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밥
우리 사랑 위해
기꺼이 죽는
人生이게 해요
황송문 詩選集
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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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치밥
우리 사랑위해 기꺼이 죽는 人生이게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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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송문 詩選集
보성
自序
새치 하나 뽑아낸 아이의 눈빛에 나의 가을이 아른거린다. 가을날 시들어 가는 풀밭에서 팔베개를 베고 누워 유리알같이 파랗게 갠 하늘을 우러러 보고 있노라면 마음은 까닭 없이 시린 계절의 殘熱에 붙들려 까치밥을 생각하게 된다.
파아란 하늘에 빨갛게 수놓은 까치밥, 여름날의 그 모진 비바람을 견디어 내고 금싸라기 가을볕에 단맛이 스미는 그런 성숙의 결정체로서의 까치밥, 목이 시린 하늘 드높이 홍시로 익어 지내다가 새 소식 가지고 오시는 까치에게 쭈구렁바가지로 쪼아 먹히우고 이듬해 새봄에 속잎이 필 때 흙 속에 묻혔다가 싹으로 솟아 부활하는 까치밥이 나의 눈으로 들어오게 되는 것은 참으로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모래알 한 알에 우주를 생각하고 손바닥을 젖히면서 영원을 생각한다."고 말한 월리엄 블레이크처럼, 나는 하늘을 보면서 영원한 神의나라를 생각하였고, 구름을 보면서 만났다 헤어질 수밖에 없는 인연을 생각하였으며, 잘 익은 홍시를 바라보면서 殉愛하며 다시 사는復活의 詩를 생각하게 되었다.
나의 시는 향토정서에서 문명 비판으로, 선비 정신세계에서 禪風의 세계로, 그리고 절대 사랑을 추구해 왔으나 評者나 讀者는 지극히 부분적으로만 만나게 되었다. 아홉 번째 펴내는 시집이면서 첫 번째 시선집이 되는 이 책은 이러한 공백을 메꾸어 줄 것으로 믿는다.
이제 나의 머리카락에서도 새치가 뽑혀 나오는 것을 보니 아, 나도 벌써 가을이구나! 하는 깨달음이 온다.
내가 때로는 서리를 맞으며 고달픈 삶을 살아오는 동안에 내 시는 얼마나 무르익어서 영혼을 빨래하고 人生을 곱게 다리미질하여 생활을 펴 나가는지 나도 잘 모른다.
다만 죽었다가 깨어난 나의 시가 독자로부터 영원히 잊히지 않을 만큼 사랑받기를 바랄 따름이다. 뜬구름처럼 이름 없이 찢기우고 흩어진 내 시의 조각들을 한 자리에 모아 아름답게 모자이크하여 준 보성출판사의 이명수 부장님께 감사드리며, 이 결실의 기쁨을 독자와 함께 나누고 싶다.
1990년 가을, 冠岳山房에서 黃松文
초대시
黃松文 시인
文 德 守
그는 몰래 바위를 키우고 있나 보다
그 바위 속에
꽃을 가꾸고 있나 보다
그가 정치나 문단을 열심히 이야기할 때
어쩌다 그 바위 한 끝이
슬쩍 비치곤 한다
(물론 그를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보인다)
이 가뭄 속에
꽃을 보고 며칠만 더 일찍 피라고 한들
좀 더 오무리고 그대로 있으라고 한들
산을 보고 방향을 조금 틀고
한쪽 줄기를 남쪽으로 더 열어
그 밝은 근원을 흘러 보내라고 한들
남들은 고집이나 편견이라고 하지만
나는 그렇게만 보지는 않는다
그는 몰래 바위를 가꾸고 있나 보다
<文德守 詩集 ․ 만남을 위 한 알레그로 중에서>
차례
黃松文 詩選集
내가 만지작거리는 추억의 껍질은
내게 속을 비우라고 말한다
제1장
■ 2 • 3/自 序
■ 5 •초대시 ․ 文德守 詩人
15 • 가시나무새
16 • 까치밥
18 • 보리를 밟으며
20 • 꽃 잎
21 • 戀 歌
22 • 쉼표와 마침표
25 • 수채도랑집 바우
28 • 아름다운 것 I
30 • 아름다운 것 Ⅱ
32 • 물 레
34 • 너 어디 있느냐
37 • 禪 風 I
38 • 禪 風 Ⅱ
40 • 禪 風 Ⅲ
42 • 청보리
까치밥 · 우리, 사랑 위해 기꺼이 죽는 人生이게 해요
우리, 사랑 위해
기꺼이 죽는 人生이게 해요
제2장
존 재 • 47
詩語의 죽음 • 48
동전 두 닢의 슬픔 • 50
앙 금 • 53
길을 가다가 • 54
熱 病 • 56
校正을 보면서 • 58
군불을 때면서 • 60
紫雲英 • 62
간 장 • 64
포장마차에서 • 66
눈 잎 • 69
시래기국 • 70
칡 차 • 72
차례
黃松文 詩選集
故鄕이 그리운 날 밤엔
호롱에 불이라도 켜 보자
제3장
77 • 畵 論
78 • 그리움 I
79 • 그리움 Ⅱ
80 • 그리움 Ⅲ
82 • 가야산에서
85 • 五月 抒情
86 • 鄕 愁
88 • 숲
90 • 보리누름에 I
91 • 보리누름에 Ⅱ
92 • 보리누름에 Ⅲ
94 • 眞珠의 잠
95 • 하루살이
96 • 棋院에서
까치밥 · 우리, 사랑 위해 기꺼이 죽는 人生이게 해요
문득문득 올려 보는 목이 시린 밤하늘에는
아직도 젊은 별이 반짝이는데‥‥‥
제4장
가을 演奏 I • 101
가을 연주 Ⅱ • 102
돌 Ⅰ • 103
돌 Ⅱ • 104
모시는 말씀 • 105
落 書 • 106
노을같이 바람같이 • 108
노 을 Ⅱ • 110
丹 楓 • 111
風 景 Ⅲ • 112
風 景 Ⅳ • 113
風 景 Ⅵ • 114
사당동 귀뚜라미 • 115
차례
黃松文 詩選集
서리 맞은 열매는 곱습니다
제5장
119 • 열 꽃
121 • 새암물
122 • 望鄕歌 I
124 • 望鄕歌 Ⅱ
127 • 가을 登山
128 • 간 장 Ⅱ
130 • 神 樂 I
132 • 神 樂 Ⅱ
134 • 내 가슴속에는 Ⅱ
135 • 내 가슴속에는 Ⅴ
136 • 詩 論 I
138 • 詩 論 Ⅱ
140 • 詩 論 Ⅲ
까치밥 · 우리, 사랑 위해 기꺼이 죽는 人生이게 해요
松松松松, 지즐 뱃쫑 松松
제6장
밤 비 • 145
移 葬 • 147
도리깨질 • 149
싸리비 • 152
火葬터에서 • 154
世宗實錄 • 156
講義室 情景 • 158
항아리 • 160
달 • 163
歌手 밀바 • 164
四重奏 • 166
造船所 • 167
비비새 • 168
섣 달 • 170
보내면서 • 171
選 • 172
제1장
내가 만지작거리는
추억의 껍질은
내게 속을 비우라고 말한다
가시나무새
내 가슴 속에는
피 흘리며 노래하는 새가 있다.
아플수록 고운 노래
神樂에 사는 새가 있다.
안일한 둥우리를 떠나
핏빛 노을에 미쳐 날다가
가슴 찔려 피 흘리는 새가 있다.
아프면 아플수록
삼키는 울음은 아름답고,
포도즙이 노을로 삭아 내리듯
안으로 다스리는 노래는 아름답다.
아름다운 것은
찔리운 가슴에
붕대를 매어 주는
따뜻한 한 편의 詩,
울며 울며 노래로 보내는
九曲肝腸의 피울음이다.
까치밥
우리 죽어 살아요.
떨어지진 말고 죽은 듯이 살아요.
꽃샘바람에도 떨어지지 않는 꽃잎처럼
어지러운 세상에서 떨어지지 말아요.
우리 곱게 곱게 익기로 해요.
여름날의 모진 비바람을 견디어 내고
금싸라기 가을볕에 단맛이 스미는
그런 성숙의 연륜대로 익기로 해요.
우리 죽은 듯이 죽어 살아요.
메주가 썩어서 장맛이 들고
떫은 감도 서리 맞은 뒤에 맛 들듯이
우리 고난 받은 뒤에 단맛을 익혀요.
정겹고 꽃답게 인생을 익혀요.
목이 시린 하늘 드높이
홍시로 익어 지내다가
새 소식 가지고 오시는 까치에게
쭈구렁 바가지로 쪼아 먹히우고
이듬해 새 봄에 속잎이 필 때
흙 속에 묻혔다가 싹이 나는 섭리
그렇게 물 흐르듯 殉愛하며 살아요.
보리를 밟으면서
보리를 밟으면서
언 뿌리를 생각한다.
아이들이 아비에게 대들 때처럼,
시린 가슴으로
아픔을 밟는 아픔으로
해동을 생각한다.
얼마나 교육을 시켜 줘 보았느냐고,
얼마나 유산을 남겨 줘 보았느냐고,
시퍼런 눈들이 대드는 것은
나의 무능임을
나는 안다.
뿌리를 위하여
씨알이 썩는 것처럼,
사랑할수록 무능해지는 것을
나는 안다.
내 아이들이 대어들 듯,
어릴 적 내가 대어 들면
말을 못하시고
눈을 감으시던 아버지처럼,
나 또한 눈을 감은 채
보리를 밟는다.
잠든 어린 것 곁에
이불을 덮어 주며
눈을 감는 것처럼,
나는 그렇게 눈을 감은 채
온종일 보리를 밟는다.
꽃잎
내가 바라볼 때 너는 피어났고
내가 외면할 때 너는 시들었다.
나의 눈길에 너는 불이 붙었고
나의 손길에 너는 악기처럼 소리를 내어
꿀벌들을 불러 모았다.
네가 잉잉거리는 벌떼들을 불러들일 때
별은 빛나고,
내가 너의 꿀물에 젖을 때
달은 부끄러워했다.
네가 피어날 때 나는 살고
네가 시들 때 나는 죽었다.
