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송문 수필창작

제2부 수필의 창작

SM사계 2012. 7. 30. 11:06

 

 

 

 

제2부 수필의 창작

 

수필 창작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수필의 분류라든지, 그 기원이나 역사에 대해서 살펴본 다음 그 방법을 익히는 게 바람직할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작자가 수필 창작에 들어가게 될 때에는 자기가 다루고자 하는 내용을 어떠한 형식 속에 담는 게 바람직한가 하는 취사 선택에 직면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가령 사회적인 문제를 보편적 논리로써 객관적으로 다룰 것인가, 아니면 개인적인 신변문제를 개인의 감정이나 심리 등이 중심이 되어 주관적으로 다룰 것인가 하는 문제를 결정하는 데에는 수필을 가름하는 내용을 파악하지 않고는 혼란에 빠질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1. 수필의 분류

수필은 그 정의가 막연한 것과 같이 그 종류에 대해 분류하는 데에도 일정하지 않다. 최근에 문단에서 말해지고 있는 문학으로서의 본격적인 수필 이외에, 보다 넓은 의미에 있어서의 수필을 범주로 잡는다면, 일기문이나 서간문, 감상문, 수상문, 기행문 등도 수필의 범주에 들어가며, 소평론(小評論)도 여기에 포함시킬 수 있다.

수필을 에세이(essay)와 미셀러니(miscellany)로 나누는 이가 있는데, 전자는 어느 정도 지적이며, 객관적, 사회적 논리적 성격을 가지는 소평론 따위가 그것이며, 후자는 감성적이며, 주관적, 개인적, 정서적 특성을 가지는 신변잡기, 즉 좁은 뜻의 수필로 본다. 이러한 견해는 에세이와 미셀러니를 구별해서, 우리 말의 수필은 후자에 속한 것으로 보게 된다.

또한, 영문학의 경우를 전제로 하여, 포멀 에세이(formal essay)와 인포멀 에세이(informal essay)로 가름하는 이도 있는데, informal이란 정격(正格)이 아니라는 뜻이므로, 포멀 에세이는 소평론 따위로, 인포멀 에세이는 일반적인 의미의 수필에 해당된다.

비교적 무거운 느낌을 주는 중수필(重隨筆)이라든지, 딱딱한 느낌을 주는 경수필(硬隨筆)은 베이컨이 즐겨 쓰던 수필로서 일반적․사회적인 문제를 객관적으로 다룬다면, 비교적 가벼운 느낌을 주는 경수필(輕隨筆)이라든지, 부드러운 느낌을 주는 연수필(軟隨筆)은 몽떼뉴가 즐겨 쓰던 수필로서 개인적인 신변문제를 세련된 유머와 풍자로써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이 외에도 사색적 수필이라든지, 비평적 수필 등이 있다.

철학을 철학자의 전유물인 것처럼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결코 무리한 일은 아니니, 왜냐하면 그만큼 철학은 오늘날 그 본래의 사명 - 사람에게 인생의 의의와 인생의 지식을 교시(敎示)하려 하는 의도를 거의 방기(放棄)하여 버렸고, 철학자는 속세와 절연(絶緣)에서 오로지 자기의 담론에만 경청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철학과 철학자가 생활의 지각을 완전히 상실하여 버렸다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일이다. 그러므로 생활 속에서 부단히 인생의 예지(叡智)를 추구하는 현대 중국의 ‘양식의 철학자’ 임어당(林語堂)이 일찍이 “내가 임마누엘 칸트를 읽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석 장 이상 더 읽을 수 있는 적이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는데, 이 말은 논리적 사고가 과도의 발달을 성수(成遂:어떤 일을 이루어 냄)하고 전문적 어법이 극도로 분화한 필연의 결과로서, 철학이 정치, 경제 보다도 훨씬 후면에 퇴거되어, 평상인은 조금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고 철학의 측면을 통과하고 있는 현대 문명의 기묘한 현상을 지적한 것으로서, 사실상 오늘에 있어서는 교육이 있는 사람들도 대개는 철학이 있으나 없으나 별로 상관이 없는 대표적 과제가 되어 있는 것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 김진섭(金晋燮)의 <생활의 철학> 중 앞부분

 

여기에서는 보편적인 진리가 논리적으로 서술되어 있다. 비교적 무거운 느낌을 주는 중수필로 일반적인 철학 얘기를 보편적 이성으로써 학자적인 소양으로 서술하고 있다.

앞벌 논가에서 개구리들이 소낙비 소리처럼 울어대고 삼밭에서 오이 냄새가 풍겨 오는 저녁 마당 한 귀퉁이에 범산넝쿨, 엉겅퀴, 다북쑥, 이런 것들이 생짜로 들어가 한데 섞여 타는 냄새란 제법 독기가 있는 것이다. 또한 거기 다만 모깃불로만 쓰이는 이외의 값진 여름밤의 운치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달 아래 호박꽃이 화안한 저녁이면 군색스럽지 않아도 좋은 넓은 마당에는 이 모깃불이 피워지고 그 옆에는 멍석이 깔려지고 여기선 여름살이 다림질이 한창 벌어지는 것이다. 멍석 자리에 이렇게 앉아 보면 시누이와 올케도 정다울 수 있고, 큰애기에게 다림질을 붙잡히며, 지긋한 나이를 한 어머니는 별처럼 머언 얘기를 들려 주기도 한다. 함지박에는 가주 쪄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노오란 강냉이가 먹음직스럽게 답겨 나오는 법이겠다.

쑥댓불의 알싸한 내를 싫찮게 맡으며 불부채로 종아리에 덤비는 모기를 날리면서 강냉이를 뜯어 먹고 누웠으면 여인네들의 이야기가 핀다.(생략)…온 집안에 매캐한 연기가 골고루 퍼질 때쯤 되면 쑥 냄새는 한층 짙어져서 가경으로 들어간다.(생략)…쑥을 더 집어 넣는 사람도 없어 모깃불의 연기도 차츰 가늘어지고 보면, 여기는 바다 밑처럼 고요해진다.(생략)…한잠을 자고 난 애기는 아닌 밤중 뒷산 포곡새 울음소리에 선뜻해서 엄마 가슴을 파고들고, 삽살개란 놈은 괜히 짖어대면 마침내 온 동리 개들이 달을 보고 싱겁게 짖어대겠다.

― 노천명(盧天命)의 <여름밤> 중 일부

 

비교적 가벼운 느낌과 부드러운 느낌을 주는 경수필(輕隨筆)과 연수필(軟隨筆)로서 개인적인 정서 분위기를 주관적으로 표현한 시적 수필이라 할 수 있다.

들과 정원의 꽃보다도,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보다도, 더욱 우리를 사로잡는 것이 있다. 사람들의 아름다운 마음씨가 그것이다. 나 자신으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다고 생각되는 어려운 일을 남이 하는 것을 직접 바라보거나 또는 그런 미담을 전해 들었을 때의 감격은 아름다운 꽃이나 여자를 만났을 때의 감동보다도 더욱 깊게 가슴에 사무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의 아름다운 마음씨가 이토록 고맙고 거룩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런 마음씨의 사례(事例)가 꽃이나 미녀처럼 흔치 않기 때문일까, 또는 아름다운 마음씨는 꽃이나 미녀의 경우와는 달리 그 생명이 오래 지속되기 때문일까.

꽃은 열흘 붉기가 어렵다 하였고, 아름답던 여자의 자태도 세월이 흐르면 주름살 뒤로 사라진다. 사라진 다음에 또 새 세대 가운데 많은 미모가 탄생하기야 하겠지만 옛날 그 사람은 아니니 역시 덧없고 허망하다. 그런데 아름다운 마음씨는 그 사람의 몸이 흙으로 돌아간 뒤에도 오래오래 생명을 유지하고 빛을 던진다.

세상이 어찌 꽃과 미녀와 그리고 슬기로운 마음씨만으로 가득 차기를 희망하랴. 다만 이 세 가지가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세상은 끝없이 아름답다. 이 아름다운 세상에 태어났음을 고맙게 생각하며 슬픈 이야기들은 잊고 살아간다.

― 김태길(金泰吉)의 <아름다운 세상> 중 일부

 

철학자의 사색적 수필이다. 사람의 아름다운 마음씨야 말로 여러 아름다움 가운데 으뜸이라고 하는 그 불변한 영원성의 가치를 표현하고 있다. 옛사람은 삼상(三上)의 시(詩)를 얘기했는데, 그 가운데, 침상(枕上)의 시에 해당되는 게 바로 이 철학하는 사색의 수필이다. 이 외에 우상(牛上)의 시는 관조(觀照)의 세계요, 측상(厠上)의 시는 배설(排泄)의 언어를 가리킨다.

지조란 것은 순일(純一)한 정신을 지키기 위한 불타는 신념이요 눈물겨운 정성이며, 냉철한 확집(確執)이요 고귀한 투쟁이기까지 하다. 지조가 교양인의 위의(威儀)를 위하여 얼마나 값지고, 그것이 국민의 교화에 미치는 힘이 얼마나 크며, 따라서 지조를 지키기 위한 괴로움이 얼마나 가혹한가를 헤아리는 사람들은 한 나라의 지도자를 평가하는 기준으로서 먼저 그 지조의 강도(强度)를 살피려 한다. 지조가 없는 지도자는 믿을 수가 없고, 믿을 수 없는 지도자는 따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자기의 명리(名利)만을 위하여 그 동지와 지지자와 추종자를 일조(一朝)에 함정에 빠뜨리고 달아나는 지조 없는 지도자의 무절제와 배신 앞에 우리는 얼마나 많이 실망하였는가. 지조를 지킨다는 것이 참으로 어려운 일임을 아는 까닭에 우리는 지조 있는 지도자를 존경하고 그 곤고(困苦)를 이해할 뿐 아니라 안심하고 그를 믿을 수 있는 것이다.(생략)… 우리가 지조를 생각하는 사람에게 주고 싶은 말은 다음의 한 구절이다. ‘기녀(妓女)라도 늘그막에 남편을 좇으면 한 평생 분 냄새가 거리낌 없을 것이요, 정부(貞婦)라도 머리털 센 다음에 정조를 잃고 보면 반생의 깨끗한 고절(苦節)이 아랑곳없으리라.’ 속담에 말하기를 ‘사람을 보려면 다만 그 후반을 보라’ 하였으니 참으로 명언이다. 차돌에 바람이 들면 백 리를 날아간다는 우리 속담이 있거니와 늦바람이란 참으로 무서운 일이다. 아직 지조를 깨뜨린 적이 없는 이는 만년(晩年)을 더욱 힘쓸 것이니 사람이란 늙으면 더러워지게 마련이기 때문이다.(생략)…

변절자에게도 양심은 있다. 야당에서 권력에로 팔린 뒤 거드럭거리다 이내 실세(失勢)한 사람도 있고, 갓 들어가서 애교를 떠는 축도 있다. 그들은 대개 성명서를 낸 바 있다. 표면으로 성명은 버젓하나 뜻있는 사람을 대하는 그 얼굴에는 수치의 감정이 역연하다. 그것이 바로 양심이란 것이다. 구복(口腹)과 명리(名利)를 위한 변절은 말없이 사라지는 것이 좋다. 자기 변명은 도리어 자기를 깎는 것이기 때문이다. 처녀가 아기를 낳아도 핑계는 있다는 법이다. 그러나 나는 왜 아기를 배게 됐느냐 하는 그 이야기 자체가 창피하지 않은가.

― 조지훈(趙芝薰)의 <지조론(志操論)> 중 일부

지조를 팔고 변절한 친일(親日) 매국노(賣國奴)라든지, 해방 후 정당정치의 와중에서 변절한 이들에 대한 준엄한 비판과 따끔한 경종을 울리는 글이다. 이러한 스타일의 글은 따끔한 비판으로 경각심을 높이는 점이 특징이다.

 

2. 수필의 기원

수필의 기원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설이 많다. 테오프라스토스의 <성격론>이라든지, 플라톤의 <대화편>, 키케로, 세네카,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등도 수필의 범주에 넣을 수 있으나, 프랑스의 몽테뉴의 <수상록(1580~88)>은 ‘에세이’라는 말을 처음 쓴 수필이며, 그를 수필의 원조(元祖)로 보는 것이 통설이다. 영국 수필의 원조는 그보다 17년이 늦은 16세기의 베이컨으로 보며, 그의 <수상록>이 영국 수필의 시초라고 한다.

이어서 찰스 램, 해즐릿, 헌트, 드 퀸시 등 유명한 수필가가 배출되었다. 특히 찰스 램의 <엘리아 수필집(Essays of Elia, 1823)>은 여유와 철학이 깃들어 있으며, 신변적, 개성적 표현이면서도 인생의 참된 모습이 묘사되어 있고, 영국적인 유머와 슬픔(pathos)이 깔려 있다.

한국에서는 김만중(金萬重)의 <서포만필(西浦漫筆)>, 편자와 연대 미상의 조선조 초의 <대동야승(大東野乘)>, 유형원(柳馨遠)의 <반계수록(磻溪隨錄)>, 그리고 고려조의 이인노(李仁老)의 <파한집(破閑集)>, 최자(崔滋)의 <보한집(補閑集)> 등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근대에 와서 최초의 수필은 유길준(兪吉濬)의 <서유견문(西遊見聞, 1895)>이며, 이어 최남선(崔南善)의 <백두산근참기白頭山覲參記, 1927)> <심춘순례(尋春巡禮, 1926)>, 이광수(李光洙)의 <금강산유기(金剛山遊記1924)> 등이 간행되었으나, 이 글은 모두 기행문으로서의 수필이다.

그 후, 김진섭(金晋燮)의 <인생예찬(1947)>, 이양하(李敭河)의 <이양하수필집( 1947)>, 계용묵(桂鎔黙)의 <상아탑(1955)>, 이희승(李熙昇)의 <벙어리 냉가슴(1956) 등이 있으며, 이 밖에 피천득(皮千得), 이병주(李丙疇) 등에 이르러 기행문 형태에서 벗어나 수필 문장다운 본격적이며, 깊이있는 인생 체험에서 우러나온 수필이 다양하게 발표되었다.

 

3. 주제의 설정

수필을 쓰고자 하는 작자가 아무리 좋은 글을 쓰려고 노력해도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안타까움을 호소하는 경우를 보게 되는데, 이러한 경우는 대개 몇 가지의 문제가 있기 마련이다. 왜 수필 문장이 산만할까? 어떻게 하면 보다 완벽한 작품으로 완성할 수 있을까?

가장 우선적으로 의심이 가는 부분이 주제가 설정되어 있는가, 그러지 못한 상태인가 하는 점이다. 주제는 작자가 말하고자 하는 중심 사상일 뿐 아니라 그 주제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 선택되어 동원된 소재(제재)를 유기적인 관련성으로 구성하는 통일원리가 되기 때문에 주제가 잡혀 있지 않은 게 아닌가 하고 의심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다음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글을 쓰고자 하는 작자의 의식이 너무 과잉된 상태가 아닌가 하는 점이다. 작자가 글을 쓰는 동안은 그의 의식 내부에 잠재되어 있던 기억의 잔상(殘像)들이 밖으로 나오려고 한다. 그런데 과잉된 의식의 소유자에게는 그 과잉된 의식들이 서로 먼저 나오려고 하기 때문에 그 기억의 부스러기들이 주제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충분한 취사 선택을 거치지 못한 상태에서 집필되기 때문에 불필요한 내용까지 포함되어 산만성(散漫性)을 면할 수 없게 된다. 이 외에도 문장의 길이가 너무 길어서 산만하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앞에 설명한 ‘주제의 설정’ 문제와 ‘과잉된 의식’문제에 비하면 대단한 게 아니다.

주제는 수필이 산만해지는 것을 방지한다. 그것은 주제가 수필 문장의 통일성과 긴밀성을 유지하는 구실을 하기 때문이다. 주제는 문장의 중심 사상일 뿐 아니라, 소재의 성질을 분별하여 그것을 선택함으로써 문장의 통일성을 유지하며, 선택된 소재(제재)를 다시 일정한 순위로 정하여 질서적으로 배열한다거나 조직함으로써 문장의 긴밀성을 유지하도록 해준다.

수필도 다른 문학 장르와 마찬가지로 주제가 설정되어야 하지만, 그렇다고 그게 다 노출되어서도 안 된다. 주제가 드러난 작품은 삼류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일리 있는 말이다.

주제가 밖으로 드러나는 경우보다는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다양한 해석을 가능케 한다.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남기기 때문이다. 좋은 수필은 시의 경우처럼 주제가 표면에 드러나지 않은 채 함축되고 암시된다.

청춘!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이는 말이다. 청춘! 너의 두 손을 가슴에 대고 물방아 같은 심장의 고동을 들어 보라. 청춘의 피는 끓는다. 끓는 피에 뛰노는 심장은 거선(巨船)의 기관 같이 힘있다. 이것이다. 인류의 역사를 꾸며 내려온 동력은 꼭 이것이다. 이성은 투명하되 얼음과 같으며, 지혜는 날카로우나 갑 속에 든 칼이다. 청춘의 끓는 피가 아니더면 인간이 얼마나 쓸쓸하랴! 얼음에 싸인 만물은 죽음이 있을 뿐이다.

그들에게 생명을 불어넣는 것은 따뜻한 봄바람이다. 풀밭에 속잎 나고 가지에 싹이 트고 꽃 피고 새 우는 봄날의 천지는 얼마나 기쁘며, 얼마나 아름다우냐? 이것을 얼음 속에서 불러내는 것이 따뜻한 봄바람이다. 인생에 따뜻한 봄바람을 불어 보내는 것은 청춘의 끓는 피다. 청춘의 피가 뜨거운 지라, 인간의 동산에는 사랑의 풀이 돋고, 이상(理想)의 꽃이 피고, 희망의 놀이 뜨고, 열락(悅樂)의 새가 운다.

사랑의 풀이 없으면 인간은 사막이다. 오아시스도 없는 사막이다. 보이는 끝까지 찾아다녀도, 목숨이 있는 때까지 방황하여도, 보이는 것은 거친 모래 뿐인 것이다. 이상의 꽃이 없으면 쓸쓸한 인간에 남는 것은 영락(榮樂)과 부패 뿐이다. 낙원을 장식하는 천자 만홍(千紫萬紅)이 어디 있으며, 인생을 풍부하게 하는 온갖 과실이 어디 있으랴?

이상! 우리의 청춘이 가장 많이 품고 있는 이상! 이것이야 말로 무한한 가치를 가진 것이다. 사람은 크고 작고 간에 이상이 있음으로써 용감하고 굳세게 살 수 있는 것이다.

석가(釋迦)는 무엇을 위하여 설산(雪山)에서 고행을 하였으며, 예수는 무엇을 위하여 광야에서 방황하였으며, 공자(孔子)는 무엇을 위하여 천하를 철환(轍還)하였는가? 밥을 위하여서, 옷을 위하여서, 미인을 구하기 위하여서 그리하였는가? 아니다. 그들은 커다란 이상, 곧 만천하의 대중을 품에 안고, 그들에게 밝은 길을 찾아 주며, 그들을 행복스럽고 평화스러운 곳으로 인도하겠다는 커다란 이상을 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길지 아니한 목숨을 사는가 싶이 살았으나, 그들의 그림자는 천고에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 민태원(閔泰瑗)의 <청춘예찬(靑春禮讚)> 중 전반부

 

작자는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의 청년, 특히 의식이 있는 이 나라 청년들에게 청춘의 가치를 역설하면서, 젊은이들이 감당해야 할 사회적 역할의 막중함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청춘을 강조하면서 “이성은 투명하되 얼음과 같으며, 지혜는 날카로우나 갑 속에 든 칼이다. 청춘의 끓는 피가 아니더면 인간이 얼마나 쓸쓸하랴. 얼음에 싸인 만물은 죽음이 있을 뿐이다.”라고 했다.

그는 중간 부분에서 “석가는 무엇을 위하여 설산에서 고행을 하였으며, 예수는 무엇을 위하여 광야에서 방황하였으며, 공자는 무엇을 위하여 천하를 철환하였는가?” 하고 의문을 제기하면서 “그들은 커다란 이상, 곧 만천하의 대중을 품에 안고, 그들에게 밝은 길을 찾아 주며, 그들을 행복스럽고 평화스러운 곳으로 인도하겠다는 커다란 이상을 품었기 때문이다.”라고 역설하고 있다.

여기에서는 작자가 하고자 하는 말을 아낌이 없이, 그리고 함축하거나 암시함이 없이 모두 노출시키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야말로 피를 토하는 듯한 열혈청년(熱血靑年)의 발성(發聲)이 아닐 수 없다. 다음으로는 이와 반대되는 글, 즉 주제를 표면에 드러내지 않음으로 인해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도록 하는 함축과 암시의 글을 소개하고자 한다.

작년 늦가을 이래로 새로운 기도터가 생겼다. 층암이 병풍처럼 둘러싸인 가느다란 폭포 밑에 작은 담(潭)을 형성한 곳에 평탄한 반석 하나가 담 속에 솟아나서 한 사람이 꿇어앉아서 기도하기에는 천성(天成)의 성전(聖殿)이다.

이 반석에서 혹은 가늘게 혹은 크게 기구(祈求)하며 또한 찬송하고 보면 전후 좌우로 엉금엉금 기어오는 것은 담 속에서 암색(岩色)에 적응하여 보호색을 이룬 개구리들이다. 산중(山中)에 대변사나 생겼다는 표정으로 신래(新來)의 객(客)에 접근하는 친구 와군(蛙君)들, 때로는 5~6마리, 때로는 7~8마리. 늦은 가을도 지나서 담상(潭上)에 엷은 얼음이 붙기 시작함에 따라서 와군들의 기동이 일부일(日復日) 완만하여지다가, 나중에 두꺼운 얼음이 투명을 가리운 후로는 기도와 찬송의 음파가 저들의 이막(耳膜)에 닿는지 안 닿는지 알 길이 없었다. 이렇게 격조(隔阻)하기 무릇 수개월이여!

봄비 쏟아지던 날 새벽, 이 바위들의 빙괴(氷塊)도 드디어 풀리는 날이 왔다. 오래간만에 친구 와군들의 안부를 살피고자 담 속을 구부려 찾았더니 오호라, 개구리의 시체 두세 마리 담 꼬리에 부유(浮遊)하고 있지 않은가!

짐작컨대 지난 겨울의 비참한 혹한(酷寒)에 작은 담수(潭水)의 밑바닥까지 얼어서 이 참사가 생긴 모양이다. 예년에는 얼지 않았던 데까지 얼어붙은 까닭인 듯. 동사(凍死)한 개구리 시체를 모아 매장하여 주고 보니 담저(潭底)에 아직 두어 마리 기어다닌다. 아, 전멸(全滅)은 면했나 보다!

― 김교신(金敎臣)의 <조와(弔蛙)>

 

제목부터가 특이하다. 개구리의 죽음을 조상(弔喪)한다는 뜻이니 특이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글은 일제의 질곡 속에서 신음하던 때에 우리 겨레가 겪게 된 모진 시련과 고통을 표현한 것으로써 1942년의 ‘성서조선사건’으로 불리는 필화사건의 동기가 된 작품이라는 사실을 상기하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지난 겨울의 비상한 혹한(酷寒)에 개구리가 얼어 죽었다거나 담저(潭底)에 두어마리 기어다니는 것을 보고 아직 전멸은 면했나 보다고 부르짖는 것은 그 당시의 처절한 사회 현실을 풍유적으로 빗대어 풍자한 글임을 알 수 있다.

일제의 눈을 피해서 풍유적으로 표현한 김교신의 수필 <조와>와는 달리, 자유스럽게 쓰되 작품의 은은한 여운을 위해서 주제를 표면에 드러내지 않으면서 넌즈시 암시하고 있는 피천득의 <은전 한 닢>을 소개하고자 한다.

예전 상해에서 본 일이다. 늙은 거지 하나가 전장(錢將:돈 바꾸는 집)에 가서 떨리는 손으로 일 원짜리 은전 한 닢을 내놓으면서, “황송하지만 이 돈이 못 쓰는 것이나 아닌지 좀 보아 주십시오.”하고 그는 마치 선고를 기다리는 죄인과 같이 전장 사람의 입을 쳐다본다.

전장 주인은 거지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다가, 돈을 두들겨 보고, “좋소.”하고 내어준다. 그는 ‘좋소’라는 말에 기쁜 얼굴로 돈을 받아서 가슴 깊이 집어 넣고 절을 몇 번이나 하며 간다. 그는 뒤를 자꾸 돌아 보며 얼마를 가더니 또 다른 전장을 찾아 들어갔다. 품 속에 손을 넣고 한참 꾸물거리다가 그 은전을 내어놓으며, “이것이 정말 은으로 만든 돈이오니까?”하고 묻는다.

전장 주인도 호기심 있는 눈으로 바라다보더니, “이 돈을 어디서 훔쳤어?” 거지는 떨리는 목소리로, “아닙니다, 아니에요.” “그러면 길바닥에서 주웠다는 말아냐?” “누가 그렇게 큰 돈을 빠뜨립니까? 떨어지면 소리는 안 나나요? 어서 도로 주십시오.”

거지는 손을 내밀었다. 전장 사람은 웃으면서, “좋소.”하고 던져 주었다.

