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三人間型
安壽吉
1
토요일 오후였다.
대청소(大淸掃)를 한다고 빗자루며 물이 담겨 있는 바께쓰며, 이런 것들을 들고 다니며 떠들던 아이들도 이미 물러간 뒤였다. 따로 떨어진 일학년 교실에서 고등학교 합창부의 이부합창 연습하는 소리가 풍금의 멜로디에 섞이어 제법 곱고 우렁차게 전해 온다.
운동장에서 오륙 명 아이들이 샤쓰바람으로 땀을 흘리면서 바스켓뽈 연습하는 외에, 천오백여 명이 날마다 생선 떼 같이 펄펄 뛰던 교실도 교정도 한적하기 짝이 없었다. 계절이 물러간 피서지라는 느낌이 아니었다. 그런 서글픔이 아니었다. 그것은 실로 무슨 큰 잔치를 치르고 난 뒤의 정적이라고 할까? 거뜬하면서도 피로가 마음을 가라앉혀 주는 권태! 이런 기분에 잠기면서 석은 직원실 의자에 게으르게 기대 앉아 창밖을 내다보았다.
다행히도 석의 의자는 창밖으로 바다를 내다볼 수 있는 자리에 위치하였다. 눈을 들면 방파제 밖, Y학교가 그 위에 자리를 잡고 있는 암벽(岩壁)과 불쑥하니 내밀어 누워 있는 영도산과의 사이에, 거울 같은 해면을 여수 항로의 맵시 좋은 여객선이 바다를 밭갈이 하면서 내왕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활짝 개인 날이면 멀리 남쪽 수평선 위에 대마도가 자줏빛 안개 속에 시야에 들어왔다.
갈매기 해면을 차고 떼지어 넘노는 사이를, 갈빛 짙은 풍선이 미끄러져 나가는 광경, 그런 풍선이 선(線)이 부드러운 영도구릉(影島丘陵)을 배경으로 천천히 지나가는 풍경은 한 폭의 화제(畫題)가 되기에 넉넉하였다.
그러나 그날, 토요일 오후의 창밖의 풍경은 몹시도 단조하였다.
맵시 좋은 여객선도, 고색창연한 풍선도, 더구나 수평선 위의 이국의 자줏빛 섬도,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다. 마침 낡은 통탕선이 이쪽 암벽과 영도와의 사이의 해로를 기어가는 것이 마치 천식 앓는 노인이 쿨룩쿨룩 기침을 하면서 걷는 것 같이 눈에 뜨일 뿐, 그것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밋밋한 영도섬의 단조로운 선(線)이, 그것보다도 기슭에 볼품사납게 다가붙어 있는 제이 송도의 판잣집들이, 오후의 넘어가는 늦은 겨울 해를 맞받아 벌집(蜂巢)같이 환히 건너다 보였다. 직원실 창문에서 볼 수 있는 풍경으로는 가장 무변화한 장면이었다. 초라한 컷트였다. 배경만 있는 빈 무대! 이런 느낌이라고나할까!
그러나 이런 움직임이 없는 풍경이, 그날따라 석의 마음속 풍경과 조화를 이루어 주는 것이라 느껴진 것은 무슨 까닭일까? 석은 이것을 토요일 방과후(放課後)의 포만(飽滿)이라고 생각하였다.
그 주일의 일을 마치고 어깨에 짊어졌던 것을 벗어 놓은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정신상태, 그러나 내일, 일요일이 있으므로서 하루를 완전히 내 것으로 자유로 즐기고 처리할 수 있는 일요일이 자고 나면 찾아온다는 기대를 가질 수 있으므로 더 값있게 느껴지는 정신상태였다. 이런 포만한 정신상태 속에 게으르게 소요하면서, 석은 시야에 들어온 배경만인 무대 위에 내일의 빈 하루를 무엇으로 메꿀 것인가? 연출(演出)의 계획을 세우기에 저절로 골독하였다.
아침에는 기껏 늦잠을 자고, 그리고 오후에 접어들어 해운대의 R을 찾을까? 미군 상대로 기념품 장사를 하는 R은, 그 밖의 말하지 못할 부업도 하여 돈푼이나 쥔 모양, 석을 청하여 하루를 쉬자고 하였다.
“바쁨에 쫓기는 몸이니 쉬려도 틈이 없어 자네나 나온다면 그걸 구실로 하루를 모든 것을 잊고 쉬겠네.”
R의 청뿐이 아니었다. 부산 생활 삼 년에 아직 선도 못 본 해운대는 미상불 석의 구미를 당기었다.
그러나 만원 버스에 시달려 갔다 올 것을 생각하니, 갑자기 몸 움직이기 싫어진 요즈음의 석은 선뜻 그것이 내켜지지 않았다. 친구를 청하는 마음이 간절하거든, 모셔가든지 차라도 세내어 보낼 거지. 이런 건방진 생각을 희롱하고 있는데, 엔진소리도 가볍게 고급차 한 대가 배경만인 무대 위 바로 직원실 앞에 와 머물렀다. 문이 열리면서 안에서 신수 좋은 신사 한 사람이 내린다.
직원실로 향하여 걸음을 옮기는 그를 보자, 석은 앗! 하고 일어났다.
2
“어느 구름 속에 숨었다가 이렇게 불숙 나타났는가?”
“그 구름장을 벗겨버린 바람이 불었다네.”
“자네가 구름 속에 숨고, 또 이렇게 나타나구 사람은 오래 살고 볼 일일세.”
“여부가 있는가, 지긋지긋하게 살아야지.”
“죽었는가 했을 때도 있었네.”
“추도회나 할 거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손님을 나가면서 맞은 석은, 그의 손을 쥐고 이런 수작으로 말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그를 책상 옆에 안내하여 옆 자리에 비어 있는 의자를 끌어다 앉으라고 권하였다.
토요일 방과 후의 정신적 포만을 즐기면서 슬금슬금 집으로 돌아간 직원이 많아, 오십여 명 교사가 한창 때이면 무슨 시장판같이 들끓던 교무실도 한결 조용하였다. 사무적인 일을 정리하느라고 남아있던 직원들은 고급차의 방문객 조운(照雲)과 석이 떠드는 소리에 책상에서 머리를 들었다. 그들의 호기심을 끌은 것은 방문객이 고급차를 타고 왔다는 점이 아니었다. 방약무인(傍若無人)하게 높은 소리로 떠들어대는 둘 사이의 대화 때문도 아니다.
서로 말로 하는 수작을 보아서는 지극히 친밀하고 흉허물 없는 사이인 것 같은데, 어쩌면 하나는 저렇게 풍부하고 기름이 흐르고, 하나는 저렇게도 몰골이 초라할까? 둘 사이의 주고받는 대화와는 어울리지 않는 외면(外面)의 현격한 차이(差異)가 마치 만화(漫畫)의 인물이 뛰어 나와 실제로 움직이는 것을 보는 듯했을 것이다. 동료들의 호기심은 이 점에 있는 것은 아닐까?
사실, 석도 몸집과 차림차림이 얼른 알아볼 수 없으리만큼 변해버린 작가(作家) 조운을 대할 때, 경이의 눈을 뜨지 않을 수 없었다.
억지로 전에 하던 버릇대로 농조로 말을 끄집어는 냈으나, 그와 대조하여 석 자신의 몰골이 얼마나 초라할까가 마음에 걸려 미상불 주눅이 잡히기까지 하였다.
“아니, 자네도 이렇게 몸이 나고, 이렇게 좋은 옷을 입고, 이렇게 훌륭한 모자를 쓰고, 또 고급차로 출입을 하고 할 때가 있었던가? 세상은 변하고 볼일일세.”
“기적 같단 말이지?”
사실 기적이라고 말할 수도 있었다.
작가 조운이라면, 독특한 철학적인 명제를, 그것을 담는 난삽한 문체에 고집하는 작가로서 개성이 뚜렷한 존재였다. 더욱이 자신에 충실하고 문학에 대한 결백성을 굳게 지켜오는 것으로 문단인의 존경을 받아 오던 사람이었다.
그를 따르는 문학소녀가 많았다. 무엇이 깃들여 있는 것 같은 풍모와 작품, 범속한 것을 싫어하는 문학소녀들의 단순한 호기심이라고 할까?
그러나 그 반면에 문학적인 적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의 난해한 문장은 독자를 많이 갖고 있지 않았다.
