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작품(단편소설) 초대

황순원 작 너와 나만의 시간

SM사계 2012. 7. 30. 09:46

 

 

 

 

너와 나만의 시간

黃順元

벌써 이틀째다.

한결같이 눈에 뵈는 것은 굴곡진 산봉우리와 계곡의 연속이었다. 그 곳에는 아무것도 움직이고 있는 것이라곤 없는 성싶었다. 바람도 없었다.

주대위의 몸은 양쪽에서 부축을 받고도 자꾸만 아래로 늘어지기 시작했다. 마냥 그것은 두 사람의 어깨에 매달려 끌려가는 셈이나 다름없었다. 허벅다리에 관통상을 입고 있는 것이다. 요행 동맥과 신경은 건드리지 않아 우선 압박대로 지혈을 시켜놓고 간신히 적의 포위망을 빠져나왔던 것인데, 오늘 아침부터는 그것이 부패작용이라도 일으켰는지 마구 저리고 쑤셔댔다.

어디까지 가면 된다는 한정된 길도 아니었다. 그저 무턱대고 남쪽으로만 걸음을 옮기고 있는 것이었다. 부상자에게 있어 일정한 거리감이 가져다주는 영향력이란 대단하다는 걸 주대위는 알고 있었다.

어떤 전투에서 한 병사가 하복부에 관통상을 입고도 그 구멍 뚫린 하복부에다 제 옷섶을 틀어막아가며, 반시간 남아 걸려야 하는 진지까지 올라와서야 고꾸라진 일이 있었다. 그런 치명상을 입고도 그 병사가 진지까지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어디까지만 가면 진지가 된다는 일정한 목적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정해진 목적지가 지금 자기네에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주 대위는 자기를 부축하고 걷는 현 중위와 김 일등병에게 자기는 더 걸을 수가 없으니 여기 남겨놓고 먼저들 가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혼자 처진다는 것은 그대로 죽음을 의미했다.

김 일등병이 업자고 했을 때도 주 대위는 잠자코 업히었다. 올해 김 일등병은 열아홉 살밖에 안 됐으나 농촌 출신이라, 업고 걷는 거리도 상당했다.

현 중위가 대번해서 업을 차례가 되었다. 그는 업기 전에 슬쩍 주 대위의 허리께를 바라봤다. 거기에는 권총이 매달려 있었다. 그들 세 사람은 이미 배낭이며 철모며 총이나 윗저고리를 벗어버린 지 오래였다. 남은 무기라곤 주대위의 허리에 찬 권총뿐이었다.

주 대위는 현 중위의 눈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짐작이 갔다. 그리고 그의 심중을 헤아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혼자 힘으로 걸을 수 없게 됐을 때부터 이미 자기의 몸뚱어리는 두 사람에게 거추장스러운 짐밖에 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두 사람은 차마 상사인 자기를 그냥 내버려두고 갈 수는 없었던 것이다. 결국은 이쪽이 그걸 알아차리고 권총으로 자결할 것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주 대위는 현 중위의 시선을 모른 체했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몸을 가볍게 하기 위해 군복바지와 군화마저 벗어버리고 그의 등에 업혔다.

현 중위는 김 일등병만큼 못했으나, 그래도 같은 학도병 출신인 주 대위보다는 체구도 크고 힘도 세어 꽤 잘 업어냈다. 이러한 그들이 이틀 동안에 먹은 거라곤 더덕과 칡뿌리, 그리고 어쩌다 찾아낸 샘물로 겨우 갈증을 면한 것밖엔 없었다. 게다가 첫여름 햇볕은 불길이었다.

업은 사람의 얼굴에서는 찝찔한 땀줄기가 마구 눈과 입으로 기어들었다. 그렇건만 손으로 훔쳐내지도 못하고, 그저 눈을 꾹꾹 감아 땀을 몰아내거나 입을 푸푸거리며 고개를 흔들어 떨구어버리는 수밖에 없었다. 점차로 업은 사람의 걷는 거리가 줄어들고, 교대가 잦아졌다.

주대위는 자기의 가슴과 업은 사람의 등이 젖은 셔츠를 격해 서로 미끈거리는 상쾌하지 못한 촉감에서 그러나 자신이 살아있다는 실감을 느꼈다.

주대위를 다시 바꿔 업은 현 중위는 땀을 철철 흘리며 걷는 동안, 벌써 몇 번짼가 눈앞에 떠올랐던 것이 다시금 나타났다.

