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송문 시전집

능선 -제8시집-

SM사계 2010. 7. 9. 21:50

 

黃松文 詩集

 

 

稜線

 

 

 

머리말

나는 등산을 좋아한다. 한국문인산악회에서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주 산에 오르지만 나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틈나는 대로 쪼개 낸 시간을 야금거리면서 산행을 누리어 왔다.

식물성 정신으로 가득 차 있는 산은 물질문명에 때묻지 않아서 좋고, 어떤 가식이나 엄살이 없어서 좋았다. 저 태양의 미소와 바람의 애무,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는 그 어떠한 설교나 기도보다도 더 은혜스러웠고, 스님의 염불보다도 더 편했다.

능선(稜線)에서는 이쪽과 저쪽을 다 볼 수 있어서 좋았고, 눈꽃 속에서는 공해에 찌들었던 나를 헹구며 빨래하고 다리미질하여 삶을 곱게 펴나갈 수 있어서 좋았다.

나는 세상에 실망할 때면 으레 산에 올라 하늘을 본다. 하늘 아래 수목이나 수목 위의 하늘은 아무리 보아도 눈이 아프거나 싫증나는 법이 없어서 좋다. 산에서만 제대로 만나게 되는 하늘이나 수림은 주판알처럼 반들반들 닳아진 계산의 눈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저 법 없이도 사는 시골의 농부처럼 순후하게 반기는 것이었다. 나는 하나님을 닮은 농부 같은 시, 하늘과 숲을 닮은 눈꽃 같은 시를 쓰고 싶었다. 그러나 그게 그렇게 뜻대로 되지는 않았다. 무수히 떨어진 감꽃처럼 나의 시 조각들은 파지로 나가고, 굽은 소나무 선산 지키듯 차마 버리지 못한 시들이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인생을 가리켜 나그네니, 미완성이니, 영원한 과정이라고들 말한다. 열 번째 펴내게 되는 이 시집이 어쩌면 그 영원한 과정 속에서 주고받은 꽃시계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현모양처 같은 시는 낯선 지붕 밑으로 떠돌고, 작부 같은 낙서가 안방 차지한 시대에 기꺼이 출판하여 준 임종대 사장께 감사하면서, 독자에게는 차린 것은 없지만 많이 드시라는 말씀으로 부끄러움을 면하고자 한다.

1995년 2월 21일, 冠岳山房에서 黃松文

차례

머리말

1

稜線

해를 먹은 새

창을 열면

찔레꽃

白鹿潭

번데기

우산 이야기

和音

立秋

哲學하는 詩

발레 환타지아 ․ 2

바둑판 앞에서

봄이 오는 소리

연(鳶)

배고픈 꽃

눈 오는 밤

하늘을 보듯이

바람에 흔들리우는

大地는

구름이 쉬어 가듯

松竹盆栽

버들강아지에게

물 끓는 소리

2

桂林

高山族 女子

눈 그림자

파타야 파타야

타이페이 공동묘지에서

少女와 詩人

四聲

내 가슴 속에는 ․ 9

마카오에 갔더니

라마寺院에서

作品 ․ 1

作品 ․ 2

자연사 박물관에서

갈대밭에서

내장산에서

퐁네프의 연인들

나의 房

두 나무

노을

만년필

세월이 흘러서

竹皮

보리밭

還鄕女

3

동굴의 잠

그해 여름은

꽃잎 ․ 2

꽃잎 ․ 3

돌 ․ 4

裸像

할렐루야

사랑의 궁전

素心

明暗

狀況

竹馬故友

6월 메시지

통일동산 까치방

山의 婚夜

恨의 가락

사랑의 봄동산

하늘나라 별처럼

땅으로 바다로 하늘로

해님과 달님의 사랑

별이 빛나는 밤이면

雪中孤竹

松竹이 하늘을 보듯

새해가 오른다

稜線

오르기 위해서 내려가는 나그네의

은밀한 탄력의 주막거리다.

옷깃을 스치는 바람결에도

살아나는 세포마다 등불이 켜지는

건널목이다, 날개옷이다.

陰地에 물드는 단풍같이

부끄럼을 타면서도 산뜻하게

웃을 적마다 불이 패이는

베일 저쪽 신비로운 보조개……

주기적으로 수시로 물이 오르는

뿌리에서 줄기 가지 이파리 끝까지

화끈거리면서 서늘하기도 한

알다가도 모를 숲그늘이다.

불타는 단풍을 담요처럼 깔고 덮고

포도주에 얼근한 노을을 올려보는

女人의 무릎과 유방 사이의

어쩐지 아리송한 등산광이다.

개살구를 씹어 삼킬 때의

실눈이 감길 듯이 시큰거리는

봉우리에서 봉우리로 이어지는

산등성이의 曲線……

쑤시는 인생의 마디마디

오르기 위해서 쉬어 가는

주막거리의 재충전이다.

창백한 형광등 불빛 아래

기침을 콜록이던 日常에서

어쩌다 눈뜬 저 건너 무지개

나무꾼과 선녀의 감로주 한 모금이다.

해를 먹은 새

죄를 따먹은 새

눈이 밝아진 새가

잉글잉글 불붙어 노래 부르네.

태초에 남녀가

금기의 과실을 따먹듯

절정의 순간을 탐하는

화덕에서부터 일어난 지진은

손끝 발끝까지 感電하더니

餘震으로 찌르르 찌르르

오장육부 오대양 육대주로

희열이 넘쳐 넘실거리며

흐물흐물 풀어지더니

사랑과 슬픔의 볼레로 같은

영화음악으로 온 누리 구석구석

파고드는 뿌리로 굽이치는 물결로

머물다가 흘러내리더니

불을 사랑하는 물과

물을 애무하는 불이 어울려

지글지글 끓어제끼는

화덕 삼매경……

그 사랑의 궁전에는

불과 물이 불꽃이 되어

군불을 지피는 人體宇宙

수억만 세포들 폭약이 되어

폭죽을 터뜨리며 노래 부르네.

창을 열면

창을 열면

하느님의 도서관이

끝없는 詩語의 집으로 서 있다.

하늘과 구름과 산천초목이라는 책들이

暗喩의 表紙에 가리워진 채

정말 무심히 바라보지만 말고

계시의 눈으로 읽어 주기를 바라고 있다.

세파에 끌려다니던 몸뚱아리

찌들고 때묻은 마음을 빨래하고

구겨진 영혼도 다리미질하여

곱게 곱게 펴가면서 살아라고

개나리 진달래도 보내어 온다.

딸 아이 얼굴 보콜보콜한

백목련 버들강아지도 보내어 오고,

어둡던 눈이 새로 밝아지신

할머니가 무명실로 바늘귀를 꿰듯이

古木에서 매화꽃도 피어나게 한다.

찔레꽃

고향에서 만나

불을 지피리.

새가 되어

저승길 벼랑을 벗어나

구만리장천 떠도는 새가 되어

그대,

수줍음 가득한 그대

꽃잎을 따먹고

열매를 따먹고

해를 따먹고 불타는 사랑

벌건 피똥에 씨알을 떨어뜨려

이승까지 떨어뜨려

고향의 심심산골 홀로 피게 하였다가

아무도 몰래

공주 만나러 가는 원효같이

그대, 혼곤한 골짜기

꿈꾸듯 홀연히 불을 지피리.

白鹿潭

내가 저승에 가게 될 때에는

눈꽃 숲을 거쳐서

그대를 찾으리.

하얀 잠옷 풀어 내리며

裸身을 보여주던

그 기막힌 신비의 베일 속에서

法酒로 終命을 꽃피우리.

눈꽃 숲 속에서 내가 꽃필 때

꽃가지에 내린 눈잎같이

바래진 영혼이 햇살에 날으리.

번데기

-지체부자유아들의 연극

회오리바람에

지랄 발광하는 쑥풀처럼

뒤틀린 입들이 눈들이 팔들이

발들이 건들건들 찔쑥 쨀쑥

허공을 자맥질하며 날으려고 한다.

학처럼 날으리라 날으리라

솜보송이 낙하산 민들레 씨알처럼

선녀의 날개옷 입고 훠얼훨 날으리라.

뒤틀린 체머리 흔들며

개침을 질질 흘리면서도

헤헤 히힛, 바람에 나부끼는 빨래들

태양도 부끄러워 바로 보지 못하는

두더지처럼 비실 비틀 쑥풀춤을 춘다.

힛뜩 햇딱 추는 춤은

바람에 나부끼는 허수아비 같지만

들녘에서 구풀구풀 뻗어나가는 쑥

밟아도 밟아도 쑥쑥 자라

끝끝내 끝끝내 일어서는 쑥춤이다.

여기서 시련 고통이

저기서 복이 되리라고

입으로 붓을 물고 그림을 그리고

발가락으로 붓을 쥐고 글씨를 쓰는

들쑥 청쑥 다북쑥의 정신이다.

