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송문 소설집

지옥의 밑창을 뚫어라

SM사계 2013. 5. 7. 19:34

 

기업소설

 

지옥의 밑창을 뚫어라

 

황송문

 

연길 공항으로 향하는 택시 속에서 무심히 바라보던 창밖으로 쏜살같이 스치는 승용차가 눈으로 확 걸려들었다. 순간, 얼마나 높은 사람이 탔기에 저리도 위압적으로 질주할 수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슬그머니 머리를 들었었는데, 그 수수께끼 인물이 누구인지 연길 공항에 이르러서야 알게 되었다.

그는 최국장이라는 사람이었다. 최국장은 연변 지역에서 굉장히 잘 사는 사람으로 들은 터였다. 그가 몰고 다니는 차의 번호 판만 봐도 그가 잘 나가는 사람이라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그 차가 나타났다 하면 공항이나 고속도로, 각종 건물의 출입구 같은 데서 경찰관이나 공무원들의 대접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은 황송문 교수를 배웅하기 위해서 나와준 연변대학 교수들과 연길의 문인들이 한 마디씩 들려준 말을 가지고 그 나름대로 짜깁기해서 얻은 상식이다. 그런데 그를 놀라게 한 것은 50대로 보이는 그 최국장이 이제 겨우 30세 밖에 안 되는 신승훈 사장을 배웅나왔다는 것이었다. 한국에서 사업차 중국을 다녀가는 신사장을 배웅 나온 사람들은 그 최국장 외에도 연변 과학기술대학 출신인 현석봉 사장과 건장한 풍채의 김길수 씨를 포함한 세 명의 남녀 직원들이었다.

숫자로야 황교수를 배웅 나온 사람들이 더 많았다. 연변대학 동방문화연구원의 이득춘 원장, 윤윤진 부원장, 부인과 함께 나와준 이상각 시인, 김관웅 교수, 김순녀 교수, 신순애 가수 외에도 서너 사람이 더 있었으니, 알아주는 인물들의 숫자야 황교수를 배웅 나온 사람들이 많은 데에도 저쪽 사람들에 신경이 쓰이는 것은 나이 젊은 신승훈 사장 때문인 것 같다.

황교수는 이미 환갑이 지나서 기우는 해이기 때문에, 그동안 쌓아온 경력에 의해서 지인이 많을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저 30세의 젊은 친구는 어떻게 해서 저렇게까지 대접받는 인물이 되었을까 하고 의아해했었다.

그랬었는데, 비행기에 오르고 보니 공교롭게도 그 젊은이가 바로 황교수의 옆자리에 앉아 있지 않은가. 그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운이 좋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는 연변대학에 교환교수로 가있는 동안에 노트북 컴퓨터를 통해서 동아일보 사이버 문화센터에 오르는 시와 수필 첨삭지도를 해왔는데, 어쩌다가 문제가 생기면 속수무책이라서 연변대 도서관의 김익 씨의 도움을 받곤 했었다. 그러니 컴퓨터를 잘 다루는 이를 보게 되면 존경심이 울어나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아까 공항에서 봤었는데, 벤처기업 사장이신가?”

황교수가 여객기 좌석에 앉으면서 입을 열었다.

“말씀 낮추십시오. 저, 신승훈이라고 합니다. 사장이랄 게 있습니까. 그저 기업하는 사람입니다.”

“난, 황송문이지. 선문대에서 훈장 노릇을 했는데, 연변대학에 있다 가는 길이라네.”

“아, 네……

기업을 하려면 어려움도 많을 텐데……

신승훈 사장은 황교수의 그 말에 문득, 지난날이 회상되었다.