‘신음하면서 찾아 얻으려는 사람만이 시인(是認)할 수 있다’는 그의 인간적인 신념은 그대로 그의 문학적인 신조였다.
항상 생각하고, 자신이 생각해서 도달한 것만이 진리라고 단정하는 그는, 그러므로 과작이었고, 생활은 늘 궁하였다.
그러나 생활을 유지하기 위하여 매문(賣文)은 하지 않았다.
항상 초라한 몰골을 하고 있는 그는 외면적인 차림에 도무지 무관심이었다.
생활력이 어지간한 부인의 덕으로 아이들은 굶기지 않았으나, 가정을 돌보지 않는 것이 몸차림에 무관심한 것이나 다를 것이 없었다. 무슨 회합에든 공식모임에는 통 나가지 않았다.
결혼식과 장례에는 머리가 쑤시었다.
전송과 마중, 그런 것은 생각해 본 일이 없었다. 그렇던 조운이 오늘의 모습으로 나타났으니 기적이 아니랄 수 없었다.
3
“자네 입으로 기적이라 하니 마음이 놓이네.”
그러나 이런 석의 말에는 다시 무어라고 대꾸를 하지 않고, 조운은 화제를 돌리었다.
“토요일이라서 벌써 나간 줄 알았더니, 만나서 다행일세.”
“자네가 올 것을 알고 대령하고 있은 것쯤 됐네. 막 나가려던 참이었는데.”
그리고 석은,
“헌데 무슨?”
하고 용건을 물었다.
사실 어떻게 알고 찾아오는 것인지, 전입학(轉入學)을 시켜 달라고 무리한 청을 가지고 오는 친구들이 많았다.
학교의 방침이 원칙적으로 보결생은 받지 않기로 되어 있으므로, 모처럼 찾아온 친구들을 거절해 보내느라고 난처한 처지에 빠진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었다. 조운 역시 그런 용건을 가지고 왔으리라 생각하고(그런 친구들은 학교의 위치가 거리가 먼 관계로 차를 타고 오는 수가 많았다) 물은 것이었다.
조운은,
“이젠 퇴근해두 괜찮겠지? 나하구 놀러 가세.”
하였다.
“오랜만에 만났으니 나도 자네를 붙들고 얘기하고 싶네마는……. 대관절 용건은……, 뭐 누구 애를 입학시키려구?”
마침 교감선생이 나가지 않고 있었으므로, 원칙에는 예외가 있는 그 예외를 내세워, 조운의 청을 들어주도록 교감선생님에게 떼를 쓰자고 이렇게 물었다.
“아아닐세, 입학은?”
그는 머리를 가로젓더니 다시 당치도 않은 말이라는 듯이,
‘아닐세’를 되뇌었다.
“그럼 가세.”
석은 그를 따라 간다기보다, 그를 안내하여 월급날에 회계하는 학교 옆 단골 빈대떡집에 갈 생각으로 일어섰다.
밖에 나왔으나, 앞선 조운은 자동차 문을 열고,
“자, 앉게.”
하였다. 사뭇 명령이었다.
“아니, 내가……” 말하면서도 석은 그가 가리키는 차 안의 쿳숀에 위압적으로 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
차는 스르르 미끄러졌다.
교문 밖으로 나오자 운전수는 뒤에다 대고 말한다.
“어디루 갈깝쇼?”
“어제 갔던데.”
차는 속력을 냈다.
차가 충무로 광장 넓은 길에 나서기까지 둘은 아무 말도 주고받지 않았다.
뚱뚱한 몸집을 쿳숀에 파묻은 조운은 거만스럽게 팔짱을 끼고 기대 앉아, 눈을 감고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다.
붉어 으리으리한 얼굴에 복잡한 표정이 서리어 있는 것을, 석은 석대로 복잡한 심경으로 힐끔힐끔 도둑해 보았다.
그와 마지막으로 갈라진 것이 사변 나던 그 다음 날, K 신문사 사층에서였다.
그 독특한 창백하다기보다 거무티티한 야윈 얼굴에 침통한 표정을 지닌 조운은, 석이 있는 방(그때 석은 K 신문에 근무했다)에 나타나 전황 뉴스를 듣고 갔다.
진위(眞僞)의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방송과 통신과 군출입 기자의 말에 도리어 어리둥절하고 있던 터이라, 석이 무슨 말을 들려주었는지 기억이 남지 않으나, 그는 침통한 얼굴에 입맛만 다시고 돌아간 것만은 확실하다. 그 후 암흑의 구십일 간에 한 번도 만나지 못하였고, 서울 수복 후에도 조운은 나타나지 않았다.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은 결국 그들의 사회, 즉 문단에였고, 다방에서였다.
이 나타나지 않은 명물 조운에 대하여 처음 억측들이 구구했다. 부역해서 따라갔다느니, 납치되었다느니……, 또는 폭격에 맞아 죽었다느니……. 그러나 1·4 후퇴로 부산에 내려와보니, 신문 소식란에 조운이 자동차회사 중역이 되어 피난도 제일착으로 했고, 돈도 듬뿍 벌었다는 것이 보도되었다. 놀란 것은 석뿐이 아니었다.
그렇게 문학에 대하여 결백하고 순교자적 태도였던 조운의 일이었으니 놀랄 밖에 없었다.
당시 판쯔 바람으로 부산에 몰리어 내려와, 다방 구석에 모여서는 그날 밤 가족을 재울 곳과 입에 풀칠할 끼니 걱정에 앞이 캄캄했던 조운의 친구들이었다.
예상하지 않았던 조운의 소식은 그들의 심리에 적지 않은 파문을 일으켰다.
“잘했어. 알량한 문인생활, 잘 빠이빠이했어.”
이름 석 자가 지상에 자주 인쇄되었다는 것으로 알려진 외에 아무것도 아니면서, 남달리 박해와 고민이 자심했고, 겨우 그것을 극복했으나 또다시 생존의 길이 막연한 그들. 무능한 문인 자신에 환멸을 느낀 패들은 조운의 처사를 통쾌하다고 생각하였다.
“피잇.”
반대파에서는 문단을 떠났다는 것으로 조소의 이유를 삼았다.
“습격하자!”
걸걸한 친구들은 서둘렀다. 그러나 그는 부산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부산에는 후퇴 초에 잠간 나타났다가 어디로인지 자취를 감춘 것이다.
“꽁무닐 따라다니던 문학소녀와 붙었다지?”
“그래? 달콤한 도피생활, 피난 북새통에 있을 법한 일야.”
이런 소문까지 있었으나 조운은 영 사라지고 말았다.
삼 년의 세월이 흘렀다. 문단 교우 중에서도 가장 자별한 사이였던 석에게도 거처를 알리지 않은 채, 흘러간 삼 년이었다. 그 삼 년 동안 조운은 무엇을 했을까? 조운의 일이니, 피둥피둥 살을 찌우고, 맵시를 돋구고, 고급차를 타고 출입하고, 하는 그런 따위 외면적인 것에만 정력을 기울인 것은 아니었으리라. 풍부해진 외면과 더불어 내면도 충분히 살쪘으리라. 더욱이 항간에 떠들던 문학소녀와의 달콤한 도피생활에 탐닉했을 삼 년. 그뿐이 아니었다. 그의 문학적 반대당이 그를 매장하려는 이유로 삼는 스램프를 타개할 길이 없어, 문학과 결별 상태에 놓여 있은 삼 년은 아니었으리라.
도리어 머리만 크고 동체와 사지가 수척해, 작품을 대하는 사람의 육체에 애필하여 가슴에 불을 질러 주는 것이 아니라, 까다로운 자의식을 독자의 머리에 불어 넣어 그것을 받아들이기를 강요하는 편이었던 조운의 문학세계는, 삼 년 간의 실업계에서 확실히 육체와 사지도 갖춘, 보다 크고 넓은 것으로 변했으리라. 혹 숨어서 이룩한 대작을 보여 주어, 그 평을 받자고 불쑥 나타나, 다짜고짜로 차에 담아 가지고 가는 것은 아닐까?