하늘로 머리 들고 웃는 빠삐용의 정신이다.

일백사십억 개의 뇌세포를 작동시키는

중추 회로에 세포 하나 빠져 나가

고장난 神의 눈물겨운 희극작품

고장난 어둠 속에 알전등이 깜박인다.

알전등이 깜박깜박

살아난 세포에 불이 들어와서

사팔뜨기 눈과 헤벌어진 입과

뻐드러지고 뒤틀린 곰배팔다리로

찔쑥 쨀쑥 자맥질하며

인형놀이하며 전쟁놀이하며

나비처럼 나풀나풀 노래 부른다.

번데기가 애벌레가 나비 된다고

나비 되어 꽃청산 훨훨 날자고

노랑나비 흰나비 호랑나비 되어

장다리 밭으로 유채꽃 밭으로

얼사쿠 훨훨훠얼 높이 날자고

말도 안되는 노래 부르며 타령춤 춘다.

우연을 궁리하는

나의 잠실

연구실 창문은 潛望鏡인가

海底 수천길 물 속

층암 절벽 치렁치렁

미역 줄기 같은 칡덩굴이 흔들거린다.

계절이 지나가는

창문 밖에서는

바람이 쉬엄쉬엄 지나가는가.

눈을 들면

소나무 참나무 상수리나무들이

그 가지를 지느러미처럼 늘이우고

始原의 都市를 꿈꾸는가.

수직으로

깎아지른 듯한 절벽

절벽 위의 수풀

수풀 위의 하늘

하늘 속의 구름……

구름 저쪽

無限天空에 눈감다가

다시 머리를 들면

파도처럼 일렁이는 구름 사이로

파랗게 열리는 쪼각 하늘

그 하늘 틈서리로

점수함 같은 비행선이 흐른다.

이승과 저승 사이 한나절을……

우산 이야기

사랑의 시발을 노래한

이쓰기히로시의 노랫가락처럼

처음에는

나의 우산 속으로 그녀가 뛰어들었다.

나의 우산 속에서

길을 걷던 그녀가

추억을 야금거리고 있었다.

빗속으로 사라진 그녀가

새로운 우산을 펴들고 걸을 때

나는 잠시 동안의 삶을

그녀의 우산 속에 의탁하고 있었다.

내가 길을 걸으며

우산을 함께 받자고 했을 때

그녀는 가는 길이 다르다고 했다.

세월이 흘러간 후

우산도 없이 길을 걷다가

뒤를 돌아보았을 때

그녀는 비는 맞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빈손이었다.

나의 우산은 어디로 갔을까.

미궁에 빠진 나의 우산은

나를 빼박았다고

그녀가 빗속에서 말했다.

나의 슬픈 우산처럼

내 우산의 슬픈 이야기처럼

그녀는 내 우산을 닮았다고

나는 촉촉한 빗소리로 말했다.

和音

봄바람이 연인에게 건네는 말씨는

당신과 함께라면 불 속에도 들어가고

사흘만 살다 죽어도 원이 없겠다는

귓속말이다, 귓속말이다!

봄햇살이 연인에게 던지는 눈웃음은

참깨밭에 내리는 비둘기 눈빛

웃음꽃이다, 웃음꽃이다!

봄물결이 연인에게 들려주는 노래는

골짜기에서 강으로 바다로 흐르는

교향악이다, 교향악이다!

귓속말과 웃음꽃과 교향악이

神의 지휘봉대로 어우러져 나오는

마음의 자유천지……

세상사 아우성을 치거나 말거나

밤낮으로 연주회가 계속되는

大自然은 천차만별 調和美다!

立秋

새치 하나 뽑아 낸

아이의 눈빛에

나의 가을이 아른거린다.

가을날

드높은 하늘에

황새처럼 목을 늘여 올리면

시려운 계절의

殘熱……

목숨 하나 뽑혀 있다.

시들어 가는 풀밭에서

수정 같은 하늘을 보면

거기,

푸른 눈에

새치 하나 서럽다.

哲學하는 詩

낙엽 위에

떨어진 엽서는 아름다우리.

엽서 같은 이야기를 만들면서

떨어지는 낙엽은 아름다우리.

가을날의 사연같이

떨어지는 것은 아름답고

받아들이는 것은 아름다우리.

囚衣의 안섶을 여미고

창을 열듯

다시 살아나는

草心……

엽서 같은 사연을 안고

구르던 낙엽이

불붙어 사라지면

세상은 고요하리……

검푸른 실연기를 날리다가

화다닥 타버리는 목숨 끝의

검은 재는 바람에 흩어지고

엽서처럼 간단한

印象만 남으리.

발레 환타지아 ․ 2

鶴이 서듯

종종걸음으로 종종걸음으로

발끝 세워 일어선다.

안개구름이 피어오르듯

시나브로 시나브로

살포시 시나브로 피어오른다.

발가락 끝으로 땅을 딛고

꿈결같이 일어서는

안개구름 속 선녀의 몸짓

훠얼 훠얼 풀어져 내린다.

나무꾼에 붙들린 선녀가

하늘이 그리워 그리워

실비단 하늘을 고즉넉이 올려보며

날개 젖는 가냘픈 손

나뭇가지에서 속잎이 피어 오른다.

鶴이 날듯

훠얼훨 훠얼훨 날아오른다.

햇빛살 웃음꽃 피어나듯이

樂園 三層天으로 피어 오른다.

바둑판 앞에서

맑은 눈으로 하늘을 보듯이

빈 마음으로 定石을 본다.

바둑을 두다 보면

빈 하늘에 구름이 나돌듯이

집이 생기고 田畓이 생기지만,

욕심에 축(丑)으로 몰리게 되면

인연은 갈갈이 찢겨져 나가

가산을 탕진하고 몸을 망친다.

병실에서 바라보는 창밖으로

만나는 구름과 헤어지는 구름들,

분만실과 수술실 사이에서

뭉게구름 같은 아기들을 보다가

먹구름 같은 주검들을 보다가

눈을 감으면 비가 내려

세상은 온통 祈禱가 된다.

빈 마음으로 바둑판을 보듯이

세상을 보다가 하늘을 보면

흰구름 검은 구름 어디로 갔는지

물안개 눈물 속 해가 비친다.

봄이 오는 소리

-姜大運 敎授의 그림 앞에서

물을 사랑하는 봄이 물소리를 내지르네.

불을 사랑하는 봄이 불지르며 다니네.

물과 불을 중매 서는 바람은

박하사탕 먹고 피어 오르는

아지랑이 아질아질 신명 도지네.

봄햇살이 물을 길어 올리네

느릅나무 속잎 피는 굽이굽이마다

뿌리에서 줄기로 가지로 잎으로

박하사탕 화안하게 얼사쿠 일어나네.

봄물결이 불을 안고 피어 오르네.

능선과 능선과 계곡과 계곡과

어깨와 어깨와 허리와 허리와

능선과 계곡끼리 능선과 계곡끼리

청실홍실 어우러져 꽃을 피우네.

봉오리 봉오리 젖꼭지 같은 꽃봉오리

달거리보다도 더 진한 꽃봉오리

능선에 오른 꽃은 해와 입맞추고

해는 눈녹은 골짜기에 내려

사랑의 궁전은 뿌리를 낳고

뿌리는 깽맥깽맥 물을 길어 올리네.

물과 불을 중매한 봄바람이 살랑살랑

산마루는 골짜기에서 얼사쿠나 아롱아롱

열두 발 상모 하늘 감아 돌리더니

덩덩 덩덕꿍 꼿꼿이 서네.

아지랑이 먹은 처녀 총각들

싱숭생숭 아질아질 일어서네.

연(鳶)

네가 높이 높이 날아오르려 할 때

나는 너를 끌어당기고 풀어 주었다.

네가 멀리 떠나고 싶어할 때

나는 너를 풀어 주었다.

가느다란 줄로 맺어진

우리의 인연은 바람의 숙명이었다.

나는 너를 사랑했으나

너는 바람을 선택했다.

나의 줄을 잘라먹고

바람대로 날아가 버린 너는

죽음에 입맞추었다.

나뭇가지에 걸려 찢기우고

물에 빠져 구겨진

너는 바람의 제물이었다.

타락은

자기의 처소를 떠난 이의

구속받는 자유였다.

네가 날아오를 때 나는 살고

네가 추락할 때 나는 죽었다.

배고픈 꽃

따먹으면 따먹을수록

배고픈 꽃이여

탐하면 탐할수록

허기지는 꽃이여

붙들면 붙들수록 놓치고

잃으면 얻는다는 진리는

보자기로 구름 잡는

뜬구름 같은 이야기

보리누름에

보릿고개를 넘으며

두 손 부벼 부벼 먹던

그 쫄깃한 욕망

채우면 채울수록 허기지는

후회의 계절을 지나

떠내면 떠낼수록

다시 차오르는

남녘 유월의 생수 같은 마음

따먹으면 따먹을수록 배고픈 꽃은

가시가 많은

골담초 꽃잎……

순간과 영원의 보릿고개.

