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우휘 작「불 꽃」
민족 정신의 에너지
선우휘의 단편소설 「불꽃」은 제2회 동인문학상 수상작으로 그의 이름을 유명하게 만든 초기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의 시간적 거리는 3·1운동부터 6·25 동란까지의 30년 동안에 걸친 역사적 격동기에 해당된다.
이 소설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고 현(高賢)은 만세 시위에 앞장섰던 젊은이의 유복자로 태어나 할아버지와 어머니의 손에 자라게 되는데, 이 할아버지는 아버지와 정반대로 현실에 대해 무관심할 뿐만 아니라 그런 종류의 관심에 대해서도 오히려 비판적인 인물이다.
현이 소년시절에 할아버지의 혹을 조롱하는 아이들과 싸워 피투성이가 되어 가지고 돌아왔을 때, 그는 칭찬을 기대했으나 오히려 심한 야단을 맞는다. 이렇게 해서 그는 소심하고 방관적인 사고방식을 갖게 된다.
현은 어머니의 권유로 대학에 가고 학병으로 끌려갔다가 결국은 탈주하여 광복된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고, 새로운 현실을 보게 된다. 그것은 바로 공산당의 인민재판이었다. 여기에서 고 현은 마침내 지금까지의 수동적인 자세를 버리고 능동적인 의지를 행동으로 나타내게 되는데, 이 작품의 이러한 결말이 이 작가로 하여금 50년대의 문학에 있어서 참여 작가의 대표로 부각시켰던 것이다.
이 소설 「불꽃」은 2부로 나누어져 있는데, 그 제1부의 첫머리와 제2부의 첫머리가 같은 장소로 나온다. 즉, 부엉산 산마루에 위치한 동굴 앞에서 앉아 있는 고 현이 지난날을 회상하는 게 제1부이고, 고 현을 잡으려는 지방 빨갱이 연호에 끌려 올라오던 고 노인이 “현아! 너는 살아야 한다!”고 외치다가 총에 맞아 죽게 되는 게 제2부이다.
이와 같이 이 소설은 공간적으로나 시간적으로 회귀성을 띠고 있다. 즉, 고 현이 동굴에 와 있는 현재의 현실에서 과거의 회상으로 펼쳐졌다가 다시금 동굴 주변에서 전개되는 현재의 현실로 정리되고 있다.
며느리와 시아버지
이 소설의 이야기 줄거리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역시 산과 산으로 이어간 산줄기와 그 아래 골짜기가 내려다보이는 부엉산 산마루의 동굴로 기어오른 고 현이 소총의 손질을 끝내고 지난 과거를 회상하기 시작한다.
고 현이 숨어든 이 동굴 안에서 바로 고 현의 부친이 31년 전에 24세의 젊은 나이로 생애를 끝마쳤던 것이다. 고 현의 아버지는 1919년 3월 상순 어느 날, 교인들과 함께 거리에서 만세를 부르다가 일본인 순경의 총에 맞은 다리를 간신히 끌며 친구 두 명의 부축으로 이곳 부엉산 산마루 동굴 속에 몸을 감췄으나 출혈이 심해서 결국은 죽게 되었던 것이었다.
살아남은 두 명은 이 동굴까지 뻗친 일본경찰의 손에 잡혀가고 고 현의 아버지의 시체는 그의 할아버지인 싸전 주인에게 인도되어 공동묘지에 묻혔다.
그런데 싸전 주인은 죽은 아들을 가엾다기보다는 증오했다. “이것은 내 아들이 아니오.”하고 냉정히 딱 자른 그의 한 마디는 일본 경찰이 입회한 탓만은 아니었다. 애비를 두고 죽은 자식은 자식이 아니라 요물이라는 것이었다.
스무 살에 과부가 된 며느리는 본가에 돌아가 아홉 달 만에 아들을 낳았는데, 이름을 현이라고 불렀다. 한 달 후 어린 것을 안고 시집을 찾아간 며느리는 시아버지가 석 달 전에 맞았다는 젊은 여인에게 인사를 드려야 했다.
싸전 주인은 며느리더러 손자를 두고 본가로 돌아가 때를 보아 개가를 하라고 일렀으나 며느리는 남편이 죽은 이곳에 머무를 결심이 되어 있었다. 시아버지의 분부를 거절한 현의 모친은 그 때부터 눈물과 피와 땀에 엉킨 30여 년의 인종(忍從)의 삶이 시작되었다.
