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작품(단편소설) 초대

김동리 작 밀다원시대

SM사계 2012. 7. 30. 09:05

 

 

 

 

 

蜜茶苑時代

金東里

부산진(釜山鎭)에 들어서면서부터 기차는 바다에 빠지지 않으려고 몸을 뒤로 뻣대었다. 초량역(草梁驛)에서 본역(本驛)까지는 거의 한 걸음 한 걸음을 재이듯 늦장을 부렸다.

이중구(李重九)는 팔목시계를 보았다. 여섯시 이십분, 어저께 세시 십오 분 전에 탔으니까 꼭 스물일곱 시간 하고 오 분이 걸린 셈이다. 스물일곱 시간하고 삼십오 분. 그렇다. 그 동안 중구의 머릿속은 줄곧 어떤 ‘땅끝’이라는 상념으로 차 있는 듯했다. 끝의 끝, 막다른 끝, 거리서는 한 걸음도 더 나갈 수 없는, 한 걸음만 더 내어 디디면 ‘허무의 공간’으로 떨어지고 마는, 그러한 ‘최후의 점(點)’같은 것에 그의 의식은 완전히 사로잡혀 있는 듯했다. 그것은 승객의 거의 전부가 종착역(終着驛)인 부산을 목적하고 간다는 사실 때문만은 아니었다. 부산이 이 선로의 종점인 동시, 바다와 맞닿은 육지의 끝이라는 지리적인 이유 때문만도 아니었다. 또, 그 열차가 자유의 수도 서울을 출발지로 하고, 항도 부산을 종착점으로 하는 마지막 열차라는 이유 때문만도 아니었다. 이러한 이유를 다 합친 그 위에 또 다른 이유가 무언지 더 근본적이며 더 절실한 이유가 개재되어 있는 듯했다.

그러나 중구는 그것을 알 수도 없었을 뿐더러 생각하기조차 싫었다. 그런 채 그는 다만 기차에서 내렸다. 기차에서 내리는 것까지는 어려운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서울을 떠날 때 이미 예정되었던 행동이었고, 또 기차는 이 예정에서 벗어나거나 바다에 빠지지 않기 위하여 부산진에서부터 목이 쉬도록 울며 조심조심 기어 온 것이 아닌가?

홈에 내렸을 때까지는 아직도 약 이천 명에 가까운 동지들이었다. 적어도 그들은 오십 일년 일월 삼일이라는 최후의 시간까지 자유의 수도를 지킨, 같은 겨레의 같은 시민들이요 같은 시간에 같은 차로 같은 목적지에 내린, 같은 ‘운명체’가 아닌가. 그들의 살벌한 얼굴에도, 위엄 있는 얼굴에도, 아부적인 웃음을 띠운 얼굴에도, 그들이 아직 홈에서 발을 옮기고 있는 동안에는 다 같이 ‘동지’는 살아 있었다.

그러나 한번 출찰구를 빠져나와 그 넝마전 같은 역 마당에 발을 들여 놓는 순간부터 약속이나 한 것처럼 그들의 얼굴에서 ‘동지’는 어느덧 다 죽어져버렸다. 출찰구를 통과함으로써 ‘동지’는 절로 해산이었다. 그리고, 해산을 동시에 새로운 자유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중구는 이 ‘새로운 자유’를 안고 출찰구 밖으로 던져진 채 한 순간 전의 ‘동지’들이 이제는 모두 남이 되어 돌아가는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모두들 어디로 저렇게 찾아가는 것일까. 중구는 그것이 신통해서 견딜 수 없었다. 그들이 모두 부산에 친척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란 것은 중구로서도 장담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본디 부산 사람들이 아님은 더욱 말할 나위도 없었다. 그렇다면 그들은 모두 어디로 가는 것일까. 어찌하여 그들은 출찰구를 빠져나오자마자 그렇게 쓱 쓱 찾아갈 곳이 있단 말인가. 어찌하여 그들은 한 순간에 ‘동지’에서 벗어나 그렇게 용감하게 자유를 행동할 수 있단 말인가. 어찌하여 그들은 한 순간에 ‘동지’ ‘막다른 꿈’이란 것을 모른단 말인가. 이 ‘끝의 끝’ ‘막다른 끝’에서 한 발자국이라도 옳기면 바다에 빠지거나 ‘허무의 공간’으로 떨어진다는 것을 잊었단 말인가. 그렇지도 않다면 정녕 이 ‘끝의 끝’ ‘막다른 끝’까지 온 사람은 중구 자신뿐이란 말인가. 그렇다고 하더라도, 어쩌면 이렇게 일천오백 명도 넘는 사람 가운데 중구 자신과 같이 서성대고 두리번거리는 사람은 하나도 없이 모두들 그렇게 용감하게 찾아갈 곳이 있단 말인가. 이것은 기적이다. 엄청난 기적이다. 중구는 혼자 속으로 이렇게 뇌까리며 저도 모르게 와아 몰려가고 있는 행렬을 따라 어슬렁어슬렁 발을 옮겨 놓았다. ‘저도 모르게’, 그렇다. 이것은 ‘동지’의 관성(慣性)이었는지도 몰랐다.

중구가 ‘저도 모르게’ 또는, “이형은 어디로 갈 데 있어요?” 하는 소리가 왼쪽 귓전을 울렸다. 자줏빛 마후라에 손가방 하나─그것이 중구의 것보다 좀 반짝거리고 배가 불러 보이기는 했지만─를 든 K통신사의 윤(尹)이었다. 중구는 언제나 하는 버릇대로 카키빛 털실 장갑을 낀 왼쪽 손으로 입을 가려 보임으로써 말씀 아니라는 뜻을 나타낸 다음, 이번에는 와아 몰려가고 있는 ‘동지’들을 턱으로 가리키며, ‘모두들 어디로 가는 겁니까?’ 하고 되물어 보았다.

윤은 입술을 꼭 다문 채 의미 있는 듯한 웃음을 띠어 보이며, “다 갈 데가 있는 모양이지요.” 할 뿐이었다. 전찻길을 건너섰다. 이번에는 중구가 또 물었다. “윤형은 그래 어디로 가시오?” 이것은 그냥 인사가 아니다. 왜 그러냐 하면 아까 윤이 중구에게 먼저 이렇게 물었을 때는, 아는 사람 사이에 건네는 지나가는 인사일 수도 있었지만, 지금 중구와 같이 자기의 처지를 이미 표백한 다음에는, 어디 좀 같이 따라갈 수 없겠소, 하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윤은 먼저와 같이 입술을 꼭 다문 채, 입안에 소금을 머금은 듯한 웃음을 띠어 보이며, “우리 같은 놈이야 별 수 있소? 염치 불구하고 통신사 지국(支局)을 찾아가는 길이지요.” 한다. 이 ‘염치 불구’는 중구를 경계하기 위하여 덧붙인 말일는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것이 중구에게는 도리어 반대적인 효과를 나타내었다. 중구도 ‘염치 불구’에 한 몫 끼기를 ‘염치 불구’하고 희망했기 때문이다. 윤은 세 번째 그 소금을 머금은 듯한 같은 웃음을 띠어 보였다. 그뿐이었다. 승낙도 거절도 따로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 경우 중구는 이것을 승낙으로 취하는 ‘자유’를 행사하고 잠자코 그의 뒤를 밟아 가면 되었다.

K통신사의 지국은 보수동이었다. 윤과 중구가 인도받아 들어간 곳은 넓이가 서너 간이나 남짓 되어 보이는 지국 사무실이었다. 윤은 “할 수 없지, 여기라도 자지 어떻게?” 했다. 중구도 “그럼.”했다. 윤은 또 저녁을 사 먹으러 나가지 않겠느냐고 묻는 것을 중구는 싫다고 했다. 나중 윤이 저녁을 마치고 오는 길에 조그만 소주병 하나를 들고 와서 한 컵 하지 않겠느냐고 하는 것을 중구는 또 싫다고 했다.

테이블 네 개를 한데 붙여서 탁구대(卓球臺) 모양으로 만들고, 오바도 입은 채, 털모자도 쓴 채, 중구는 그 위에 자기의 몸을 눕히었다. 어디서인지 문풍지 우는 소리 같기도 하고 피리소리 같기도 한 것이 울려왔다.

지국장이 붙인 초 한 자루를 내어다 주며 “주무실 때는 끄고 주무시소.” 했다. 윤이 고맙다고 대신 인사를 했다.