눈오는 밤

눈오는 밤에

밤은 적적 고요한데

詩는 퇴침을 베고 눕는다.

낭떠러지 아슬아슬한

골짜기 위로

쟁반 달이 내려와

照準口整列을 할 무렵

마음으로

수평과 수직을 긋는

가늠쇠 중앙 저쪽에

함박눈이 퍼엉펑 내리고

바람은 세 치 땅 속

꽃씨 속에 잠든다.

밤은 적적 고요한데

골짜기 건너뛰는 토끼 한 마리

달 위로 떠오를 때

눈가루가 그 위로 흩뿌려 오를 때

카메라 셔터 닫히는 소리

불꺼진 방 창호지에 눈 내리는 소리에

枕上의 詩는 잠이 든다.

하늘을 보듯이

눈이 아픈 날엔 하늘을 보듯

마음이 아픈 날 하늘을 본다.

세상이 싫어지면 하늘을 보면서

안경알을 푸르게 닦는다.

세상이 싫어지면 싫어질수록

안경알을 닦으면서 닦으면서

먼지 낀 마음을 닦으면서

건너편 창문이 잘 보일 때까지

無念으로 無想으로

마음을 닦고 닦는다.

나는 어디에 있는가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빈 하늘에 구름이 떠돌듯

빈 가슴에 떠도는 마음……

세상이 싫어지면 하늘을 보고

마음이 아프면 눈을 감는다.

안경알을 닦으면서 닦으면서

내 하늘을 보고 내 마음을 본다.

바람에 흔들리우는

버들가지가 바람에 흔들리듯

잡놈들에게 흔들리우는 그녀의 손을

나는 바라보고 있었다.

바람에 둘러싸인 채

흔들리우는 그녀의 손은

지그재그로 위태로웠다.

허튼 수작 부려 온 바람에

그녀가 해해거릴 때

나의 구두는 그녀의

발밑에 깔려 신음했다.

나를 밟고 지나간

시간이 긴장하는 것은

짓밟힌 신발 탓만이 아니다.

바람에 흔들리우는

바람 속의 바람 끝에 뒹구는

낙엽같이 허전한

허공 속의 약속도 아니다.

아픔으로 웃음으로

노을에 타는 헛웃음으로

골목길 허쳐 뿌리며 뿌리며

눈감는 深淵……

哲學하는 희나리였다.

大地는

大地는

이 세상의 모든 도시락을 까먹는다.

두꺼비 파리 채어먹듯

눈 감은 채 우리들을 조용히 야금거린다.

천하에 없는 사람도

때가 되면 흙의 아가리로 들어간다.

천하에 없는 美人도

勢道家도 守錢奴도

시나브로 먹혀 들어가는

시간의 부스러기들……

아서라 말아라

목에 힘주지 말아라

누가 잘났다 목에 힘주느냐

때가 되면

어둠의 장막이 내려와

부토의 혀를 낼름거리는 것을.

大地는

두꺼비 파리 채어먹듯

눈감은 채 우리들을

완만한 동작으로 삼키는 것을.

구름이 쉬어 가듯

路資 없는 구름이 쉬어 가듯

나는 쉬엄쉬엄 걸어간다.

먼지 낀 하늘도 닦아 보고

自適한 구름도 손짓해 보면서

虛虛實實 쉬엄쉬엄 걸어간다.

詩友에게

혀꼬부라진 소리 하긴 싫고,

아직은 廉恥가 살아

빈 손으로 걸어간다.

정처없이

하늘을 보다가

땅을 보며 가는 나는 누구인가.

빈 손으로 왔다가

빈 손으로 가는 구름같이

왔다가 가게 하는 이는 누구인가.

구름이 한 점

쉬엄쉬엄 쉬어 간다.

松竹盆栽

아무리 뽑아 옮기고 뽑아 옮기고

송두리 뿌리째 뽑아 옮기고

아무리 찢어 발기고 찢어 발기고

송두리 뿌리째 찢어 발기고

가위질을 하여도 하여도

난도질을 하여도 하여도

각을 자르고 주리를 틀어도

무릎 꿇은 적이 없었다

허리 굽은 적이 없었다

머리 숙인 적이 없었다

아무리 늙고 늙어도

아무리 추위에 떨어도

아무리 핍박을 받아도

아무리 가난 속에 버려도

아무리 물 한 모금 주지 않아

뿌리째 목이 타들어가도

웃음을 팔지 않았다

지조를 팔지 않았다

절개를 팔지 않았다

아무리 주리를 틀어도

혈기를 부릴 줄 모르는

서늘하고도 빈 마음……

욕심이 없이 산다

막힘이 없이 산다

맺힘이 없이 산다

세상이 아무리 혼탁하게 흘러도

푸른 빛을 잃지 않고

허튼 소리 하지 않는다

아부에 살찌지 않고

아첨에 눈멀지 않는다

시작과 끝이 분명한

마디와 마디마다

빈 마음으로 푸르게 산다.

버들강아지에게

젊다고 잘났다고

청춘이 구만리 같다고

너무 그렇게 우쭐거리지 말아라.

무에 바람 들듯이

그렇게 너무 우쭐거리지 말고

思春의 바람에 놀아나지도 말아라.

人生을 푸지게 하면서도

시궁창에 빠져서는 안되느니라.

청량리 쇠파리 골목 골목

유리상자 속의 꽃들이

즐거워서 손짓하는 줄로 아느냐.

아침 햇살에 찬란한

털북숭이 기막히는 유혹을

다소곳이 뿌리치고 뿌리치고

웃음 헤픈 허파에 바람 들지 말아라.

물 끓는 소리

어둠의 지느러미들이 떠도는

깊은 밤……

자정이 넘은 연구실에서

물 끓는 소리에 뒤척이다가

피 끓는 아우성의 꿈을 꾸다가

칡차를 타 마시고 끄적이다가

목침대 침낭 속으로 들어가

애벌레처럼 꿈을 부르다가

더러운 혓바닥 침 발라 헤아리는

검은 돈에까지 아로새겨진

우리네 세종대왕께서,

한국은행 전속모델로 전락하고

훈민정음까지 총살당하신

세종 임금을 얼싸안고 울다가

이게 아침의 나라 간판들이냐고

여기가 일본이냐고 미국이냐고

애간장으로 끓어제끼면서

내 잠을 깨우는 물 끓는 소리는

내 꿈을 깨우는 물 끓는 소리는

동학 민병들 짚신발 소리

떠난 혼을 부르는 소리

깊은 밤 해저에서

深海魚 지느러미들 떠도는 소리.

2

桂林

中國 桂林에서

달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는

계수나무를 만났다.

달나라에서

不死藥을 찧던 토끼는 간 곳이 없고

계수나무 이파리 두 닢이

고량주 잔 속에 떨어졌다.

계수나무 그늘 아래

달은 술잔 밑에 갈앉고

건져낸 잎사귀에 아린 상처,

아아, 달나라에도 벌레가 사는가

두 잎 중의 한 잎은

벌레 먹고 반쪽만 남아

세상 보듯 눈을 감았다.

高山族 女子

낙화암 절벽의 고란초 같은 여자

숲그늘에 꼬리를 사리던 여자들이

젖무덤 아슬아슬 가리고 나와

제 남편 끼듯 팔짱을 끼고 서서

눈웃음 해실해실 사진을 찍잔다.

사진 한 장 찍혀 주는

모델료가 20원이면

대한민국 돈으로는 5백원

세종대왕이 팔려 나간다.

세세 세세 절을 하다가

짜이찌엔 짜이찌엔 손을 흔들면서

비밀 한 꺼풀씩 벗겨 보여주며

한 모금의 우연을 낚는다.

시집 올 때 얼굴에 새긴 문신을

서럽게 서럽게 어루만지며

눈물을 글썽이는 노파의

아득한 향수……

그 뒤에

춤추고 사진 찍고 돈을 받아 쥔

처녀 같은 여자가 아기를 안고

그림자를 끄을며 꼬리를 감춘다.

눈 그림자

눈은 눈인데

돈맛을 아는 눈이 아니다.

손바닥으로도 가리우는 하늘

쪼각 하늘 가

벼랑 아슬아슬 이슬 머금은 石蘭,

그 서늘한 눈빛은

돈을 만진다 하여도

돈맛 들인 룸살롱 아가씨의

팔자 사납게 시퍼런

아이섀도가 아니다.

손은 손인데

죄지은 손이 아니다.

