭에 자리 잡은 서울의 동명(洞名)이기도 하다.
이태원은 한강(漢江)을 남쪽으로 흘리면서 길고 넓게 자리한 서울의 새로운 마을로서 그 생리가 비교적 복잡한 곳이다.
빈부(貧富)의 차이가 극심한 곳이다. 대지(垈地)가 수천 평이 되는 현대식 대규모의 주택들이 많은가 하면 레이숀 박스가 건축의 주요 자재(資材)인 움막들이 강을 끼고 흡사 알지에의 카스바처럼 밀집해 있기도 하다.
뿐인가. 이태원은 외군(外軍)과 그리고 외인들의 주택지대로서도 유명하다. 따라서 외국인들을 상대로 하는 장사치들이 웅성대는 이방지대(異邦地帶)이기도 하다.
그래 이곳의 풍토(風土)는 두드러지게 복잡한 일면이 있는 것이다. 참담한 가난에 신음하는가 하면 흥청대는 부(富)가 널려 있다. 퇴폐적인 환락도 있다. 자학적인 나태도 있다. 사기와 도둑질과 폭력으로 업(業)을 삼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몸을 외군한테 팔아 부모를 섬기고 자식들을 기르는 가엾은 여인들도 들끓는다.
그리고 그런 여인들을 미끼로 해서 생활을 꾸려 나가는 더 많은 사람들이 또한 우굴거린다.
다방이 있다. ‘시카고’라는 다방이 있다.
이 다방 시카고에 한 사나이가 무료하게 앉아 있었다.
다갈색 골덴 양복에 걸친 검정 오바깃을 올리고 있었다. 머리는 짧게 깎았다. 얼굴은 네모져 있었다. 눈두덩이 수북하다. 왼편 눈두덩 위에는 세로 한 치(寸) 가량의 험이 있었다. 칼자국 같은 험은 오래된 것이 분명하다.
그 험은 번들거렸다. 키는 작달막하지만 어깨는 떡 벌어진 사나이다.
사나이는 재떨이에다 피우던 담배를 신경질적으로 비벼 끄더니 카악 하고 가래를 땅바닥에 뱉고는 발로 쓱쓱 비볐다.
그는 무엇인가 몹시 마땅치 않은 일이 있는 모양이었다. 아니면 몹시 초조하거나 권태스러운 끝에 취해진 행동 같기도 했다. 그리고 그것이 어느 편이거나 다분히 자학적(自虐的)인 심적(心的) 갈등의 표현인 것만은 감출 길 없을 성싶다.
자연(紫煙)과 재즈와 점잖지 않은 잡담들로 뒤범벅이 된 이 다방에 또 한 사나이가 불쑥 들어섰다. 회색 잠바에다 캡을 쓰고 색안경을 걸친 이 사나이는 몸집이 호리호리하고 태도가 몹시 경쾌하게 보였다.
그는 다방 안 좌석을 한 바퀴 휘익 둘러보고는 발길을 돌리다가 다시 돌아서서는 성급하게 눈썹 위에 칼자국이 있는 사나이 앞으로 다가왔다.
“덕환 형님 여기 있었군!”
색안경을 걸친 사나이는 몸을 휘청하고 꺾더니 의자에 털썩 앉았다.
“아까부터 찾았시다!”
그는 덕환이라는 사나이에게 씹어뱉듯이 한 마디 던지고는 탁자 위에 놓인 그의 담배 한 개를 거리낌없이 꺼내 입에다 낑구었다. 낑구고는 한 번 질겅 씹었다.
“성냥 있으슈?”
손을 내미는 색안경에게 덕환은 못마땅한 눈총을 쏘면서 포키트에서 성냥을 꺼내 주었다.
“문태형님이 만나잡디다.”
덕환은 자기도 새 담배를 꺼내 입으로 가져가며 듣기도 싫다는 듯이 대꾸했다.
“못 봤다구 그래!”
그러나 현필(玄弼)은 담배로 동그라미를 만들면서
“꼭 찾아 오래든데……”
하다가
“일 안 하구 놀구 먹을 세상두 아니잖소?”
하고는 두 다리를 쭈욱 뻗으며 의자에 비스듬히 누어버렸다.
그러나 덕환은 딴 곳만 멍청하니 바라보았다.
그는 어떤 생각에 골몰한 것 같기도 하고 음악을, 전축에서 요란하게 흘러나오는 룸바곡에 귀를 기울이는 것 같기도 하고 또 아무 생각도 없이 멍청하니 앉아 있는 것 같기도 한, 지극히 차분한 태도로 딴전만 피우고 있을 뿐이었다.
현필이 색안경을 벗으며 말했다.
“갑시다.”
덕환은 현필을 귀찮은 듯이 흘겨보며 물었다.
“어딜?”
“일미옥.”
“안 가.”
“오늘 밤이랍니다.”
“나 못 봤다고 그래!”
“미리 한 잔 마실 모양이던데.”
이때 레지가 다가와서 탁자를 훔친 다음 말했다.
“물론이죠?”
현필이 레지가 다가와서 탁자를 훔친 다음 말했다.
“물론 차는 안마시지, 곧 가야 하니까.”
레지가 입을 비쭉거리며 돌아섰다. 돌아서면서 악의(惡意) 없이 한 마디 남기고 사라진다.
“밤까지 앉아들 계세요. 물론 괜찮으니까.”
하오 네 시경이었다. 바깥은 바람이 거세고 추웠다. 다방 문이 열릴 때마다 찬바람이 실내를 휩쓸었다. 음산한 날씨, 밤에는 눈이 올지도 모를 찌푸린 하늘이었다.
덕환은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입을 열었다.
“확실히 알아둬! 나는 너희들하고 안 어울리기로 했단 말야. 오늘 일이야 물론 거절이구.”
덕환이 말에 현필은 코끝을 벌룸거리며 소리 없이 웃었다.
“물론 나두 찬성이죠. 허지만 덕환형님두 돈은 벌어야 할 거요. 어디 취직이라두 하셨우? 허긴 미스 최가 있는 한에서는 대단한 걱정은 없으시켔지만, 대단한 여잡디다. 형님 여행하는 동안두 곁눈질 한 번 안 합디다. 허긴 좇아댕기며 감시한 일은 없지만……갑시다. 일미옥에 가서 한 잔 합시다. 어찌 됐든, 한 잔 하구 보는거 아뇨? 출출하신 모양인데. 물론 오늘밤 사업은 거절하셔두 좋구, 안 하셔두 좋구. 허긴 우리와 술자리에 앉기조차 싫으시다면 나 혼자 가는 수밖엔 없지만. 갑시다.”
“안 가!”
덕환은 오연히 소리쳐 다시 한 번 안 가겠다고 선언했으나 현필은 여전히 나직하게 할 말을 하고 있다.
“여하튼 일미옥에나 갑시다. 문태형님한테 직접 말하슈! 갑시다.”
덕환은 화가 났다. 그는 다시 물었던 담배를 땅바닥에다 떨구고는 발바닥으로 여러 번 비벼 버린 다음
“문태 그 자식한테 가서 말하란 말야! 너희들이나 한평생 좋은 일 많이 해서 흥겹게 잘들 살라구, 내가 그러더라구, 그렇게 말하란 말야! 응, 알았음꺼져!”
웃고 있었다. 현필은 그래도 여일하게 빈들거리며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그는 맨손가락으로 색안경을 닦으면서
“오늘 일은 거저먹기랍디다. 그러구 크대. 오늘 일이나 허구 발을 씻는 게 좋겠습니다. 정 결심이 그러시겠다면 말이지. 갑시다!”
현필은 다시 색안경을 걸치며 몸을 가볍게 일으켰다. 의자에서 일어선 그는 바깥을 내다보며 중얼대는 것을 잊지 않았다.
“빌어먹을! 정초(正初)에 신세들 참 따분하군. 타구난 팔자가 이런 건 아닐텐데 정말 무슨 수라도 부려야지. 이거 억울해서 어디 살겠우? 형님 그렇잖우? 갑시다!”
