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순원 작「너와 나만의 시간」
극한 상황과 인간 의지
전쟁의 극한 상황에서 죽음의 문 앞에 다다른 인간이란 대개 두 가지의 유형으로 나타난다. 죽음을 거부하는 경우와 받아들이는 경우이다. 그러므로 사람에 따라서 비겁하게 나타나는 경우도 있고 숭고하게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황순원의 단편소설 「너와 나만의 시간」은 이러한 두 타입의 인간을 그려 가면서 비장미와 숭고미를 자아내고 있다. 너무도 어려운 상황에 처한 인간이 스스로 죽음을 택하다가도 다시금 끈질기게 달라붙는 삶에의 애착이 끈끈하게 밀착되어 있다.
이 소설「너와 나만의 시간」은 3명의 군인, 그러니까 전장에서 부상당한 주 대위와 그를 교대로 업고, 적 지역을 빠져나가려는 현 중위와 김 일등병 사이에 일어나는 고뇌가 심리적으로 파장을 일으키면서 넌지시 나타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갈등에서 나약한 인간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표로되어 있다.
죽어가는 주 대위를 배신하고 길을 떠난 현 중위는 밤길을 더듬거리다가 낭떠러지에 떨어져 죽음으로써 결국 까마귀밥이 된다. 그리고 마지막에 김 일병 등에 업혀 가던 주 대위가 어느 집 앞에서 숨을 거두는 것으로 소설은 끝난다.
이 소설에서는 전쟁의 극한 상황 속에서 죽음에 쫓기는 인간의 끈질긴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 주목되는데, 단순히 의지적 작용만으로 뭔가 아쉬운 여운 같은 것을 드리운 듯한 느낌을 자아내게 하는 작품이다.
극한 상황과 인간 의지
이 소설의 서두는 전장에서 허벅다리에 관통상을 입은 주 대위를 두 명의 군인, 즉 현 중위와 김 일등병이 양쪽에서 부축을 하고 산속을 걸어가는 광경으로 시작된다. 적의 탄환이 요행히 동맥과 신경은 건드리지 않아서 우선 압박대로 지혈을 시켜 놓고 간신히 포위망을 빠져나와 무턱대고 남쪽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굴곡진 산봉우리와 계곡으로 연속된 산속에서 일정한 목적지도 없이 무턱대고 남쪽으로 가는데 있어서 부상자를 운반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래도 주 대위는 자기를 부축하고 있는 현 중위와 김 일등병에게 자기는 더 걸을 수가 없으니 여기 남겨 놓고 먼저들 가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두 사람을 보내고 혼자 처진다는 것은 그대로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이었다.
김 일등병이 업자고 했을 때도 주 대위는 잠자코 업히었다. 그는 업기 전에 주 대위의 허리께를 슬쩍 바라봤다. 거기에는 권총이 매달려 있었다. 그들 세 사람은 이미 배낭이며 철모며 총이며 윗저고리 같은 것을 벗어던진 지 오래였다. 남은 무기라고는 주 대위의 허리에 찬 권총뿐이었다.
주 대위는 현 중위의 눈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짐작이 갔다. 그리고 그의 심중을 헤아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혼자 힘으로 걸을 수 없게 됐을 때부터 이미 자기의 몸뚱이는 두 사람에게 거추장스러운 짐밖에 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 두 사람은 차마 상사인 주 대위를 그냥 내버리고 갈 수는 없었다. 결국은 주 대위가 그걸 알아차리고 권총으로 자결할 것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살고 싶은 욕망이 남아 있는 주 대위는 현 중위의 시선을 모른 체 하였고, 조금이라도 몸을 가볍게 하기 위해서 군복바지와 군화마저 벗어 버리고 그의 등에 업혔다.
이러한 그들이 이틀 동안에 먹은 거라고는 더덕과 칡뿌리, 그리고 어쩌다 찾아낸 샘물로 겨우 갈증을 면한 것밖엔 없었다. 게다가 첫 여름 햇볕은 불길이어서 팥죽 같은 땀이 비오듯 했다.
주 대위를 업은 사람의 걷는 거리가 점차로 줄어들고 교대가 잦아져갔다. 주 대위를 다시 바꿔 업은 현 중위는 땀을 철철 흘리면서 걷는 동안에 그젯밤 적의 꽹과리와 날라리 소리를 듣기 전 잠속에서 보았던 꿈 생각을 하고 있었다.