중구는 중구대로, 저 촛불이 켜진 공간만치는, 이 시커먼 얼음덩이에도 구멍이 나리라고 생각해 보았다. 어쩌면 벽의 얼음도 조금씩은 녹아내릴는지 모른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들어 유리문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 컴컴한 어둠 속에 서 있는 검은 얼음장은 어느덧 중구를 위하여 자장가를 불러주는 시커먼 곰이 되어버렸다.

중구는 꿈인지 아닌지 분간할 수도 없는 상태에서 몇 번이고 자기가 벼랑에 붙어 있는 거라고 느껴졌다. 천길 벼랑에 붙어 있는 거라고 느껴졌다. 천길 벼랑에서 떨어지면 그 밑은 쉰길 청수라는 것이었다. 그것이 아무런 연결도 비약도 없이, 그대로 기차이기도 했다. 기차는 상당히 경사가 심한 내리막을 달리고 있었다. 기차는 이미 어떠한 방법으로도 정지를 시킬 수 없다는 것이었다. 브레이크가 듣지 않는 자전거가 내림으로 쏠리는 거보다도 더 무서운 속력으로 바다를 향해 달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기차가 미처 바다에 빠지기 전에, 중구의 의식과 잠재의식은 혼선이 되며, 자기의 몸은 지금 벼랑인지도 모르고 테이블 끝인지도 모르는 데서 떨어지려 하고 있다고 느껴지는 것이었다. 이러한 의식과 잠재의식의 혼선상태는 밤새도록 무수히 되풀이되곤 하였다.

그러면서도, 중구는 그가 부산에 와 있다는 사실과, K통신사의 지국 사무실에 자고 있는 사실과, 윤과 함께 누워 있다는 사실을, 그 의식과 잠재의식의 틈바구니 사이에서 한 번도 의식하지 못한 채였다. 그만치 그의 심신은 피로해 있었다.

샐 무렵이 되어, 창장도 없는 유리문─그것이 곧 사무실의 출입문이기도 했지만─에 어리인 희부연 새벽빛을 바라보자, 동시에 그의 의식은 현실로 점화(點火)되었다. 그것은 섬광(閃光)처럼 빨랐다. 순간에 그는, 곁에 누워 있는 윤을 의식하고, K통신사의 지국 사무실을 의식하고, 테이블 위를 의식하게 되었다. 그뿐 아니라, 거의 같은 순간에 서울 원서동 막바지 조그만 고가(古家) 속의 냉돌방에 홀로 버려두고 온, 천만(喘滿)으로 지금도 기침을 쿨룩거리고 있을 늙은 어머니와, 충청남도 논산이가 하는 데에 그 친정붙이를 의탁하여, 어린 것까지 이끌고 찾아내려간 아내의 얼굴이 한꺼번에 확 불 켜지듯 했다. 이틀이나 끼니를 놓았을 어머니는 지금쯤 벌써 목에 해소를 끓이며 죽을 시간을 기다리고 늘어져 누워 있을 것이다. 어린 딸년은 그 복잡하고 살벌한 차 속에서 사람에게 밟히고 짐에 치이고 하다 굴러 떨어져 죽은 것이나 아닐까. 중구가 지금까지 부산을 ‘끝의 끝’, ‘막다른 끝’이라고 생각해 온 것이, 지금 누워 있는 K통신사 지국 사무실의 잠자리가 춥고 불편하다는 뜻이 아님을 깨달았다. 어디서인지 또 바람 소리도 같고 젓대 소리도 같은 것이 들려왔다.

“이형은 그래 문단에 그만치라도 이름이 있으면서 부산에 그렇게도 아는 사람이 없단 말이오?” 윤이 구두끈을 매며 중구에게 물었다. “글쎄 갑자기 생각이 나지 않아서……, 오늘 밀다방이래나 하는 데를 나가 봐야지……”

하고, 중구는 혼잣말 같이 받아 넘기기는 하였으나, 실상은 ‘갑자기’가 아니요, 여러 날 두고 생각해 보았고, 차에 오는 동안에도 줄곧 생각해 본 것이 이꼴이었다. 그만치 그는 본디 주변머리도 없었지만 부산엔 또한 아무런 연고도 연락도 없었던 것이다. 오늘 아침, 지국장에게서, “서울서 온 문화인들은 모두 밀다방에 모인다지요?” 하는 소리를 듣지 못했던들 그는 지금 만치도 활기 있게 지국문을 나서지 못했을 것이었다.

‘밀다원’은 광복동 로타리에서 시청 쪽으로 조금 내려가서 있는 이층 다방이었다. 아래층 한 쪽에는 ‘문총’ 간판이 붙어 있었다. 간판 바로 곁에 달린 도어를 밀고 들어서니 키가 조그맣고 얼굴이 샛노란 평론가 조현식(趙賢植)과 그와는 반대로 키가 훨씬 크고 얼굴빛이 시뻘건 허윤(許允)이 테이블 앞에 서 있었다. 그들은 중구를 보자 반가운 얼굴로 손을 내어밀었다. “당신도 왔군.”하는 것이 조현식이요. “결국 다 오는군요.”하는 것은 허윤이었다. 중구는, 친구란 것이 이렇게도 좋고, 악수란 것이 이렇게도 달고 향기로운 술과도 같이 전신에 퍼져 흐를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짐은 어쨌느냐, 가족은 어쨌느냐, 차편은 무엇을 이용했느냐, 지난밤은 어디서 잤느냐, 하는 두 사람의 연속적인 질문에 중구는 통틀어 간단히 대답하고, 다시, 낯수건과 칫솔과 내복 한 벌과, 그리고 어머니의 사진 한 장이 있는, 다 낡은 손가방 하나를 꺼뜩 들어 보이며, 이것이 전부라고 설명을 첨가했다.

현식은, 이층의 다방으로 중구를 인도했다. 층계를 반쯤이나 올라갔을 때부터, 다방에서 나는 사람들의 말소리가, 닝닝거리는 꿀벌떼 소리같이 그의 고막을 울렸다. 중구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는 한 순간 발을 멈춘 채, 무엇이 그를 이렇게 즐겁게 하고 흥분시키는 것인가를 생각해 보았다.

“시굴 사람처럼 무얼 그렇게 머뭇거리고 있어?” 먼저 다방에 발을 들여 놓은 현식의 핀잔이었다. 중구는 카키빛 털실 장갑을 낀 왼쪽 손으로 또 입을 가림으로써 현식의 핀잔을 막아내는 시늉을 했다.

다방 안은 밝았다. 동남쪽이 모두 유리창이요, 거기다 햇빛을 가리게 할 고층 건물이 그 곁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한가운데는 커다란 ‘드럼통 스토오브’가 열기를 뿜고 있고, ‘카운터’ 앞과 동북 구석에는 상록수가 한 그루씩 놓여 있었다. 그리고 얼핏 보아 한 스무 개나 되염즉한 테이블을 에워싸고 왕왕거리는 꿀벌떼는 거의 모두가 알 만한 얼굴들이었다. 중구는 일일이 돌아가면서 인사를 하기가 쑥스러우므로, 가까이 앉아 있는 친구들과, 또는 저쪽에서 일어나다가온 친구들과만 악수를 하고 멀리 있는 사람들에게는 목례와 점두(點頭)로서 인사를 치렀다.

“이 양반 그새 시굴 사람 다 됐어. 무얼 그렇게 두리번거리고 서 있어?” 현식이가 두 번째 주는 핀잔이었다.

중구는 악수를 끝내고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화가 송시명(宋時明)과 여류작가 길선득(吉善得) 여사가 몰려와서 테이블을 에워싸고 함께 앉았다. 언제 왔느냐, 가족은 어쨌느냐, 하는 것으로 질문은 또다시 시작되었다. 중구는 먼저와 같이, 통털어 간단히 대답을 했다. 커피가 왔다. 현식은 중구에게 같이 들자는 인사도 없이, 자기 앞에 놓인 커피잔을 들어 한 모금 먼저 훌쩍 마시고 나더니, 오바 주머니에서 담배를 끄집어내었다. 일체 사교적인 사령이나 형식적인 인사를 통 모를 뿐만 아니라, 가다가는 마땅히 필요한 예의까지도 가급적으로 무시하자는 것이 그의 취미요 성격인 듯했다. 이러한 그의 위험하기 짝이 없는 ‘취미’와 ‘성격’이, 그러나 의외로 오해를 많이 사지 않는 것은, 그의 조그맣고 샛노란 얼굴에 아예 욕기(慾氣)가 조금도 없어 보이기 때문인 듯했다.