음력으로 정월 초사흗날이었다. 예년에 비해 올 따라 상가(商街)의 철시(撤市)는 더욱 철저하고 거리에 범람한 사람들은 전에 없이 정초 기분에 들떠 있었다.
“왜 벌써들 가실라구? 우리두 오늘은 문을 일찍 닫아야겠어요. 손님두 없구, 극장에라도 한 번 가야 할 게 아니냐 말예요? 정촌데.”
레지가 지나다 말고 그들 자리에 들러서 늘어놓는 말이었다. 석간신문을 들고 있었다.
덕환은 일어서다가 말고 레지 손에서 신문을 뽑아서 펼쳤다.
일면은 몇 개의 사진만 훑어보고는 뒤집어 접었다.
덕환은 몸을 뒤로 눕히며 삼면에다 눈을 보내다가 톱기사가 센세이셔날한 바람에 무심한 그러나 차근차근 읽어 내려가기 시작한다.
그는 그 기사를 읽다가 너무나 뜻하지 않은 활자들이 나열되어 있는 바람에 호흡이 가빠 올랐다.
덕환은 자세를 바로 고치며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읽은 곳을 다시 되읽었다.
그러자 현필이가 옆에서 또 채근을 했다.
“이 집도 문을 닫겠다는데, 갑시다. 그깐 신문은, 나중에 보슈!”
덕환은 현필의 그런 말이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덕환의 얼굴은 일그러져 있었고 안색은 까닭 모르게 울그락불그락했다.
“글쎄 그러지 말고 가 보기나 합시다!”
현필은 말투에다 짜증을 섞었다.
덕환은 여전히 현필의 말에 반응을 보이지 않고 신문과 씨름을 했다.
그는 몹시 흥분하고 있었다. 놀라움과 분격이 얼굴에 역력히 나타나 있었다.
그는 흥분을 가라앉히려는 듯이 읽은 신문을 차곡차곡 접다가 다시 펼쳐서는 몇 줄의 활자를 세세히 확인해 본 다음 맥빠진 사람처럼 현필을 쳐다보았다.
“뭐 재미있는 얘기라두 났오?”
덕환은 현필에게 대답하지 않았다.
덕환은 버릇처럼 담배 한 개를 입술 끝에다 낑구고는 성냥을 득 그었다. 성냥을 긋는 그의 손은 가늘게 떨렸다.
그는 두근대는 가슴과, 흥분하는 마음과, 놀라움과, 분노와 그리고 슬픔으로 착잡된 감정을 억제하느라고 어금니를 지근지근 누르며 현필에게 물었다.
“어제가 음력 초이틀인가?”
“그저께가 초하루죠.”
덕환은 현필의 대답을 듣자 잠시 눈알을 부라리고 주먹을 불끈불끈 쥐곤 했다. 그는 입을 꽉 물며, 아래윗니를 또 힘있게 맞누르며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일어서자
“갑시다! 출출한데 한 잔 해야지.”
현필이 앞을 서며 다방을 나가기 시작하는 바람에 그도 발길을 옮겼다.
덕환은 신문을 주먹 속에 마구 꾸겨 쥐고는 다방 문을 발길로 찼다.
“신문 두구 가세요! 손님이 사신 거예요.”
레지가 뒤를 따르며 소리쳤으나 덕환은 들은 체도 하지 않고 다방 문을 나섰다.
“그 신문, 손님 거래니깐요!”
레지가 문밖까지 따라 나와서 소리를 쳤을 때에야 덕환은 주먹에 쥐었던 신문지 쪽을 뒤로 팽개쳐버리고는 부지런히 걷고 있었다.
“어머니! 춘데 그만 들어가시죠.”
아낙네가, 젊은 아낙네가 강가로 나왔다. 남(藍)빛 치맛자락이 바람에 펄럭이는 것을 한 손으로 감싸 쥐었다.
“들어가세요. 산사람은 살아야죠, 어머니.”
노파는 며느리 말에 고개를 홱 돌렸다.
“그럴까? 산목숨은 살아야지? 에미, 자식 간에두 따라 못 죽는데……”
너는 하물며 남의 집에서 온 계집이니 살아야 하겠다는 말일 거라고 다소 갉아잡아다리는 말투로 노파는 며느리의 아랫배를 흘끔 살폈다.
“그래. 서방이야 비명에 죽었어두 각시는 악착같이 살아야지. 산목숨이 따라 죽는달 수야 없는 게니까.”
노파 피(皮)씨는 혼자 중얼거리며 발길을 돌렸다.
노파 피씨의 두드러진 관골은 쪼들려 온 가난의 상징이지만 자위가 패인 피로한 듯한 두 눈은 서글하게 어질어 보였다.
며느리 박정임(朴貞姙)은 그 시어머니의 몰골을 보자, 눈물이 핑 돌았다.
울음으로 핏발이 가시지 않은 두 눈을 씀벅거리며 다소곳이 시어머니의 뒤를 따르는 정임의 몸은 메마르나마 젊음으로 팽창해 있다.
며느리 정임은 시어머니의 뒤를 따르면서 자기 자신의 박복을 짓씹었다. 정말 자기의 팔자 소관이라고 생각했다.
정임은 시집온 지 반년 만에 남편을 잃은 것이다. 뱃속에는 이제 유복자(遺腹子)라고 불리워야 할 핏덩이가 들어 있다. 석 달을 자란 남편의 첫 씨가 들어 있다. 대견한 것인지 아닌 것인지는 모르지만 그것으로 해서 더욱 서러웠다.
정임은 이를 악물며 불안한 발길을 옮기고 있는 시어머니의 한 쪽 소매를 잡았다. 소매를 잡으며 한 손으로는 자기의 앞머리를 걷어 올렸다. 신혼의 흔적이 아직 뒷머리에 남아 있었다. 결혼 파마가 아직 풀려지기도 전에 남편을 여읜 심경으로 말하면 어찌 부모 자식 간의 정만 못하랴만 나이 젊은 여자란 이런 경우 그저 아무 말 없이 참아야 한다는 생각에 입을 꽉 다물고 어금니를 짓누를 뿐이었다.
(정말 따라 죽을 수는 없는가!)
어제부터 몇 차례인가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러나 시어머니의 말과 같이 따라 죽을 수 있을 듯 싶진 않았다. 며느리 정임은 말했다.
“다 제 팔자죠, 어머니. 지가 박복해서 이런 일을 당했어요, 어머니.”
울음 섞인 음성이었다. 역시 남편의 죽음을 남편 운명에다 핑계할 줄을 몰랐다. 그가 죽은 것은 갓 시집온 자기의 팔자가 기박해서라고 생각했다.
“고대 미군이 왔었어요.”
“미군이?”
며느리 말에 시어머니 피씨는 펄쩍 뛰었다. 걸음을 멈춰버렸다.
“그놈들이 왜? 내 아들을 죽여놓구 왜 왔다더냐?”
강바람이 쒸익 하고 불어왔다. 갈(蘆) 마을에서는 컹컹 하고 개가 짖었다.
“창수 엄마한테 돈을 줬대나요?”
“돈? 미군이? 받았대디? 그 예펜넨 서방 대신 돈을 받았대디?”
“미군 장교들이 보는 앞에서 발길로 짓밟아버렸대요.”
시어머니 피씨는 제 머리를 둬번 흔들고는 뱉듯이 말했다.
“그거 잘했다. 얼마나 된다드냐?”
“모르죠. 많겠죠, 뭐.”
“많어? 우리한테두 가져왔디?”
“아뇨.”
“왜? 우리한텐 왜 안 가주와?”
“가주야 왔겠지만 창수네처럼 안 받을 줄 알구 들리지두 않았나 봐요.”
시어머니 피씨는 그 말에도 펄쩍 뛰었다.
“왜 안 받아? 가난 땜에 그 애가 죽었는데 주는 돈을 안 받아? 안 받는다고 누가 겁을 펄쩍 낸다든? 왜 장사(葬禮)비를 안 받아?”
