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작품(단편소설) 초대

윤흥길 작 장마 평설

SM사계 2012. 7. 30. 09:44

 

 

 

 

 

■ 윤흥길 작「장 마」

토속적 샤머니즘의 미학

윤흥길(尹興吉)의 대표작으로 알려진 「장마」는 6·25로 인한 갈등과 비극, 그리고 화해의 과정이 한 집안에서 집약적으로 잘 나타나 있는 작품이다. 그리하여 이 소설은 우리나라의 뛰어난 문학작품의 하나로 평가되고 있다.

중편소설로 이루어진 이 작품은 두 사돈 집안이 같이 모여 동란을 겪으면서 나타나는 갈등에서 시발된다. 두 집안의 어른은 늙은 어머니들이고, 그 어머니들은 저마다 잘났다고 생각되는 젊은 아들을 갖고 있다. 공교롭게도 이 두 청년은 기질과 사상이 판이하게 달라서 보다 감정적인 한 청년은 빨치산이 되고 이지적인 청년은 국군 장교가 된다. 국군 장교는 전사하고, 빨치산은 종적을 감추게 된다. 그러한 가운데 두 노인은 자연히 충돌한다.

그러나 이것은 사상적인 대립이 아니다. 이것은 흔히 있을 수 있는 감정의 대립니다. 그러니만큼 그것은 어느 계기에는 쉽게 해소될 수도 있는 성질의 것이다. 결국 자기 자식을 잃은 그 괴로운 체험에서 상대방의 슬픔을 동정하는 순간부터 두 노인은 화해하게 된다.

이러한 갈등과 화해의 양상을 이 작가는 초등학교 3학년인 소년의 눈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가령 소년의 외삼촌은 국군 장교로 출전했다가 전사하고 친삼촌은 빨치산으로 입산한 집안에서, 친할머니와 외할머니가 함께 살면서 어쩔 수 없는 갈등을 벌이고, 어처구니없게도 ‘나(소년)는 수사관의 초콜릿 유혹에 넘어가 친삼촌이 하산했던 일을 고자질하는 따위의 비극을 들 수 있다.

이 작품의 클라이맥스는 오랜 장마가 잠시 갠 날에 찾아온다. 아이들의 돌팔매에 쫓긴 한 마리 구렁이가 느닷없이 마당으로 들어와서 마당가의 감나무로 올라간다. 그 시간은, 할머니가 아들이 돌아오리라고 철석같이 믿고 기다려온, 바로 그 ‘아무날 아무시’였다.

빨치산이 된 아들 대신에 구렁이가 6·25가 빚어낸 저주의 실체로서 때맞추어 등장하는 것이었다. 이 구렁이의 등장이 끝내 두 할머니의 화해를 이끌어내게 되는 결말은, 역사적 시각으로서 대단히 의미 있는 상징이 되고 있다.

두 사돈 집안의 갈등

6·25가 일어난 그 이듬해 여름으로 설정된 이 소설의 서두는, 밭에서 완두를 거두어들이고 난 바로 그 이튿날부터 장맛비가 계속 내리는 풍경묘사로 시작된다.

비는 칠흑의 밤을 온통 물걸레처럼 질펀히 적시고 있었고, 난리 통에 몇 마리 남지 않은 동네 개들이 차례로 짖어대고 있었다. 멀리서 들려오던 개 짖는 소리가 점점 가까이서 들려오는 것은 누군가가 이쪽으로 오고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소년의 외할머니는 불을 켜라고 하면서 꿈자리가 심상치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나이 먹도록 꿈이 틀린 적이 없다고도 했다.

“다아 소용없는 소리다. 느이 애비가 죽을 때만 혀도 나는 사날 전에 벌써 알아차렸다. 이빨이 아니라 그때는 손구락이었지만 꿈에 엄지손구락이 옴싹 빠져서 도망가 버리더라.”

외할머니는 난데없이 무쇠로 만든 커다란 족집게가 입안으로 쑥 들어오더니 그 중 실하게 붙어 있던 이빨 하나를 우지끈 잣뜨려 놓고 달아나는 꿈을 꾸었다는 것이다.

빗속을 뚫고 외삼촌의 전사를 알리러 온 사람 중에는 구장어른도 있었다. 소년의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이모까지 대문 밖에서 전사 소식을 들을 때 외할머니는 완두를 까면서 중얼거리고 있었다.