그는 그젯밤 적의 꽹과리와 날나리 소리를 듣기 전 잠속에서 꿈을 꾸었던 것이다. 누렇게 뜬 하늘 한복판에 황달 든 태양이 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밑으로 누렇게 뜬 불모의 황야가 하늘과 맞닿은 데까지 한없이 펼쳐져 있었다. 그 한 가운데 그는 땀을 철철 흘리며 서 있었다. 풀썩거리는 누런 흙이 걷어 올린 정강이 한 중턱까지 올라와 있었다.

그는 신경을 쓰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 양쪽 정강이에는 그가 마음속으로 아껴오는 것이 있었다. 입대하기 전날 사랑하는 사람이 그의 걷어 올린 다리를 보고 정강이털이 길어 우습다며 장난스럽게 양쪽 정강이 털 중에 제일 긴 것이 자기 것이니 잘 간직하라고 했던 것이다. 그것이 지금 누렇게 뜬 흙먼지 속에 잠겨버리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것에만 마음을 쓸 수 없었다.

바로 눈앞에 풀썩거리는 흙바닥에 개미구멍이 하나 나 있었다. 그는 누구에게 명령받은 것도 아니면서 이 개미구멍을 지키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개미구멍으로는 언제부터인지 흙빛과 같은 누런 개미떼가 연달아 기어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거기 같은 빛깔을 한 커다란 왕개미 한 마리가 구멍 입구에 서서 조고만 개미들이 나오는 족족 주둥이로 목을 잘라버리는 것이었다. 삽시간에 개미의 시체가 가득 쌓였다. 그러나 그것은 개미의 시체가 아니고, 그대로 누렇게 뜬 흙으로 화해버리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면 이 한없이 넓은 불모의 황야도 이렇게 하나하나 목이 잘리운 개미떼의 시체로 이루어졌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누렇게 뜬 하늘에는 황달이 든 태양이 타고 있고, 그 밑에 그는 오도가도 못 하고 개미구멍을 지키고 서 있어야만 했다.

현 중위는 자기 등을 짓누르고 있는 주 대위의 중량을 자꾸만 느꼈다. 이 달갑지 않은 중량을 제거해버리는 길은 하나밖에 없었다. 주 대위 자신이 어서 삶에 대한 미련을 단념해버리면 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가는 세 사람이 이름도 모르는 산중에서 몰죽음을 당하는 도리밖에 없는 것이다.

그는 목이 탔다.

한 댓새 전, 오래간만에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받은 편지를 그는 생각했다. 그 속에는 이런 구절이 씌어 있었다. ‘제 입술꽃은 언제까지나 시들지 않을 거예요. 당신이 제게 마련해 준 지난날의 즐거운 기억이 쉴 새 없이 거기 물을 주고 있으니까요.’

언제인가 그 긴 입맞춤 끝에 그녀의 귀에다 속삭인 일이 있었다. 그대의 입술은 외이파리 꽃이 아니고 수없이 많은 이파리를 지닌 여러 겹 꽃이요, 아무리 파헤쳐도 끝이 없소, 라고.

그리고 그 편지 속에는 여지껏과 다른 것이 하나 있었다. 지금까지는 씨자를 붙여서 호칭해오던 것이 당신이란 말로 변한 것이다. 그것은 자기 두 사람의 사이가 더 결합됐음을 뜻했다.

그는 편지를 읽고 새삼스럽게 정강이를 내려다보며, 자기에게 부어져 있는 한 사람의 여인이 웃음 머금은 맑은 눈길을 느꼈다.

지금도 그는 주 대위를 업고 홧홧 달아 오는 입안의 갈증을 지난 날 사랑하는 사람의 입술이 남겨 준 촉감으로 축여가며, 자기에게 부어진 그네의 웃음 머금은 맑은 눈길을 되살렸다. 그 눈길을 따라 걷는 동안, 그의 땀에 젖은 눈도 적이 맑게 빛나는 것이었다.

어느 능선굽이에 이르렀다.

김 일등병이 대번해서 업을 차례였다.

지형상으로 보아 앞에 가로놓인 계곡을 내려가 앞산으로 질러 올라가면 잠깐이요, 그렇지 않으면 꾸불꾸불 굽이진 능선을 상당히 올라가지 않으면 안 되게 된 곳이었다.

현 중위는 계곡을 내려가 곧장 가자고 했다. 누구든지 그렇게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었다. 더욱이나 그들은 단 몇 걸음의 단축이나마 염두에 두지 않으면 안 될 처지에 있는 것이었다.