“아이고 세상에 인심도 무세라.” 하고, 경남 출신인 길여사가 경상도 사투리로 익살을 부리자 여러 사람들이 “와아.”하고 소리를 내어 웃었다. “안 되겠심더, 우리도 이러다가 굶어 죽겠심더.”하고, 길여사는 사람 수대로 커피 여섯 잔을 더 시켰다. 중구는 여러 친구들의 “식기 전에.”라는 권고에 의하여, 아직도 김이 모롱모롱 오른 노리께한 커피를 들어 입술에 대었다. 닷새 만이다. 한 십 년 동안 시베리아 같은 데 유형(流刑)살이를 하다 돌아와 처음으로 커피를 입에 대어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렇게도 커피의 한 모금은 그의 가슴속에 쌓이고 맺혀 있던 모든 아픔을 한꺼번에 훅 쓸어내려 주는 듯했다. 중구는 입이 헤벌어지며, 곧장 바보 같은 웃음이 터져 오르는 것을 어찌할 수도 없었다. 사람이란 무엇일가요, 하고, 몇 번이나 입 밖에까지 말이 튀어 나오려는 것을 그는 간신히 참았다.

커피 여섯 잔이 새로 왔다. 현식은 말없이, 자기 앞에 두 번째 놓인 커피잔을 테이블 한가운데 옮겨 놓았다. 자기에게는 소용이 없다는 뜻이었다. 중구도 두 잔째니까 사양을 했으나 이번에는 길여사가 듣지 않았다. “평론가가 내는 차만 먹고, 본인이 대접하는 차는 거절하신다는 것은 너무나 불공평해요.” 길여사의 항의에 장단을 맞추듯, 송화백이 또한 손바닥을 내밀며, ‘빨리 드십쇼’ 하는 제스츄어를 부렸다. 중구도 입에 손을 가져감으로써 제스츄어에 응수를 했다. 중구의 이 제스츄어는 이미 유명한 것이어서 때로는 곤란하다는 뜻, 고깝다는 뜻, 천만에 말씀이라는 뜻, 이러한 모든 델리케이트한 감정과 의사 표시를 대변하는 것이었다.

“다방은 어느 날까지 열렸어요?” 이번에는 커피당인 송화백이 물었다. 이십구일까지든가 삼십일까지든가, 아무튼 그믐께까지는 거리에 다니는 사람이라곤 거의 볼 수도 없었으니까, 나중은 병자, 노인들까지도 모두 들것에랑 리야까에랑 태워서 나오는데, 아이유 하며, 또 입에다 손을 가져갔다. 순간, 그는 그렇게 해서라도 모셔 오지 못한 그의 어머니의 생각이 가슴에 찔렸던 것이다.

그때 허윤이 ‘문총’ 사무실에서 이층으로 올라왔다. “허형 이리 오시오.”하고, 현식이 좋은 수나 있다는 듯이 소리쳤다. 허윤이 무슨 영문인지 모르고 빙긋이 웃으며 곁에 와 서니까, 현식은, “당신들 둘이 잘 됐소.” 한다. 무슨 말인가 하고 있으니, “허형은 어린애들을 길에 흩어버리고 혼자 왔다지. 이형은 지금 어머니를 서울에 버려두고 왔대잖아.” 그러니 비슷한 처지에 서로 위안이 되리라는 뜻이다. 그 자리에 있던 음악가 안정호(安定浩)와 송화백은 조금 웃어 주었으나 허윤과 중구는 웃지 않았다. 다만 길여사만이 중구의 흉내를 내느라고 왼쪽 손을 입에 갖다 대었을 뿐이다. 길여사는 이미 나이도 오십이 넘고, 또 하와이로, 미국으로, 여행도 여러 번 하고 돌아온 부인이라, 자기 자신이 손해를 보아가면서도 그 자리의 분위기와 남의 감정 혹은 체면 같은 것을 다치게 하지 않으려고, 서투른 제스츄어와 사교적인 사령을 서슴지 않는 사람이었다. 이 점에 있어, 별반 악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호의에 가까운 심정으로 남의 아픈 데를 콕 콕 찔러주는 조현식 평론가와는 어디까지나 대차적이기도 했다.

점심때가 되었다. 길여사가 우동을 사겠다고 했다. 일행은, 중구를 주빈으로 하고, 조현식, 허윤, 송화백, 박운삼(朴雲森), 그리고 길여사, 모두 여섯 사람이었다. 안정호가 다른 약속이 있어 빠지게 되고 대신 박운삼이 끼인 것이다. 박운삼은 시인이었다. 그는 처음 잘 보이지도 않는 구석자리에 혼자 ‘벽화’ 같이 앉아 있었으나 그들과는 본디 가까운 사이요, 또 그의 하도 서글픈 표정으로 앉아 있는 꼴이 마음에 걸려서, 중구가 특별히 그를 일행 속에 끌어들였던 것이다.

박운삼은 우동집에서나, 우동을 마치고 나서나, 처음부터 끝까지 말이 없었다. 본디 좀 침울한 성격이기는 했으나, ‘육 이오’ 이전에는 그렇게 벙어리처럼 말이 없는 위인도 아니었던 것이다. 그것이 저렇게 실의한 사람같이 말없이 앉아 있는 것을 보면 무슨 곡절이 있는 듯도 했다. 그러나 아무도 그의 ‘곡절’에 대하여 특별히 관심을 가지거나 해명을 해보려는 사말도 없었다.

그날 밤은 조현식을 따라가 잤다. 조현식의 집은 남포동에 있었다. 항도의원(港都醫院)이라는 병원 간판이 붙어 있는 일본식 건물이었다. ‘경남여중’ 교원에 현식의 친구가 있어 그 친구의 소개로 이 병원의 이층 입원실 한 간을 얻어 들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사조 반’짜리 ‘다다미’였다. 거기다 ‘오시이레’가 동쪽 북쪽 두 면에 붙어 있어서 상당히 쓸모 있는 방이었다.

북쪽 ‘오시이레’에는 침구와 옷보퉁이와 트렁크와 책상자와 그 밖에 너절분한 피난살이 짐작들이 들어 있고, 동쪽 ‘오시이레’는 친척들의 침실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가족은 조현식 부처와, 애기 둘과, 어머니와, 과수 누이에 그 애기와, 그(현식)의 오촌 조카와 이렇게 여덟 사람이었다. 여기다 또 그의 사촌 동생이 이따금 와서 잔다는 것이었다.

중구가 현식을 따라 들어갔을 때는 이 집 주인(의사)의 아들까지 남녀노소 십여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모여 앉아서 할머니와 어린 손주들은 옛날이야기를 하느라고 자즈러져 있고, 젊은 사람들은 윷놀이에 법석을 치는 판이었다.

그들이 들어가자 윷놀이는 곧 걷어치워졌다. 현식의 부인과는 서울서부터 가족적으로 잘 알던 사이였으나 그 누이와 오촌 조카 사촌 동생들은 모두 처음 보는 얼굴들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현식이 중구를 그들에게 소개를 시키는 것도 아니었다. 방면이 다르고 계제가 다른데 우연히 자리를 같이 했다고 해서 그러한 형식적 수속을 치를 필요가 있겠느냐 하는 것이 조현식의 그 어떻게 할 수 없는 성격이요 취미인 듯했다.

“저기 가서 소주 한 병 하고 오징어 좀 사오너라.” 하고 현식은 초등학교 다니는 그의 아들아이에게 돈 천 원을 내어 주었다.

“모친께서는 지금 어디 계셔요?”

하고, 현식이 부인이 술상─겸 밥상이지만─을 보며 중구에게 물었다. “서울에 계십니다.”하고, 중구는 현식의 모친을 한번 흘깃 보았다. 과연 현식의 모친은 중구의 “서울 계십니다.”하는 말에 놀란 듯한 얼굴로 중구를 바라보았다. 그럼, 어머니를 버리고 온 것이 아니냐 하는 듯한 얼굴이었다. 갑자기 중구는 목젖이 뿌듯하게 아파짐을 깨달았다. 그럼 부인은 어떻게 됐느냐고, 또 현식의 부인이 물었다. 어린 년(딸) 하나를 데리고 충청도 저의 오라범댁으로 찾아 내려갔다고 한즉, 부인은 또, 그럼 서울에는 어머님 혼자만 계시는 구먼요, 하는 것이 흡사, 이것으로 심문을 끝내는 동시에 너에게는 불효자란 이름을 선언한다─하는 말같이 중구에게는 들려졌다.