그는 얼른 집어서 가슴에 품고 황망히 달아난다. 뒤를 흘끔 흘끔 돌아다보며 얼마를 허덕이며 달아나더니 별안간 우뚝 선다. 서서 그 은전이 빠지지나 않았나 만져 보는 것이다. 거칠은 손가락이 누더기 위로 그 돈을 쥘 때 그는 다시 웃는다. 그리고 또 얼마를 걸어가다가 어떤 골목 으슥한 속으로 찾아 들어가더니 벽돌 담 밑에 쪼그리고 앉아서 돈을 손바닥에 놓고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가 어떻게 열중해 있었는지 내가 가까이 간 줄도 모르는 모양이었다.

“누가 그렇게 많이 도와줍니까?” 하고 나는 물었다. 그리고 그는 내 말소리에 움찔하면서 손을 가슴에 숨겼다. 그리고는 떨리는 다리로 일어서서 달아날려고 했다.

“염려 마십시오, 뺏어 가지 않소.” 하고 나는 그를 안심시키려 하였다. 한참 머뭇거리다가 그는 나를 쳐다보고 이야기를 하였다.

“이것은 훔친 것이 아닙니다. 누가 저 같은 놈에게 일 원짜리를 줍니까? 각전(角錢) 한 닢을 받아 본 적이 없습니다. 동전 한 닢 주시는 분도 백에 한 분이 쉽지 않습니다. 나는 한 푼 한 푼 얻은 돈에서 몇 닢씩 모았습니다. 이렇게 모은 돈 아흔 여덟 닢을 각전 닢과 바꾸었습니다. 이러기를 여섯번을 하여 겨우 이 귀한 ‘다양(多樣)’ 한 푼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 돈을 얻느라고 여섯 달이 더 걸렸습니다.”

그의 뺨에는 눈물이 흘렀다. 나는, “왜 그렇게까지 애를 써서 그 돈을 만들었단 말이오? 그 돈으로 무얼 하려오?” 하고 물었다. 그는 다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이 돈 한 개가 갖고 싶었습니다.”

― 피천득(皮千得)의 <은전 한 닢>

은전 한 개가 갖고 싶어서 여섯 달 동안을 천신만고 끝에 이뤄낸 늙은 거지의 모습을 연민의 정으로 회상한 작품이다. 거지와의 대화가 변전을 가져옴으로써 극적 구성을 이뤄내어 극적인 서사 형태를 이룬다. 은전 한 닢을 마치 무슨 보물이나 되는 듯이 애지중지하는 그 극도의 빈곤에서 오는 비애의 형상화는 무어라 말할 수 없는 여운으로 자리한다.

이 글의 함축된 주제는 표면에 드러나 있지 않고 그 이면에 있다. 자연주의나 사실주의 소설에서처럼, 이 수필에서의 작자는 이야기만 진행시킬 뿐 그 창작 의도를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지 않다. 큰 돈이건 작은 돈이건 돈에 관한 인간의 집착이 대단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는지는 모르지만, 그 의도가 작품 표면에 드러나지 않음으로써 독자에 따라서 여러 갈래의 해석이 분분할 수 있도록 암시되어 있다.

 

4. 구성의 요소

소설의 경우, 구성의 삼요소로서 인물과 사건과 배경을 필요로 하지만, 수필의 경우는 소설의 경우처럼 그렇게 필요불가결의 요소가 되지는 않는다. 그것은 수필이 소설이나 희곡 같은 극적 구성보다는 시․공간적(時空間的), 또는 논리적 질서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소용되는 대로 언어를 질서화하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a. 시간적 질서

시간적 질서에 따르는 구성에는 시간의 흐름에 그대로 따르는 구성과 시간의 흐름에 역행하는 구성, 그리고 현재에서 과거를 회상했다가 다시 제 자리로 돌아오는 구성으로 가름할 수 있다. 수필의 경우는 시간의 흐름에 따르는 구성을 대체적으로 많이 사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굴문(窟門)을 나서니 밖에는 선경(仙境)이 또한 나를 기다린다. 훤하게 터진 눈 아래 어여쁜 파란 산들이 띄엄띄엄 둘레둘레 머리를 조아리고 그 사이사이로 흰 물줄기가 굽이굽이 골안개에 싸이는데, 하늘 끝 한 자락이 꿈결 같은 푸른 빛을 드러낸 어름이 동해 바다라 한다. 오늘같이 흐리지 않은 날이면 동해 바다의 푸른 물결이 공중에 달린 듯이 떠 보이고, 그 위를 지나가는 큰 돛, 작은 돛까지 나비의 날개처럼 곰실곰실 움직인다 한다. 더구나 이 모든 것을 배경으로 아침 햇발이 둥실둥실 동해를 떠 나오는 광경은 정말 선경(仙境) 중에도 선경이라 하나, 화식(火食)하는 나 같은 속인엔 그런 선연(仙緣)이 있을 턱이 없다.

― 현진건(玄鎭健)의 <불국사 기행(佛國寺紀行)> 중 끝부분

시간의 흐름에 그대로 따른 구성의 예로서 들게 된 현진건의 <불국사 기행>은 그 좋은 예가 될 것이다. 기행문도 넓은 의미의 개념으로서는 수필의 범주에 포함되므로 소위 기행수필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여기에서도 역시 움직이는 시간의 진행에 따라 공간이 펼쳐지고 그 배경 또한 이동한다. 작자는 불국사에서 토함산 석굴암에 이르는 여정을 시간적 순서에 따라 이동하면서 관찰하고 음미한다. 그 유적마다 스며있는 역사적 문화적 배경이나 사연, 전설 등을 재음미하기도 한다. 특히 석굴암 내부에 아로새겨진 석가여래의 석상이라든지, 동해가 굽어보이는 선경(仙境)의 표현은 치밀하면서도 운치가 있다.

이러한 기행문을 문학 장르에 있어서 수필 작품으로 동일하게 취급해도 되는지의 여부는 앞으로 논란의 여지가 남는 부분이다.

정진권(鄭震權)이 <한국현대수필문학론(韓國現代隨筆文學論)>에서 “시간의 흐름에 역행하는 구성은, 이론상 가능하나 실제로 보기는 어렵다. 이런 구성이 보기 어려운 것은, 시간의 흐름에 역행하는 사고(思考)의 진행(작가의)이 있기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p.191)라고 피력한 바와 같이, 수필에 있어서의 시간의 흐름에 역행하는 구성의 실례는 찾기 어렵다.

영화나 텔레비젼에서 장면의 순간적인 전환을 반복하는 수법을 가리켜 플래시 백(Flash Back)이라 하는데, 이는 소설이나 수필의 경우, 현재에서 과거를 다녀오는 구성 방식이다. 영상 매체의 경우, 순간적인 짧은 화면과 화면을 하나의 뜻을 가지게 하려는 것으로서, 격렬한 심리의 움직임을 표현하려는 경우에 흔히 쓰이는 데, 수필도 때로는 이러한 기법을 차용할 수 있다.

소설이나 영화, 또는 텔레비젼의 경우, 선우휘(鮮于輝)의 <불꽃>은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현재에서 과거를 다녀오는 구성 방식의 좋은 예가 될 것이다. 독자들의 이해를 위하여 예를 들어 살펴보고자 한다.

소설 <불꽃>은 2부로 나누어져 있는데, 그 제1부의 첫머리와 제2부의 첫머리가 같은 장소로 나온다. 즉, 부엉산 산마루에 위치한 동굴 안에 앉아 있는 고현이 지난 날을 회상하는 게 제1부이고, 고현을 잡으려는 지방 빨갱이 연호에 끌려 산을 오르던 고노인이 “현아! 너는 살아야 한다!”고 외치다가 총에 맞아 죽게 되는 게 제2부이다. 이 소설은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회귀성을 띄고 있다. 즉 고현이 동굴에 와 있는 현재의 현실에서 과거의 회상으로 펼쳐졌다가 다시금 동굴 주변에서 전개되는 현재의 현실로 정리되고 있다.

부엉산 산마루의 동굴로 기어오른 고현이 소총의 손질을 끝내고 지난 과거를 회상하기 시작하는데, 고현이 6.25때 숨어든 동굴 안에서 바로 고현의 부친이 일제때 젊은 나이로 생을 끝마쳤던 것이다. 일제 때 아버지가 죽은 동굴에서 이번에는 자식이 죽을 운명에 처한다고 하는 회귀적 구성 방식을 차용하고 있음을 본다.

<1>…나이가 들수록 격(格)이 높아가는 것이 나무다.

<2>…한 번은 연탄 배달을 하고 있는 제자의 주례를 맡아 나도 모르는 사이에 흥분된 어조로 주례사를 하고 있자니, 신랑도 너무 감격했던지, 그의 눈에서는 끝내 눈물이 흐르고 있는 것을 보고서야, 아뿔사! 말머리를 돌리기에 진땀을 뺀 일이 있다. 그 뒤 그는 천만 뜻밖에도 금으로 만든 넥타이 핀을 놓고 갔다. 알고 보니 일금 삼천 삼백원이라는 것이다.

바로 연탄 공장을 물었더니 개당 배달료가 1원이라는데 나는 또 한번 놀랐다. 은사 주례를 위해서 그는 3천 3백 개의 연탄 배달 삯을 고스란히 던져 넥타이핀을 샀다는 계산이 된다. 그 넥타이핀을 받고 난 뒤 한참 동안 넋을 놓고 앉았다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눈시울이 뜨거워 오는 것을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 넥타이핀을 깊이깊이 간직해 두고 여간 경사스러운 자리가 아니면 꽂지 않는다.

<3>…차라리 꽃이 피고 지는 나무와 같이 살다 보면, 이 또한 나무에서 배운 미덕(美德)일 것이다. 어찌 구지레한 속정(俗情)에 이끌려 청정(淸淨)한 마음에 작은 파문(波紋)인들 일으킬 수 있으랴.

― 신석정(辛夕汀)의 <향기 있는 사람> 중 일부

향기 있는 사람’을 속정에 이끌릴 줄 모르는 나무라든가 나이가 들수록 격(格)이 높아 가는 나무에 견주어서 토로한 글이다. 고령의 거목을 바라보게 되면 그 경외감에서 자신의 하잘 것 없는 인생을 송두리째 맡기고 살아도 뉘우칠 게 없을 것 같다는 구절도 여기에 궤를 같이 하는 말이다. 1, 2, 3의 순서로 나누어 피력한 이 글 중, ①과 ③은 나무와 관련된 이야기를 썼다면, ②는 과거에 있었던 연탄 배달하는 제자의 주례와 그 후일담(後日談)으로 채우고 있다.

 

b. 공간적 질서

시에 있어서 이미지를 중요시하듯이, 수필에 있어서도 이미지를 중요시하지 않을 수 없다. 보다 실감을 자아낼 수 있는 언어를 선택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어떠한 대상이거나 표현되지 않고 설명되는 경우에는 관념적인 언어가 나열되기 때문에 개념만 전해오므로 실감이 나지 않는다.

보다 나은 실감을 주기 위해서는 표현되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시각적 색채의식이나 형태의식 등으로 이미지의 부각을 위한 공간의식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은 상하, 전후, 좌우, 천지, 동서, 남북, 양음, 원근 등으로 인식되는 공간적 질서를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나 인지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처음에 비를 피하여 볼 생의도 하였지만 인가 하나 없는 한 데이고, 비는 호세있게 내리어 속수무책으로 살이 부을 지경으로 흠뻑 맞았다. 우리는 비록 쪼루루 비두루마기를 하였을 망정 그때의 그 장경(壯景) - 산중 취우(翠雨;소나기)의 그 장경은 필설란기(筆舌難記;말과 글로 표현키 어려움)이었다.

우리 4인은 부기이동(不期而同;함께 하기로 약속하지 않음)으로 만세를 고창하였다. 그 끝에 공초선지식(空超善知識), 참으로 공초식 발언을 하였다. 참으로 기상천외의 발언이었던 바, 다름아니라 우리는 모조리 옷을 찢어버리자는 것이었다. 옷이란 워낙이 대자연과 인간 사이의 이간물인 바 몸에 걸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럴듯도 한 말이었다.

공초는 주저주저하는 나머지 3인에게 시범차로인지 먼저 옷을 찢어버리었다. 남은 사람들도 천질(天質)이 그다지 비겁은 아니하여 이에 곧 호응하였다. 대취한 4나한(裸漢)들은 광가난무(狂歌亂舞)하였다. 서양에 박커스식 광란(Bacchanalian orgy)이란 말이 있으나 아무리 광조(미친 듯이 떠들고 날뜀)한 주연(酒宴;술잔치)이라 하여도 이에 비하여서는 부급(不及)이 일소일 것이다.

우리는 어느덧 언덕 아래 소나무 그루에 소 몇 필이 매어 있음을 발견하였다. 이번에는 누구의 발언이거나 제의이었는지 기억이 미상하나 우리는 소를 잡아 타자는 데 일치하였었다. 옛날에 영척이가 소를 탔다고 하지만 그까짓 영척이란 놈이 다 무엇이랴. 그따위 것도 소를 탔는데 우린들 못할 바 어디 있느냐는 것이 곧 논리이자 동시에 성세이었다.

여하간 우리는 몸에 일사불착(一絲不着;옷을 입지 않음)한 상태로 그 소들을 잡아 타고 유유히 비탈길을 내리고 똘물 - 소낙비로 해서 갑자기 생기었던 - 을 건너고 공자 모신 성균관을 지나서 큰거리까지 진출하였다가, 큰 봉변 끝에 장도 - 시중까지 오려는 - 는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 변영로(卞榮魯)의 <백주(白晝)에 소를 타고> 중 후반부

 

이 수필에서는 네 사람의 문사(文士)들(변영로, 오상순, 염상섭, 이관구)이 동아일보사(편집국장 송진우)에서 차용한 돈 50원으로 야외에 나가 술을 마시며 즐기다가 갑자기 소나기를 만나 그 비를 피하여 돌아오는 과정에서 일어난 기상천외의 해괴한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 네 사람 중에서 오상순(공초) 시인이 옷이란 워낙이 대자연과 인간 사이의 이간물인 바 몸에 걸칠 필요가 없으니 모조리 찢어버리자고 제안하였다.

그리하여 알몸이 된 네 문인들이 소를 타고 가는 그 공간의식은 읽는 이로 하여금 더욱 실감을 자아내게 한다. 공간의식에도 원근(遠近)의 기법이 있다. 공간적 질서에는 가까운 곳으로부터 먼 곳으로 전개하거나, 먼 곳으로부터 가까운 곳으로 펼쳐나가는 기법을 말한다.

가을이 깊어지면 나는 거의 매일 같이 낙엽을 긁어 모으지 않으면 안 된다. 날마다 하는 일이언만, 낙엽은 어느덧 날으고 떨어져서 또다시 쌓이는 것이다. 낙엽이란 참으로 이 세상의 사람의 수효보다도 많은가 보다. 30여 평에 차지 못하는 뜰이언만, 날마다의 시중이 조련치 않다.(생략)

벚나무 아래 긁어 모은 낙엽의 산더미를 모으고 불을 붙이면 속의 것부터 푸슥푸슥 타기 시작해서 가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바람이나 없는 날이면 그 연기가 얕게 드리워서 어느덧 뜰안에 가득히 담겨진다. 낙엽 타는 냄새 같이 좋은 것이 있을까. 갓 볶아낸 커피의 냄새가 난다. 잘 익은 개암 냄새가 난다. 갈퀴를 손에 들고는 어느 때까지든지 연기 속에 우뚝 서서 타서 흩어지는 낙엽의 산더미를 바라보며 향기로운 냄새를 맡고 있노라면 별안간 맹렬한 생활의 의욕을 느끼게 된다. 연기는 몸에 배서 어느 결엔지 옷자락도 손등에서도 냄새가 나게 된다. 나는 그 냄새를 한없이 사랑하면서 즐거운 생활감에 잠겨서는 새삼스럽게 생활의 제목을 진귀한 것으로 머리 속에 떠올린다. 음영(陰影)과 윤택과 색채가 빈곤해지고 초록이 전혀 그 자취를 감추어 버린 꿈을 잃은 헌출한 뜰 복판에 서서 꿈의 껍질인 낙엽을 태우면서 오로지 생활의 상념에 잠기는 것이다.

― 이효석(李孝石)의 <낙엽 태우면서> 중 일부

 

제목부터 감상적이지만, 감상으로만 일관하지는 않고 있다. 가을이 깊어지면 거의 매일 뜰의 낙엽을 긁어 모아 태우면서 그 낙엽 타는 냄새를 즐기고, 생활의 상념에 잠기는 작자의 내면의식이 여실히 나타나 있다. 이 수필은 우리 문학이 감상주의 경향을 보였던 1920년대 풍조와는 달리, 창조적 생산적인 방향으로 가을을 이해하려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아름다운 이 수필은 감상적이면서도 감상에만 그치지 않고 생활의 의욕으로 연결하는 점이 특이하다.

이 수필은 처음에 “가을이 깊어지면 나는 거의 매일 뜰의 낙엽을 긁어 모으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가까운 현재의 근처(주변) 이야기로 시작하여 ‘가을 절기’라든지, ‘백화점 아래층’으로, 시간과 공간의 확대를 보이고 있다. 즉 근경(近景)에서 원경(遠景)으로 공간을 확대해 가고 있다는 얘기다. 이러한 방식의 구성은 무리없이 무난하기 때문에 대부분 이러한 방식을 즐겨 사용한다.

한국의 자연은 사막도 아니고, 험준한 산만도 아니고, 끝없이 넓은 평원만도 아니다. 어디로 가나 그만그만한 높고 낮은 산들, 혹은 구릉 같은 야산들이 구불구불 뻗거나 둘리어 있거나, 여기저기 흩어져 누워있고, 그 사이사이에 크고 작은 골짝과 들을 만들어 놓고 있다. 그런 골짝들 중의 양지바른 곳에는 으례 조상 대대의 보금자리인 마을들이 들어앉아 있다.(생략)

마을 안에는 가가호호로 통하는 뒤안길이 있고, 그 뒤안길들은 결국 몇 백년 묵은 느티나무나 느릅나무가 있는 동구를 지나 큰 길로 연결된다. 느티나무, 느릅나무 등의 고목에는 서낭당이 있는 곳도 있고, 학이나 두루미가 하얀 날개를 접기도 하고, 한여름에는 매미의 노래로 그늘을 편 녹음 전체가 음악의 세계로 변하기도 한다.

마을은 골짝을 형성한 좌우의 산등성이, 흔히 일컫는 좌청룡 우백호가 뻗어내려온 그 산등성이에 가리워지기도 하고, 열리기도 한다. 소나무, 참나무, 오리목, 아카시아 등으로 우거진 그 산등성이 기슭에는 들에서 마을로 들어가는 농로(農路)가 구불구불 나 있다. 그 농로는 달구지나 경운기 한 대가 겨우 다닐 만큼의 길이다. 고된 일을 마치고 쟁기를 메고 소를 몰고 가는 이 땅의 가장 소박하고 너그럽고 선량한 백성을 볼 수도 있는 길이다.

한국의 길은 산맥의 능선이나 산등성이를 타고 뻗어 있지 않다. 능선이나 산등성이를 타고 뻗어 있는 저 호주 대륙의 길과는 대조가 된다. 그저 조금씩 험한 혹은 거의 평면이나 다름없는 오르막과 내리막의 기복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가령 대관령이나 진부령, 혹은 문경 새재 같은 길은 꽤 높은 고갯길이다. 옛사람들은 이를 두고 구절양장(九折羊腸)의 길이라고 표현했다. 대체로 이런 높은 고갯길은 해변과 내륙을 가르는 경계가 되거나 도경계를 이루고, 이보다 조금 낮은 고갯길은 군경계를 이룬다. 고갯길도 직선 고갯길은 거의 없고, 대개 산밑에서 서서히 산의 고도를 따라 굽이굽이 감돌면서 정상을 오르도록 되어 있으므로, 이런 고갯길은 굴곡도 꽤 심하고 기복도 좀 심한 편이다. 그만큼 인생의 드라마를 잘 암시한다.

오밀조밀하고 아기자기한 한국의 길이 갖는 굴곡과 기복은 이 길을 평생 동안, 그리고 조상 대대로 다니는 한국인의 심성을 형성한다. 막아서는 것은 피하여 돌아나가고, 너그럽게 감싸면서 포옹한다. 대립과 충돌을 피하고 평화와 사랑을 갈구하는 한국인의 심성을 그대로 드러낸다. 그러면서도 끊어지지 않고 끝없이 이어지는 한국인의 여유있는 감정, 은근과 끈기의 리듬, 그리고 흔히 일컫는 풍류의 미학을 암시하는 것이다.

한국의 길은 한국인의 영혼의 길이다.

― 문덕수(文德守)의 <한국의 길> 중 서두와 후반부

 

이 수필은 그 앞의 인용문과는 달리, 마치 양파를 까들어가듯, 넓은 범주로서의 길에 대한 보편성을 이야기한 다음 특수성을 찾아서 천착해 들어가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즉 한국의 길에 대한 이모저모를 펼쳐 보여준 다음, 그 길과 닮아진 한국인의 심성을 유추하여 대비시키고 있는 것이다.

가령 마을 안에 가가호호 통하는 뒤안길은 큰 길로 연결되고, 산등성이에서는 가리워지기도 하고 열리기도 하며, 마을로 들어가는 농로에 이르러 오밀조밀하고 아기자기한 한국의 길이 갖는 굴곡과 기복은 한국인의 심성을 형성한다고 하는 그 ‘길’과 ‘심성’ 사이의 상사성(相似性)을 피력하고 있다.

아무튼 이 수필이 “①한국의 자연은 사막도 아니고, 험준한 산만도 아니며, 끝없이 넓은 평원만도 아니다.”로 시작하여 “②한국의 길은 한국인의 영혼의 길이다.”로 마친 것만 보아도 이 글이 보편성에서 특수성으로, 넓은 범위에서 좁은 범위로, 원경(遠景)에서 근경(近景)으로, 공간적 질서에 따르는 구성법을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은 서로 혼용되는 경우가 있으므로 창작 과정에 있어서 그러한 개념을 파악하는 데에 그칠 뿐 지나치게 관심을 둔다거나 신경 쓸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비평에서 따질 일이지 창작에서 지나치게 관심을 두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c. 논리적 질서

수필이란 일상(日常)의 신변잡사(身邊雜事)를 신변잡기(身邊雜記)에 머무르지 않고 보다 높은 문학적(예술적) 차원으로 승화하려는 성격을 띠며, 그 산만한 일상의 언어들을 질서화하는 장르라고 말할 수 있다. 문학은 논리를 초월하여 자유를 희구하지만, 그 질서화를 위해서는 논리를 외면할 수도 없다. 수필은 일정한 형식이 없는 ‘무형식의 형식(無形式의 形式)’의 문학이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형식이 없는 문학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논리적 질서를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은 ‘원인과 결과’라는 인과적 관련하에서 존재한다. 모든 예술, 모든 문학, 모든 수필도 역시 인과적 관계 없이는 존재할 수가 없다. 따라서 구성의 요소의 하나인 논리적 질서에 있어서 ‘원인에 의한 결과’라든지, ‘결과를 가져온 원인’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우리 아버지처럼 자수성가한 사람은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 아버지가 나에게 학교 공부도 시켜 주었고 재산으로 논도 몇 마지기 물려 주었기 때문이다. 간쟁이 들머리에 있는 ‘장구배미’와 ‘태고배미’ ‘족제비다랭이’가 바로 그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유산을 원한다. 사실상 나도 그런 축의 하나다. 그래서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유산을 많이 남겨주려고 백방으로 노력한다.

나는 우리 아버지에게서 이 ‘장구배미’를 유산으로 받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유언으로 남긴 논이다. 그래서 나는 이 유산을 꼭 간직하여 아들에게 넘겨줄 작정이다. 아버지는 부자가 아니었고 나 자신도 백만장자는 아니다. 그러나 우리 아버지가 하찮은 장구배미를 물려준 것은 백만장자가 아들에게 백만금을 물려준 거나 다름없이 나에게는 값지고 소중한 것이다. ①

 

‘장구배미’엔 슬픈 이야기도 숨어 있다. 6․25 때다. 그러니까 내 나이 열 네살 때의 겨울이었다. 지리산을 가까이 하고 있는 우리 마을엔 간혹 반란군이 들어오곤 했었다. 빨치산이라고도 하였고, 공비라고도 하였다. 이들은 마을에 들어와 식량을 털고 소와 염소 등을 몰고 뒷산으로 사라지곤 하였다. 어느 날 밤에 인민군이 들어 왔었다. 그들은 지리산으로 옮기는 도중에 우리 마을을 털러 왔던 것이다. 그러나 이때 마침 잠복해 있던 전투경찰들에게 들켜 한바탕 콩튀기는 듯한 전투가 벌어졌다. 그때 쫓기던 인민군은 하필 내가 유산으로 받은 이 ‘장구배미’에서 죽었다. 그것도 두 사람이나 말이다.

그때 나는 호기심에 마을 애들과 구경을 갔었다. 많은 피가 논바닥으로 흘러나와 물꼬를 이루어 장구배미 옆으로 흐르는 실도랑으로 넘쳐 내렸다. 도랑은 온통 피로 물들어 얼음이 얼었는데, 그 길이가 백여미터나 되었다. 한 사람은 바로 ‘장구배미’물꼬 있는 데 있었고, 한 사람은 그 밑 언덕배기에 걸쳐있었다. 글자 그대로 피비린내나는 참사였다.