이렇게 생각하니 묵묵히 입을 다물고 팔짱을 끼고 쿳숀에 기대앉은 조운의 풍모가 석에게 무슨 거물같이 육박해 왔다. 심각한 얼굴의 표정, 옆에 앉은 석의 존재도 잊은 듯이 가끔 저 혼자 흥분하는 것 같다가는 머리를 끄덕끄덕하는 태도에서, 삼 년 전에 다방 구석에 앉아 담배, 그것도 양담배인 것이 아니라, 공작갑을 부끄럼도 없이 꺼내 놓고, 그것을 연거푸 피워가며, 무엇을 생각하던 조운의 모습을 엿볼 수 있어, 석은 까닭 없이 위압을 느꼈다.
그러나 따져 보면 석이 조운에게서 무언의 위압을 받는 것은 조운이라는 객체가 던져주는 아지 못하는 힘 때문이 아니었다. 자신의 내면이 너무도 공허하기 때문에 늘 자책(自責)을 받던 마음이, 과거의 신뢰하던 친우가 예기하지 않았던 때에 힘찬 모습으로 출현한 것을 보자 지나치게 겸허(謙虛)하고 당황해진데서 생긴 야릇한 심리라고 할까? 그것은 흡사 비겁한 병정이 놀라운 기세로 고함을 지르며 기습(奇襲)하는 적을 맞아, 지레 겁을 집어 먹고 도망치는 것에나 비길 수 있을까?
석이 Y학교에 교편을 잡게 된 것은, 정치파동이 한창일 무렵이었다. 벌써 두 달이나 실업의 쓰라림을 맛보고 있던 그는, 어디든 입에 풀칠할 자리를 얻지 않아서는 안 되었다. 기능과 경력이 그것뿐이라, 역시 문화적인 사무를 다루는 분야가 구직의 대상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 분야마저, 아니 그 분야이기에 물결은 더욱 거센 듯하였다. 문화는 그 독자성을 포기했다. 활자와 활자, 그림과 그림, 노래와 노래가 메카폰으로 변하였다. 민의와 민의가 불똥을 튀고 부딪쳤다.
일체 정치적인 운동에는 흥미와 정열을 느끼지 못하는 석은, 이 거친 폭풍우 속에 몸을 던지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아이들은 밥을 달라고 아우성을 치고, 아내는 아내대로 빤히 아는 바가지를 빡빡 긁었다. 노인들은 한숨을 쉰다. 가느다란 팔에 매달리어 굶주리고 헐벗음을 참고 있는 이들 죄 없는 목숨을 위하여, 뜻에 맞지 않는 일을 해야 되느냐? 파도에 몸을 맡기면 밥벌이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고픈 배를 부둥켜안고 석은 소란한 거리를 얼빠진 사람처럼 싸다니지 않아서는 안 되었다.
이러한 석에게 학교는 구원의 안식처였다. 친구의 주선으로 처음 학교 구내에 들어서, 폭풍우의 권외에서 뛰놀고 배우고 있는 소년들의 씩씩하고 천진한 모습을 보았을 때, 석의 신경은 스스로 누그러지는 듯하였다.
시간이 없을 때, 운동장 앞 바위 위에 열중쉬어의 자세로 발밑에 와 흰 눈을 뿜으며, 부서지는 물결 소리를 들으면서, 먼지 자욱한 용두산과 관상대가 있는 시내를 바라보노라면, 몸에 묻었던 티끌이 죄다 씻겨지는 듯하였다.
연출가인 어떤 친구가 길에서 석을 만나 물었다.
“요지음 뭘 허시우?”
“학교로 나가오.”
“어느 학교?”
“Y학교.”
“잘 했소.”
“무우어!”
“나도 요즘 대학엘 나가는데, 목강입니다.”
“목강?”
“아침에 한 두어 시간 애들을 대하여 지껄이고 나면, 곡 목강했다는 기분이 나니깐…….”
목강! 딴은 그렇다고 석은 생각하면서, 그에게 차례진 이 안식처를 소중하게 여기었다. 마음과 생활을 가다듬어 무얼 여유 있게 생각하고, 내키지 않는 잡문을 끄적거려 팔아먹는 것이 아니라, 쓰고 싶던 것을 마음먹고 쓸 수 있다고, 영도 어귀에 떠 있는, 어떤 때에는 주전자같이도 보이고 때로는 전진하는 탱크같이도 보이는 섬을 내다보며, 가슴을 쭉 벌려 크게 호흡도 하였다.
그러나 여름과 겨울, 방학이 두 번이나 지났고, 이제 학년말도 몇 주일 남지 않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석은 한 편의 작품도 이룩하지 못하였고, 아쉬운 때 끄적여 들고 나가 돈과 바꿔 오던 잡문 하나도 쓸 여유가 없었다. 교편생활이란 그렇게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자질구레한 잡무가 꼬리를 물고 그칠 줄 몰랐다.
아이들과 아귀다툼하는 일, 수업은 하루에 세 시간밖에 되지 않았으나, 스물 네 시간 전신경이 아이들 하나하나에 쓰여지지 않아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거기에 석의 집은 걸어서 한 시간 반, 그것도 전차나 버스를 이용하기에는 반지바른 위치에 있었다. 판자 울타리 너머에 꽃 한 포기 볼 수 없는 삭막한 길, 더욱이 비 오는 날이면 발목을 넘는 진창길을 아침이면 눈을 비비며 걸어갔다가 저녁이면 어두컴컴해서야 돌아오게 되는 석은, 피로에 지치어 밤이면 곯아떨어지지 않을 수 없었다.
한가하게 무얼 생각할 여유나, 팽팽한 마음으로 책상을 대하여 원고지 빈 칸을 메울 육체와 정신적 기력이 없어졌다.
나른한 몸과 안개 낀 머리를 채찍질하여 책상에 대해 앉았다가는, 펜 쥔 손가락에 맥이 저절로 풀려지고 눈꺼풀이 스스로 덮여질 때 석은 모른다 하고 자빠져 누우면서 중얼거렸다.
“교육도 사내의 보람 있는 일이거니 차라리 훌륭한 교육자가 되자!”
그러나 교육가로서 석은 아직 애송이였다. 아니 엑스트라의 자격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니, 또 이십 년, 마음의 지주였고 생활의 목표였던 그 길을 이제 일조에 분필로 바꾼다는 것이 자신을 배반하는 일밖에 되지 않았다.
더욱이 제 자신에 충실하여 학교를 그만둔다면, 또 그나마도 생활의 방편이 막히는 것이었다.
직업에도 충실하지 못하고 자신에도 엉거주춤하고 이러한 자책의 채찍을 맞으면서, 석은 점심밥 그릇과 원고지권이 함께 들어 있는 무거운 가방을 들고, 벌써 십여 개월 날마다 삭막한 통근 코스를 흐리터분한 분위기 속에 학교에 왔다 갔다 하였다.
초조감만 북돋아졌다.
그러나 그럴수록 마음은 공허해 간다. 그리고 안일을 탐하여 현실과 타협하려고 들었다.
허탈한 마음으로 학교 주위의 바다 풍경을 즐기고, 이레 만에 찾아오는 일요일을 고대하는 게으른 사람이 되고 말았다.
그가 조운에게서 정신적인 위압을 느낀 것은 그의 내면이 이러했기 때문이었다.
4
차가 충무로 로타리를 돌자, 길을 걷던 아이 하나가 차 안의 석을 향해 경례를 붙이었다. 석은 끄덕, 머리를 끄덕였다.
“자네 인젠 제법 훈장 티가 배겼네그려.”
어느 틈에 차 밖과 차 안, 사제(師弟) 사이의 인사하는 광경을 보았음인지 조운은 석에게 머리를 돌리며 말하였다.
“허, 허”
나쁜 일을 하다가 들킨 때처럼 석은 까닭 없이 잠깐 얼굴이 붉어졌다.
그러는 석에게 조운은 다그쳐 물었다.
“자네, 훈장 노릇한 것도 인제 일 년이 되지?”
“서너 달만 있으면 일주년이 되네마는……. 내가 학교엘 나가게 된 걸 자넨 어떻게 알았나?”
“다 알고 있었네. 자네 소식뿐 아니네. 문단동정(文壇動靜)도 알고 있었네.”
소식란을 통하여 알 수 있는 일이라 별반 놀랄 것도 없었으나, 문단을 깨끗이 하직했다고 생각했던 조운이 역시 어디 숨어서 문단을 노려보고, 저조해진 문단을 놀라게 할 대작을 쓰고 있었음에 틀림없다고, 석은 다시 생각하였다.
“근데 어디 있었기에 그렇게 소식이 없었나?”