조현식은 본디 술이 약했다. 그 대신 그의 사촌 동생이 상당한 술꾼이었으므로 중구는 그를 상대로 소주 한 병을 거의 다 마셔버렸다. 처음엔 목젖이 뜨끔뜨끔 아프던 것이, 한 잔 두 잔 소주가 들어가면서부터 그것도 씻은 듯이 가셔져버렸다. 다만 그의 입에서는 어떤 동기와 무슨 목적으로서인지도 모르게 다음과 같은 넋두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돈만 있었으면 나도 사실 어머니를 모시고 부산에 올 수 있었어. 원고료 몇 푼씩 받아서 그때그때 연명을 해 오던 우리 처지에 ‘육·이오’를 치르고 ‘구·이팔’을 당했으니 깨끗이 빈손이지 어떻게? 사실 원서동의 그 오막이라도 팔까 했지만 섣달 초승께부터 벌써 슬금슬금 남하가 시작되는 판인데 팔기는 어떻게 팔어? 스무날(섣달)이 넘어 아내가 딸년을 데리고 충청도 저의 오라범을 찾아간다고 했지만, 그것도 부모 없는 친정이요, 평소에 의까지 좋지 못했는데, 정 할 수 없어, 죽여 줍시사 하고, 찾아가는 판인 걸 거기다 어머니까지 붙여 보낼 수가 있나. 또, 붙여 보낼래니 그만한 밑천이 있나? 어머니는 조형도 알지만 벌써 오래 된 천만병으로 보행은 어림도 없고, 기차나 자동차도 복잡하게 밀고 짓밟고 하는 판에는 도저히 오분도 견디지 못하시지. 리야까나 달구지 같은 것을 구해서 그 위에 타시게 하고 내가 끌어 볼 수는 있겠는데, 내 주변으로는 그거 하나 구하기도 하늘에 별 따긴데 게다가 어머니는 찬바람만 쐬면 그냥 기침이 연발하여 숨이 막히시는 판이니 그러다가는 노상에서 지레 죽으실 것 같고……, 또 어머니가 한사코 움직이지 않으려고만 하시니, 괜히 끌어내다 길에서 지레 죽이려느냐고, 이왕 죽는다면 집안에서 이불 덮고 편안히 누워 죽는 것이 얼마나 나으냐고, 그리고 집안에는 아직 연료와 식량이 다 남아 있으니 정 급하면 일어나 끓여 먹을 수도 있는데 왜 죽음을 사서 나가겠느냐고…….” 그래서 중구도 차마 혼자서 버려두고 떠날 수가 없어 마지막 날까지 서울서 버티다가 일월 삼일 최종 후퇴에 뛰어들고 말았다는 것이다.

중구들의 술상이 치워졌을 무렵에는, 동쪽 ‘오시이레’는 이미 이중 침실로 화한 뒤였다. 현식의 누이 모자(母子)가 ‘오시이레’의 아래층으로 들어가자, 오촌 조카는 이층으로 올라가 눕고, 그리고는 ‘후스마’가 닫혀지는 것이었다.

중구가 자리에서 누워 눈을 감았을 때 무슨 슬픈 안개를 뿜는 듯한 배 고동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어제 K통신사 지국 사무실의 테이블 위에 누웠을 때 들려오던, ‘문풍지가 우는 듯한’ ‘피리소리’ 같기도 하던 그것이 바로 이 배 고동 소리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튿날 아침밥을 끝내자 중구는 또 그 낯수건과 칫솔이 들어있는 손가방 하나를 든 채, 현식과 함께 밀다원으로 나왔다. “오늘은 오형이 나온다고 했으니 어쩌면 이형 숙소가 해결될 겝니다.” 조현식의 말이었다. “부산 있는 문인이 누구누굽니까?” 하고, 중구가 물었다.

물론 중앙문단에 알려진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있기는 사오 명 있지만 다 소용 없어요.” 조현식의 대답이었다. “하기야 이 꼴 돼 오면 반갑다고 할 사람 없겠지.” 중구가 도리어 현식을 위로하는 말투였다. 그들이 마찬가지로 서울서 피난 온 사람이라면서도 이렇게 현식이 주인 행세를 하고 중구가 손님노릇을 하는 것은 현식이 먼저 내려와 방을 잡았다는 이유만은 아니다. 현식이 아내가 첫째 이 지방 사람인데다, 그는 또 ‘문총’ 사무국을 맡아 있는 관계로 각 지방에 많은 유기적인 동지들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신 전필업(全弼業)이 알지?” 현식이 물었다. “내 아는 사람은, 전필업이 하고 오정수(吳楨洙) 뿐이야.” 중구가 대답하자, “당신 전필업이 하고는 상당히 친했지?” 하고, 현식이 꼭 심문을 하듯이 묻는다. “오정수 만치는 친했던 편이지.” 그러자, 현식은 여기서 말을 뚝 끊어버리고 커피를 훌쩍 마시더니 담배에 불을 붙여 물고 의자에 비스듬히 자빠져버린다.

“그래, 전필업이 만났소?” 중구의 묻는 말에 현식은 한참 동안 담배만 피우고 있더니, 담배의 재를 떨굴 겸 상체를 일으키며 한 일주일 전에 여기서 만났다고 한다. “내 말 하던가?” 하고 또 중구가 묻는데, 현식은 이에 대한 대답은 없고, “그날도 나는 마침 이 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내가 무심코 고개를 드니까 그는 이미 저쪽 들어오는 문 앞에 서서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더군. 나는 처음 저 친구 너무 반가운 나머지 어쩔 줄 몰라서 저러고 있나보다 했더니, 종시 움직이지 않고 그냥 서서 빤히 바라보고만 있잖아? 나는 웃는 얼굴로 손을 들어 보이며, 전형, 하고 불렀지. 그랬더니 그는 그냥 그 자리에 선채 고개만 까딱하잖아. 묘한 녀석이라 생각하고 그냥 내버려 두었더니, 나중 저쪽 나 모르는 신문기자들 있는 자리에 가서 같이 앉았다가 그냥 쓱 나가버리더군. ……그것까지는 또 존데, 그리고 며칠 지난 뒤 그자가 허형(허유)을 보고 하더란 말이 걸작이야. 이렇대. 지금까지는 서울 있는 놈들이 문단을 리드해 왔지마는 지금부터는 부산이 수도로 됐으니까 재부(在釜) 문인들이 문단의 주도권을 잡아야 한 대. 그래서 이번에는 중앙 문인들이 재부 문인들 앞에 머리를 수그리고 나와 문안을 드릴 때까지 이쪽에서는 버티어 줄 작정이라는 거야.” 조현식은 그 샛노랗고 바짝 마른 얼굴에 표정 하나 없이, 담담한 어조로 이야기를 끝내자, 담배 불을 부벼 끈다.

“주도권이란 건 뭔고?” 하고 중구가 묻는다. “모르지, 아마 신문 잡지 같은데다 글 발표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하는 것 같애.” “그렇다면, 하긴, 전필업이한테는 필요하겠군, 우리야 뭐 별로 발표할 글도 없고 하니, 필요한 사람들이 가지면 되잖아.” “그렇다고 해서 누가 무얼 써 달라고 하드래도 전필업이를 위해서 우리는 집필을 거절한다거나 유예해야 한다는 이유도 없잖아?” “그러야 물론이지.” “그렇다면 문제는 또 복잡해지거든, 왜 그러냐 하면 우리도 쓰고 전필업이도 썼을 때 대부분이 안목 있는 독자들이 전필업이보다 우리를 상대하게 되면 어떻거느냐 말이지.” “그거야 할 수 없지 어떻게?” “그러나 결국 문제는 거기 봉착되고 마는 거야, 전필업이가 주도권을 가지겠단 말은 우리와 그가 글을 쓰더라도 사회가 우리보다 그를 상대하도록 해 달라는 거야.” “해주긴 또 누가 어떻게 해 준단 말인고?” “해주지 않으면 제가 그렇게 만든다는 거지.” “만들다니, 어떻게?” “그걸 알고 싶거든 전필업이가 내는 『항도문학』이란 주간신문을 좀 보시오. 거기, 중앙서 내려온 문인으로서 글줄이나 바로 쓰는 현역 가운데 벌서 욕먹지 않은 사람 몇이나 있는가? 그 위에다 좀 더 유력한 문인에 대해서는, 무전취식을 했다느니, ‘문총’ 공금을 착복했다느니, 입에 담을 수도 없는 거짓말로 갖은 인신공격을 다 하고 있으니까.” 두 사람은 벙어리가 된 것처럼 한참 동안 서로 멀거니 건너다보고 있을 뿐이다.

“그런 애들은 몇이나 되는고?” 하고, 중구가 먼저 입을 열었다. “모르지, 전필업이 이외에도 그를 좇아다니는 청년들이 몇 사람 있는 모양이더군.” “그러나 다르지, 아무리 이런 놈도 있고 저런 놈도 있는 것이 세상이라 하드래도 이런 정도로 망난이가 용납되진 못했으니까. 지금과 같이 집이 막 쓰러지고 사람이 죽고 하는 전란 중에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적인 권위라든가 표준까지도 다 쓰러뜨려 없애버리고 싶은 것이 일반적인 심리(心理) 경향인가 봐.”