며느리는 입을 굳게 다물어버렸다. 슬픔과 울음에 지친 듯한 정임의 얼굴에는 기진해서 모두가 귀찮다는 표정이 깃들어 있었다. 두 눈두덩이 두둑이 부어 있었다.
강뚝은 스산하게 바람이 거셌다. 늙은 소나무 가지에 바람 소리가 피었다. 뚝 아래로 내려들 섰다.
두 여인은 떠들썩하는 마을에까지 돌아오는 동안 입을 열지 않았다.
살아나갈 길을 생각하고들 있었다. 죽은 사람은 이미 죽었거니와 장정을 잃었으니 앞으로 살아나갈 길이 난감한 것이다.
시어머니 피씨가 새삼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래 그 돈이 얼마나 된다든?”
정임은 돌부리를 차며 시어머니의 팔을 잡았다.
“모르죠, 얼마나 되는지.”
“많겠지?”
“얼마가 되든지 우리네들 형편에야 많은 돈이 아니겠어요?”
그러자 정임은 시어머니를 이끌고 길 가장자리로 비켜 섰다.
지프 한 대가 마을에서 달려 나오고 있었다. 먼지를 뽀얗게 일구며 마을 어귀에 있는 포플라 숲길을 달려 나오고 있었다.
“저 녀석들이냐?”
“그런가 봐요.”
지프는 그네들 앞을 전속력으로 지나가고 있었다.
시어머니 피씨는 어이구 하고 신음처럼 뜻 모를 비명을 흘렸다.
며느리 정임은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벌써 저만치 달아나고 있는 지프의 뒤를 노려보았다.
갈마을 어귀에서도 동네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서서 스스로 일구는 먼지로 흡사 연기 속을 뚫고 달리는 듯한 지프를 바라보고들 있었다.
그들은 제각기 망태와 소쿠리 없는 지게를 걸머메고 있었다.
또 땔나무를 하러 가는 것이 분명했다.
“그래도 또 강을 건널 작정들인가?”
피씨가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그들에게 소리쳤다.
“아드님 장사 지낼 땔나무도 없잖아요?”
머리에 수건을 질근 동인 복만(福萬)이가 한 손으로 지게 목발을 쥐며 대꾸했다.
“또 쏘나 안 쏘나 미군 부대 앞으로 바짝 지나가 볼래요.”
망태를 옆구리에 낀 젊은이의 말이었다.
“그러다가 또 쏘면 어쩔라구?”
노파 피씨는 아들 덕수(德洙)가 그들 틈에 끼어 있는 것만 같아 또 눈물이 찔끔 솟았다. 도시 죽었다는 게 믿어지지가 않아 넋없이 그들을 바라보며 혼잣말처럼 중얼댔던 것이다.
“쏘문 맞아 죽죠. 죽는다구 서러울 인생들두 아닌 걸요.”
복만이가 흘리는 말에
“남은 사람들이야 서럽지.”
피씨가 그들의 뒷모습을 멀건이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실성한 사람 같았다.
남은 사람들이야 서럽지 하는 시어머니 말에 며느리 정임은 눈물을 짰다.
다방 ‘시카고’를 나와 현필의 뒤를 따라선 덕환은 미칠 것 같은 심경이었다.
그는 무엇인가 해야 하겠고 어떻게든 돼 버려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았다.
“가 봐야지!”
그는 혼자 중얼거렸다. 당장 가 봐야지.
(이대루 가 봐서 뭣허나? 이대루 가서……)
이대로 고향을 찾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고 그는 생각한다.
그는 6개월 만에 나왔다. 특수절도죄로 6개월의 옥살이를 하고 나온 지 오늘로 꼭 5주일이다.
기억하고 싶지는 않지만 이번 옥살이로 전과(前科) 3범이 되었다.
(3범으로 끝내야지!)
세 번이 넘으면 30번이 될 수도 있다고 전옥(典獄)은 웃으며 말했다. 세 번을 채웠으니 다시는 감옥에 오지 말고 착실한 직업이라도 붙잡으라는 훈계 끝에 내보내어 주었던 것이다.
그렇게 하리라고 명심했다. 설사 굶어 죽는 한이 있더라도 다시는 범죄자가 되지 않기 위하여 5주일 동안을 노력해 온 셈이다.
그러나 할 일이 없다. 아무도 일을 시켜 주지 않는다. 무슨 짓이든지 해야 하겠는데 그 무슨 짓이라는 것이 좀체로 발견되지 않는다.
미스 최가 더 애가 타 했다. 그가 다시 그 길로 들어설까 봐 걱정이 되어 조바심이다. 그래 미스 최 자신도 덕환의 취직을 위해서 백방으로 좇아다니고 있다.
미스 최는 바아의 여급이다. ‘들장미’라는 바아의 여급으로 그 ‘들장미’는 명동에 있다.
미스 최는 덕환이와 벌써 3년 동안이나 동서생활을 하고 있다. 비록 직업이 그럴망정 착실한 여자라고 정평이 있다. 시집도 가보지 못했으나 사랑이라는 것을 아는 여자다. 덕환이보다 나이가 세 살이나 위지만 앳되어 보이기 때문에 부자연스럽지는 않다. 유행가의 가사처럼 술을 마시려면 취하도록 마시고 사랑을 하려거든 죽도록 하겠다는 미스 최의 입버릇이었다.
물론 이번에 출옥해서도 덕환은 미스 최에게로 가장 먼저 달려갔다.
“나 혼자 벌어도 우리도 살아갈 수 있는 거예요. 천천히 취직자리나 구해 보세요. 가릴 거야 없죠. 하실 수 있는 일임 뭐든지 해야 해요. 심심풀이 정도로도 좋으니까요. 그 악당들과 어울리지만 마세요. 이번에 다시 어울리면 난 죽을 테에요. 당신이 나를 죽인 거라고 유서를 써서 경찰에 보내구 말에요.”
이것이 미스 최의 당부다. 눈물이 글썽해서 호소해 온 꾸밈없는 마음이며 거듭해 온 애원이다.
“내 결심은 그거야. 고향에서는 내가 서울서 출세했다구 평판이 자자하거든. 출세가진 못 하더라두 깡패, 도둑놈 소리는 면해야겠다는 생각이다. 내 동생이 시골에 있지. 나더러 좋은 자리에 취직 안 시켜준다구 원망하고 있어. 3년 전인가, 정월에 시골 내려가니까 말이야. 작년에 장가를 갔다지. 그때도 나는 못 갔어. 바쁘다는 핑계루. 날 큰 회사의 전무로 알고 있어. 없을 무(無)자 돈 전(錢)자, 전무인 줄은 꿈에도 짐작들 못해. 사실 몇 해만큼 한 번씩 시골에 가면 돈을 뿌리고 왔거든. 지금두 백 환짜리 지전(紙錢)이 흔하지 않은 동네야. 한 번 가야 할 텐데. 어머니가 계셔. 내가 가면 어머닌 출세거든. 성공한 서울의 아드님 돌아왔다구. 언제 우리 둘이서 한 번 내려갈까?”
미스 최도 이미 들어서 알고 있는 이야기를 덕환은 이번 출옥 후에도 다시 한 번 설명했던 것이다.
왜 그런지 미스 최에게만은 철저히 알리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덕환 자신을 미스 최에게만은 발가벗겨서 병신이거나 상처투성이거나 돼먹은 그대로를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두 나보다는 자랑스러운 이력이에요. 남자의 이력은 그런대루 위풍이나 있지만 여자의 구차한 이력은 밉상스런 눈물인 거예요. 제 얘기는 묻지 않기루 했죠.”
미스 최는 담담히 이렇게 말했다.
지금 현필이와 함께 가는 길이 발견된다면 미스 최가 필연코 무서워지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우연히도 만난 것이다. 발견되었다. 공교롭게도 합승 정류장에 서서 이쪽을 멀건히 보고 있지 않은가.
덕환은 고개를 번쩍 쳐들면서 다가갔다.