“오늘은 전라도요, 내일은 강원도요, 동에 번쩍 서에 번쩍했지.”
“부산엔 없었기 그랬지?”
“부산 온지 한 보름밖에 안되네.”
“정말 자네 자동차 회사 중역인가?”
“아암”
“그래 이 자동차 자네건가?”
“영업시키려고 이번 와서 산 걸세.”
“뜬소문하고 틀림없구먼.”
“별의별 소문 다 났지?”
“아암, 처음엔 폭격 맞아 죽었다느니, 부역해 따라갔다느니…….”
“따라 갔다구?”
“자동차 회사 중역이 되어 피난두 제일착으로 하구, 돈을 듬뿍 버얼구…….”
“으음.”
석은 망설이다가 웃으며 말하였다.
“자네가 글쎄 문학소녀하구 붙어 숨어 산다구 하지들 않았겠나? 허허.”
“…….”
그러나 이 말에는 아무 응수도 없이 조운의 얼굴은 다시 굳어졌다.
차 안은 또 침묵에 잠기었다.
출퇴근 시, 길을 건널 때마다, 제기랄 자동차, 하고 욕했던 자동차, 친구의 것이지마는 제 소유물인 양 마음 놓고 쿳숀에 기대 앉아 차창 앞에 어른거리는 길 건너는 사람들의 가지각색 포즈를 어린애 같은 눈으로 관찰하는데 여념이 없는 석에게, 조운의 침묵이나 굳어진 표정은 그렇게 수상한 느낌을 주지 않았다.
‘이 친구가 어디루 끌구 갈 작정인가? 차라리 이대로 교외에 드라이브나 하자구 할까?’
그러자 석은 문득 6·25 전 어떤 친구가 쓴 수필이 생각났다.
자동차 한 대를 하루 동안 세를 내어 운전수 마음 내키는 대로 진종일 달리고 싶다. 찻값은 만원(그때 돈으로).
그러나 그 만 원이 없음을 한탄하는 글이었다. 울적한 심회나 따분한 기분을 전환시키는 방법으로는, 그렇게 통쾌할 것도 재미있을 것도 없으나, 그 친구와 같은 분위기 속에서 헤매고 있던 석은, 실현성이 없는 공상이라 여겨져 그때 그 필자와 함께 웃은 일이 있었다.
그러나 오늘, 그 만 원, 지금 돈풀이로 해서 엄청난 돈이 기적적으로 손에 들어와 그것을 아낌없이 처리할 수 있다 하더라도, 차를 전세 내어 들로 종일 달리고 싶은 심경을 그 친구도 나지 않으리라.
마음은 더 메말라지고 현실적으로 각박해진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입가에 웃음을 띠고 있는 사이 차는 부민관 골목을 꺾이어 들어가더니 관해루 앞에 와 머물렀다.
5
“배알 좋은 거 있수?”
“예, 있습니다.”
뽀이가 갖다 주는 타올로 얼굴을 닦으며 요리를 청하는 조운더러 석은,
“술 하려나?”
하였다.
“그럼 자넨 요리만 먹을 작정했었나?”
조운의 말이 아니라도 석은 제 한 말이 무의미한 것임을 깨닫고 입가에 바보 같은 웃음을 띠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건 아니지마는…….”
불쑥 이렇게 말하는데 조운은,
“자네 술 끊기로 한 게로군!”
하였다.
“………….”
사실, 석은 금주하기로 맹세한 것은 아니나 술은 삼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엄친시하에서 술을 배운 석은 술 먹은 뒤가 깨끗하였다. 술버릇이 얌전하고, 그리고 술이 거나하면 지극히 명랑하여 재치 있는 재담과 멋진 노래도 나오는 석이었으므로, 친구들의 술좌석에서 미움을 받지 않았다. 더욱이 교편을 잡은 뒤로는 동료들 사이에 베풀어지는 주석에서 석은 환영받는 존재였다고 할까? 초조하고 저락해가는 정신적 공백을 메우고 무기력해진 육체에 활력을 북돋울 수 있을 것이라고, 석은 퇴근 후, 다방에 들렀던 길에 문단친구들과 휩쓸리거나, 가끔 뜻 맞는 동료들에게 끌리어 단골 빈대떡집에 나가 추렴으로 소주를 마시는 술좌석을 구태여 마다고 하지 않았다.
이렇게 끌려 다니는 사이, 석은 술이 늘었고 주정 하나가 생겼다. 그것은 말이 많아진 것이었다. 술 먹을 때의 다변은 오히려 좌석을 명랑하게 하는 효과가 있었으나, 집에 와서 중언부언 말로 집안 식구를 자지 못하게 하는 데는 질색이라고, 첫째 아내가 이튿날 아침이면 오금을 박았다.
그러나 그 다변이 지극히 죄 없는 것이었다. 결코 누구를 욕하거나 집안사람을 불쾌하게 구는 것이 아니었다.
“「좁은문」이 출판되게 되었어, 오천 부에 육천 원씩이면 오, 륙이 삼십, 일할 인세면 얼마야 삼백만 원, 삼백만 원이 들온단 말이야. 쌀 두어 가마 턱하니 사 벽장 속에 넣어 놓구 그리고 아버지 어머니 절 구경이나 가시게 하구. 그리고 비로드 요즈음 한 감에 얼마 한다더라. 물건이란 안사면 말구 살테면 최고급을 사야 돼. 최고급 남바 완 벨베트 치마 한 감을 당신 것 사구. 아유 그 몸빼에 요즈음은 활동복이라던거? 그래, 활동복 보기 싫은 것 벗어버리구 말야…….”
이렇게 떠들면 아비의 이불 속에 먼저 기어 들어가 자던 계집애가 어느 틈에 깨어,
“내 것두 사 주어 흐응 아버지!” 한다.
“오오냐. 네 것두 사주구말구. 뭘 사줄까?”
“란도셀.”
“고작 고거야……. 사주구말구. 란도셀뿐이겠니? 멋쟁이 양복, 구두…….”
그러면 또 시험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던 육학년 다니는 놈이,
“졸업하는데 십오만 원이 드는데…….”
그 말을 받아,
“십오만 원, 주지, 주어. 그뿐이겠느냐? 너의 선생님 수고하시는데 한 번도 찾아뵙지 못했어. 내가 훈장질해 보니 그런 게 아니더라. 선생님 한 번 대접두 하구, 학교엔 기부두 해야지.”
공납금(公納金) 때문에 늘 어깨를 펴지 못하던 아이 놈은 그 말을 듣고 해해한다.
“비로도구 뭐구 그건 모루겠수마는, 학교 밀린 돈이나 물구 쌀이나 몇 가마 사서, 긴긴 여름날 애들 허기지게 하지 말았으면…….”
아내는 이렇게 말하고,
“약 두어 제 쓰두룩 하게. 사람 꼴이 말이 아니네.”
어머니 말이었고,
“고달프게 학교엔 나가지 말구, 글 써서 먹구 살게 되었으면…….”
아버지는 이렇게 말하였다.
“잠깐만 참으세요. 이제 책이 척척 출판 되구, 인세가 꼬리를 물구 들어오구……. 그땐 저두 몸이 나구, 얼굴이 훠언해지구…….”
집안이 희망으로 명랑해지나, 그 후 일주일이 지나도 한 달이 지나도「좁은문」인세는커녕 밤을 밝혀 끄적인 잡문 고료도 들어오지 않는다.
몇 번 속아본 식구들은 인젠 석의 큰소리에 흥미는커녕 질색을 하였다.
그뿐이 아니었다. 석의 큰소리 때문에 아내는 이웃에서 쌀 한 톨 꾸어 먹을 수 없게 되었다. 장지문을 맞발라 칸을 막고 있는 위 아랫집들은, 석이 술 먹고 하는 주정을 세세골골이 듣고 있었으므로, 아내가 아쉽다 못해 무얼 융통하러 나가면 으레 말하였다.
“순네 같은 집에 쌀이 없다니, 우는 소리 작작하세요.”
“있으면 누가 우는 소릴 하겠어요.”
“주인이 학교에 나가시지 않아요. 그리고 책 써서 삼백만 원, 사백만 원 척척 들오지 않아요?”
“………….”
이러는 날이면 아내는 석에게 달려들어 오금을 박았다.
“주정두 무슨 주정을 그렇게 주책없이 하여 여편네만 이웃에 웃음거리를 만들어요.”
“못살겠다, 굶어 죽겠다, 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아.”