물꼬 옆에 있는 인민군은 키가 크고 얼굴이 길쭉하였는데, 털모자를 썼으며 이를 악물고 반쯤 옆으로 누워 죽어 있었다. 륙색을 메고 있었는데, 그 속에는 지난 밤 마을에서 훔쳐넣은 까만 남자 고무신과 총알에 맞아 쭈그러진 하모니카 하나가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하모니카가 마음에 걸린다. ②

내가 지금처럼 지각이 있었더라면 호주머니를 뒤져 이름과 주소를 알아 두었다가 통일이라도 되면 가족에게 그의 죽음과 무덤을 알려 주련만 그때는 무서워서 벌벌 떨기만 하였었다. 지금은 ‘장구배미’에 뜸부기가 울고 물꼬 넘치는 소리가 조용히 들릴 뿐, 그때 뿌려졌던 피흐름의 악몽은 흔적없이 사라지고 조용하기만 하다. ③

― 김종태(金鍾太)의 <장구배미> 중 일부

 

이 수필의 앞부분①은 ‘장구배미’를 아버지에게서 유산으로 물려받았다는 이야기이고, 이 이야기는 원인이 되어 중간 본문②으로서 ‘장구배미’에 두 명의 인민군이 전사한 결과를 낳게 되며, 결말③에 가서는 원인②에 대한 결과로서 죽은 인민군의 주소 성명을 알아두지 않은 것을 안타까워하면서 뜸부기 우는 농촌의 풍경 묘사로 끝을 맺고 있다. 즉 ‘원인에 의한 결과’라는 방식으로 전개되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다.

골동집 출입을 경원한 내가 근간에는 학교에 다니는 길 옆에 꽤 진실성 있는 상인 하나가 가게를 차리고 있기로 가다오다 심심하면 들러서 한참씩 한담(閑談)을 하고 오는 버릇이 생겼다. 하루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또 이 가게에 들렀더니 주인이 누릇한 두꺼비 한 놈을 내놓으면서 “꽤 재미나게 됐지요.” 한다. 황갈색으로 검누른 유약을 내리씌운 두꺼비 연적(硯滴)인데 연적으로는 희한한 놈이다.(생략)

나는 너를 만든 너의 주인이 조선 사람이란 것을 잘 안다. 네 눈과, 네 입과, 네 코와, 네 발과, 네 몸과, 이러한 모든 것이 그것을 증명한다. 너를 만든 솜씨를 보아 너의 주인은 필시 너와 같이 어리석고 못나고 속기 잘하는 호인(好人)일 것이리라. 그리고 너의 주인도 너처럼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는 성격을 가진 사람일 것이리라.

내가 너를 왜 사랑하는 줄 아느냐. 그 못생긴 눈, 그 못생긴 코, 그리고 그 못생긴 입이며 다리며 몸뚱아리들을 보고 무슨 이유로 너를 사랑하는지를 아느냐. 거기에는 오직 하나의 커다란 이유가 있다. 나는 고독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의 고독함은 너 같은 성격이 아니고서는 위로해 줄 수 없기 때문이다.

두꺼비는 밤마다 내 문갑 위에서 혼자 잔다.

― 김용준(金瑢俊)의 <두꺼비 연적을 산 이야기> 중 일부

 

우연한 기회에 두꺼비 연적을 산 작자는 아내에게서 쌀 한 되 살 돈이 없는 판에 두꺼비가 먹여 살리느냐는, 바가지 긁는 소리를 듣는다. 못생겼으면서도 웃을듯 울듯한 표정에 이끌려 사게 되었다고 밝히는 작자의 속 뜻은 ‘고독’이다. 두꺼비의 표정(일제 치하 조선 민족의)이 아니고는 위로받을 수 없는 작자의 절실한 고독은 어리석고 못나고 속기 잘하는 호인형의 조선 사람의 고독과 일맥 상통한다는 암유가 풍유적으로 깔려 있는 글이다.

여기에서는 ‘결과’를 먼저 서술한 다음 그 ‘원인’을 밝히는 구성 방식을 택하고 있다. 즉 결과의 상태에서 그 원인을 회상한 다음, 다시 결과의 상태로 원상회복하는 자초지종(自初至終)이 나타나 있는 글이다.

논리학에서, 일반적인 원리로부터 논리의 절차를 밟아서 낱낱의 사실이나 명제(命題)를 추론(推論)하는 연역적(演繹的) 구성과 낱낱의 구체적 사실로부터 일반적인 명제나 법칙을 이끌어내는 귀납적(歸納的) 구성이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연역적 구성이란 주제문이 첫머리에 있게 되는 두괄식(頭括式) 문장을 말하고, 귀납적 구성이란 주제문이 글의 맨 끝에나 또는 거의 끝부분에 있게 되는 미괄식(尾括式) 문장을 말한다.

이 두 종류 작품의 성격을 파악하기 위해서 여기에 적합한 수필을 살펴보고자 한다.

나는 그믐달을 몹시 사랑한다. 그믐달은 요염하여 감히 손을 댈 수도 없고, 말을 붙일 수도 없이 깜찍하게 예쁜 계집 같은 달인 동시에, 가슴이 저리고 쓰리도록 가련한 달이다. 서산 위에 잠깐 나타났다 숨어버리는 초생달은 세상을 후려삼키려는 독부(毒婦)가 아니면, 철모르는 처녀 같은 달이지마는, 그믐달은 세상의 갖은 풍상을 다 겪고, 나중에는 그 무슨 원한을 품고서 애처롭게 쓰러지는 원부와 같이 애절하고 애절한 맛이 있다.

보름에 둥근 달은 모든 영화와 끝없는 숭배를 받는 여왕(女王)과 같은 달이지마는, 그믐달은 애인을 잃고 쫓겨남을 당한 공주와 같은 달이다. 초생달이나 보름달은 보는 이가 많지마는, 그믐달은 보는 이가 적어 그만큼 외로운 달이다. 객창 한등에 정든 님 그리워 잠못 들어하는 분이나, 못 견디게 쓰린 가슴을 움켜 잡은 무슨 한(恨) 있는 사람이 아니면, 그 달을 보아주는 이가 별로 없을 것이다.

― 나도향(羅稻香)의 <그믐달> 중 앞부분

 

어린이가 잠을 잔다. 내 무릎 앞에 편안히 누워서 낮잠을 자고 있다. 볕 좋은 첫여름 조용한 오후다. 고요하다는 고요한 것을 모두 모아서 그 중 고요한 것만을 골라 가진 것이 어린이의 자는 얼굴이다. 평화라는 평화 중에 그 중 훌륭한 평화만을 골라 가진 것이 어린이의 자는 얼굴이다. 아니 그래도 나는 이 고요한, 자는 얼굴을 잘 말하지 못하였다. 이 세상의 고요하다는 고요한 것은 모두 이 얼굴에서 우러나는 것 같고, 이 세상의 평화라는 평화는 모두 이 얼굴에서 우러나는 듯싶게 어린이의 잠자는 얼굴은 고요하고 평화스럽다.

고운 나비의 날개, 비단 같은 꽃잎, 아니 아니, 이 세상에 곱고 보드랍다는 아무 것으로도 형용할 수가 없어 보드랍고 고운, 이 자는 얼굴을 들여다보라. 그 서늘한 두 눈을 가볍게 감고 이렇게 귀를 기울여야 들릴 만치 가늘게 코를 골면서 편안히 잠자는 이 좋은 얼굴을 들여다보라. 우리가 종래에 생각해 오던 하느님의 얼굴을 여기서 발견하게 된다.

어느 구석에 먼지만큼이나 더러운 티가 있느냐? 어느 곳에 우리가 싫어할 한 가지 반 가지나 있느냐? 죄 많은 세상에 나서 죄를 모르고, 부처보다도 예수보다도 하늘 뜻 그대로의 산 하느님이 아니고 무엇이랴!

― 방정환(方定煥)의 <어린이 찬미(讚美)> 중 앞부분

나도향의 <그믐달>과 방정환의 <어린이의 찬미>를 살펴보았다. 이 두 편의 수필은 모두 주제문이 앞쪽 첫머리에 있는 연역형 두괄식이다.

나도향의 유고작 <그믐달>은 그믐달을 몹시 사랑하는 작자의 내면의식이 진솔하면서도 치열하게 나타나 있는 작품이다. 서두 부분 “그믐달은 요염하여 감히 손을 댈 수도 없고, 말을 붙일 수도 없이 깜찍하게 예쁜 계집 같은 달인 동시에, 가슴이 저리고 쓰리도록 가련한 달이다.”만 보아도 짐작할 수 있다.

홀로 머리를 풀어뜨리고 우는 청상(靑孀)과 같은 달, 원한마저 품고 있는 듯한 그 달을 한(恨)이 있는 사람이 아니면 보아주는 이가 별로 없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그믐달을 사랑하는 이유를 하나 하나 나열하고 있는데, 이는 슬픈 이에 대한 연민의 정을 간접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방정환의 수필 <어린이의 찬미>는 무릅 앞에서 편안히 누워 잠자는 어린이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끝없는 애정과 관심으로 어린이의 고요함과 평화로움을 예찬하고 있다. 어린이의 잠자는 얼굴에서 하느님의 얼굴을 발견하게 된다는 말은 선의 극치, 즉 지고지선(至高至善)을 의미한다. 꾸밈을 모르는 채 천진난만(天眞爛漫)하며, 더 할 수 없는 지미지선(至美至善)을 갖춘 어린 하느님이라는 표현은 더 할 수 없는 찬미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다음으로는 주제문이 글의 맨 끝에 붙거나, 또는 거의 끝 부분에 있게 되는 귀납식(歸納式) 구성으로서의 미괄식(尾括式) 문장을 살펴보고자 한다.

너무나 애달픈 생애였기에 너무도 아프게 살아 온 목숨이었기에 너무나 슬픈 애정을 감당하며 견뎌 온 여인이었기에 나의 하느님께선 더욱 가까이 불러 위로해 주실 것이라 믿어진다. 뜨거운 눈물이 빙 돌아 난다. 무언가 한아름 지나온 세월이 가슴을 메우며 그 숱한 가시밭길도 인제 종점이 바라뵈는 고갯마루에 선 듯 일종의 안도감의 흡족에서 일어나는 마음 뜨거움인지 모르겠다.

다 지은 옷가지를 다림질하여 챙기니 외투 한 벌의 부피보다 가볍다. 인생 한 평생의 마지막 차림으로 지극히 초라한 이 수의(壽衣)가 오늘의 내게 있어선 어쩌면 이토록 고맙고 만족스러울까?

영혼의 충족!

이 옷에는 혈육의 애정이 담겨 있고 이 옷은 고운 우정의 손끝에 지어졌고, 이 옷을 입고 갈 곳은 영원의 안식처요, 슬픔도 외로움도 배신도 없는, 원통함도 없는 오직 낙원으로의 행차이기 때문일 것이다.

나의 마지막 철은 오월이나 시월이었으면 하고 평소 늘 원하고 있다. 장미꽃이 화안히 필 무렵, 장미꽃으로 장식된 관(棺) 속에 장미 향기에 묻혀 떠나갈 종언(終焉)의 날! 국화꽃이 필 무렵, 국화 향기에 싸여 떠나갈 나의 영구…….

어느 계절이라도 좋다. 꽃 속에 묻혀 꽃 향기에 싸여 떠나는 길이라면 몇 만 리를 가도 서럽지 않을 천국에의 여정인 것이다. 흔히들 육신과 더불어 영혼도 없어진다고 죽음을 허무해 하는 말들을 한다. 얼마나 신(神)의 음성에 귀를 막은 허술한 인간의 지혜이겠는가?

나의 영혼은 결코 소멸되지 않으리라 믿는다. 영생의 보좌에서 지극히 온전하신 분을 받들며 때묻지 않은 영(靈)의 세계를 누릴 것이다. 그리하여 오월의 화창한 계절이 오면 잠시 나들이 오듯 말미를 얻어 이슬이 촉촉한 한 떨기 풀꽃에 쉬었다 가기도 하고, 지상(地上)의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도란도란 속삭이는 창(窓)가에서 가만히 축복도 하여 주고…….

‘어머니날’에 딸아이의 선물로 수의를 지으며 카네이션의 꽃빛 같은 꿈이 종일을 화사하게 가슴을 고여 든다.

― 이영도(李永道)의 <수의(壽衣)> 중 후반부

 

빈소는 주인이 평소에 쓰고 있던 양실 서재로 거기에는 책장에 가득 차 있는 책들과 함께 벽에는 그의 커다란 사진이 걸려 있었다. 부인은 날만 훤하면 일어나 넓은 앞뒤뜰을 밤새 무슨 이상이나 없는가 두루 살핀 다음(이것은 아마 매일 아침 고인이 하던 일이라 생각된다.) 부엌으로 들어가 아침 준비를 한다.

칼도마에 도닥도닥 갖은 고명을 다져 정성스럽게 찌개를 끓이고 나물을 무치고 상을 놓고 하는 부인의 모습은 남편이 생존해 있을 때도 그 이상 정성을 들일 수는 없으리라 생각된다.

그는 몸단장을 깨끗이 하고 아이들을 단정히 준비시킨 후 언제나 자기가 손수 상을 들어 여섯 아이들과 함께 가만히 빈소로 간다. 커다란 사진 앞에 상을 놓고 수저를 들어 밥그릇 위에 놓은 다음 그는 아이들과 같이 고요히 머리 숙여 합장하고 묵상한다. 이것으로 그들 일가족의 하루의 일과가 시작되는 것이다.

아버지가 진지를 다 잡숫고 상을 물리듯 그는 상을 들고 물러 나와 제각기 아침 식사를 마치고 학교로, 직장으로 흩어져 간다. 부인은 남편의 서재를 깨끗이 청소하고 저녁 때가 되면 또 내일 아침 빈소에 드릴 찬거리를 사러 장으로 나간다.

나는 비록 고인의 육체가 보이지 않으나 예전이나 다름없이 이 집을 다스리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은 그 주인임을 보았다. 부인 역시 예전이나 다름없이 남편을 받들기에 여념이 없고 그의 기억이 늘 머릿속에 꽉 차 있는 듯하다.

빈소에 들어선 어머니와 아이들은 공손히 머리 숙여 그날의 할 일들을 지시받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아내는 맘속으로 ‘당신의 뜻대로 하오리다.’하고 맹세하고 아이들은 또 아이들대로 ‘아버지 말씀대로 하겠습니다.’하고 깊이깊이 맘속에 다지는 것 같았다. 그러므로 이 가정의 질서와 생활은 한오리도 문란함이 있을 수 없다. 나는 이 아름다운 풍속을 아침마다 창 너머 보며 가슴 뿌듯해 오는 감격을 느꼈다.

― 전숙희(田淑禧)의 <제사(祭祀)> 중 후반부

 

이영도의 <수의(壽衣)>와 전숙희의 <제사(祭祀)>를 살펴보았다. 이 두 편의 수필은 모두 주제문이 글의 끝에 있는 귀납적 미괄식에 해당된다. 이영도의 <수의>는 잔잔한 감동이 조용히 물결치게 하는 글이다. 영혼이 소멸되지 않으리라 믿는 작자가 어머니날의 선물이라고 외국에 나가 있는 딸아이가 보내준 돈으로 ‘수의’를 마련하는 과정에서 느껴지는 심회를 적은 글이다. 작자는 사 온 명주를 정결히 빨아 손질하고 친구와 옷을 지으면서, 사랑하는 사람도, 보아줄 사람도 없어 인정의 덧없음이 가을 바람처럼 스쳐간다고 토로하다가도, 떠나는 그날에는 너무도 애달픈 생애, 너무도 아프게 살아온 목숨, 너무도 슬픈 애정을 감당하며 견뎌온 여인이었기에 하느님께선 가까이 불러주실 것으로 믿으며, “카네이션의 꽃빛같은 꿈이 종일을 화사하게 가슴을 고여 든다.”고 승화된 내면의식을 내비치고 있다.

이영도의 <수의>가 경건하면서도 숭고한 미의식이 밤하늘 미리내처럼 흐르는 글이라면, 전숙희의 <제사>는 기독교 가정에서 자라고 교육 받은 작자가 제사를 미신으로만 알고 있었으나 이웃에 살게 된 부인(미망인)이 아이들과 함께 제사 지내는 과정을 보고 제사야 말로 가정의 질서를 유지케 하는 미풍양속임을 감동적으로 깨달았다는 내용의 글이다.

 

d. 경수필(輕隨筆) 또는 연수필(軟隨筆)

우리나라에서 일반적으로 수필을 쓴다고 하면, 비교적 가벼운 느낌을 주는 ‘경수필(輕隨筆)’이라든지, 비교적 부드러운 느낌을 주는 ‘연수필(軟隨筆)’을 가리킨다. 몽떼뉴가 많이 썼기 때문에 ‘몽떼뉴적인 수필’이라고 하는가 하면, 개인적인 신변문제에서 출발한 것이므로 개인적이며 주관적인 표현이 많고, ‘나’가 드러나 있기 마련인 수필을 가리킨다. 개인의 감정이나 심리 등이 중심이 되어 짜여지는 신변잡기적인 성격이 짙지만 시에 가까운 정서적인 문장으로서 문인을 비롯하여 각종 예술가들이 쓴 글에 경수필이 많다.

여기에 ‘신변잡기’라는 말이 나오는 데, 수필의 소재가 신변잡사(身邊雜事)가 대부분이라는 점이 문제될 것은 없다. 문제는 신변잡사에서 얻은 소재가 신변잡기(身邊雜記)에 그치는 데에 있다. 수필을 신변잡기에 그칠 게 아니라, 수필다운 수필 문학 작품으로 승화시켜야 한다.

어떻게 하면 신변잡기에 머무르지 않고 수필다운 수필을 생산할 수 있을까. 김규련은 “수필이 문학이기 위해서는 작가가 어떤 소재를 보고 느낀 감정과 생각이 심미적인 가치와 철학적인 의미를 담고 우선 언어로 형상화되어야 한다.”(수필문학의 이론)고 하였다.

수필을 쓰게 되는 경우는, 어떠한 사물을 보거나 사건에 접했을 때, 또는 어떤 상념(想念)이라든지, 이미지가 떠올랐을 때 어떤 달무리 같이 막연한 관념이나 개념에서 구상이나 구성으로 점차 구체화되어 가면서 주제가 설정된다. 주제가 설정되는 단계는 마치 암탉이 계란을 품거나 씨앗을 밭에 뿌리는 파종(播種)처럼, 계란은 병아리가 되어 가고 씨앗은 싹이 나고 잎이나 꽃이 피듯이 구체적으로 형상화되어 가게 된다.

그러니까 수필의 구성이란, 소재 가운데에서 제재를 선택하고, 그것이 동원되어 주제에 기여할 수 있도록 유기적인 관련성을 지으면서 주제에 어긋나지 않도록 취사 선택하고 배열하며 결합을 시도하는 등 언어의 질서화를 꾀하는 것을 말한다.

수필은 소설에서처럼 그렇게 단순구성이니 복합구성이니 산만구성, 긴축구성 등의 구성법을 애초부터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러나 처음과 중간과 끝이라는 그 삼단 형식마저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최소한 서두 부분과 본문 부분과 결말부분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을 수는 없다. 시조에도 초장 중장 종장이 있고, 시문의 격식으로 기(起)․승(承)․전(轉)․결(結)이 있는데, 이러한 형식을 적용해도 무방할 것이다.

김진섭은 수필을 “산만(散漫)과 무질서의 무형식(無形式)을 그 특징”으로 삼는다고 했는데, 이 말은 다른 장르와 비교해서 비교적 그런 성격을 가늠한 것이지, 산만해도 된다는 말이 아니다. 수필은 시나 소설에 비해서 산만하거나 무질서하게 보일 수도 있다는 정도로 이해하면서도, 그러나 수필도 문학의 한 장르인 이상 언어의 질서화를 꾀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수필 문장을 가리켜 ‘무형식(無形式)의 형식’, ‘무기교(無技巧)의 기교’라고 한다. 수필은 형식이 없는 것 같으면서도 있고, 기교가 없는 것 같으면서도 있다는 얘기다. 수필 창작을 위한 구상(構想) 단계에서부터 이러한 요소는 모름지기 이루어지지 않을 수 없다. 수필의 내용이나 표현 형식 등에 대하여 생각을 정리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생각을 이리 저리 정리해 보지도 않고 어떻게 잡다한 소재 등등의 취사 선택과 언어의 질서화를 꾀할 수 있을 것인가.

작자가 쓰고자 하는 수필에 대한 전체적인 내용이나 규모라든지, 실현시키기 위한 방법에 대하여 이리저리 궁리해 보지 않을 수 없는데, 이때 주제의 역할이 중요시된다. 주제란 전체를 균형과 조화롭게 이끄는 통일원리가 되기 때문이다. 주제는 작자가 수필이라는 형태를 통해서 그리려고 하는 중심 제재(題材)나 사상이기 때문이다.

낱낱의 단어를 모아서 문장을 이루고, 문장을 모아서 단락을 만들며, 단락을 모아서 한 편의 수필을 조립하게 되는데, 그것을 취사하고 선택해서 배열하고 조립하는 데에는 주제의식이 작용하지 않을 수 없다.

수필에 있어서의 구성이란 서술하는 순서를 정해 나간다거나 사실을 진실로 승화시키는 미적 여과과정, 그리고 소재에서 걸러낸 제재를 효과적으로 배열한다거나 조립하여 질서화시키는 과정을 말한다.

동해안 백암 온천에서 구슬령(珠嶺)을 넘어 내륙으로 들어서면 산수가 빼어난 고원지대가 펼쳐진다. 여기가 고추, 담배로 이름난 Y군 수비면이다. 대구에서 오자면 차편으로 근 다섯 시간을 달려야 한다. 이 고을 어귀에는 갑작스레 높고 가파른 재가 있다. 이 재에 오르면 바로 고을 쑤(樹)가 있고 민가가 취락해 있다. 이 재를 한팃재라 한다. 이 한팃재를 분수령으로 마을 쪽에 떨어지는 빗물은 왕피천(王避川)을 이뤄 성류굴(聖留窟) 앞을 지나 동해에 이른다. 재 밖으로 빗나간 빗물은 낙동강을 따라 남해로 흐른다.(생략)

어느 해 봄, 이 마을에 뜻밖의 황새 한 쌍이 날아 들어왔다. 서식처도 아닌 이 산골에 꿩이나 산비둘기가 아니면 부엉이나 매같은 산새들만 보아 온 이 마을 사람들 눈에는 황새가 신기했다. 희고 큰 날개를 여유있게 훨훨 흔들며 노송(老松) 위를 짝을 지어 유유히 날아다니는 품이 정말 대견스러웠다. 기나긴 늦은 봄 오후, 뻐꾸기 울음 소리가 빗물처럼 쏟아질 때 마을 사람들은 저마다 하던 일을 멈추고 잠시 숨을 돌린다.(생략)

마을 사람들은 이 황새가 길조라고 믿고 그들은 모두 무엇인가 막연한 기대에 부풀곤 했다. 그러나 변이 생겼다. 낙엽이 질 무렵 어느 날 아침, 이 마을을 지나가던 밀렵꾼이 황새를 보고 총을 쏜 것이다. 놀란 마을 사람들은 아침을 먹다 말고 황새 둥우리가 있는 노송 숲으로 뛰어 나왔다. 밀렵꾼은 도망가고 황새 한 마리가 선지피를 흘리며 마른 억새풀 위에 쓰러져 있었다. 그리고 살아 남은 짝은 어디론가 날아가버리고 없다. 그 밀렵꾼에게는 황새가 박제 표본감이나 아니면 돈으로 보였을까. 마을 사람들의 분노와 원성은 여간 아니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황새가 죽지는 않았다. 한 쪽 날개가 못쓰게 될 만큼 다쳤던 것이다.

어질고 소박한 마을 사람들은 그 황새를 안고 와서 온갖 정성을 다해 치료를 했다. 그리고 날개 상처가 아물고 힘을 되찾을 때까지 그 황새를 물방아간 옆뜰 소나무 밑에 갖다 두고 보호하기로 했다. 이들은 그날로 둥우리도 만들어 모이 그릇도 마련했다. 그러나 황새는 쓰러져 움직이질 못했다.(생략)

밤 바람이 일기 시작했다. 지창에 갈잎이 날려와 부딪친다. 그런데 귀에 설은 애달픈 새의 울음소리. 끼룩끼룩 끼 끼룩 끼루루. 가슴을 깎는 처절한 이 울음소리를 듣고 모두들 말없이 뜨락으로 나왔다. 가을 밤 하늘에 찬란한 별들. 그 별빛에 흰 깃을 번쩍이며 황새 한 마리가 물레방아 주위를 이리저리 애타게 날고 있는 것이 아닌가. 총소리에 놀라 도망갔던 황새가 돌아온 것이다. 그러나 황새는 이제 인간이 두려워서 쓰러져 누워있는 자기 짝에게 함부로 접근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가슴이 뭉클해진 마을 사람들은 자리를 피해 주려고 묵묵히 저마다 집으로 돌아갔다. 그래도 황새는 연신 목에 피가 맺히도록 울어댄다. 끼룩끼룩 끼 끼룩 끼루루. 그날 밤 늦도록 화전민 후예들의 지붕 밑에 호롱불이 꺼지지 않았다.