“나사 뭐 암시랑토 않다. 오널 아니면 니알 중으로 틀림없이 무신 기별이 올 종 알고 있었으니께, 진즉부터 알고 있었으니께, 나사 뭐 암시랑토 않다.”

그러자 어머니의 울음이 별안간 절정에 이르러 방안이 온통 뼛속까지 갉는 듯한 아픈 소리로 가득 차버렸다.

불싸앙헌 우리이 준이이 아이고 우리 기일준이가아 아하이고 아이고오 따른 집 자석들은 기피도 잘 허동마안 워쩌자고 우리이 준이느은 허지 말라는 소대장인 그 웬수녀르 밥티긴가를 달어 가지이고 이 지경이 되었느은고 아이고 아하이고 이일을 어쩐다아냐아……

방안을 가득 채우고도 남아도는 어머니의 진한 핏빛 울음은 어느덧 두루마기 멍석이 되어 어둠에 잠긴 마당 쪽으로 끝없이 풀려 나가고, 그 위로 저끔해졌다 되거세어지는 장맛비가 소리를 지르면서 두텁게 깔리고 또 깔렸다.

소년은 일선에서 전사한 외삼촌도 불쌍하고, 자기 자신도 불쌍하게 여겨졌다. 형사한테서 양과자를 얻어먹은 사건 이후로 소년은 근 달소수간이나 줄곧 울안에만 틀어박혀 근신하면서 근신할 것을 명령한 아버지와 용서할 권한을 가진 할머니의 눈치를 살피는 신세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려되는 건 할머니와 외할머니 간의 불화였다. 외삼촌과 이모를 공부시키기 위해 살림을 정리해서 서울로 떠났던 외가가 어느 날 보퉁이를 꾸려들고 느닷없이 나타났을 때, 사랑채를 비우고 같이 지내기를 먼저 권한 사람은 할머니였다.

수복이 되어, 완장을 두르고 설치던 삼촌이 인민군을 따라 어디론지 쫓겨 가버리고 그때까지 대밭 속에 굴을 파고 숨어 의용군을 피하던 외삼촌이 국군에 입대하게 되어 양쪽에 다 각기 입장을 달리하는 근심거리가 생긴 뒤로도 곁에 두드러진 변화는 없었다.

그러던 두 노파 사이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은 소년이 낯모르는 사람의 꼬임에 빠져 초콜릿을 얻어먹고 삼촌의 비밀을 고해바친 일로 할머니의 분노를 사면서였다. 할머니는, 과자 한 조각에 삼촌을 팔아먹은 천하에 무지막지한 사람백정이라는 것이었다. 외할머니가 궁지에 몰린 외손자를 감싸고 역성드는 바람에 할머니는 그때 단단히 비위가 상했던 것이다.

다음으로 두 분을 아주 갈라서게 만든 결정적인 계기는 전사통지서를 받은 그 이튿날에 왔다. 먼저 복장을 지른 쪽은 외할머니였다. 그날 오후도 장대 같은 벼락불이 건지산 날망으로 푹푹 꽂히는 험한 날씨였는데, 마루 끝에 서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외할머니가 별안간 무서운 저주의 말을 퍼붓기 시작한 것이었다.

“더 쏟아져라! 어서 한 번 더 쏟아져서 바웃새에 숨은 뿔갱이마자 다 씰어가그라! 나뭇틈새기에 엎딘 뿔갱이 숯뎅이같이 싹싹 끄실러라! 한 번 더, 한 번 더, 옳지! 하늘님 고오맙습니다!”

소리를 듣고 식구들이 마루로 몰려들었으나 모두들 어리둥절해서 말리는 사람이 없었다. 벼락에 맞아 죽어 넘어지는 하나하나의 모습이 눈에 선히 보인다는 듯이 더욱 기가 나서 빨치산이 득실거린다는 건지산에 대고 자꾸 저주를 쏘았다.

“저 늙다리 예편네가 뒤질라고 환장을 혓댜?”

그러자 안방 문이 우당탕 열리면서 악의를 그득 담은 할머니의 얼굴이 불쑥 나타났다.

“여그가 시방 누집인 종 알고 저 지랄이랴, 지랄이?』

옆에서 흔들어 깨우는 바람에 갑자기 잠꼬대를 그친 사람처럼 외할머니는 멍멍한 눈길로 주위를 잠깐 둘러보았다.