신사장은 창업 당시에 디지털 시대의 소외계층을 없애거나 줄여보자는 신념을 갖고 출발했었다. 디지털이라는 게 자꾸만 어려운 쪽으로 새롭게 바뀌는 기술이다 보니 기업도 빈부격차가 심해져서 소외계층이 생기는 것을 안타까워하던 그였다. 1999년에 설립한 그의 회사 이름은 ‘인에이지(ENAGE)’다. 인터넷 기업이 붐을 타던 때였다. 벤처기업 투자 바람이 막 불다가 갑자기 꺼지는 바람에 기업이 도산되던 때였다. 창업 의도는 좋았으나 수입구조에 신경을 쓰지 못하다 보니 고급인력을 썼는데도, 수입과 직결되는 모델이 아니라서 좌절하게 되었다. 사회복지와 관련된 계층에 대한 디지털화는 시기상조였다.

큰돈을 내고 전산시스템을 도입할 수 없는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기업범위를 정한 다음, 기술력을 믿고 시작했으나 뜻밖의 역풍을 맞게 되었다. 비용은 자꾸 나가는데, 수익이 나지 않는 게 문제였다. 중소기업의 소외계층도 쓸 수 있어야 하니까 연로한 분들도 좀 쉽게 쓸 수 있도록 만드는데 주안점을 두었다.

스튜어디스가 안전 동작을 보이고 돌아간 후, 여객기는 이륙을 했다. 한동안 기창을 내어다보던 황송문 교수가 천천히 입을 연다.

“벤처면 어떤 제품을 생산하는가?”

“사년전, 그러니까 처음 이천년에는 ‘산타나라’라고, 우리나라 최초의 사회복지 포털 사이트였어요. 반응이 좋아서 엠비씨 아홉시 뉴스에도 나오곤 했었는데, 그 사업을 하다가 초심의 의지만으로 되는 사업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그건 보류했습니다.”

“사회복지 관련 사이트면 좋은 일도 많이 할 수 있을 텐데, 왜 보류했지?”

황교수가 신사장을 돌아보면서 말하자, 신사장도 그를 돌아보면서 입을 연다.

“산타나라가 잘 안된 이유는 수익성이 없는 거죠. 산타나라라는 모델은 여러 기업들이 우리가 좋은 제품을 홍보해 주고 공급해 주면, 그 구입한 금액이라든지, 광고를 낸 금액의 일부를 ‘산타나라’에 기부해서 사회복지 시설이라든지, 장애인 회사에 기부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이었는데, 기부문화가 정착되어 있지 않은 우리 사회에서는 전혀 먹혀들지 않더군요. 차라리 그 돈을 깎아주었으면 주었지, 기부하는 데 동참할 회사가 전체 회사의 십퍼센트도 채 안되다 보니까 안 되는 거죠. 교회나 절에는 헌금을 해도 사회에 기부하는 것은 일부에 그칩니다.”

“좋은 일을 하려면 중견기업으로 올라선 뒤에 다시 생각해야 될 게야.”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때 스튜어디스가 점심 도시락을 건네었으므로 두 사람의 대화는 여기에서 끊겼다. 신승훈 사장이 도시락을 막 펴고 새우를 먹으려는데, 황송문 교수가 입을 열었다.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는가?”

“글쎄요…. 팔월 이십이일인데…”

“신사장은 잘 모를지도 모르지.”

“궁금한데요?”

신사장이 황교수를 빤히 돌아보며 말했다.

“우리의 존재위치가 어디라고 생각하는가?”

“교수님과 저는 대한항공 여객기에 있지 않습니까?”

“지상에서 우리를 올려보는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할까?”

“공중의 비행기 속에 사람이 있을 것으로 여기겠지요.”

“밤중에 하늘을 올려본다면? 우리는 지금 밤하늘로 치면 은하수 사이를 가는 게야.”

“교수님과 저는 높은 하늘에 있습니다.”

“칠월칠석날 견우직녀가 만나던 그 오작교 사이를 가고 있는 게야.”

“오늘이 음력으로 칠월 칠석입니까?”

“그래, 칠석날이야. 자네가 지금 막 먹으려는 그 새우는 전생에 신사장의 애인이나 아내였는지도 몰라.”