이튿날 날이 밝자, 이들은 그 부상당한 황새를 그들의 둥우리가 있던 노송 밑에 갖다 뒀다. 가련한 황새가 사람의 눈을 피하여 서로 어울리도록 하기 위함이었으리라. 그러던 며칠 뒤, 무서리가 몹시 내린 어느 날 아침, 기이하고 처참한 변이 또 생겼다. 이들이 그렇게도 알뜰히 보살펴 온 그 한 쌍의 황새가 서로 목을 감고 싸늘하게 죽어 있는 것이 아닌가.

― 김규련(金奎鍊)의 <거룩한 본능> 중 일부

 

이 수필의 구성에는 서두(書頭)와 본문(本文)과 결말(結末)의 순서로 진행되고 있다. 서두 부분에서는 화전민들이 사는 산골로 찾아드는 과정에서의 자연 경관을 그렸고, 본문에서는 작품의 주요 제재가 되는 자연 속의 화전민과 황새 한 쌍, 그리고 밀렵꾼을 다루고 있다. 그리고 결말 부분에서는 무섭게 추워지는 산골 날씨에도 쭉지 부러진 짝을 버리고 혼자 갈 수 없는 황새가 슬프게도 서로 목을 감고 죽어 있는 정경을 그림으로써 팽배한 물질문명과 타락해 가는 윤리부재의 사회에서 정서고갈로 무너져가는 인간성을 회복하고자 하는 의지를 내비치고 있음을 보게 된다.

김규련은 이 수필의 끝맺음에서 그 주제의식을 다음과 같이 표출하고 있다.

“황새도 영물일까. 산골의 날씨는 무섭게 추워지려는데 짝을 버리고 혼자 남쪽으로 갈 수 없었던 애절한 황새의 정, 조류(鳥類)에 따라서는 암수의 애정이 별스런 놈도 있지만 그것이 모두 그들의 본능이라 했다. 그러나 어쩐지 그들의 하찮은 본능이 오늘 따라 인간의 종교보다 더 거룩하고 예술보다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까닭이 무엇일까.”

김규련은 “수필의 서두는 떡잎이요 갈림길이요 강물의 시원과 같다. 수필의 격조와 향취는 서두에서 벌써 풍기기 시작한다.”고 피력했는데, 이를 위해서는 진솔한 내용의 문장이 함축적이면서 간결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하고자 하는 내용의 말을 모조리 쓰는 것보다는, 해서는 안될 말을 쓰지 않는 게 바람직하다. 서정적이면서도 사색적인 글을 쓰기 위해서는 온유(溫柔)하고 겸손(謙遜)한 자세로 마음을 닦되 재치있는 풍자와 해학이라든지, 기지와 역설을 자유자재(自由自在)로 종횡무진(縱橫無盡)으로 언어를 구사할 수 있도록 문장력을 연마할 필요가 있다.

수필에 있어서 품위(品位)를 잃지 않는다거나 격조(格調)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역시 아름다운 마음씨를 기르는 동시에 마음을 키워가면서 여유를 갖고 사는 자세가 중요하다. 그래야 영혼의 울림으로 생각의 파문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인생은 빈 술잔, 주단 깔지 않은 층계. 사월은 친지와 같이 중얼거리고 꽃 뿌리며 온다.”

이러한 시를 쓴 시인이 있다.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이렇게 읊은 시인도 있다. 이들은 사치스런 사람들이다. 나같이 범속한 사람은 봄을 기다린다. 봄이 오면 무겁고 두꺼운 옷을 벗어 버리는 것만 해도 몸과 마음이 가벼워진다. 주름살 잡힌 얼굴이 따스한 햇볕 속에 미소를 띠고 하늘을 바라다 보면 곧 날아갈 수 있을 것만 같다. 봄이 올 때면 젊음이 다시 오는 것 같다.

나는 음악을 들을 때, 그림이나 조각을 들여다볼 때, 잃어버린 젊음을 안개 속에 잠깐 만나는 일이 있다. 문학을 업(業)으로 하는 나의 기쁨의 하나는, 글을 통하여 먼 발치라도 젊음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 보다도 젊음을 다시 가져 보게 하는 것은 봄이다. 잃었던 젊음을 잠깐이라도 만나 본다는 것은 헤어졌던 애인을 만나는 것보다 기쁜 일이다.

― 피천득(皮千得)의 <봄> 앞부분

서정적이면서도 사상적인 무게가 느껴지는 글이다. 이처럼 정감있는 정서가 풍윤하게 흐르면서도 읽는 이로 하여금 산뜻하고 경쾌한 맛과 친근미를 느끼게 하는 게 인포멀 에세이(informal essay)의 매력이 아닌가 한다.

 

e. 중수필(重隨筆) 혹은 경수필(硬隨筆)

문학 장르로서 비교적 무거운 느낌을 주는 수필을 ‘중수필(重隨筆)’ 또는 경수필(硬隨筆)이라고 하거니와, 문학 장르 개념 외의 것으로 가령 신문의 사설(社說)이라든지, 시사 칼럼이나 시사 논평(時事論評) 같은 글도 여기에 해당된다. 베이컨이 많이 썼기 때문에 ‘베이컨적 수필’이라고 하는가 하면, 일반적․사회적인 문제에서 출발한 것이므로 사회적이며 객관적인 표현이 많고, ‘나’가 드러나 있지 않은 수필을 가리킨다.

보편적 논리나 이성으로써 짜여져 있는 글로서 소논문이나 소논설도 여기에 포함되는데, 사색적이고 지적인 문장으로, 학자라든지, 교육자, 사상가 등이 쓴 글에 많다. 우리나라에서의 문학 작품으로서 이런 류의 수필은 흔치 않은 게 사실이다.

이러한 종류의 수필은 박학다식(博學多識)해야 한다는 부담이 따르기 때문일 것이다.

허세욱(許世旭)은 <경수필(硬隨筆)과 그 문학성(文學性)>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대체로 현실의 비평류와 사유의 논설류로 양분되는데, 그 속엔 진정과 지성이 도도해야 문장이 활기를 얻고, 그 속엔 장미(壯美)와 일기(逸氣) 같은 미적 추구로서 여유를 찾고, 그 안엔 형상 예술로서 감동의 폭을 넓혀야 한다.”고 하면서 “설리에 급급하면 건조하기 쉽고, 비평에 날카로우면 화기가 번지고, 결론에 초조하면 설교나 구호에 전락한다.”고 하였다.

천사만려(千思萬慮)해도 타당한 말이다. 여기에서 우선 관심이 가는 말은 ‘현실의 비평류’와 ‘사유의 논설류’다. 비평에 날카로와서 화기가 번지게 되면 공명정대(公明正大)할 수가 없다. 여기에는 상대방을 먼저 이해한 다음에 객관적으로 판단하여 주장을 펼 일이다. 여기에는 동양적 인간형으로서 미덕이 되는 호연지기(浩然之氣)의 마음 자세가 요구된다.

다음의 ‘사유의 논설류’는 진리에 근원을 드리우지 않으면 안 된다. 빈약한 결론을 성급하게 내리는 우를 범할 수 있으므로 사유(思惟)의 범주가 진리에 근원를 드리우고 있는지에 대해서 스스로 점검할 필요가 있다. 장대한 아름다움이라든지, 편안한 마음의 여유로움으로 메마르기 쉬운 문장을 매력있는 문장으로 활기를 불어 넣어야 한다.

행복, 인간의 존엄성, 희생, 사랑, 잘 산다는 것에는 상당히 많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을 것이다. 내재적(內在的)인 것을 부인하고 실체(實體)만이 전부라 생각하는 오늘 우리는 분명히 뭣인가를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죽음과 자신과 무관하다는 착각, 천년을 만년을 살 것 같은 착각.

옛날에는 가난했었다. 2차대전 말기(末期) 한창 나이 적에 한줌 남짓한 콩깨묵 섞은 밥으로 견디어야 했던 기숙사 생활, 수업을 중단하고 국채(國債)를 팔러 다녔고 구걸하고 다녀야만 했던 궁핍의 시대, 밀떡과 참외로 끼니를 때워야 했던 6․25 동란의 시기, 그 시대를 살아본 사람이면 궁핍의 참상을 체득했을 것이다.

하기야 오늘이라고 완전히 가난을 극복한 것도, 가난에서 해방된 것도 아니지만 아뭏든 내가 기억하는 어린 시절 농촌의 뒷간에는 종이 대신 지푸라기를 사용하였고, 동네 우물가에는 뜨물을 받기 위한 통이나 사기 같은 것이 놓여 있었으나 농촌에서는 물론 소도시에서도 북적대는 음식점 근처를 제외하면 쓰레기통 같은 것은 잘 눈에 띄질 않았다. 봄 가을이 되면 오줌 장군을 짊어진 농부들이 농촌 가까운 소도시까지 나와서 곡식이나 돈을 지불하고 인분을 걷어 가곤 했었다.

정글 속에 쓰레기가 없듯이 쓰레기가 거의 없던 시절, 심장의 고동처럼 정확하게 순환하는 자연에 순응했던 생활이었다 할까. 오늘을 살찐 진딧물이 배추잎에 군생(群生)하는 양상으로 비유하고 옛날을 허기진 나비들이 먹이를 찾아 방황하는 것으로 비유한다면 건설의 역군들은 이마에 핏대를 세울지 모르지만 결코 나는 과거에 연연하는 것도 향수(鄕愁)를 느끼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 쓰라린 가난과 불편에서 눈부시게 비약한 오늘은 과연 천국인가 그것을 묻고 싶은 심정일 뿐이다. 인구도 증가했지만 양(量)에 있어서 방대해진 생명체를 전제한 물질의 질은 어떠한가.

지구(地球)의 정량 불변(定量不變) - 이미 깨졌으나 - 으로 본다면 질은 넓은 만큼 엷어졌을 것이란 생각, 아니면 종류가 줄어들었을 것이란 생각, 땅을 생각해 보자. 과대 생산(過大生産) 때문에 쇠약해졌고 쇠약한 것을 부추겨 세우느라 인공 영양제 남용으로 저항력을 잃은 땅에 밀생하는 악충(惡蟲) 그것을 구제한답시고 치사(致死)의 약물(藥物)을 끝없이 주입하고 있지 않은가. 그 땅에서 생산되는 병적인 것, 변질된 것을 우리는 풍요함을 찬양하며 먹는다. 그렇다. 우리는 방부제를 첨가한 그밖에도 비생명(非生命)의 것이 첨가된 것을 먹고 있다. 뿐이겠는가.

날로 산적되어 엄청난 쓰레기로 변하는 생명체는 땅의 숨통을 막아가는 것이다. 땅은 신음하며 쓰레기를 감당하고 인간은 그 쓰레기 위에 좌정해 있다면 전율을 느낄 것이다. 부패되지 않는 것은 도깨비 방망이 같이 견고하고 편리하기만 한 것인가. 한 사람 한 사람이 거시적(巨視的)으로 현실을 보지 않는다면 우리는 우리 주변에서 하나씩 하나씩 사라져 가는 생명, 그 대열에서 인간만 제외된다고 단언할 수 없을 것이다.

―박경리(朴景利)의 <풍요의 잔해로 신음하는 대지> 중 후반부

 

이 수필은 생명존중 사상에서 나온 글이다. 환경오염으로 인하여 우리 나라 뿐 아니라 이 지구촌 전체 인류가 죽어 간다고 아우성치는 요즈음에 특히 각성을 촉구하는 글이다. 여기에는 ‘나’가 들어있기는 해도 개인적인 신변잡사가 주제가 아니고 사회문제, 더 나아가서는 지구촌 인류의 생존에 관심하여 쓴 글이기 때문에 포멀 에세이(formal essay)로 간주해도 무방할 것이다.

빵의 문화는 개인주의 문화이며 정복의 문화이며 활동의 문화이며 상업의 문화이다. 빵이 있는 곳에 전쟁이 있었고 개척이 있었다. 그리고 자유로운 분리와 집을 떠나서, 고향을 떠나서 행동할 수 있는 사회성이 있었다.

밥의 문화는 한솥의 문화이다. 지붕 안에 고정되어 있고 정적이며 집을 떠나서는 살기 어려운 귀향자의 문화이다. 떠돌아 다닐 수 없는 문화이다. 그것은 평화의 문화이다. 정말 인간은 빵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다. 하지만 한국인은 밥만으로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밥에는 단순히 배만을 채우는 그 물질만이 아니라 그 김처럼 정이 서려 있고 사랑이 배어 있기 때문이다.

― 이어령(李御寧)의 <밥과 빵> 중 일부

 

이 수필은 작자 특유의 비교문화론적 발상에서 기인된 표현이다. 빵과 밥을 다양하게 비교하면서 그 문화적 성격을 가름하고 있다. 작자의 해박한 식견과 예리한 관찰 및 분석력, 폭넓은 어휘 구사로 하여 독자로 하여금 수긍하게 한다. 그는 빵과 밥의 차이점을 여러가지 측면에서 갈파하고 있다.

앞에서 소개한 박경리의 <풍요의 잔해로 신음하는 대지>가 현실의 비평이라면, 이어령의 <빵과 밥>은 사유의 논설적 성격을 띤다 하겠다. 이러한 류의 글은 소논문에 가까운 보편적 논리와 이성으로 체계적 격식에 접근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5. 수필의 문체

a. 간결체(簡潔體)

간결체 문장은 되도록 간단하게 요약한 문체를 말한다. 이 문체는 어구가 아주 적고 의미가 충실하며 여운이 많지만, 자칫하면 뜻을 모르게 된다. 이렇게 많은 내용을 근소한 어귀로 긴밀하게 압축하여 함축성이 있게 표현한 문장 스타일을 간결체 또는 간약체라고 하는데, 외형적인 면에 있어서는 만연체에 비해 말이 적고 센텐스가 짧으며, 문장의 구조도 단순하다.

간결체의 특징은 압축과 선택인데, 압축은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 전체를 서술하여 독자로 하여금 세부를 상상하게 하는 방법이라면, 선택은 내용의 부분을 표현하여 그 전체를 상상하게 하는 것이므로 자칫하면 개념적인 문장이 될 수도 있어서 세련된 연마를 요한다.

나의 소년 시절은 은빛 바다가 엿보이는 그 긴 언덕을 어머니의 상여(喪輿)와 함께 꼬부라져 돌아갔다.

내 첫사랑도 그 길 위에서 조약돌처럼 집었다가 조약돌처럼 잃어버렸다. 그래서 나는 푸른 하늘 빛에 호져 때없이 그 길을 넘어 강가로 내려갔다가도 노을에 함북 자줏빛으로 젖어서 돌아오곤 했다.

그 강가에는 봄이, 여름이, 가을이, 나의 나이와 함께 여러번 다녀갔다. 까마귀도 날아가고 두루미도 떠나간 다음에는 누런 모래둔과 그리고 어두운 내 마음이 남아서 몸서리쳤다. 그런 날은 항용 감기를 만나서 돌아와 앓았다.

할아버지도 언제 난 지를 모른다는 마을 밖 그 늙은 버드나무 밑에서 나는 지금도 돌아오지 않는 어머니, 돌아오지 않는 계집애, 돌아오지 않는 이야기가 돌아올 것만 같아 멍하니 기다려 본다. 그러면 어느새 어둠이 기어 와서 내 뺨의 얼룩을 씻어 준다.

― 김기림(金起林)의 <길>

이 글은 수필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산문시에 가깝거나 그 범주에 드는 글이라고 해야 타당할 것이다. 2백자 원고지 2매 분량의 짧은 글로서, 시적으로 이루어진 산문이라 할까, 산문시라 할까, 장르 구분은 모호하지만 시적인 요소가 풍부하여 은은한 감동을 주는 글이다. “나의 소년 시절은 은빛 바다가 엿보이는 그 긴 언덕을 어머니의 상여와 함께 꼬부라져 돌아갔다.”는 첫 구절부터가 그렇다. “내 첫사랑도 그 길 위에서 조약돌처럼 집었다가 조약돌처럼 잃어버렸다.”는 다음 구절도 시적인 압축을 보이고 있어서 간결체 문장의 함축미를 충분히 발휘하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b. 만연체(蔓衍體)

만연체 수필은 많은 어구를 사용해서 섬세한 감정을 상세하게 나타내려고 하는, 문장의 흐름이 느린 문체를 말하는데, 그 내용에 비해 많은 말을 동원하므로 반복하거나, 설명, 수식 등을 써서 문장이 길어진 것을 가리킨다. 이 문체는 압축과 생략을 피하고 많은 어귀를 동원하여 반복하고 설명하고 수식하므로 문장의 긴밀성이 약하고 길어지게 된다. 만연체는 간결체와는 반대로 많은 어귀의 사용과 장문(長文)이라는 데에 있다. 이러한 문체는 군말이 많은 대신에 내용을 부드럽게 하고 예술성을 만들어 내는 장점도 있다.

말하기조차 어리석은 일이나, 도회인으로서 비를 싫어하는 사람은 많을지 몰라도, 눈을 싫어하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눈을 즐겨하는 것은 비단 개와 어린이들 뿐만이 아니요, 겨울에 눈이 내리면 온 세상이 일제히 고요한 환호성을 소리 높여 지르는 듯한 느낌이 난다.

눈 오는 날에 나는 일찍이 무기력하고 우울한 통행인을 거리에서 보지 못하였으니, 부드러운 설편(雪片)이 생활에 지친 우리의 굳은 얼굴을 어루만지고 간지릴 때, 우리는 어찌된 연유(緣由)인지 부지중(不知中) 온화하게 된 마음과 인간다운 색채를 띤 눈을 가지고 이웃 사람들에게 경쾌한 목례(目禮)를 보내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나는 겨울을 사랑한다. 겨울의 모진 바람 속에 태고(太古)의 음향을 찾아 듣기를 나는 좋아하는 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어라 해도 겨울이 겨울다운 서정시는 백설(白雪), 이것이 정숙히 읊조리는 것이니, 겨울이 익어가면 최초의 강설(降雪)에 의해서 멀고 먼 동경의 나라는 비로소 도회에까지 고요히 들어오는 것인데, 눈이 와서 도회가 잠시 문명의 구각(舊殼;케케묵은 제도나 관습)을 탈(脫)하고 현란한 백의(白衣)를 갈아입을 때, 눈과 같이 온, 이 넓고 힘세고 성스러운 나라 때문에 도회는 문득 얼마나 조용해지고 자그마해지고 정숙해지는지 알 수 없는 것이지만, 이 때 집이란 집은 모두가 먼 꿈 속에 포근히 안기고 사람들 역시 희귀한 자연의 아들이 되어 모든 것은 일시에 원시 시대의 풍속을 탈환한 상태를 정(呈)한다(보인다).(생략)

보라! 우리가 절망 속에서 기다리고 동경하던 계시는 참으로 여기 우리 앞에 와서 있지는 않는가? 어제까지도 침울한 암흑 속에 잠겨 있던 모든 것이, 이제는 백설의 은총(恩寵)에 의하여 문득 빛나고 번쩍이고 약동하고 웃음치기를 시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말라붙은 풀포기, 앙상한 나뭇가지들조차 풍만한 백화(百花)를 달고 있음은 물론이요, 괴벗은 전야(田野)는 성자의 영지(領地)가 되고, 그 정밀은 우리에게 안식을 주며 영원의 해조(諧調;잘 조화됨. 즐거운 가락)에 대하여 말한다.

이때 우리의 회의(懷疑)는 사라지고, 우리의 두 눈은 빛나며, 우리의 가슴은 말할 수 없는 무엇을 느끼면서, 위에서 온 축복을 향해서 오직 감사와 찬탄을 노래할 뿐이다.

눈은 이 지상에 있는 모든 것을 덮어 줌으로 의해서 하나같이 희게 하고 아름답게 하는 것이지만, 특히 그 중에도 눈에 덮인 공원, 눈에 안긴 성사(城舍), 눈 밑에 누운 무너진 고적(古蹟), 눈 속에 높이 선 동상(銅像) 등을 봄은 일단으로 더 흥취의 깊은 것이 있으니, 그것은 모두가 우울한 옛 시를 읽은 것과도 같이 배후에는 알 수 없는 신비가 숨쉬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눈이 내리는 공원에는 아마도 늙을 줄을 모르는 흰 사람들이 떼를 지어 뛰어다닐지도 모르는 것이고, 저 성사(城舍) 안 심원(深園)에는 이상한 향기를 가진 알라바스터의 꽃이 한 송이 눈 속에 외로이 피어 있는지도 알 수 없는 것이며, 저 동상(銅像)은 아마도 이 모든 비밀을 저 혼자 알게 되는 것을 안타까이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어라 해도 참된 눈은 도회에 속할 물건이 아니다. 그것은 산중 깊이 천인 만장(千刃萬丈)의 계곡에서 맹수를 잡는 자의 체험할 물건이 아니면 아니된다.

생각하여 보라! 이 세상에 있는 눈으로서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니, 가령 열대의 뜨거운 태양에 쪼임을 받는 저 킬리만자로의 눈, 멀고 먼 옛날부터 아직껏 녹지 않고 안타르크리스에 잔존(殘存)해 있다는 눈, 우랄과 알라스카의 고원에 보이는 적설(積雪), 또는 오자마자 순식간에 없어져 버린다는 상부 이탈리아의 눈 등 - 이러한 여러 가지 종류의 눈을 보지 않고는 도저히 눈에 대해서 말할 수 없다고 아니할 수 없다.

그러나 불행히 우리의 눈에 대한 체험은 그저 단순히 눈 오는 밤에 서울 거리를 술집이나 몇 집 들어가며 배회하는 정도에 국한되는 것이니, 생각하면 사실 나의 백설부(白雪賦)란 것도 근거 없고 싱겁기가 짝이 없다 할밖에 없다.

― 김진섭(金晋燮)의 <백설부(白雪賦)> 중 일부

 

작자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이 작품은 한 겨울에 순수무구(純粹無垢)하게 내리는 흰눈을 도시인의 감회(感懷)로써 서정적으로 표현한 글이다. 이 수필에는 “천국의 아들이요, 경쾌한 족속이요, 바람의 희생자인 백설이여! 과연 뉘라서 너희의 무정부주의를 통제할 수 있으랴!”는 등의 구절이 절창(絶唱)을 이룬다. 여기에서는 ‘부(賦)’가 사용되는데, 이 ‘부(賦)’란 원래 글귀 끝에 운(韻)을 달고 대(對)를 맞추어 짓는 한문체의 한 가지임을 밝혀 둔다. 이 글은 만연체 문장의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다.

 

c. 강건체(剛健體)

강건체 수필은 문장의 기세가 강직(剛直)하고 크고 거세며, 웅혼(雄渾), 침중(沈重), 호방(豪放)하여 남성적인 문체로 나타나는 바 격렬한 분노라든지, 앙양된 정열, 굳센 결의와 의지, 꿋꿋한 신념을 표현하기 때문에, 박력이 있고, 격조가 웅장하며, 호흡이 다급한 특징을 가지므로 현실을 비판한다거나 하여 치열성을 드러내게 된다. 박종화(朴鍾和)의 <민족(民族)>에 실린 ‘서설(序說)’은 강건체 수필을 이해하는 데에 실감적으로 도움이 될 것이다.

조선민족은 하나요 둘이 아니다. 더구나 셋도 아니요 넷도 아니다. 조선 사람은 삼천만이나 조선민족은 다만 하나다. 아득하고 오래기 반만년 전 송화강반 백두산 아래 성스러운 천리천평(千里千坪) 신시(神市)의 때로부터 가까이 설흔 여섯해 동안, 뜻 아니한 왜노의 잔인한 압박과 구속 밑에서 강제로 동조동근(同祖同根)의 굴레를 뒤집어 씌우고 창씨와 개명까지 당했던 을유년 팔월 십사일 어제까지 조선 민족은 다만 하나요 둘이 아니다.

또 다시 앞으로 조선 민족은 억천 만년 백겁을 감돌아 ‘한밝’의 밝은 광명을 동방으로부터 세계에 부어 내리고, 삼천만 민족이 삼억 창생이 되는 때까지 조선민족은 다만 하나요 둘이 아니다.

민족은 조상을 같이 한다. 맥박에 뛰노는 핏줄이 본능으로 엉키니 하나요 둘이 될 수 없다. 말이 같고 풍속이 같으니 하나요 둘이 될 수 없다. 멀리 바다를 건너 동경, 하와이, 뉴욕, 런던에 외로운 그림자를 짝하여 달빛 아래 초연히 거닐어 보라. 만 가지 향수가 그대의 머리를 스치리라. 삼각산이 보이고 한강물이 그리워지리라. 모란봉이 떠오르고 대동강이 생각나리라. 다행히 남만격설지성(南蠻鴃舌之聲) 떠드는 외국사람 틈에 고향 친구를 만나 방아타령이나 아리랑타령 한 곡조를 들어 보라. 그대의 눈에 까닭 모를 더운 눈물이 주루루 흐르리라.