戀歌
세상이 추워질수록
생각나는 당신,
가슴 속 열두 대문을 지나
안채 깊은 방 구둘 목에
불을 지펴 드리겠습니다.
불은
당신의 말씀, 입술의 기운으로
은근히 덥혀지는 따뜻한 나라
온돌방 아랫목
비단 금침 깊이깊이
密語 한 꾸리 감아 두겠습니다.
베개는 꽃씨로 채워서
밤마다 꿈자리는 꽃그늘에 만나고
달빛은 밤새도록
오동잎새에 걸어 두겠습니다.
쉼표와 마침표
모두들
종점 가는 길에
차를 내려
벤치에 앉아 쉬어 간다.
나도
벤치에 앉아
계절이 지나가는 나뭇잎 사이로
열린 조각하늘을 보며
추억 하나 만지작거린다.
내가 만지작거리는
추억의 껍질은
속을 비우라고 말한다.
뜬구름 떠돌다 사라지듯이
잠시 머물다 가는
人生은 나그네라고 말한다.
벤치에서
여름에 만난 사람은
가을에 보내야 한다고……
꽃이 필 때 만나면
잎이 질 땐 보내야 한다고……
보내면서 보내면서
나는 다듬어진 조약돌 하나 주었고,
떠나면서 떠나면서
그녀는 조개껍질에 빈 바람을 남겼다.
나는
빈 바람 남기고 가는 그녀에게
꽉 찬 돌 하나 주었다.
그러나,
나의 돌은 채워 주지 못한 채
가슴에
금이 갔다.
깊은 밤
초침 뛰는 소리에도
가랑잎에 금이 갔다.
금 간
가슴에 내리는 가랑잎 소리는
봄 여름 가을……
벤치에 앉아 쉼표를 찍다가
마침표를 찍으러
종점으로 떠난다.
샘도랑집 바우
가까이 가지도 않았습니다.
탐욕의 불을 켜고
바라본 일도 없습니다.
전설 속의 나무꾼처럼
옷을 숨기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그저
달님도 부끄러워
구름 속으로 숨는 밤
물소리를 들었을 뿐입니다.
죄가 있다면
그 소리 훔쳐 들은 죄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그 소리는 꽃잎이 되고 향기가
되었습니다.
껍질 벗는
수밀도의 향기……
밤하늘엔 女人의 비눗물이 흘러갑니다.
아씨가 仙女로 목욕하는 밤이면
수채도랑은 온통 별밭이 되어
가슴은 은하로 출렁이었습니다.
손목 한 번 잡은 일도 없습니다.
얘기 한 번 나눈 적도 없습니다.
다만 아슴푸레한 어둠 저 편에서
떨어지는 물소리에
정신을 빼앗겼던 탓이올시다.
始原의 乳頭같은
물방울이 떨어질 때마다
머리카락으로 목덜미로 유방으로 허리로
그리고 또……
곡선의 시야 굼틀굼틀
어루만져 보고 껴안아 보던
그 달콤한 상상의 甘酒,
죄가 있다면 이것이 죄올시다.
전설 속의 나무꾼처럼
옷 하나 감추지도 못한 주제에
죄가 있다면
물소리에 끌려간 죄밖에 없습니다.
아름다운 것 1
보내 놓고 돌아와
틀어박는 쐐기는 아름답다.
쐐기의 美學으로
눈물을 감추면서
피어 내는 웃음꽃은 아름답다.
기다림에 주름 잡힌 얼굴로
쏟아져 내리는
햇살의 만남은 아름답다.
태양의 미소와
바람의 애무
눈짓하는 나무는 아름답고
지저귀는 새는 아름답다.
아름다운 것은
눈짓하는 나무와
지저귀는 새,
떠난 이의 뒤에서 헛웃음 치는 아픔이다.
보내 놓고 돌아와
짜깁는 신경의 잔을 기울이며
하루를 천년같이 기다리는 노을이다.
노을 담긴 그리움이
恨으로 괴이어
떠낸 詩의 잔에 넘치는 술의 입술이다.
아름다운 것은
산불로 타오르던 나무
뚫린 가슴에
울며 울며 쐐기를 지르는
망각의 술, 기다림의 잔이다.
아름다운 것 2
아름다운 것은 웃음꽃이다.
三冬 가시나무 웃음꽃이다.
아픔을 참는 가시나무의 슬픔
상처에서 피어 올린 웃음꽃이다.
기다리며 기다리며
평생을 하루같이 기다리며
침묵하는 웃음꽃이다.
찔리운 상처가 아물지 않아도
기다리며 기다리며
생각하는 三冬 가시나무로 서서
먼 하늘 우러르는 눈빛이다.
아름다운 것은
천년을 하루같이 기다리며
속울음 삼키는 사람,
그 얼굴에 내리는 햇살이다.
아름다운 것은
속 아픈 눈물을 안에서 걸러 내어
웃음꽃 피어 내는 얼굴
그 얼굴의 햇살이다.
枯木 뚫린 가슴을 틀어막듯
틀어막으며
상처를 틀어막으며,
미소를 머금은 노을빛이다.
아름다운 것은
三冬 가시나무 꽃,
상처를 틀어막고 기다리며
노을빛 살려내는 웃음꽃이다.
물레
木花茶房에
한 틀의 물레가 놓여 있었다.
수 십 년 만에 햇볕을 받은
할머니의 뼈다귀처럼
물레는 앙상하게 낡아 있었다.
도시의 詩가 타살되던 날 밤
다방으로 피신해 온 나는
물레 소리에 미쳐 들고 있었다.
할머니의 眞言처럼
사른 살아나는 물레 소리가
너무너무 좋아서
나는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靑竹 같은 자식을
전장에 보내 놓고
사방팔방 치성을 드리던
할머니의 물레 소리가
내 가슴 다르륵 물어 감고 있었다.
보기도 아까운 그 얼굴,
한 줌의 재가 되어 돌아온 자식을 끌안다가
까물치던 할머니의 목쉰 소리 다르륵,
숨이 막혀 울지도 못하고
낮은 음자리 돌아 감기는
恨의 물레 소리
가락에 시름을 감으며
지렁이 울음을 게워 내고 있었다.
달 지는 밤이면
버언한 창호지 마주 앉아
남편 생각 자식 생각에
손을 멈추다가도
찌지는 한숨, 달달달달 다르륵,
시름을 감아 돌리고 있었다.
너 어디 있느냐
너 어디 있느냐?
네, 저 청보리 밭에 있어요.
三冬을 견디는 청보리 뿌리로
끈질기게 살아 있어요
당신의 나라로 눈을 뜨고 있어요.
얼어붙은 땅속에서 꿈을 꾸고 있어요.
立春大吉을 노래하며 햇빛 받고 있어요.
눈더미를 뚫고 솟아오르고 있어요.
푸른 싹 쏘옥 쏘옥 눈을 트고 있어요.
바람은 언덕 너머 재워 두고요.
청보리 물결 일렁일렁 밀려오는
그 찬란한 매스게임을 위해
찰진 흙 속에 뿌리 뻗고 있어요.
너 어디 있느냐?
네, 저 계해년 돼지우리에 썩고 있어요.
청보리밭 거름이 되고 싶어서
짓밟히며 시달리며 썩고 있어요.
속 썩는 인생은 아름답기에
불평 없이 감사하며 썩고 있어요.
숨죽은 강산을 일깨우기 위해서
종처럼 희생하며 사랑하고 있어요.
시궁창 토란잎이 아름답게 피듯이
토란잎에 물방울이 영롱하게 빛나듯이
청보리 짙푸른 들녘을 위해
인류의 열병 분열식을 위해
온유하고 겸손하게 기다리고 있어요.
너 어디 있느냐?
네, 저 당신 곁에 있어요.
당신께서 끌어올린 물고기의
그 비늘 끝에 있어요.
번쩍이는 비늘의 찬란한 햇살 같은
당신의 눈웃음 속에 살아 있어요.
노아의 방주 안에 살아 있어요.
아브라함의 땀방울 속에 살아 있어요.
모세의 지팡이에 살아 있어요.
예수의 십자가에 살아 있어요.
참깨 밭에 내리는 햇살의 미소 같은
당신의 기쁨을 마음에 모셔 두고
청보리밭 이랑에 거름 뿌리고 있어요.
사랑의 輪線에 불꽃이 오가듯
잘 주고 잘 받은 돼지우리와 청보리밭,
목자와 양의 무리, 그 안에 있어요.
禪風 Ⅰ
노을이 물드는 산사에서
스님과 나는 法談을 한다.
꽃잎을 걸러 마신 승방에서
法酒는 나를 꽃피운다.
스님의 모시옷은 구름으로 떠 있고
나의 넥타이는 번뇌로 꼬여 있다.
“子女는 몇이나 두셨습니까?”
“舍利는 몇이나 두셨습니까?”
“더운데 넥타이를 풀으시죠.”
“더워도 풀어서는 안 됩니다.”
목을 감아 맨 십자가
책임을 풀어 던질 수는 없다.
내 가정과 국가와 세계
가슴앓이 꽃들을 버릴 수는 없다.
禪風 Ⅱ
안개로 허리 두른 산허리
교교한 암자(에서
스님과 나는 바둑을 둔다.
해탈한 스님은 白을 거느리고
범속한 나는 黑을 거느리고……
스님의 장삼은 구름으로 떠 있고
나의 흑발은 번뇌로 얽혀 있다
“覇를 받으시렵니까?”
“南無阿彌陀佛……”
“받지 않으시렵니까?”
“觀世音菩薩……”
古眞한 白은 古眞해서 좋고
天眞한 黑은 天眞해서 좋고
長生의 老松에 걸려 흐르는
李白의 하늘은 大流無聲……
法悅의 구름은 발아래 떠 있고
變相의 바둑은 구름으로 떠 있다.
禪風 Ⅲ
산그늘 내리는 원두막에서
할머니와 나는 염불을 한다.
내가 선창을 하면
할머니는 복창을 하고……
할머니가 되물으면
나는 또 되풀이하고……
聰氣 밝은 할머니와
눈이 밝은 손자의
因果와
應報와
끝없는 문답의 윤회는
色卽是空……
無主空山에 달이 밝아
空卽是色……
……………………
……………………
청보리
청보리의
푸른 정신으로 살고 싶다.