조현식은 말을 마치고 또다시 담배를 피워 물었다. 중구는 중구대로 요 며칠 사이 그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있는 ‘끝의 끝’ ‘막다른 끝’이란 말을 다시 한 번 혼자 속으로 되뇌이며 자욱한 연기 속에서 꿀벌떼처럼 왕왕거리는 다방 안을 돌아다보았다. 오정수는 샛까만 세루 두루마기에 샛하얀 동정을 넓적하게 달아 입고, 코밑의 인중이 길숨한 입언저리 위에 꼬물꼬물 무엇이 기는 듯한 얌전한 미소를 띠우며 중구에게로 걸어왔다. “언제 왔이요?” 하는 인사가 흡사, “언제 왔는기요?” 하는 거와도 꼭 같은 악센트였다. 그는 중구의 손을 꼭 잡은 채, 오느라꼬 고생 많이 했지요, 가족은 다 오셨입니까, 거처는 정했입니까, 하는 일련의 인사가 끝날 때까지 놓지 않았다.

“오형 인제 잘 됐어.” 하고, 조현식이 오정수에게 자리를 내어주며 힛죽 웃었다. 오정수는 무슨 뜻인지 알아듣지 못해서, “뭐라꼬요?” 하며 조현식을 쳐다본다.“ 이형은 오형 나오는 것만 눈이 빠지도록 기다리고 있습니다.” “와요?” “이형한테 물어 보시오.” 그러자 정수는 또 그 입 언저리에 꼬물꼬물 기는 듯한 미소를 띠우며 중구 쪽을 바라본다. 중구도 왼손으로 입을 가린다. 거북하다. 미안하다 하는 뜻이다. “이형은 지난밤에도 다방에서 잤답니다.” 이번에는 또 조현식이 말을 붙인다. “정말이오?” 오정수의 얼굴은 심각해진다. “저 다방 색시한테 가 물어 보시오.” 조현식은 시치미를 딴다. “그럼 와 진작 나한테 안 찾아왔소?” “환영하지 안할지 알 수가 있어야지.” 조현식의 이 말에 오정수도 농담인 것을 깨닫고, “에이 나쁜 양반!” 하고, 이웃집 아주머니들이 하듯 눈을 흘겨 준 다음, 중구에게 고개를 돌리며, “참말이요, 오늘 저녁에는 꼭 우리 집에 갑시대이.” 한다. 이거 미안해서…… 하고, 중구가 머리를 긁으려니까, 조현식이 옆에서, 잘 됐지 뭐, 한다. “정말 잘 됐어요.”하고, 곁에 있던 송화백도 성원을 했다. 뒤이어, 송화백은 “오늘은 오선생님 모처럼 나오시고 했으니 빈대떡 집에나 갑시다. 제가 인도하겠습니다.” 했다. 아침에 삽화료(揷畫料)를 받은 것이다.

일행은 오정수, 조현식, 이중구, 송화백, 이렇게 네 사람에다 작곡가 안정호(安定浩)가 끼어서 무두 다섯 사람이었다. 빈대떡은 남포동 뱃머리라고 하는 선창가였다. 바로 코끝에서 싯퍼런 바닷물이 철석거리고 있었다. 개인 날엔 대마도가 빤히 건너다보인다는 영도(影島)와 송도(松島) 사이의 아득하게 트인 해변 위엔, 안개 같은 구름이 덮여 있고, 그 구름에서 일어오는 듯한 쩝절한 바다 바람과 함께 이따금씩 갈매기 떼들이 허연 날개를 퍼덜거리며 몰려오곤 하였다.

술이 얼근하여지자 송화백과 안정호는 서로 열을 올리며 기염을 토하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다같이 대한민국이 예술가들을 천대한다는 요지의 것이었다. “대한민국 예술가들은 다 죽어야 해! 다아!” 그는 몇 번이나 이렇게 소리를 지르곤 하였다. “그놈의 돈들이 다 어디 갔냐 말야, 몇 억(億) 몇 조(兆) 하는, 천문학적 숫자의 발행고가 다 어디 갔냐 말야, 그놈의 돈을 다 뭉쳐 놓으면 저 영도섬 더미보다 더 클 거 아니냐 말야, 그놈의 돈들이 다 어디 갔기에 우리는 사변이 나자 그날로 당장 빈손이 되고 거지가 되느냐 말야. 지금 부산에 와서도 처자와 함께 제대로 밥이나 끓여 먹고 있는 예술가가 몇이나 있느냐 말야, 그놈의 돈들이 다 어디 가 뭉쳤기에, 몇도 되지 않는 대한민국 예술가들은 다 거지가 돼서 저놈의 바닷물에라도 빠져 죽어 버려야 하게 됐단 말인가?” 하고 기염을 토하는 송화백의 눈에는 불이 척척 흐르는가 하면, “그놈의 돈뭉치들이 다 어디로 갔느냐고?” 하고 시작하는 안정호의 음성은 잠긴 듯하다. “우리 처외삼촌(妻外三寸)이란 자는 본디 무역하는 사람인데 말씀에요, 이 작자 손에 지금 배가 몇 척 노는 줄 아세요? 일조유사지시(一朝有事之時)엔 제주도로 가든지 대마도로 가든지 혹은 일본으로 가든지 미국으로 가든지 자유자재란 말씀에요, 그러니 그거 어디 저 혼자 하는 일입니까? 돈 가진 놈들은 권세 가진 놈들과 짜고, 권세 가진 놈들은 돈 있는 놈들과 끼리끼리 서로 통해 있고, 예약이 돼 있단 말씀에요.” 하는 그의 눈에는 눈물이 어려 있다. 그의 잠긴 듯한 음성이나 눈에 어리인 눈물로 보아 그도 아마 그의 처를 통해서 한몫 끼어 볼려다가 톡톡히 괄시를 당한 모양 같다. “그러니 다 죽고 없어져야지, 저놈의 바닷물에라도 얼른 뛰어들어서 모다 죽고 없어져야지!” 송호백의 맞장구다.

“그런데 그 사람 운삼이 왜 그래? 사람이 변한 거 같애.” 하고, 중구가 화제를 돌리려고, 어저께 본 박운삼의 이야기를 끄집어내었다. “도무지 말도 하지 않고, 웃지도 않고 등신처럼 가만히 앉아만 있잖아?” 하는 중구의 말에, 송화백이, “왜 그렇긴 왜 그래? 상사병(相思病)에 걸린 거지.” 하고 자신 있는 듯이 말을 받는다. “사변 전에 늘 데리고 다니던 여자 있잖아? 여의대(女醫大) 학생 말야.” “그래 그 여자와 헤였나?” “헤인 셈이지.” “헤인 셈이란 건 뭔데?” “헤인 셈이란 건 어쨌든 결과에 있어서 헤어졌단 말이지.” 그러자 일동이 와아 웃었다. 일동의 웃음에 용기를 얻은 듯 송화백은 말을 계속했다. “당자들의 감정이나 의사로서 헤어진 게 아니고 형편이 그렇게 만들었단 말이지.” “형편이라니?” “여자가 애인을 따라 거지가 되어 주지 않고, 부모를 따라 외국으로 떠났으니까.” “그렇다면 거기엔 당자의 의사가 없는 것도 아니잖아?” “그러나 그렇게 된 게 아니래, 적어도 박운삼만은 지금도 그렇게 믿고 있으니까.” 여기서 잠깐 이야기가 끊어졌다가, “여자의 아버지가 외교관이던가?” 하고 중구가 다시 물었다. “외교관도 아니지, 본시 주일부(駐日部)에 무슨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나 봐, 비행기로 노상 왔다 갔다 하던 사람이래.” 중구와 송화백의 문답도 여기서 일단 끝이 났다.