이것이 조국애요 민족애다. 조선 민족은 다만 하나요 둘이 아니다. 조선 민족은 운명을 같이 할 약속을 갖는다.(생략)

우리는 임진왜란 때 단신으로 기막힌 항전을 계속한 바다의 영웅 이순신 장군을 잊어서는 안 된다. 병자호란에 청나라에 잡혀가서 죽어도 청제에게 절을 아니한 삼학사를 잊어서는 안 된다. 을사조약에 목을 찌른 민영환(閔泳煥)을 잊어서는 아니된다.

대마도에서 굶어 죽은 최익현(崔益鉉)도 알아 두자. 할빈역머리에 이등박문을 쏘아 죽인 안중근(安重根)님께 고요히 묵도를 올리자. 삼천리 강산을 뒤흔들어 놓은 백수(白手)의 항전 삼일운동의 기억이 새롭구나 - . 귀여운 도련님과 아가씨의 광주학생사건도 눈물겨웁다.

이것은 모두 다 민족의 항전이요 투쟁이다. 조선민족은 하나요 둘이 아니다.

해방후(解放後) 서기(西紀) 1945년 10월 31일

― 박종화(朴鍾和)의 <민족(民族)>의 ‘서설(序說)’ 중 일부

 

d. 우유체(優柔體)

우유체 수필은 문세(文勢)가 부드럽고 온화하며 순한 편이다. 또한 청초하고 겸허하며 우아하여 다소의 미문조(美文調)를 띌 수도 있다. 강한 의지를 나타내기에는 연약한 문세 때문에 적합하지 않은 편이다.

동생이 입학한 후, 첫 번째 맞이한 봄소풍 때의 일입니다. 김밥, 사탕, 과자, 과일 등 어머니는 동생 몫과 내 몫을 한 보자기에 싸주셨습니다. 보자기가 하나 뿐인 데다가 동생이 너무 어리기 때문에 점심 시간에 나보고 챙겨 먹이라시면서 그렇게 싸 주신 것입니다.

동생의 손을 잡고 학교를 향해 팔랑팔랑 걸었습니다. 날아갈 듯이 즐거운 마음이었습니다. 그런데 학교에 도착해 보니 1학년과 3학년이 각각 다른 곳으로 소풍을 간다는 것입니다. 3학년은 1학년보다 조금 더 먼 곳으로 간다고 했습니다. 예측하지 못했던 일이었습니다. 난감했습니다. 도시락을 둘로 가를수도 없을 뿐더러 어린 동생을 혼자 보내는 것도 마음 놓이지 않았습니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발만 동동 구르다가 나는 결정을 했습니다. 저 어린 동생을 위해 오늘 하루 학부형이 되어야겠다고 말입니다. 담임 선생님께 말씀드렸더니 쾌히 승락하셨습니다.

나는 먼저 출발하는 우리반 소풍 대열을 한참이나 바라보았습니다. 눈물이 나올려고 하는 것을 꾹 참고 동생네 소풍 대열을 따라 걷기 시작했습니다. 신입생들이라서 그런지 학부형들이 꽤나 많이 따라왔습니다. 1학년 아이들과 비교해도 별로 크지 않은 조그만 내가, 어머니들 사이에서 걷고 있으려니까 어머니들은 무척 궁금한 모양이었습니다. 몇 학년이니? 너는 왜 너네 학년 소풍 안가고 여기 왔니? 그렇게 물어볼 때마다 도시락 보따리가 왜 그리 부끄럽던지 감출 수만 있다면 어디에든 감추어 버리고 싶었습니다. 그런 마음 때문이었는지 도시락 보따리가 자꾸만 무겁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목적지에 도착한 후, 동생을 솔밭 그늘로 데려와 점심을 먹였습니다. 동생은 언니인 내가 저를 따라온 것에 대해선 아무 생각도 없는지 재잘거리며 맛있게 먹었습니다. 점심을 먹은 뒤, 선생님의 호루라기 소리를 따라 동생은 다시 제 동무들 곁으로 갔습니다. 혼자 앉아서 도시락 보따리를 챙겨 싸는 내 눈에는 뿌우연 안개가 서려 왔습니다. 참았던 눈물 한 방울이 볼을 타고 흘렀습니다. 아, 이러면 안 돼, 난 오늘 학부형인데, 눈물 따위를 보이다니! 나는 눈물을 보이는 일이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어 누가 볼세라 손으로 얼른 눈물을 닦았습니다.

아름드리 소나무에 기대어 서서 동생네반 아이들이 뛰노는 것을 보고 있었습니다. 수건돌리기, 술래잡기, 보물찾기…….즐겁게 웃는 동생의 모습이 아지랑이처럼 아롱거렸습니다. 솔밭 위 하늘엔 눈부시게 하얀 학들이 너울거리며 날아다녔습니다.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참으로 길고 긴 하루였습니다. 아홉 살의 소녀가 감당하기엔 너무나 힘겨웠던 봄소풍. 그런데 왜 가끔씩 그때가 그리워지는지 나도 모를 일입니다.

― 문혜영(文惠英)의 <어린 날의 초상> 중 후반부

‘봄소풍’이라는 부제가 붙은 우유체 수필이다. 이북에서 살다가 1․4후퇴 때 어머니의 품에 안겨 월남한 작자가 유복녀로 태어난 동생이 초등학교에 입학하여 소풍을 가게 되는데, 교편을 잡은 어머니가 동행할 수 없기 때문에 그 대신으로 학부형이 되어 주는 어린날의 추억담이 순후하게 내비치고 있다.

여기에서는 어떤 가식이나 엄살이 보이지 않은 채 어린 날의 동심이 그대로 배어있어서 읽는 이로 하여금 감동어린 눈물을 자아내게 한다. 때묻지 않은 순수한 진실성이 감동을 준다는 사실은 아무리 강조해도 다함이 없을 것이다.

 

d. 건조체(乾燥體)

건조체 문장은 어떠한 미사여구(美辭麗句)나 수사(修辭)와는 상관없이 말하고자 하는 의사를 전달하는 데 치중하는 문체로서 학술이나 보고서 등 실용을 본위로 하는 데에 적합하기 때문에 본격적인 문학 장르로서의 수필 문체로는 적합하지 않다.

이 건조체는 비유와 수식이 아주 미미하거나 전연 없는 문체이기 때문에 화려체와는 반대의 성격을 띤다. 가령 “그 호수의 길이가 6km”라면 건조체요, “그 호수의 물길이 시오리”라면 화려체가 된다.

학문이 실생활에 유용한 것도, 그 자체의 추궁(追窮)이 즐거움을 가져오는 것도, 모두가 학문이 다름 아닌 진리를 탐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실용적이니까 또는 재미가 나는 것이니까 진리요 학문인 것이 아니라, 그것이 진리이기 때문에 인간생활에 유용한 것이요, 재미도 나는 것이다. 유용하다든가 재미가 난다는 것은 학문에 있어서 부차적으로 따라올 성질의 것이요. 그것이 곧 궁극적인 목적이라고까지 말함은 어떨까 한다.

학문의 목적은 진리의 탐구 그것에 있다. 이렇게 말하면 또 그 진리의 탐구는 해서 무엇하나 할는지 모르나, 학문의 목적은 그로서 족한 것이다. 진리의 탐구자로서의 학문의 목적이 현실생활과 너무 동떨어져서 우원(迂遠)함을 탓함직도 하다. 그러나 오히려 학문은 현실 생활로부터 유리(遊離)된 것처럼 보일 때, 가끔 그의 가장 풍부한 축복을 현실 생활 위에 내리는 수가 많다. 세상에서는 흔히 학문밖에 모르는 상아탑 속의 학구생활을 현실을 도피한 짓이라고 비난하기가 일쑤지만 상아탑의 덕택이 큰 것임을 알아야 한다. 모든 점에서 편리하여진 생활을 향락(享樂)하고 있는 소위 현대인이 있기 전에, 그런 것이 가능하기 위하여서도 오히려 그런 향락과는 담을 쌓고 진리 탐구에 몰두한 학자들의 상아탑 속에 있어서의 노고가 앞서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남의 향락을 위하여 스스로는 고난의 길을 일부러 걷는 것이 학자도 아니다.

학자는 그의 진리를 탐구하기 위하여 학문을 하는 것 뿐이다. 상아탑이 나쁜 것이 아니라, 진리를 탐구하여야 할 상아탑이 제 구실을 옳게 다하지 못하는 것이 탈이다. 학문에 진리 탐구 이외의 다른 목적이 섣불리 앞장을 설 때, 그 학문은 자유를 잃고 왜곡될 염려조차 있다. 학문을 악용하기 때문에 오히려 좋지 못한 일을 하는 수가 얼마나 많은가? 진리 이외의 것을 목적으로 할 때, 그 학문은 한때의 신기루와도 같아, 우선은 찬연함을 자랑할 수 있을는지도 모르나 과연 학문이라고 할 수 있을까부터가 문제다.

진리의 탐구가 학문의 유일한 목적일 때, 그리고 그 길로 매진할 때, 그 무엇에도 속박됨이 없는 숭고한 학적(學的)인 정신이 만난(萬難)을 극복하는 기백(氣魄)을 길러줄 것이요, 또 그것대로 우리의 인격 완성의 길로 통하게도 되는 것이다.

학문의 본질은 합리성과 실증성에 있고, 학문의 목적은 진리 탐구에 있다. 위무(威武)로써 굽힐 수도 없고, 영달(榮達)로써 달랠 수도 없는 학문의 학문으로서의 권위도 이러한 본질, 이러한 목적 밖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 박종홍(朴鍾鴻)의 <학문의 본질과 목적> 중 결말 부분

 

사람은 자기를 속이면 마음 한 구석이 늘 불안하여 심적 동요가 생기기 쉽다. 그러나 자기에 충실한 사람은 마음이 항상 편하므로 심적 동요가 생기는 일이 적다. 심적 동요가 생길 때는 겉에 드러나는 행동도 안정치 못하고 혹동(或東)․혹서(或西)로 극단에서 극단으로 기울어지기 쉽다. 그러나 마음의 안정을 얻은 사람은 행동에 있어서 견정(堅定) 확고하고 광명정대(光明正大)한 기상을 보인다. 맹자(孟子)는 ‘직(直)’ ‘무자기(毋自欺)’의 수양을 오래 쌓은 사람에게는 일종의 남과 다른 특이한 기개를 가진다 하였는데, 그것을 ‘호연지기(浩然之氣)’라 하였다. ‘호연지기’는 지극히 위대하고 지극히 굳센 것으로서 천지(天地) 사이에 들어 찰 만한 것이라 하였다.

공자는 ‘인자(仁者)는 불우(不憂)하고, 지자(知者)는 불혹(不惑)하고, 용자(勇者)는 불구(不懼)라’ 하였거니와 불우(不憂)․불혹(不惑)․불구(不懼)하는 경지에 이르면, 저절로 호연지기(浩然之氣)가 생기는 것이다. 이런 호연지기를 가지는 사람이 맹자는 대장부(大丈夫)라 하여 대장부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였다.

“천하에서 가장 넓은 집(仁)에서 살고, 천하에서 가장 바른 자리(禮)에 올라 앉으며, 천하에서 가장 큰 길(仁義의 道)을 걷는다. 남이 알아서 써 주면 백성들과 함께 같이 그 길을 걷고, 알아 주는 사람이 없으면 홀로 그 길을 간다. 부귀도 그 뜻을 어지럽히지 못하고, 빈천도 그의 뜻을 움직이지 못하며, 위무(威武)도 그의 뜻을 굴복시키지 못한다.

이런 대장부는 세 가지의 낙(樂)이 있다. “부모가 계시고 형제가 다 무고함이 첫째 낙이요, 우러러 하늘에 부끄럽지 않고 굽어서 사람에게 부끄럽지 않음이 둘째 낙이요, 천하의 영재(英才)를 얻어서 가르침이 셋째 낙이다.” 하였다. 이 대장부형(大丈夫型)의 인간이 동양의 이상적 인간형 중에서 하나의 커다란 영향력을 가진 인간형이다.

― 이상은(李相殷)의 <동양적 인간형> 중 결말 부분

 

e. 화려체(華麗體)

화려체 수필은 비유나 수식이 지나칠 정도로 많아서 문장이 찬란하고 화려한 인상을 주는 극단적인 미문(美文)을 가리킨다. 건조체가 이지적(理知的)이라면 화려체는 감정적인 문체로서 회화적(繪畵的) 색감과 음악적 운율을 갖게 되어 아기자기한 맛은 있지만 자칫하면 저속해질 위험도 있으므로 너무 지나치지 말아야 한다.

서울의 봄은 눈속에서 온다. 남산의 푸르던 소나무는 가지가 휘도록 철 겨운 눈송이를 안고 함박꽃이 피었다.

달아나는 자동차와 전차들도 새로운 흰 지붕을 이었다. 아스팔트 다진 길바닥, 평퍼짐한 빌딩 꼭대기에 백포(白布)가 널렸다. 가라앉는 초가집은 무거운 떡가루 짐을 진 채, 그대로 찌그러질 듯하다. 푹 꺼진 기와골엔, 흰 빈석이 디디고 누른다. 비쭉한 전신주도 그 멋갈없이 큰 키에 잘 먹지도 않은 분을 올렸다.

이 별안간에 지은 세상을 노래하는 듯이 바람이 인다. 은가루 옥가루를 휘날리며, 어지러운 흰 소매는 무리무리 덩치덩치 흥에 겨운 갖은 춤을 추어 제낀다. 길이길이 제 세상을 누릴 듯이.

그러나 보라! 이 사품에도 봄 입김이 도는 것을. 한결같이 흰 자락에 실금이 간다. 송송 구멍이 뚫린다. 돈짝만해지고, 쟁반만해지고, 댓님만해지고, 댕기만해지고, ……그 언저리는 번진다. 자배기만큼 검은 얼굴을 내놓은 땅바닥엔 김이 무럭무럭 떠오른다.

겨울을 태우는 봄의 연기다. 두께두께 언 청계천에도, 그윽한 소리 들려 온다. 가만가만 자취없이 가는 듯한 그 소리, 사르르사르르 이따금 그 소리는 숨이 막힌다. 험한 고개를 휘어 넘는 듯이 헐떡인다. 그럴 때면, 얼음도 운다. ‘찡’하며 부서지는 제 몸의 비명을 친다. 언 얼음이 턱 갈라진 사이로 파란 물결은 햇빛에 번쩍이며 제법 졸졸 소리를 지른다.

축축한 담 밑에는, 눈을 떠 이은 푸른 풀이 닷분이나 자랐다. 끝장까지 보는 북악에 쌓인 눈도 그 사이 흰 빛을 잃었다. 석고색으로 우중충하게 흐렸다. 그 위를 싸고 도는 푸른 하늘에는, 벌써 하늘하늘 아지랭이가 걸렸다. 봄이 왔다. 눈길, 얼음 고개를 넘어, 서울에 순식간에 오고 만 것이다.

― 노천명(盧天命)의 <서울의 봄>

 

외로운 설움에 주체 못하는 순간마다 사람인 나에게는 술과 담배가 있으니, 한 개의 소상 반죽(瀟湘斑竹;중국 소상 지방에서 나는 아롱진 무늬가 있는 대나무)의 연관(煙管;담뱃대)이 있어 무한으로 통한 청신한 대기를 속으로 빨아들여 오장 육부에 서린 설움을 창공에 뿜어내어, 자연(紫煙)의 선율을 타고 굽이굽이 곡선을 그리며 허공에 사라지는 나의 애수(哀愁)의 자취를 넋을 잃고 바라보며 속 빈 한숨 길게 그윽히 쉴 수도 있고, 한 잔의 술이 있어 위로 뜨고 치밀어 오르는 억제 못할 설움을 달래며 구곡 간장(九曲肝腸) 속으로 마셔들여 속으로 스며들게 할 수도 있고, 12현(絃) 가야금이 있어, 감정과 의지의 첨단적(尖端的) 표현 기능인 열 손가락으로 이 줄 저 줄 골라 짚어, 간장에 어린 설움 골수에 맺힌 한을 음율과 운율의 선에 실어 찾아내어 기맥이 다하도록 타고 타고 또 타, 절실한 이내 가슴 속 감정의 물결이 열 두 줄에 부딪쳐 몸부림 맘부림쳐 가며 운명의 신을 원망하는 듯, 호소하는 듯 빌며, 땡기며, 부르며, 쫓으며, 잠기며, 맺으며, 풀며, 풀며, 맺으며, 높고 낮고 길게 짧게 굽이쳐 돌아가며, 감돌아 가며, 감돌아 들며, 미묘하고 그윽하게 구르고 흘러 끝 가는 데를 모르는 심연한 선율과 운율과 여운의 영원한 조화미(調和美) 속에 줄도 있고 나도 썩고 도연(陶然)히(술에 취하여 느긋하게 마음이 풀어진 상태) 취할 수도 있거니와 - 그리고 네가 만일 학이라면 너도 응당히 곡조에 취하고 화하여 너의 가슴 속에 가득 답답한 설움과 한을 잠시라도 잊고 춤이라도 한 번 덩실 추는 것을 보련마는 - 아아, 차라리 너마저 죽어 없어지면 네 얼마나 행복하며 네 얼마나 구제되랴. 이 내 애절한 심사 너는 모르고도 알리라. 이 내 무자비한 심술 너만은 알리라.

― 오상순(吳相淳)의 <짝 잃은 거위를 곡(哭)하노라> 중 일부

노천명의 <서울의 봄>이 대자연의 흥기하는 모습에 경이감을 나타내 보여준 작품이라면, 오상순의 <짝잃은 거위를 곡하노라>는 허무적 낭만주의 경향을 보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어떠한 사물을 보고 그것이 무엇인지 인식하거나 감응하는 것은, 그 사물을 바라보는 나(주체적 자아)와 보게 되는 그 사물(대상) 사이에 동질적인 요소, 또는 서로 닮아 있는 상사성(相似性)이 있어서 그게 가능하게 된다. 이러한 인식의 논리로 보게 될 때, 그 울부짖는 짝 잃은 거위의 소성은 이미 작자인 오상순 시인의 심층 세계에 내재되어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짝을 잃은 거위의 구슬픈 울음 소리는 바로 작자 자신의 설움과 연민적 심상을 더하게 한다. 세상 모르고 운명에 순응하는 거위의 모습에서 지은이는 스스로의 심회를 토로하게 된다. 이 말을 바꾸어서 하자면, 작자 자신의 마음 속에 그러한 거위 같은 슬픈 요소가 자리하고 있었는데, 마침 울부짖는 짝잃은 거위를 발견하고 거기에서 수필 창작의 발단 동기를 활용하여 마침내 작품상의 효과음을 내게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감상적 낭만주의의 분위기가 짙게 드리워진 이 작품은 긴박한 호흡과 유려한 기교적 화려체 문장으로 응어리진 한을 풀어내면서 한껏 고조시키는데, 이는 1920년대 한국시의 주된 경향이었던 감상적, 또는 퇴폐적 낭만주의 문학의 허무주의적 풍향을 감안한다면 이해하기가 더욱 수월해질 것이다.

 

6. 수필의 기교

수필에서는 시나 소설에서처럼 그렇게까지 특별한 기교를 요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수필도 문학의 한 장르인 이상 표현을 위한 어떤 ‘무기교(無技巧)의 기교(技巧)’라고 할까, 특별한 수완을 부리는 것 같지 않으면서도 은연중에 갖게 되는 창작상의 기술은 필요하다.

가령 집을 짓는다거나 음식을 만드는 경우에도, 건축 자재나, 식료품 같은 재료(소재, 또는 제재)가 갖추어지고, 건축 설계(구상, 또는 구성)가 짜여졌다 하더라도 집짓는 사람(창작자)이나 요리사(창작자)의 솜씨가 없이는 건축물이나 요리가 제대로 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수필 창작에도 기교는 매우 중요한 요소의 하나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기교란 창작을 통한 표현의 수단이기 때문에도 긴요하지만 작자가 표현하고자 하는 그 목적을 효과적으로 달성하기 위하여 구성하거나 묘사하는 수단으로도 필요하다. 물론 기교에 너무 치우쳐서 내용이 충실치 못한 글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적절한 기교의 활용은 좋은 글의 필요 불가결의 요소라 할 수 있다.

 

a. 의도와 표현

수필 작품을 이루려고 마음 속으로 꾀하는 생각을 의도라 한다면, 그 의도한 만큼 표현할 수 있느냐가 문제가 된다. 말로는 청산유수(靑山流水)인데, 막상 글을 쓰려고 하면 마음 먹은대로 되지 않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수필’이라는 언어 형태가 문학성, 또는 예술성을 지니기 위해서는 수필문장이 설명되기보다는 표현되어야 한다. 수필다운 수필이 되기 위해서는 문학성이라든지 예술성을 살려서 표현해야 한다는 얘기다.

수필이 왜 표현되어야 하는가. 설명하는 경우는 마치 보고서처럼, 개념의 전달에 그치지만, 표현하는 경우에는 구체적인 형상화가 이뤄져서 실감을 자아내기 때문이다. 작자의 사상 감정이 막연한 개념의 나열에 그치지 않고 구체적인 새로운 형태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시나 소설에서는 구체적인 형상화가 중요시되고, 수필에서는 그게 별로 필요 없는 것으로 여겨지는데, 수필도 문학인 이상, 수필 쓰는 행위 역시 창작이라 한다면, 수필은 사진 촬영처럼 사물이나 현실의 기계적 복사일 수는 없다.

구체적인 형상화란 어떤 사물에 대한 미적 표현을 위해 상상을 통해 형상화하는 것을 말한다. 그것은 수필도 구체적인 형(形)을 취한 상(像)을 그리는 일임을 말하는 데, 이는 마치 거미가 줄을 늘여 집을 짓듯이, 구체적으로 모양을 만들어내는 것을 뜻한다.

모든 예술, 모든 문학 작품 생산을 위해서는 상상이 필요 불가결의 것이다. 상상을 거치지 않은 예술이나 문학 창작은 있을 수 없다. 다만 여기에서 특히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재생적 상상’과 ‘생산적 상상’에 관한 문제이다. 시나 소설의 경우는 재생적 상상을 지나서 생산적 상상을 시도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수필의 경우는 다르다. 경험의 잔상을 분해하고 결합하며 변화시켜서 얻어지는 생산적 상상을 통하지 않은 채 기억을 회상하는 정도의 재생적 상상만 가지고도 훌륭한 작품을 생산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의도한대로, 또는 의도한 만큼 표현하기 위해서는 재생적 상상이라 할지라도 그 상상력의 작용으로서 우선 마음 속에 형상을 그리는 의도(意圖)가 선행되어 구상되지 않으면 안 된다.

수필에는 어떠한 형식도, 어떠한 허구도, 어떠한 기교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말을 더러 듣게 되는데, 우리가 아름다운 작품을 창작하려 할 때 완전한 객관적 사고가 가능할까? 아무리 객관적으로 그린다 할지라도 완전한 객관은 있을 수 없는 게 사실이다. 추억은 아무리 객관적으로 그린다 할지라도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윤색이 가해지기 마련이다.

소금을 뿌려놓은 듯한 밤하늘의 은하수와 별떨기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내릴 것만 같은 그런 여름밤이었다. 아버지는 마당 가에 맷방석을 펴고, 할아버지는 그 곁에 모깃불을 피웠다. 소보록히 쌓아놓은 보릿대에 불을 붙인 다음, 쑥풀을 한 다발 얹어놓으면 파르스름한 실연기가 쑥풀 특유의 냄새를 풍기면서 피어오르다가 옆으로 퍼져나갔다.

할머니와 어머니는 옥수수와 감자를 쪄 내오셨다. 아버지는 이웃집 농부들과 더불어 얘기를 깊어가고, 할머니 무릎을 베고 누운 나는 밤하늘의 별을 헤아리다가 잠이 들곤 하였다. 잠결에 간간히 깨어 보면, 할머니는 염불을 하시면서 부채 끝으로 나의 팔이나 다리 부분 여기저기를 톡톡 치면서, 매운 쑥연기 사이로 날아드는 모기를 쫓곤 하였다.

자작 수필 <맷방석과 밤하늘> 중 서두 부분이다. 이 글은 기억의 잔상을 그대로 펼쳐놓았지만 무의식중에 윤색(潤色)이 가해졌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b. 수필과 상상

상상(想像)이란 현재의 지각에는 없는 사물이나 현상을 과거의 경험이나 관념에 입각하여 재생시키거나 만들어내는 마음의 작용을 말하는데, 여기에서의 ‘재생시키거나 만들어내는 것’을 주의 깊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 ‘재생시키는 것’과 ‘만들어내는 것’의 차이는 무엇인가.

눈 앞에 없는 사물의 이미지를 만드는 정신능력을 상상력이라 하는데, 제임스 윌리엄은 과거 감각의 모상(模像)을 그대로 다시 나타내는 재생적 상상과 과거 감각의 인상에서 추출(抽出) 결합하여 새로운 전일체를 구성하는 생산적 상상으로 구별했다. 제임스 윌리엄은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상상을 재생적 상상과 생산적 상상 두 가지로 나누고, 지각(知覺)을 그대로 재현시키는 것을 재생적 상상이라 하고, 지각의 잔상(殘像)이나 기억된 심상을 분해하고 결합하며, 변화시켜서 얻어지는 것을 생산적 상상이라 하였다.