가난한 나라에 태어나 살아도
가난한 줄 모르게
수천 톤의 햇살을 받아들이는
양지바른 토양에서
보란 듯이 살고 싶다.
국어보다 영어를 더 잘 가르치는
그런 事大의 사내새끼가 아니라,
자가용 열쇠를 빙글빙글 돌리면서
어깨를 으쓱거린다거나,
면사포를 쓰고
깜둥이에게 들리어 가면서도
하이힐 코빼기를 까딱거리는
정신 티미한 계집의 헤픈 웃음은 말고,
짓밟히면서도 일어서는
청보리의 사상,
농부의 뚝심으로 살아나는
그 푸른 정신으로 살고 싶다.
제2장
우리, 사랑 위해
기꺼이 죽는
人生이게 해요
存在
당신이 하늘이라면
나는 그 속에 떠도는 구름
당신이 바다라면
나는 그 속에 출렁이는 물결
당신이 땅이라면
나는 하나의 작은 모래알
당신의 손바닥 위에
숨 쉬는 나는
당신의 영원 속의 순간을
풀잎에 맺혀 사는 이슬
한나절 맺혔다가
사위 어가는
목숨……
詩語의 죽음
나는 나를 제사지낸다.
詩語가 죽던 날 밤부터
나는 나를 제사지낸다.
죽은
내 시를 제사지내는
내 말의 무덤 앞에서
나는 잔을 기울인다.
살아나지 못한 내 말의 무덤
아무도 살려낼 수 없는 말의 무덤 앞에
나의 죽음을 제사지낸다.
말이 소용없는
말의 죽음
구겨진 원고지가 바람에 굴러간다.
내가 나에게 술을 붓는다.
마셔도 마셔도
마시는 보람,
우는 보람이 없는
이 낙엽 같은 屍身에 술을 붓는다.
동전 두 닢의 슬픔
비가 오고 있었다.
하늘에도
땅에도
내 가슴에도.
공중전화 상자 속에서
동전을 넣고
다이얼을 돌렸다.
꽃다발 같은 기대를 한 아름 안고
전신줄을 타고 달려간
동전 두 닢이
벽에 부딪쳐 쓰러졌다.
보일 듯이 보이지 않는
안개 저쪽은 통화중이었다.
수화기를 놓자
두 개의 동전이 굴러 떨어졌다.
나는 새로운 삶을 찾아
수화기를 들었다.
처박힌 동전을 일으켜 올리고
결사적으로 다이얼을 돌렸다.
그러나, 그러나,
두드려도 두드려도 열리지 않는
견고한 궁성 저쪽은
통화중이었다.
수화기를 내려놓자
나의 동전이 또 굴러 떨어졌다.
그러나, 그러나,
사랑하는 나의 가난이
언제까지나
공중전화 상자에 머물 수는 없다.
코트 주머니에 손을 찌르고
전진을 계속하다가도
틈틈이 다이얼을 돌렸다.
그러나,
八甲田山에서 얼어 죽은
나의 동전이여!
다방에서도, 건널목에서도
정류소에서도, 지하도에서도
우체국에서도, 서점에서도
나의 동전 두 닢은 밀려났다.
떨어진 동전을 움켜쥐고
바라보는 窓으로
비가 오고 있었다.
하늘에도
땅에도
내 가슴에도.
앙금
떠날 때는 말이 없어도
가슴엔 물굽이 굽이굽이
쏴아 하니 빠져나가는
울둘목의 썰물 소리……
그렇게
보내고 나면
마음 깊은 곳에서는 앙금이 쌓여
비단 같은 무늬를 이루다가……
노을이 환장하게 타오를 때면
그 앙금이 그리움이 되어
밀물로 밀물로 밀려와서는
뚫린 상처를 재우다가……
길을 가다가
길을 가다가, 왈칵
당신 손을 잡으면
내 손 안에
느껴지는 체온.
징상스런 임진강보다도
더 아픈 내 손바닥 속에서
파들거리는 당신의 손은,
오직 사랑을 위해
자명고를 찢은 당신의 손은
내 하나밖에 없는
匣 속의 진주眞珠.
세상이 아무리 추워도
내 손 안의
진주를 붙들고 있으면
아무 걱정이 없고……
세상이 아무리 어두워도
내 손 안의
당신 손을 붙들고 있으면
다시 피어나는 꽃.
그 입시울 웃음꽃 속에
불붙어 사는
한 마리의 새,
가슴속 어딘 듯 양지쪽에
온종일 지저귀며 사는
한 마리의 뜨거운 새.
熱病
나는 오늘 장작을 팬다.
위선의 양복을 벗어 던지고,
가식의 넥타이도 풀어 던지고,
구릿빛 등살을 드러낸 채
손바닥이 부르트고 팔목이 시도록
온종일 땀 흘리며 장작을 팬다.
결이 고운 것은 제쳐 두고
결이 나쁜 놈들만 골라잡아서
혼신으로 내려찍어 장작을 팬다.
“얘, 야야. 몸조심해라!”
믿는 도끼에 발등 찍을라!”
근심으로 주름 잡힌 할아버지는
걱정이 되시는 모양이지만
열병 앓는 젊은 놈 눈에는
뵈는 게 없기 때문에
할아버지의 무서움을 내려찍는다.
어둠 속 배알이 뒤틀린 놈들
어둠 속 혓바닥이 배배 꼬인 놈들
어둠 속 오기의 모가지 비틀어진 놈들
어둠 속 고집의 관솔이 박힌 놈들
어둠 속 끈끈한 송진으로
도끼날을 붙들어 매면서
독버섯과 동거한 놈들을 골라잡아
이를 물고 빠개 나간다.
장작을 패면 팰수록
울고 싶은 까닭은 무엇인가.
어둠을 내려찍으면 찍을수록
떨어져 나가는
내 가슴의 상처.
부조리를 사랑해야 하는
아픔을 견디는 아픔으로
아픔을 아픔으로 내려찍는다.
校正을 보면서
나는 교정을 본다.
죄인을 찾아내듯
숨은 誤字를 잡아내면서
주님을 생각한다.
용서할 수 없는 부조리를
사랑해야 하는
십자가의 아픔,
하나님의 슬픔을 생각한다.
주님처럼 사랑하지 못한 나는
썩은 이를 뽑아내듯,
토라진 놈들을 뽑아낸다.
거짓으로 눈 가리며 아옹 하는 놈
비굴하게 꼬리치며 아첨하는 놈
엎어지고 넘어지고 물구나무 선 놈들을
하나하나 적발하여 뽑아낸다.
교정을 본다는 것은
신나는 일이지만
보아도 보아도 끝이 없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신나는 일과 불행한 일 사이에서
어중간히 교정을 봐야 하는
나의 현실 위에
이상의 나비가 침몰한다.
교정을 보면 볼수록
통쾌하면서도
시원치 않는
내 가슴의 活字
명조체 고딕체 눈초리가 무섭다.
나는 교정을 보면서
죽은 활자들이 녹아내리는
화덕을 생각한다.
소돔과 고모라 성의 불길 속에
아우성치는 무리들,
비뚤어진 부조리를 불태우며
뒤를 돌아보지 말라고 외치던
하나님의 구슬땀을 생각한다.
군불을 때면서
군불을 때면서
얼어붙은 구둘목을 생각한다.
조상 대대로
다독거리던 인정을 생각한다.
천장엔 메주가 뜨고
아랫목 콩비지 구수해지던
우리네 짭짤한 분위기,
法 없이도 잘 살던 시절을 생각한다.
빈 방에 불을 지피는
내 의식의 구둘목엔
청솔가지 톡탁거리는 소리도 들리고
솔 이파리 치직 거리는 소리도 들린다마는
세상은 왜 이리 냉랭하냐.
군불을 때면서
불 머금은 野性을 생각한다.
내 불붙는 아궁이
말씀의 혓바닥
깻대궁이 톡톡 튀는
불의 잉태를 생각한다.
紫雲英
나는 그녀에게 꽃시계를 채워 주었고
그녀는 나에게 꽃목걸이를 걸어 주었다.
꿀벌들은 환상의 소리 잉잉거리며
우리들의 부끄러움을 축복해 주었다.
그러나,
우리들의 만남은 이별,
보자기로 구름 잡는 꿈길이었다.
세월이 가고
늙음이 왔다.
어느 저승에서라도 만나고 싶어도
동그라미밖에 더 그릴 수가 없다.
이제는 자운영을 볼 수 없는 것처럼
그녀의 풍문조차 들을 수가 없다.
다만 알 수 있는 것은
나의 추억 속에 살아 있는
그녀의 미소,
눈빛과 입술이다.
나는 그녀에게 사랑을 바쳤고
그녀는 나에게 詩를 잉태해 주었다.
간장
우리 조용히 썩기로 해요.
우리 기꺼이 죽기로 해요.
토속의 항아리 가득히 고여
삭아 내린 뒤에
맛으로 살아나는 삶,
우리 익어서 살기로 해요.
안으로 달여지는 삶,
뿌리 깊은 맛으로
은근한 사랑을 맛 들게 해요.
정겹게 익어 가자면
꽃답게 썩어 가자면
속맛이 우러날 때까지는
속삭는 아픔도 크겠지요.
잦아드는 짠맛이
일어나는 단맛으로
우러날 때까지,
우리 곱게 곱게 썩기로 해요.
우리 깊이깊이 익기로 해요.
죽음보다 깊이 잠들었다가
다시 깨어나는
부활의 윤회,
사랑 위해 기꺼이 죽는
人生이게 해요
사랑 위해 다시 사는
再生이게 해요.
포장마차에서
그녀는 詩를 쓰고 나는 雜文을 끄적였다.
잔잔한 눈으로 말하는
그녀의 詩는 꿈이었다.
그녀가 호수 같은 눈으로
꿈꾸듯 속삭일 때
나는 허튼 소리를 하고 있었다.
그녀의 玉盒 속 깊은
水深을 알지 못한 나는
참새처럼 짹짹거리고 있었다.
그녀가 내 입을 막을 때
내 의식하기 싫은 의식의 세포들이
굴러 떨어지고 있었다.
군참새를 씹으면서
짹짹거릴 때
그녀는 몸서리를 쳤다.
