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등산
황송문
단풍은 투피스,
때가 되면 가식(假飾)을 벗어 던진다.
절반은 벗은 채
절반은 걸친 채
얼근한 하늘을 환장하게 좋아하는
골짜기의 물소리를 안주 삼아
우리 한잔하는 게 어때.
인생길이 가파르면
쉬엄쉬엄 쉬어서 가고
일락서산(日落西山) 해 떨어지면
병풍 같은 산허리에 천막을 치고,
삼겹살이라도 볶아 놓고 둘러앉아서
우리 한잔하는 게 어때.
세상살이가 어지러우면
청류(淸流)에 발을 담그기도 하고,
구름처럼 초연히 털고 일어나
반나(半裸)의 수림(樹林) 사이사이로
바람같이 속 편하게 鄭座首랑 불러 놓고
우리 한잔하는 게 어때.
●삼상(三上)의 시 가운데, 천박한 게 측상(廁上)의 배설 시라면, 시의 체면을
유지하게 하는 게 우상(牛上)의 관조(觀照) 시요, 침상(枕上)의 사색(思索) 시라
하겠습니다. 이 시를 통해서 멋스럽게 관조하고 사색하기 바랍니다. 정좌수(鄭
座首)란 송강 정철을 말합니다. 그의 시조(재 넘어 성 권농 집에 술 익단 말 어
제 듣고, 누운 소 발로 박차 언치 놓아 지즐타고, 아희야 네 권농 계시냐 정좌수
왔다 하여라)가 생각나서 여기에 취사선택했습니다. 풍류도 즐기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