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작품(단편소설) 초대

이범선 작 오발탄 평설

SM사계 2012. 7. 30. 09:14

 

 

 

 

 

 

■ 이범선 작「誤發彈」

목표 잃은 현실 상황의 축도

단편소설 「오발탄」이 쓰일 당시의 시대적 상황은 너무도 참담했다. 6·25 전쟁의 상처가 미처 아물지 않은 상태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사회적 증상을 작가는 예리하게 보았고 리얼하게 그려냈다.

이 소설에는 극심한 생활고로 아픈 이도 뺄 수 없어 참으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계리사 사무실의 서기 송철호(宋哲浩)가 주인공으로 나온다. 그는 극심한 생활고 속에서도 양심을 지켜 성실하게 사는 것이 참된 삶이라고 믿는데 비하여, 그의 동생은 그런 양심 따위는 약한 자가 자기의 약함을 합리화시키기 위해서 고집하는 것이 아니냐고 맞선다. 그는 상이군인이 되어 돌아온 뒤 2년이 넘도록 취직도 못하고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것이었다.

돌아갈 수 없는 북녘의 고향을 그리다가 미쳐 버린 어머니와 임신하여 만삭이 된 아내, 극심한 가난으로 양공주가 된 누이동생이 한 가정의 구성원인데, 이것은 암담한 그 당시 우리 사회의 축도를 의미한다.

이처럼 절박한 상황 속에서 주인공 철호는 가야 할 길을 잃은 채 방황하게 되는데, 작가 이범선의 이와 같은 설정은 절망 속에서 정신적 지주를 잃고 방황하는 불행한 인간들에 대한 깊은 애정에서 나온 듯하다. 그는 버림받고 상처 입은 서민의 목소리로 부조리한 현실을 고발함으로써 앓고 있는 사회의 그 아픔의 연유를 캐고자 했던 것이다.

38선이 이해되지 않는 어머니

계리사 사무실의 서기로 있는 송철호는 퇴근 무렵 대야에 물을 붓고 두 손을 담그면서부터 상상을 시작한다. 펜대에 시달린 손가락 사이에서 풀어져 나오는 잉크를 피라고 생각하는가 하면, 자기를 원시인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이 원시인이 식구들을 위하여 온종일 헤매었으나 멧돼지와 노루는 고사하고 토끼도 못 잡았다는 공상은 바로 자기의 무능, 즉 원시인처럼 무능해져 버린 한 지성인의 고뇌를 간접적인 상징으로 토로한다.

그가 귀가했을 때 어머니는 “가자! 가자!”하고 신음처럼 부르짖고 있었다. 죽어가면서도 고향으로 다시 돌아가자는 것이었다. 이것은 현실성이 없는 일이지만, 본인으로서는 절실한 소원이다.

그 다음에 만난 것은 다섯 살 난 딸애였다. 아버지를 만난 딸애의 천진난만한 목소리가 실내의 분위기를 더욱 슬프게 한다.

“아버지.”

철호는 누가 꼭대기를 쿡 쥐어박기나 한 것처럼 흠칠했다. 바로 옆에 다섯 살 난 딸애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철호를 쳐다보고 있었다. 철호는 어린것에게로 얼굴을 돌렸다. 웃어 보이려는 철호의 얼굴이 도리어 흉하게 이지러졌다.

“나아, 삼촌이 나이롱 치마 사준댔다.”

“응.”

“그리구 구두두 사준댔다.”

“응.”

“그러면 나 엄마하고 화신 구경 간다.”

“……”

철호는 그저 어린것의 노랗게 뜬 얼굴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철호의 헌 샤쓰 허리통을 잘라서 위에 끈을 꿰어 ‘스커트’로 입은 딸애는 짝짝이 양말 목달에다 어디서 주운 것인지 가는 고무줄을 끼었다.

“가자! 가자!”

아랫방에서 또 어머니의 그 저주 같은 소리가 들려 왔다. 벌서 칠 년을 두고 들어와도 전연 모를 그 어떤 딴 사람의 목소리.

철호의 어머니가 가자고 외쳐대는 것은, 고향의 그 옛날로 돌아가자는 것을 의미한다. 철호의 어머니에게는 삼팔선이니, 자유라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 자기가 가고 싶은 고향으로 자기가 간다는데 누가 막느냐고 하면서 죽어도 고향으로 돌아가서 죽겠다는 것이었다.