“보자 보자 허니께 참말로 눈꼴시어서 볼 수가 없네. 은혜를 웬수로 갚는다드니 그 말이 거그를 두고 허는 말이고만. 올디 갈디 없는 신세 하도 불쌍혀서 들어앉혀 농게로 인자는 아도 으런도 몰라보고 갖인 아냥개를 다 부리네그랴. 미쳐도 곱게 미쳐야지, 그렇게 숭악스럼 맘을 먹으면은 벱대로 거그한티 날베락이 내리는 뱁여.”

“그려. 나는 전생에 죄가 많아서 아덜놈 먼첨 보냈다치자. 그럼 누구는 복을 휘여지게 짊어지고 나와서 아덜 농사를 그따우로 지었다냐?”

“저놈의 예편네 말허는 것 좀 보이소. 참말로 죽을라고 환장혔능개비. 내 아덜이 왜 어디가 어쩌간디 그려?”

“생각혀 보면 알 것이구만.”

“저 죽은 댐이 지사지내 줄 놈 하나 없응게 남덜도 모다 그런 종 아는가분디……”

“어따 구만덜 허라니께요!” 하고 아버지가 한번 짜증을 부렸다.

아까부터 어머니는 외할머니의 허벅지를 자꾸만 집어 뜯었다.

이런 뿔갱이 집엔 안 있을란다

소년에 있어서 친할머니와 외할머니의 갈등은 절정에 이르게 된다. 그것은 말다툼 끝에 외할머니가 한 마디 던진 말이 심각한 파문을 일으켰던 것이다.

“야, 애비야. 니 동상 어서 죽으라고 고사지내는 예펜네를 내가 조께 혼내줬기로 너까지 한 통속이 되어 목매달게 뭐냐. 너한티는 장몬지 뭣인지 모르지만 나는 죽었으면 죽었지 그런 꼴 못 본다. 당장 어떻게 허지 않으면 내가 이 집을 나갈랑게 알아서 혀라.”

“나갈란다! 그렇잖아도 드럽고 챙피시러서 나갈란다! 차라리 길가티서 굶어죽는 게 낫지 이런 집서는 더 있으라도 안 있을란다! 이런 뿔갱이집……”

외할머니의 격한 음성이 여기에서 갑자기 뚝 멎었는데, 할머니는 길길이 뛰다가 거품을 물고 까무러칠 지경이었다.

소설은 삼촌의 이야기로 전환된다. 맥고자를 쓴 낯모른 사내의 초콜릿 유혹에 빠져 삼촌이 왔었다고 털어 놓는다. 삼촌이 집에 들렀을 때, 아버지는 자수를 하라고 설득했고, 할머니는 할머니대로 보내지 않으려고 막무가내였다. 그리하여 결국은 삼촌이 자수를 하기로 결심을 했으나 바깥의 인기척에 놀라서 도망치는 것이었다.

그 후, 읍내에서는 야음을 틈탄 빨치산의 습격이 있었는데, 경찰과의 대결에서 그들은 많은 수가 사살되었다.

할머니는 어느 하루로 날을 받아 기가 막히게 용하다는 소경점쟁이를 찾았다. 점쟁이의 말대로 할머니는 삼촌이 돌아올 것을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그리고 대문만이 아니라 처마 밑에도 장명등을 더 달고 각 방마다 밤새도록 불이 꺼지지 않게 분부하면서 할머니는 여느 날과 달리 집안 전체를 대낮처럼 밝혀야 하는 이유를 매우 간단한 말로 설명했다.

“어디서 보드라도, 시오리 배까티셔 보드라도 아, 저그 불이 훤헌디가 바로 우리 집이고나, 우리 엄니가 잠 한소곰 안 자고 날 지달리는구나. 험서 허우단심 뜀밤질허게 맹글어야된다.”

이튿날, 집은 완전히 잔칫집답게 동네 사람들로 북적거렸고, 저마다 연줄을 찾아 말을 걸어보려는 사람들 때문에 식구들은 도무지 정신을 못 차릴 정도였다. 장터처럼 북적거리는 속에서 식구들은 아직 아침밥도 먹지 못했다. 삼촌이 오면 같이 먹는다고 할머니가 상을 못 차리게 했던 것이다.

마침내 진시(辰時)가 시작되는 여덟 시였다. 모두들 흥분에 싸여 초조하게 기다리는 가운데 자꾸만 시간이 흘렀다. 아홉 시가 지나고 어느덧 열 시가 다 되었다. 그런데도 집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사람들이 죄다 흩어진 다음에야 비로소 할머니를 제외한 식구들이 점심이나 다름없는 아침을 먹을 수 있었다.