수필을 창작하는 경우에 있어서는 시나 소설에서처럼, 그렇게 생산적 상상을 필요로 하지는 않지만, 상상력이 필요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우선 추억의 부스러기라고 할까 기억의 잔상으로 재배치, 재구성하는 일에도 어느 정도의 상상력은 요구되기 때문이다.

저녁을 먹고 나니 퍼뜩퍼뜩 눈발이 날린다. 나는 갑자기 나가고 싶은 유혹(誘惑)에 눌린다. 목도리를 머리까지 푹 눌러 쓰고 기어이 나서고야 말았다. 나는 이 밤에 뉘 집을 찾고 싶지는 않다. 어느 친구를 만나고 싶지도 않다. 그저 이 눈을 맞으며 한없이 걷는 것이 오직 내게 필요한 휴식일 것 같다. 끝없이 이렇게 눈을 맞으며 걸어가고 싶다. 이 무슨 저 북구(北歐) 노르웨이에서 잡혀 온 처녀의 향수(鄕愁)이랴.

눈이 내리는 밤은 내가 성찬을 받는 밤이다. 눈이 이제 제법 대지를 희게 덮었고, 내 신바닥이 땅에 잠깐 미끄럽다. 숱한 사람들이 나를 지나치고 내가 또한 그들을 지나치건만, 내 어인 일로 저 시베리아의 눈 오는 벌판을 혼자 걸어가고 있는 것만 같으냐.(생략)

사람은 영원히 외로운 존재인지도 모른다. 뉘 집인가 불이 환히 켜진 창 안에서 다듬이 소리가 새어 나온다. 어떤 여인의 아름다운 정이 여기도 흐르고 있음을 본다. 고운 정을 베풀려고 옷을 다듬는 여인이 있고, 이 밤에 딱따기를 치며 순찰을 돌아 주는 이가 있는 한 나도 아름다운 마음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머리에 눈을 허옇게 쓴 채 고단한 나그네처럼 나는 조용한 내 집 문을 두드렸다. 눈이 내리는 성스러운 밤을 위해 모든 것은 깨끗하고 조용하다. 꽃 한 송이 없는 이 방 안에 내가 그림자 같이 들어옴이 상장(喪章)처럼 슬프구나.

창 밖에선 여전히 눈이 싸르르 내리고 있다. 저 적막한 거리거리에 내가 버리고 온 발자국이 흰 눈으로 덮여 없어질 것을 생각하며 나는 가만히 누웠다. 회색과 분홍빛으로 된 천정을 격해 놓고 이 밤에, 쥐는 나무를 깎고 나는 가슴을 깎는다.

― 노천명(盧天命)의 <설야산책(雪夜散策)> 중 일부

 

이 수필은 대부분 경험의 잔상이라 할까, 기억을 더듬어 재생해 내는 재생적 상상으로 쓰여진 수필이다. 그런데 마지막 결말 부분에 “쥐는 나무를 깎고 나는 가슴을 깎는다.”고 되어 있는데, 이 구절은 재생적 상상에서 나왔다기 보다는 생각을 분해한다거나 결합한다거나 변화시켜서 재구성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상상을 통한 기교의 활용을 의미한다. 수필에서는 주로 재생적 상상에 그치는 경우가 많지만 때에 따라서는 생산적 상상을 필요로 하는 경우도 더러는 있을 수 있겠다.

 

c. 산만성과 통일성

수필이 왜 산만하게 쓰여지는 것일까? 한 중심으로 모이는 통일된 글이 쓰여지지 못하는 그 까닭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처음엔 제법 그럴듯하게 시작했는데, 글을 쓰다가 보면 엉뚱한 곳으로 빠져버리는 그 원인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글의 짜임새가 제대로 짜여지지 못하고 왜 번번이 엉성하게 되는 것일까?

이러한 질문들은 수필의 습작기에 있는 이들에게서 흔하게 나온다. 수필이 산만하게 되는 첫째 요인은 우선 주제(主題)가 잡혀 있지 않기 때문이다. 주제가 잡혀 있지 않는 글은 행선지 없는 여행과 같이 정처가 없다. 아무리 무전여행을 한다 할지라도 일단 차를 타려면 차표를 사야 하는 데, “나 무전여행하는 사람인데 아무 곳에나 주세요.”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떠한 글이거나 주제가 잡혀 있지 않을 때 산만하고, 의식(意識)이 과잉(過剩)되어 있을 때 산만하며, 문장이 너무 길 때 산만하다. 의식의 과잉 상태에서는 하고 싶은 말들이 서로 먼저 나오려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기 때문에 언어를 선택해서 사용해야 하는 작자가 언어를 취사하고 선택해서 적재적소에 구사하는 능력을 잃기 때문에 산만하게 된다.

그리고 문장이 필요 이상으로 길어지는 경우, 한 문장 안에 ‘…하고’의 반복이나 ‘…하며’의 반복을 보이게 되는 데, 이러한 경우는 한 문장을 둘이나 셋으로 토막내어 정리해야 한다.

과잉된 의식이란 마치 장마비에 넘치려는 댐의 수문(水門)과도 같다. 넘치려는 댐은 수문 조절을 잘 해야 하듯이, 과잉된 의식에는 마음을 누그러뜨리고 마치 산책이라도 하는 기분으로 천천히 쓰되 떠오르는 생각을 다 쓰려고 하지 말고 주제에 도움이 되겠다고 여겨지는 내용만을 써나가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제에 별로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은 글을 삼가는 것이 좋다.

이 말을 뒤집어서 다시 한다면, 글을 제대로 잘 쓰는 길은 쓰고자 하는 내용을 쓰기보다는 써서는 안 되는 글을 쓰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수필의 산만성을 지양하고 통일성을 지향하는 길은, 글을 쓰게 될 때는 반드시 주제가 잡혀있어야 하고, 과잉된 의식을 갖지 말며, 문장을 필요 이상으로 길게 늘여서 어디가 머리 부분이고 어디가 꼬리 부분인지 분간하기 모호하게 하지 말고, 센텐스를 짧고 명료하게 처리하는 게 바람직하다.

내가 보기에는 그만하면 다 됐는데, 자꾸만 더 깎고 있다. 인제 다 됐으니 그냥 달라고 해도 못 들은 체 한다. 차 시간이 바쁘니 빨리 달라고 해도 통 못 들은 체 대꾸가 없다. 점점 차 시간이 빠듯해 왔다. 갑갑하고 지루하고 인제는 초조할 지경이다. 더 깎지 아니해도 좋으니 그만 달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끓을 만큼 끓어야 밥이 되지, 생쌀이 재촉한다고 밥이 되나?” 하면서 오히려 야단이다.

나도 기가 막혀서, “살 사람이 좋다는데 무얼 더 깎는단 말이오? 노인장, 외고집이시구려. 차 시간이 없다니까…….”

노인은 “다른 데 가 사우. 난 안 팔겠소.” 하는 퉁명스런 대답이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갈 수도 없고, 차 시간은 어차피 늦은 것 같고 해서, 될 대로 되라고 체념(諦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깎아 보시오.”

“글쎄, 재촉을 하면 점점 거칠고 늦어진다니까. 물건이란 제대로 만들어야지, 깎다가 놓으면 되나?”

좀 누그러진 말투다. 이번에는 깎던 것을 숫제 무릎에다 놓고 태연스럽게 곰방대에 담배를 담아 피우고 있지 않은가? 나도 그만 지쳐 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얼마 후에, 노인은 또 깎기 시작한다. 저러다가는 방망이는 다 깎여 없어질 것만 같았다. 또 얼마 후에 방망이를 들고 이리저리 돌려 보더니, 다 됐다고 내준다. 사실, 다 되기는 아까부터 다 돼 있던 방망이다.

차를 놓치고 다음 차로 가야 하는 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위로 장사를 해 가지고 장사가 될 턱이 없다. 손님 본위(本位)가 아니고 자기 본위다. 불친절하고 무뚝뚝한 노인이다. 생각할수록 화가 났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다 보니, 노인은 태연히 허리를 펴고 동대문의 추녀를 바라보고 있다. 그때, 어딘지 모르게 노인다워 보이는, 그 바라보고 있는 옆모습, 그리고 부드러운 눈매와 흰 수염에 내 마음은 약간 누그러졌다.(생략)

옛날 사람들은 흥정은 흥정이요 생계는 생계지만, 물건을 만드는 그 순간만은 오직 훌륭한 물건을 만든다는 그것에만 열중했다. 그리고 스스로 보람을 느꼈다. 그렇게 순수하게 심혈(心血)을 기울여 공에(工藝) 미술품을 만들어 냈다. 이 방망이도 그런 심정에서 만들었을 것이다. 나는 그 노인에 대해서 죄를 지은 것 같은 괴로움을 느꼈다. “그 따위로 해서 무슨 장사를 해 먹는담.” 하던 말은 “그런 노인이 나 같은 청년에게 멸시와 증오를 받는 세상에서 어떻게 아름다운 물건이 탄생할 수 있담.” 하는 말로 바꾸어졌다.

나는 그 노인을 찾아가 추탕에 탁주라도 대접하며 진심으로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다음 일요일에 상경(上京)하는 길로 그 노인을 찾았다. 그러나 그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 노인은 와 있지 아니했다. 나는 그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허전하고 서운했다. 내 마음은 사과드릴 길 없어 안타까웠다. 맞은쪽 동대문의 추녀를 바라보았다. 푸른 창공으로 날아갈 듯한 추녀 끝으로 흰구름이 피어나고 있었다. 아, 그때 그 노인이 저 구름을 보고 있었구나. 열심히 방망이를 깎다가 유연히 추녀 끝의 구름을 바라보던 노인의 거룩한 모습이 떠올랐다.(생략)

― 윤오영(尹五榮)의 <방망이 깎던 노인> 중 일부

윤오영의 대표작으로 알려진 수필이다. 손님이 아무리 바쁘다고 해도 허술한 물건을 내어줄 수 없다는 노인의 장인정신을 높이 사는 내용의 교훈적인 작품이다. 이 글은 방망이 깎던 노인에 대한 주제에 초점이 모아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과잉된 의식이 느껴지지 않은 채 차분히 전개되고 있음도 알 수 있다.

d. 무형식의 형식

수필의 특징 중의 하나는 ‘무형식(無形式)의 형식(形式)’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어떠한 일정한 틀에 얽매이지 않으면서도 그 나름대로의 골격을 갖춰야 하는 그런 장르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수필에 있어서, 읽는 이로 하여금 무엇인가를 느끼게 하고 감명을 준다거나,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그 ‘무엇’을 가리켜 주제라 한다면, 그 주제를 효과적으로 나타내기 위해서 조립을 구상하게 되는 그 설계 작업을 구성이라 한다.

수필은 그 구성의 형태가 확연히 나타나는 것은 아니지만, 마치 사람의 몸 속에 있는 뼈가 거죽을 둘러싼 피부에 가려 보이지 않으면서도 중심을 유지하게 되는 것처럼, 수필은 일정한 형식이 없는 것 같으면서도 형식이 내재되는 형태로서 그 ‘무형식의 형식’이 요구되는 장르라 할 수 있다.

형식이 없는 것 같으면서도 그 가운데 엄연히 형식이 존재하는 그 무형식의 형식은 수필의 자연스러운 특질로서의 장점이 되면서도 동시에 단점이 되기도 한다. 그 단점 중의 하나는 형식에 대해서 무관심하기 때문에 자칫 여기(餘技)로서의 수필에 머물 수 있는 위험을 안고 있는 점이다.

그러므로 수필을 창작하는 마음의 자세는, 여기로서 가볍게 여기는 자세를 지양하고, 형식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 같으면서도 엄연히 형식이 아닌 것 같은 형식이 요구된다는 인식과 함께 그것을 가볍게 여기지 않는 그러한 자세가 요구된다.

한 가지 음식을 만들어 먹는 데에도 요리에 관한 그 방법과 기술이 요구되듯이 수필에도 역시 형식이 없는 것 같으면서도, 그리고 그것을 그렇게 필요로 하지 않는 것 같으면서도 엄연히 그에 따르는 형식이 상존한다고 하는 인식이 필요하다.

‘딸각발이’란 것은 ‘남산골 샌님’의 별명이다. 왜 그런 별호가 생겼느냐 하면, 남산골 샌님은 지나 마르나 나막신을 신고 다녔으며, 마른 날은 나막신 굽이 굳은 땅에 부딪쳐서 딸깍딸깍 소리가 유난하였기 때문이다. 요새 청년들은 아마 그런 광경을 못 구경하였을 것이니, 좀 상상하기에 곤란할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일제 시대에 일인들이 게다를 끌고 콘크리트 길바닥을 걸어다니던 꼴을 기억하고 있다면, ‘딸깍발이’라는 명칭이 붙게 된 까닭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①

겨울이 오니 땔나무가 있을 리 만무하다. 동지 설상(雪上) 삼척 냉돌에다 변변치도 못한 이부자리를 깔고 누웠으니, 사뭇 뼈가 저려 올라오고 다리 팔 마디에서 오도독 소리가 나도록 온 몸이 곧아 오는 판에, 사지를 웅크릴 대로 웅크리고 꽁꽁 안간힘을 쓰면서 이를 악물다 못해 박박 갈면서 하는 말이 ‘요놈, 요 괘씸한 추위란 놈 같으니, 네가 지금은 이렇게 기승을 부리지마는, 어디 내년 봄에 두고 보자’하고 벼르더라는 이야기가 전하여 오지마는, 이것이 옛날 남산골 ‘딸깍발이’의 성격을 단적으로 가장 잘 표현한 이야기다. 사실로는 졌지마는 마음으로는 안 졌다는 앙큼한 자존심, 꼬장꼬장한 고지식, 양반은 얼어 죽어도 곁불은 안 쬔다는 지조(志操), 이 몇 가지가 그들의 생활 신조다.

실상 그들은 가명인(假明人)이 아니었다. 우리 나라를 소중화(小中華)로 만든 것은 어줍지 않은 관료들의 죄요, 그들의 허물이 아니었다. 그들은 너무 강직(剛直)하였다. 목이 부러져도 굴하지 않는 기개(氣慨), 사육신(死六臣)도 이 샌님의 부류요, 삼학사(三學士)도 ‘딸깍발이’의 전형(典型)인 것이다. 올라가서는 포은(圃隱) 선생도 그요, 근세로는 민충정(悶忠正)도 그다.②

현대인은 너무 약다. 전체를 위하여 약은 것이 아니라, 자기 중심, 자기 본위로만 약다. 백년 대계를 위하여 영리한 것이 아니라, 당장의 눈 앞의 일, 코 앞의 일에만 아름아름하는 고식지계(姑息之計)에 현명하다. 염결(廉潔;청렴하고 결백함)에 밝은 것이 아니라, 극단의 이기주의에 밝다. 이것은 실상은 현명한 것이 아니요, 우매(愚昧)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제 꾀에 제가 빠져서 속아 넘어갈 현명이라고나 할까. 우리 현대인들도 좀 ‘딸깍발이’의 정신을 배우자. 첫째 그 의기(義氣)를 배울 것이요, 둘째 그 강직을 배우자. 그 지나치게 청렴한 미덕은 오히려 분간을 하여 가며 배워야 할 것이다.③

― 이희승(李熙昇)의 <딸깍발이> 중 일부

 

‘딸깍발이’라는 별칭으로 표현된 조선 시대의 선비의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구체적인 실례를 들어 표현해 감으로써 실감을 자아내게 하는 글이다. 여기에서는 조선 시대의 선비의 모습이 작자의 예리한 통찰력으로 묘사되고 있다. ‘남산골 샌님’의 인물상, 생활상 등이 실감있게 표현된 이 수필은 결국 자기 중심, 자기 본위로만 알고, 극단의 이기주의에 밝은 현대인들에게 의기(義氣)와 강직(剛直) 등의 ‘딸깍발이’ 정신을 배우자고 역설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 형식이 있는가? 얼핏 보아 아무런 형식도 없어 보이고, 그저 붓이 가는 대로 쓰여진 듯한 글이지만, 다시 보면 형식이 없는 것 같으면서도 엄연한 형식이 그 이면에 작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선 말할 수 있는 것으로, ①②③이 그것이다.

①은 ‘딸깍발이’란 ‘남산골 샌님’의 별명이라는 소개요, ②는 딸깍발이의 인물상이라든지 생활상의 이모저모이며, ③은 ‘딸깍발이’의 정신, 즉 의기와 강직을 배우자는 주장으로 세 부분으로 되어 있다는 형식이다. 이와같이 형식이 없는 것 같으면서도 엄연히 형식이 존재하는 무형식의 형식이야 말로 수필 문장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e. 무기교의 기교

수필에는, 기교가 필요 없는 것 같으면서도 기교가 요구되는 ‘무기교(無技巧)의 기교(技巧)가 따른다는 점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자기의 사상 감정을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수필에도 기교(기교가 아닌 것 같은 기교)가 요구되는 것은 그것이 문학의 한 장르에 해당되는 성질의 것이기 때문이다.

수필이 문학의 한 장르로서 존재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설명의 나열에 그쳐서는 안 되고 표현되어져야 하는 바, 그 효과적인 표현을 위해서는 기교가 없는 듯 하면서도, 실은 없는 듯한 기교가 내재되어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수필에 있어서 기교가 두드러지게 밖으로 드러나 보이게 되면 수필답지 못한 것으로 이해되어 왔다. 그것은 꾸밈이 없는 듯한 자연스러움이 수필의 생명이요 강점으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기교가 없는 것 같으면서도 그 속에 내재된 기교, 그것은 마치 자연스럽게 다듬어진 홍도의 계란 같은 조약돌처럼,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이끄는 성격의 것이다.

기교가 없는 것 같은 기교가 내재되는 수필은 특별한 맛이 없는 듯 하면서도 은근한 방향(芳香)이, 즉 꽃다운 향기가 입술 속의 그 언저리에 감도는 듯한 차맛과도 같은 성격의 것이다.

나는 잔디 밟기를 좋아한다. 젖은 세사(가는 모래)를 밟기 좋아한다. 고무창 댄 구두를 신고 아스팔트 위를 걷기를 좋아한다. 아가의 머리칼을 만지기 좋아한다. 새로 나온 나뭇잎을 만지기 좋아한다. 나는 보드랍고 고운 화롯불 재를 만지기 좋아한다. 나는 남의 아내의 수달피 목도리를 만져 보기를 좋아한다. 그리고 아내에게 좀 미안한 생각을 한다.

나는 아름다운 얼굴을 좋아한다. 웃는 아름다운 얼굴을 더 좋아한다. 그러나 수수한 얼굴이 웃는 것도 좋아한다. 서영이 엄마가 자기 아이를 바라보고 웃는 얼굴도 좋아한다. 나 아는 여인들이 인사 대신으로 웃는 웃음을 나는 좋아한다.(생략)

고운 얼굴을 욕망 없이 바라다보며, 남의 공적을 부러움 없이 찬양하는 것을 좋아한다. 여러 사람을 좋아하며 아무도 미워하지 아니하며, 몇몇 사람을 끔찍이 사랑하며 살고 싶다. 그리고 나는 점잖게 늙어 가고 싶다. 내가 늙고 서영이가 크면 눈 내리는 서울 거리를 같이 걷고 싶다.

― 피천득(皮千得)의 <나의 사랑하는 생활> 중 일부

 

평범 속의 비범함을 본다. 기교가 보이지 않지만, 기교같지 않은 기교적인 요소가 모래밭에 섞여 있는 사금(砂金)처럼 도처에서 반짝이고 있다. 무기교의 기교의 극치다. 낱말의 선택과 그 낱말들의 적절한 활용이 자연스럽고도 유연하게 흐르는 글이다. 작자의 노후 생활 설계도라 할까, 희망사항이라 할까 아름답고 선량하게 살고자 하는 작자가 삶의 프리즘 빛깔을 다양하게 굴절시키며 펼쳐나가다가 점잖게 늙어가고 싶다고 귀결짓는, 약간은 산만하게 나열되어 있으면서도 선량하기 그지없는 소박한 꿈의 절창이라 할 수 있다.

 

f. 무질서의 질서

수필 문장은 ‘붓 가는 대로’ 쓰는 글이라는 통념으로 인해서 자칫 질서가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실은 질서가 없는 것 같으면서도 엄연히 질서가 존재하고, 또 그러한 무질서(無秩序)의 질서(秩序)가 요구되기도 하며, 논리에 구애됨이 없이 그저 붓이 나가는 대로 자연스럽게 쓰면 될 것 같으면서도 그 가운데에는 언어의 논리적인 질서가 요구된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수필뿐만이 아니라 모든 문학 형식은 언어의 질서화라 할 수 있다. 우리들의 일상적인 삶이란 잡다하고 무질서하기 이를 데 없다. 그 잡다하고 무질서한 사물이나 사건들을 어떠한 주제 아래 질서화하는 게 문학 형태라 할 수 있다. 수필 장르도 여기에 벗어나지 않는다. 다만 질서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거나 아예 질서를 필요로 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질서가 존재한다는 얘기다.

이는 마치 조립되어 세워진 조각품 속에 들어 있는 철근이 그 조각품에 가려져 보이지 않으면서도 그 조각품의 뼈대로서의 중심을 유지하는 것처럼 수필 역시 언뜻 보면 무질서해 보이지만 사실은 언어의 균형있는 논리적 질서 속에서 이루어진다.

가을을 안다는 것은 곧 그 가을과 겨울의 진실, 조락과 죽음, 그리고 그것을 넘어선 또 하나의 새로운 삶을 안다는 것이 된다. 아니 가을을 여름의 연장이나 변화로, 가을을 겨울이나 또 그 다음 계절의 전제로서 아는 것은 참 가을의 뜻을 아는 것이라 말할 수 없다. 가을 자체가 지닌 철리, 가을 자체가 하나의 엄연한 진실로서 우리에게 던져 주는 아주 정확한 섭리를 아는 일이 우리에겐 필요하다.

이 가을은, 이러한 인생적인 진실을 말해 주고, 가을의 조락과 가을의 그 물들음이 가져다 주는 정결하고 멋진 가을의 선물이 아닐 수 없다.

― 박두진(朴斗鎭)의 <가을 나무> 중 결말 부분

 

시인과 농부를 겸할 수는 없을까? 그렇게 뛰어나게 산수(山水)가 고운 곳이 아니래도 좋다. 수목이나 무성하여 봄 가을 여름 겨울로 계절의 바뀜이 선명(鮮明)하게 감수(感受)되는 양지바르고 조용한 산기슭이면 족하다. 이러한 곳에 나는 내가 내 손으로 설계한 한 일여덟 간쯤의 간소한 집을 짓고 내 힘으로 지을만한 얼마쯤의 전지(田地)를 마련해서 시업(詩業)과 농사를 겸한 생활을 해보고 싶다. 취미나 운치나 도피나 은둔의 일시적인 허영으로가 아니고 좀더 투철하게 이것이 내 천업(天業)이요 천직(天職)이니라 안심하고 조그만치의 억지나 부자유 부자연이 없이 훨씬 편하고 건실하고 즐거운 심정과 청신 발랄한 탄력(彈力)있는 의욕으로서의 詩․農一元살이를 해보고 싶은 것이다.

― 박두진의 <나의 생활설계도> 서두 부분

 

시를 창작하고 농산물을 애지중지 가꿔 키움으로써 어쩌면 나는 사랑으로 이 우주를 지으시고 역시 사랑의 능력으로 이를 섭리 주재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총의 사업도 가장 가까운 데서 가장 생생하게 참여하여 찬앙(讚仰)할 수 있는 그러한 분외(分外)의 특권과 기쁨까지를 누려볼 수가 있는 것이다. 땀을 흘리며 밭에 엎드려 일하는 쉰 일참에 시원한 바람마지 나무그늘 밑에 앉아 도시 혹은 다른 먼데 벗으로부터 보내 온 다정하고 도톰한 편지를 받아 뜯어보는 반가움이라든지 잉크 냄새도 싱싱한 신간 문예물 잡지 단권 책들을 흙묻은 손으로 받아보는 그 맛은 지금 상상만 해 보아도 만족 이상의 것이다. 옥수수나 감자나 쪄다 놓고 먹으면서 벌레 우는 여름 별 밤을 마당에 깔아논 멍석에 누워 같은 농사를 하는 이웃 친구들 혹은 노농(老農)들과 더불어 띠엄 띠엄한 소박한 얘기들을 구수하게 깊여가는 맛은 또 어떠한가. 냇물이 있으면 냇가에 나가 이들 농사하는 이웃 친구나 또는 멀리서 가끔씩 찾아와 주는 도시의 벗들과 더불어 잠뱅이 하나로만 훌훌 벗어 버리고, 엇! 피리피리……엇! 붕어붕어……하고 이리 닫고 저리 따라 그물밑이 묵근하도록 물고기를 몰아 잡아 서늘한 숲그늘에서 천렵(川獵)놀이를 하는 맛도 또 어떨 것인가.

- 詩․農一元살이.

