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학과 인생

여름날의 추억

SM사계 2010. 6. 29. 09:53

여름날의 추억 

       - 나의 노랫말 作詩記 -


황 송 문

선문대 교수 

 


  2001년 여름, 중국 연변대학에 가있을 때였다. 그곳 시인들 가운데 노랫말을 작사하는 모임이 있었는데, 그 대표인 이상각 시인이 나를 거기에 합류시켰다. 연변 자치주 주정부에서 예산을 타다가 풍광 좋은 연자산장(燕子山莊)에서 5일 동안 침식을 하면서 자유롭게 작사를 하는가 하면, 가사를 가지고 토론에 붙여서 다듬기도 하는 것이었다.

  그런 조탁의 과정을 거쳐서 노랫말이 완성되면, 그 다음으로는 작곡가들이 그 가사를 가지고 5일 동안 함께 침식을 하면서 작곡을 하고, 작곡이 완성되는 마지막 날에는 가수들이 와서 노래를 부르는 것이었다. 그때 나는 4일 동안에 6편의 노랫말을 지어내게 되었다.

  달이 휘영청 밝은데, 잠은 오지 않고 해서 툇마루에 걸터앉아 동산을 바라보고 있을 때 문득 윤오영 선생의 수필 달밤이 생각났다. 그 달밤에는 그가 달이 몹시 밝아서 김군을 찾아 나섰다가 그는 만나지 못하고 돌아서다가 맞은편 집 툇마루에 앉은 노인과 얘기를 나누게 되는데, 농주를 한 사발씩 나누어 마시고 헤어진다는 얘기였다. 

  나는 그 얘기를 패러디해서 노랫말을 쓰기 시작했다. 농촌의 달밤 풍경이 아름다울 뿐 아니라 처음 보는 생면부지(生面不知)와 죽마고우(竹馬故友)처럼 다정하게 농주를 나누어 마시는 그 인정미학이 너무도 좋아 보였기 때문이다.

  

  살구나무 가지로 기어오른 달이/ 너무도 밝아서 달빛 밟고 나서니

  툇마루에 앉아서 농주 마시던 노인이/ 달빛을 안주 삼아 취해 보자네

  바람은 산들산들 불어오고/ 잠이 없는 별들은 반짝이는데

  노인은 잠이 들고 나만 남았네/ 얼근한 보름달과 나만 남았네   

  

  이 달밤에라는 노랫말은 최연숙 작곡, 안용수 노래로 제작되었다. 다음으로, 반딧불 냇물이 흐르네에 얽힌 에피소드를 얘기하고자 한다. 한 방중 잠에서 깨어나 밖으로 나왔을 때 그 숲 속에는 수많은 반딧불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그 반딧불들은 한국의 것보다 작았지만, 밝기는 전깃불처럼 밝았다. 중국의 깊은 산중의 숲 속에서 깊은 밤에 바라보는 반딧불은 그렇게 경이로울 수가 없었다.

  문득, 일본영화 홋다루가와(螢川)가 떠올랐다. 이 영화는 장호강 장군 시인과 함께 이곳 만주벌판에서 광복군으로 독립운동을 하던 문상명 시인이 영화진흥공사에 있을 때 시사회에서 본 작품이었다. 한말에 의병으로 투쟁하다 만주로 건너가 독립운동을 하던 부친(문석택)의 차남으로 출생한 문상명 선생은 임시정부 산하 광복군 제3지대원으로 일본군의 점령지인 하남성 개봉에서 지하운동을 하다가 해방 후 귀국하여 6.25 때 참전한 분이었다.

  그 영화에서는 고향 얘기가 나오는데, 반딧불이 마치 시냇물이 흐르듯이 그렇게 산골짜기에 반짝이는 것이었다. 그 순간에 나의 뇌세포에는 알전등이 켜지는 것만 같았다. 창조적 상상력은 노랫말을 향하여 분해와 결합과 변화를 시도하는 것이었다. 나는 한밤중에 노랫말 가사를 쓰기 시작하였다.

  

  반딧불이 냇물처럼 흘러내리네/산천은 고요히 잠이 들고

  만월은 하늘에 떠서 가는데/오작교 밑으로 반딧불이 흐르네

  아아- 아아- 하늘에는 별무리/땅에는 반딧불 반딧불이 냇물처럼 흘러내리네

  

  반딧불이 냇물처럼 흘러내리네/첫사랑 빛나는 눈동자처럼

  티없이 맑은 물 반딧불 냇물/ 이 세상 어디에도 찾을 수 없어라/

  아아- 아아- 하늘에는 별무리/땅에는 반딧불 반딧불이 냇물처럼 흘러내리네

  

  이 가사는 최연숙 작곡, 박경숙 노래로 중국인민방송에 방송되었고, 꽃잎처럼」「그리움」「눈꽃」「달걀생각과 함께 여섯 곡이 녹음띠(카세트 테이프)로 만들어져서 귀국할 때 가져오게 되었다.

  해마다 여름이면 중국조선족 시인들과 함께 작사와 작곡을 했고, 중국조선족인민가무단 가수들이 노래를 부르던 그 연자산장(燕子山莊)이 눈앞에 선하게 떠오른다. 그곳은 우리의 조상들이 농사를 짓는가 하면, 조국독립을 위해서 일본군과 치열하게 혈투전을 벌이던 곳이 아닌가. 아니, 고구려 그 이전의 고조선 시대에도 우리의 조상들이 말달리며 살던 곳이 아닌가. 

  초가집 마당가에 봉선화 채송화 맨드라미 해바라기가 지천으로 피어있는 곳, 인정이 너무도 많아서 냉면과 개고기 인심을 감당하기 힘들어하던 곳을 고향 찾듯 찾아가고 싶었다. 그러나 올해도 가기는 틀린 것 같다. 금년도 해외 세미나를 그곳 연변대학에서 하기로 하였으나, 베트남에서 하자고 도중에 누군가가 비틀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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