“차라리 없으면 없다구 하는 게 낫지, 빈 소릴 탕탕해서 이웃에선 우릴 그렇지 않은 줄 알아요.”
“없다는 것보다 낫지 않아!”
“냉수 먹구 이 쑤시겠수?”
“쑤실 때 쑤셔야지.”
“쌀 한 알 융통 못 해두 당신 태평이구려.”
“안 뀌면 그만두라지.”
그러나 석의 주정은 그 후 각도를 달리 하였다.
그것은 우는 일이었다.
하루는 역시 동료들과의 빈대떡 추렴에서 거나해가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달이 밝은 날 밤이었다. 한 손에는 무거운 가방, 한 손은 외투 주머니에 찌르고 시청 앞을 돌려고 하는데, 형으로 대하는 무역회사에 다니는 친구와 마주쳤다.
“P형 아니오?”
덥석 손을 쥐자 석은 왈칵 울음이 치밀었다. 감정이 시키는 대로 와아 하고 울었다. 아무 이유도 없었다.
원래 다정한 P이기도 했으나, 길에서 만난 친구가 와아 하고 우는 것이 창피했을까?
“석, 어디서 그렇게 취했나? 다치면 어쩔라구.”
그는 석의 등을 어루만지면서 지나가는 차를 잡았다. 석을 앉히고 P자신도 앉았다. 차가 미끄러지자, 석은 P의 보들보들한 낙타 외투로 싸여진 듬직한 가슴에 얼굴을 묻고 엉엉 울었다.
“석은, 석은 불우해, 불우해.”
“불우가 가시는 날이 있겠지. 피는 날이 있겠지.”
P는 부드러운 말로 역시 석의 등을 어루만져 주었다.
P가 그렇게 하여 집까지 데려다 주고 간 뒤에도, 석은 자리에 얻디어 훌쩍훌쩍 서툰 푸념을 섞어가며 울었다.
아내도 노인들도 비감해 하였다.
“고진감래라구, 피는 날이 있겠지. 그렇게 비감해 말게나.”
아버지는 담배를 뻑뻑 빨며 말했고,
“그저 몸만 튼튼하면 이만 고생을 고생이라고 하겠는가? 애들이 무럭무럭 자라구…….”
이러고 어머니는 ‘관세음보살’하며 코를 풀었다.
“그만 주무세요. 옛말할 때가 있겠지요.”
아내는 울음 섞인 목소리로 머리맡에 와서 베개를 베어 주고 이불을 발끝까지 똑바로 덮어 주었다.
이러한 부드럽고 어루만짐을 받는 분위기 속에 석은 그날 밤 울다가 이내 자버렸다. 석은 이것에 맛을 들였다.
그 후 그에게는 술 마시면 집에 들어와 우는 버릇이 생겼다. 그러나 처음에는 어루만져 주던 가족들도 거듭되는 울음에 또 머리를 저었다.
“어린애두 아니구, 훌쩍훌쩍 울기는……?”
아버지는 듣다못해 소리를 질렀다.
이튿날 아침이면 아내의 오금이었다.
“신파연극이요? 좋은 소리도 세 번 거듭하면 듣기 싫다는데, 무슨 궁한 울음이요?”
“좋은 소리 때문에 이웃에서 쌀 한 톨 융통 못 한다구 오금 박은 건 누구구?”
“그러기에 술 끊으라는 게 아니우.”
“소주잔 추렴해 마시는 것마저 내한테서 빼앗으면 난 그냥 말라빠지라는 거야?”
“모르겠소.”
그러다가 달포 전이다. 석은 문단인의 어떤 좌석에서 하찮은 일로 흥분하여 빈속에 지나치게 마시었다.
밤중에 어떻게 집을 찾아 들어온 석의 얼굴은 피투성이가 되었다.
집안 식구들은 깜짝 놀랐다. 의사를 데려다 얼굴의 상처를 손질했으나, 술 마실 때 일만 기억에 있을 뿐, 어디서 어떻게 얼굴을 깨었는지 도무지 깜박 공백이었다.
지금까지는 석의 말대로 ‘추렴해 마시는 소주잔’마저 빼앗는 것이 가혹하다 생각하였던 가족도 점점 늘어가는 그의 술에, 강압적 태도로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여보, 그렇게 술이 늘다가는 길에서 쓰러져 죽어두 모르겠소. 그 복잡한 자동차에 정신 좀 차리세요.”
딴은 그랬다. 더욱이 술을 마시고 추태를 연출하는 일 자체가 현실에 질질 끌려가는 무력한 생활이라 생각한 석은 앗차 하고 자신을 돌이켜보지 않을 수 없었다.
“술부터 끊어야겠어.”
그러나 술이나 담배 같은 것은 끊는다고 맹세해 되는 것이 아니었다. 손가락을 자르고 맹세했다가도 그 손가락이 채 아물기도 전에 다시 술잔을 입에 대게 되는 것이 술꾼의 맹세다. 그것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생리요, 생활이다. 다행히 석은 담배는 모르나, 술은 경우에 다다르면 마시지마는, 생리의 일부로 욕구되는 것은 아니었다. 끊는다면 못 끊을 것도 아니다. 그러나 석은 구태여 맹세까지 하고 딱 잡아떼고 싶지 않았다. 연회나 친구와 휩쓸려 앉은 좌석에서 잔을 엎어 놓고 맹숭맹숭해 앉았거나, 얼른 일어서 나오는 행동 따위는 취하고 싶지는 않았다. 요는 술을 삼가는데 있었다. 절주를 못하고 주정을 하고 추태를 부리고, 그러는 것은 역시 내면이 팽팽 차 있지 않는 데서 오는 것이다. 정신생활이 충실했을 때, 알콜 중독자 아닌 이상 술에 먹히는 일은 없을 것이다. 수전노(守錢奴)가 술을 안 마신다면, 그것은 술값이 아까워서보다도 사회적으로는 가치 없는 생활인 돈 모으는 일에 그 자신이 충실한 생활 목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요, 술 마시는 신부(神父)가 취하지 않는 것도 그것이 아닐까? 석은 얼굴을 깬 후, 한 달 동안 술을 마시지 않았다.
6
“자네가 술을 마시면 얼마 마시구, 끊으면 얼마 끊겠나?”
술에도 자신이 규모가 큰 것 같은 어조로 조운은 말하였다.
“딴은 끊을 만한 술도 못되지마는 생각한 바 있어 절주는 해야겠네.”
이렇게 말하고 석은 ‘몸이 저렇게 났으니 기름진 것도 어지간히 먹었겠고 술도 많이 마셨을 것이다.’ 생각하면서, 조운의 보기 좋은 얼굴을 건너다보고 빙긋이 웃었다.
“십 년은 더 늙은 것 같네. 그간 고생 몹시 했지? 학교에서 문 열구 나오는 자넬, 자네루 알아 못 보았었네. 어쩌면 그렇게 훈장 티가 꼭 박혔나?”
“일 년 못돼 훈장 티가 박혀 뵌다면야 슬픈 일이네마는……. 알아 못 보긴 자네가 아니라 나였네. 상글한 콧날과 움푹 움진 눈이 자네 얼굴의 특징이 있었는데, 콧날은 없어지고 눈마저 변했더면 통 알아 못볼 뻔했네.”
“………….”
“그렇게 변한 자네의 삼 년이 알고프네. 6·25 나던 때, 신문사서 갈라진 게 마지막이 아닌가?”
“그랬던가? 내 얘기는 차차하고 자네 지낸 일 들어보세.”
그러는데 요리가 들어왔다.
“자, 들게.”
흰 알잔에 따른 빼주가 쿡 코를 찌른다. 둘은 함께 들어 조금씩 마시었다. 조운의 젓가락은 해삼 요리에 먼저 갔다. 호루몬제라고 중국 요리를 먹을 때마다 죄 없는 화젯거리가 되는 음식이다.
석은 문득 그것을 생각하고 빙그레 웃음을 띠는데, 조운은 큰놈 한 개를 집어 입에 넣고 씹으면서,
“삼 년 동안 나는 타락했네.”
하였다.
“타락이라니? 난 자네의 세계가 넓어지고 커졌으리라 기대하고 있는 판인데…….”
조운은 얼굴에 또 복잡한 표정이 서리더니, 잔에 술을 쳐서 먼저 들어마시고 빈 잔을 석에게 건넸다.