중구는 바다로 향해 고개를 돌린다. 얼얼한 술기운에 퍼런 해면이 비친다. 그 위에서 껑충거리는 허연 갈매기 떼도 보인다. 그와 동시에 그의 머릿속에는, 내리막을 달리는 기차가 떠오른다. 최종열차다. 땅 끝까지 가서는 바다에 빠진다는 것이다. 바다에 빠지지 않기 위하여 기차는 목이 쉬도록 울며 발목이 휘어지도록 뻣대어 본다. 그러나 내리막을 달리는 기차는 그 무서운 속력의 관성에 의하여 기어이 바다로 들어가야만 한다. 중구의 눈에는 또 갈매기 떼가 비친다. 자기는 이미 바다에 빠져 있는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자기는 이미 갈매기 떼에 들어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오오, 갈매기여! 그는 시인 같은 심정으로 갈매기를 불러본다. 그의 머릿속에는 아까 ‘밀다원’ 안에서 꿀벌 떼처럼 왕왕거리고 있던 예술가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들은 다 즐겁다. 바다에 빠져 죽어야 한다고 두 눈에서 불을 흘리는 송화백이나, 처외삼촌에게 설움을 당하고 목이 메인 안정호나, 거센 물결에 애인을 뺏기고 넋이 빠져 있는 박시인이나, 어린 자식들을 길 위에 흩어버리고 혼자서 하루에 떡 세 개씩으로 목숨을 이어 나간다는 허시인이나, 늙고 병든 어머니를 죽음에 맡기고 혼자 달아나온 이중구 자신이나 그들은 다 같이 즐겁다. 다방에서는 꿀벌들처럼 왕왕거린다. 바다에서는 갈매기 떼처럼 퍼덜거린다. 앞뒤에 죽음과 이별을 두고 좌우에 유랑과 기한을 이끌며, 그래도 아는 얼굴, 커피 한 잔이 있어서 즐겁단 말인가, 그래도 즐겁단 말인가, 무엇이 즐겁단 말인가, 하고, 중구는 목구멍까지 올라온 이 말을 끄기 위하여 또 한 번 한숨을 길게 뿜었다.

오정수의 집은 범일동에 있었다. 단층으로 된 일본식 건물이었다. 온돌방이 하나요, ‘다다미’방이 둘인데, 온돌방은 오정수의 부인과 아이들이 쓰고, ‘다다미’방 하나는 오정수의 서재로 되어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 ‘다다미’방에는 오정수의 일갓벌이 되는 피난민이 들어 있었다. 뜰은 넓지 않으나 사철나무, 소나무, 벽오동 따위 정원목과, 라일락, 침정화 같은 꽃나무들도 심어져 있었다. 툇마루 끝에는, 난초, 샤보뎅, 종려, 치자, 목련 하는 분종(盆種)들이 일여덟 개나 가지런히 놓여져 있었다.

“새는 기르지 않습니까?” 중구가 물었다. “예에.” 오정수는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기른단 말인지 기르지 않는단 말인지 알 수 없었다. 처마 끝에는 빈 새장 하나가 달려 있을 뿐이었다. 기르다 말았거나, 다른 새장에 옮겨 둔 모양이었다. “여기서 이런 거나 만지고, 심심하면 바다나 내다보고 하면 혼자 살아도 되겠네요.” 하고, 중구가 오정수의 말투를 흉내내어 보았다. 오정수는 또 먼저와 같이 “예에.” 하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저녁에 술상을 내어오게 하고, 오정수는, 중구에게 술잔을 건네며, “실상은 조(현식)형 생각도 하고 이형(중구) 생각도 해서 방 한 간을 비어 두고 있읍니데이.” 했다. 그것은 이미 조형에게서 들었다고, 중구가 말했다. 그러나 오정수는 “잘 됐심더, 이형은 혼잣몸이시고 하니 그마아 나하고 여기서 같이 있읍시대이.” 하고, 입 언저리에 꼬물꼬물 기는 듯한 따뜻한 미소를 띠우며 중구를 쳐다본다. “미안해서…….”하고, 중구는 술잔을 내었다. 흐리멍덩한 대답이었다.

오정수의 부인이 들어와서 인사를 했다. 키가 훨신 크고 몸이 뚱뚱하고 얼굴빛이 거무스레한데다 목소리가 컬컬한 부인이었다. 다만 가늘게 뜨는 실눈에는 어딘지 소녀다운 애티가 있어 보였다. “아무꺼도 없임니더마는 마아이 드이소이.” 하고, 절을 한번 하더니 그냥 나가버렸다. 뒤이어 저녁상이 들어왔다. “아직 좀 더 있다가 가지고 오너라.” 오정수가 저녁상을 도로 들여보냈다. “술 좀 더 할란대이.” 하고, 그는 또 안쪽으로 향해 이렇게 소리를 질렀다.

“이거 냉이 나물이지요? 맛 있임대이.” 하고, 중구도 다시 지방 말을 흉내 내었다. 냉이를 여러 가지 양념과 함께 멸치 젖에다 묻힌 것이었다. “예에, 많이 드이소. 그런 거쯤은 얼마든지 있임더.” 오정수도 젓가락 끝으로 냉이 한 토막을 집어 입에 넣으며 이렇게 응수를 했다. “오형은 술이 약해서 안되겠심대이 고마아.” 중구가 또 사투리로 농담을 붙였다. “와 이카십니꺼, 술을 내 혼자 멕에 놓고, 괘니.” 오정수는 이웃집 아주머니들이 하듯 웃음을 담긴 얼굴로, 눈을 흘겼다. ‘부웅’ ‘부웅’ 하는 고동 소리가 잦게 들렸다. 그것은 먼젓번 보수동에서 듣던 ‘피리 소리’도 아니요, 어젯밤 조현식에게서 듣던 패앵패앵하는 소리도 아니었다. 정말 무엇이 떠나가고 있는 듯한 가슴이 찡찡 울어대는 그러한 뱃고동 소리였다. “저놈의 날라리 피리 소리들 땜에 나는 고마아 못 살겠심대이.” 중구는 연거푸 술잔을 내며 주정 비슷한 소리를 내었다. 그것이 고동 소리를 가리켜 하는 말이라고는 오정수도 깨닫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사실 거기서 듣는 고동 소리를 ‘날라리 피리 소리’라고 하기에는 적당하지 않았었다. 그것은 오히려 중구의 취한 가슴 속에서만 나고 있는 소리인지도 몰랐다. “그러지 말고 한 잔 취하이소.” 오정수는 중구의 빈 잔에 또다시 술을 쳐 주었다. 중구는 취기로 인하여 이미 얼얼한 손으로 그 술잔을 잡으려 했다. 그때, 갑자기 그의 두 둔에서는 취한 얼굴로서도 열도(熱度)를 깨달을 만한 뜨거운 눈물이 주르르 쏟아지며 뜻하지 못했던 울음이 복받쳐 오르는 것이었다. 그 순간, 취한 가운데서도, 이건 파렴치다, 언어도단의 추태다, 하는 생각을 하며, 곧 일어나 방문을 열고 뛰어나갔다. 툇마루에서 신돌 위로 내려서려 했을 때, 그는 미끄러지듯이 넘어지며 분종을 둘이나 신돌 위로 굴러 떨어뜨렸다. 오정수가 이내 람프등을 들고 뒤따라 나와 있었으므로 중구가 신돌 위에 굴르지는 않았으나 분종 둘 가운데 난초분 하나는 세 조각으로 보기좋게 깨어져 있었다.

이튿날 아침 중구는 밥상을 물리자, 이내 조현식과 약속이 있다는 핑계로, 칫솔과 낯수건이 들어 있는 그 낡은 손가방을 들고 일어났다. “와 이캅니꺼, 한 사알 푹 안쉬이고,” 오정수가 붙잡았다. “인제 매일 같이 찾아 올 텐데 뭐.” 중구의 대답이었다. “예에, 매일 와도 좋고, 어중간할 때 와도 좋고, 나는 언제든지 기다릴랍니대이.” “그렇지 않아도 인제 오형이 몸서리가 나도록 올 겝니다.”

중구는 정말 무슨 급한 용건이나 있는 것처럼 달음박질을 치다시피 전차정류소로 향해 달려나갔다. 무엇이 그렇게 급한 겐지 자기 자신도 알 수가 없었다. 덮어 놓고, ‘밀다원’엘 가 보아야만 될 것 같았다. 조현식과 송화백과 안정호와 허윤과 박운삼과 길여사의 이런 사람들의 얼굴을 한시 바삐 보아야 숨이 돌아갈 것 같았다. 정류소마다 전차는 정거를 하여, 사람을 내리우고 태우고 하느라고 꾸무적거릴 때는 너무나 초조한 나머지 발을 구르고 싶었다.

‘밀다원’을 올라가는 층계 중간쯤에, 닝닝거리는 꿀벌떼의 소리를 들었을 때 중구는 요 며칠 전과 같은, 가슴의 두근거림을 깨달았다. 왜 이렇게 급하며, 왜 이렇게 가슴까지 두근거리는지 자기 자신도 통 알 수가 없었다.