고 노인은 아들이 죽은 다음해 가을 P고을에서 2백여 리 떨어진 곳에 모셨던 선친의 무덤을 파서 뼈를 옮겨다가 부엉산에서 건너다보이는 산허리 양지바른 곳에 이장했다. 선친의 묏자리 탓에 아들에게 화가 미친 것이라는 늙은 풍수장이의 얘기를 들으며 고 노인은 이제는 마음 든든하다는 듯이 굳게 어금니를 물었다.
다음해 겨울, 고 노인은 아들 영선을 보았고, 죽은 아들의 뼈를 옮겨다 선산발치에 묻었다. 아들이 죽은 책임의 절반은 며느리의 타고 난 팔자에 있다고 생각한 고 노인은 젊은 과부가 어느 때 어떻게 될 것인지 믿을 수 없다고 며느리에게 엄격했다.
현이 자라는 것을 보는 기쁨으로 살아가는 현의 모친은 고 노인의 눈을 꺼리며 일요일마다 교회에 찾아가는 것이었다. 그녀는 현에 대한 사랑과 남편에 대한 흠모, 그리고 하나님의 깊은 은혜로 살아가는 것이었다.
자학하는 달팽이 같은 인간성
현은 어느 일요일 할아버지의 혹을 두고 조롱하는 싸전 근처의 애들에게 맹렬히 대들어 얼굴에서 피를 내고 옷을 갈가리 찢긴 일이 있었다. 할아버지의 명예를 위해 싸운 자랑에서 현은 의젓이 할아버지에게 사연을 얘기하고 은근히 공명과 찬사를 기다렸으나 할아버지의 입에서 떨어진 것은 뜻밖에도 질책이었다.
“뭐? 혹 얘기? 그래! 그렇다고! 이런 꼬락서닐 하고 누구하고? 야 이 녀석아 웬 말썽이냐. 제발, 네 애비처럼!”
허둥지둥 가게를 달려나가는 할아버지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어린 현의 가슴에 예기치 않았던 불안이 밀려들었다. 할아버지에게 가해진 모멸, 분연히 일어선 행동의 동기, 용감했던 대결, 까닭 모를 할아버지의 심뇌와 분노─.
그것은 마치 주인에게 대드는 사람에게 덤벼들다 되려 주인의 몽둥이를 맞고 꼬리를 거두는 개에게 비길 수 있는 의혹과 환멸의 감정이었다. 그 후 현은 그러한 경우 말없이 발길을 돌렸다.
어머니와 함께 아버지의 무덤을 찾은 현이 할아버지에게 아버지의 얘길 들려달라고 했을 때 고 노인은 그가 예수를 믿었기 때문에 죽었다는 것이었다. 고 노인은 또한 “네 애비를 쏜 놈두 일본놈이 아닌 같은 조선종자 보조원 녀석이었느니라.”고 하면서, “사람은 순리대로 해야 하느니라. 나라 뺏긴 것이 좋을 리야 있으랴만 종자가 원래 제구실을 못하는 말총이니 말이다. 그리구 언제는 나라가 사람 살렸다든. 그저 세상 형편에 따라 제 주먹으로 제 일처리를 해야지. 믿을 것은 자기밖에 없느니라. 딴 녀석을 위해 손가락 하나 까닥거릴 것도 없고, 손톱만큼이라두 남의 도움을 바랄 것도 없이 제 몫으로 제 살림을 해야지.” 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이 말만 들어도 고 노인이 어떠한 사고방식을 지니고 있는가를 쉽게 알 수 있다. ‘엽전’이라는 말이 있지만, 식민지 시대를 거쳐 오는 동안에 자학적으로 굳어진 성격의 전형적인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계속된 피침성에서 자기보존의 본능으로 움츠리다가 껍질 속으로 숨어버린 달팽이의 비굴함을 연상케 한다.
현은 어머니의 부탁과 할아버지의 최소한의 출혈로 일본 유학을 하게 된다. 그는 다시금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는데, 징용을 피하기 위하여 어머니가 주는 얼마간의 돈을 가지고 해주(海州) 가까이서 어업조합장을 지내고 있는 외조부벌 되는 집으로 도망을 갔으나 일주일 후 형사들에게 붙잡히게 된다.