내 입에 들어가는 생활의 모래주머니
내 입에서 나오는 허튼소리를
변명하지 말았어야 했다.
交感의 불은 꺼지고
싸늘하게 식어 버린 멍든 가슴
씽씽 아파 우는 찬바람 야멸차도
차라리 변명하지 말았어야 했다.
생활의 거름 자리 후비던 발톱을
차라리 변명하지 말았어야 했다.
짹짹거리면 詩가 되지 않는 공복에
술을 마시다가
검정 넥타이를 쓰다듬는다.
내 목을 감아 맨
내 喪章을 펴 들고
내 祭祀를 지내는
내 靈魂을 쓰다듬는다.
詩의 불감증으로 죽어지내는
나의 祭典에
그녀는 술을 따르고
나는 부끄러운 잔을 받아 마셨다.
눈잎
눈잎이 나를 흔드네.
이러지 말고
정말 이러지를 말고
시골로 내려가라고
날 흔들어 대네.
이러지 말고
정말 이러지를 말고
청국장 끓는 고향으로
내려가라네.
장독대와 초가지붕과
배추밭 고랑 위로
수만리 꿈을 물어 온
눈잎이 날 흔들어 깨우네.
시래기국
고향 생각이 나면
시래기국집을 찾는다.
해묵은 뚝배기에
듬성듬성 떠 있는
붉은 고추 푸른 고추
보기만 해도 눈시울이 뜨겁다.
노을같이 얼근한
시래기 국물 훌훌 마시면,
뚝배기에 서린 김은 恨이 되어
鄕愁 젖은 눈에 방울방울 맺힌다.
시래기국을 잘 끓여 주시던
할머니는 저승에서도
시래기국을 끓이고 계실까.
새가 되어 날아간
내 딸아이는
할머니의 시래기국 맛을 보고 있을까.
고향 생각을 하다가
할머니와 딸아이가 보고 싶으면
시래기국집을 찾는다.
내가 마시는 시래기 국물은
失鄕의 눈물인가.
내 얼근한 눈물이 되어
한 서린 가슴, 빙벽을 타고
뚝배기 언저리에 방울방울 맺힌다.
칡차
오늘은 내 나라 칡차를 들자.
조상의 뼈가 묻힌 산
조상의 피가 흐른 산
조상 대대로 자자손손
뼈 중의 뼈, 살 중의 살이 묻힌 산
그 산 진액을 빨아올려
사시장철 뿌리로 간직했다가
주리 틀어 짜낸 칡차를 받아 마시고
내가 누구인가를 생각하자.
칡뿌리 같이 목숨 질긴 우리의 역사
칡뿌리 같이 잘려 나간 우리의 강토
내 흉한 손금 같은 산협에
죽지 않고 살아남은 뿌리의 정신,
흙의 향기를 받아 마시자.
어제는 커피에 길들어 왔지만
어제는 정신없이 살아왔지만
오늘은 내 나라 칡차를 들자.
제3장
故鄕이 그리운 날 밤엔
호롱에 불이라도 켜 보자
畵論
내가 좋아하는 그림은
붓 한번 쓰윽 그신
하늘 한 자락.
보면 볼수록
어쩐지 넓어지고
속이 시원한
공간,
빈 마음에
푸른 바람이 한 차례
스치는 순간,
고였다가 흐르는
영원……………
그리움 Ⅰ
그리움은
해묵은 동동주,
속눈썹 가늘게 뜬 노을이다.
세월이 가면
괴는 술,
꽃답게 썩어 가는
눈물어림이다.
눈물을 틀어막는
쐐기의
아픔이다.
뜬구름 같은
가슴에
삭아 괴는 恨,
떠도는 동동주다.
그리움 Ⅱ
고향이 그리운 날 밤엔
호롱에 불이라도 켜 보자.
말 못하는 호롱인들
그리움에 얼마나 속으로 울까.
빈 가슴에
석유를 가득 채우고
성냥불을 붙여 주자.
사무치게 피어오르는 鄕愁의 불꽃
입에 물고
안으로 괸 울음 밖으로 울리니
창호지에 새어드는 문풍지 바람
밤새우는 물레 소리 그리워 그리워
졸아드는 기름 소리에
달빛도 찾아와 쉬어 가리니……
그리움 Ⅲ
그리움이 살아서
바가 나를 부르네.
비가 나를 오라 하네.
괴로워 말고
정말 괴로워만 말고
억수로 젖어 오라 하네.
그리움의 비는,
가슴에 내리는 그리움의 그대는
빙벽의 눈물인가.
전신주에도 신호등에도
방울방울 맺히네.
내 恨이 썩어 내리는
그대 눈물의 비,
애수의 눈시울을 타고
방울방울 맺히네.
그리움이 살아서
비가 나를 부르네.
비가 나를 오라 하네.
괴로워 말고
정말 괴로워만 말고
실버들 아래로 젖어 오라 하네.
언제부터 오시는 소리이기에
저리도 온몸으로 젖어 오는가.
아무리 어두운 밤이어도
그대 치마폭 아늑한 고향,
천 갈래 만 갈래 부서져 내리는
내 感官의 창문이여!
산발한 실버들 아래
산발하며 오는 그대,
부서지는 목숨의 벼랑이여!
가야산에서
말하지 말아라.
세속의 쓰레기를 버리지 말아라.
도시의 문명을 지껄이지 말아라.
돌을 다듬으며
부드러운 물의 손길로 돌을 다듬으며
천년을 흐르는 물소리
가슴으로 들으며
구름 속 웃음 짓는 半月같이
눈으로만 말하라.
밤새도록 흐르는 물은 음악가였다.
바위틈에 푸른 소리로 연주하는
자연은 위대한 樂聖,
풀잎으로, 바람으로, 별떨기로
오오, 은하수로 악보를 그리며
和音으로 말하는 음악가였다.
말하지 말아라.
暗喩를 눈치 채지 못한 말의 쓰레기는
꺼내지도 말아라.
여름, 해맑은 가슴 풀어 흐르는
저 물소리
밤새도록 번뇌(煩惱)를 씻어 내리는
저 물소리
오오, 내 말의 부끄러움,
허튼소리의 부끄러움이여!
손조차 담글 수 없는
그대 맑고 찬 말씀,
눈이 시려 볼 수 없는 눈이여!
山居한 나를 사로잡아 가는
그대 휘감아 굽이도는 사랑,
사랑에 녹아내리는 물이 되리.
한 방울의 물이 되어
말이 소용없는 나라로
떠내려가리.
물소리 연주하는 樂聖과 더불어
떠내려가리.
五月 抒情
五月 보리밭은
여고생들의 매스게임
곡선의 인파를 생각게 한다.
싱그러운 바람의 눈짓에
이끌리는 물결,
살찐 종아리와종아리와종아리와
휘어지는 허리와허리와허리와
풋풋한 이랑을 타고 오는
초여름의 황금 마차.
이제 마악
思春의 물이랑을 건너온 바람에
구름이 한 점
노고지리 소리를 귀담아 듣는다.
鄕愁
고추잠자리가 몰려오네.
하늘에 빨간 수놓으며
한데 어울려 날아오네.
어느 고향에서 보내오길래
저리도 빨갛게
상기되어 오는가.
저렇게 찾아왔던
그 해는,
참으로 건강한 여름이었지.
그대 꽃불 같은
우리들의 강냉이 밭에는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지.
잔모래로 이를 닦으시던 할아버지의
상투 끝에 맴돌던 잠자리 같이
강냉이 이빨을 흉내 내며
단물을 빨던 나의 눈앞에
떼 지어 오는 고추잠자리는
누가 보낸 전령인가.
어디서 오는 전령이기에
노스탤지어의 손을 흔들며
저리도 붉게
가슴 이리저리 맴돌며 오는가.
숲
숲은 原始의 도시
곡선의 시야로 헤엄쳐 가는
湖深 흔드는 지느러미
태고의 숨결이
天情을 갈구하는
빛깔 고운 女人의 머리카락.
세상 일,
어두운 뒷골목을 돌아
태양을 흘기는 눈매
창녀의 종아리처럼
할 일 없이
비계 덩이만 키우거나 말거나……
숲은 原始의 도시
幾億 年輪이
바위의 침묵을 붙드는
孤高의 자태로
곡선의 시야를 헤엄쳐 가는
海深 흔드는 지느러미.
보리누름에 Ⅰ
보리누름에
자연을 재단하는 이는 누구인가
초록의 원피스를 꾸며내는
베일 저쪽 나뭇가지의 손
신비의 디자이너는 누구인가
보리누름에
풋풋한 논두렁길 따라가면
나를 부르는 노고지리 소리
가슴 스멀스멀 지줄 지줄 잴잴
소리의 주인은 누구인가
보리누름에
기쁨이 일렁이는 유방마다
청춘의 물오르게 하고
풋보리 종아리 살찌게 하는
눈짓의 연인은 누구인가
보리누름에 Ⅱ
보리누름에
보리밭 이랑을 가면
구름 속 가물가물
볼 붉은 소녀가 보인다.
소녀는,
눈물이 헤픈
유랑 극단의 바람.
그녀의
검정 치마폭
검게 그을린 보리를 부비면,
껄끄러운 기억을 부비면,
시원한 그 눈 속에
내가 보인다.
보리누름에 Ⅲ
보리누름이면
내 가슴에
청보리 바람이 인다.
청춘을 어깨 짜고
풋풋하게 살쪄 가는 소녀들,
머리카락 흩날리며
매스게임을 하는
아아, 저 무질서한 질서들.
머리카락과 머리카락과
팔다리와 팔다리와
가는 허리와 가는 허리와
푸른 물결 일렁일렁
가슴 사른사른 속삭인다.
꽃빛 사랑을 훔치려고 불어오는
푸른 바람,
보리누름이면
내 가슴에
청보리 바람이 인다.
眞珠의 잠
잔잔한 意識의 해변에 내리는
빗소리 걸어 두고
꿈꾸는 진주의 혼곤한 잠 끝에
피라미 한 마리 S字를 그린다.
건반은 촉촉이
密語의 손을 잡아 끄을고
머리맡 수풀 속엔
새록새록 내리는 기억의 나래들
벌 나비 위로 안개꽃 내린다.