“몸이 아프다더니!”
쉬라고 했는데 나가느냐고 물었다.
“일찍 들어오겠어요.”
화장을 벗기면 핏기라곤 없는 얼굴에 뜻 없는 웃음이 흐트러졌다.
명토 박힌 지병(持病)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저 몹시 허약한 체질이 항상 피로에 젖어 있다.
“자기 몸은 자기가 아껴.”
한 마디 남기고 돌아서는 덕환에게 미스 최는 날카로운 시선을 쏘았다.
“집 비웠어요. 지금 바루 들어가요. 나하구 함께 들어갈까요?”
미스 최는 저만치 가다가 서 있는 현필을 잠깐 흘겨보고는 말했다.
덕환은 음성을 높였다.
“한 잔 해야겠어. 해야 할 일이 생겼단 말야.”
피하다시피 벌서 걸어가고 있는 덕환은 미스 최가 던지는 다음 말에 공연히 주먹을 불끈 쥐어 보았다.
“나 유서 쓰겐 하지 말아요. 아직 죽구 싶진 않으니까요.”
또 무슨 짓을 저지르지 말라는 말이다.
덕환은 한 쪽 주먹을 하늘을 치키며 한숨을 뽑았다.
그리고 가래침을 카악 하고 길바닥에다 뱉았다.
“어머님은 서울루 가세요. 낼 장사나 치르시구 며칠 쉬셨다가……”
며느리 정임은 진심으로 말했다. 죽은 남편의 형이 서울에서 그렇게 잘 살고 있다니 의지할 곳 없는 시어머니는 이제 그리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피씨는 며느리 말에 펄쩍 뛰는 것이다
“서울? 나더러 서울루 가라는 게냐? 작은 자식을 저 덕망산에다 묻어 두고 흙도 마르기 전에 호강하러 가라는 게냐? 어림두 없는 소릴!”
정임은 아무 생각 없이 한 마디 더했다.
“살기 싫어 이왕 죽은 사람, 생각하심 뭘해요. 이제 어머님이나 좀 편하게 사셔야죠.”
이 말을 하면서 정임은 눈물이 저도 모르게 쏟고 있었다.
정임은 시어머니가 당장 서울로 떠나고 자기 혼자만이 이 갈마을에 남는 것처럼 몸 둘 곳 없는 서러움이 복받쳐 올랐다.
“넌?”
시어머니의 물음. 다시 재우쳐 묻는 음성이 심상치 않다.
“넌 어떡할 테냐? 그래 난 서울 큰 아들한테루 간다 치구 그럼 넌 어떡헐테냐?”
정임은 대답하지 못했다.
“날 따라 올 테냐?”
정임은 역시 대답을 못했다. 단지 시어머니는 지금, 이 마당에 왜 그런 말을 물어야 하는지 그것이 야속해서 입술을 깨물었다.
“어머님을 위해서 말씀드린 거예요.”
정임은 손바닥으로 눈물을 씻었다. 그러나 시어머니 피씨는 역시 다른 말을 했다.
“밴 자식이나 낳아 놓구 넌 가야지. 남의 자식한테 청상과부 노릇을 허라구 할 내가 아니다.”
시어머니 피씨의 이 말도 진심이었다. 혼인한지 반년도 채 못 되어 서방을 죽인 것을 생각하면 미상불 미운 생각에 눈에 불이 날 것 같기도 하긴 하지만 이상하게도 측은한 마음이 앞서서 다행이었다.
“석 달이냐? 낳아 주구 가거라. 내가 키우자.”
피씨는 이 말을 하면서 문득 서울 큰 아들한테서 아직 손자가 태어났다는 말을 듣지 못한 게 적잖이 서운했다.
“서울 애한텐 아직두 자식이 없는 모양이구. 씨는 받아야 않겠니. 잘 크면 서울 큰 애비한테루 보내서 대핵교 공부꺼정두 시켜야겠다. 집안의 종자가 끊어짐 되겠니.”
이윽고 노파 피씨는 자기네 오막살이 문 앞에 이르러 웅성대는 사람들을 보자 별안간 소리소리치며 통곡했다.
“아이구 덕수야, 네가 왜 죽었는지 아무래두 모르겠다. 강에 가 물어봐두 서낭님한테 물어봐두 네가 왜 죽었는지 난 모르겠다. 아이고, 아이고, 고크크.”
덕환은 주먹으로 술상을 탁 하고 세차게 내려쳤다. 사기 그릇들이 처르르 하고 경(硬)한 음향을 내면서 맞부딪칠 만큼 세차게 내려쳤다.
그리고 그는 이빨을 악물며 부르르 떨었다. 부르짖었다.
“빌어먹을, 나더러 어쩌라는 거야? 모른 체하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잖으냐 말이다.”
덕환은 기어코 일미옥 술집으로 와 있었다. 와서도 신문의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문태(文泰)와 현필과 셋이서 벌써 꽤 여러 잔을 마시고 난 다음이었다.
“차아식! 뭘 모른 체한다는 거냐?”
문태가 물었다. 눈알을 굴리며 문태는 덕확을 쏘아보았다.
“형님!”
덕환은 술잔을 문태에게 불쑥 내밀며 소리쳤다.
“형님! 내 동생이 죽었단 말이요. 죽었어. 어 흐흐흐.”
덕환은 문태에게 주전자를 기울이다 말고 비로소 억압하고 있던 통곡이 봇물처럼 터졌다.
“동생이? 죽어? 언제? 네 동생이 있었나?”
문태는 놀라면서 덕환에게 반문하다가 현필한테로 시선을 쏘았다. 무슨 소리냐고 눈으로 현필한테 묻는 것이나 현필 역시 무슨 소리인지 알 길이 없다.
“미군 총알에 맞아 죽었단 말이다! 땔나무를 하러 갔다가 미군 총알에 맞아 죽었단 말이다.”
“언제?”
문태가 물었다.
“오늘 신문에 난 거 말인가?”
문태가 술잔을 목구멍에 쏟았다. 꿀꺽 삼키고는 덕환을 노려보았다.
덕환은 울부짖었다.
“6·25땐 아니 1·4 후퇴 때 우리 형제는…… 나하구 내 아우 말이다. 미군을 두 녀석이나 살려냈단 말이다. 도망치다가 길을 잃은 두 녀석을 우리 형제가 감춰줬단 말이다. 우리들 생명을 내걸고 감춰주구 살려줬단 말이야. 그런데 미군이 그 내 아우를 총으로 쏴 죽였단 말이다. 빌어먹을!”
그러나 다른 좌석들은 시끄러웠다. 기성(奇聲)과 같은 노래를 쥐어짜는 패거리와, 아귀다툼들을 하는 측과, 주모(酒母)의 엉덩이를 손바닥으로 후려쳐 보고는 천하라도 얻은 듯이 득의만면(得意滿面)하는 늙은 노동자들도 있었다. 정말 시끄러운 분위기다.
“시끄럽다! 술을 먹음 먹었지, 모두 너희 세상이냐!”
문태가 바리톤 같은 굵직한 음성으로 버럭 고함을 치는 바람에 모두 다 기가 막힌지 어리벙벙들 하고 있다.
“손님들 미안합니다. 우리도 술이 좀 취해서요.”
현필이가 좌중을 둘러보며 이렇게 쐐기를 박자 술 손들은 기가 막히는 모양이다. 불량배들인 줄을 짐작하고 참는 눈치들이다.
“우린 이태원의 불량배들이니까요. 손님들 양해하십쇼.”
현필은 한 마디 더하고는 술잔을 들어 단숨에 들이켰다.
“아까 그 신문에 났오?”
현필은 덕환에 묻다가 주모를 불러 석간을 한 장 사다 달라고 부탁했다.
“너 고향이 참 파주지? 가 봐야겠구냐? 우리 함께 가야겠군.”
문태가 북어구이를 입에 넣으며 대수롭지도 않은 일처럼 씨부렁거렸다.
“돈이 있어야지. 돈을 가주 가야 하지 않소? 형님!”