빠실빠실한 돈 침 발라 세며

실눈 가늘게 俗情을 누리는

그런 더듬이 손이 아니라

천만 줄기 두레박 타고 내려온

천만 년 전 이승의 내 연인……

언젠가는 누워 쉴

원추리 그늘이다.

파타야 파타야

고려 청자에

비껴 가는 하늘 한 자락 같은

연초록 바다를 가면서

뱃바닥 유리 바다를 내려보면

산호가 숲을 이루고,

그 산호 바다를 한 바퀴 휘이 돌아서

야자수 그늘 밑을 거닐다가

해변에 나서면

손 벌리는 아이들,

내가 어릴 때 손 벌리며

헤이, 코쟁이 짭짭!

로숑박스 기브미, 오케이?

겨로리, 겨로리, 까뗌! 까뗌!

코흘리개 동네 아이들 같은

파타야 섬 아이들이

헤이, 코리아, 올림픽! 올림픽!

악어가죽지갑 한 보따리에

이천 원, 이천 원!

손가락 두 개를 펴 보이며

거머리 붙듯 달라붙는다.

베트남 전쟁 영화를 촬영하는

파타야 파타야는

손 벌리는 아이들의

헤이, 로숑박스 기브미, 오케이?

헤이, 악어가죽지갑 한 보따리에 이천 원!

두 전쟁 영화가

하나로 겹쳐 클로즈업된다.

타이페이 공동묘지에서

그들은

살구를 씹는 카메라 앞에서

모델이 되어 주고 있었다.

무성한 풀 속에서

돌들이 말하고 있었다.

서 있는 돌과

누워 있는 돌과

비스듬히 누워 있는 돌들이

삶과 죽음을 말하고 있었다.

죽은 사람의 사진과 글씨와

풀잎과 바람과

명예와 印象……

결혼 비용보다도 더 많은

장례 비용을 걱정하다가

눈 감은 사람들……

그들은

살구를 씹는 카메라 앞에서

모델이 되어 주고 있었다.

少女와 詩人

나는 바라본다.

일하는 소녀를.

쉴 새 없이 움직이는 그녀의 손놀림을.

나는 바라본다.

숲 속에 내린 鶴처럼

쉴 곳에 찾아든 시인을.

플라워 호텔 창문으로 바라보이는

두 사람을

신기한 눈으로 바라본다.

튀김 과자를 봉지에 담아 주며

쉴 새 없이 움직이는 그녀의 손끝에서

GNP가 쌓이고,

립스틱을 모르는

깨끗한 노동의 손을 바라보는

시인의 눈에서는

까닭 모를 더운 시가 어리고,

떠날 때는 말없이

소녀는 튀김 과자 한 봉지 싸주고

시인은 수건에 사랑 한 줌 싸주고

돌아서며 손 흔드는 정경을

나는 詩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四聲

항우장사가 걸려 넘어진

댕댕이 덩굴 사이 사이로

물새들이 물을 물고 오르내린다.

영락없이 고스랑머리를 닮은

고스랑 라면을 물고 날으는

물새들이 물새들이

타이양 출라일러

타이양 출라일러

해를 따먹으며

창공을 游泳하다가

수직으로 내려오다가

S字로 구부러지는

양귀비 웃음 소리……

갈잎보다도 날카로운

소리들의 칼바람에

娘子의 옷자락이 쌕쌕거린다.

내 가슴 속에는 ․ 9

내 가슴 속에는

물기 서린 청자 항아리가 있다.

中國 高山地帶의 비취빛 하늘이 있다.

내 가슴 속에는

中央山脈의

천 길 낭떠러지가 있다.

깎아지른 산허리에

새끼줄 같은 길을 뚫고 달리는

위태로운 차가 있고,

그 차창으로 올려보이는 쪼각 하늘이 있다.

손바닥만한 하늘과

땅이 동거하는

별천지가 있다.

내 가슴 속에는

하늘을 사모하는 풀잎이 있다.

풀잎에 숨어 사는 족속이 있다.

옛날 옛날 한 옛날에

장군의 부인들을 끌어 간

고산족 추장의 눈빛이 있다.

천하에 없는 장사도

당해 내지 못 하는

바람의 궁술,

신비의 베일 저쪽에서 들려 오는

짐승스런 웃음 소리가 있다.

마카오에 갔더니

마카오에 갔더니

무너진 성당의 돌벽만 남고

마카오 신사는 간 곳이 없더라.

그 신사 드나들었다던

이발소에 들렀다가

쥐뜯어 먹힌 머리로 나와서

바라보는 하늘과 땅,

과거와 현재가 눈맞추더라.

짙푸른 바다가 피로 물들던

처참한 비극의 현장에서

깃발은 시니컬하게 나부끼더라.

나란히 서서 마주 보며 나부끼는

중공 국기와 폴투갈 국기가

헤엄쳐 나오다가 총 맞아 죽은

중공 난민들을 무심하게 보더라.

라마寺院에서

나는 보았다.

라마승의 極樂을.

뿌리가 샘을 비집고 들어가는

극락의 극치를.

푸른 뱀처럼 일어나 꿈틀거리는

뿌리의 힘줄기를 바라본다.

구풀구풀 굽이치는 힘찬 산맥으로

끝없이 뻗어나가는

無量光 無量陰의 境地

그러나

初夜權을 반납한 라마승들이

임질 매독을 앓고 난 뒤

죽지 못해 살고 있는

지옥 중의 지옥을 본다.

나는 보았다.

라마승의 생식기를.

범죄한 천사가 내어 쫓기고

무화과 잎으로 하체를 가리게 하던

죄의 뿌리를.

作品 ․ 1

-제주도 용머리에서

바다는

남성과 여성의 중화체였다.

수염들이 모여서 어깨가 되고

살결들이 모여서 허리가 되어

언제나 물침대에서 출렁이는

절정과 情死의 연속이었다.

부드러운 바닷물이

등허리를 어깨를 머리카락을

수백억 년을 어루만지고 어루만지고

온몸으로 애무하며 빚어내어

생기를 불어넣어서

만들어 낸 걸작품들……

금수강산 그랜드 캐년이라고

찬탄을 파도치다가

거품을 물고 어스러져내리면서도

말로는 표현이 다 되지 않아

감탄사를 토하다가

그래도 표현이 다 되지 않아

자연의 樂譜를 흉내내다가

탄생의 울음을 내지르고 있었다.

울음을 게워내면 게워낼수록

더욱 거세면서도 부드럽게

어루만지는 바다의 손들이

천만 줄기 천만 갈래

神의 미장공들이 몰려와서

물비늘을 수놓고 있었다.

作品 ․ 2

-제주도 용머리에서

돌은 돌인데

죽은 돌이 아니다.

퇴적암이 아니다.

현무암이 아니다.

천년을 하루같이 살아도

권태기를 모르는

살아 있는 돌의 女神

曲線의 視野로 뇌쇄(惱殺)시키는

바다 속 稜線과 稜線

영원한 젊음의 몸짓이다.

자연사 박물관에서

죽어 있는 삶을 바라본다

머무르고 있는 공간 속에서

흐르는 시간의 토막을 본다

얼음 속에 물이 흐르듯

보이지 않는 가운데 시나브로

토막난 시간들이 시간들끼리

아름다운 주검을 장식한 채

유리 상자 속에 누워 있다

풀잎이 보석보다도 빛나는 것은

무지개 저쪽의 수수께끼 같은

신비의 베일 저쪽 안개 속 같은

죽은 듯이 깨어 있는

깊고 푸른 잠……

무지개를 받아 먹고 자라난

수정 동굴 속의

수정 고드름 끝에 흐르는

시간의 토막들을 바라본다.

갈대밭에서

바람과 관계가 깊었다.

머리가 타서 재가 되도록

열병을 앓았었다.

온몸으로 앓던 젊은 날들이

해풍에 실려 나갔다.

빈 틈서리 생기면

비집고 들어가 우는

문풍지 바람,

바람의 습성은 칼끝이었다.

역마살을 벗어나지 못한

역마살의 사내와 계집들

뜬구름같이 백발을 휘날려도

그리움만 여무는 바람도

허리가 휘도록 온몸으로 울었다.

내장산에서

단풍잎 타오르는 저녁 놀에

정읍주를 마시다가

녹두장군을 만났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

황토의 설움을 흥얼거리다가

풀밭에 쓰러져 꿈을 꾸다가

깨어 보니 하늘이었다.

청청 하늘에 찬별도 많더니

요내 가슴엔 수심도 많더니

우리네 가난한 농군들 짚신같이

녹두꽃이 버림받은 하늘이다.

눈이 서슬 퍼런 하늘에

붉은 피꽃 뿌리며

살아 남은 두 눈초리로

별을 쏘던 하늘이다.