이때 워리가 대문 쪽을 향해 으르렁거렸고, 대문간이 왁자지껄하는 소리로 금방 소란해진 것은 사람 키보다 훨씬 큰 한 마리의 구렁이가 들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끔찍스런 구렁이를 보는 순간 할머니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면서 마루 위로 고꾸라졌다.

구렁이는 아욱과 상치가 자라고 있는 텃밭 이랑을 지나 어느새 감나무에 올라앉아 있었다. 감나무 가지에 누런 몸뚱이를 둘둘 감고서는 철사처럼 가늘고 긴 혓바닥을 대고 날름거렸다.

외할머니는 두 손을 천천히 가슴 앞으로 모아 합장했다.

“에구 이 사람아, 집안 일이 못 잊어서 이렇게 먼 질을 찾아왔능가?”

꼭 울어 보채는 아이한테 자장가라도 불러주는 투로 조용히 속삭이는 그 말을 듣고 누군가 큰소리로 웃는 사람이 있었다. 그러자 외할머니는 눈이 단박에 세모꼴로 변했다.

“어떤 창사구 빠진 잡놈이 그렇게 히득거리고 섰댜. 누구냐. 어서 이리 썩 나오니라. 주리댈 놈!”

외할머니의 대갈호령에 사람들은 쥐죽은 소리도 못했다. 외할머니는 몸을 돌려 다시 구렁이를 상대로 했다.

“자네 보다시피 노친께서는 기력이 여전허시고 따른 식구덜도 모다덜 잘 지내고 있네. 그러니께 집안 일일랑 아모 염려 말고 어서 자네 가야헐 디로 가소.” 구렁이는 움쩍도 하지 않았다. 철사 도막 같은 혓바닥을 날름거리면서 대가리만 두어 번 들었다 놓았다 했다.

“가야 할디가 보통 먼 질이 아닌디 여그서 이러고 충그리고만 있어서야 되것능가. 자꼬 이러면은 못 쓰네, 못 써. 자네 심정은 내 짐작을 허것네만 집안 식구덜 생각도 혀야지. 자네 노친 양반께서 자네가 이러고 있는 꼴을 보면 얼매나 가슴이 미여지것능가.”

외할머니는 꼭 산 사람을 대하듯 위를 올려다보면서 조용조용히 말을 건네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간곡한 말씨로 거듭 타일러봐도 구렁이는 좀처럼 움직일 기척을 안 보였다. 이때 울바자 너머에서 어떤 아낙네가 뱀을 쫓는 묘방을 일러주었다. 그 여자는 머리카락을 태워 냄새를 피우면 된다고 소리쳤다. 외할머니의 지시에 따라 할머니의 머리카락을 얻으러 안방으로 달려갔다.

구렁이와 두 할머니의 화해

고모가 인사불성이 된 할머니의 머리를 참빗으로 빗기는덴 더 많은 시간이 걸렸다. 빗질을 여러 차례 거듭해서 얻어진 한 줌의 흰머리카락이 내 손에 쥐어졌다. 언제 그렇게 준비를 해 왔는지 외할머니는 도래소반 위에다 간단한 음식 몇 가지를 차리는 중이었다. 호박전과 고사리나물이 보이고 대접에 그득 담긴 냉수도 있었다. 내가 건네주는 머리카락을 받아 땅에 내려놓은 다음 외할머니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늙은 감나무를 올려다보았다.

“자네 오면 줄라고 노친께서 여러날 들여 장만헌 것일세. 먹지는 못할망정 눈요구라도 허고 가소. 다아 자네 노친 정성 아닌가. 내가 자네를 쫓을라고 이러는 건 아니네. 그것만은 자네도 알어야 되네. 냄새가 나드라도 너무 섭섭타 생각 말고, 집안 일일랑 아모 걱정 말고 머언 길을 부데 편안히 가소.”

이야기를 다 마치고 외할머니는 불씨가 담긴 그릇을 헤집었다. 그 위에 할머니의 흰머리를 올려놓자 지글지글 끓는 소리를 내면서 타오르기 시작했다. 단백질을 태우는 노린내가 멀리까지 진동하자 눈앞에서 벌어지는 그야말로 희한한 광경에 놀라 사람들은 저마다 탄성을 올렸다. 외할머니가 아무리 타일러도 그때까지 움쩍도 하지 않고 그토록 오랜 시간을 버티던 그것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감나무 가지를 칭칭 감았던 몸뚱이가 스르르 풀리면서 구렁이는 땅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구렁이는 꿈틀꿈틀 기어 외할머니 앞으로 다가왔고, 외할머니가 한쪽으로 비켜서면서 길을 터주자 헛간과 부엌 사이 공지를 지나 뒤란의 대밭으로 숨어들어 가자, 외할머니는 마지막 당부의 말로 구렁이를 배웅하였다.