김 일등병의 의견은 그러나 그렇지가 않았다. 계곡을 내려갔다가 나무숲 속에서 방향이라도 잃게 되면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길만 더 더디게 되기 쉽다는 것이다.

얼른 결정이 지어지지 않고 있을 때 주 대위가 한 마디 했다.

“현 중위, 김 일등병의 말대루 하지.”

퍼뜩 현 중위의 눈이 주대위의 허리에 매달려 있는 권총으로 갔다. 그러는 그의 눈앞에는 또다시 꿈의 장면이 나타났다.

한결같이 누렇게 뜬 하늘에는 황달 든 태양이 타고 있고, 그 밑으로 한없이 넓게 깔려 있는 불모의 황야. 그 한가운데 그는 땀을 철철 흘리며 서있었다. 바로 앞에 누렇게 뜬 메마른 흙바닥에 개미구멍이 있어, 누런빛을 한 조고만 개미떼가 연달아 기어 나오고, 그것을 구멍 입구에 같은 빛깔의 왕개미가 대기하고 서서 자꾸만 목을 잘라내고 있는 것이다. 마치 그것은 왕개미가 기계적으로 주둥이를 놀리고 있는데 거기 꼭 맞는 속도로 작은 개미떼들이 기어 나와 목을 들이미는 것과도 같았다. 그리고 목 잘린 개미떼들은 그대로 누렇게 뜬 흙으로 화해버리고 마는 것이었다. 거기 따라 점점 흙이 높아지면서 그의 정강이털이 거의 묻히게 돼 있었다.

초조할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는 그 곳에 서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문득 그 개미구멍 한 옆에 따로 뚫려져 있는 샛구멍을 하나 발견했다. 이것만은 꿈속에서는 전혀 없었던, 지금 그 자신이 의식적으로 뚫어 놓은 구멍이었다. 그런데도 어리석은 개미떼들은 그냥 본래의 구멍으로 나오면서 목을 무수히 잘리고 있는 것이었다.

현 중위는 주 대위를 업지도 않은 몸이건만 전신에 비지땀을 흘렸다.

해거름 때 세 사람은 구렁이 한 마리를 잡아 구워서 나눠 먹었다.

다 먹고 난 현 중위가 뒤라도 마려운 듯이 자리를 떴다.

그런 지 좀만에 주 대위가 김 일등병에게 말했다.

“자네도 여길 떠나게.”

김 일등병은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이 주 대위를 쳐다봤다.

“현중윈 갔어, 기다리다 못해.”

“기다리다 못해 가다뇨?”

“내가 자살하길 기다리다 못해 떠났어.”

사실 현 중위는 돌아오지 않았다.

주 대위는 김 일등병의 시선을 마주 바라보기를 피하면서,

“자네도 어서 여길 떠나게.”

김 일등병은 잠시 주춤거리다가 서산에 비낀 붉은 놀을 한번 바라보고는 말없이 주 대위에게 등을 돌려댔다.

혼자 업고 걷는 길이라 도무지 앞으로 나가지지가 않았다. 조금 가서는 쉬고 조금 가서는 쉬고 했다.

밤이 되자 두 사람은 아무데고 드러누웠다.

짐스럽다고 맨 먼저 버리고 온 배낭 속에 들었을 건빵이 눈앞에 어른거렸으나 실상 그들은 이미 배고픈 줄도 몰랐다.

그들은 현 중위의 일을 생각했다. 지금 어디쯤 갔을까. 김 일등병은 자기네를 버리고 간 그가 원망스러웠다. 한편 주 대위는 한시바삐 그가 아군 진지를 찾아 구원병이라도 보내줬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보는 것이었다. 물론 두 사람은 서로 입 밖에 내어서는 말하지 않았다.

김 일등병이 잠든 뒤에도 주 대위는 눈을 붙이지 못했다. 이제 와선 상처의 아픔도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일단 잠들었다가는 영 깨어나지 못할 것만 같은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어떻게 그 여자의 생각을 머리에 떠올리게 됐는지는 모른다.

서너 달 전, 그가 어느 고지 탈환 작전에 공훈을 세웠다 하여 며칠 동안의 특별 휴가를 받았을 때, 부산에 갔던 길에 하룻밤 몸을 산 일이 있는 여자였다.