퐁네프의 연인들

과일 망신을 시키는 모과 덩어리

모과 덩어리 같은 머리통

머리통 딱딱한 거지의

그 독특한 이미지를 사랑했단다.

생선 망신을 시키는 꼴뚜기

꼴뚜기 같은 수세미 같은

수세미 같은 머리카락 사이로

바람 먹은 눈을 사랑했단다.

산에서 만난 골짜기와

골짜기에서 만난 산이

불꽃 속을 질주하며

바람개비를 돌리고 돌리고

산이 골짜기에 뿌리 뻗기도 하고

골짜기가 산을 통째로 삼키면서

눈물 절반 웃음 절반

흐물흐물 무너져내려 풀어져내려

죄를 태워 마시고 태워 마시고

쓰레기통에 장미꽃을 피웠더란다.

나의 房

하늘 아래

하늘 아래 사는 令旗 아래

꽹과리치는 농부처럼

머리 흔들어 집을 짓는다.

뽕잎을 먹고 잠을 자다가

실을 늘이는 누에처럼

생각의 뽕잎을 먹고

언어의 실을 늘여

심회를 아로새기며

고독한 집을 짓는다.

알량한 생활에

수세미 같은 머리를 흔들며

생각을 야금거리기도 하고

추억을 꼼지락거리면서

집을 지으면 지을수록

알다가도 몰라지는 인생과 우주……

안개 자욱히 깔려 흐르는

나의 방은 神仙의 고인돌

이승과 저승의 二間長房이다.

아무나 함부로 들나들 수 없는

내 빈방은

빈 강정 같은

形而上 詩語가 부푸는 방이다.

두 나무

태초에 두 나무,

두 관계가 있었다.

제주도에도 두 나무의 관계

성서의 은유가 있었다.

측백나무와 귤감나무의 관계

가정을 지키는 울타리와

울타리에 보호받는 가족들의

관계가 있었다.

측백나무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

귤감나무는

사라 리브가 라헬의 聖神

家率을 거느린 家長이 있었다.

서 있는 나무의 겨드랑 밑에

새로 움트는 나무들,

아이들을 사이에 두고

夫婦는 이야기를 수놓고 있었다.

측백나무는

귤감나무를 감싸안아

바람을 막아 주고 있었다.

그들은

오붓한 가정에서

세상을 맛들게 하고 있었다.

노을

차라리

말하지 않는 게 좋다.

남 몰래

밤새도록 누리다가

쥐죽은 듯 한낮을 보내다가

숨으러 가는 길에

들켜 버린 얼굴……

남정네 술 받아 마신 새댁같이

화끈거리는 홍당무 연지볼

감추지 못하는 부끄러움을

차라리

말하지 않는 게 좋다.

만녈필

볼펜에게 밀려난

만년필은

恨이 많은 閨房女人

諫하다 流配당한

선비낭군 기다린 지 오래이다.

철그른 오버 주머니 속에서

孤獨과 同居해 온 만년필은

하는 일 없이

獨守空房을 지켜온 지 오래다.

소모품밖에 안 되는 볼펜에게

밀려난 이유를 말할 수는 없어도

나는 그 아픔을 안다.

만년필은 마님같이

시종일관 무던한데,

볼펜은 洋公主같이

技巧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아첨을 못하는 그는,

直筆을 못하는 볼펜의

曲筆 솜씨에 혀를 내두르며

땡감을 씹는

얄궂은 運命의 殉難者.

언젠가는 쓰레기장에 묻힐

플라스틱 볼펜의 빈 껍질과

똥그란 눈깔이 싫어

잠 못 이루는 밤이면

피눈물로 詩를 쓰는 깊은 밤이면,

나는 鄕愁의 눈을 번뜩이며

만년필을 찾는다.

세월이 흘러서

화자야

세월이 흘러서

네 얼굴이 가물거린다.

강물에 산산이 부서지는

달빛처럼 달빛처럼

아른거리는 네 모습을

붙들 수가 없구나.

정이월 다 가고 삼월이 오면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온다고

봄 노래 부르던 화자야

미쳐서 돌아다니던 어미

죽은 줄도 모르고

널뛰며 깔깔대던 화자야

세월이 너무도 흘러서

네 얼굴이 가물거린다.

강물에 산산이 부서지는

달빛처럼 달빛처럼 가물거린다.

竹皮

구부러진 소나무 선산 지키듯

쓸모없는 쓸모가 쓸모를 도모하듯

약탕관에서 고아지는 대나무 껍질이

지랄병을 때려잡는다.

神經安靜 神經安靜

삐약 삐약 안정

삐약삐약 삐약삐약

神經安靜

삐약거리는소리는 마음뿐

깨어나지 못하는 지구가

썩어 가고 있다.

수 천만 줄기의 핏줄이 강물이

수 천만 갈래의 날개가 산맥이

깨어나지 못한 채

껍질 속에 갇혀 있다.

알맹이 없는 껍데기가

작당하는 쇠붙이와 공모할 때

보턴을 누르려고 음모를 꾀할 때

미친년 그네 뛰듯 나풀나풀

어지러이 찢어진 치맛자락

갈기갈기 피묻은 팬티가

세상을 아슬아슬 놀라게 할 때

내 마음의 항아리

약탕관 속에서 고아지는

대나무 껍질이 지랄병을 때려잡는다.

보리밭

헤픈 웃음 헤실헤실 흩뿌리며

미친 여자가 달려온다

지그재그로 지그재그로

꽃잎을 싸구려로 뜯어 뿌리며

暗喩 한아름 안고 키들거린다.

月經 풀어지는 노을에 흐물거리며

머리에 꽃을 꽂고 손짓하는 여인이

치맛자락으로 바람을 먹는다.

남자를 빨아들인 여자가

여자를 먹은 보리밭이

물결치는 것은 물결치는 것은

몸서리치며 물결치는 것은

바람의 죄만은 아니었다.

사내를 빨아들인 계집이

바람을 일으키다 나자빠져 일렁일렁

눈썹 없는 달을 보며 키들거릴 때

산발한 사내가 지그재그로 달려온다.

還鄕女

고향에 돌아가도 갈 곳이 없어요.

더렵혀진 몸뚱아리 부릴 데 없어요.

개도 외면할 윤간당한 몽뚱아리

죽어도 묻힐 땅 한 뼘도 없어요.

미아리 눈물 고개에서 한평생

숨질 때까지 구더기처럼 살다가

화장터 한 줌 재가 되어

고향 땅 시냇물에 녹아 흐르리.

은사시나무 반짝이는 냇물에 떠서

속울음 뜨겁게 울며 흐르리.

3

동굴의 잠

꽃잎 떨어져 씨방 차리듯

동굴에 들어가 잠이나 잘거나

쑥과 마늘로 어둠을 연명하며

한 천년 깊은 잠에 빠져 볼거나

해를 따먹는 새가

노을이면 둥지로 찾아들듯

내 어머니 할머니 상할머니적

상고조 곰할머니 자궁 같은

아득한 동굴을 찾아들듯이

그렇게 노곤히 잠이나 잘거나

씨방 속에 새싹이 눈트듯

아침 햇살이 비쳐올 때

오탁의 속세를 쑥불로 구워먹고

기나긴 잠 끝에 거듭날거나

그해 여름은

그해 여름은

햇살에 비늘이 찬란했다.

그물을 들어올릴 때마다

함성이 폭포처럼 떨어지고

눈썹이 검은 농부는

물고기를 生食했다.

고놈 맛 주우컸다―

그물 밑이 묵근하도록

물고기를 몰아 잡을 때마다

길 가던 농부는 어디 보자 어디 보자

배를 뚝 딴 피라미를

개울 물에 헤적여서

한 입 물고 머릴 들면

바르르 떠는 은비늘에 햇살이 꽂혔다.

고놈 들크은허다―

찬란한 비늘에 햇살이 눈부셨던

그 해 여름은

수천억만 톤의 햇살이

무료로 제공되었다.

꽃잎 ․ 2

너는

나의 책갈피 속에 살아 있다.

짧은 여름밤의 꿈과

사랑과 추억과

망각의 커튼이 드리워진 창밖으로

세월의 강변이 반짝이는

젊은 날의 편린들……

너의

꿈조각을 쓰다듬는다.

편지 속에 실려온

가녀린 꽃잎을

책갈피에 간직하기를

하루

이틀

사흘,

10년 20년 30년……

망각의 커튼 저편 하늘로

세월 따라

떠나간 너는

돌아올 수 없는 강물이 되어

말없는 책갈피에 일렁거린다.

꽃잎 ․ 3

그대는

작은 꽃잎 속에

방 하나를 숨겨 두고 있었다.

아무도 들어갈 수 없는

그 작은 방에서

홀로 있기를 좋아하는 그대 앞에

나는 방랑을 멈추었다.

그러나

한 마리의 벌이 되어

그대 속으로 날아드는 나는

환상의 집을 짓고 있었다.