“고맙네. 이 사람! 집안일은 죄다 성님한티 맽기고 자네 혼잣 몸뗑이나 지발 성혀서 먼 길을 펜안히 가소. 뒷일은 아모 염려 말고 그저 펜안히 가소. 증말 고맙네. 이 사람아.”

한편 졸도한 지 서너 시간 만에야 겨우 깨어난 할머니가 “갔냐?” 하고 물었을 때 고모가 말뜻을 재빨리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고모가 그 동안의 일을 조용히 설명해 주었다. 할머니는 소리 없이 울고 있었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난 할머니는 사돈을 큰 방으로 모셔오도록 아버지한테 분부했다. 사랑채에서 쉬고 있던 외할머니가 아버지 뒤를 따라 큰 방으로 건너왔다.

“고맙소.”

정기가 꺼진 우묵한 눈을 치켜 간신히 외할머니를 올려다보면서 할머니는 목이 꽉 메었다.

“사분도 별시런 말씀을 다…….”

외할머니도 말끝을 마무르지 못했다.

“야한티서 이 얘기는 다 들었소. 내가 당혀야 헐 일을 사분이 대신 맡었구랴. 그 험헌 일을 다 치르노라고 얼매나 수고시렀으꼬.”

“인자는 다 지나간 일이닝게 그런 말씀 고만 두시고 어서 어서 묌이나 잘 추시리기라우.”

“고맙소, 참말로 고맙구랴.”

이렇게 해서 두 할머니는 화해의 손을 잡는다. 그리고 이 소설은 기력을 회복하지 못하는 할머니의 죽음으로 끝난다.

70년대의 한국 문학에 있어서 화려하게 부각된 작가의 한 사람으로 꼽히는 윤흥길이, 흔히 빠지기 쉬운 ‘유행작가’라는 말을 듣지 않는 것은 그의 작품세계가 듬직한 중량을 지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토속적 샤머니즘의 美學

그의 문장에 있어서 톤은 작중의 강한 액션을 지닌다 할지라도 섣불리 들뜨는 법이 없이 차분하게 절제된 관조의 자세를 보이고 있다.

이 소설에서 특히 주목되는 점은, 초콜릿을 사이에 두고 어른과 어린이의 줄다리기, 그리고 사상을 달리한 자식을 둔 두 노파의 갈등과 화해이다. 작가 윤흥길은 이러한 이야기를 어떤 이데올로기의 대립이라고 하는 추상적 관념으로서가 아니라 섬세하고 정확한 동작과 표정의 묘사를 통하여, 또 토속적 샤머니즘적인 우리나라 농촌의 구체적 상황 속에서 그리므로 성공하고 있다.

문학 평론가 천이두(千二斗)가 말한 바와 같이, 저주받은 사람이 죽으면 구렁이가 된다는 우리 전래의 무속 신앙은 결코 단순한 미신의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

빨치산이 되어 죽은 아들의 어머니인 할머니나 국군으로 간 아들의 전사통지서를 받아야 했던 외할머니의 경우에 있어서는 구렁이의 등장은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닌 필연의 결과이며 미신이 아닌 확신이요 확증인 것이다. 그리고 자식을 잃은 두 노파의 한 맺힌 설움은 우리 겨레가 다함께 겪은 6·25의 상처, 그 저주스런 비극의 실체로서 우리들의 심금을 울리게 한다.

1942년 전북 정읍에서 출생한 소설가 윤흥길은 전주 사범학교를 졸업한 후 초등학교에 재직하면서 습작에 전념했다. 68년 『한국일보』신춘문예에 소설 「회색 면류관의 계절」이 당선되어 문단에 등장, 「복더위 한낮」 「황혼의 집」 등의 장편과 중편 「장마」등을 발표했다.

1973년 원광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한 그는 서울 숭실여자중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았으나 1학기도 채우지 못하고 참고서 채택문제로 학교 당국과 의견충돌이 생겨 학교를 그만두었다. 절도 있는 문체로 현실의 왜곡, 부조리, 기괴함 등을 잘 드러내는 작품을 주로 써 온 그는 1983년엔 현대문학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