어쨌던 먼 인류들의 첫 고향은 수림(樹林)이요 들이다. 더구나 내가 자란 모향(母鄕)은 먼지와 기름때가 묻은 도회(都會) 구석이 아니라, 하늘이 참 맑고 바람이 많고 별이 많고 나무가 많고 물이 많은, 새들이 많고, 꽃이 많고, 풀벌레가 많은 저 넓고 푸른 시골들! 조용한 산기슭에 조용하게 자리잡고 살아가보고 싶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일을 해보고 싶다. 손발이 톡톡 부르트도록 일을 해보고 싶다. 쩔쩔 끓는 들판에서 훅근훅근한 흙냄새에만 파묻히며 일을 해보고 싶다.

― 박두진의 <나의 생활설계도> 중 결말 부분

박두진 시인의 수필 <가을 나무>와 <나의 생활설계도>다. 질서가 없이 생각나는대로 쓰여진 글처럼 보여도 엄연히 질서가 정연한 수필이다. ‘무질서의 질서’라 할 수 있다. <가을 나무>는 경외의 눈으로 바라보면서 대자연의 천리(天理)를 깨닫는 내용을 사색적으로 토로한 글이다. 그가 주기적으로 순환하는 대자연을 겸허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를 받아들이는 종교적 차원에 기인되는 것으로 보인다.

젊은 시절에는 가을을 부정적인 면, 가령 잎새가 떨어지고 긴 동면으로 죽음의 계절에 직면해 가는 그러한 진실에 대해서는 기피했던 그가 나이가 들자 나서 자라고 시들어 죽는 것, 죽음으로부터 부활과 성장을 거쳐 영원한 대자연의 법칙에 순응하는 실감을 갖는다는 요지의 글이다.

위에서 소개한 <나의 생활설계도>는 인간이면 누구나 원하게 되는 전원생활을 꿈꾸는 글이다. “시인과 농부를 겸할 수는 없을까?”라는 말로 시작하여 양지 바르고 조용한 산기슭에 스스로 설계한 집을 짓고 논밭을 마련하여 자작농산물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시를 쓰고 싶다는 이야기다. 이 소박한 이야기 속에 사람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맛 나게 살아야 한다는 삶의 본질이 다루어지고 있다. 얼핏 보면 무질서하게 나열한 듯 보이지만, 서두와 결말의 동일성, 동시성으로 주제의 회귀 효과를 가져오는 등 질서화를 위한 여러 장치가 있음을 보게 된다.

 

g. 품위있는 문체

수필에서는 품위를 매우 중요시한다. 수필에 있어서의 품위는 작자의 인격에 직결되기 때문이다. 시나 소설의 경우는 생산적 상상을 통하여 허구적 언어로써 집을 짓기 때문에 작자의 인격적인 문제와 직접적인 상관성이 확연히 드러나지 않지만, 수필의 경우는 생산적 상상으로 허구적 언어의 집을 짓는 게 아니라 심적 나상(心的裸像), 즉 마음의 옷을 벗는 것처럼 작자 자신의 신변잡사(身邊雜事)라든지 미묘한 심리 세계까지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때문에 수필의 소재나 제재 등의 취사 선택에 따라서 작자에게는 치명적인 내용이 될 수도 있다.

그렇게 아름다운 고궁의 뜰을 거닐기 위해서는 우선 의상(衣裳)부터가 우아(優雅)해야 하고, 걸음걸이는 덤비거나 허둥대는 법이 없이 여유있고 맵씨있게 걸어서 품위를 잃지 않아야 함은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만일 요새 젊은이들처럼 배꼽이 드러나 보이는 배꼽티를 입고 흔들거리거나 건들거리면서, 또는 껌을 짝짝 씹기도 하고 뱉아가면서, 그렇게 히히덕거리면서 고궁의 뜰을 내달리는 식으로 수필을 쓴다면, 우선 품위를 잃기 때문에 독자로부터 외면당할 뿐 아니라 그 천박스러움이 작자의 인격에 치명적인 오점을 남기게 된다.

그러므로 품위를 잃지 않기 위해서, 또 품위있는 수필을 쓰기 위해서는 품위있는 남의 글을 많이 읽어서 고상하고 품위있는 인품을 길러가면서 품위를 잃지 않는 글을 쓰고자 노력해야 한다.

“나는 가난한 탁발승(托鉢僧)이오. 내가 가진 거라고는 물레와 교도소에서 쓰던 밥그릇과 염소젖 한 깡통, 허름한 요포(腰布) 여섯장, 수건, 그리고 대단치도 않은 평판(評判) 이것 뿐이오.”

마하트마 간디가 1931년 9월 런던에서 열린 제2차 원탁회의(圓卓會議)에 참석하기 위해 가던 도중 마르세이유 세관원에게 소지품을 펼쳐 보이면서 한 말이다. K.크리팔라니가 엮은 <간디 어록(語錄)>을 읽다가 이 구절을 보고 나는 몹시 부끄러웠다. 내가 가진 것이 너무 많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지금의 내 분수로는.

사실 이 세상에 처음 태어날 때 나는 아무 것도 갖고 오지 않았었다. 살만큼 살다가 이 지상의 적(籍)에서 사라져 갈 때에도 빈 손으로 갈 것이다. 그런데 살다 보니 이것저것 내 몫이 생기게 된 것이다. 물론 일상에 소용되는 물건들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없어서는 안될 정도로 꼭 긴요한 것들만일까? 살펴볼수록 없어도 좋을 만한 것들이 적지 않다.(생략)

우리들의 소유관념(所有觀念)이 때로는 우리들의 눈을 멀게 한다. 그래서 자기의 분수까지도 돌볼 새 없이 들뜨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언젠가 한 번은 빈 손으로 돌아갈 것이다. 내 이 육신마저 버리고 훌훌히 떠나갈 것이다. 하고많은 물량일지라도 우리를 어떻게 하지 못할 것이다.

크게 버리는 사람만이 크게 얻을 수 있다는 말이 있다. 물건으로 인해 마음을 상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한 번쯤 생각해 볼 말씀이다. 아무 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갖게 된다는 것은 무소유(無所有)의 역리(逆理)이니까.

― 법정(法頂)의 <무소유(無所有)> 중 서두와 결말 부분

 

법정 스님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이 글은 마하트마 간디의 어록을 소개하면서, 그리고 난(蘭)을 기르면서 매이게 되는 애착이 자신에게 속박이 된다는 그 깨달음의 과정을 잔잔한 필치로 토로한 글이다. 애착을 가졌었던 난분을 남에게 건네주고는 홀가분한 무소유의 해방감을 맛본다는 내용의 이 수필은 소유욕에 허덕이는 세속 인간들의 어리석음을 간접적으로 꾸짖는 셈이 된다.

산에서 살아보면 누구나 다 아는 일이지만, 겨울철이면 나무들이 많이 꺾이고 만다. 모진 비바람에도 끄떡 않던 아름드리 나무들이, 꿋꿋하게 고집스럽기만 하던 그 소나무들이 눈이 내려 덮이면 꺾이게 된다. 가지 끝에 사뿐 사뿐 내려 쌓이는 그 하얀 눈에 꺾이고 마는 것이다. 깊은 밤, 이 골짝 저 골짝에서 나무들이 꺾이는 메아리가 울려올 때, 우리들은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정정한 나무들이 부드러운 것에 넘어지는 그 의미 때문일까. 산은 한겨울이 지나면 앓고난 얼굴처럼 수척하다.

사아밧티의 온 시민들을 공포에 떨게 하던 살인귀(殺人鬼) 앙굴리마알라를 귀의(歸依)시킨 것은 부처님의 불가사의한 신통력(神通力)이 아니었다. 위엄도 권위도 아니었다. 그것은 오로지 자비(慈悲)였다. 아무리 흉악무도한 살인귀라 할지라도 차별없는 훈훈한 사랑 앞에서는 돌아오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바닷가의 조약돌을 그토록 둥글고 예쁘게 만든 것은 무쇠로 된 정이 아니라, 부드럽게 쓰다듬는 물결인 것을.

― 법정(法頂)의 <설해목(雪害木)> 중 결말 부분

 

이 수필은 노사(老師)로부터 들은 이야기로 서두를 장식한 다음, 부드러움이 만난(萬難)을 극복한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즉 노승(老僧)과 친분이 있는 사람이 ‘사람을 만들어 달라’는 글쪽지와 함께 망나니(자기 자식)를 보내었는데, 그 노승은 아무 말없이 몸소 저녁을 지어 먹인 뒤 대야에 따뜻한 물을 가득 떠다 주면서 씻으라고 하자, 그 더벅머리 소년은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 끝에, 모진 비바람에도 까딱 않던 아름드리 나무들이 눈이 내려 쌓이면 꺾이곤 한다는 예를 들었다. 그는 살인귀를 귀의시킨 것은 어떤 신통력이 아니라 자비였다고 하면서 “바닷가의 조약돌을 둥글고 예쁘게 만든 것은 무쇠로 된 정이 아니라 부드럽게 쓰다듬는 물결인 것을.” 하고 멋스러운 결구(結句)를 남기고 있는데, 이러한 수필을 많이 읽고 써보게 되면 품위있는 수필을 쓰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h. 멋스런 문체

김광섭(金珖燮)은 그의 <수필문학소고(隨筆文學小考)>에서 다음과 같에 피력하였다.

수필은 단순한 기록에 그쳐서는 우리의 흥미를 진작시키지 못할 것이다. 거기에는 유머가 있어야 하겠고 위트가 있어야 한다. 전자는 무의식적 속성에서 피는 꽃 같은 미소요, 후자는 지혜와 총명의 샘 같다. 이 천성스런 유머와 보석 같은 위트는 수필의 본성같이 인식되어 일대(一代) 수필가 램이나 해즈리트에게서 빛나고 있다.

여기에서도 유머와 위트를 강조하면서 빛나는 작품을 말하고 있다. 그 빛은 마치 강변의 사금처럼 평범 속의 비범함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정서적으로 스며든 따뜻한 심정이 흘러야 하고, 인생을 통찰하기도 하고 관조하기도 하는 시선과 미소가 있어야 하며, 중국요리의 톡 쏘는 겨자처럼 냉철한 비판정신과 함께 유머와 위트가 있어야 한다. 그러면서도 고상하고도 고결한 품위를 잃지 말아야 한다. 이러한 모든 요소를 종합할 때 결국은 우리 전래의 해학(諧謔), 즉 익살스런 농담이라든지, 순간적인 기지(機智)라든지 재치(才致) 등을 망라한 멋스런 문체로 활용할 수 있게 된다. 어떻게 하면 우리들은 매력이 넘치는 멋스런 문체를 구사할 수 있을 것인가? 다른 사람의 글들도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대체로 문명한 선진 제국민들은 무장한 군대가 앞선 뒤에 상인(商人)이 따라가거나 혹은 개개인이 피스톨, 그 밖의 호신용 무기를 몸에 지니고라야 외국 영지(領地), 특히 시베리아 같은 황야에 들어설 것인데, 조선인만은 조직체의 무력적 원호가 없을 뿐만 아니라, 그 몸에 아무런 보신 용구도 가진 것이 없이 다만 담뱃대 하나씩만 들고 편편 단신(片片單身)에 만주와 시베리아의 넓은 들을 횡행 활보(橫行闊步)하니 짐작컨대 그 담뱃대 속에는 반드시 비상한 장치가 있을 것이다. 평상시에는 담뱃대로 사용하나 일단 완급(緩急)한 경우에는 그 대 속에서 6연발 혹은 10연발의 탄환도 튀어나올 수 있도록 되었기에 저 담뱃대 하나만 스틱처럼 흔들면서 송화강을 오르내리고 바이칼 호를 넘나드는 것이 아니냐고 추측했더라 한다.

서양 제품(製品)의 활동사진을 한 번이라도 본 일이 있는 사람은 아라사 사람들에게 이만한 상상력이 있는 것도 별로 기이한 일이 아닌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저희들이 예리한 메스로써 담뱃대 하나를 해체(解體)하여 물뿌리, 대, 대꼭지의 세 부분을 세밀히 검토하여 보았다마는 예기하였던 발사장치는 기어이 찾아볼 수 없고 오직 악취 분분한 니코틴(댓진)만이 대 속에 차 있음을 발견하였을 때에 자못 실색(失色)하였더라고 한다. 듣고 다시 생각하면 과연 백의인(白衣人)들의 신천적 (信天的) 대담성도 놀랄만한 것이 없지 아니함을 스스로 깨닫는다. 우리의 무심한 담뱃대는 오랫동안 아라사 사람들에게 한 가지 수수께끼가 되었다.

― 김교신(金敎臣)의 <담뱃대> 중 전반부

 

우의(寓意)와 해학(諧謔)이 느껴지는 글이다. 아라사 사람들이 조선 사람의 담뱃대를 수상히 여겨 분해한 이야기로서 다분히 익살적인 이야기다. 조선 사람들이 담뱃대 하나만 든 채 겁도 없이 만주와 시베리아를 활보하는 것을 보고 아라사 사람들이 물뿌리, 대, 대꼭지, 이렇게 삼등분해 본 결과 그들이 예상하였던 발사장치는 볼 수 없었고, 악취 나는 니코틴(댓진)만이 대 속에 차있는 것을 보고 대경 실색하였다는 이야기로서 경이감을 자아내게 하는 글이다. 그러면서도 어딘듯 한 편에는 평화 지향의 순박한 우리 겨레의 민족성 같은 것을 은연 중에 암유로 드리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나는 일찍이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민화(民畵) 하나를 생각한다. 한 노옹(老翁)이 나무 밑에서 허연 배를 내놓고 낮잠을 자는데, 그 배 위에 까치 한 마리가 우뚝 서 있었다. 나는 신기한 그 상상화에 기쁨을 느꼈다. 민화란 어린 아이와 자유화(自由畵)같이 천진하고 기발한 데가 있어서 저런 재미있는 그림도 그려진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저 까치들을 보고 그것은 기발(奇拔)한 상상이 아니요, 사실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예전에 이지봉(李芝峯)이 정호음(鄭湖陰)의 “산과 물이 바람에 소리치며, 강물은 거세게 울먹이는데, 달은 외로이 비쳐 있다.”는 시를 보고 ‘강물이 거세게 이는데 달이 외롭게’라는 건 실경(實景)에 맞지 않는다고 폄(貶)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달이 고요히 밝은 밤 중에는 물결이 잔잔한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김백곡(金柏谷)이 황강역(黃江驛)에서 자다가 여울 소리가 하도 거세기에 문을 열고 보니 달이 외롭게 걸려 있었다. 그래서 비로소 그 구가 실경을 그린 명구(名句)인 것을 알았다는 시화(詩話)가 있다. 나도 그 민화가 실경인 것은 모르고 기상(奇想)으로만 여겼던 것이다.

그 태고연(太古然)한 풍경의 민화 한 폭이 다시금 눈 앞에 뚜렷이 떠오른다. 나무 밑에서 허연 배를 내놓고 누워서 잠자는 노옹(老翁), 그 배 위에 서 있는 까치 한 마리.

― 윤오영(尹五榮)의 <까치> 중 결말 부분

 

시적(詩的)이면서도 풍류적(風流的) 멋스러움이 해학적(諧謔的)으로 스며있는 작품으로, 시각적(視覺的) 형태의식 내지는 색채의식을 연상하게 하는 글이다. 여기에서는 길조(吉鳥)로 상징되는 까치의 이모저모를 피력하다가 ‘까치집’을 유추하고, 달빛과 바람을 받는 그 소채(산뜻하고 깨끗함)한 까치집에서 쇄락하고 풍류스러운 시인의 거처를 연상한다. 그 다음으로 일찍이 본 적이 있는 민화(民畵)를 연상하여 그 태고연(太古然)한 풍경으로, 나무 밑에서 허연 배를 내놓고 낮잠 자는 노옹(老翁)의 배 위에 우뚝 서 있는 까치를 떠올림으로써 ‘까치’의 이미지를 시적 풍류로까지 승화시키고 있다.

사랑은 겨울에 할 것이다 겨울에도 눈 오는 밤에. 눈 오는 밤이어든 모름지기 사랑하는 이와 노변(爐邊:화롯가)에 속삭이는 행복된 시간을 가지라. 어떤 이는 사랑이 나란히 걷는 중에서 생장한다고 말하여 혹시 봄 밤의 꽃동산을 기리고 혹시 가을날의 단풍길을 좋다 하지마는, 나는 단연코 설야(雪夜)의 노변(爐邊)을 주장하는 자이다. 왜 그러냐 하면 아무리 사랑은 시간을 초월한다 하더라도, 겨울 밤의 기나긴 것은 어느 편이냐 하면 둘의 마음을 든든케 할 것이요, 더구나 노변의 그윽한 정조와 조용한 기분이며 설야에 다른 내방자가 없으리라는 자신이 서로의 마음을 가라앉게 하기 때문이다. 사랑은 선(禪)과 같이 침착하고, 태연하고, 유유해야 할 것이다.

― 양주동(梁柱東)의 <사랑은 눈오는 밤에> 중 서두 부분

 

역시 은은한 멋스러움이 감도는 글이다. “사랑은 겨울에 할 것이다 ― 겨울에도 눈오는 밤에. 눈오는 밤이어든 모름지기 사랑하는 이와 노변(爐邊)에 속삭이는 행복된 시간을 가지라.” 이렇게 서두를 장식한 이 글은 사랑할 때는 화롯가의 그윽한 정조와 조용한 기분, 눈오는 밤에 다른 내방자가 없으리라는 자신이 서로의 마음을 가라앉게 하기 때문이라고 설야 노변(雪夜爐邊)의 사랑을 넌즈시 권장하고 있다.

이제까지 수필의 이모저모를 그 작법과 관련해서 알아 보았다. 수필은 개성적인 문장이면서 무형식의 형식, 무기교의 기교적 문장이요, 따끔한 비평도 있어야 하는 동시에 심미적 사상적인 사색의 깊이를 요하는 문장이며, 제재가 다양한 문장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또한 자기의 생활과 밀접한 글이면서도 그 속에 철학이 있어야 하고, 자기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면서도 분명히 알 수 없는 여운과 함께 품위를 잃어서도 안 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따라서 수필은 누구나 쓸 수 있는 글이면서도 빼어나게 잘 쓰기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7. 수필의 묘사

수필에 있어서도 묘사가 요구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대상을 표현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설명’도 ‘묘사’일 수 있다. 그러나 설명에 그친다면 표현의 효과를 가져오기에는 부족함이 있을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수필에도, ‘무기교의 기교’라는 말과 같은 이치로 묘사에 별로 신경 쓰는 것 같지 않은 묘사가 요구된다 하겠다.

이는 마치 요란하게 화장을 하는 게 아니고, 화장하는 것 같지 않게 화장하는 여인처럼, 별로 묘사하는 것 같지 않은 묘사가 요구된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수필은 어떤 요란한 엄살이나 가식을 필요로 하지 않는 진솔성의 문학이기 때문이다.

묘사(描寫)란 대상을 있는 그대로 감각적으로 그리는 서술 양식의 일종인데, 대상을 묘사한다는 것은 세부(細部)의 전부를 열거한다는 뜻이 아니라, 전체와 부분이라든지, 부분과 부분의 관련을 가지고 유기적인 통일체로 표현한다는 뜻이다.

묘사는 체제(모범적인 유형이나 양식)와 조성(組成)을 고려해야 하는데, 체제(pattern)는 세부를 질서화하여 전체적 통일을 이루는 것이요, 조성은 세부 상호간의 밀접한 관계를 가지게 하는 것이다. 묘사의 특징은 구체성과 감각성이며, 묘사의 종류에는 ‘설명적 묘사’와 ‘암시적 묘사’의 두 가지가 있다.

 

a. 설명적 묘사(說明的描寫)

겨울철에 보리밥을 먹고 보리도 떨어지면 시래기 죽을 끓여 먹고 와서는 이밥이나 두둑히 먹고 온 듯이 목소리를 높여 글을 가르친다. 서너 시간 동안이나 칠판 밑에 꼿꼿이 서서 선머슴 아이들과 소견 좁은 계집애들과 아귀다툼을 하고 나면 상체의 피가 다리로 내려 몰리고 허기가 심해져서 나중에는 아이들의 얼굴이 돋보기 안경을 쓰고 보는 듯하다고 한다. 그러한 술회를 들을 때, 그네들을 직접으로 도와 줄 시간과 자유가 아울러 없는 나로서는 양심의 고통을 느낄 때가 많다.

표면에 나서서 행동하지 못하고 배후에서 동정자나 후원자 노릇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여 있기 때문에 곁의 사람이 엿보지 못할 고민이 있다. 그네들의 속으로 벗고 뛰어들어서 동고동락을 하지 못하는 곳에 시대의 기형아인 창백한 인텔리로서의 탄식이 있다.(생략) 적지않이 탈선이 되었지만 백 가지 천 가지 골이 아픈 이론보다도 한 가지나마 실행하는 사람을 숭앙하고 싶다. 살살 입술발림만 하고 턱 밑의 먼지만 톡톡 털고 앉은 백 명의 이론가, 천 명의 예술가보다도 우리에게는 단 한 사람의 농촌 청년이 소중하다. 시래기 죽을 먹고 겨우내 ‘가갸 거겨’를 가르치는 것을 천직으로 의무로 여기는 순진한 계몽운동자는 히틀러, 뭇솔리니만 못지 않은 조선의 영웅이다. 나는 영웅을 숭배하기는 커녕 그 얼굴에 침을 뱉고자 하는 자이다. 그러나 이 농촌의 소영웅들 앞에서는 머리를 들지 못한다. 그네들을 쳐다볼 면목이 없기 때문이다.

― 심훈(沈薰)의 <조선의 영웅> 중 일부

 

심훈 하면 <상록수>라는 소설과 <그날이 오면>이라는 시를 쉽게 떠올리게 된다. 그만큼 이 글의 작자는 1930년대 농촌 계몽운동을 위해서 혼신을 다한 열혈 청년임을 짐작하게 된다. 피압박 민족의 빈곤과 무지를 청산해야 한다는 당면 과제를 직시하는 지식인의 목소리가 참신하고 건강하다.

작자는 “겨울철에 보리밥을 먹고 보리도 떨어지면 시래기죽을 끓여 먹고 와서는 이밥이나 두둑히 먹고 온 듯이 목소리를 높여 글을 가르친다.”고 농촌 계몽을 위해 야학을 열고 희생적인 봉사를 아끼지 않는 청년들에게 마음 깊이 우러나오는 찬사를 아낌없이 보내면서도 그들과 함께 동고동락하지 못하는 시대의 기형아인 창백한 인텔리로서의 탄식을 토로하고 있다.

“살살 입술발림만 하고 턱밑의 먼지만 톡톡 털고 앉은 백 명의 이론가, 천 명의 예술가보다도 우리에게는 한 사람의 농촌 청년이 소중하다.”고 역설하는 그는 나약한 자아의 성찰과 비행동적인 예술가 부류를 비판하고, 소위 농촌의 소영웅이라고 일컫는 실천가로서의 농촌 계몽자들에 대한 찬사를 아낌없이 보냄으로써 건전한 삶의 태도와 함께 민족주의적 신념을 설명적 묘사로 내비치고 있다.

 

b. 암시적 묘사(暗示的描寫)

참새들은 앉기가 무섭게 다시 피곤한 나래를 쳐야 한다. 어디를 가도 ‘우여, 우여’가 있다. ‘꽝꽝’이 있다. 참새들은 쌀알 하나 넘겨 보지 못하고 흑사병(黑死病) 같은 ‘우여, 우여’ ‘꽝꽝’속을 헤매는 비운아(悲運兒)들이다. 사실 애놈들도 고달플 것이다.

나와 내 당나귀는 이 광경을 한참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나귀 등에서 짐을 내려 놓고 그 속에서 오뚝이 하나를 냈다.

“얘들아, 너들 이리 와 이것 좀 봐라.” 하고 나는 ‘오뚝이’를 내들고 애놈들을 불렀다. 애놈들이 모여들었다.

“얘들아, 이놈의 대가리를 요렇게 꼭 누르고 있으면 요 모양으로 누운 채 있단 말이다. 그렇지만 한번 이놈을 쑥 놓기만 하면 요것 봐라, 요렇게 발딱 일어선단 말이야.”

나는 두 서너 번 오뚝이를 눕혔다 일으켰다 하였다.

“이것을 너들에게 줄 테다. 한데 씨름들을 해라. 씨름에 이긴 사람에게 이것을 상으로 주마.”

애놈들은 날래 수줍음을 버리지 못한다. 어찌어찌 두 놈을 붙여 놓았다. 한 놈이 ‘아낭기’에 걸려 떨어졌다. 관중은 그 동안에 열이 올랐다. 허리띠를 고쳐 매고 자원하는 놈이 있다. 사오 승부(勝負)가 끝났다. 아직 하지 못한 애놈들은 주먹을 쥐고 제 차례 오기를 기다렸다. 승부를 좋아하는 저급한 정열은 인류의 맹장(盲腸) 같은 운명이다.

결국 마지막 한 놈이 이겼다. 나는 씨름의 폐회(閉會)를 선언하고 우승자에게 오뚝이를 주었다. 참새들은 그 동안에 배가 불렀을 것이다.

이리하여, 나는 천석꾼의 벼 두 되를 횡령(橫領)하고 재산의 7전(錢) 가량을 손(損)하였다. 천 마리의 참새들은 오늘 밤 오래간만에 배부른 꿈을 꿀 것이다.

