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근찬 작「受難二代」
민족적인 수난의 역사
하근찬(河瑾燦)의 소설 「수난이대(受難二代)」는 일제의 대동아 전쟁 때 징용으로 끌려갔다가 팔을 잃은 아버지가 6·25 전쟁에 참전했다가 다리를 잃은 자식을 마중 나가는 장면에서부터 시작된다.
(아들이 돌아온다. 아들 진수(鎭守)가 살아서 돌아온다. 아무개는 전사했다는 통지가 왔고, 아무개는 죽었는지 살았는지 통 소식이 없는데 우리 진수는 살아서 오늘 돌아오는 것이다.)
진수의 아버지 박만도(朴萬道)는 이런 생각을 하면 할수록 어깻바람이 날 일이었다. 아들을 마중 나가기에 신바람이 난 그는 고갯마루에서도 쉴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게 무슨 꼴이고!
박만도는 오른쪽 팔만을 앞뒤로 흔들어대면서 걷고 있었는데, 그의 왼쪽 팔은 조끼 주머니에 아무렇게나 쑤셔넣고 있었다. 삼대독자가 죽다니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한 그는 볼기짝이나 장딴지 같은 데를 총알이 약간 스쳐갔을 따름이겠지 하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용머리재를 넘는 만도는 읍 들머리에서 잠시 망설이다가 정거장 쪽과는 반대되는 쪽으로 걸음을 옮겨 장거리를 찾아가는 것이었다.
아들 진수에게 먹일 고등어를 달랑달랑 들고 정거장을 향해 가는데, 겨드랑 밑이 간질간질했으나 한 쪽밖에 없는 손에 고등어를 들었으니 참으로 딱했다. 그저 어깻죽지를 연신 위아래로 움직거리는 수밖에 없었다.
왜정 때 징용으로 끌려간 만도는 비행장을 닦는 게 일이었다. 하루는 심지에 불을 붙이고 굴문 밖으로 나가려다가 공습을 당하게 되어 다시 굴로 들어갔다가 다이나마이트가 터지는 바람에 팔 하나를 잃게 되었다.
박만도는 정거장에서 아들을 기다리면서 이러한 기억을 더듬고 있었는데, 기적을 울리며 기차가 들어왔고, 얼마 후 아들을 만나게 되었다.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만나는 장면을 잠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분명히 뒤에서,
“아부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만도는 깜짝 놀라며, 얼른 뒤를 돌아보았다. 그 순간 만도의 두 눈은 무섭도록 크게 떠지고 입은 짝 벌어졌다. 틀림없는 아들이었으나, 옛날과 같은 진수는 아니었다. 양쪽 겨드랑에 지팡이를 끼고 서 있는데 스쳐가는 바람결에 한 쪽 바짓가랑이가 펄럭거리는 것이 아닌가. 만도는 눈앞이 노래지는 것을 어쩌지 못했다. 한참 동안 거저 멍멍하기만 하다가 코허리가 찡해지면서 두 눈에 뜨거운 기운이 핑 도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여느 때처럼 코를 팽팽 풀어 던지지는 않았다.
“애라이 이놈아!”
만도의 입술에서 모지게 튀어 나온 첫마디였다. 떨리는 목소리였다. 고등어를 든 손이 불끈 주먹을 쥐고 있다.
“그게 무슨 꼴이고 이게.”
“아부지!”
“이놈아 이놈아─.”
만도의 들창코가 크게 벌름하다가 훌쩍 물코를 들이마셨다. 진수의 얼굴에는 어느 결에 눈물이 꾀죄죄하게 흘려 있었다. 만도는 진수의 잘못이기나 한 듯 험한 얼굴로,
“가자 어서.”
무뚝뚝한 한 마디를 던지고는 성큼성큼 앞장을 서 가는 것이었다. 진수는 입술에 내려와 묻는 짭짤한 것을 혀끝으로 날름 핥아 버리면서, 절름절름 아버지의 뒤를 따랐다.
불구가 된 아버지와 아들
앞장 서 가는 만도는 뒤따라오는 진수를 한 번도 돌아보지 않았다. 한눈을 파는 법도 없이 땅바닥을 응시하고 부지런히 걸어만 가는 아버지를 두 개의 목발에 몸을 의지한 채 걷는 진수로서는 당해낼 수가 없었다.