고향에서는 큰 지주로서 풍족하게 살아오던 철호 어머니의 눈에는, 산등성이를 깎아내어 게딱지같은 판잣집을 다닥다닥 붙여 놓은 이 해방촌이 이름 그대로 해방촌(解放村)일 수는 없었다. 일제의 질곡으로부터 나라를 찾았다면서 집을 잃고 고향까지 잃어버려야 한다는 것은 정말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도 양심을 지키려는 형(철호)과 양심이고 윤리고 관습이고 법률이고 다 벗어던지고 나 보란 듯이 떵떵거리며 살아보겠다는 동생(영호)과의 대립적 성격을 통해서 작가는 사회의 부조리를 통박하고 있다.

가령 철호의 아우인 영호의 얘기 한 토막만 들어보아도 작가의 의도를 쉽게 이해하게 될 것이다.

“양심이란 가시?”

“네. 가시지요. 양심이란 손끝의 가십니다. 빼어 버리면 아무렇지도 않은데 공연히 그냥 두고 건드릴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는 거야요. 윤리요? 윤리. 그건 나이롱 빤쓰 같은 것이죠. 입으나마나 불알이 덜렁 비쳐 보이기는 매한가지죠. 관습이요? 그건 소녀의 머리 위에 달린 리본이라고나 할까요? 있으면 예쁠 수도 있어요. 그러나 없대서 뭐 별일도 없어요. 법률? 그건 마치 허수아비 같은 것입니다. 허수아비. 덜 굳은 바가지에다 되는 대로 눈과 코를, 그리고 수염만 크게 그린 허수아비. 누더기를 걸치고 팔을 쩍 벌리고 서 있는 허수아비. 참새들을 향해서는 그것이 제법 공갈이 되지요. 그러나 까마귀쯤만 돼도 벌써 무서워하지 않아요. 아니 무서워하기는커녕 그놈의 상투 끝에 턱 올라앉아서 석은 흙을 쑤시던 더러운 주둥이를 쓱쓱 문질러도 별일 없거든요. 흥.”

여기에 대해서 철호는 아우의 억설을 지적하면서 그의 마음 한 구석 어딘가에 뒤틀려서 나오는 억지라고 대꾸하자 영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글쎄요. 마음이 비틀렸다고요. 그건 아마 사실일는지 모르겠어요. 분명히 비틀렸어요. 그런데 그 비틀리기가 너무 늦었어요. 어머니가 저렇게 미치기 전에 비틀렸어야 했지요. 한강 철교를 폭파하기 전에 말입니다. 하나밖에 없는 누이동생 명숙이가 양공주가 되기 전에 비틀렸어야 했어요. 환도령(還都令)이 내리기 전에. 하다못해 동대문 시장에 자리라도 한 자리 비었을 때 말입니다. 그러구 이놈의 배때기에 지금도 무슨 내장이기나 한 것처럼 박혀 있는 파편이 터지기 전에 말입니다. 아니 그보다도 더 전에, 제가 뭐, 무슨 애국자나처럼 남들은 다 기피하는 군대에 어머니의 원수를 갚겠노라고 자원하던 그 전에 말입니다.”

“……”

“……그보다도 더 전에 썩 전에 비틀렸어야 했을지 모르죠. 나면서부터 비틀렸더라면 더 좋았을지도 모르죠.”

영호는 푹 고개를 떨구었다.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 한숨이 후르르 떨고 있다. 철호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웃목에 앉아 있던 철호의 아내가 방바닥에 떨어진 눈물을 손끝으로 장난처럼 문지르고 있었다.

목표를 잃은 현실 상황의 압축

날마다 간헐적으로 “가자!” 소리를 지르는 어머니, 자리를 잡지 못하고 방황하는 아우, 만삭이 된 몸으로 누워 있는 아내, 그리고 양공주가 되어 버린 누이동생 등으로 인하여 철호의 마음은 걷잡을 수 없이 쓰리고 아팠다.

지금 만삭이 된 몸인 데에도 먹을 것을 제대로 먹지 못하는 철호의 아내는 E여대 출신으로 예쁘고 꿈 많던 여성이었다. 이 처절한 상황은 철호를 몹시 괴롭혔는데, 특히 누이동생을 발견했을 때의 정경을 작가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철호가 탄 전차가 을지로 입구 십자거리에 머물러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손잡이를 붙들고 창을 향해 서있던 철호는 무심코 밖을 내다보았다. 전차 바로 옆에 미군 찦차가 한 대 와 섰다. 순간 철호는 확 낯이 달아올랐다.