선녀의 두레박으로
꿈을 길어 올리는
나의 진주는
속눈썹 가늘게 빗소리 듣는다.
조개 속 아늑한 꿈의 나라
內密한 隱語에 벙그는 미소
밀 익는 온도로 도란거리는
새들도 내려와 꿈을 엮는다.
하루살이
우리 꼭 하루만 살아요.
단 둘이서 산에 올라
남부럽잖게 하루만 살아요.
일상에는 만날 수 없는 그대
젊은 하늘을 푸르게만 봐요.
천년을 하루 같이 살아요.
하루를 천년 같이 살아요.
영원히 사는 마음으로
하루를 굽이굽이 펴며 살아요.
골짜기가 산에서 존재하듯
내 속에 살아 있는 그대여
우리 하루를 천년 같이 살아요.
산허리에 하루살이 솥을 걸고
불때 솔때 불때 솔때
소꿉놀이하며 천년을 살아요.
棋院에서 Ⅱ
바둑이란 무엇입니까?
人生이다.
人生이란 무엇입니까?
定石이다.
定石이란 무엇입니까?
正道다.
正道란 무엇입니까?
我生然後殺他니라.
逐으로 몰릴 때는 어찌해야 합니까?
斷念하라.
생각을 어찌 끊습니까?
살려거든 斷念하라.
다음 數는 무엇입니까?
빈 곳을 開拓하라.
더 둘 곳이 없으면 어찌해야 합니까?
計算을 해야 하느니라.
白과 黑의 계산입니까?
人生의 算術法이다.
바둑판은
하늘과도 같은 것
뜬구름 모였다 흩어지는 하늘이다.
하늘을
黑을 다스리는
빈 마음……
먹구름 몰려들어
눈 가리우는
黑心을 버려야 하느니라.
제4장
문득 문득 올려 보는
목이 시린 밤하늘에는
아직도 젊은 별이
반짝이는데……
가을 演奏 Ⅰ
달빛이 풀잎을 연주한다.
달빛이 활을 쥐고
바이올린을 켜는
풀 푸른 소리.
은하 이슬이 흐른다.
강물은 비늘을 털고
악보의 눈들이 반짝인다.
풀꽃에 자지러지는 바람.
天然의 머리카락이 흩날린다.
풀잎은 풀잎끼리
별빛은 별빛끼리
볼을 비벼 대는
애무의 밤
지칠 줄 모르는 연주
나도 하나의 활이 된다.
가을 演奏 Ⅱ
달빛이 통행금지를 알지 못하듯
사람들은 푸른 소리를 알지 못한다.
별들이 소곤대는 하늘나라
베일 속의 소리를 알지 못한다.
모두들 잠 든 밤에도
연주는 계속되지만
자연의 악보를 아는 이는 없다.
이슬에 젖은 별들이 연주한다.
풀잎에서 자고 깨는
달빛과 별빛
반짝이는 악보의 푸른 瞳子는
언제 보아도 첫사랑이다.
깊은 밤 나는
이슬 속에 활을 쥐고
푸른 소리를 연주하는
한 마리의 귀뚜라미가 된다.
돌 Ⅰ
불 속에서 한 천년 달구어 지다가
산적이 되어 한 천년 숨어 살다가
칼날 같은 소슬바람에 염주를 집어 들고
물속에서 한 천년 원 없이 구르다가
영겁의 돌이 되어 돌돌돌 구르다가
매촐한 목소리 가다듬고 일어나
神仙峰 花潭 先生 바둑알이 되어서
한 천년 운무 속에 잠겨 살다가
잡놈들 들끓는 俗界에 내려와
좋은 詩 한 편만 남기고 죽으리.
돌 Ⅲ
말하지 말자.
말은
깊은 잠에 재워 두고
입은
천년 후에나 열기로 하자.
말하는 기교를 따르지 말고
말하지 않는 법을 배우기로 하자.
말은
믿을 수 없는
불완전 風詞,
차라리 바위가 되어
오랜 침묵으로 다져 두었다가
한 천년 세월이 흘러간 후
돌 같은 말 한 덩이
땅 깊이 심어 두고 떠나기로 하자.
모시는 말씀
깊어진 가을의 草幕으로
당신을 모시고 싶습니다.
병풍이 둘리우듯
산이 둘리어 솟아 있고,
소잔등 구풀대듯
울타리 용마름도 굽이굽이
호박 넝쿨 박넝쿨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가을 당신께 드리고 싶은 것은
黃金도 아니고 沒藥도 아닙니다.
푸른 달빛 홈초롬히 가슴으로 받으며
수집어 조용한 박덩이의
가을밤을 드리고 싶습니다.
당신께서 오시는 날 밤에는
달빛이랑 별빛이랑 거느리고
박꽃과 더불어 마중을 나가겠습니다.
당신께서 오시는 날 밤에는
풀벌레 연주회도 天宙的으로 베풀어
온밤을 당신께 바치겠습니다.
落書
인생은 낙서다.
지우고 싶은 회한이다.
썼다가도 지우고 싶은
칠판의 글씨들이다.
검은 칠판에
하얗게 줄지어 가는
밤낮의 곤충들……
모였다가 흩어지는
생활의 출퇴근,
가랑잎이다.
배가 고프면
발톱으로 거름 자리 후비다가
흩어진 생각을 쓸어 모으며
궁리하고 궁리하고
迷宮에서 잠이 깬다.
가랑잎처럼
생각을 태우면서 후회하는
내 인생의 낙서,
내 삶의 껍질이다.
내 생활의 분필 가루
내 인생의 부스러기다.
노을같이 바람같이
이제는 정말 마음 두지 않으리.
뿌리 같은 거
꽃나무 뿌리 같은 거
깊이깊이 내려 뻗는 연민 같은 거
연민 같은 거
미련 같은 거
잠 못 이루는 밤이면
뒤척이다 헝클어지는 타래실 같은 거
이리저리 얽혀지는 인연 같은 거
인연 같은 거
보내 놓고 돌아서다 되돌아보는
눈빛 같은 거, 사랑 같은 거
푸른 산 줄기줄기 칡뿌리 같은 거
목을 감고 뻗어 나간 사랑 같은 거
흔들리우는 차창 저만치
비껴가는 노을같이
모이파리 사른사른
스치고 가는 바람같이
골짜기에 잠겼다가
풀려 나가는 안개같이
이제는 정말 마음 두지 않으리.
노을같이 바람같이
막대로 뜬구름 가리키는 스님 같이
이제는 정말 마음 두지 않으리.
노을 Ⅱ
노을은 戀書다.
산불로 오시는 님에게
송두리째 바쳐 드리는
수박 속 발그레한 귓속말이다.
그 빛깔
홀로 보기 아까워
은밀한 항아리에 은근히 재워 둔
꽃자주빛,
잘 익은 포도주다.
눈웃음 해실해실
한 모금의 희열로 사근거리는
純然한 귓속말.
둘이 마시다 하나 잠들어도 모를
입술 속 戀戀한 불기운이다.
丹楓
얼근히 타오르는 그리움
외상술 넘기는 목구멍이다.
골짜기가 화끈거리는
물과 불의 갈림길이다.
그것은
시간의 혓바닥
부끄럽게 낭비한 人生을
불사르는 목숨이다.
만나고 헤어질 때
순간과 영원의 손을 흔들며
연소하는 노을이다.
흔적도 없이 사라져 가는
애증의 빛깔,
부끄러운 인생의
화끈거리는 저녁나절이다.
風景 Ⅲ
수도꼭지의 노래에
귀가 밝은
동치미 항아리.
야자수 그늘을
담아 온
일제 냉장고.
연탄 굴뚝에
기대서서
교신하는 안테나.
플라스틱 하늘을 뜯어내어
눈 터는
골목.
風景 Ⅳ
기와지붕에 널려 있는
빨간 고추여
고추 위에 모여 노는
구름이여
흩어지는 틈서리로
내려 보는 하늘이여
하늘 아래 꼬리치는
암소여
꼬리에 붙어 가는
밀짚모자여
風景 Ⅵ
노을이 입술을 빨고 있다.
갯벌 위를 가는
한 마리
소는
꿈길 가듯
취해서 간다.
그 뒤를 따르는
밀짚모자가
하나
쟁기 메고 취해서 간다.
하늘이 얼근하게 익어 있다.
노을을 사모하는
갯벌의 입술
딸기주를 머금고 있다.
사당동 귀뚜라미
도시 문명에
참여 해온 귀뚜라미에도
순수한 소리는 고여 흐른다.
부황든 몸뚱이는 볼품이 없어도
진실한 詩吟은 목숨보다 진하다.
한 방울의 이슬 속에
숨 쉬는 것은
아득한 풀잎의 꿈나라……
訃音이 오던 날
고향을 목 놓아 울다 잠들던
지하실 연탄아궁이 속에서도
더듬던 아득한 풀잎의 꿈나라……
빌딩에 殘月이 걸리는 밤이면
쓰러진 술병 옆에서
가슴을 물어 소리를 내는
날이 선 절규,
참여 의식이 순수로 고여 흐른다.
제5장
서리 맞은 열매는 곱습니다.
열꽃
나의 시는
상상의 감주
한 모금의 희열이다.
누룩을 썩혀 온
토속의 항아리에
괴어 떠낸 밀주다.
아무도 몰래
떠 마시는
달콤한 언어의 감주,
바람 맞은 놈들이
쥐불을 지르다
허쳐 뿌리는 불꽃이다.
여왕벌을 쫓는 숫기로
하늘 높이 치솟아 오르다가
합궁 끝에 떨어지는
찬란한 비명이다.
꽃 속에 갇힌 벌이
나래 떨며 울듯
황홀한 죽음의 절정으로
찰찰 넘치게 마셔 대는
불 머금은 화덕이다.
번개 바람 벼락 치는 사랑 끝에
저녁놀이 타듯,
자운영 꿀벌 잉잉거리며
소지처럼 타오르다가
사위 어가는 목숨의 끄트머리
정겹게 피어오르는
한 아름의 열꽃이다.
새암물
내 가슴속에는
발싸심하는 새암물이 흘러내리고 있다.
모래알을 들썩이며
솟구치는 새임물이
가슴 절절 흘러 넘쳐
수채도랑을 돌아가고 있다.