잔은 왔다 갔다 하였다.
석은 얼굴이 화끈해지면서 거나해 간다. 한 달 만에 접구하는 것이라, 좋은 안주에 술맛을 한결 돋우었다.
말하기 꼭 좋았다.
“나는 이를테면 넓은 데서 좁은 구멍으로 기어들어가 옴짝달싹 못하고 기진맥진하고 있는 터이지마는, 자네야 넓은 세계에 활활 날아다니는 셈 아닌가? 작품세계가 커지고 힘차리라고, 오늘 자네를 대할 때부터 그런 기대를 가지고 있었네.”
“작품?”
“그래!”
잠깐 머리를 푹 숙이었다가 조운은 갑자기 일어나더니, 벗어 못에 걸어 놓았던 외투 안주머니에서 종이에 싼 것을 끄집어냈다.
“이걸 보게.”
내미는 종이 꾸러미를 펴보고 석은 어리둥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건 뭔가?”
봉투에는 ‘조운 선생님’이라고 틀림없는 여자의 글씨가 단정하게 쓰여 있었다.
어안이 벙벙해 앉았는 석에게, 조운은 편지를 집어 알맹이를 내어 주었다.
“읽어 보게.”
“읽어두 괜찮은가?”
“읽게.”
펴보니 간단한 문면이었다.
선생님 호의는 뼈에 사무치오나 제가 취할 길은 이미 작정되었습니다. 그사이 저는 선생님 몰래 간호장교 시험에 지원했습니다. 시험은 월요일 대구에서 치르나, 준비 때문에 지금 떠납니다…….
그때 그 넥타이는 집과 함께 재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그 대신입니다. 선생님은 역시 검정 넥타이를 매셔야 격에 어울립니다. 안녕히.
미이 올림
“미이?”
석은,
“그 미이인가?”
하고 가볍게 놀라면서 물었다.
“그렇네.”
미이는 조운을 따라다니던 석은 잘 아는 문학소녀였다. 그러면 뜬소문과 같이 조운은 미이와 도피생활로 삼 년을 지낸 것인가? 그러자 차 안에서 도피 생활 운운의 소문이 떠돌았다고 말하였을 때, 침묵을 지키던 조운의 태도가 새삼스럽게 눈앞에 떠올랐다. 지금까지 관념 속에 그리고 있던 거룩한 조운이 한 개 장사치요, 자동차 바퀴를 굴려 먹고 사는 사람으로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 두려워졌다.
그러나, 갑자기 석은 제 마음이 꽉 차짐을 느꼈다. 그리고 공격적인 어투로 말이 튀어나갔다.
“정말, 자네 미이하구의 관계가 소문하구 같은가?”
“아닐세, 천만에.”
“그럼 이건 무언가?”
조운은 말을 못하고 잠깐 눈을 감았다 다시 뜨더니, 술을 쭉 들이킨 다음 결심한 듯이 입을 열었다.
7
미이는 자네도 알다시피 나를 따르던 문학소녀였었다네. 소설을 쓰겠다고 내게 자주 오던 그는, 그때의 나와는 달라, 화려하고 명랑하고 어느 편이냐 하면 부박한 편이었었네. 다방 같은데 자네서껀 함께 앉은 자리에도 나타난 일이 있었으나, 나타나서는 부박한 의복을 입고 이 테이블 저 테이블로 깡충깡충 뛰어다니며 이 시인 저 작가를 대해 종알거리는 양이 도무지 소설커녕 일기 한 줄도 바로 써 낼 것 같지 않았었네.
처음에는 뉘 집 딸인지 하나 망쳐 먹는다 쯤 생각하고 탐탁하게 응수해 주지 않았으나, 한번은 백 매 정도의 작품을 들구 왔는데, 이건 놀랐네.
맨스필드 풍의 맑고 섬세한 것이었었는데,「행복」에 나오는 베르사·영 비슷한 성격의 여성을 제법 재치 있는 문장으로 다루었었네. 구성과 인생을 보는 눈이 어린 것은 두말할 것도 없었으나, 지도만 잘하면 쓸모 있겠다고 생각했네. 갑자기 관심이 가게 되어, 그런 눈으로 보았음인지 그 후부터 그의 까불랑거리는 행동 전체가 재기(才氣)의 발산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네. 대단한 다변, 재빠른 말투였으나, 귀를 기울이고 들으면 입을 비쭉거리며 지껄이는 독설 같은 데서 새롭고 날카로운 쎈스를 붙잡을 수 있었네. 가령 다방에 모여드는 문인패들을 하나하나 평하는 데도 머리를 끄덕일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었네. 더욱 관심을 가지게 되어 알아보니, 모 회사 중역의 딸이었었네. 여의대에 다니다 문학을 한다고 학교를 집어치웠다네. 하나밖에 없는 오빠는 X은행원이고.
부유한 가정에서 귀엽게 자랐다는 것이 그의 명랑성과 관련하여 수긍되었네. 가정이 여유 있고 보니 신문이나 잡지사 기자로 취직해서 빤들빤들 다스려질 위험성도 없을 터이고 하여, 만나는 대로 좋은 말을 들려주었더니, 하루는 오빠를 끌구 왔네. 오빠는 누이와는 달라 침착한 청년이었었네. 공손히 인사하고 미이는 문학에 취미도 있고, 다소 재분도 있는 듯해 그 길로 내보낼까 하는데, 잘 인도해 달라는 것일세, 하필 나 같은 것에게 하고 사양했으나, 그 후부터 미이는 나를 모시다시피 따라다녀, 나 있는 데는 그림자 같이 함께 있었네. 이러한 어느 날 미이는 내가 매고 있는 검정 넥타이를 가리키며 말하였네.
“선생님 넥타인 항상 검정 거니 그건 무얼 의미하는 거예요?”
“내 넥타이가 검정이었던가?”
그제야 나는 내 넥타이가 낡아빠진 검정 것임을 깨닫고 그것을 어루만지며 웃었네.
“의민 무슨 의미야, 없으니 이걸 맺지.”
“인생에 대한 상장(喪章) 아녜요?”
“상장? 허, 허, 그런 걸 일일이 생각하구 옷을 입다간 머리가 빠지겠네.”
“난, 선생님 대할 때마다, 그리구 늘 검정 넥타이만 매구 계시는 걸 보구 그렇게 생각했어요.”
“아무렇게나 생각하지 그래.”
“체홉의 「갈매기」아시죠? 엊저녁 읽었는데 퇴역 중위의 딸 마아샤가 늘 검정 옷을 입고 있는 걸 보고, 소학교 교사 메도베……, 무언가 하는 청년이 묻지 않아요, 왜 검정 옷을 입고 있는가구. 마아샤의 대답이 그거예요. 인생에 대한 상장이라구.”
“그런 거 있지, 그러나 난 그런 상징적인 의미로 검정 넥타일 매는 건 아냐.”
"선생님 태도와 검정 넥타인 어울려요.“
“어떻게 하는 말이지?”
“가령 속세적(俗世的)인 것에 초연한 거라든가……, 세상 일 얼굴 찡그리구 꼬치꼬치 캐서 생각하는 거라든가.”
“………….”
“그러나 난 인생을「갈매기」의 세계 같이는 보구 싶진 않아요.”
“그렇게 비관은 안한단 말이지?”
“그럼요.”
“좋은 생각이군.”
“그렇지 않아요? 난 인생이 즐겁구 고마워 못 견디겠어요.”
“아하.”
“우리 어머니 날 배기 전에 유산을 했대요. 사 개월만이었다는데, 유산 후 두 달 만에 나를 뱄다잖어요. 계산해 보세요. 언니가 될지 오빠가 될지 모르는 아기가 유산 않구 그대루 났더라면 난 이 세상 구경 못 하는 게 아녜요?”
“그렇구.”
“그걸 생각하면 인생이 즐겁구 고마워서 견딜 수 없어요.”
“그래 그렇게 명랑하군 그래.”
“왜 명랑하지 않겠어요.”
하고 혼자 좋아서 깔깔대더니 갑자기 웃음을 멈추고,
“선생님도 인생을 즐겁게 보세요. 좀 화려해지시구, 이맛살 펴시구, 우선 그 넥타이부터 풀어 던지세요. 이리 오세요.”
하더니 다짜고짜로 나의 팔을 끌고 동화백화점으로 들어갔네.
“가만 계세요. 제가 고를 께요.”