현은 집으로 돌아오자 자기가 붙잡힌 것은 유능한 일본 경찰의 조직망 탓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일경에 알려 버린 할아버지는 현의 도주가 다음해 중학에 들어가게 될 둘째아들 영선에게 미치는 영향을 두려워했던 것이다. 그러나 현은 할아버지를 원망하지 않았다. 자기 탓으로 어린 삼촌 영선에게 화를 미친다는 것은 현의 본의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현의 어머니는 현의 나이가 꼭 돌아간 남편의 나이와 일치하는 데에서 어떤 불길함을 느끼고 몸을 떨었다. 원죄의식과 박명의 검은 강박관념의 굴레 속에서 갈피를 못 잡고 극도의 고뇌에 사로잡힌 현의 모친은 자기에게 가해질 하나님의 형벌에서 그 아들을 제외해 달라고 애원했다.
모순과 비리의 현실을 거부
창씨한 탓으로 산(山)자가 붙어서 ‘다까야마(高山)’가 된 현은 일본 ‘나고야’ 부대에 입대되었고, 북부 중국에 파견되는 노병들 가운데 섞여 있었다. 황막한 중국 땅에 내려섰을 때 현은 틈을 타서 도주할 결심을 했다.
─구타, 학대, 잔인, 오만, 비굴, 허위의 범벅. 군대란 인간이 있을 데가 못 된다. 명분이 있다면 참기도 하겠지만 털끝만한 명분도 없다. 어째서 중국인을 죽여야 하는가─.
어스름 달밤, 현은 보초를 서다가 틈을 탔다. 덮어놓고 서쪽으로 달리면 된다는 막연한 계획이었다. 밤새도록 마른 잡초 사이를 걸었다.
이튿날 멀리 조그만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이르자 추위와 굶주림과 공포와 피로에 지친 그는 그대로 쓰러져 잠이 들었고, 다시 깨어나 마을 있는 편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마을 어구에서 이리로 가까이 오고 있는 것은 단발한 앳된 중국 소녀였다. 소녀의 출현은 현의 가슴에 말할 수 없는 그리움을 불어 넣었다.
현은 자기 이성이 흐려져 가는 것을 억제치 못했다. 벌떡 몸을 일으켰다. 어느덧 그 손에는 허리의 대검이 들려 있었다. 현은 얼빠진 사람모양 잠시 멍하니 있다가 이마의 땀을 씻으며 대검을 자루에 넣으려고 했다. 아직도 사라지지 않은 취한 듯한 하반신의 감각. 이 고깃덩이가─현은 그대로 칼날을 허벅다리에다 내리 찔렀다. 욱! 붉은 피가 군복바지를 통해서 쭈르르 흘러냈다. 몸에서 욕정의 불길이 일순에 걷어졌다. 현의 뇌리에 지난날의 한 가지 일이 번개같이 스쳐갔다.
─어머니의 다리에 새겨졌던 그 무수한 상흔. 무수했던 상흔─.
저녁에 현이 중국인 부락으로 내려가 한자(漢字)를 써가며 사유를 납득시키고 따뜻한 옥수수죽을 마실 때 걱정 어린 눈으로 싸매인 다리를 응시하고 있는 이 소녀의 영롱한 눈은 현에게 끝없는 기쁨과 안도를 주었다.
만주에서 헤매던 현은 9월 중순이 지나 고향 P고을로 돌아왔다. 그 동안 소련군이 진주한 만주에서 현이 목격하고, 느낀 것은 인간이란 개 이하가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고 노인의 경우 8·15는 쌀 공출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했다. 영선이 무사했고 현이 목숨을 건져 돌아온 것은 선친의 묘를 이장했던 탓이라고 풍수원리에 대한 믿음을 더욱 굳게 했다.
현은 교장의 간청으로 고을 여학교의 교원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교사를 증축하게 되었을 때 상서롭지 않은 한 가지 문제가 생겼다. 공사비를 둘러싸고 불미한 일이 생겼는데, 교장도 거기 한몫 끼어들었다는 것이다. 전투적인 교원 몇몇이 말썽을 일으키고 교장을 규탄한다는 불온한 공기가 떠돌고 있었다.
교장은 때마침 일어난 일부 학생들의 정치적 소동이 교장 배척을 한 가지 슬로건으로 걸고 나왔던 까닭에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들 교원에게 사건을 뒤집어씌우고 말았다. 세 명의 교원은 그날로 경찰에 구속되어 문초를 받게 되었고, 풀려나자 학교를 떠나고야 말았다. 그러한 분위기가 싫어진 현은 한 달도 못가서 사표를 내고 말았다.
인민재판은 살인이다!