현필이가 덕환에게 말하며 문태에게 한 쪽 눈을 찡긋해 보였다.
“물론 돈이 있어야지. 돈을 가주 가야 장사라도 지낼 것 아닌가?”
문태의 말에
“자알 됐지 뭐야. 오늘밤 출장한다면서요?”
현필의 말에
“낼이 장사날인가? 새벽에 떠나자!”
문태가 담배를 거꾸로 물다가 뽑으면서 트림을 꿀꺽 터뜨렸다.
이때 덕환은 눈을 거슴츠레하게 뜨고 별안간 이를 빠드득 소리내어 갈았다. 그리고 식탁 위에 놓은 주먹에는 불끈불끈 힘이 주어지고 있었다.
주모가 신문을 가지고 왔다.
현필이가 뺏듯이 받아 들고는 몇 줄 읽어 보다가 말했다.
“보초가 쐈군. 두 명이나 죽었군. 이덕수라는 사람이 동생이슈?”
현필은 덕환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이번에는 욕설을 퍼부었다.
“쌔애끼들! 나무꾼은 왜 쏘는 거야! 토끼 사냥이라두 하는 기분으로 쐈단 말인가?”
그러자 이번에는 문태가 신문을 뺏아 들었다.
잠시 후 문태는 신문을 팽개치며 의외의 말을 뱉았다.
“있을 수 있는 일이야.”
“뭐?”
덕환이 즉각적인 반응을 보였다.
“있을 수 있는 일이란 말이다.”
“있을 수 있는 일이라구?”
“있을 수 있어. 죽은 사람이 네 동생이니까 안 되긴 했지만.”
“내 동생이 문제가 아니야! 문제는 엽전이 억울하게 죽었단 말이야. 있을 수 있다니!”
덕환은 참을 수 없이 불쾌해 눈으로 문태를 쏘아보았다.
그러나 문태는 덕환의 비위를 더욱 뒤집어 놓았다.
“너희들은 보초의 생리를 몰라서 그래.”
이 말에 현필이 한 마디 했다.
“문태 형님은 미군 편을 드슈? 철저한 친미(親美)주의자신데……”
문태는 잠자코 술잔을 입에다 거꾸로 세웠다. 빈대떡 조각을 파간장에 덤벙 당궈서는 입속에 들뜨리고는 성급하게 씹어댔다.
문태는 술잔을 덕환에게 불쑥 내밀며 입을 열었다.
“보초의 생리로는 쏠 수도 있어. 친미적이구 반미적이구가 아니야. 그 이전의 문제야.”
“장소는 최전방이야. 시간은 어두워 온 무렵이야. 출입금지 구역인 부대 앞에 사람이 나타났어. 부대원 아닌 사람이 말이지.”
“그래서?”
덕환은 눈을 거들뜨며 물었다.
“누구냐! 소리를 쳤겠지. 나무꾼들은 후당탕거리고 튀었을 거야.”
“튀는 게 당연하지.”
“당연하다는 것보다는 본능이야. 무의식중에 튀게 마련이야. 왜 튀게 마련인지 안나? 그곳이 출입금지 구역인 줄을 알구 있기 때문이야. 그냥 아무것도 모르구 지나면 사람은 누구냐 소리에 튀지 않네. 놀랄 뿐이지.”
“그래서 어쨌다는 거야? 그럼 나무꾼을 쏴 죽인 게 잘했다는 말이요? 가난뱅이들이 동태(凍太)가 되지 않으려구, 땔나무 하러 갔다구 해서 사살되어야 한단 말이냐 말이요?”
덕환은 짜증과 분격으로 어깨를 들먹거리며 반문해댔다.
그러나 문태는 여전히 자기 말을 하고 있었다.
“이봐! 덕환이. 나 군대 출신이야. 일선에서 밤을 새며 보초도 서 보구, 수색작전두 해봐서 전방 장병의 풍속을 알어. 보초가 수상한 사람을 발견했을 순간에는 극도록 긴장해서 손가락이 저절로 방아쇠를 쥐게 마련이야. 자기 자신이 위험하다고 느끼기 때문이지. 실제루 말이다. 일초의 차이루 자기 자신이 죽는 수가 있거든. 그런데 말이다. 더구나 누구냐 소리를 쳤을 때 상대편이 튀기라두 한다면 보초의 총알은 저절로 튀어나가게 마련이야. 상대방을 죽여야겠다든가 살려야 한다는 분별 이전에, 총알은 제멋대루 튀어 나간단 말이야.”
“그게 당연하단 말이요? 그렇게 해서 죄 없는 사람이 죽어두 할 수 없단 말인가?”
“물론 결과적으로 실수지. 하지만 그 미군 보초가 아주 침착하구 능숙하지 않은 경우에는 있을 수 있단 말야. 이봐! 보초는 대개 졸병이야. 신병(新兵)이야. 적어두 살의를 가지구 고의로 죽였다구 하기는 힘든단 말일세. 적과 대치하구 있는 최전방 아닌가? 거기두.”
덕환은 문태의 말이 불쾌하긴 했으나 전연 터무니없는 궤변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동생 덕수란 놈은 죄 없이 죽었지 않은가? 죽었단 말이다. 적도 아닌, 우리 편인 미군의 총탄으로 죽었단 말이다.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말이다.
“문제는 가난하기 때문이야. 총을 쏜 미군 보초두 죽일 놈은 아니구, 물론 나무꾼도 죽어야 할 죄는 없어. 문제는 가난이 죄야. 가난하기 때문에 위험한 줄을 알면서두 나무를 하러 갔다가 잠깐 실수로 목숨을 뺏긴 거란 말이다. 불쌍할 뿐이다. 그저 불쌍해!”
문태는 무엇을 생각했는지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술잔을 거푸거푸 기울였다.
덕환은 그 이상 문태의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
덕환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감싼 손가락 사이로 눈물이 주르르 흘러 내렸다.
“술이나 마셔라! 좀 취해라!”
문태의 말을 들으며 덕환은 주먹으로 눈물을 자꾸 씻어냈다.
그는 동생의 비명(非命)을 계기로 자기 자신을 자꾸 슬퍼했다.
가난하기 때문에 죽어간 동생을 빙자해서 뿌리칠 길 없는 유혹과 자신 없는 대결을 해야 했다.
무엇인가 해야 한다는 절박감으로 말미암아 슬퍼지는 것이었다. 선(善)이고 악(惡)이고 준법이고 범법(犯法)이고를 가리기 이전에 무슨 짓인가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초조감이 왠지 자꾸 슬프기만 했던 것이다.
“현찰 삼백만 환이 꼭 있을 거야.”
부로크 담장 안에서 자리한 오십 평이 넘는 벽돌집이었다.
그 집에 삼백만 환의 현금이 있다는 전제 아래 일은 진행되었던 것이다.
문태가 수집한 정보는 언제나 정확하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그가 계획하는 일은 실패하는 법이 없다. 그것을 덕환은 알고 있다.
덕환은 기어코 나서고야 말았다.
새벽 세 시 반을 기(期)해서 세 사나이는 산기슭에 있는 그 집을 포위했다.
그것은 흡사 포위 작전이었다. 어둠 속에서 숨소리와 발자국소리를 죽여 가며 포위망을 압축해 가는 세 사나이의 신경은 그대로 적(敵)을 포위해 가는 작전과 다를 바 없었다.
그 집은 깊이 잠들어 있었다. 세 사람들은 그 집을 삼면에서 포위해 놓고 세심하게 동정을 살피다가 절호(絶好)의 기회라는 데에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지휘는 문태였다. 선두에서 담장을 뛰어 넘은 것은 덕환이었다.
세 사람이 다 그 집 담장 안으로 들어서자 일제히 준비했던 검은 헝겊으로 복면을 했다. 그리고는 우선 대문을 소리 없이 열어 놓았다.
마당에서 망을 본 것은 현필이었다.
덕환과 문태가 그 집 침실에까지 침입하기에 성공한 것은 거의 30분이나 걸려서였다.