하고 남색 바탕에 새빨깐 따리아 한 송이가 타는 듯이 돋쳐 있는 걸루 골라, 그 자리에서 내 목에 매어 주고, 낡은 검정 넥타이는 접어 싸서 핸드빽 속에 집어넣었다.
그 후 며칠 지나지 않아 6·25 사변이 터졌네. 구십일 동안 나는 가족을 데리고 처가가 있는 수원 어느 시골로 내려가 숨어 지냈는데, 적의 무자비한 박해에 따르는 배신, 음해, 고발, 아유 등등, 기타 일체 인간성의 추악한 면이 좁은 고장인 만큼 더 노골적으로 더 단적으로 나타는 것을 듣고 보고 하였네. 거기에 거듭되는 폭격 밑에 시골인지라 그 곳에서 할아버지, 아들, 손자, 증손자, 고손자 몇 대(代)가 나고 죽고, 장가가고 시집가고, 환갑 진갑을 차렸을 집들이 실로 삽시간에 날아가 폐허가 되고, 파리의 그것 같이 사람의 목숨이 값이 없고……. 처삼촌 되는 사람네 마루 밑에 숨어 박혀 생명의 위협을 느끼면서 생각하는 기능조차 상실한 듯했네. 몸은 극도로 약해져서 적의 손이나 폭격에서가 아니라도 목숨이 저절로 사라질 듯 하였네. 인생에 대하여 겸허해지고 용기가 없어진 나는, 어렴풋한 의식 속에서도 생각한 것이, 죽지 않고 살아나게 되면 다음 시기에는 인생을 까다롭게, 그리고 이맛살을 찡그리고 살 것이 아니라는 것이었네. 넥타이를 사 주던 때에는 무심히 들어 넘겼던 미이의 말이 그의 모습과 함께 되살아나 입가에 웃음이 떠올라지데. 미이는 어머니의 유산 덕분에 못나올 세상에 태어난 것을 고맙고 즐겁다고 했으나, 사람이 어머니 배에서 잉태되어 태어난다는 것은 수억만 개, 아니 천문학적 숫자의 정자(精子) 중에서 특히 선택을 받은 은혜가 아닌가? 천문학적인 숫자의 형제자매가 향유 못하는 이 세상 구경을 하게 된 것이 사람일진대, 그 인생을 이맛살을 찡그리고 까다롭게 노려보고 꿍꿍 앓으면서 지낼 것은 무엇인가? 무어 용한 생각했다구? 물론 허황한 생각이고, 자네의 조소를 받을 줄 아메마는, 그때 나는 이런 생각을 골똘히 하고 있은 것만은 어김없는 고백일세.
수복 후 이렇게 생각해 얻은 결론을 실천에 옮긴다는 뜻에서인 것은 아니었었으나, 당면한 생활문제 때문에 어떻게 처삼촌과 손을 잡고 일을 한 것이 자동차 운수업이었었네. 원래 처삼촌이 활동가이기도 했거니와 수복 직후였으니 짐은 얼마든지 있었네. 어름어름하는 사이에 단 한 대의 추럭이 두 대로 불었고, 두 대의 추럭 바퀴가 불이 나게 구는 틈에, 1·4 후퇴를 당하게 되었네. 또 한 몫을 보았을 것이 아닌가? 돈은 저절로 벌어지데. 나로서는 이를테면 이런 성공이 없었네. 후퇴 때 어떻게 하여 광주에 내려와 쭉 거기 본거를 두고 있으나, 이번 부산으로 진출해 승합과 버스 영업을 해 보려고 건너온 참이네.
일이 바쁘기도 하려니와 돈 버는 재미는 또 지금까지 생각지도 못했던 새로운 경지인지라, 나는 저도 모르는 사이에 그 세계에 미끄러져 들어갔네. 얼굴을 찡그리고, 무얼 생각하고, 값싼 담배를 하루에 오십여 대씩이나 연달아 피워 가며, 좁은 방에서 떠드는 아이들에게 신경질을 부리면서 원고지 빈 칸을 메우는 그런 생활이 고리타분하게 여겨지데. 일체 생각을 하지 않으니 몸이 나고, 마음을 즐겁게 가지니 이맛살이 펴지고, 잘 먹고 잘 자니 얼굴이 붉어지고, 처음 얼마 동안은 이런 생활이 올바른 것일까? 일종의 자책도 있었으나, 에라 내가 한국에서 글을 썼댔자, 프뢰벨이 되겠나, 지이드가 되겠나, 한 푼 어치 값도 못가는 것을 글이랍쇼, 신문잡지에 인쇄하여 이름이 알려졌다는 것으로 괴뢰적당의 박해의 대상이 된 것밖에 더 있었느냐? 이렇게 생각하고는 이름마저 호, 조운을 버리고 최춘택, 본명으로 돌아가 ‘춘수(春水)는 만사택(滿四澤)’ 두루 태평으로 술도 무작이요, 계집도 마음대로 돌아다니는 판이었었는데, 부산 와서 이틀 되던 날 오후였었네.
아까 그 차를 사가지고 모타 풀로 부속품 넣을 것이 있어 가는 길인데, 부산역 앞에서 길을 건너는 미이를 발견한 것일세. 서행으로 구으는 차창 앞에, 길을 건널까 말까 망설이고 있는 미이를 나는 대뜸 알아보았네.
차를 세우고 문을 열고 상반신을 밖으로 내민 나는,
“미이, 미이.”
하고 불렀으나, 미이는 이내 나를 알아보지 못하데나.
‘최춘택, 아니 조운이야’하는 것을 듣고야 비로소 미이는 반색하데.
“어마, 조운선생!”
나는 차에서 내렸네.
운전수에게 차를 모타 풀에 맡기라 이르고, 미이와 함께 부근 다방엘 갔었네.
“어쩌면 그렇게도 변하셨어요?”
“미이가 날더러 말한 일 있잖아. 이맛살 펴구, 세상 즐겁게 보라구.”
“………….”
“미이 말대루 했더니 미이가 알아 못 보게 변했는가봐.”
하고 껄껄껄 웃었네.
호, 호, 호, 내 웃음을 따라 명랑하게 웃으며 들까불 줄 알았던 미이는, 내 말에 그다지 큰 반응을 표시하지 않았네.
다방에서 뿐 아니네. 처음 길에서 만났을 때부터 미이는 침착했고 어른스러웠네. 서울서와는 반대로 내가 차를 주문한다 신문을 산다 하며 명랑하게 지껄이고 웃고 하였고, 미이는 묻는 말에나 겨우 대답하는 정도로 처음 앉은 자리에 몸을 붙이고 앉아 있을 따름이었네.
“나두 변했으나 미이두 변했는데. 꼭 서울서와는 반대야. 내가 명랑해지구, 미이가 침울해지구, 어쩌면 고렇게 얌전해?”
그제야 호, 호, 호, 입을 손으로 가리고 웃고 나서,
“저도 지금 막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리고,
“사변덕에 성격이 변해졌나 봅니다.”
힘없이 말하였네.
“참, 사변통에 피핸 없었는지? 양친 안녕허시구 오빠두……?”
“오빤 행방불명, 아버진 반신불수, 집은 재가 되구.”
“저러언.”
위로의 말과 함께 자세한 것을 묻자고 하는데 미이는 숙이듯 했던 머리를 쳐들고 사변 후의 가정형편을 쭉 이야기하였네.
집이 폭격을 맞은 것은 칠월 말, 사발 한 개 끄집어낼 수 없었으나 가족의 생명을 건진 것이 무엇보다 천행이었다네. 용산에서 안암동으로 옮겨, 친척집 바깥방에서 어머니와 미이가 쌀장수를 하여 겨우 풀죽으로 연명해 나갔으나 그런 가운데서도 용하게 숨어 배겼던 오빠가 수복도 얼마 남지 않은 구월 이십일 경, 친구의 집에 정보를 알아보겠다고 나간 후, 행방불명이 되었다네. 열흘이 못 지나 수복되었을 때, 나타나지 않은 아들 때문에 애통하는 늙은 부모의 정경은 눈을 뜨고는 볼 수 없었다네. 불행과 비애가 아직 채 가시기도 전에 1·4 후퇴였고, 김해에 피난 보따리를 풀었으나, 상심 끝에 아버지는 뇌일혈로 반신불수가 되었다네.