풀잎은 하늘에 떠가고
구름은 물밑에 흘러도
티끌 하나 없는
빈 마음……
새암물이 한여름을 흘러가고 있다.
望鄕歌 Ⅰ
오매여
남녘의 오매여
바느질 뜸이 곱고
송편을 잘 빚으시던 오매,
오매 잠든 고향 땅을
내 늘그막엔 밟아 볼라요.
오매 가슴 찾아
진달래 걸러 마신 노을같이
얼근한 들녘을 가면서
삐비라도 뽑아 들고 피리를 불라요.
뜬구름 세월
흰머리 날리며
논두렁 밭고랑 굽이굽이
풀피리 불면서 찾아 갈라요.
닐릴리 닐릴리 풀피리 불면
미영(목화) 따던 할매도 나오시것제.
하얀 조선무로
동치미를 잘 담그시던
가르마 고운 할매!
남도 땅 차진 흙을 밟아 볼라요.
개나리 울타리로 人情이 오가던
법 없이도 사는 사람들,
품앗이하던 이웃이랑
정겨운 꽃이 되어
논배미에 밟혀 썩어지는
차진 거름이 될라요.
내 피와 살이 녹아
못자리에 밟혀 썩어지는
꽃다운 紫雲英이 될라요.
望鄕歌 Ⅱ
어매여, 시골 울 엄매여!
어매 솜씨에 장맛이 달아
시래기국 잘도 끓여 주던 어매여!
어매 청춘 품앗이로 보낸 들녘
가르마 트인 논두렁길을
내 늘그막엔 밟아 볼라요!
冬至ㅅ날 팥죽을 먹다가
문득, 걸리던 어매여!
새알심이 걸려 넘기지를 못하고
그리버 그리버, 울 엄매 그리버서
빌딩 달 하염없이 바라보며
속을음 꺼익 꺼익 울었지러!
앵두나무 우물가로 시집오던 울 엄매!
새벽마다 맑은 물 길어와서는
정화수 축수 축수 치성을 드리더니
동백기름에 윤기 자르르한 머리카락은
뜬구름 세월에 파뿌리 되었지러!
아들이 유학을 간다고
송편을 쪄 가지고 달려오던 어매여!
九萬里長天에 월매나 시장허꼬?
비행기 속에서 먹어라, 잉!
점드락 갈라먼 월매나 시장허꼬
아이구 내 새끼, 내 새끼야!
돌아서며 눈물을 감추시던 울 엄매!
어매 뜨거운 心情이 살아
母性의 피되어 가슴 절절 흐르네!
어매여, 시골 울 엄매여!
어매 잠든 고향 땅을
내 늘그막엔 밟아 볼라요!
지나는 기러기도 부르던 어매처럼
나도 워리워리 목청껏 불러들여
人情이 넘치게 살아 볼라요!
紫雲英 환장할 노을 진 들녘을
미친 듯이 미친 듯이 밟아 볼라요!
가을 登山
단풍은 투피스,
때가 되면 가식을 벗어 던진다.
절반은 벗은 채
절반은 걸친 채
얼근한 하늘을 환장하게 좋아하는
골짜기의 물소리를 안주 삼아
우리 한 잔 하는 게 어때.
人生 길이 가파르면
쉬엄쉬엄 쉬어서 가고
日落西山 해 떨어지면
병풍 같은 산허리에 천막을 치고,
삼겹살이라도 볶아 놓고 둘러앉아서
우리 한 잔 하는 게 어때.
세상살이가 어지러우면
淸流에 발을 담그기도 하고,
구름처럼 초연히 털고 일어나
半裸의 樹林 사이사이로
바람같이 속편하게 鄭座首랑 불러 놓고
우리 한 잔 하는 게 어때.
간장 Ⅱ
내 시는 아파요
너무 너무 아파요
당신이 뿌려 준 소금
썩을 대로 썩은 가슴
너무너무 아파요.
내 시는 쓰려요
너무 너무 쓰려요
충혈의 눈을 맑혀 내는
당신의 준엄한 말씀
너무 너무 쓰려요.
그래도 그래도
동치미 같은 구름 둥둥 뜬
하늘에 입을 크게 벌려도
토속의 항아리 뚜껑 덮인 채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인고의 세월
맛들 때만 기다려요.
썩음으로 죽어 사는 마음에
당신이 볕들면
뜨거운 눈물, 펄펄 끓는 사랑
당신 손에 거듭나는 기쁨
한 종발의 짭짤한 삶을 위하여
四季를 하루같이 기다리는 시,
내 가난한 시, 춥고 배고픈 시,
너무 너무 아픈 시,
우리 아픔 뒤에
우리 썩음 뒤에 만나요
우리 죽음 뒤에 다시 살아요.
밖에는 꽃이 피고 잎이 지고
철새들이 지나가도
눈감고 혼곤한 잠을 다스려
맛으로 거듭나는 시가 되게 해요
아픔과 쓰라림이 거듭나게 해요.
神樂 Ⅰ
나비가 제 향기에 취해서 날아갑니다.
샘물이 제 맑음에 취해서 흘러갑니다.
날아가는 것은 아름답고
흘러가는 것은 아름답습니다.
동경하는 눈빛은 아름답고
사위어 가는 목숨은 아름답습니다.
사랑하다가 그리워하다가
속아 사는 사람은 아름답고
상처받은 이는 아름답습니다.
아무도 몰래
달빛 속눈물 뿌리며
밤새도록 가시밭길 걸어 나와서
서리 맞은 홍시처럼
눈물 속의 햇살은 곱습니다.
서리 까마귀 산허리로 돌아가고
人生이 맛들 때
목숨 끝가지마다 열린 까치밥
서리 맞은 열매는 곱습니다.
저 투명한 하늘에
매어 달린 나(我),
한 모금의 은혜를 위해
하늘만 바라보고 사는 나뭇가지에
흐르는 日月……
산새가 제 소리에 취해서 날아갑니다.
구름이 제 멋에 취해서 흘러갑니다.
神樂 Ⅱ
하늘에는
맑은 눈,
눈이 있어요.
세상에서 볼 수 없는 눈이 있어요.
세상에서 눈멀면
하늘을 봐요.
말갛게 개인 눈, 하늘을 봐요.
세상에서 피 흘리며 아파 울다가
나도 모르게 올려 보는 하늘
거기엔 당신의 눈이 있어요.
언제 보아도 싫지 않는 눈이 있어요.
맑은 눈을 자진 이들만 모여서 사는 나라
하늘나라엔
가시가 없다지요.
찔림도 아픔도 없다지요.
하늘을 보면
가슴엔
눈이 녹아요.
하늘을 보면
심장엔
얼음이 풀려요.
티끌 하나 없는
빈 가슴에
구름이 떠돌듯
속 삭는 동치미 항아리에
당신이 오셔요.
비둘기 나래 끝에 떨어지는
햇볕살 웃음 안고 당신이 오셔요.
세상이 싫어질 때 올려 보는 하늘
청청 하늘에
愁心이 많아서 올려 보는
청정 하늘에
떠도는 구름 한 점
먼빛으로 살아요.
내 가슴속에는 Ⅱ
내 가슴속에는
장미꽃이 차지했네.
뜰에는
장미 붉은 불.
꿈속을 날으는
나비
그대 눈 속을 떠가네.
내 가슴속에는
저녁놀이 차지했네.
꽃잎 타는 언덕엔
윙윙대는 벌떼들.
얼근한 구름들
그대 눈 속을 떠가네.
내 가슴속에는 Ⅴ
내 가슴속에는
첫사랑이 있다네.
간이역이 섰는 초등학교
통나무 교실의 불꽃이 있다네.
불을 머금은 장작 난로
인절미 구워 먹던 소녀가 있다네.
내 가슴 속에는
첫사랑이 있다네.
세상이 추울 때
그리워지는 소녀,
기쁨에 넘치는 불 그림자
부끄러운 능금 볼이 타고 있다네.
詩論 Ⅰ
- 용수에서 떠낸 술 -
시를 쓰기 전에
인생을 정서하라.
가슴에 괸 술을
곱게 떠내어라.
성급하게
쥐어짜는 惡酒일랑
아예 꿈도 꾸지 말라.
詩는
썩는 의식의 항아리에
용수를 질러 놓고
기다리는 사상.
인생이 익을 때까지
기다리며 참는
꽃술의 아픔이다.
떫은 言語가
익느라고
썩는 동안엔
남모르는 눈물도 흘려야 하느니라.
속을 썩혀서
단맛으로 우려내는
內密의 結晶.
꽃답게 익은 술,
정겹게 괸 술을
곱게 떠내어라.
詩論 Ⅱ
- 도토리묵 -
높은 산의
경험의 나무숲과
깊은 골의
인식의 물소리 찾아 헤매며
주워 온 도토리 옹배기에 붓고
바위틈의 맑은 물 남실남실
잠재우는 日月로
떫은 言語를 우려낸다.
우려내면 우려낼수록
맑아지는 정신,
渾身의 熱을 가한다.
창조의 질서를 찾아
열을 가하고
열을 식히면
오롯하게 어리는
山香의 묵,
詩語를 퍼 담은
心象의 옹배기에
도토리묵만 오롯하게 어린다.
詩論 Ⅲ
마음 편한 식물성 바가지 같은 詩
檀紀를 쓰던 달밤 교교한 음력의 詩
사랑방 천장에선 메주가 뜨던
그 퀘퀘한 토속의 詩를 쓰고 싶다.
人情이 많은 이웃들의 모닥불 같은 詩
해질녘 초가지붕의 박꽃 같은 詩
마당의 멍석 가에 모깃불 피던
그 포르스름한 실연기 같은 詩를 쓰고 싶다.
겨울엔 춥고 여름엔 머리 벗겨지는
빨강 페인트의 슬레이트 지붕은 말고,
나일론 끝에 목을 맨 플라스틱 바가지는 말고,
뚝배기의 숭늉 내음 안개로 피는
정겨운 詩, 푸짐한 詩, 편안한 詩,
더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고구마 한 소쿠리씩의 詩를 싶다.