먼저 응접실을 뒤졌으나 물론 목적한 돈이 거기 있을 리는 없었다. 그래 제2차로 침실로 들어간 것이다.
침실에는 다행히 낮은 촉광의 푸른색 전등이 켜진 채로 있어 프래쉬를 비쳐 볼 겨를조차 없었다. 침대가 있었다.
부부가 침대에서 자고 있었다. 남자는 잠옷을 입었으나 여자는 알몸으로 침대 속에 묻혀 있었다.
문태가 단도를 사나이 가슴에다 대고 협박을 했을 때 50이 넘은 사나이는 차라리 눈을 감아버렸다.
문태가 한 손으로 이불을 젖히며 일어나라고 하다가 보니 그 속에는 알몸뚱이의 여자가 새우처럼 허리를 꺾은 채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딸 같은 젊은 나이였다.
남자는 일으키고 여자는 이불을 들씌워 주었다.
정말 삼백만 환은 됨직한 지폐 보따리를 침대 밑에서 찾아낸 것은 덕환이었다.
두 사나이는 유유히 방을 나왔다.
그러나 뜻밖이었다. 그들이 마당으로 내려서기가 바쁘게 이 집은 물론 옆집 앞집들의 전등이 탁탁 켜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어디선가 도둑이야! 하는 고함 소리가 고막을 찢었다.
세 사나이는 완전히 당황해버렸다. 이웃집들과 벌서 내통된 것이 분명했다. 서로 연결되는 비밀 장치가 있었던 듯싶었다.
당황한 세 사나이는 예정된 탈출구로 몰리지를 못했다. 열어 놓은 대문의 방향이 졸지에 생각나지 않았다.
그래도 현필과 문태는 열어 놓았던 대문을 통해 튀기 시작했다.
덕환은 저도 모르게 뒷담 쪽을 향해 뛰었다. 뒷담이 까맣게 높았다. 높은 담장 위는 가시 철망이 놓여져 있었다.
덕환은 개구리가 바위로 뛰어오르듯 거듭거듭 실패하면서도 용하게 담장 위에 기어오를 수 있었다. 가로질린 가시 철망은 몸으로 돌파해 버렸다. 아픔도 잊고 담장 밖으로 굴러 떨어졌다. 거기는 경사진 비탈이었다. 비탈은 산으로 이어져 있다.
덕환은 사뭇 어둠 속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엎치락뒤치락 한참 동안 달리다가 그는 아차! 하고 깨달았다.
덕환은 다시 몸을 돌이켜 담장 쪽으로 뒹굴듯이 내리닥쳤다. 사람들의 헛기침과 술렁거리는 소리가 담장 안에 들려오고 불빛이 눈앞에 흔들렸으나 개의하지 않고 방금 천신만고해서 뛰어넘은 담장을 향해 마구 달려 되돌아가고 있었다.
덕환은 담장 밑에 이르자 두 손으로 어둠 속을 허우적거리기 시작했다. 무릎을 꿇고 기어다니며 손바닥으로 땅바닥을 더듬고 휩쓸고 했다. 손끝이 아리도록 차가웠다.
“한 놈은 이리로 넘어갔습니다!”
담장 안에서 이렇게 떠드는 소리가 들렸을 때 덕환은 어둠 속 땅바닥에서 보따리를 움켜잡을 수 있었다.
그는 담장을 뛰어넘기 직전에 돈보따리를 밖으로 팽개쳤던 것이다.
(이것을 잊고 가다니!)
그는 속으로 뇌까리며 회심의 미소를 어둠 속에서 흘렸다.
“그놈 철망에 누깔이라도 찔려 담 밖에 쓰러졌을지두 모릅니다.”
담장 안에서 담장을 넘어오는 말이었다. 프래쉬의 불빛이 담장 위로 뻗쳤다.
덕환은 씽긋 웃었다. 그는 당당히 대답해 주었다.
“천만에 말씀!”
컹컹컹 동네 개들이 그때에야 짖어대기 시작했다. 파상적으로 먼 곳의 개들까지 호응해서 요란스럽게 짖어댔다.
“세파트를 끌러 놓으시오! 담 밖으로 넘기시오!”
이런 소리도 들렸다. 누군가가 꽤 현명한 제안을 한다고 덕환은 코웃음을 쳤다.
그러나 그는 미상불 겁이 나기도 했다. 위험을 느꼈다. 개는 더욱 요란히 짖어댄다.
그는 산으로 치달리기 시작했다. 아까보다도 그의 걸음은 가볍고 빨랐다. 해치웠다는 쾌감으로 그는 마구 흥분하며 얼어붙은 산길을 민첩하게 더듬고 있었다.
그는 그 무렵에야 비로소 손이며 목덜미에 끈적거리는 차가움을 의식할 수 있었다. 피가 줄줄 흐르고 있는 모양이다. 가시 철망이 눈알은 빼지 않았어도 손등이며 목덜미며 마구 할퀴고 찢어 놓은 게 분명하다.
한참 뒤에 덕환은 커다란 바위와 그 바위 사이에 자란 다북솔 사이에다 몸을 낑구고 하늘을 보았다.
별이 희게 빛나는 차가운 하늘에는 아직 새벽의 서기(瑞氣)가 서려오지 않았다.
덕환은 수건과 휴지로 목덜미와 손등의 끈적거리는 피를 닦아내면서 비로소 문태와 현필의 안위를 생각했다.
(차아식들 무사히 튀었겠지!)
그는 문득 자기는 현재 혼자라는 데에 이상하게도 흥분하는 것이었다. 혼자다. 그는 정말 흥분했다. 아무도 없다. 나 혼자다. 나 혼자 이 돈 보따리를 가지고 있다. 나 혼자 이곳에 숨어 있다. 아무도 나의 소재를 찾아내면 안 된다. 나는 철저히 숨어야 한다. 누구도 모르게 어디론가 숨어야 한다. 미스 최한테도 연락을 해서는 안 된다. 문태나 현필을 만나려고 하는 것은 위험하다. 그들이 있는 마을에는 이미 경계망이 삼엄하게 펄쳐져 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그리로 내려갈 수도 없고 그들 중의 누가 나를 찾아 이곳으로 올라와도 안 된다. 나는 혼자다. 당분간은 혼자라야 안전하다.
그러자, 그는 오늘이 죽은 동생의 장사날이라는 것을 생각한다.
동시에 그의 머리에는 이상한 착상이 떠올랐다. 그는 옆에 놓인 돈보따리를 손으로 만져보면서 밑이 빠지도록 가난한 고향 사람들과 그리고 그 고향에 가면 의례히 부려보는 자기의 허세(虛勢)에 생각이 미치자,
(몽땅 갖다 뿌려 줄까?)
호기(豪氣)에 가슴이 마구 뛰노는 것을 깨달았다.
(한 집에 삼십만 환씩은 차례가 간다?)
삼백 환도 큰돈인 그네들은 사뭇 미칠 것이다. 어머니가 얼마나 자랑스러워하실까. 작은 아들의 죽음으로 얻은 슬픔보다도 더 큰 감격과 기쁨에 몸을 부들부들 떨 것이 아니냐.
(상여를 메고 가는 사람들 양가슴에다 한 뭉치씩 안겨주자. 당신들도 이젠 가난하지 않다고 위로해 주며 모조리 앵겨 주자.)
개 짖는 소리도 이제는 들려오지 않았다. 손발이 얼어오고 있었다.
노송 세 그루 서 있는 강 언덕 서낭당에 피씨는 또 나와 빌고 있었다.
아들의 들것이 강기슭을 따라서 산모퉁이를 돌아간 지 한참 뒤에, 피씨는 혼자서 슬그머니 이곳에 나와 강 저편을 시름없이 바라보고 앉아 있었다.