누렇게 뜬 하늘 한복판에 황달 든 태양이 타고 있었다. 그 밑으로는 누렇게 뜬 불모의 황야가 하늘과 맞닿은 데까지 한없이 펼쳐져 있었다. 그 한가운데 그는 땀을 철철 흘리면서 서 있었다. 풀썩거리는 누런 흙이 걷어 올린 정강이 한 중턱까지 올라와 있었다.
바로 눈앞에서 풀썩거리는 흙바닥에 개미구멍이 하나 나 있었다. 그는 누구에게 명령받은 것도 아니면서 이 개미구멍을 지키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개미구멍으로는 언제부터인지 흙빛과 같은 누런 개미떼가 연달아 기어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거기 같은 빛깔을 한 커다란 왕개미 한 마리가 구멍 입구에 서서 조그만 개미들이 나오는 족족 주둥이로 목을 잘라 버리는 것이었다. 삽시간에 개미의 시체가 가득 쌓였다.
그러나 그것은 개미의 시체가 아니고 그대로 누렇게 뜬 흙으로 화해버리는 것이었다. 여전히 누렇게 뜬 하늘에는 황달 든 태양이 타고 있고 그 밑에서 그는 오도가도 못 하고 개미구멍을 지키고 서 있어야만 했다.
현 중위의 이러한 꿈은 그의 죽음에 다다른 급박한 심리가 상징적으로 잘 나타나 있다. 죽음의 문에 이르는 급박한 시간과 공간이 상징적인 형태의식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진퇴양난에 처한 그의 극한 상황이 여실히 나타나 있다.
전후애 이전의 인간애
어느 능선굽이에 이르러 김 일등병이 주 대위를 업을 차례였을 때였다. 지형상으로 보아 앞에 가로놓인 계곡을 내려가 질러 올라가면 잠깐이지만, 굽이진 능선을 돌아가면 상당한 거리가 되기 때문에 어느 길을 택해야 할지 결정을 내리기가 힘들었다.
현 중위는 계곡을 내려가 곧장 가자고 했지만, 김 일등병은 능선을 따라 돌아가자고 했다. 계곡을 내려갔다가 나무숲에서 방향이라도 잃게 되면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길만 더 더디게 되기 쉽다는 것이었다. 얼른 결정이 지어지지 않고 있을 때 주 대위가 한 마디 했다.
“현 중위, 김일병의 말대루 하지.”
퍼뜩 현 중위의 눈이 주 대위의 허리에 매달려 있는 권총으로 갔다. 그러는 그의 눈앞에는 또다시 꿈의 장면이 나타났다.
한결같이 누렇게 뜬 하늘에는 황달 든 태양이 타고 있고 그 밑으로 한없이 넓게 깔려 있는 불모의 황야. 그 한가운데 그는 땀을 철철 흘리며 서 있었다. 바로 앞에 누렇게 뜬 메마른 흙바닥에 개미구멍이 있어, 누런빛을 한 조그만 개미떼가 연달아 기어 나오고, 그것을 구멍 입구에 같은 빛깔의 왕개미가 대기하고 서서 자꾸만 목을 잘라내고 있는 것이다.
그의 초조한 심리가 상징적이긴 해도 여실히 나타나 있다.
해거름 때 세 사람은 구렁이 한 마리를 잡아 구워서 나눠 먹었다. 다 먹고 난 현 중위가 뒤라도 마려운 듯이 자리를 떴다. 그러자 좀만에 주 대위가 김 일등병에게 말했다.
“자네두 여길 떠나게.”
김 일등병은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이 주 대위를 쳐다봤다.
“현 중윈 갔어. 기다리다 못해.”
“기다리다 못해 가다뇨?”
“내가 자살하길 기다리다 못해 떠났어.”
사실 현 중위는 돌아오지 않았다.
주 대위는 김 일등병의 시선을 마주 바라보기를 피하면서,
“자네두 어서 여길 떠나게.”
하였다.
김 일등병은 잠시 주춤거리다가 서산에 비낀 붉은 노을을 한번 바라보고는 말없이 주 대위에게 등을 돌려댔다.
여기에서는 전우애 이전의 인간애를 발견하게 된다. 체념 상태에서 김 일등병에게 떠나기를 종용하는 주 대위의 행동은 자기 앞에 다가온 죽음을 받아들이는 자세를 취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죽음을 받아들이려는 한 인간의 숭고미에 숙연해지게 된다.