앞서 가는 아버지에 뒤처져 버린 진수는 목구멍으로 왈칵 넘어오려는 뜨거운 기운을 꾹 참느라고 어금니를 야물게 깨물어 보기도 하고 두 개의 목발과 한 개의 다리를 열심히 움직여대는 것이었다.
주막에 이르러서 주모가 따라주는 술 한 사발을 들이킨 박만도는 진수와 국수를 먹고 다시 걷기 시작하였다. 주막을 나선 그들 부자는 논두렁길을 걷게 되었는데 이번에는 아들 진수를 앞세우고 아버지 만도가 그 뒤를 따랐다.
목발을 짚고 찌궁둥 찌궁둥 앞서가는 아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팔뚝이 하나밖에 없는 아버지가 느릿느릿 따라가는 것이다. 손에 매달인 고등어가 달랑달랑 춤을 추었다.
“니 우야다가 그래 댔노?”
하고 묻는 아버지의 말에,
“전쟁하다 이래 안댓심니꼬, 수루탄 쪼가리에 맞았심더.”
하는 아들의 대답으로 시작된 부자간의 대화는 다음에 이르러서 눈시울을 뜨겁게 한다.
“차라리 아부지같이 팔이 하나 없는 편이 낫겠어 예, 다리가 없어노니 첫째 걸어 댕기기에 불편해서 똑 죽겠심더.”
“야야 안 그렇다, 걸어 댕기기만 하면 뭐 하노, 손을 지대로 놀려야 일이 뜻대로 되지.”
“그런가 예?”
“그렇다니, 그러니까 집에 앉아서 할 일은 니가 하고, 나댕기메 할 일은 내가 하고, 그라면 안대겠나, 그제?”
“예.”
진수는 아버지를 돌아보며 대답했다. 만도도 돌아보는 아들의 얼굴을 향해서 지그시 웃어주었다. 술을 마시고 나면 이내 오줌이 마려워지는 것이다. 만도는 길가에 아무 데나 쭈그리고 앉아서 고기 묶음을 입에 물려고 하였다.
그것을 본 진수는,
“아부지 그 고등어 이리 주소.”
하였다. 팔이 하나 밖에 없는 몸으로 물건을 손에 든 채 소변을 볼 수는 없는 것이다. 아버지가 용변을 마칠 때까지 진수는 저만큼 떨어져 서서 지팡이를 한 쪽 손에 모아쥐고 다른 손으로는 고등어를 들고 있었다. 볼 일을 다 본 만도는 얼른 가서 아들의 손에서 고등어를 다시 받아 들었다.
외나무다리와 고등어
개천뚝에 이르렀다. 외나무다리가 놓여 있는 시냇물인 것이다. 진수는 딱 걱정이 되었다. 물은 그렇게 깊은 것 같지 않지만 밑바닥이 모래흙이어서, 지팡이를 짚고 건너가기 만만할 것 같지 않기 때문이었다. 외나무다리 위로는 도저히 건너갈 재주가 없고……. 진수는 하는 수 없이 뚝에 퍼지고 앉아서 바짓가랑이를 걷어 올리기 시작했다. 만도는 잠시 멀뚱히 서서 아들의 하는 양을 내려다보고 있다가,
“진수야, 그만두고 자아 업자.”
하는 것이었다.
“업고 건너면 일이 다 대는 거 아니가, 자아 이거 받아라.”
고등어 묶음을 진수 앞으로 쑥 내밀었다.
“……”
진수는 퍽 난처해하면서 못이기는 듯이 그것을 받아들었다. 만도는 등허리를 아들 앞에 갖다대고 하나밖에 없는 팔을 뒤로 버쩍 내밀며,
“자아 어서!”
진수는 지팡이와 고등어를 각각 한 손에 쥐고 아버지의 등허리로 가서 슬그머니 업혔다. 만도는 팔뚝을 뒤로 돌려서 아들의 하나 뿐인 다리를 꼭 안았다.
“팔로 내 목을 감아야 될끼다.”
하는 것이었다. 진수는 무척 황송한 듯 한쪽 눈을 찍 감으면서 고등어와 지팡이를 든 두 팔로 아버지의 굵은 목줄기를 부둥켜안았다. 만도는 아랫배에 힘을 주며 끙―하고 일어났다. 아랫도리가 약간 후둘거렸으나 걸어갈만은 하였다. 외나무다리 위로 조심조심 발을 내디디며 만도는 속으로,
(인제 새파랗게 젊은 놈이 벌써 이게 무슨 꼴이고, 세상을 잘못 타고나서, 진수 니 신세도 참 똥이다, 똥.)