이북으로 갔다던 연호가 P고을로 들어오자 현을 찾았다. 연호는 현에게 지금은 뛰쳐나와 일을 할 때라고 하지만 현은 근거 없는 미움이 들끓고 있는 때라고 일축한다. 공작의 임무를 맡고 고향에 파견되어 찾아온 그는 고을 사람들이 자기에게 부어지는 눈초리에 제법 흡족한 것을 느끼고 있었다. 승리자에게 보내는 존경과 경탄, 선망의 눈초리, 그렇지 않으면 가시 돋은 분노와 증오의 눈초리. 어떠한 눈초리든 간에 거기에는 어떤 반응의 표시가 있었으나 현의 눈만은 그렇지가 않았다.
두려움의 빛은커녕 무관심과 권태와 혐오가 뒤섞인 눈에 어딘지 연민과 동정의 빛조차 깃들이고 있었다. 연호는 겉잡을 수없는 공허를 증오의 불길로 메워갔다.
P고을 중앙 네거리에서 열린 인민재판, 연호는 그 자리에 현을 불렀다. 현에게 피를 보이고 그 반응을 보고자 한 것이다.
첫 번째 희생자, 국민회 회장이 언도를 받자 군중의 까닭 모를 아우성과 함께 집행자들의 손에 쥐어졌던 곤봉이 반백의 머리 위에 쏟아졌다. 어떠냐는 듯이 현을 뚫어질 듯이 쏘아보았으나 그의 얼굴에서 한 오리의 공포의 빛도 찾아낼 수 없었다.
두 번째의 희생자가 끌려나왔을 때 현이 흘린 땀은 땀이 아니라 전신의 현관에서 배어나오는 피였다. 희생자는 다름 아닌 동료 여교사인 조 선생의 부친이었다. 어울리지 않는 생활양식을 거부하고 남으로 내려온 것 외에 아무런 반항도 꾀하지 않은 무력한 늙은이에 지나지 않았다.
현은 연호를 쳐다보았다. 야릇한 눈동자와 입가에 띤 까닭 모를 웃음, 이것이 같이 자라난 친구의 얼굴이라니. 그 얼굴이 눈앞에서 확대되는 착각을 느끼자 현의 입에서 찢는 듯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살인이다!”
순간적으로 내어민 자기의 주먹에 쓰러지던 연호 앞에 버티고 섰던 보안서원의 소총을 나꿔채고 군중의 틈으로 빠져나갔던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한 마음의 충동은 무엇일까. 묵인하는 군중의 일원으로 그대로 늘이고 있을 수 없었던 마음의 줄, 그것은 바로 민족공동체적 얼로 이어진 줄이었다.
불발에 그친 삼십 년
이 소설의 제2부는 두 번째 클라이맥스로서 빛을 발하고 끝난다. 그것은 골짜기의 안개 속을 고 노인과 연호가 오르면서부터 시작된다. 소련제 때때권총을 들이미는 연호의 협박에 못 이겨 현을 부르는 고 노인은 말할 수 없는 그리움이 왈칵 가슴에서 솟아올랐다.
“현아, 현아, 네 어미도─.”
문득 고 노인은 오는 길에 들었던 현의 모친 생각을 했다.
고 노인과 연호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내 아들아, 내 아들아.”
나직이 아들을 부르며 두툼한 성경책을 소리를 내어 낭송하던 현의 모친, 그 절실하고 애타는 음성은 아직도 고 노인의 귀에 쟁쟁히 남아 있었다. 어쩌면 그 음성에 그처럼 범치 못할 위엄이 담겨 있었을까.
거기 서라고 뒤에서 날카로이 쏘아지는 연호의 목소리에 고 노인은 멈칫 그 자리에 섰다. 이제 자기의 생애는 이미 다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고 노인의 마음은 몇 갈래로 찢기고 엉켜서 사납게 뒤틀렸다. 고개를 돌려 선친의 묘가 있는 곳을 건너다보았다. 그리고 괴로움을 이기려는 듯이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 일순에 고 노인은 자기의 80생애를 돌아보았다. 얼마나 많은 고통과 굴욕을 참으며 핏줄을 잇기에 애를 썼던가.