“놀라운 유추능력을 발휘하시는군요?”

“이건 내 창작물이 아니야. 문정희 시인이 ‘새우와의 만남’이라는 시에서 써먹은 내용이야.”

“궁금하군요. 황송문 교수님은 시인으로도 알려져 있는데, 이 비행기 속에서 읊어주시겠습니까?”

“그래 읊어 주지. 맨정신에는 맹숭맹숭하니까 맥주 좀 부탁해.”

신사장이 스튜어디스에게 맥주를 부탁하여 황교수에게 건네어주자, 맥주 컵을 받아든 그는 기분 좋게 들이키고는 한 여류시인의 시를 읊기 시작했다.

손에 쥔 칼을 슬며시 내려놓았다

선뜻 그에게 칼을 댈 수가 없었다

파리로 가는 비행기 안 기내식 속에

그는 분홍 반달로 누워있었다

땅에서 나고 자란 내가

바다에서 나고 자란 그대가

하늘 한 가운데 3만 5천 피트

짙푸른 은하수 안에서 만난 것은

오늘이 칠월 칠석이어서가 아니다

그대의 그리움과 나의 간절함이

사람의 눈에는 잘 안 보이는

구름 같은 인연의 실들을 풀고 풀어서

드디어 이렇게 만난 것이다

나는 끝내 칼과 삼지창을 대지 못하고

내가 가진 것 중 가장 부드럽고 뜨거운

나의 입술을 그대의 알몸에 갖다 대었다

나의 사랑 견우여

황교수의 시낭송 소리에 귀를 기울이던 신사장이 잠에서 깨어난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시인은 확실히 다릅니다.”

“……”

“칠석으로 복선을 깔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말야. 기업이란 순탄치 않을텐데, 그 젊은 나이에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지?”

황교수가 입을 열었을 때 스튜어디스들이 비어진 도시락을 거두어는 바람에 신사장은 대화를 멈춘 채 사이다를 받아든 다음 그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처음 시작했을 때는 제가 경영자 출신이 아니다 보니까 기술력은 있어도 사람을 다룬다거나, 마케팅을 한다거나 하는 경영적인 측면에서 교육을 받은 게 없거든요. 제일 어려웠던 것은 일천구백구십구년부터 이천일년 중반기까지 이십여명의 직원을 두고 회사를 경영했는데, 그 직원들이 시킨 일밖에 안 하는 겁니다. 시킨 일도 요령껏 하고, 찾아서 하지 않습니다. 그저 한 달이 지나면 사장이 알아서 월급을 주겠거니 하고, 게으름을 피는 게 눈에 보입니다. 제가 바로잡으려고 해도 그들이 처음에 담합을 해버리니까 도저히 어떻게 해볼 방법이 없어요. 그때는 직원들 비용 대느라고 자본금도 거의 다 잠식된 상태였어요. 결국 급여를 줄만한 형편이 못 되어서 직원들에게 사정을 얘기했습니다. 어려워도 남을 사람은 남고, 나갈 사람은 나가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둘만 남고 다 나가더군요. 그 두 명은 사실 원래 알고 있던 후배들이라, 의리 때문에 남은 겁니다. 그 때는 정말 참담했습니다. 내가 이 기업을 계속 해야 되느냐, 말아야 되느냐 하는 막다른 벼랑 끝에서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기업가는 레슬링 선수처럼 낙법부터 배워야 한다는 말이 있다네. 잘 나갈 때는 상관없지만 떨어질 때 잘 떨어져야 한다는 게야. 잘 못 떨어지면 부러지니까.”

황교수가 신문을 펼쳐들면서 말했다.

황교수가 말하는 그런 낙법을 배우지는 않았지만, 그는 내리막길에서 요행히 기회를 잡았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는 3년 전의 초여름, 좀더 정확히 말해서 4월경을 생각해 낸다. 영국의 시인 엘리어트가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했던가. 직원들이 다 나간 상태에서 기존의 사업을 유지하기는 어렵겠고, 다른 수입창구를 찾아야 되겠는데, 당장에 돈이 들어오는 것도 아니니까, 새로운 개발을 하면서도 뭔가를 해서 먹고 살 궁리를 해야만 했었다.