피씨는 오늘 아침부터 한 번도 남에게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일부러 노력한 것도 아닌데 눈물의 샘은 말라 없어졌는지 두 눈이 보숭보숭한 채로 아들의 시신(屍身)을 산으로 보냈다. 상여도 못 태우고 들것에 실려 보냈다. 십 리나 되는 검바위 마을에서 꽃상여를 빌려는 왔지만 꽃상여 탈 주검이 아니라고 피씨가 고집해서 신서방네도 함께 들것에다 실려 보냈다. 그리하여 두 주검이 똑같이 들것을 탔다.
피씨의 그 고집을 마을 사람들은 어떻게 해석했는지 두말 않고 들것을 준비했던 것이다.
새로 준비한 것이 아니라 강 저쪽에서 두 젊은이가 죽어 돌아올 때 타고 온 바로 그 들것이었던 것이다.
(기둥이 쓰러지면 집은 무너지게 마련.)
피씨는 아침부터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것은 예감이며 결심이었다.
그 예감은 맞아갔다. 며느리가 쓰러진 것이다.
정임은 남편의 시신이 들것에 담겨서 떠나자 통곡 끝에 사립문 안에서 졸도하고 말았다. 졸도하는 바람에 피를 쏟았다.
남편의 유복자도 아비 따라 승천한 것이다.
이제 남은 핏줄은 노파 피씨 자신뿐이었다.
서울에 큰 아들이 있긴 하지만 그 아들은 이 집 사람이 아니다. 이 가난한 마을의 사람도 아니다. 이 에미의 아들도 아니다. 죽은 애 형도 아니다. 그런 구지레한 혈연(血緣)이어서는 안 된다. 자랑스러운 큰 애는 이 집안사람일 수가 없는 것이다. 개천에서 용이 났기로 용의 고향이 개천일 수는 없는 것과 같다. 내 아들이 아니라 서낭님의 아들이다.
피씨는 큰 아들을 그렇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사무치게 보고 싶을 때도 체념할 수 있었다.
그 습성화한 체념으로 해서 오늘도 큰 아들이 혹시 돌아오기를 바라기는 했지만 사무치게 기다리지는 않았다.
주위는 유난히도 고요했다. 대안(對岸)에 보이는 미군 부대의 콘세트 주변으로 이따금 병사들이 오가는 게 까마득하게 보이고 먼지를 연기처럼 일구며 지나다니는 군용 차량의 경적 소리가 한가로이 들려오고 있을 뿐이다.
마을도 조용했다. 두 장정을 들것에다 실어 흙으로 보내고 난 마을이 저토록 조용하다니 더욱 기가 막혔다.
술렁대고 분격하고 통곡할 힘까지 없어졌단 말인가. 남정네들은 두 무덤을 파러 강 건너 덕망산으로 가고 마을에 남은 아낙네들은 모두 살아가는 자기네 꼬라지에 맥이 빠져 있는 성싶다.
노파 피씨는 이제 며느리도 죽을 것이라고 거의 단정을 하고 있었다.
피씨는 자기도 젊었을 시절에 한 번 유산(流産)을 해보았지만 아까 며느리의 그것처럼 그토록 많은 피를 쏟지는 않았다.
“피를 그렇게 많이 쏟구서야 지가……”
노파 피씨는 물 건너의 덕망산을 멀건이 건너다보다가 혼자 중얼댔다.
피씨는 버릇처럼 서낭에다가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았다.
노파 피씨는 한참 만에 눈을 뜨자 주위에서 돌 세 개를 주워서 수북히 쌓인 서낭돌 위에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정성껏 던졌다.
노파 피씨는 우연히도 마지막 던진 돌이 뜨그르르 굴러 떨어지는 것을 보자 억누르고 있었던 심화(心火)가 터졌다.
노파 피씨는 무엄한 생각이라 한편 겁이 나면서도 서낭님이고 나발이고 평생을 빌며 살았는데 영험(靈驗)을 보여준 게 무엇이냐고 입을 비쭉거렸다.
노파 피씨는 참나무 가지에마다 너저분하게 매달린 울긋불긋한 헝겊 오리들이 갑자기 지저분하게 보여 또 한 번 송구한 마음으로 합장을 했다.
그러나 이미 비틀린 노파 피씨의 마음은 서낭님의 영험을 비웃을 수 있었다. 그래 엉뚱하게 늙은 소나무에다 대고 어엿하게 푸념을 할 담력이 생긴다.
(네나 내나 늙음 죽어야 해! 사나운 꼴 보기 전에 죽어야 해!)
노파 피씨는 몸을 돌이켜 언덕 위에 우뚝 섰다.
노파 피씨는 피로하고 구지레한 눈으로 갈마을 저쪽 아래에 서북(西北)으로 뻗어나간 큰 한길을 무심히 내려다보았다.
노파 피씨는 머얼리 내려다보이는 그 큰 한길에다 정말 무심히 시선을 던져놓고 있다가 문뜩 아득하게 보이는 새까만 점(點) 하나를 발견하고 두 눈을 손바닥으로 비볐다.
노파는 유심히 바라보았다. 누군가가 갈마을을 향해 걸어오고 있음을 알아냈다. 검은 양복을 입은 사나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둔덕 맡 자갈밭과 모래사장을 터벅터벅 걸어오고 있는 사람은 혹시 면서기(面書記)가 아닌가 하고도 생각했다.
그러나 노파 피씨는 무엇인가 다급하게 서둘러야 하겠다는 생각에서 머리위에 옆으로 퍼져 있는 늙은 소나무의 가지를 쳐다보았다. 서낭당을 지키면서 영험도 없는 늙은 소나무라고 다시 한 번 입을 비쭉거렸다.
(이 가지가 좋군! 이왕이면……)
피씨는 속으로 그렇게 뇌까렸다. 그 늘어진 가지는 좀 더 비탈로 올라서면 손끝이 닿을 수 있었다.
바람이 휘익 불어와 비탈에 선 피씨의 치맛자락을 흩날렸다.
오정이 훨씬 겨운 시각이라 겨울 햇살이지만 두터웠다.
그러나 피씨의 아랫도리는 찬바람으로 썰렁했다. 속에 입은 것이 두텁지가 않아서 몸이 오싹하고 오무라지는 것 같다.
피씨는 다시 한 번 사면을 돌아다보았다.
얼어붙은 강을 바라보며 황토물이 용틀임을 하며 몰아치는 장마철의 임진강을 머리에 떠올렸다. 참나무와 갈대가 썰렁하게 바람줄을 타고 있는 대안의 덕망산 줄기를 바라보며 우거진 여름철의 푸르름을 상기했다.
아들이 죽은 미군 부대의 초소(哨所)에서 오랜 동안 피씨의 시선은 눈물을 머금은 채 머물러 있었다.
덕망산 상삼봉은 가깝게 보였다. 지금쯤은 아들의 시신이 흙속으로 들어갔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눈 속에 흙이 들어가면 어쩌나 하는 조바심에 주름투성이의 얼굴을 찌푸렸다.
(양지 바른 곳이라긴 하지만……)
피씨는 다시 갈마을 저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마을로 들어오는 까아만 사나이의 모습은 아까보다 훨씬 가까워졌다.
피씨는 서울의 덕환이가 저렇게 돌아오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눈물을 짰다.
(망할 녀석, 동생이 죽었다는 소식도 못 듣나!)
마을 사람들이 그에게 기별하겠다고 서두를 때 말린 것이 후회되었다. 사실은 아들의 주소를 분명히 알고 있지 못한 게 부끄러워서였다. 서울에 사람을 보내봐야 찾지도 못할 것을 헛고생시킬 필요가 없어서 말렸던 것이다.
지난여름인가 집을 큰 집으로 바꿨다는 말만 들었지 가 본 일이 없었다. 아들의 체면을 상하게 할까봐 가보고 싶어도 차일피일 참아왔었는데 이제는 그만인가 싶으니 또 눈이 구지레하게 젖어왔다.
피씨는 소나무 가지를 다시 한 번 쳐다보자 허리에 매었던 허리띠를 끌렀다. 무명으로 만든 굵은 허리띠는 남달리 길었다. 피씨는 그 허리띠로 올가미를 만들었다. 그 올가미를 소나무 가지로 치뜨려 한 쪽 끝을 걸쳤다. 비끄러맸다.
