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를 밟으면서
황송문
보리를 밟으면서
언 뿌리를 생각한다.
아이들이 아비에게 대들 때처럼,
시린 가슴으로
아픔을 밟는 아픔으로
해동을 생각한다.
얼마나 교육을 시켜 주었느냐고,
얼마나 유산을 남겨 주었느냐고,
시퍼런 눈들이 대드는 것은
나의 무능임을 나는 안다.
뿌리를 위하여
씨알이 썩는 것처럼,
사랑할수록 무능해지는 것을
나는 안다.
내 아이들이 대어들 듯,
어릴 적 내가 대어 들면
말을 못 하시고
눈을 감으시던 아버지처럼,
나 또한 눈을 감은 채
보리를 밟는다.
잠든 어린 것 곁에
이불을 덮어 주며
눈을 감는 것처럼,
나는 그렇게 눈을 감은 채
온종일 보리를 밟는다.
●나의 어린 시절은 모두가 가난했습니다.
특히 시골엔 돈이 귀했습니다.
초등학교에서 수업시간에 학생들이 절반 이상 집으로
쫓겨갔습니다. 저도 쫓겨갔지만 아버지에게 말도 못하고
방바닥에 떨어지는 눈물을 문지르고 있었습니다.
그때는 말이 없는 아버지를 무능하다고 여겼습니다.
세월이 흐른 후 그 무능이 바로 사랑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