핸들을 쥔 바로 옆자리에 색안경을 쓴 한국 여자가 앉아 있었다. 그것이 바로 명숙이었던 것이다. 바로 철호의 턱 밑에서였다. 역시 신호를 기다리는 그 찦차 속에서 미군이 한 손을 핸들에 걸치고 또 한 팔로는 명숙의 허리를 넌지시 끌어안는 것이었다. 미군이 명숙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뭐라고 수작을 걸었다. 명숙은 다리를 겹치고 앉은 채 앞을 바라보는 자세 그대로 고개를 까닥거렸다. 그 미군 찦차 저편에 와 선 택시 조수가 명숙이와 미군을 쳐다보며 피시시 웃었다. 전차 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철호 바로 옆에 나란히 서 있던 청년 둘이 쑥떡거렸다.

“그래도 멋은 부렸네.”

“멋? 그래 색안경을 썼으니 말이지?”

“장사치곤 고급이지 밑천 없이.”

“저것도 시집을 갈까?”

“흥.”

철호는 손잡이를 놓았다. 그리고 반대편 가운데 문께로 가서 돌아서고 말았다. 그것은 분명히 슬픈 감정만은 아니었다. 뭐라고 말할 수 없는 숯덩어리 같은 것이 꽉 목구멍을 치밀었다.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 같았다.

언젠가는 누이동생 명숙이 경찰서에 걸려들어 철호가 불려갔었는데, 이번에는 남동생 영호가 걸려들어 또 불려가게 되었다. 영호를 만나보고 철호가 돌아왔을 때 아내는 병원에서 죽어 있었다. 병원을 나온 철호는 꺼려하는 치과 의사에게 우격다짐으로 자신의 양쪽 어금니를 빼어 버리고 택시를 탔는데 “어디로 가시죠?” 하고 묻는 운전수의 말해 ‘해방촌’이라 했다가 “아니야. S병원으로 가.” 했다가 “아니야. X경찰서로 가.” 하는 것이었다.

차가 네거리 앞을 지나고 있었으나 철호는 자꾸 가자고만 하는 것이었다. 어차피 가기는 가야 하는데 일정한 목표 지점을 잃은 현실 상황을 압축해서 그려 놓은 이 작품은 시대상황의 단면인 동시에 축도라 할 수 있다.

이 소설의 클라이맥스는 아내의 죽음부터이다. 방황하는 택시 속에서의 마지막 장면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어쩌다 오발탄(誤發彈)같은 손님이 걸렸어. 자기 갈 곳도 모르게.”

운전수는 기아를 넣으며 중얼거렸다. 철호는 까무룩히 잠이 들어가는 것 같은 속에서 운전수가 중얼거리는 소리를 멀리 듣고 있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혼자 생각하는 것이었다.

─ 아들 구실. 남편 구실. 애비 구실. 형 구실. 오빠 구실. 또 계리사 사무실 서기 구실. 해야 할 구실이 너무 많구나. 너무 많구나. 그래 난 네 말대로 아마도 조물주의 오발탄인지도 모른다. 정말 갈 곳을 알 수가 없다. 그런데 지금 나는 어디건 가야 한다.─

철호는 점점 더 졸려왔다. 다리가 저린 것처럼 머리의 감각이 차츰 없어져 갔다.

“가자!”

철호는 또 한 번 귓가에 어머니의 소리를 들었다고 생각하며 푹 모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차가 네거리에 다다랐다. 앞에 교통신호대에 빨간불이 켜졌다. 차가 섰다. 또 한 번 조수애가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어디로 가시죠?”

그러나 머리를 앞으로 푹 수그린 철호는 아무 대답도 없었다. 따르릉 벨이 울렸다. 긴 자동차의 행렬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철호가 탄 차도 목적지를 모르는 대로 행렬에 끼어서 움직이는 수밖에 없었다. 철호의 입에서 흘러내린 선지피가 흥건히 그의 와이셔츠 가슴을 적시고 있는 것은 아무도 모르는 채 교통신호대의 파란불 밑으로 차는 네거리를 지나갔다.

원초적인 인간상을 부각

이 작품은 동족상잔이라고 하는 6·25의 전쟁을 겪은 후 처참한 사회적 현실에서 야기되는 부조리를 등장인물의 대화를 통해서 통렬히 비판하는 동시에 인간이 지닌 바의 본래적인 양심(여기에서는 작가적 양심이라 해도 무방함)을 지키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 인간 본연의 의지는 마치 굴광성(屈光性) 식물처럼 극심한 환경 가운데에서도 단념하지 않고 끈질기게 추구하는데, 이러한 의지는 다음과 같은 예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즉, 아내의 입원비가 없어 쩔쩔매는 오빠(철호)에게 돈을 주는 누이동생의 구멍 뚫린 나일론 양말이 바로 그것이다. 양공주 생활을 하던 누이동생을 철호는 어떻게 보고 있는지, 우리는 여기에서 작가의 시선을 놓쳐서는 안 된다.