이런 소리를 주워 삼켰고, 아버지의 등에 업힌 진수는 미안스러운 얼굴을 하며,
(나꺼정 이렇게 되다니 아부지도 참 복도 더럽게 없지, 차라리 내가 죽어 버렸더라면 나았을낀데……)
하고 중얼거렸다.
만도는 아직 술기가 약간 있었으나 용케 몸을 가누며, 아들을 업고 외나무다리를 무사히 건너가는 것이었다. 눈앞에 우뚝 솟은 용머리재가 이 광경을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끈질긴 원초적 생명력
대동아 전쟁에서 팔 하나를 잃은 아버지 박만도와 6·25 전쟁에서 다리 하나를 잃은 아들 진수가 서로 만나 가지고 집으로 가는 과정에서 나타난 얘기가 이 소설의 줄거리다.
여기에는 일제 치하에 있어서의 대동아 전쟁과 북한 공산집단의 불법 남침에 의한 6·25 동란이라고 하는 두 차례의 수난에 휩쓸리는 2대의 뼈저린 아픔이 그려져 있다.
소설가 하근찬은 이 「수난이대」가 그의 작품 세계나 경향을 대표하는 작품이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6·25의 전쟁에 나가 다리 하나를 잃고 돌아오는 아들을 태평양 전쟁 때 팔 하나를 잃은 아버지가 마중을 나가 불구의 아버지가 불구의 아들을 업고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상황이 잘 그려져 있어서 그의 작품세계를 대표한다고 할 만하다.
‘미의식이 결여되어서는 안 되지만 역사나 현실을 보는 눈이 있어야 좋은 작품이 될 수 있다’는 소설관을 갖고 있는 이 작가는 신춘문예 당선 이후 한동안 6·25를 소재로 하되 시골 사람들의 피해담을 가지고 처음부터 주제를 설정해서 그 주제에 맞는 소설만을 써 나갔었다.
그가 8·15 이후 가장 순수한 작가라는 말을 듣게 된 것은 아무래도 전쟁의 피침성(被侵性)에 대한 연민의 정에 있는 것 같다. 그는 전쟁이라는 역사의 회오리바람 속에서 어쩔 수 없이 피해를 당하는 순박한 시골 사람들에 대해서 남다른 관심을 보였던 것이다.
농촌 출신의 시골 사람들에 대한 관심, 향토에 대한 애정이 간결하면서도 정곡을 찌르는 문장으로 표현되고 있기 때문에 그의 소설은 설득력이 있다.
이 「수난이대」라는 소설을 들고 나와 문단에 데뷔하게 된 신춘문예 때의 에피소드를 알아보면 남달리 당돌한 데가 있음을 알 수 있다.
하근찬은 결혼을 해야 할 처지가 되었는데도 생활이 너무도 어려워서 결혼비용이 없었다고 한다. 그는 어머니에게 그 해 신춘문예의 상금만큼만 빚을 얻도록 하였다고 한다. 그는 신춘문예에 응모해 놓고 결혼을 했는데, 다행스럽게도 당선이 되었던 것이다. 그가 신춘문예의 상금을 받아다가 고스란히 어머니 앞에 내놓으면서 빚을 갚으라고 하니까 어머니가 ‘관세음보살’ 하더라는 것이었다.
하근찬은 시골 사람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의 작품에는 관념적인 절망이나 허무가 없다. 시골 사람들은 끈질긴 원초적 생명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팔이나 다리가 잘려나가는 절망적 상황에서도 꿋꿋하게 살아나가는 것을 보여준다.
이 「수난이대」에서는 팔이 하나 없는 아버지와 다리 하나 없는 아들이 외나무다리를 건너가는데, 여기서 다리를 건너가느냐 다리에서 떨어지느냐가 문제가 된다.
불구인 부자(父子)가 다리에서 떨어지게 했더라면 더 재미있고 극적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의견에 대해서 이 작가는 고난 속에서도 그것을 딛고 극복해 나아가는 그런 강인함을 바탕으로 삼았기 때문에 그들 불구의 아버지와 아들로 하여금 아슬아슬한 외나무다리를 무사히 건너가게 했다고 한다.