또 한 번 쿵 하는 포소리. 저 포소리만 없었어도 고 노인은 현을 불러내는 데 다시 한 번 애를 썼을는지 몰랐다. 고 노인은 또 한 번 동굴을 올려 보았다. 저 동굴 안에서 아들이 죽었고, 지금 또 손자가 저 속에서 죽음의 위험에 직면해 있다. 고 노인은 눈길을 다시 선친의 산소로 돌렸다. 문득 이처럼 가혹한 숙명의 사슬에 엉키도록 자기는 조상의 뼈를 묻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골수에 젖은 풍수원리를 굳게 믿고 조상의 뼈를 메고 다닌 지난날의 공허. 그렇게 허탈해 가는 고 노인의 마음속에 차차 하나의 새로운 감정이 흘러들었다.
고 노인은 80평생에 처음 무엇에도 구애되지 않는 순수한 자기 자신의 의지를 결정했다. 여울 같은 감동이 고 노인의 전신을 흘렀다. 머리카락과 수염이 햇살을 받아 은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크게 숨을 들이모았다.
“현아! 너는 살아야 한다. 저 대폿소리를 듣거라. 어떻게든지 여길 도망해서─.”
순간 고 노인은 등을 꿰뚫는 불덩이를 느꼈다. 중심을 잃고 풀숲에 쓰러지는 고 노인은 총성의 메아리 속에 현의 절규를 들었다. 그리운 그 음성.
“할아버지!”
따각! 불발탄을 끄집어내고 다음 탄환을 밀어재운 현의 소총과 연호의 권총에서 동시에 불이 튀었다. 순간, 현은 왼편 어깨에 뜨거운 쇠갈구리의 관통을 느끼며 연호가 천천히 왼쪽으로 몸을 틀면서 숲속으로 굴러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발랄하고 선이 굵은 작가
작가 선우휘는 마지막 종결 부분에서 그가 추구하는 불꽃의 메시지를 이렇게 정리하고 있다.
첫 번째 탄환처럼 불발에 그친 삼십 년. 그것은 영(零). 산송장. 그렇다면 결국 살아본 일이 없지 아니한가. 현은 잃어져 가는 생명의 힘을 돋구어 이 공포의 감정에 반발했다.
─살아야겠다. 그리고 살았다는 증거를 보이고 다시 죽어야 한다.─
현은 기를 쓰는 반발의 감정 속에서 예기치 않은 새로운 힘이 움터 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 힘이 조금씩 조금씩 마음에 무게를 가하더니 전신에 어떤 충족감이 느껴지자 현은 가슴 속에서 갑자기 우직하고 깨뜨려지는 자기 껍질의 소리를 들었다. 조각을 내고 부숴지는 껍질. 그와 함께 거기서 무수한 불꽃이 튀는 듯했다.
이 소설은 이러한 결말로 끝이 나는데, 이 작가가 주장하는 중심사상, 소설의 주제는 껍질을 깨고 나와서 튀는 민족정신의 에너지라 할 수 있다. 그는 “불발에 그친 삼십 년. 그것은 영(零). 산송장.”이라고 표현했다. 그것은 살아본 게 아니라 죽음이었다고 강조한다.
고 노인의 현에 대한 그리움은 혈육의 정에 대한 그리움 말고도 잃어버렸던 민족정신에 대한 그리움이요, 진정한 삶에 대한 그리움이기도 하다. 이 소설이 감동을 주는 것은 형식 이전의 내용으로서, 우리들이 겪어왔던 수난을 통하여 은연중에 젖어 있던 민족공동체적 얼이 공감되기 때문이다.
소설가이면서 언론인이기도 한 선우휘 씨는 1922년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났다. 1943년에 경성사범 본과를 졸업한 후 한때는 초등학교 교원으로 있다가 해방이 되자 『조선일보』사회부 기자로 언론계에 투신하였다.
1948년엔 인천중학 교사로 있었는데, 이듬해 육군 소위로 입대하여 정훈 장교로 있다가 58년 육군 대령으로 예비역에 편입했다. 55년 우화적인 소품 「귀신」을 『신세계』에 발표함으로써 문단에 등장했으며, 57년 『문학예술』의 신인 특집에 「불꽃」이 당선되었고, 이 작품으로 제2회 동인문학상을 수상하게 되어 문단의 자리를 굳혔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해서 역사에 대한 한국인의 체념과 순응주의를 비판하고 인간의 행동적 의지를 강조함으로써 50년대의 전후(戰後)문단에 있어서 가장 발랄하고 선이 굵은 작가로 주목받은 일도 있다.
주로 행동주의적 경향의 작품을 써온 그는 예편 이후『한국일보』논설위원과 『조선일보』논설위원·편집국장 등을 역임하면서 많은 시사논평을 발표하고, 1986년 6월 12일 타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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