“그래서, 떨어진 뒤에 어떻게 일어났지?”

황교수가 신문을 보다말고 신사장을 돌아보면서 입을 연다.

“그 무렵엔 제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거든요.”

“연애중이었다는 말이지. 거 재미있는 얘긴데, 귀가 솔깃해. 그래, 그 어려울 때 청춘사업은 어땠어?”

“혜정이라고 하는 데, 나에게 와서 좀 도와달라고 그랬지요. 그때는 만난 지 삼개월쯤 되는데, 와서 영업을 아주 잘하더군요. 저희가 수익사업을 할 수 있는 주력제품을 생산해야 했거든요. 기업에 전산화해 주는 「그룹에어」라든지, 회사에서 기능이 좋은 제품을 안정적으로 싸게 구입할 수 있는 메일을 하나 더 만드는 데 진력했어요. 그런 것을 만드는 데 최소한 삼사개월에서 육개월씩 걸립니다. 그걸 만드는 동안에 월급도 나가야 되는데, 그 돈을 구할 데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빚도 얻고, 신용대출을 받고 해서 7천만원까지 빚을 내어 썼어요. 회사에 취직해서 그 돈을 갚으려면 연봉이 높은 데 들어갈 수 있으니까 그럴까 하고 생각했었는데, 혜정이가 한 번 더 해보자고 그래요. 그래서 다시 계속하기로 했는데, 제가 개발하는 동안에 혜정이가 홈페이지를 하면서 쉽게 돈이 나오는 그런 영업을 서너 군데 해왔어요. 정말 맨땅에 헤딩한다는 식으로 아무런 배경도 없고, 연줄도 없는 처지에 따내어 왔거든요. 그런 것을 보고는 아, 이게 안 되는 줄 알았는데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부터는 엔지니어에서 마케팅 쪽으로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되었거든요. 그때 수주한 것으로 운영자금 좀 쓰고, 그 다음 출시한 뒤에는 마침 시간대가 잘 맞았어요. 신기술 발표회가 있었는데, 미국에서의 신기술 발표와 저희가 접목한 기술과 딱 맞아 가지고, 시장에 육개월도 채 안되어서 굉장히 좋은 반응을 일으켰거든요. 신문에 새로운 제품이 나왔다는 보도가 두어 번 나갔을 뿐인데, 반응은 의외로 컸어요.”

신승훈 사장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황송문 교수가 기창 밖의 뭉게구름에서 시선을 떼면서 천천히 입을 연다.

“얘기를 듣다 보니 착상이 떠올라. 그렇잖아도, 글 쓸 일이 생겼거든. 한국소설가협회 사무국장을 지낸 바 있는 이기윤 소설가가 나더러 기업소설을 써내라는 게야. 내 이메일에 자유기업원 대외협력실장의 이름으로 원고청탁서가 온 게야. 그 친구 소설가협회에 있을 때는 나에게 심사위원을 맡기더니만, 이번에는 중소기업문학포럼 대표가 되어 가지고 기업소설을 쓰라는 게야. 그쪽에는 어두운 내가 어떻게 그런 글을 쓰겠느냐고 이메일에 쳐서 넣은 게 바로 어제 일이야. 연변대학 동방문화연구원의 내 연구실에 설치했던 컴퓨터의 선을 뽑기 직전의 일이야. 아까 ‘새우와의 만남’이라는 시에서처럼 인연이란 참으로 묘한 거거든. 삼만 오천피트 상공에서 신사장은 소재를 제공하고, 나는 아주 우연한 기회에 기업소설을 써보게 생겼으니 어디 이게 보통 인연인가. 그러니 내 한 잔 살테니까 이제부터는 떨어져 절망하는 얘기 말고, 일어나는 얘기 좀 들려주게.”