그는 우리 민족의 역사가 바로 외나무다리를 건너가는 것 같은 게 아닌가 해서 상징적으로 그려보았다고 말하고 있다.
애라이 이놈아!
이 소설에는 잠세어(潛勢語)가 스며있는 게 보인다. 가령 불구의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만날 때의 그 짧은 언어 같은 것은 미루어 짐작케 하는 잠세어가 풍부히 스며 있다고 하겠다.
‘잠세어’라고 하는 것은 표현되어 있는 그 언어 자체가 아니라 나타난 언어가 은연중에 데리고 있는 언어, 보이지 않는 이면에서 스며있는 언어를 말한다.
가령 “아부지!” 하는 아들의 말에 “에라이 이놈아!” 했다거나, “이놈아 이놈아!” 하고 소리친 아버지의 목소리 그 뒤에는, 말을 다하지 않아도 하고 싶은 많은 얘기가 스며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심리적 의식 상태는 결말 부분에 가서 넌지시 삐져나와있다. 그것은 외나무다리 위로 조심조심 발을 내디디며 속으로 뇌이는 아버지의 목소리나, 아버지의 등에 업힌 채 속으로 중얼거리는 아들의 목소리, 바로 그것이다.
(인제 새파랗게 젊은 놈이 벌써 이게 무슨 꼴이고, 세상을 잘못 타고나서 진수 니 신세도 참 똥이다, 똥.)
(나꺼정 이렇게 되다니 아부지도 참 복도 더럽게 없지, 차라리 내가 죽어 버렸더라면 나았을낀데…….)
역사적 피침성과 현실
소설가 하근찬은 1931년 경북 영천에서 출생하여 전주 사범학교를 졸업한 후 수년간 초등학교 교원생활을 했다. 그는 부산 동아대학에서 수학 중 군에 입대했는데, 제대 후엔 수년간 기자 생활을 한 일도 있다. 그는 1957년 단편소설 「수난이대」가 『한국일보』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문단에 데뷔했다.
그의 작품세계는 처음에는 농촌을 소재로 하여 형성되었는데, 그의 작품에 나타난 농촌은 폐쇄된 자연으로서의 농촌이 아니라 한국의 역사적 상황에 연관된 현실이라는 점에서 그 중요성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소설에 있어서의 관념적 난삽성을 적지 않게 유행시켰던 1950년대 후반에 가난하고 무지한 시골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고 나와 그 생활의 절실한 인정과 역사적 수난의 아픔을 이기고 일어서는 삶에의 강한 집념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창작의 당연하고도 새로운 본령(本領)을 일깨웠다고 할 수 있겠다. 이러한 요소들이 잘 응축되어 있는 작품이 바로 「수난이대」이다.
불구의 아버지가 역시 불구의 아들을 등에 업고 외나무다리를 건너 집으로 돌아오는 이야기는 진실에 넘치는 인간 정신으로서 독자에게 큰 감명을 주게 된다.
이 소설이 독자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불구의 아들을 바라보는 불구의 아버지의 슬픔이 순실하면서도 과묵한 성격으로 소박하게 그려져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데올로기가 무엇인지조차도 모르는 시골 사람이 이질적인 이데올로기에 의해 초래된 비운의 역사에 휘말려 고난을 치러야 하는 그 어처구니없는 상처가 우리들의 아픔으로 느껴져 오는 것은, 그 수난의 역사가 일부의 개인이나 가정사에 국한되지 않고 우리 민족 전체가 겪었던 민족사적 수난이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불구가 되어 돌아온 아들의 모습을 보고 슬픔을 인내하던 아버지가 돌아가는 길에 주막에서 술을 들이키고는 아들과 함께 국수를 먹은 다음 일어서는 장면에서 우리는 순수하게 느껴져 오는 부성애(父性愛)와 함께 시골 사람의 소박함을 친근하게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 결말 부분에 외나무다리를 무사히 건너게 되는데, 우리는 이런 광경에서 우리 겨레의 굽힘 없는 의지를 엿보게 된다. 이러한 결말 부분의 의지적인 처리에서 우리는 이 작가가 얼마나 건전하면서도 의지적인 작가인가를 알 수 있게 된다. 개인의 아픔을 통해서 민족의 아픔을 확인하는 그 현미경과 망원경의 눈, 이게 이 작가의 역사와 현실을 보는 눈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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