피씨는 후둘후둘 떨리는 다리가 비탈에서 미끄러지는 바람에 엉덩방아를 찧자, 갈마을 저 아래에다 또 시선을 주었다.
큰 한길에서 들어온 검은 그림자의 사나이는 점점 마을 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피씨는 그 사나이가 어쩌면 마을을 지나쳐 미군 부대로 가는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다.
노파 피씨는 다시 일어나자마자 망설여지는 마음에 채찍질을 했다.
(굶어 죽기보다……)
노파 피씨의 두 눈에는 핏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까부러져 움푹 패었던 눈언저리가 두드러지게 솟아났다.
노파 피씨의 두 다리는 후들후들 떨렸다. 오히려 선하게 보이던 뻐드렁니의 틀이 흉하게 일그러져갔다.
노파 피씨는 눈을 휘둥그렇게 벌리고 올가미를 찾았다. 그리고 목을 길게 뽑아 올가미 속에다 끼울 순간에는 한껏 발돋움을 했었기 때문에 한 쪽 발이 언덕에서 찌익 미끄러졌다.
피잉! 하게 켕기는 무명 허리띠는 튼튼했다. 소나무 가지가 휘청! 하고 흔들렸다. 바람이 일고 있는가 싶었다.
노파 피씨의 마른 황토가 묻은 광목 치맛자락이 파아란 공간에서 흩날렸다. 두 다리가 몇 번인가 허공을 차고 까실하게 쭈굴쭈굴한 두 손이 공간을 헤엄치다가 축 늘어질 때 매달린 몸이 핑그르 돌았다.
쉰아홉……노파 피씨는 그 순간에 아홉수를 원망했을까!
덕환은 갈마을 어귀에 이르자 쌍갈래길 저쪽에서 다급한 걸음으로 역시 마을을 향해 들어오는 한 사나이와 마주쳤다.
“이거 덕환형님 아니슈?”
저쪽에서 먼저 말을 걸어오는 바람에 덕환은 발길을 멈췄다.
“나 복만이에요. 서울 덕환형님 아니슈?”
“어, 잘 있었어? 복만이.”
복만이는 덕환이와 함께 자라난 이 갈마을 토박이의 젊은이인 것이다.
“어떻게 알구 오셨죠. 신문 보시구 아셨겠죠?”
“오늘이 장사지?”
“벌서 산에 간 걸요. 덕수하고 신서방이 죽었어요. 신영태라구 강 건너 대추나무골에 살던 사람인데 아마 형님은 모르실 걸요?”
“그래 복만이두 그날 같이 나무들을 갔었나?”
“그럼요. 동네 젊은 축이 모조리 어울려서 갔었는데요. 하나 둘이 가면 더 위험하니까요. 억울하게 죽은 거예요.”
덕수는 몸도 재고 처음엔 뒤처지지도 않았는데 설마 어떠랴 하고 미군 보초한테로 갔다가 죽었다고 복만이는 묻지도 않는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취조를 받다 말고 뛴 게 죽을 운이에요. 그것두 신서방이 뛰는 바람에 덕수두 망설이다가 뛴 거죠. 옷을 홀랑 벗기우구 몸수색을 당하는데 같이 잡혀서 옆에 서 있던 신서방이 별안간 튀어 달아나니께 덕순들 날 잡아 잡수하고 붙잡혀 있을 수 있겠어요. 벌거벗은 채루 튀다가 총에 맞았죠. 신서방은 강 가운데서 맞구요.”
복만은 지서(支署)에 불리워 갔다가 오는 길이라 하면서
“땔나무가 나락보다두 더 귀한 데에서 살자니……”
억울한 죽음을 한 것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덕환은 그 말을 듣자 점잖게 입을 열었다.
“다 가난의 죄야. 내가 진작 보살펴 줬어야 하는 걸, 내 일이 바빠서 무심했다가 그런 일을 당했단 말야.”
덕환이도 한숨을 뽑았다.
“이제 노인네나 서울루 모셔 가시죠. 동네서는 모두 그렇게 하실 걸루 알구 있는데.”
덕환은 복만이의 말에 적잖이 당황했으나 태연하게 입을 열었다.
“전부터두 모셔가려구는 했지. 허지만 고집이 세셔서. 시골 사람은 시골서 고생하며 살아야 한다는 거야. 고생을 면하면 죽는다나. 사람이란 모두 분복이 있어서 말이지.” 덕환은 껄껄거리고 공허한 웃음을 흘렸다.
덕환은 ‘새나라’ 담배갑을 꺼내 복만이에게 한 개 권한 다음 자기도 입에 물었다.
“이 갈마을이 아홉 가구(家口)인가?”
“열 가구죠.”
“복만이!”
“예?”
“어때? 한 집에 한 삼십만 환씩 노나주면 좀 살기가 나아질까? 뭣함 좀 나은 데루 옮기지. 동네를 몽땅 말이야.”
복만이는 길 가운데에 우뚝 서면서 얼빠진 사람처럼 이 서울에서 성공한 덕환이를 눈이 부시게 바라보았다.
“삼십만 환씩요?”
덕환은 놀라는 복만이를 본체만체하면서 한 마디 더했다.
“나두 이번 일만은 참을 수 없이 기분이 나쁘단 말야. 생각해 봐! 덕수가 미군 총알에 맞아 죽다니 말이 돼? 6·25때 덕수와 내가, 부상을 당해서 도망두 못 가는 미군들을 감춰주구 살려주구 한 일은 이 파주군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잖으냐 말야!”
“누가 아니래요. 그래서 동네서두 더 억울하다는 거죠. 은혜를 웬수로 갚았다구요.”
“산소가 어딘가?”
“덕망산이죠. 거기 갔다가 죽었으니까요. 그리고 신서방의 고향이 대추나무골이라 강 건너 덕망산에서는 대추나무골이 빠안히 보인다구 그 집에서 거기다가 묻어 달라는 거죠.”
복만은 신바람이 나서 설명하는 것이었다.
덕환은 어깨를 쭉 펴면서 말했다.
“평생을 가난에 찌들리는 이런 고장을 왜 떠나지 못하는지 몰라.”
그는 이 말 끝에 강뚝을 무심히 바라보다가 깜짝 놀랐다. 놀라며 소리쳤다.
“저기 소나무에 매달린 거 사람이 아닌가? 저 서낭에 말야!”
그 순간 복만이가 두말없이 후당탕 뛰기 시작하는 바람에 덕환도 몇 발자국 따라 뛰다가 다시 발길을 점잖게 떼어놓기 시작했다.
잠시, 되도록 의젓하게 걸음을 옮기고 있던 덕환은 갑자기 자기 자신을 의식하며 혼자 흐흥 하고 웃었다.
그는 이제 올 곳까지 다 온 것을 깨달았다. 막다른 골목에 왔다고 생각했다.
늙은 소나무 세 그루가 서 있는, 어렸을 때 놀던 강 언덕과, 이제는 건널 수 없는 강, 장벽처럼 앞에 가로놓인 임진강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면서 그는 다시 한 번 흐흥 하고 조소(嘲笑)를 흘렸다.
(저렇게 모두 죽어 가더라두 그네들은 이 갈마을을 떠나지는 않을 거다!)
덕환은 공상을 했다. 저 서낭직이 소나무에다 목을 매고 죽은 여인의 치마폭 밑에다가 지고 온 돈을 몽땅 뿌려놓고 갈마을 사람들한테 골고루 나누어 가지라고 선언한 다음 표연히 강 언덕을 등지는 자기 자신을 공상했다.
역시 갈마을을 등지는 사람은 자기 하나 뿐임을 역력히 보면서 그는 또 다른 생각을 했다.
(미스 최는 정말 유서를 쓸까? 나를 밀고(密告)하고 죽을까?)
역시 그는 흐흥 하고 뜻 모를 웃음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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