김 일등병 혼자서 주 대위를 업고는 조금 가서 쉬고 조금 가서 쉬고 하면서 걷는 길이라, 도무지 앞으로 나가지 않는 길이라 하루 종일 걸은 것이 겨우 십 리 길도 못 되었다. 그 동안 두 사람은 산개구리 몇 마리를 잡아 날로 먹었을 뿐이었다.
김 일등병의 무릎은 굽어지고 허리는 앞으로 숙여져 거의 기는 시늉이었다. 주 대위는 김 일등병의 허리가 앞으로 숙는 각도에 따라 그만큼 자기의 생에 대한 희망도 꺾여 들어감을 느껴야만 했다.
저녁때쯤 어느 능선을 돌아가노라니까 앞에서 까마귀 한 마리가 펄럭 하고 날아올랐다. 깎은 듯한 낭떠러지가 가로 놓여 있는 것이었다. 발길을 돌리며 김 일등병은 무심코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거기에 까마귀 두세 마리가 앉아 무엇인가를 열심히 쪼고 있었다.
사람의 시체였다. 그리고 첫 눈에 그것은 현 중위의 시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어제 저녁 두 사람을 버리고 떠났을 때와 똑같이 위는 샤쓰 바람이요, 아래는 군복바지에 군화를 신고 있었다. 까마귀란 놈이 시체 얼굴에 붙어서 무엇인가 쪼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이쪽을 보고는 날아갈 기미를 보이다가 그저 까욱까욱 몇 번 울 뿐, 다시 쪼기를 계속하는 것이었다. 시체 얼굴에는 이미 눈알은 없어져 떼꾼하니 검은 구멍이 나 있었다.
죽음이라는 것을 몸 가까이 느끼게 된 김 일등병은 내일쯤은 까마귀가 자기네의 눈알도 파먹으리라는 생각을 한다. 그는 옆에 누워 있는 주 대위가 먼저 죽어 까마귀에게 눈알을 파 먹히는 걸 보느니보다는 차라리 자기편이 먼저 죽어 모든 것을 모르고 지나기를 바랐다.
주 대위는 지금 자기는 각각으로 죽어가고 있다고 느꼈다. 이상스레 맑은 정신으로 그게 느껴졌다. 그러다가 그는 드디어 지금까지 피해오던 어떤 상념과 정면으로 부딪쳤다. 그것은 권총을 사용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아무래도 죽을 자기가 진작 자결을 했던들 모든 게 해결됐을 게 아닌가.
첫째 현 중위가 밤길을 서두르다가 벼랑에 떨어져 죽었을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이제라도 자결을 해버려야 한다. 그러면 아무리 지친 김 일등병이라 하더라도 혼잣몸이니 어떻게든 아군 진지까지 도달할 가망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그는 김 일등병을 향해,
“폿소리 나는 방향은 동남쪽이다. 바로 우리가 누워 있는 발쪽 벼랑을 왼쪽으루 돌아 내려가면 된다!”
있는 힘을 다해 명령조로 말했다.
그리고 무거운 손을 움직여 허리에서 권총을 슬그머니 빼었다.
그때, 바로 주 대위의 귀에 익은 한 폿소리 사이로 또 다른 하나의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었다. 은은한 폿소리 사이로 들려오는 것은 개 짖는 소리 같았다. 개 짖는 소리가 들린다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인가가 있음에 틀림없었다.
주 대위는 김 일등병에게 무엇인가 주고 싶었다. 그리고 그것을 자기 자신도 받고 싶었다.
김 일등병이 드러누우며 혼잣소리로,
“내일쯤은 까마귀 떼가 더 많이 몰려들겠지. 눈알이 붙어 있는 것도 오늘밤뿐이야.”
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갑자기 권총소리가 그의 귓전을 때렸다.
깜짝 놀라 돌아보니 어둠 속에 주 대위가 권총을 이리 겨눈 채 목 속에 잠긴 음성치고는 또렷하게,
“날 업어!”
하는 것이었다.
김 일등병은 무슨 영문인지 몰라 하면서도 하라는 대로 일어나 등을 돌려대는 수밖에 없었다.
“자, 걸어라!”
김 일등병은 자기 오른쪽 귀 뒤에 권총 끝이 와 있음을 느꼈다. 어제 저녁부터 혼자 업고 오느라고 갖은 고역을 다 겪으면서도 느끼지 못했던 원망이 주 대위를 향해 거듭 복받쳐 오르는 것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걷지 않을 수 없었다. 오른쪽 귀 뒤에 감촉되는 권총 끝이 떠나지 않는 것이었다.