구석 자리에서 원고를 쓰던 조현식은 고개를 들어 중구를 쳐다보며, “오형댁 편하지요?” 했다. “편하기는 그만이더군.” 중구도 편하더란 말에 힘을 주었다. 그러나 그 이상은 무어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그는 지금 그 ‘편하기엔 그만인’ 오정수의 집에서 감옥을 탈출하듯 달아나온 것이 아닌가. 그것을 오정수의 참되고 올바르고 따뜻한 인격과 조용하고 아늑하고 풍류적이기까지 한 서재와, 깨끗한 침구와, 그리고, 그 구미당기는 생전복과 생미역과 냉이 무침과 여러 가지 젓갈과 이런 것을 모두 무어라고 칭찬하며 감사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말들을 어떻게 함께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날 저녁 때, 중구는 조현식과 함께, 토스트를 먹으며, “나 오늘 저녁에 또 조형의 신세를 져야겠는데…….” 하고 아침부터 별러 온 말을 드디어 입 밖에 내었다. “왜, 오형댁에 안 가고?” 조현식은 의아스러운 얼굴로 중구를 쳐다보았다. 중구는 처음 어떻게 말해야 좋을지 몰라서 머뭇머뭇했다. “너무 멀어서.”─처음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이것이었다. 그와 동시에 스스로 한심스럽다는 듯히 필죽 웃었다. 그리고는 잇달아, “내 맘대로 하라면, 잠은 조형댁 ‘오시이레’ 속에서 자고 낮에는 온종일 이 ‘밀다원’에 나와 앉아 있었음 젤 좋겠더군. 무엇보다 조형댁은 이 ‘밀다원’에서 가까워서 좋와.” 하고, 한숨에 지껄여버렸다. 조현식은 의외에도 중구의 이 말에 놀라지 않고, 오히려 당연하다는 듯이 덩달아 히죽이죽 웃기만 했다. 중구는 조현식의 웃음에 용기를 얻은 듯이 또 계속하였다. “오형댁보다는 차라리 이 다방 한 구석에 자는 것이 훨씬 나을 것 같애. 치운 건 인제 겁도 나지 않아. 아물험 저 먼저번 보수동 테이블 위에 잘 때보다 더 치울라고.” “오형댁에서 이까지 오는데 한 시간 다 못 걸리잖아?” “그래도 그렇지 않아, 굉장히 먼 것 같애. 시베리야 같은데 혼자 가 있는 것 같애, 가슴이 따가워서 견딜 수 없어, 이 ‘밀다원’에서 한걸음만 더 멀어도 그만치 무섭고 불안하고 가슴이 따가워 죽겠어. 같은 피난민 속에 싸여 있지 않으니 못 배기겠어. 범일동이 어디야? 만 리도 넘는 것 같애.”

중구의 푸념은 여기서 일단 그쳐야 했다. 저쪽 구석 자리에서 졸고 있던 박운삼이 이리로 옮겨 왔기 때문이었다. 박운삼은 무슨 용건이나 있는 것처럼 중구와 조현식이 마주 앉아 있는 자리에 와서 앉더니 그대로 아무런 말도 없었다. 그쪽 구석 자리에 앉아 있을 때나 다름없이, 그야말로 ‘벽화’같이 가만히 앉아 있을 뿐이다. 조현식이 딱하니까, “박운삼씨 요새 어디 있어요?” 하고 먼저 말을 건넨다. 그러나 박운삼은 역시 벽만 바라보고 있을 뿐 꼼짝도 하지 않는다. 조현식이 같은 말을 또 한 번 물으니, 그때야 고개를 돌리며, “저한테 무슨 말씀하셨어요?” 하고 되물었다. 조현식이 웃으며, 같은 말을 세 번째 물으니 그때야, “친구한테 있었는데 그 친구가 어저께 결혼을 했어요.” 한다. 무슨 뜻인지 요령부득이었다. 그리고는 다시 먼저와 같은 ‘벽화’가 되어버린다.

한 시간쯤 지났다. 그 동안 그 자리에는 송화백과 허윤이 잠간씩 앉았다 가고, 길여사도 와서 한참 이야기하고 돌아갔다. 길여사의 이야기는 중공군이 부산까지 온다면 어떻게 하느냐는 것이었다. 누구의 가슴 속에나 잠시도 떠나지 않고 있는 문제였다. 그러니만치 아무도 말을 붙이려고 들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양성적(陽性的)인 송화백이 “중공군이 오기 전에 우리는 모다 바다에 빠져 죽기로 했습니다.”하고, 큰소리로 외치자,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 뿐 아니라 곁의 자리에 있던 사람들까지 “와아.” 하고 소리를 내어 웃어 버렸다. “잘 알겠습니다.” 길여사는 엄숙한 표정으로 합장을 하더니 그냥 나가버렸다. 그러자 그 자리는 또다시 중구와 조현식과 박운삼과 세 사람이 되었다. 어슬녘이었다. 조현식이 테이블 위에 놓고 있던 담뱃갑을 집어 오바 주머니에 넣었다. 일어서려는 준비 행동이었다. 바로 그때다. ‘벽화’(박운삼)가 갑자기 이쪽을 향해 고개를 돌리더니, “조선생!” 하고 불렀다. 그는 올해 스물아홉살이다. 조현식이나 중구들보다는 일여덟 살이나 젊었으므로 ‘선생’을 붙이는 모양이었다. 일어서려던 조현식이 도로 궁둥이를 붙이고 앉았다. “오늘 저녁에 한 사람이 있습니다.” 조현식이 웃는 얼굴로 중구를 가리켰다. 그러자 박운삼은 두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빽 돌려 도루 먼저와 같은 ‘벽화’가 되어버린다. 조현식이 일어선 채 잠깐 망설이더니, “박운삼씨도 같이 갑시다.” 한다. 그러자 ‘벽화’는 전기장치에서 움직여지는 기계 인간과도 같이 즉시로 꼿꼿이 일어서는 것이었다.

조현식의 집에서 저녁을 마친 박운삼은 그가 언제나 끼고 다니는 하늘색 책보를 끌렀다. (이것은 중구의 그 낡은 손가방에 해당하는 그의 전 재산이었다.) 그 안에는 세수도구를 넣은 고무주머니와 노트 두 권이 들어 있었다. 박운삼은 노트 두 권을 조현식에게 주며, “이거 좀 맡아 주시겠어요?” 했다. 조현식은 그것을 받아 그의 부인에게 주며, “이거 내 가방 속에 좀 너 두.” 하고 나서 중구를 돌아다보며, “이형, 소주 안 먹어도 견디겠소?” 했다. 바로 그때였다. 박운삼이 무엇에 찔린 것처럼 갑자기 일어서며, 어저께 결혼한 친구 녀석한테는 카나디안 위스키가 몇 병이든지 있다면서, 그녀석한테 좀 다녀와야겠다고 하더니 그냥 나가버렸다. 그리고는 그 길로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이튿날 중구와 조현식이 ‘밀다원’으로 나갔을 때, 박운삼은 어느덧 먼저 와서 ‘드람통’(화덕) 곁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두 사람이 ‘드람통’ 곁으로 가도 그는 그들을 보았는지 못 보았는지 역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조현식이 먼저 알은 체를 했다. 어저께 밤엔 어떻게 된 거냐고 한즉, 시간이 늦어졌던 거라고 한 마디로 간단히 대답하고는, 일어나, 그가 언제나 ‘벽화’같이 앉아 있는 그의 전용석과도 같은 구석 자리로 옮겨가 버렸다.