고추잠자리 노을 속으로 빨려 드는 詩,
저녁연기 얕게 깔리는 꿈속의 詩,
어스름 토담 고샅길 돌아갈 때의
멸치 넣고 끓임직한 은근한 詩,
그 시래기국 냄새나는 詩를 쓰고 싶다.
제6장
松松松松,
지즐 뱃쫑 松松
밤비
어디서 내리는 은총인가
이 헝클어진 머리 위에
해보다 진한 가슴을 적시면서도
각혈이 얼룩지는
천만 갈래
억수로 부서지는
우우―
어느 하늘에서 내려 오길래
영혼도 목이 말라 피울음을 우는가
내
하늘을 얼싸안은 창문엔
투명한 공간의 심연이 비치고
의식의 세포 끄트머리마다
새벽은 창세기로 틔어 오는데……
어디서 내리는 은총인가
이 헝클어진 머리 위에
천만 길 타들어 가는
눈물 속에.
移葬
우렁 같이 진액을 빨리우고
빈 깍지로 떠나간
할머니 殘骸를 어루만지며
나는 죽음을 接骨한다.
세월에 삭은 뼈다귀와
頭骨을 들어올려
솔뿌리로 털어 내는
흙 속에
사람의 향기가 젖어 있다.
스무 해만에 햇볕을 받는 해골
퀭 뚫린 눈 뼈 속으로
명주실 같은 뿌리가 어지러워
목뼈와 갈비뼈와 다리뼈
내려가면서 흙을 털면
뼈 속에 내가 만져진다.
내가 할머니의 뼈를 어루만지듯
언젠가는 자식이나 손자들이
내 뼈를 어루만질 때
내 精神은 어디에 있을까.
詩人은 죽어서 파랑새가 된다는데
내 이름자 닮은 솔가지에 내려와
松松松松, 지줄 뱃쫑 松松,
永劫을 노래 부르며
상징시라도 한 곡조 뽑을 수가 있을까.
도리깨질
도리깨질을 하면서
東學民兵의 죽창을 생각한다.
죽창은 빛이었다.
죽창은 꿈이었다.
죽창은 혼이었다.
죽창은, 아아 황토재 하늘을 찌르던 죽창,
해묵은 된장에 상추쌈을 싸 먹던
내 할아버지의 죽창은
생명이었고, 사랑이었고, 겨레의 맥박이었다.
죽창은 할아버지의 눈초리,
눈초리의 깃발,
깃발은 숨결이었고, 불길이었고, 詩의 목숨이었다.
詩에도 숨결을 불어넣은 이 땅의 불길은
눈치 보는 詩를 살라 먹고
아첨하는 詩를 태워 날렸다.
대쪽 같은 선비 머리 땅에 떨어지면
문풍지도 뒤안의 대바람으로 울었다.
도리깨질을 하면서
할아버지의 상투를 생각한다.
상투는 지조였다.
상투는 의리였다.
상투는 얼이었다.
상투는, 아아 찰진 흙바람에 목이 떨어져 굴러도
상투만은 꼿꼿했던 할아버지의 눈초리
죽창 같은 눈초리가
도리깻열 끝에서 불 튀기고 있다.
머리가 땅에 떨어져 굴러도
바른 말을 했던
그 숨결, 그 지조 간 곳 없고,
머저리들만 치킨 센터로 꼬꼬댁 꼭꼭
울지도 못하는 詩는 써서 무엇하며
거지발싸개 취급도 안하는 詩 써서 무엇하리!
내 詩가 농장 다리 밑에 깔려 죽어야 하나! 내 시의 억울한 유산을 위해 붓을 꺾어야 하나! 도리깨질을 하면서 생각한 알곡은 죽은 쭉정이 가운데 살아난 고난의 왕자, 까지면 까질수록 더욱 단단한 이 나라 질긴 목숨, 샛별같이 총명한 떼풀 같은 목숨, 가난이 유죄요 무능이 죄악이라고 자기 가슴 자기가 두드리는 이 땅의 詩人아! 해맑은 소주잔에 鄕愁 사무치게 꺼익꺼익 우는 이 땅의 詩人아! 해장에 속 풀려고 얼쩡거리는 시인아! 첫새벽에 눈 부비며 출발하는 차를 타자! 가난의 손때 묻은 시내버스를 타고 배나무골로 굴레방다리로 씽씽 씽씽 달리자.
싸리비 Ⅱ
산 좋고 물 맑은 우리네 마을
그 푸짐한 인정 다 어디 두고
여길 찾아왔니
이 어리석은 것아!
하늘을 이고 살던 그 싸릿골 다 버리고
어쩌자고 여길 왔니
이 불쌍한 것아!
낯선 타관 땅
정붙여 살아보겠다고
차가운 아스팔트 쓸고 또 쓸다가
몰인정에 눈 부비며 쓸고 또 쓸다가
문둥이 손처럼 뭉그러진
이 불쌍한 것아!
속이 아파도 말을 못하는
이 불쌍한 것아!
어쩌자고 낯선
타관에 와서
쓰레기만 쓸다가 몽그라졌느냐!
이 불쌍한 것아!
이 안쓰러운 것아!
火葬터에서
지식이 분필 가루로 날리듯
허무하게 떨어져 내리는
정신의 껍질을 바라본다.
로케트가 캡슐을 차고 떠나가듯,
육신을 버리고 떠나가는
영혼의 껍질을 바라본다.
불의 혓바닥에 소멸되어 날아가는
한 그루터기의 몸뚱아리,
자연의 식사는 완만하다.
하루에도
千年을 살 것 같이
기염을 토하며 짓밟고 올라서던
욕망의 죽음은 간단하다.
보내 놓고 돌아와 바수어지는 뼈
남아 있는 껍질은 허무하다.
돌아갈 때는 불꽃으로 말하는
혀는 입의 막대기,
불빛의 계시는 무한하다.
돌아가는 北邙이 조용한 것은
人生이 시끄러운 까닭이다.
유혹하던 몸과 끌려가던 마음,
등기 권리증도 승소 판결문도
핏대를 세우면서 얻어낸 약속어음도
한줌의 재, 한줌의 재,
분필 가루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世宗實錄
새마을호 특급은 비싸서 못 타고
통일호 삼등 급행열차를 탔다가
구두를 밟히던 날 밤 꿈에
獨立宣言書를 다시 읽는데
세종 임금께서 나와 울더이다.
간밤엔
비껴 앉은 독립문이 서럽게 울더니
고층 빌딩에 주눅 든 남대문도 울더니
히라가나와 혀 꼬부라진 소리에 밀리어
한국은행 전속 모델로 연명하시다가
훈민정음을 총살당한 世宗大王께서는
安重根 義士를 붙들고 그렇게 울더이다.
分斷 반세기가 되도록
우리 말 똑 부러지게 하는 이 없고
나라 팔아먹는 놈들 뿐 이라고
서럽게 서럽게 그렇게 울더이다.
피임을 선언한 도시에서
그렇게도 서럽게 울어 싸시더니
世宗路에도 계시지 못하고
파고다공원으로 행차하시더이다.
講義室 情景
일본인 여교수
사미셍의 목소리
화사하게 날리는
사쿠라 꽃잎
흑판엔 춤추는 히라가나.
중국인 여학생의
빨간 미소
매화 겨드랑이에 이는
思春의 바람
四聲으로 오르내리는
물새 소리.
미국인 여학생
웃음소리는
조선 닭 알 낳고
홰치는 소리
참깨 밭에 쳐드는
햇살의 이빨.
호주인 학생
수염에서 떨어지는
계곡의 물소리
바람소리
나는 말없는
石窟庵大佛……
항아리
하늘이 좋아
입을 벌리고 우러르는
朝鮮女人아!
넋 놓고 임을 보듯
환장하게 올려 보다
토속으로 굳어진 閨房女人아!
청동빛 하늘에 미쳐
안으로 눈물짓다
흙으로 남은 情恨의 女人아!
할 말이 너무도 많아
입은 크게 벌려도
孤獨만 배부른 채
속으로 눈물짓는
두터운 입술의 설움아!
침묵이 고인 가슴에
별 뜨면
수를 놓고
바람 불면
물결 이는
독수공방 女人의 냉가슴,
삼껍질에 부르튼 입술아!
낮은음 자리 돌아 감기는
恨의 물레 소리
타래실에 시름을 감고 푸는 생활,
대바람 소리 한숨 쉬는 뒤안의 장독대
바보처럼 입을 벌려 하늘 보는 女人
안으로 빗장 거는 女流詩人아!
이슬 내리는 밤이면
눈물은 창호지에 어리고,
달빛 흐르는 밤이면
다듬이소리 九天에 사무치나니,
흙으로 늙은 朝鮮女人의
흙 속에 잠든 은장도
은대야에 내려와 풀어지는
모시치마 흰 달빛
내 꿈속의 女人아!
달
가시내야, 가시내야, 시골 가시내야. 루즈의 동그라미로 빌딩을 오르는 가시내야. 날 짝사랑했다는 가시내야. 달 돋는 밤이면 남몰래 고개 하나 넘어와서는 불 켜진 죽창문 건너보며 한숨 쉬던 가시내야. 날 어쩌라고 요염한 입술로 살아와서는 都市의 石壁을 올라와 보느냐.
가시내야, 가시내야, 시골 가시내야. 저만치 혼자서 창연한 눈빛으로 昇天하는 가시내야. 너의 깊은 속 샘물줄기 돌돌거리는 잠샛별 회포 쌓인 이야기를 일찌감치 들려주지 못하고, 어찌하여 멀리 떠서 눈짓만 하느냐. 어느 이승 골짜기에 우연히 마주칠 때 날아온 찻잔에 넌지시 떨구고 간 사연 갖고 날 어쩌란 말이냐.
가시내야, 가시내야, 시골 가시내야. 저 달을 물동이에 이고 와서는, 정화수 남실남실 달빛 가득 뒤안의 장독대 바람소리 축수 축수 치성을 드리던 어미 죽은 줄도 모르고, 루즈의 동그라미만 붉게붉게 불이 붙는 가시내야. 날 어쩌라고 저만치 창연한 눈빛, 볼그레한 연지볼로 웃기만 하느냐.
歌手 밀바
풍만한 성량으로
연서를 날리는
그대, 광란의 불꽃이여!