“제 얘기가 도움이 된다면 계속하겠습니다.”

신사장이 들고있던 컵의 냉수를 마신 다음 이야기를 계속하였다.

“미국에서 처음 나온 것을 국내에서 접목을 해서 상용화한 작품으로 내어놓은 것은 저희가 최초였어요. 그게 초기 제품은 이천 이년 봄, 그러니까 삼사월경이었는데, 지금의 제품 세트가 다 나온 것은 이천 이년 유월경이에요. 초기의 시장은 형편없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인식이 좋아지고, 제품 개발도 안정적으로 되다 보니까 이천이년 가을과 겨울부터는 아, 저기에는 기술력이 있고, 저 제품밖에 없다는 인식들이 확산되기 시작해서 매출이 거의 수직상승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황교수가 손바닥만한 수통의 마개를 열더니 그 꼬막만한 뚜껑에 액체를 부어들고는 신사장에게 내민다.

“뭡니까?” 신사장이 의아한 눈으로 황교수를 바라본다.

“꼬냑이야. 나폴레옹 꼬냑.”

“저 공항에 내리면 운전을 해야 합니다.”

“인천공항에 차를 세웠어?”

“네.”

“꼬막 잔이야. 이건 마시는 게 아니라 우리 얘기를 위해서 마셨다는 시늉을 하는 게야. 꼬막 잔도 잔은 잔이니까.”

“네, 알겠습니다.”

신사장이 꼬막잔을 비우고 황교수에게 그 꼬막잔을 채워준다.

“꼬냑은 향기가 좋아. 그 향기로 사람을 친하게 하지. 차 열 잔 마시는 것보다 밥 한끼 먹는 게 더 친하고, 밥 열 번 먹는 것보다 술 한 번 마시는 게 더 친하다는 게야.”

“술 열 번 마시는 것보다 목욕탕에 함께 가는 게 더 친하다던데요?”

“그런 말도 있던가? 그건 그렇다 치고, 아까 얘길 꺼내다 말았지. 그 애인이라는…”

“아, 네. 지금은 결혼하여 아내가 되었지만, 그땐 저희 회사의 직원으로 근무했었습니다. 이천 일년 가을부터 일했거든요. 그 혜정이 덕분에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혜정이의 영향으로 제가 경영에 눈을 뜨게 되었어요. 혜정이가 마케팅 쪽에서 뛰어난 선생님 역할을 한 거죠. 영업을 아주 잘하거든요.”

“최초로 개발한 물건은 써본 사람이 없기 때문에 선뜻 사겠다고 나서지 않을텐데?”

“네, 바로 그겁니다. 물건을 처음 개발해 놓고 사주지 않아서 무너지는 회사가 수도 없이 많아요. 제가 어느 회사에 가서 이것은 좋은 제품이니 써보십시오, 하고 말하면, 이것을 어느 회사에서 쓰느냐고 물어요. 알만한 회사나 주요 기관이 없으면, 그 회사 사장이 그래요. 이거 좋기는 좋은 것 같은데, 이것을 믿고 쓸 수 있는 보증을 어떻게 받느냐는 거예요. 써보지 않아서 모르니까 그렇게 말하지요. 그 보증을 받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란, 비슷한 업종에서 쓰는 곳을 말해주는 거예요. 그런 문제에 부딪쳤을 때 온세통신에서 써주었어요.”

“하늘이 돕는다고 할까, 운이 좋았다고 할까 뭐 그런 게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

“저도 가끔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그때 온세통신에서 담당하고 있던 과장이 머리를 갸우뚱하더니 한 번 믿고 써보겠다더군요. 이천이년 가을, 그러니까 시월경의 일입니다. 온세통신이면 그래도 저희가 어디 가서 저희 제품을 온세통신에서 쓰고 있습니다, 하고 얘기하면 믿거든요. 큰 통신회사니까요. 그래서 그게 계기가 되어 가지고 저희가 이차 삼차 물건을 팔면, 우리 제품을 사준 그 업체는 참조회사가 되는 거지요.