이 여자의 말이 1·4 후퇴 무렵 서울 어떤 술집에 있었을 땐데 어느 날 어스름 녘 외국군인 세 녀석에게 쫓겨 들어오는 한 소녀를 뒷문으로 빠져나가게 한 후, 대신 그 일을 당한 일이 있었다는 것이다. 어느 놈이 어느 놈인지도 구별 못하는 새, 그만 정신을 잃었다가 들창이 희끄무레 밝아올 녘에야 깨어났노라고 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 소녀를 오늘 거리에서 만났는데, 이쪽이 미처 알아보지도 못하는 것을 소녀 편에서 먼저 반기더라는 것이다. 자기와 같은 여자를 아무 거리낌 없이 대해 주는 것이 여간 고맙지가 않더라고 했다. 더구나 무어든 도와주고 싶다는 말에는 송구스럽기까지 하더라는 것이다.

주 대위는 이 일종 미담 같은 이야기를 듣는 동안, 그네의 심증을 한번 꼬집어주고 싶은 충동을 받았다. 그럼 그 송구스럽고 고마운 맛을 다시 보기 위해선 앞으로 또 그런 경을 당하면 들창이 희끄무레 밝아올 때까지 정신을 잃을 수 있단 말이지?

그네는 어둠 속에서 담배를 붙여 물더니, 글쎄요 그런 일이란 하려구 해서 되는 건 아녜요, 그때 난 나두 모르게 그 소녈 대신했던 것뿐예요, 사람이란 뜻 않았던 일에 부닥치면 뒤에 생각해서 어떻게 자기가 그런 일을 했는지두 모를 일을 하는 수가 있잖어요, 그때 내가 그 소녈 대신한 것두 그거예요, 혹시 다음에 같은 경울 당한다고 해두 내가 어떻게 할는지는 나 자신두 몰라요, 경우에 따라서는 그렇게 할 거구, 경우에 따라서는 또 그렇게 하지 않을 거구.

주 대위의 머리에 이 여자와 주고받은 마지막 대화가 떠올랐던 것이다.

생각해 보면 그 동안 자기도 거듭하는 격전 속에서 이 여자의 말과 같은 행동을 해왔던 것이다. 언제나 예측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예기치 않았던 행동을 하곤 했던 것이다.

그러자 그의 머릿속에는 새로운 생각 하나가 스치고 지나갔다.

지난 날 자기가 그 여자에게 비꼬임조로, 다시 그런 경우를 당하면 또 누군가를 위해서 대신하겠느냐고 했을 때의 자기 마음 한 구석에서는 앞으로 그네가 같은 경우를 당하면 다시금 누군가를 위해서 대신하는 것도 무방하다는 생각을 했던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 생각 속에는 그네가 그런 경우에는 으레 그래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은근히 깃들어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러나 지금 죽음을 앞두고 어느 능선 어둠 속에 누워있는 주 대위에게는 어떠한 경우일지라도 그네에게 그것을 바랄 아무런 권한도 자기에게는 부여돼 있지 않다는 걸 느끼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여태까지 자기가 싸움터에서 겪은 온갖 상황에 대해서도 제삼자인 누가 있어, 그건 응당 그랬어야만 한다고 감히 주장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었다.

그는 문득 누구에게라 없이 한번 대들어 따지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를 둘러싸고 있는 것은 한없이 두꺼운 어둠뿐이었다.

이윽고 그도 잠속에 빠져들어가고 말았다.

날이 밝자 또 걸었다. 어제보다도 쉬는 도수가 잦아갔다.

김 일등병도 군복바지와 군화마저 벗어버렸다. 맨발로 산길을 걷기가 힘들다는 걸 모르는 바 아니었다. 하지만 우선 신발이 천근만근 무겁게 여겨져 견딜 수가 없는 것이었다.

여기저기 발바닥이 터져 피가 내배었다. 그렇다고 돌부리 아닌 고운 땅만 골라 밟을 수만도 없었다.

한결같이 눈에 뵈는 것은 인가 아닌 산봉우리와 계곡의 움직임 없는 굴곡뿐이요, 귀에는 그처럼 갈망하고 있는 아군의 폿소리 대신 한없이 먼데가지 퍼져나간 고즈넉함과 김 일등병의 몰아쉬는 거친 숨소리뿐이었다.

그래도 주 대위는 온 신경을 귀로 모으고 있었다. 어떤 색다른 소리나마 놓치지 않으려는 것이다.