환상적 심리적 작품 쓰는 작가
이 소설의 결말은 김 일등병의 귀에 권총을 바싹 들이댄 채 개 짖는 마을께로 가라고 명령하던 주 대위가 마을 앞에 다다르자 갑자기 탁 개풀어지는 것으로 끝난다.
이 작품은 환상적이며 심리적인 경향이 짙게 나타나고 있다. 몽타주기법, 가령 벼랑에 떨어져 까마귀밥이 된 현 중위의 꿈에 관한 이야기라든지, 주 대위의 심리적 갈등이 바로 그것이다.
김 일등병에게 폿소리가 나는 동남쪽으로 떠나라고 명령조로 말한 다음 권총으로 자살하려던 주 대위가 개 짖는 소리를 듣고 새로운 삶을 시도하는 것을 보게 되는데, 우리는 “주 대위는 김 일등병에게 무엇인가 주고 싶었다. 그리고 그것을 자기 자신도 받고 싶었다.”는 구절에서 생명의 존귀함을 절실히 느끼게 된다.
주 대위가 김 일등병에게 주고 싶었고, 또 자기 자신도 받고 싶었던 것은 바로 생명이었다. 이 절실한 생명, ‘너’에게도 주고 싶었고 ‘나’ 자신도 갖고 싶었던 이것이 바로 이 소설의 핵심 주제라 할 수 있다. 죽음이라는 극한 상황에 처한 인간의 내면의식, 그리고 밖으로 나타나는 여러 성격의 행동이 대조를 보이면서 분명하지 않은 그 어떤 숭고한 느낌을 갖게 된다.
죽음의 문턱에 다다른 인간의 모습을 본다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을 달아보는 기회가 되기 때문에 누구든지 이 작품을 대할 때는 강 건너 불구경하듯 그렇게 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소설가 황순원은 1915년 평남 대동군 재경면 빙장리에서 태어났다. 1934년에 평양 숭실중학을 졸업한 뒤 일본 와세다 제2고등학원에 입학했는데, 이 무렵 동경에서 이해랑(李海浪), 김동원(金東園) 등과 함께 극 예술연구단체인 ‘學生藝術座’를 창립했으며, 초기의 소박한 서정시들을 모아서 첫 시집 『방가(放歌)』를 출간했다.
1930년 숭실중학 시절부터 동요·시를 신문에 발표하기 시작한 그는 35년 동인지 『삼사문학(三四文學)』의 동인으로 시와 소설을 발표했는데, 다음해 와세다대학 문학부 영문과에 입학하고 모더니즘의 영향이 짙은 제2시집 『골동품』을 발간했다. 또한 동인지 『창작』을 발행하고 시와 소설을 발표, 39년에 와세다 대학을 졸업했다.
이 시기에는 『단층(斷層)』의 동인으로 주로 모더니즘 계열의 시를 발표하다가 첫 단편집 『늪』의 발간을 계기로 소설에 치중하기 시작했다.
1942년 이후 일제의 한글 말살정책으로 평양에서 향리 빙장리로 소개, 「기러기」 「병든 나비」 「황 노인」 「독짓는 늙은이」 등의 단편과 시 「그날」 등 많은 작품을 써 두고 해방을 맞게 되었다.
1946년 서울중학교 교사를 역임했는데, 이 무렵 「목넘어 마을의 개」 「별과 같이 살다」 등을 발표하고 해방 후의 단편만을 모은 제2단편집 『목넘어 마을의 개』를 간행하여 단편작가로서의 기반을 닦았다.
1955년 장편 「카인의 후예」로 아시아자유문학상을 수상했고, 『현대문학』 추천작품 심사위원에 위촉되었다. 56년 『문학예술』추천작품 심사위원에 위촉되고 이듬해부터 예술원회원, 경희대 문리대 교수를 역임했다.
그의 단편소설 「소나기」가 영국 「인카운터(Encounter)」의 영어 비상용국작가 단편콩쿨에 입상 발표되었다. 이 무렵에 단편 「과부」가 영화화 되었는데, 단편소설 「학」이 미국 계간지(Prairie Schooner)에 게재된 일도 있었다.
환상적이며 심리적인 경향이 짙은 단편과 많은 장편을 써온 그는 1960년 『사상계』에 발표된 그의 장편 「나무들 비탈에 서다」로 그 이듬해에 예술원상을 받았고, 장편 「일월(日月)」로 3·1 문화상을 수상했으며, 그 심사위원에 위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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