― 김상용(金尙鎔)의 <백리금파(百里金波)에서> 중 후반부

 

벼가 잘 익어서 온 들판이 황금빛 물결로 뒤덮여 있는 평야지에서 당나귀를 타고 가던 작가는 소년들에게 쫓기어 쌀알 하나 넘겨 보지 못하고 헤매는 새떼를 위하여 소년들에게 씨름을 붙여 새들로 하여금 포식하게 한다는 이야기다. 실로 시인다운 마음에서 유로된 언행이 아닐 수 없다. 여기에서의 새떼는 힘없이 쫓기는 어떤 이들을 상징하는 것으로 유추할 수 있는 암시적 묘사로 되어 있지만, 바람직한 감상을 위해서는 너무 따질 게 아니라 이 정도에서 끝내고 상상의 여지를 남겨 두는 게 바람직하겠다.

봄의 새벽은 준엄한 정결성보다는 식물성적(植物性的)인 윤기를 간직하고 있다. 말하자면 복숭아꽃이나 오얏꽃 가지 사이로 열리는 새벽은 부드러우면서도 찬란하다. 하지만 여름은 부드러움보다는 시원하게 찬란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가을의 새벽은 부드럽거나 시원하기보다는 투명하게 아름답다. 하지만 겨울의 새벽은 식물성적인 그것이기보다는 광물성적(鑛物性的)인 것으로서 냉혹하리만큼 정결한 광휘(光輝)와 찬란함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정신의 장미여

너의 이마를

무수한 보석으로

장식하였다.

이것은 겨울 새벽을 노래한 시구이지만, 과연 겨울의 새벽은 다이아몬드의 그것에서 발하는 그와 같은 찬란함의 차갑고도 빛나는 광명성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정신적인 공간에 서리는 밝음의 정결성을 간직하고 있다.

― 박목월(朴木月)의 <겨울 새벽> 중 일부

그것은 나의 삶의 가장 밑바닥에 흐르는 서러움의 물길이다. 이 물길 위에 배를 띄우듯 어줍잖은 몇 편의 시……. 그것이 나의 숨쉬는 시의 세계일 것이다. 가로등이 비쳐주는 이러한 빛의 둘레를 완전히 벗어날 때 앞이 아득한 암흑의 벽을 느끼며 어두운 앞길에 또 하나의 가로등을 찾아보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보아도 가로등이 없을 경우 아득한 어둠은 영원한 어둠이 아닐까보냐. 이것은 나의 마지막이다.

나의 일생은 언제나 적당한 거리에 가로등이 켜 있는 길이었다. 그리고 돌이켜 보면 지나온 그 길 위에 그것은 열을 지어서 스크린의 어느 한 장면처럼 끝없이 뻗쳐 있다. 또한 나의 미래도 설사 아무리 절망하기로서니 늘 가로등이 대목마다 켜 있는 길일 것이다. 내가 마음 속에 신을 잃지 않는 한, 혹은 시(詩)를 놓치지 않는 한, 그래서 나는 창백한 이마에 가로등의 그 쓸쓸한 불빛의 키스와 축복을 받으며 외롭게 흐뭇한 밤길을 가게 될 것이다.

― 박목월(朴木月)의 <가로등> 중 결말 부분

 

박목월의 <겨울 새벽>과 <가로등>을 살펴보았다. <겨울 새벽>의 경우, 작자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사계절 새벽의 성격을 피력한 다음, 주로 ‘겨울 새벽’에 대하여 찬탄을 금치 못하고 있다. 봄의 새벽은 식물성적 윤기를 간직하므로 부드러우면서도 찬란하거니와 여름의 새벽은 시원하게 찬란하며, 가을의 새벽은 투명하게 아름답고, 겨울의 새벽은 광물성적인 것으로서 냉혹하리만큼 광휘와 찬란함을 지니게 된다고 하면서, 특히 겨울 새벽은 다이아몬드에서 발하는 찬란함의 차갑고도 빛나는 광명성을 가지게 되는 것이라고 극찬하고 있다. 시인의 시적 감수성에서 감지되는 심미안의 감각과 통찰력이 놀라운 글이다.

다음 <가로등>은 작자의 시적인 언어로 서정성 높게 표현한 글이다. 그는 ‘가로등’을 ‘꿈의 등불’이라고 표현하면서 낭만성을 도출시키고, 자기 인생에 대한 신선한 해석을 내린다고 할까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그것은 “나의 일생은 언제나 적당한 거리의 가로등이 켜 있는 일이었다.”에서 도출시켜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며 암시적 묘사로 결말짓는데, 그의 이 두 편의 수필은 겨울 새벽과 겨울 밤이라는 시간이 선택되어 있어 작자의 겨울 애호 취향을 은연중에 반영하고 있기도 하다.

 

c. 자연환경 묘사(自然環境描寫)

사람으로서도 아름다운 사람이 되려면 반드시 사람 사이에 살고, 사람 사이에서 울고 웃고 부대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때, 푸른 하늘과 찬란한 태양이 있고, 황홀(恍惚)한 신록이 모든 산, 모든 언덕을 덮는 이 때, 기쁨의 속삭임이 하늘과 땅, 나무와 나무, 풀잎과 풀잎 사이에 은밀히 수수(授受)되고, 그들의 기쁨의 노래가 금시라도 우렁차게 터져 나와 산과 들을 흔들 듯한 이러한 때를 당하면, 나는 곁에 비록 친한 동무가 있고, 그의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할지라도, 이러한 자연에 곁눈을 팔지 않을 수 없으며, 그의 기쁨의 노래에 귀를 기울이지 아니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또, 어떻게 생각하면, 우리 사람이란 세속에 얽매여, 머리 위에 푸른 하늘이 있는 것을 알지 못하고, 주머니의 돈을 세고, 지위를 생각하고, 명예를 생각하는 데 여념이 없거나, 또 오욕 칠정(五欲七情)에 사로잡혀, 서로 미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싸우는 데 마음에 영일(寧日)을 가지지 못하는 우리 사람이란, 어떻게 비소(卑小)하고 어떻게 저속한 것인지, 결국은 이 대자연의 거룩하고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조화를 깨뜨리는 한 오점(汚點) 또는 한 잡음 밖에 되어 보이지 아니하여, 될 수 있으면 이러한 때를 타서, 잠깐 동안이나마 사람을 떠나, 사람의 일을 잊고, 풀과 나무와 하늘과 바람과 한 가지로 숨쉬고 느끼고 노래하고 싶은 마음을 억제할 수가 없다.

그리고 또, 사실 이즈음의 신록에는, 우리의 마음에 참다운 기쁨과 위안을 주는 이상한 힘이 있는 듯하다. 신록을 대하고 있으면, 신록은 먼저 나의 눈을 씻고, 나의 머리를 씻고, 나의 가슴을 씻고, 다음에 나의 마음의 모든 구석구석을 하나하나 씻어낸다. 그리고 나의 마음의 모든 티끌 - 나의 모든 욕망과 굴욕과 고통과 곤란이 하나하나 사라지는 다음 순간, 별과 바람과 하늘과 풀이 그의 기쁨과 노래를 가지고 나의 빈 머리에, 가슴에, 마음에 고이고이 들어앉는다.

― 이양하(李敭河)의 <신록예찬(新綠禮讚)> 중 일부

 

이 글은 작자의 대표적인 수필로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예찬한 글이다. 가령 “푸른 하늘과 찬란한 태양이 있고, 황홀한 신록이 모든 산, 모든 언덕을 덮는 이 때, 기쁨의 속삭임이 하늘과 땅, 나무와 나무, 풀잎과 풀잎 사이에 은밀히 수수(授受)되고 그들의 기쁨의 노래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게 된다.”거나 “신록이 먼저 나의 눈을 씻고, 나의 머리를 씻고, 나의 가슴을 씻고, 나의 마음의 모든 티끌, 별과 바람과 하늘과 풀이 그의 기쁨과 노래를 가지고 나의 빈 머리에, 가슴에, 마음에 고이고이 들어앉는다.”는 점층적 열거법적 표현이 바로 그것이다. 대자연의 사물들이 서로 상대기준을 조성하여 잘 주고 잘 받는 수수작용을 전개한다고 하는 여기에 아름다움의 조화의 미로서의 극치가 나타난다.

늙어갈수록 더욱 싱싱한 윤기를 뿜고 노기(老氣)나 추태보다 어딘지 더욱 유현(幽玄)하고 고귀한 운치를 띤 것이 소나무다. 불국사나 통도사 같은 고찰의 입구나 경내 꽤 연치(年齒)를 먹은 소나무 숲을 볼 수 있다. 용이라도 타고 올라가는 듯 비늘을 틀고 몇 굽이 완만하게 휘어 솟은 큼직한 소나무, 정상(頂上)에서 온몸의 모든 정기를 활짝 다 펴낸 듯이 하늘의 신성을 모두 떠받치고 있는 모습은 탈속한 운기(韻氣)를 더해 준다.

얼마 전에 강릉에 간 일이 있다. 시내에서 경포대로 가는 도로변에는 소나무를 가로수로 심었다. 가로수라고 하면 플라타나스, 포플러, 남쪽으로 내려가면 시다나무 ― 이런 것을 연상하게 되지만 이곳 가로수 소나무는 해풍 때문에 잘 자라지는 않았으나 예닐곱 살쯤 먹은 듯한 소나무가 띄엄띄엄 길 양쪽으로 늘어서 있는 모습은 확실히 한국적인 정경의 한 단면임이 틀림없다.

동구나 인적이 드문 길가의 언덕바지에 푸른 긴 가지를 늘어뜨리고 서 있는 노송은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그 밑에 한 덩어리 유석(庾石)이 있고 그 돌 위에 가끔 마을 노인네들이 앉아 쉬어 가곤 한다. 휘늘어진 낙락장송, 그 가지 위에 몇 마리의 학이 날아 앉을 때에는 선기(仙氣)가 감도는 한 폭의 동양화다.

옛 가사나 시조에는 비록 사군자(四君子)에는 들지 못했으나 소나무를 읊은 것이 많다. “기암은 층층, 장송은 낙락, 에이 굽으러져 광풍에 흥을 겨워 우줄우줄 춤을 춘다”는 유산가(遊山歌)의 한 대목이다. “창창송백은 납설(臘雪)을 띄어 있고”는 사시풍경가의 한 대목이다. 이 모두 소나무의 흥취와 멋을 읊은 것이다.

“이 몸이 죽어가서 무엇이 될고 하니 봉래산 제일봉에 낙락장송 되어있어 백설이 만건곤할 제 독야청청하리라”는 성삼문(成三問)의 절의가가 아닌가. 흔히 송백의 높은 절개를 의미하는 취죽송백(翠竹松柏)을 찬양하고 있지만, 옛 선비, 옛 사람은 소나무에서 절의(節義) 아니면 죽음도 불사하는 절개를 배웠던 것이다. 사람은 자연에서 배우는 것이 많지만, 특히 소나무에서 인간으로서의 가장 고귀한 덕을 배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소나무는 한국인의 벗이다. 화려한 사람을 유혹하는 꽃도 없고, 굶주린 사람을 배부르게 하는 과일도 없지만, 보면 볼수록 친밀감을 갖게 한다. 소나무는 우리 민족과 더불어 영원히 숨쉬고 영원히 자라고 푸름을 유지한 채 민족의 얼을 상징하는 친구로 남을 것이다.

― 문덕수(文德守)의 <소나무> 중 후반부

 

소나무를 좋아하는 작자는 이 나무를 가리켜 ‘한국의 나무’로 지칭해 마지 않을 정도로 칭송해 마지 않는다. 사람은 늙으면 추해지기 쉽지만, 늙어 갈수록 더욱 싱싱한 윤기를 뿜고 더욱 유현하며 고귀한 운치를 더하는 소나무는 탈속한 운기를 더한다거나 죽음도 불사하는 한국인의 절개, 의지, 지조, 영혼, 그리고 예술적 아름다움을 표상한다고 그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여기에서는 소나무와 관련된 자연 환경을 묘사하면서, 소나무는 한국인의 벗으로서 영원히 푸르름을 유지한 채 언제까지나 함께 산다는 상징적 존재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d. 사회환경 묘사(社會環境描寫)

12월 28일 - . 피난 열차가 영등포를 떠나 사흘째 되는 날 첫 새벽에 경북 왜관역에 다았다. 이미 그 전날 내 앞에 앉았던 어느 어머니의 품에서 난 지 백일 남짓한 어린아이 하나가 얼어 죽었다.

왜관에 닿은 기차는 두 시간이 가고 세 시간이 지나도 떠날 생각을 않는다. 사람들은 기차에서 내려서 솥과 남비에다 쌀을 담아 밥들을 짓는다. 먹어야 산다는 이 절실한 상식이 에누리없이 전개되는 장면이다. 해가 지도록까지 진종일을 기차가 거기 머무는 동안에 밥을 지은 솥과 남비의 수효는 아마 5, 6백으로도 못다 헤었을 것이다. 역전에 우물 하나가 있었다. 별로 크지 않으나 깊이는 서너길 남짓 - 워낙 많은 사람들이 길어 내는 통에 그래도 처음에는 맑던 물이 나중엔 시뻘건 황토물이 되었다. 그 시뻘건 물로 밥을 짓고 국을 끓였다. 그러나 내 이야기는 그런 피난 스켓치가 아니다. 그날 이후 우물 가에서 내가 본 슬픈 광경 하나가 염두를 떠나지 않는다.

처음 물을 길을 때 역 부근 민가에서 두레박을 빌려서 썼다. 얼마 안 되어서 서로 먼저 쓰겠다고 다투던 끝에 어느 사나이 손에 쥐어졌던 두레박줄이 미끄러져서 물 속에 떨어졌다.

그 사내는 “줄이 있어야 건지겠는데 - “하고 슬그머니 그 자리를 떠나더니 차가 움직일 때까지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그까짓 책임 추궁 보다는 사람마다 물쓰기가 바쁜지라 두레박을 제 손으로 만들어 쓰게 되었다.

바께스에 줄을 단 것, 깡통에 구멍을 뚫어서 급조(急造)한 것, 남비 손잡이에다 끈을 맨 것, 별의별 두레박이 다 나왔다. 피난 가는 이들의 짐 속에서 웬 끈들은 그렇게 나오는 것인지. 승마줄, 보자기를 싸매었던 헝겁끈, 가다가는 어디에서 생긴 것인지 전등에 쓰는 코드며 철사들이 두레박 끈으로 등장했다.

한 가지 특색은, 제가 만든 두레박은 절대로 남에게 빌려 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두레박 없는 이들이 열 번 스무 번 애걸복걸해도 물 한 바가지를 얻어 볼 수 없다. 할 수 없이 단념하거나, 제 손으로 두레박을 새로 만들거나 - 그러나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두레박도 역시 그 한 사람이 쓰고는 가져가 버린다.

나는 넋 잃은 사람처럼 우두커니 서서 그 광경을 어이없이 쳐다보고만 있었다. 두레박 하나만 있으면 만 사람이 쓰고도 남을 것이다. 떨어뜨릴 염려가 있다면 우물 가에 있는 기둥에다 끈을 매어 두면 될 것이다.

― 김소운(金素雲)의 <두레박> 중 전반부

 

e. 인물 및 성격 묘사(人物․性格描寫)

우리 고향에서는 댁(宅)을 떡이라고 한다. 닥실떡이란 우리 마을에 사는 구십 넘은 노인의 택호(宅號)이다. 본래 그가 닭실이라는 마을에서 우리 마을로 시집을 왔는데, 지금은 그 부락을 유곡(酉谷)이라 부르지만 우리 클 때만 해도 닭실이라 불렀다. 닭실떡은 얼굴이 가무잡잡한 데다 허스키한 목소리를 가졌기 때문에 요즘 사람들이 마이크떡이라고도 한다.

우리가 한창 개구장이 시절에 닭실떡을 보고, “마이크떡 진지 잡슈시깃는기라우.”하고 꿈쩍 장난기처럼 인사를 하면 닥실떡은 화가 나서, “이 개좃 가랭이를 짝 잡아 찢을 놈이, 어떤 문뎅이 겉은 년이 조런 개자식을 내질렀어!” 하고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돌멩이나 막대기를 던지면서 쫓아왔다. 닭실떡은 욕을 참 잘 한다. 욕을 해도 육두문자로 여자답지 않게 잘 한다.

내가 어렸을 때 그 집 아들을 때려 눈두덩이 부어 있었다. 닭실떡은 파르르 화난 얼굴로 입가에 거품을 튀기며 우리 대문을 들어서더니, “종태 이놈 어디 갔어. 속곳가랭이다 잡아넣고 오줌을 질근질근 쌀놈의 자식, 응 어디갔어?” 하고 우리 마당 가운데에 와서 고래고래 악을 썼다.

저녁 밥을 짓던 우리 어머니는 영문도 모르고, “닭실댁 왜 그리어……” 하고 말했다.

“왜 그리어고 개좃이고 내새끼 눈깔을 보랑개. 응, 요놈의 자식 생기기는 호롱딱쟁이 겉은 것이 이리 나와! 이놈아!” 하고 더욱 살기등등하게 고함을 질렀다. 나는 그때야 방문을 열고 나와 마루 난간에 서서 겁에 질린 채 닭실떡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를 보던 닭실떡은 우루루 달려들며 “이놈! 왜 내 새끼를 때렸어 응. 이 좃대가리에 못을 박을 놈아.” 라고 나의 멱살을 잡으려는 순간 나는 잽싸게 닭실떡의 가랭이 사이로 빠져 도망을 쳤다.

그때 닭실떡은 마당 가운데 바쳐있던 줄작대기를 들고 나를 향해 땅바닥을 치며 “저놈이 조 내 씹가랭이 속으로 빠져 나가네. 조! 기름에 튀긴 생쥐같은 놈이! 어뜬 놈이 좃대가리를 내둘러 저런 문둥이 콧구멍같은 놈을 내질렀어……” 라고 한바탕 소란을 피워 온동네가 떠들썩 했다.

나는 빙게빙게 뒷산으로 도망가 어스름이 져서야 다시 집으로 내려왔었다. 그때 우리 할아버지는 늦게 쇠깔망태기를 느르추분하게 맨채 소를 앞세우고 들어왔다. 만약 할아버지가 그 광경을 보았다면 늘 하시던 버릇으로 종아리 열 대는 맞았을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닭실떡은 닭실떡대로 참 재미있는 인간미를 가지고 있기도 했다. 욕을 잘하고 성질이 화닥해서 그렇지 때로는 다정하기도 했다. 내가 밑타진 중우를 입고 다닐 때 나의 고추 자지는 늘 나와 있었다.

닭실떡은 간혹 내 고추자지를 만지작거리며, “요놈 씨자지가 방아고같이 잘 생겼어.” 하고 닭실떡 특유의 웃음으로 킥킥거리며 말했다. 아닌게 아니라 나는 어머니 배속에서부터 포경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아들 삼형제나 두었으니 그때 닭실떡이 말한대로 씨자지 잘 생긴 값을 한 셈이다.

닭실떡을 일명 보쌈떡이라고 부른다. 그것은 닭실떡이 지닌 기구한 운명이기도 하다. 본래 닭실떡은 닭실에서 아랫마을 구씨네 집으로 시집을 왔었다. 체구도 건장하고 키도 날씬하여 시집 오자마자 구씨네 집에서 사랑을 받았다. 얼굴이 예쁜 편은 아니지만 하는 행동에 재미가 있어 남성을 매혹하는 매력이 있었다. 그러나 그녀에게도 기구한 운명은 어쩔 수 없었다.

어느 해 여름, 남편을 사별한 것이다. 열 아홉 살에 시집와 사년 사이에 남매를 낳고 스물 한살 꽃다운 청춘에 과부가 된 것이다. 그녀는 오년 동안을 홀로 살아 왔다. 그러던 그 해 겨울에 우리 마을 서씨네 집에서 보쌈을 해왔다.

― 김종태(金鍾太)의 <닭실떡> 중 전반부

 

‘닭실떡’에 대한 인물 및 성격 묘사가 구체적이어서 실감을 자아내게 하고 있다. 닭실떡에 대한 용모, 풍채, 언행, 성격 등이 적나라하게 펼쳐지고 있어서 재미를 주지마는 거침없는 욕설의 표현으로 품위를 감안하는 데에는 문제가 있다. 그러나 어느 한 쪽이 두드러지면 다른 면이 그 반대급부로 나타난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러한 수필은 다양성이나 개성적인 면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f. 철학적 사색(哲學的思索)

긴 수필로 볼 수도 있고, 수필문체로 쓴 소설로 볼 수도 있는 일본의 유명한 나쓰메 소세끼(夏目漱石)의 <풀베개(草枕)>를 살펴 보고자 한다.

산(山)길을 오르면서 이렇게 생각했다.

이지(理智)로 움직이면 모가 나고, 감정에 치우치면 흘러버린다. 고집을 세우려면 막혀버린다. 여하간에 세상은 살기가 어렵다.

살기가 어려워지면, 살기 좋은 곳으로 이사하고 싶어진다. 그러나 어디로 이사를 해 보아도 살기가 어렵다고 하는 것을 깨달았을 때 거기에서 시가 생기고 그림이 그려진다.

세상을 만든 것은 신(神)도 아니고 귀신도 아니다. 역시 근처에 사는 허술한 사람들이다. 허술한 사람들이 만들어 낸 세상이 살기 힘들다고 해서 찾아갈 나라도 없을 것이다. 그런 나라가 있다며는 사람이 아닌 것들의 나라로 갈 수 밖에 없다. 사람이 아닌 것들의 나라는 사람의 세상 보다도 더욱 살기가 어려울 것이다.

이사할 수 없는 세상이 살기 어려워지며는 살기 어려운 곳을 어느 정도 고쳐서 잠시 동안의 생명을 잠시 동안이라도 살기좋게 할 수 밖에는 없다. 여기에서 시인이라고 하는 천직(天職)이 생기고, 여기에서 화가라고 하는 사명이 주어진다. 모든 예술인들은 이 세상을 너그럽게 만들고, 사람의 마음을 풍부하게 하기 때문에 귀중하다.

― 나쓰메 소세끼(夏目漱石)의 <풀베개(草枕)> 중 서두 부분

철학적 사색의 흐름이다. 소설에서 즐겨 다루는 행동적인 면은 보이지 않은 채 관념이 나열되어 있다. 이 글은 인생의 길잡이가 될 정도로 교훈적이며 박식하기 때문이 애독되고 있다. 수필이면서 소설이요, 소설이면서 수필이다. 이 짤막한 서두의 한 부분만을 살펴 보아도 작자가 인생에 대하여 얼마나 깊이 생각하고 있는지, 그리고 충실한 삶을 통한 예지를 피력하고 있는지를 짐작하게 될 것이다.

 

g. 서정적 행동

내가 잠시 낙향(落鄕)해서 있었을 때의 일.

어느 날 밤이었다. 달이 몹시 밝았다. 서울서 이사 온 웃마을 김군을 찾아갔다.

대문은 깊이 잠겨 있고 주위는 고요했다. 나는 밖에서 혼자 머뭇거리다가 대문을 흔들지 않고 그대로 돌아섰다.

맞은편 집 사랑 툇마루엔 웬 노인이 한 분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서 달을 보고 있었다. 나는 걸음을 그리로 옮겼다. 그는 내가 가까이 가도 별 관심을 보이지 아니했다.

“좀 쉬어가겠습니다.” 하며 걸터앉았다. 그는 이웃 사람이 아닌 것을 알자,

“아랫마을서 오셨오?” 하고 물었다.

“네, 달이 하도 밝기에…….”

“음! 참 밝소.” 허연 수염을 쓰다듬었다. 두 사람은 각각 말이 없었다. 푸른 하늘은 먼 마을에 덮여 있고, 뜰은 달빛에 젖어 있었다. 노인이 방으로 들어가더니, 안으로 통하는 문소리가 나고 얼마 후에 다시 문 소리가 들리더니, 노인은 방에서 상을 들고 나왔다. 소반에는 무청김치 한 그릇, 막걸리 두 사발이 놓여 있었다.

“마침 잘 됐소, 농주(農酒) 두 사발이 남았더니…….” 하고 권하며, 스스로 한 사발을 쭉 들이켰다. 나는 그런 큰 사발의 술을 먹어 본 적이 일찍이 없었지만 그 노인이 마시는 바람에 따라 마셔 버렸다.

이윽고 “살펴 가우.” 하는 노인의 인사를 들으며 내려왔다. 얼마쯤 내려오다가 돌아보니 노인은 그대로 앉아 있었다.

― 윤오영(尹五榮)의 <달밤>

 

앞에서 소개한 나쓰메 소세끼의 글이 수필로 쓴 소설이라면, 이 윤오영의 <달밤>은 소설로 쓴 수필이라 할 수 있다. 그만큼 이 글에는 행동적인 면이 두드러진다. 시적인 정밀(靜謐)한 분위기에서의 서정적 행동이 전개되고 있다. 시적 움직임과 극적 구성이 고요함의 극치를 이룬다. 2백자 원고지로 서너 장밖에 되지 않는 짧은 글이다. 달 밝은 시골 밤 풍경을 배경으로 노인과의 짧은 만남이 짧은 대화와 함께 농주를 마시고 헤어지는 데서 오는 어떤 정밀감을 통해 시적이면서도 선풍적(禪風的)인 멋스러움으로 살아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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