점심 때 짐짓했을 때 길여사가 나오더니, 중구와 조현식에게 긴급히 상의할 일이 있다면서 밖으로 같이 좀 나가자고 했다. 며칠 전에 갔던 ‘우동’집으로 갔다. ‘우동’ 셋을 시켜놓고 길여사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먼저, 정세가 어떻게 되어 가는 거냐고, 어저께와 비슷한 말을 또 끄집어내었다. “저놈들이 자꾸 밀고 내려오는 모양이지요.” 하고, 조현식은 가볍게 받아 넘겼다. 중구도, “중공군이 원주(原州), 오산(烏山)까지 침공해 온 모양이랍니다.”하고, 오전에 길에서 K통신사의 윤을 만나 들은 정보를 제공했다. 길여사는 눈을 내리 감으며 또 합장을 했다. “아무튼, 서울 방위는 철통같다고 떠들어대던 것도 필경 저놈들에게 내주고 말았으니 앞으론들 어느 지역에서 반드시 반격한다고 기필할 수야 없는 노릇이지요.” 하고, 조현식도 침울한 목소리였다. “하여간 낙관할 수는 없지요?” 하고, 다지는 길여사. 같은 말로 긍정하는 것은 중구다. 조현식의 침묵은 이것을 시인한다는 뜻이다. 길여사는 목소리를 낮추며, 그래 거기 대한 무슨 대책이 있느냐고 했다. 지금 돈 있는 사람들은 다 만일의 경우에 대처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런데 우리들은 아무 대책도 없이 다방에만 모여서 우굴거리고 있다. 만약의 경우를 생각해 보라. 그것은 비참하다. 그런데 마침 교회 관계로 제주도 가는 배가 한 척 있는데 사오일 이내로 떠날 예정이다. 자기가 부탁하면 십여 명은 더 탈 수 있게 되겠다. 조현식과 중구가 찬성한다면 그렇게 추진시켜 보겠다.─하는 이런 내용이었다. “신중히 생각하세요.” 하고, 길여사는 꼬리를 달았다. 조금 뒤, “가서 무얼 먹고 사나?” 하는 것이, 조현식의 첫 발언이었다. “목숨이 첫째요, 먹는 것은 둘째입니다.” 길여사의 답변이었다. “그러나 생활 근거가 전혀 없이야 너무나 막연해서.” “다른 피난민들도 다 많이 가잖았어요?” 이렇게 조현식과 길여사가 문답을 계속하고 있는 동안 중구는 중구대로, 하루 전 오정수의 집에서 맛본 고독의 무서움을 맘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어떠한 조건에서든지 ‘밀다원’이 있는 곳에서 멀리 떠나갈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최후까지 ‘밀다원’에 남아 있는 다른 모든 친구들과 행동을 같이 하리라 생각했다. 그것이 송화백의 말대로 설사 바다로 뛰어드는 길이라고 하더라도, 그는 혼자 별개 행동을 취할 용기는 나지 않았다. 꿀벌은 꿀벌 떼 속에, 갈매기는 갈매기 떼 속에, 하고, 그는 입에 내어 중얼거릴 뻔했다.

“이중구씨, 소설가께서도 의견을 말씀해 주십시오.” 길여사는 이런 경우에도 유머를 잊지는 않았다. “저는 무서워 안 되겠습니다. ‘밀다원’에서 떠나는 것이 무섭습니다.” 중구의 명확한 거절을 받은 길여사는, 또 한 번 장을 올리고 나서, “기회는 한번 뿐이란 사실을 알아 두어야 합니다.” 하고 응수했다. 이 말에 가슴이 찔끔해진 조현식은, 지난 ‘육·이오’때, 서울서 괴뢰군에게 몇 번이나 죽을 뻔했던 일을 상기하고, “며칠이나 여유가 있겠습니까?” 하고, 또다시 현실적 조건을 따지려 들었다. 늦어도 닷새 이내에는 결행되리라는 길여사의 말에, “그러면 닷새만 더 여유를 주십시오, 그 동안 좀 더 연구해 보겠습니다.” 하고, 조현식이 꾀를 내자, 길여사도 찬성한다는 듯이 “두 분 동지께서 반대하신다면 본인도 단독 행동을 취할 용기는 없다는 사실을 믿어 주십시오.”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세 사람은 다시 ‘밀다원’으로 갔다. 그들이 층계를 올라서려고 하는데, 위에서, 음악가 안정호가 흥분한 얼굴로 내려오고 있었다. “어디서 오세요?” 하고, 안정호가 당황한 목소리로 물었다. ‘우동’집에서 온다고 조현식이 대답하자, 안정호는 손가락으로 이층을 가리키며, “박운삼씨가 약을 먹었어요.” 했다. “약이라니?” “수면제.” “수면제를 왜?” “왜가 뭡니까, 아주 뻗어버렸어요.” 순간, 조현식의 얼굴이 파랗게 질린다. 길여사의 입술이 바르르 떨린다. “얼마나 먹었기에?” 중구가 묻는다. “형편없이 먹은 모양입니다.” “‘폐노발비탈’ 육십 개에 ‘새콜사나듐’ 다섯 개를 합쳐 먹었다니 말 다 했지요 뭐.” “그토록 몰랐을까?” “모르는 게 뭡니까, 언제나 혼자 앉아 있는 그 구석자리에서 그냥 졸고 있는 줄만 알았지요.” 하고 안정호는 의사를 부르러 간다면서 뛰어나갔다.

세 사람이 다방 안에 들어갔을 때 사람들은 서북쪽 구석에 거멓게 둘러 서있었다. “이 망할 자식아! 이 못난 자식아!” 하고, 박운삼의 오바 소매를 잡고 흔들며 엉엉 울고 있는 것은 송화백이었다. 아무러기로서니 그처럼 몰랐느냐고, 또, 길여사가 다방 ‘레지’를 나무라듯이 말했다. “언제나 그이 혼자 앉아 있잖았어요?” ‘레지’의 답변이었다. 특히 이 날은 무얼 쓰고 있기에 원고를 쓰나 봐 하고 아무도 가까이 가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나중 눈을 감은 채 벽에 머리를 대이고 있는 것을 보고도 언제나 하는 노릇이기에 실컷 졸도록 내버려 두었던 것이라 한다.

허윤이 울먹울먹 하며 곁으로 오더니 조현식에게 접어진 종이쪽을 내어주었다. 그 첫 장에는 「고별(告別)」이라고 제목이 붙어 있었다.

나는 미리 준비하고 있었던 페노발비탈 육십 알과 새콜사나듐 다섯 알을 한꺼번에 먹었다.

나는 진실로 오래간만에 의식의 투명을 얻었다. 나는 지금 편안하다.

나는 지금 출렁거리는 바다 저편에서 나를 향해 웃음을 보내는 나의 애인의 얼굴을 본다. 그리고 지금 나의 앞에는 나의 친애하는 벗들이 거의 다 모여 있음을 본다. 나는 그들이 나를 지켜 주고 있는 이 시간 이 자리에서 더 나의 생애를 연장시키고 싶지는 않다.

잘 있거라, 그리운 사람들. 오십일년 일월 팔일 박운삼

박운삼의 자살로 인하여 ‘밀다원’엔 적지 않은 변동이 생겼다. 다방 문에는 ‘내부수리’라는 종이 딱지가 붙은 채 여러 날 동안이나 영업을 쉬었다. 뿐만 아니라, 아래층도 수리를 하겠으니 ‘문총’ 사무실을 옮겨 달라는 명령이 내렸다.

‘밀다원’에서 쫓겨 나오다시피 된 그들은 광복동 쪽의 ‘스타’ 다방으로 나가고 절반은 창선동 쪽의 ‘금강’ 다방으로도 나갔다.

‘금강’은 ‘밀다원’보다 면적도 훨씬 좁았을 뿐 아니라 다방다운 시설이나 장치라고는 전혀 없는 어느 시골 간이역 대합실과도 같은 집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러한 ‘금강’의 그 딱딱한 나무걸상에 궁둥이를 붙이고 있노라면 대낮이라도 곧잘 뱃고동 소리가 들려오곤 하였다. 그것이 바로 죽음을 치른 직후라 그런지 뱃고동 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중구는 중구대로 지금쯤은 역시 주검이 되어 홀로 누워 있을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라, 자기도 모르게 몸에 소름이 끼치곤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줄곧 ‘금강’으로 나가게 된 것은, ‘금강’ 바로 건너편에 있는 『현대신문』에 그들의 친구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닷새를 지내니 조현식이 길여사에게 약속한 십삼일이 되었다. 그리고 그때는 이미 그들의 심경도 결정되어 있었다. 십일일 경부터 ‘유엔’군의 반격이 개시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대책’ 문제는 절로 기각이 된 셈이었다.

십오일부터는 중구도 K통신사의 윤의 소개로, 『현대신문』에 논설위원 일을 보게 되었다. 십육일부터는 조현식이 또한 중구의 소개로,『현대신문』이층 한 쪽 구석방에나마 ‘문총’ 간판을 옮겨 붙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때는 이미 원주(原州), 이천(利川), 오산(烏山) 등지가 ‘유엔’군에 의하여 탈환된 뒤였다.

중구가 일을 보게 된 사흘 후에 『현대신문』문화란에는「박운삼의 인간과 예술」이란 조현식의 평론과 아울러, 송화백의 ‘컷’이 곁들어진 박운삼의 유작시「등대(燈臺)」가 게재되었다.

어쩌면 海溢이 있을

듯한 저녁 때

나는

홀로 바닷가에

섰다.

저 어리광을 부리듯한

푸른 물결에

마음은

드디어 무너져

가는가.

먼 바다 저 쪽

흰옷의 新婦는

등대같이 섰는데

나는 나를 살르어

불을 켜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