한번은 주 대위가 저리 가 물을 마시고 가자고 했다. 김 일등병은 어디 물이 있는가 싶었다. 그러나 주 대위가 말하는 데로 가 보니, 바위틈에서 샘물이 흐르고 있었다.

하루 종일 걸은 것이 겨우 십 리 길도 못 되었다. 그 동안 두 사람은 산개구리 몇 마리를 잡아 날로 먹었을 뿐이었다.

김 일등병의 무릎은 굽어지고 허리는 앞으로 숙여져 거의 기는 시늉이었다.

주 대위는 김 일등병의 허리가 앞으로 숙는 각도에 따라 그만큼 자기의 생에 대한 희망도 꺾여들어감을 느껴야만 했다.

저녁때쯤 어느 능선을 돌아가느라니까 앞에서 까마귀 한 마리가 펄럭 하고 날아올랐다. 깎은 듯한 낭떠러지가 가로놓여 있는 것이었다.

발길을 돌리며 김 일등병은 무심코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거기에 까마귀 두세 마리가 앉아 무엇인가 열심히 쪼고 있었다.

사람의 시체였다. 그리고 첫 눈에 그것은 현 중위의 시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어젯저녁 두 사람을 버리고 떠났을 때와 똑같이 위는 셔츠바람이요, 아래는 군복바지에 군화를 신고 있었다.

까마귀란 놈이 시체 얼굴에 붙어서 무엇인가 쪼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이쪽을 보고는 날아갈 기미를 보이다가도 그저 까욱까욱 몇 번 울 뿐, 다시 쪼기를 계속하는 것이었다.

시체 얼굴에는 이미 눈알은 없어져 떼꾼하니 검은 구멍이 나 있었다.

두 사람은 이쪽으로 와 아무 데나 쓰러지듯이 드러누웠다. 현 중위의 시체를 보자 마지막 남았던 기운마저 빠져버리고 만 것이었다.

잠시 후에 김 일등병은 무엇을 생각했는지 일어나 허청거리며 벼랑 쪽으로 가더니 돌을 집어던지기 시작했다. 그때마다 까마귀가 펄럭 하고 시체를 떠나는 것이었으나, 곧 못마땅한 듯이 까욱까욱 하며 다시 내려앉는 것이었다.

김 일등병은 도로 와 쓰러지듯이 드러누워버렸다.

옆에 누워 있는 주 대위를 돌아다보았다. 그는 눈을 감은 채 번듯이 누워 있었다.

김 일등병은 전에 치열한 싸움터에서는 오히려 이제 마련이었던 죽음이란 것을 몸 가까이 느꼈다. 내일쯤은 까마귀가 자기네의 눈알도 파먹으리라. 그러자 그는 옆에 누워 있는 주 대위가 먼저 죽어 까마귀에게 눈알을 파먹히우는 걸 보느니보다는 차라리 자기편이 먼저 죽어 모든 것을 모르고 지나기를 바랐다.

그는 문득 울고 싶어졌다. 그러나 그럴 기운조차 지금 그에겐 없었다.

저도 모르게 혼곤히 잠속에 끌려들어갔던 김 일등병은 주 대위가 무어라 부르는 소리에 눈을 떴다. 하늘에 별이 총총 나 있었다.

“저 소릴 좀 듣게.”

주 대위가 누운 채 쇠진한 목 안의 소리로,

“폿소릴세.”

김 일등병은 정신이 번쩍 들어 상반신을 일으키며 귀를 기울였다. 과연 먼 우레 소리 같은 포성이 은은히 들려오는 것이다.

“어느 편 폽니까?”

“아군의 포야. 백 오십오 미리의……”

이 주대위의 감별이면 틀림없는 것이다. 그래 얼마나 먼 거리냐고 물으려는데 주 대위 편에서,

“그렇지만 너무 멀어. 사십 리는 실히 되겠어.”

그렇다면 아무리 아군의 포라 해도 소용이 없다.

김 일등병은 도로 자리에 누워버렸다.

주 대위는 지금 자기는 각각으로 죽어가고 있다고 느꼈다. 이상스레 맑은 정신으로 그게 느껴졌다. 그러다가 그는 드디어 지금가지 피해 오던 어떤 상념과 정면으로 부딪쳤다. 그것은 권총을 사용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아무래도 죽을 자기가 진작 자결했던들 모든 문제는 해결됐을 게 아닌가. 첫째 현 중위가 밤길을 서두르다가 벼랑에 떨어져 죽지 않았을는지 모른다. 아무튼 이제라도 자결을 해버려야 한다. 그러면 아무리 지친 김 일등병이라 하더라도 혼잣몸이니 어떻게든 아군 진지까지 도달할 가망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그는 김 일등병을 향해,

“폿소리 나는 방향은 동남쪽이다. 바로 우리가 누워있는 발 쪽 벼랑을 왼쪽으로 돌아 내려가면 된다!”