문은 열려 있었고

꽃가루는 은하수로 찬란했다.

날개 떨며 뒹구는

꽃 속에 꽃이 있었고

방 속에 방이 있었다.

그것은 씨방이었지만

영원한 방은 아니었다.

해가 기울기 전

꽃잎이 오무라들기 전에

나는 밖으로 나와야 했다.

돌 ․ 4

생각을 말자.

내 의식의 세포 끄트머리

커튼의 드리운 나뭇가지마다

움트던 窓에 충혈이 비칠 땐

온갖 사념의 불을 끄고

눈을 감자.

욕심으로 찍어대는 탐스러운 생각

먹음직한 생각들을 잘라 버리고

눈 감은 오관 구석 구석

빛도

소리도

향기도

말도 소용없는 無色界……

차라리 눈을 감자.

無眼界 無無明 無老死

……

裸像

카메라는

노을 속으로 빨려드는

강냉이밭의 고추잠자리.

렌즈를 반짝이며

살구를 씹는

여자의 노출……

참깨밭에 떨어지는

햇살의 웃음같이

하얀 이빨과 이빨과

생각의 톱니……

강냉이밭 위로 몰려드는 잠자리같이

환장하게 몰려드는 카메라의

렌즈에 갇힌

裸像이 일어난다.

할렐루야

들녘을 거닐며

하늘을 올려보다가

감사 기도를 드리는 것은

팔을 벌려 만세를 부르는

樹林의 몸짓이다.

오뉴월 보리누름에

바람이 풀잎을 사랑하는 소리는

알을 품은 종달새 머리 위로

진주알을 굴리는 노고지리 靑天音.

까토리는 땅에서 기고

장끼는 하늘을 날아도

마음은 언제나 콩밭에 사는

보리피리의 나라.

바람이 지그재그로 불어도

위험을 모르는 보리밭은

총천연색 모자이크 매스게임

대자연의 페스티벌을 생각케 한다.

스케이팅 월츠로 부는 바람이

꽃을 피게 하고 벌 나비 날게 하며

이리 쏠리고 저리 쏠리면서

서로 서로 볼을 부벼대는

연인들의 머리카락을 생각케 한다.

해님 아래 해바리기꽃이 피어나고

달님 아래 달맞이꽃이 피어나듯이

林立한 나무들은 나무들끼리

알을 밴 청보리는 청보리끼리

지평선 가득히 축복을 받느라고

진초록으로 물결치는 머리카락들

거침없는 종횡무진으로 나아가면서

축복의 웨딩마치에 폭죽이 터지는

통일가의 문화올림픽을 생각케 한다.

사랑의 궁전

남자는 여자를 위해서

여자는 남자를 위해서

가진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 사람 있을까.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지으시고

생육하고 번성하여 충만하라고

축복하여 주신 대로

사는 이가 있을까.

남자의 뿌리를 통하여

주기적으로 물이 흐르는

여자의 大地는 아기를 배고

햇덩이 같은 달덩이 같은 애를 낳는

사랑의 보금자리.

남자와 여자가 반지를 끼우면서

宇宙를 둘러끼우는

사랑의 輪線……

창세기로부터 계시록까지

천태만상의 조화가 벌어지는

달무리 해무리는 至聖所

첫날밤의 진주조개잡이.

素心

함박눈이 퍼엉펑 내리는 날이면

우리 팔짱끼고 눈길을 걸어요.

함박눈이 퍼엉펑 내리는 날이면

우리 얘기하며 눈길을 걸어요.

도란도란 얘기하며 눈길을 걷다가

인생길에 지쳐 쓰러지게 되며는

우리 함께 고요히 잠들어요

사랑보다 더 깊은 잠에 빠져요.

눈과 얼음의 빙판길을 걸어서

굴욕과 굶주림의 준령을 넘어서

찾아간 황혼의 들녘이 허무하면

우리 두 사람 원이나 없게

소보록한 눈 속에 묻히기로 해요.

明暗

어제는 바람이 미친 짓을 하더니

오늘은 비가 내리고야 말았다.

깜둥이 신랑은

목이 가늘은 한국인 신부를 끌안고

신혼여행을 떠났다.

빗속을 뚫고

신혼의 택시가 사라지듯

쏜살같이 내리꽂히는

밤하늘의 流星은

깜둥이 사내의 射精이었다.

海邊에 내리비치는 가로등

그 C字形의 불빛은

불독 입술 찢어지게 웃는

깜둥이 신랑의 헤픈 웃음,

허옇게 드러난 이빨이었다.

狀況

미친 여자는 뱀춤을 추고

뱀춤은 세상을 어지럽혔다.

비둘기는 휴지처럼 구겨져 흩어지고

까치는 감전사했다.

신문지 나부랭이는 바람에 굴러가고

훈민정음은 기침을 콜록이다가

히라가나에 총살당했다.

강남 제비가 지줄대던 전선줄에서

악보 같은 알파벳은 무성하고

까치는 연달아 죽어갔다.

제비족과 동거하는

여자의 뱀춤.

종소리는 녹이 슬었다.

뱀춤을 추는 여자의 입에서

아 대한민국, 아 대한민국 하고

잠꼬대하는 소리가

휴지처럼 흩어지고 있었다.

竹馬故友

왜 죽었노, 이 머숨아야

뒷집 영감 작은 가시내에게

작은 가락지 끼우지고 못하고

왜 죽었노, 이 머슴아야!

대나무 막대기를 바짓가랑이 사이에 넣고

잘잘 끌며 끌며

달을 따러 가자더니

별을 따러 가자더니

뒷집 영감 붕알 따러 가자더니,

달을 따지 못하고

별을 따지 못하고

뒷집 영감 붕알 따지도 못한 채,

고추에 쌍방울 덜렁 비치는

짧은 삼베 잠뱅이 하나로

고샅 고샅 굴렁쇠 굴리며

온세상 둘러끼우고 다니더니

뒷집 영감 작은 가시내에게

작은 가락지 끼우지도 못하고

왜 죽었노, 이 머슴아야!

6월 메시지

6월이면

동작동 묘역에서 뻐꾸기 운다.

쑥국 쑥국 쑥쑥국……

배가 고파 우는 게 아니라

임이 그리워 우는 게 아니라

피흘린 용사들의 넋이 서러워

한강물 굽어보며 뻐꾸기 운다.

건물은 하늘을 찌를 듯이 올라가고

차량행렬은 강물처럼 흘러가도

기아에 허덕이는 精神春窮期에

뻐꾸기가 피를 뱉는 것은

하얀 푯말들의 거수경례가

송구스럽기 때문이다.

오늘은 뻐꾸기가 쑥국 쑥국

쑥국을 먹잔다.

딸라돈 흥청망청 뿌리지 말고

혀꼬부라진 소리로 비틀거리지 말고

우리네 조상님께서 잡수시고

홍익인간으로 거듭나셨다는

그 쑥으로 쑥개떡에 쑥국을 마시자.

유태민족이 6월절에 무교병을 먹듯이

우리는 6․25에 쑥개떡을 먹자.

나라 위해 목숨 바친 님들을 생각하며

쓰디쓴 쓴나물에 개떡을 먹다가

쑥국새처럼 목이 메어 울면서

쑥국! 쑥쑥국!! 거듭나기로 하자.

통일동산 까치방

눈녹은 봄길로 나란히 오셔요.

속눈 트는 풀잎을 보송보송 밟으며

느릅나무 속잎 피는 노루목을 넘어서

햇볕살 다양한 양지쪽으로

가족들 손을 잡고 나들이를 하셔요.

얼음 풀린 시내에서 맑은 물이 흐르듯

털복숭이 버들강아지 우쭐거리듯

그렇게 정겹게 나들이를 하셔요.

지나간 겨울은 추웠었지만

엄동이 추우면 추울수록

이듬해 나뭇잎은 한층 더 푸르듯이

아픈 가시나무 꽃잎이 곱다지요.

아픈 상처의 치유를 기다리며

고난의 빙벽을 넘어오는 이의

아픈 사랑은 곱습니다.

나뭇가지 물어올려 까치방을 만드는

섭리의 역사는 놀랍습니다.

눈물 속의 햇살은 아름다운 것

고난으로 피어올린 꽃이랍니다.

한숨은 바람결에 날려보내고

눈물은 땅 속에 묻어 두고요

오늘은 동산으로 봄나들이 나와서

축복의 교향악을 들어 보셔요.

그늘진 세상이 아무리 무서워도

하늘로 만세를 부르는 나뭇가지에

둥우리를 틀어 보금자리를 만드는

오묘한 사랑의 모자이크를 보셔요.

눈녹은 봄길로 나란히 오셔요.