“옛수.”

백 환짜리 한 다발이 철호 앞 방바닥에 던져졌다. 명숙은 다시 돌아서서 빽을 챙기고 있었다. 철호는 명숙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철호의 눈이 명숙의 발뒤축에 머물렀다. 나일론 양말이 계란만치 구멍이 뚫렸다. 뒤축에서 어떤 깨끗함을 느끼고 있었다. 오래간만에 참으로 오래간만에 철호는 명숙에 대한 오빠로서의 애정을 느꼈다.

이것이다. 이 작가의 기본자세는 바로 이것이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인간의 기본적인 자세만은 흐트러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이 작품은 웅변하고 있다. 어머니가 “가자!”고 하는 것은 절실한 우리 겨레의 바램이요, 갈 곳을 알 수 없다는 것은 암담한 시대상황의 혼돈이다. 그러면서도 어쩔 수 없이 가고 있는 현실이요, 교통신호대의 파란불 (질서) 밑의 그 현실을 피흘리며 가고 있는 자기 자신이라는 자각이 이 소설의 주제라 할 수 있다.

학촌 이범선은 일찍부터 크리스천으로서 경건한 자세로 작품을 써왔는데, ‘조물주의 오발탄’이라고 한 주인공 철호의 독백이 기독교인들의 귀에 거슬렸던지 본의 아니게 기독교 계통의 학교를 그만두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 작품이 영화화된 것은 기쁜 일이지만 작품으로 인해서 실직하게 된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는 서민층에 대해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서민의 목소리로서 우리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끈질기게 추구했다.

전쟁의 체험 속에서 성장한 그는 이데올로기 문제나 종교 문제 등 어떤 문제를 다루든 결국 원초적인 인간상을 부각하는 데에 관심을 기울였다.

이범선 문학은 인간에 대한 따뜻한 사랑과 그 옹호라 할 수 있다. 그는 인간성을 저해하는 요인에 대해 용납하지 않는 치열성을 보여 주었다. 그는 무엇보다도 전쟁과 사회적 비리와 타성화된 일상적 삶을 증오하였다.

이러한 비판정신의 치열성에서 우리는 그의 뜨거운 애정을 가슴으로 느끼게 되고, 영원한 감동으로 오래오래 간직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誤發彈」으로 東仁文學賞을

소설가 이범선은 1920년 평남 신안주 운학리에서 태어났다. 그의 호는 학촌(鶴村), 38년에 진남포 공립상공학교를 졸업한 후, 49년엔 동국대 국문과를 졸업했는데, 6·25 동란 때는 거제도 장승포에서 거제고등학교 교사로 3년간 교편을 잡은 일이 있다.

그는 1955년 『현대문학』지에 단편소설 「암표(暗標)」와 「일요일」이 추천되어 문단에 데뷔, 그 해에 상경하여 한국외국어대학 교무주임을 거쳐 대광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했다.

또한 1958년에는 처녀 창작집 『학마을 사람들』을 출간, 제4회 현대문학 신인상을 수상했다. 초기의 작품에서는 주로 깨끗하고 고고(孤高)하고 소극적인 인물들이 등장했으나 점차 사회와 현실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보여 주었다.

이범선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단편 「오발탄」은 1959년 10월 『현대문학』지 58호에 발표한 작품인데, 「냉혈동물」 「환상」 등 다른 작품과 함께 제2창작집 『오발탄』을 출간했다.

그는 1961년 제1회 오월문예상을 수상하면서 더 한층 문단의 각광을 받게 되었다. 그 해에 단편 「분수령」 등을 발표하여 63년에는 창작집 『피해자』를 출간했다.

직장을 외국어대학 교무과에서 대광고교로, 숙명여고, 휘문고교, 그리고 다시 외국어대 교수로 빈틈없는 생활을 영위하면서도 작품은 계속되어 70년에는 단편 「청대문집 개」라는 문제작을 써서 제5회 월탄문학상을 받은 바 있다.

학촌 이범선은 1982년 3월 13일 새벽 답십리동 자택에서 서거하기까지 진솔하고 성실한 생을 살아오면서 주옥같은 작품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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