아버지의 회사는 그 후 부산에 영업을 펴게 되었으나, 시원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반신불수로 누워 있는 아버지는 자연히 그 경영에서 떠나게 되었다네. 주를 헐가로 팔아넘긴 돈으로 겨우 생활을 유지했으나 감꼬치 빼 먹듯, 있는 돈을 고스란히 소비하는 것이 불안하여, 두어 달 전에 부산에 이사 와서 판잣집 하나를 얻어 어머니가 집 앞에 목판 장수를 벌리고 미이 자신은 어디 취직 자리를 구하고 있는 중이라는 것이었네.
미이가 차곡차곡히 눈물이 글썽하여 하는 이야기를 듣고 나는 그를 위하여 무슨 힘이 되어 줄 수 없는가 진정으로 동정하는 마음이 일어났네. 더욱이 천생의 명랑성이 감추어지고, 침울하고 얌전해진 그 태도가 측은하기 짝이 없었네.
그 명랑성을 돌이켜 줄 수는 없을까? 그 날카로운 쎈스를 그대로 빛내게 해 줄 수 없을까? 그대로 행복하게 해 줄 수 없을까? 그때의 내 마음은 사실 순수했었네.
이런 마음으로 미이를 보고 있으려니 이야기를 그친 미이는 잠깐 입을 다물었다가,
“선생님은 살아가는 것을 즐겁다고 생각하세요?”
오금 박듯 말하였네.
나는 뜨끔하였네. 그리고 일부러 내 편에서 더 명랑성을 띠며 응수했네.
“건 미이답지 않은 질문인데. 오오라, 사변통의 불행으루 미이 인생관이 변했군 그래……. 그러니까, 이를테면 백팔십도 전환으루 지금은 인생을 비관한단 말이지?”
“비관하는 건 아녜요.”
“비관 안 해? 그럼 안심이야. 비관 안함 역시 낙관이겠군.”
“비관두 낙관두 아니에요.”
“호, 호, 호, 말재주 어디서 그렇게 느셨어요?”
미이의 침울이 풀려지는 듯해 나는 될 수 있으면 그로 하여금 명랑하였던 서울 시절을 회상하도록, 기억에 남아 있는 서울서의 화제를 끄집어내었네.
“이것두 저것두 아님, 세상 나오질 않을 걸 그랬군. 오빤지 언닌지 모르는 그 애기에게 양보할 걸 그랬어…… 하, 하, …….”
“선생님 기억두 참 좋으시네. 그 말을 잊지 않으셨군요……. 그러나 그렇게 생각진 않아요. 역시 이 세상에 나온 걸 고맙게 여겨요. 기쁘게 여겨요.”
“그렇게 생각한다? 그럼 더욱 안심이군. 그러니까 결국 미이 생각 변한 게 없구먼……, 서울 때처럼 명랑해지구 기운을 내라구.”
“생각 변한 게 있다면 이걸까요?”
“뭐? 역시 변한 거 있나?”
“그 어려운 목숨과 형체를 받아 사람이 세상에 나오게 된 것이니, 필요 없이 내보내지 않았을 거예요. 이 세상에 꼭 할 일이 있기에 내보낸 것이 아닐까요?”
“사명(使命)을 지고 나왔다는 말이지?”
“예, 사명이에요. 보람 있는 사명이에요.”
“………….”
문득 나는 내 자신을 돌이켜 보고 움찔했으나, 미이는 말을 이었네.
“그러나 제 사명을 바루 찾아 그 사명을 다하는 사람두 있구, 못 찾구 거지처럼 보람없이 인생을 마치는 사람이 있을 게라구 생각해요.”
“그럼 미이 사명은?”
“………….”
미이는 머리를 숙이더니 숙인 채로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듯 말하였네.
“헤치구 찾아 봐야잖아요?”
이튿날부터 부산에서의 새 사업계획에 분망한 틈을 타서, 나는 미이를 하루 한 번씩은 만났고, 그의 판잣집에도 찾아가 보았네. 그 생활이란 말이 아니데. 꼼짝 못하고 누워 있는 미이 아버지의 얼빠진 모양, 고생 모르고 늙던 어머니의 목판 장사하는 정경.
나는 미이의 가족을 구해야겠다는 생각이 더욱 간절했네. 그러나 미이와 자주 만나는 사이 처음의 순수했던 생각보다도 야심이 더 앞을 섰다는 것을 고백하네. 술과 계집이 마음대로였던 내 생활이라, 미이에 대해 밖으로 나타나는 태도도 좀 다르다고 미이 자신이 눈치챘을 것일세.
나는 다방을 하나 차려 줄 것에 생각이 미치었네. 이것이면 내 힘으로 자금 유통도 되고, 미이의 명랑성도 쎈스도 살릴 수 있고, 수입면도 문제없다고 생각했네. 이 계획을 말했더니, 처음에는 그럴사하게 듣고, 얼굴에 희망의 불그레한 홍조까지 떠올리던 미이였으나, 다음 날 오일 간의 생각할 여유를 달라는 것이었었네. 더 생각할 여지도 없는 일일 터인데 망설이는 것이 수상쩍었으나, 그러마 하고 나는 동아극장 옆에 있는 마침 물려주겠다는 다방 하나를 넘겨 맡기로 이야기가 다 되었었네. 그 닷새 되는 날이 오늘이고, 정한 시간에 연락장소인 다방엘 갔더니 레지가 내민 것이 이 종이 꾸러미였었네. 펴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네. 다른 길과 달라 간호장교이고 보니 생활 방편을 위한 것이 아님이 대뜸 짐작이 갔고, 더욱 나의 뒤통수를 때린 것이 검정 넥타이었었네. 그러면 미이가 첫날 다방에서 ‘사명운운……’했던 것은 그 길을 말함이었던가? 나는 부끄럽기 짝이 없었네. 검정 넥타이를 들고 나는 비로소 삼 년 동안 내가 정신적으로 타락의 길을 걷고 있었다는 것을 뼈아프게 느끼었네. 미이가 말하는 그 사명을 찾는 길, 사명을 다하는 일을 나는 사변이라는 외적인 격동 때문에 포기하고 만 것일세. 가장 잘 생각하는 척하던 나는 가장 바보 같이 생각했고, 부박하다고 세상을 모른다고 여기었던 미이는 사변에서 키워졌고 굳세어졌고, 올바른 사람이 된 것일세. 이렇게 생각하자 나는 천야만야한 낭떠러지를 구을러 떨어지는 듯했네. 구을면서 걷어잡으려고 한 것이 친구의 구원이었네. 자네를 찾은 것이 이 때문일세.
8
조운의 긴 이야기를 듣고 난 석은, 여기 올 때까지 그렇게 호기심을 끄을었고 기대의 대상이 되었던 그에게는 이젠 아무런 흥미도 가지지 않았다. 더욱이 그의 고민 같은 것은 문제도 아니었다.
석의 뇌와 마음은 강렬한 미이의 인상으로 꽉 차 있었다.
그리고 미이가 조운의 마음에 던져 준 충격 이상의 충격을 석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안주가 좋아서만이 아니었다. 그 강렬한 백알도 석을 취하게 하지 못했다.
역시 마음이 미이로 말미암아 팽팽 차 있었기 때문이었다.
조움의 차로 집에 돌아와서도 석은 큰소리를 탕탕 치거나 울거나 하지 않았다. 얌전하게 자리에 들어가 가족들을 들볶지 않았다.
그의 엄숙한 태도가 가족들은 또 술을 먹었다고 잔소리를 할 수 없었다.
자리에 드러누워 그는 생각하였다.
“조운의 말대로 조운은 사변의 압력으로 그의 사명을 포기했고, 사변을 통하여 미이는 용감하게 시대적 요구에 응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변하였다. 그러면 나는?”
눈을 감았다가 뜨며 석은 중얼거렸다.
“사명을 포기치도 그것에 충실치도 못하고 말라 가는 나는? 나도 사변이 빚어낸 한 타입이라고 할까?”
'문제작품(단편소설) 초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동리 작 밀다원시대 평설 (0) | 2012.07.30 |
---|---|
김동리 작 밀다원시대 (0) | 2012.07.30 |
안수길 작 제삼인간형 평설 (0) | 2012.07.30 |
허련순의 소설 <거미를 살려줘> 평설 (0) | 2012.07.30 |
단편소설 <거미를 살려줘> 허련순 (0) | 2012.07.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