있는 힘을 다해 명령조로 말했다. 그리고 무거운 손을 움직여 허리에서 권총을 슬그머니 빼었다.

그때, 바로 그때 주 대위의 귀에 은은한 폿소리 사이로 또 다른 하나의 소리가 들려온 것이었다.

처음에는 그도 의심스러운 듯이 귀를 기울이고 있다가,

“저 소리가 무슨 소리지?”

김 일등병이 고개만을 들고 잠시 귀를 기울이듯 하더니,

“무슨 소리 말입니까?”

“지금은 안 들리는군.”

거기에 그쳤던 소리가 바람을 탄 듯이 다시 들려왔다.

“저 소리 말야 이 머리 쪽에서 들려오는……”

그래도 김 일등병의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개 짖는 소리 같애.”

개 짖는 소리라는 말에 김 일등병은 지친 몸을 벌떡 일으켜 머리 쪽으로 무릎걸음을 쳐나갔다. 개 짖는 소리가 들린다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인가가 있음에 틀림없었다.

“그 등성이를 넘어가면 된다!”

그러나 김 일등병의 귀에는 여전히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그는 누웠던 자리로 도로 뒷걸음질을 쳤다.

주 대위는 김 일등병에게 무엇인가를 주고 싶었다.

김 일등병이 드러누우며 혼잣소리로,

“내일쯤은 까마귀 떼가 더 많이 몰려들겠지. 눈알이 붙어 있는 것두 오늘밤뿐야.”

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갑자기 권총소리가 그의 귓전을 때렸다.

깜짝 놀라 돌아보니 어둠 속에 주 대위가 권총을 이리 겨눈 채 목 속에 잠긴 음성치고는 또렷하게,

“날 업어!”

하는 것이었다.

김 일등병은 무슨 영문인지 몰라 하면서도 하라는 대로 일어나 등을 돌려대는 수밖에 없었다.

“자, 걸어라!”

김 일등병은 자기 오른쪽 귀 뒤에 권총 끝이 와 닿음을 느꼈다.

등성이를 넘어 컴컴한 나무숲으로 들어섰다.

“좀 서!”

업힌 주 대위가 귀를 기울이고 나서,

“왼쪽으루 가!”

좀 후에 그는 다시,

“잠깐만.”

그리고는

“앞으루!”

이렇게,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앞으로, 하는 주대위의 말대로 죽을힘을 다해 걸음을 옮겨 놓는 동안에도 김 일등병의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혹시 주 대위가 죽음을 앞두고 허깨비소리를 듣고 그러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하필 자기네 두 사람은 마지막에 이르다가 죽을 필요는 무언가. 어젯저녁부터 혼자 업고 오느라고 갖은 고역을 겪으면서도 느끼지 못했던 원망이 주 대위를 향해 거듭 복받쳐 오름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걷지 않을 수 없었다. 오른쪽 귀 뒤에 감촉되는 권총 끝이 떠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권총이 비틀거리는 걸음이나마 옮겨 놓게 하는 거나 다름없었다.

산 밑에 이르렀다.

“오른쪽으루!”

“그대루 똑바루!”

그제야 김 일등병의 귀에도 무슨 소리가 들렸다. 그것이 점점 개 짓는 소리로 확실해졌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만한 거리에서인지는 짐작이 안 되었다.

목에서는 단내가 나고, 간신히 옮겨 놓는 걸음은 한껏 깊은 데로 무한정 빠져 들어가는 것이었다. 귀 뒤에 와 닿은 권총 끝이 더 세게 밀고 있는 것이었다.

아무것도 뵈는 게 없었다. 어떻게 걸음을 떼어 놓고 있는지조차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는데 저 쪽 어둠 속에 자리 잡은 초가집같이 검은 그림자와 그 앞에 서 있는 사람의 그림자, 그리고 거기서 짖고 있는 개의 모양이 몽롱해진 눈에 어렴풋이 들어왔다고 느낀 순간과 동시에 귀 뒤에 와 밀고 있던 권총 끝이 별안간 물러나면서 업힌 주대위의 몸뚱이가 무겁게 탁 내려앉음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