청춘의 등걸불을 환장하게 일으키며
달빛에 우짖는
금발의 야성
물무늬 아른아른
개울물 건너오는 목소리에
흐느끼는 바이올린이여!
계절이 흐르는 꿈의 개울에
머리카락 풀어헤치고
꽃빛 노을을 불러들이는
정열의 불꽃이여!
그대 입술의 동그라미 속
이빨이 쳐들릴 때
강변로 휘어 도는 가로등 불빛,
아아, 그 반짝이는 은어 떼
불 머금어 흐늘거리는 강물이여!
아픔의 공지, 환희의 혓바닥,
율동의 허리 흐늘흐늘
환장하게 타오르는
눈물 속 애욕의 불꽃이여!
四重奏
참새들이 훈민정음으로 지저귀고
제비들은 알파벳으로 지줄 댄다.
물새들은 四聲으로 오르내리고
앵무새는 히라가나를 흉내 낸다.
훈민정음과 알파벳과
四聲과 히라가나
지저귀고 지줄 대고
오르내리고 흉내 내는
참새들과 제비들과
물새들과 앵무새
그들의 악보는 전선줄
五線이 있었다.
造船所
흰 소금을 몰고 오는
원시의 땀 속으로
木手의 수건이 빨려 드는 바다.
수건에 걸린 하늘로
완성의 못질이 떨어지면
맨발로 뛰는 심장이
어둠을 털고 일어나
바다와 관계할 것이다.
무덤은 사라질 것이다.
부서지기만 하는 뼈도
메마른 어둠으로 가득 찬
항구를 뚫고 달리는
오, 바다
지줄 대는 바다.
파도를 불러일으키는
神의 찬란한 허릿짓
알몸끼리 출렁이는
바다여.
비비새
정 이월 다 가고 삼월이 오면
우리 집 대숲에선 비비새가 울었지.
내가 항상 그리워하는
마음의 고향에는
비비비비 비비비비
非非非非 非非非非
훈민정음으로 울뿐만 아니라
이두(吏頭)로도 울었지.
요즈음 유행가에서처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라든지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 라고
저질로 악쓰는 소리가 아니라
죄를 모르는 죽순 밭에서
청명한 이슬을 퉁기며
非非非非 하늘 보는
순수와 참여의 소리로 울었지.
순수하면서도
참여 의식이 강한
비비새 소리는
내 하나밖에 없는
言路의 숨구멍이었지.
섣달
소복의 달 아래
다듬이질 소리 한창이다.
姑婦의 방망이 딱뚝 똑딱
학 울음도 한밤에 千里를 난다.
참기름 불은 竹窓 가에 졸고
오동꽃 그늘엔 봉황이 난다.
다듬잇돌 명주 올에 線을 그리며
설움을 두들기는 오롯한 그림자
떼 지어 날아가는 철새 울음
은대야 하늘에 産月이 떴다.
보내면서
손아,
이별의 손아,
마지막으로 그녀를 포옹하라.
눈아,
정열의 눈아,
마지막으로 그녀를 껴안아라.
보내는 손아,
사랑하는 눈아,
낙엽으로 편지를 태우듯
그녀 노을을 태워 마셔라.
그대 불타던 입술이여,
그대 환장하게 녹아내리던 渾身이여,
마지막 시각까지 꿈을 붙들어
九天의 별을 빛나게 하라.
選
古眞한 그 人品에 그 詩
古眞이랄까! 心志가 어찌 이렇듯 순박할 수 있을까? 그야말로 감복을 안 할 수 없다. 이 시집을 펼치는 분들은 누구나 다함께 바로 그 사람에 그 詩라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그래서 진실이 너무하도록 배어 있는 詩를 맛볼 것이다.
그 형상화에 있어서도 옷깃을 여민다. 물론 나는 오늘날 우리 詩壇에 횡행 하는 표상의 실재가 없거나 그 詩心마저 조작하는 거리의 마술사 같은 시인들을 혐오하고 있어 그의 저러한 詩作에 있어서의 정좌를 진귀하게 받아들인다.
또한 나는 그가 지닌 사유의 깊이나 순화된 심회心懷나 타락한 현실에 대한 진솔한 반감마저도 소중하게 여기고 더구나 그가 지닌 종교심이 갇혀 있지 않고 열려 있음을 기쁘게 여긴다. 그래서 저러한 그의 詩는 앞으로 그의 연륜과 더불어 관조와 격조의 유연을 더욱 깊고 넓고 높게 해서 우리 詩史에 크게 정채精彩를 발할 것을 바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 詩人 具 常
크게 잡아서 무엇인가 말하고자 하는 詩, 보들레르 이래의 근대시의 전통이라 할까- 그러한 혈맥을 이으려는 태도가 나타나 있는 분위기가 든든해 보인다.
- 詩人 金奎東
한국적 프로빈시얼리즘
黃松文 詩人은 종교적 이미지를 향토적 이미지로 바꾸어 형상화하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는 한국적인 최고의 진실 한 존재를 프로빈셜하게, 즉 향토적으로 표현한다. 그는 우리들의 처참한 모습 앞에 서 다른 데로 눈을 돌리지 않고, 그것을 시의 소재로 삼으면서도 센터멘탈리즘에 빠지지 않고, 초연하게 넘어서 버리는 독특한 詩作의 자세가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 시인의 이름은 黃松文이다. 이름도 그 사람이 자신에 대한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에 큰 영향을 준다는 사실과 자기에 대한 이미지는 모든 사물에 대한 인식을 수습하는 중심적인 역할을 해낸다는 입장에서 볼 때 詩作을 하는 데 있어서 이름이 상당한 어떤 관련성을 갖추고 있었으리라는 것을 생각할 수도 있는 것이다.
누를 黃이라는 글자는 우리나라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黃土 땅을 연상케 한다. 그리고 솔 松이라고 하는 글자는 우리나라 어디에나 서 있는 소나무를 말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것들을 文學으로 표현해 낸다고 하는 뜻에서 맨 끝 자를 文이라고 하는 글자로 끝을 맺었다고 생각할 때 그 이름과 이 작품들과의 사이에는 어떠한 숙명적인 인연이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일이라고만 말할 수 없을 것이다.
- 詩人 張永暢
理念과 藝術의 永遠性
높고 곧은 이별의 푯대와 시적 이미지 구성과 시적 표현에 대한 진지한 추구의 노력이 작품으로 형상화되어 있다. 黃松文 詩人은 결코 포즈를 취하는 시인이 아니다. 또 유행의 시인도 아니다. 묵묵히 자기 이념의 푯대를 바라보는 동안에 어느덧 그 이념이 생활화했고, 다시 차원을 넘어서 詩化했고 詩語에 정착했다. 그 과정이 실로 고통스러웠겠지만 참고 견딤의 계속된 작업이 마침내 아람진 수확을 거두었다.
黃松文 詩人은 작품의 언어 공간에 한 치의 갭도 허용치 않는, 엄격에 가까운 태도로 언어를 다룬다. 높은 이념의 소유자인 동시에 충실한 언어의 직공이다. 이 시인의 시적 세계는 이념의 고민에 피어나는 광명의 꽃이다. 또 그것이 사상적인 꽃임에 만족치 않고 예술적 언어의 꽃으로 핀다.
천국을 순례하던 생명의 날개가 씨알을 품고 미나리의 동네로 내려앉는다. 하늘과 땅의 공간적 연결과 풍속의 동화작용이다. 흙의 고향에 영원을 심는다. 사상적 이념과 예술적 언어가 장소를 같이 하여 詩의 향연을 차리는 자리에 영롱한 지성이 곁들여 詩의 철학을 제시하고 내일의 大成을 예고하는 이 작품이 韓國詩 星座에 또 하나의 좌표를 그린다. 이념의 영원과 예술의 영원을 함께 약속하는 듯하다.
- 文學評論家 鄭貴永
黃松文 詩人의 詩를 대하면 어떤 大河를 느끼게 된다. 한 송이 꽃을 피우는 시인도 있고, 몇 그루 나무를 키우는 시인도 있으나 대하처럼 유유히 흘러가서 우뚝 선 산 같은 그런 시인은 없는 것 같은데, 이 시인의 시에서는 탁 트인 기분을 맛보게 된다.
- 文學評論家 金永琪
永遠히 샘솟는 淸新한 抒情
黃松文 詩人의 詩精神 世界에서 가장 높이 평가할 수 있는 것은 현대인의 이념 속에서 근본 바탕이 되고 있는 현실 여과에 대한 작업이다. 그것은 현실을 영원한 眞善 속에서 승화시키려 하고, 그러한 노력을 부단히 계속하고 있다는 지구력이다. 그것은 詩的 意志가 강렬한 진리의 추구로 일관되어 있고, 현실의 가상적인 현상 속에서도 영원으로 이어질 신앙의 세계에 회귀를 마련하고 있다.
그의 시는 들뜬 바람결이 없다. 차분하게 안정된 제자리를 굳혀 가고 있으며, 自我에 대한 재확인으로부터 大我의 세계를 지향하는 神에의 신념이 삶의 자리를 확고히 마련하였다고 볼 수 있겠다. 이러한 특징은 첫째 현실을 보는 안목이 미래지향적이며, 둘째로 自我의 실재를 神의 세계로 연장할 확신을 갖고 있기 때문이며, 셋째로 현실과 이념의 한계 분석에 대한 척도를 역시 神의 세계를 뻗치고 있다는 이미지에서 그렇다.
‘望鄕歌’에서 보는 바와 같이 절절한 향수는 그의 뼈와 살에 사무치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요, 이 그리 으로 하여 다시 재연되는 의식은 고향 같은 조국, 조국 같은 민족, 민족 같은 온 천하 인류에게 보내어져 흘러넘치는 그리움이다. 이는 곧 향토애로 물들인 인류에의 사랑이요, 동경이요, 사모요, 살뜰한 共生의 기원으로 귀착되는 이미지이다.
-文學評論家 金南石
보성시선 제④집
까치밥
우리, 사랑위해 기꺼이 죽는
人生이게 해요
초판발행: 1990년 10월 25일
중판발행: 1991년 2월 5일
지은이: 황 송 문
펴낸이: 정 진 태
펴낸곳: 보성출판사
등록번호․제1-196(1979.12.7.)
서울시 중구 만리동 1가 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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