개나리 울타리에 사른대는 햇살같이

수채도랑에 용솟음치는 샘물같이

마음밭에 도란도란 이야기를 심으며

고운 봄길로 나란히 나란히 오셔서

꿈꾸는 까치방을 바라보셔요.

山의 婚夜

산의 체질이 풀어져 내리네.

산그늘 내리는 산허리에서

까토리 소리가 들리네.

그 소리 떨어지는 산우물에도

여인의 옷고름이 풀어져 내리네.

솔씨 물고 하늘 보는

장끼의 우러름에

모성의 잠옷이 풀어져 내리네.

꿈길 같은 숲길을 가다가

푸드렁 치솟는 장끼의 서슬에

아이를 감싸고 주저앉는 母性……

아늑한 치맛자락 끝에

푸르게 열린 하늘을 보네.

살같이 치오르는

한 마리 날짐승의

線과 點은 일어나고

神氣를 머금은 붓끝이

아질아질 춤추고 지나간

치마 속 열리는

그윽한 사랑……

산의 체질이 풀어져 내리네.

恨의 가락

-깡깡이 심청전

눈을 감으면

세상 끝 어느 처마 끝

달빛 아래서 문 두드리는 소리―

싸늘한 설움길 고샅고샅

문전 문전 찾아다니며

젖을 구걸하는 봉사의

가슴 두드리는 소리―

恨의 울림과 떨림과

恨의 가락, 굽이굽이

가슴 서리서리 눈이 내려 쌓여

素服한 大地에

징이 우는 소리―

사랑의 봄동산

물을 사랑하는 봄이 박하사탕을 먹었네.

박하사탕을 먹은 봄이 물을 길어 올리네.

잠자던 땅에서 눈트는 언덕에서

꿈꾸는 나무에서 얼어붙은 하늘에서

물을 길어 올려 움트고 꽃피네.

박하사탕 먹은 사랑의 동산에는

하늘 위에 하늘이 있고 하늘이 있고

하늘 아래 땅이 있고 물이 있고

하늘과 땅이 입맞추는 그 사이 사이

꽃구름이 산마루에 아롱거리고

해를 먹은 멧새들이 지줄거리고

林立한 나무들이 만세를 부르네.

불을 좋아하는 봄이 바람을 먹었네.

바람 먹은 봄이 물을 지르고 다니네.

눈 녹은 골짜기로 소리치는 시냇물로

깨어나는 나뭇가지로 눈트는 언덕으로

새 희망 살랑살랑 불을 붙이고 다니네.

바람 먹은 사랑의 동산에는

봄눈이 졸졸졸 녹아내리고

피라미가 비늘을 번쩍거리고

버들강아지가 우쭐거리고

봄쑥이 쏘옥쏘옥 눈을 트고

벌레들도 눈 부비며 창문을 열고

사랑의 자유천지를 구가하네.

봄이 물과 불을 사랑하여

물오르게 하고 꽃피게 하더니

물과 불을 좋아하는 봄이

박하사탕을 먹고 바람을 먹더니

땅 속에서도 나무껍질 속에서도

눈 부비고 일어나는 벌레들처럼

공부벌레 책벌레들이 등교를 하면

캠퍼스마다 화들짝 봄신명이 도지네.

하늘나라 별처럼

사랑의 눈으로 자비의 눈으로

하늘을 보고 세상을 보자.

별이 빛나는 밤이면

하늘의 꽃들을 우러러보듯이

하늘 나라를 바라보자.

하늘과 땅이 열린 이래

무한한 시간과 공간 속에서

영겁의 옷을 입고

불멸의 빛을 발해 온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듯이

그렇게 聖人들을 바라보자.

새벽마다

맑은 물을 길어 오시는 어머니처럼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진리의 말씀을 길어 와서는

우리들 가슴마다 부어 주시며

세상이 어두울수록 살아나는 눈동자

맑고 깨끗한 순수의 주인은

사랑과 생명을 주신다.

하늘을 우러르지 못하고

별을 바라보지 못하는 동안

오명의 도시에서 하늘을 잊어버리고

꿈을 잃고 노래를 잃고

고향까지 잃어버린 채

쫓기는 고아가 되었다가

별이 빛날 때

하늘나라 꽃밭에 웃음꽃이 피듯이

별이 반짝일 때

우리들 가슴마다 말씀이 샘솟듯이

한 중심으로 모여들어

사랑하고 화합하여 평화 이룰 때

우리들은 별이 된다.

無限天空의 한 점에서부터

영원 속의 순간을 달려가는

우리는 잉잉대는 꿀벌들의 모임

한 타래 타래 어울려 어울려

삼라만상으로 날아가는

智慧와 法悅의 랑데부.

겸손의 옷을 입고

스승다운 자연과 슬기로운 우주를 游泳하며

청밀을 모으고 잉잉거리며 날아가듯

손에 손잡고 날고 날아

참사랑의 나라, 새 세계를 이루자.

별 같은 성인들이 세상을 보듯이

우리도 별이 되어 세상을 바라보자.

사랑의 눈으로 자비의 눈으로

어둠을 살라먹고 미소짓는 태양같이

大慈大悲의 눈으로 세상을 보자.

땅으로 바다로 하늘로

해가 오른다.

마알갛게 씻은 얼굴 아침 해가 오른다.

눈보라치는 빙판길을 걷고 걸어

桎梏과 屈辱의 峻嶺을 넘어서

白衣民族의 하얀 두루마기 휘날리며

節槪 곧은 날선비의 걸음걸이로

새아침 새해가 홀연히 오른다.

어둠을 살라먹으며

東山에 오르는 아침 해는

흰옷 입고 해를 맞는 겨레의 樂長!

찬란한 빛살의 지휘봉을 휘두르며

大同의 和音을 演奏한다.

축수축수 소지를 올리며

東海에 불쑥 솟는 아침 해는

천갈래 만갈래 물결을 일으키며

파닥이는 물고기 滿船 가득히

事大에 길든 어둠 뚫고 오른다.

소금기가 바다를 건강하게 하듯이

새 햇살 비쳐드는 구석구석마다

義兵들의 함성과 강강수월래

내 정신 찾자고 핏덩이로 오른다.

겨레의 가슴마다 징을 울리며

東天에 뜨는 아침 해는

단기 사천 삼백 이십 칠년 정월 초하루

悠久한 歷史를 까먹지 말란다.

未來의 씨나락 까먹지 말고

아첨에 짹짹짹 눈치 보지 말란다.

기니긴 터널을 빠져나온 기차가

봄 햇살을 내리는 平原을 달리듯

비행기가 구름 차고 하늘을 날듯

어둠의 빙벽을 차고 일어나

새 역사의 밭을 시원시원 갈으란다.

해가 오른다.

敬天과 愛國과 愛人의 해가 오른다.

동방 해돋는 아침의 나라

새나라 새날 새아침에는

물을 차고 천리를 날으는 鶴처럼

땅으로 바다로 하늘로

뼈대 있는 집안의 선비답게

보무도 당당하게 뻗어 가란다.

해님과 달님의 사랑

해님이 오시네

달님이 오시네

敬天의 햇살과 愛人의 달빛으로 오시네.

동방 해돋는 아침의 나라

약속의 땅, 약속을 이루는 땅에서

봄 햇살을 먹은 새들이 불붙어

말씀으로 녹아내릴 때

온 세상 밝게 밝게 등불 켜 드네.

빙벽 녹은 계곡마다 물이 흐르듯

무한한 햇빛에 녹아내리는

오대양의 오색인종 식구들

가슴 속 정원마다 불꽃을 터뜨리며

해맞이 달맞이 만세를 부르네.

滿船 풀어 놓은 물고기처럼

수련의 전당은 용광로

태양이 끌어당기는 대로

화덕에 쇳물이 끓어 넘치는

도도한 흐름은 눈물 속의 햇살

아픈 가시나무에 웃음꽃이 피네.

저녁의 새는 임이 그리워 우는

눈물의 나라에 달빛 먹은 새들이

수풀 속 새록새록 기도 드릴 때

나무에서 땅 속에서 꿈을 꾸는

꽃씨들이 눈을 트고 일어나네.

삭풍에도 꺾이지 않는 소나무처럼

겨우내 뿌리 내린 청보리 사상으로

지조와 절개 푸르게 펼쳐내는

새 하늘 새 땅의 매스게임……

신념의 팔을 뻗어 어깨와 어깨 짜고

굳센 허리를 일으키고 일으켜서

물을 사랑하는 봄이 꽃을 피우듯

온 세상에 大同의 때를 알리신

슬기로운 鶴의 고매한 몸짓이여.

별 같은 인류가 쌍쌍이 행진하는

축복의 보금자리 심정의 터전으로

해님 달님 꿈같이 오실 때

해무리 달무리 반지를 끼우는

사랑의 輪線 안에 다시 모이네.

