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산에서
황송문
말하지 말아라.
세속의 쓰레기를 버리지 말아라.
도시의 문명을 지껄이지 말아라.
돌을 다듬으며
부드러운 물의 손길로 돌을 다듬으며
천년을 흐르는 물소리
가슴으로 들으며
구름 속 웃음 짓는 반월(半月)같이
눈으로만 말하라.
밤새도록 흐르는 물은 음악가였다.
바위틈에 푸른 소리로 연주하는
자연은 위대한 악성(樂聖),
풀잎으로, 바람으로, 별떨기로
오오, 은하수로 악보를 그리며
和音으로 말하는 음악가였다.
말하지 말아라.
암유(暗喩)를 눈치 채지 못한 말의 쓰레기는
꺼내지도 말아라.
여름, 해맑은 가슴 풀어 흐르는
저 물소리
밤새도록 번뇌(煩惱)를 씻어 내리는
저 물소리
오오, 내 말의 부끄러움,
허튼소리의 부끄러움이여!
손조차 담글 수 없는
그대 맑고 찬 말씀,
눈이 시려 볼 수 없는 눈이여!
산거(山居)한 나를 사로잡아 가는
그대 휘감아 굽이도는 사랑,
사랑에 녹아내리는 물이 되리.
한 방울의 물이 되어
말이 소용없는 나라로 떠내려가리.
물소리 연주하는 악성(樂聖)과 더불어
떠내려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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