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송문 근작시

바다 운동회 / 법 / 밥상 / 몽블랑 스피어 잉크 3 / 직간

SM사계 2012. 7. 30. 10:03

 

 

 

 

바다 운동회 외4편

 

                                    黃松文

 

잔잔할 때는

푸른 유니폼, 하얀 유니폼을 입은

여고생들의 체조시간

부드러운 파도타기 매스게임이 한창이다.

풍랑이 일 때는

백마 떼들의 경마장

우렁찬 함성과 함께

소금 먼지를 일으키면서

물비늘 찬란히 무섭게 질주한다.

도마뱀 떼들 지그재그로

끝없는 되풀이로 살아나는 바다는

죽었다 깨어나는 성애의 시원(始原)

방파제를 물어뜯으며

대자연의 도서(圖書)들을 집어 삼킨다.

바다는 광의(廣義)의 도서관

산적한 채석강의 책무더기들

죽고 살고 읽겠다고

온몸 부딪쳐 통독(通讀)하는가

神의 창조를 몸짓하는

청소년들의 운동회가 한창이다.

 

 

 

창경궁 문지기는 거인(巨人)이었다.

하는 일 없이 밥만 축내는 문지기는

서있을 때나 앉아있을 때나

코끼리보다도 더 눈길을 끌었다.

거인을 아무도 무서워하지 않았다.

허수아비를 무서워하지 않는 것처럼……

걸레바지를 입은 허수아비가

참새들에게는 공갈이 될지는 몰라도

까마귀들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었다.

법을 만드는 선량(選良)들이나

법을 주무르는 관료들이나

까마귀처럼 허수아비 머리끝에 앉아서

파먹은 주둥이로 쑤셔대고 비벼대고

슬픈 눈물의 왕,

백성들을 우롱하고 있었다.

 

 

밥상

 

선거 때만 되면

밥상은 진수성찬인데,

언제나 썩는 냄새가 난다.

소금도 간장도 없는 밥상에

빠지지 않은 반찬은 부정부패와 불법,

무능과 선심성 복지가 단골이다.

FTA에 제주 해군기지 말 뒤집기

재벌들의 불공정과 탐욕

공짜로 제공하겠다는 수천억 원짜리

복지 신선로(神仙爐)에서 썩는 냄새가 난다.

선거 때만 되면

밥상은 진수성찬인데,

언제나 썩는 냄새가 난다.

 

 

몽블랑 스피어 잉크 3

 

인류역사상

가장 많은 경험의 보석을 지녔다.

할아버지가 붓으로 글을 쓰던 유년에는

할머니와 어머니와 목화를 따서

무명베를 짜는 가내수공업을 도우며

잠자리표 연필로 글씨를 썼다.

숫기가 생길락말락할 때는

펜으로 잉크를 찍어서 쓰다가

열꽃 피던 사춘기에는

만년필로 괴테를 흉내 내었다.

문예작품 대량생산 때는

조강지처 만년필을 버리고

첩실같이 눈이 똥그란 볼펜을 쓰다가

워드프로세서로 대량생산에 들어갔다.

죽기 전에 조강지처를 찾듯

늘그막에 들어 남대문시장에서

몽블랑 스피어 잉크를 찾았다.

오오, 그러나

하늘색 잉크는 품절되고

검은 잉크만 남았다고 들었다.

너무도 오랫동안 바짝 마른 만년필

잉크 불감증을 치유할 길 없어

지하도 층계를 내려가고 있었다.

 

 

직간直諫

 

편향된 종교가 아편이라지만

빼딱한 촛불이 아편이라고

산발한 날선비 상소문으로 아뢰오.

멀쩡한 대낮에

소 한 마리 죽은 일 없고

사람 하나 죽은 일 없는데

촛불집회가 적조의 바다로 번졌나이다.

아무도

촛불을 아편이라고 말하지 않는

적조(赤潮)의 바다에서

양심이 허우적거리며 떠내려갔습니다.

法은 허수아비

不法이 많아지면 合法이 되는

적조(赤潮) 해일(海溢)에 밀려서

진실은 행방불명이 되었다고 합니다.

'황송문 근작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중희  (0) 2016.07.30
창변의 손  (0) 2016.07.30
근작시 - 할머니 감나무에 거름을 주었느니라  (0) 2016.02.09
신오감도新烏瞰圖   (0) 2015.01.16
장미와 찔레  (0) 2010.1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