별이 빛나는 밤이면

별이 빛나는 밤이면

그 별을 바라보듯이

드높은 理想을 보자.

세상이 어두우면 어두울수록

별이 더욱 빛나듯이

어두운 세상에 빛을 발하던

역사의 인물을 바로 보자.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들처럼

영원토록 반짝이는 눈동자

티 없이 맑은 정의의 눈동자를

맑은 눈으로 바라보고

그 진리의 눈으로 세상을 보자.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서

올려보는 하늘처럼

믿음과 소망과 사랑과

大慈大悲 참을성으로

한 계단 한 계단 오르면서.

하늘같이 높은 이상과

하늘같이 맑은 심성과

하늘같이 넓은 아량과

하늘같이 총명한 별을 가꾸며 살되

땅을 무시하지 말자.

이 땅에서 자라난 풀 한 포기

단군 할아버지께서 자시고 거듭나신

쑥덤불 하나하나에도

하나님의 생기가 깃드나니

이 땅의 모든 것을 사랑하자.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서

밤하늘의 별을 보듯

그렇게 올려보는 눈으로

세상을 바로 보자.

주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것처럼

부모의 심정으로 종의 몸으로 살되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며 살자.

별이 빛나는 밤이면

그 별을 바라보는 눈으로

이웃을 보고 세상을 보자.

계단을 오르면서 오르면서

어둠을 살라먹고 솟는 태양처럼

이 세상 밝게 밝게 솟아 오르자.

雪中孤獨

푸른 대나무가 사시장철 하늘을 보듯이

하늘을 보자.

푸른 하늘이 사시장철 세상을 보듯이

세상을 보자.

노아와 아브라함과 모세와 예수가

산상봉에서 하늘을 우러러보듯이

석가와 공자와 마호메트와 단군이

산상봉에서 하늘을 우러러보듯이

그렇게 외로운 자리에서 하늘을 보자.

나라는 허리가 잘리고

중생은 잠 속에 빠졌다 할지라도

종교는 교파로 갈라지고

싸움은 그칠 날이 없다 할지라도

反則이 正則을 때려 눕히고

事大主義가 檀君聖祖를 총살한다 할지라도

체념하거나 외면하지 말고

사랑과 채찍의 눈으로 바라보자.

세상이 어지러워 비틀거리지 않도록

곧고 올바른 소리를 내고,

세상이 썩어 문드러지지 않도록

청자빛 하늘 빛깔을 보여주며,

세상이 아귀다툼으로 피흘리지 않도록

빈 마음으로 안을 다스리는

志節 높은 대나무와도 같이

하늘을 우러르고 세상을 바라보자.

朔風寒雪에도 志操를 지켜온 靑竹같이

公明正大한 直筆로 正論을 펴온

宗敎新聞은 살아있는 木鐸

시대의 잠을 깨우고 있다.

宗敎新聞은

티미한 정신을 일깨워 일으키는

攝理時代의 기상 나팔수

해돋는 아침의 나라를 일으키고 있다.

깊은 땅 속에서 솟아오르는 샘물같이

천길 만길 길어 올린 心情의 우물물

그 두레박물 벌컥벌컥 들이키는

간절한 새 소망으로 거듭나게 하는

그대, 숭고한 진리의 대변자는

우리들의 갈증을 풀어 주고 있다.

푸른 대나무가 하늘을 우러르듯

푸른 마음으로 하늘을 우러르고

곧은 마음, 빈 마음으로 세상을 보자.

목사는 목사답고 스님은 스님답고

교회는 교회답고 사찰은 사찰답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살고

부처님의 大慈大悲로 살되

한 부모를 모시는 형제가 되도록

神樂의 法悅로 거듭나기로 하자.

松竹이 하늘을 보듯

松竹이 하늘을 보듯

세상을 보자

檀君聖祖께서 神市에 내리시어

운사 우사로 세상을 다스릴 때

눈부신 햇살 사이사이로 열린

푸른 하늘을 바라보듯이

그런 弘益人間의 눈으로 세상을 보자.

세상이 썩어 문드러진다 할지라도

세상이 反則을 일삼는다 할지라도

세상이 아부에 살이 찐다 할지라도

세상이 눈치만 살아남는다 할지라도

눈 흘겨 외면하지 말고

大慈大悲의 참뜻으로 바라보자.

언제나 푸르른 松竹같이

변함없는 마음의 귀로 피어린 소리를 듣자.

천잠산 찰진 흙에 귀를 대어 보라.

죽창 들고 땅을 구르며 달려나가던

저 황토현, 東學民兵의 함성―

짚신 소리 징소리 들려 온다.

가슴에서 징이 우느냐

심장에서 혈관에서 징이 우느냐

지잉 징 지잉 징 징이 울면

눈물 속의 햇살이 살아나리니

그대 슬픈 피리를 흙 속에 묻고

날선비의 直筆로 正論을 펴라.

지조를 지켜 온 松竹같이

公明正大한 心志로 씨나락을 지키자.

흉년 들어 굶어 죽을 때에도

도적이 들어 쫓겨다닐 때에도

자손만대의 번영을 위하여

이듬해 새봄에 뿌릴 씨앗을

땅 속 깊이 묻었거늘……

씨나락을 까먹는 놈들로

祖國은 중병을 앓고 있다.

훈민정음을 총살하는 놈들이

씨나락을 까먹는 소리에

소아마비와 당뇨병을 앓고 있다.

松竹이 하늘을 보듯 그렇게

세상을 보자.

교수는 스승답고 학생은 제자답고

부모의 심정으로 살되

종처럼 희생하고 봉사하며

活字는 活字답게 誤字를 校正 보며

씨나락을 지켜 번성하기를

우리들은 목마르게 바라고 있다.

全州大學新聞 생일날에는

우리 모두 개떡에 쓴나물을 먹자.

유태민족이 유월절에 무교병을 먹듯이

조상들이 연명하던 개떡을 쪄먹다가

목이 메어 통곡하며 거듭나기로 하자.

새해가 오른다

해가 오른다. 새해가 오른다.

눈보라와 빙판길을 걸어서

어둠을 燒紙처럼 불사르며

고난과 핍박의 추운 길을 걸어서

말갛게 씻은 얼굴, 메시아가 오른다.

바다 가득히 하늘 가득히

만국기를 날리면서 날리면서

섭리의 산 줄기줄기 역사의 강 굽이굽이

하얀 소금 물굽이 구름 같은 天馬떼 거느리고

오시는 빛의 세계의 주인

아침의 나라 아버지가 오신다.

한 걸음 물러설 때마다

두 걸음 전진하는 파도와 같이

하얀 소금물 몰고 오면서

썩지 못하게 하는 물결과 같이

어지러운 시대의 잠을 깨우면서

자율과 세계화로 뻗어 나가라고

진군의 북소리 둥둥둥 울리며 오신다.

한 번 뛰쳐날 때마다

천리를 날아가는 天馬같이

물결을 차고 구름을 차고

앞으로 앞으로 雄飛하는 氣象으로

말씀으로 어둠을 불사르며 오신다.

바다의 물결처럼 하늘의 태양처럼

어둠을 살라먹고 어둠을 살라먹고

폭포처럼 퍼부어 내려주시는

수천억만 톤의 햇살로 햇살로

생육하고 번성하여 충만하게 하시듯

연구하고 가르치며 봉사하게 하시어

스승다운 스승과 제자다운 제자 되라고

심장에 지잉 징 징을 치며 오신다.

소금물로 바다를 건강하게 하는

파도를 거느리고 오시는 해님같이

하나님과 인류와 나라를 사랑하되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게 하시고

이 땅과 바다와 하늘같은 大慈大悲로

온갖 잡놈들을 거듭나게 하소서.

아첨에 혀 꼬부라지고, 고집에 옹이 박히고

부정부패에 살찌고, 눈치 보기에 사팔뜨기 되고

아집에 귀먹고, 비굴에 指紋까지 닳아져서

국적 불명의 뇌성마비 게걸음 걸어가던

온갖 잡놈들 속에서 녹을 털어내고

새 식구 만들어 거듭나게 하시는

해님이 오른다 새해가 오른다.

어둡고 추운 눈보라 빙판길을 걸어서

어둠을 살라먹으며, 不義를 살라먹으며

미소짓는 얼굴로 아버지가 오신다.

稜線

초판인쇄 ․ 1995년 4월 15일

초판발행 ․ 1995년 4월 21일

지은이 ․ 황송문

펴낸이 ․ 임종대

펴낸곳 ․ 미래문화사

등록 ․ 제3-44호, 1976년 10월 19일

주소 ․ 서울시 용산구 효창동 5-421

전화 ․ 713-6647 / 715-4507

팩시밀리 ․ 713-4805

값 ․ 3,000원

․ 작가와의 협의하에 인지는 생략합니다.

․ 잘못 만들어진 책은 바꾸어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