“혜정이라는 애인이 사원의 자격으로 마케팅을 아주 잘했다고 했는데, 어떻게 했는지 궁금하군. 신사장보다도 나이가 더 적을텐데…”

“저보다는 한 살 적습니다. 삼 년 전의 일이니까요. 그 때는 혜정이가 스물 여섯 살 때였습니다. 제가 스물 일곱이었으니까요. 저희가 처음에 했던 사업이 사회복지와 관련된 사업이다 보니까 기술력은 있지만, 자금난 때문에 몹시 어려웠어요. 그때 저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을 혜정이가 해 낸 겁니다. 어느 날 혜정이가 보건복지부에 무조건 전화를 했어요. 혜정이가 보건복지부 정책기획과에 전화한 게 걸작이에요. 우리가 민간자본을 투자해서 디지털 시대에 소외 받는 영세 기업들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는데, 왜 이런 일이 있는지조차 알지 못하고 지원도 해주지 않느냐고 대판으로 따지더군요. 그랬더니 저쪽에서는 정말 영세한 기업에 도움이 되는 게 있느냐고 하면서 와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과천의 보건복지부 청사에 가서 사무관을 만났어요. 김 사무관이 그러더군요. 이것 때문에 예산을 잡을 수는 없고, 예산을 편성하려면 내년에 들어가기 때문에 이것은 안되겠다고. 그러나 전산과 관련해서 시범사업을 하니까 거기에서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하더군요. 전국 십사개 도시에 시범으로 하는 전산화선정 우선협상기업으로 차별을 시키겠다는 겁니다. 그래서 저희 회사가 차별화가 되었어요. 혜정이가 정말 전화 한 통화로 그렇게 차별화가 되게 한 겁니다.”

“연애를 참 잘했군.”

“제가 복이 있으려니까 그리 된 거지요.”

“성공의 비결은 찬스라고 미국의 강철왕 카네기가 말했지. 성공의 비결은 기회라는 거야. 기회를 잘 잡고 놓쳐서는 안 된다는 거야. 기회란 시간성을 띠기 때문에 우물쭈물하면 지나간다는 게야. 이것이 기회라고 느끼는 순간, 주저없이 붙들어야 하는 게야. 신사장이 혜정이라는 아가씨를 사귄지 석달만에 직원으로 채용한 것도 기회를 잘 포착한 게지. 그러니까 신사장은 기술만 있는 게 아니고, 성공할 수 있는 기회포착능력도 겸비한 게지. 그건 그렇고, 그 다음은?”

“그것을 총괄적으로 담당하는 국책연구기관이 따로 있습니다. 구파발에 보건사회연구원이 있거든요. 거기에서 우리나라 사회의 모든 정책이 나와요. 거기를 찾아갔지요. 우리가 이러이러한 계획으로 사업을 진행했는데, 시범사업에 우리의 전산기술을 제공하려고 하니까 협력해달라고 했습니다. 저희가 국가 공공기관에 들어갈 만한 아무런 배경도 없이 무대포로 밀고 들어가서 엮어짐으로써 비용도 나오고, 보건복지부라는 큰 사용처를 잡은 게 크게 도움이 되었어요.”

“강태공이 빈 낚시에 월척을 낚았그만그려.”

“혜정이와 보건복지부에 찾아간 때는 이천 일년 십일월쯤 됩니다. 그 해 겨울을 넘기고 그 이듬해 삼월에 혜정이와 결혼을 했습니다.”

“보건복지부에서 돈이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 회사의 신뢰도가 높아졌겠지?”

“그렇습니다. 우리가 보건복지부에도 사업을 했다는 말을 하게 되면 다른 데 영업하는 경우 유리합니다. 아, 기술력이 있으니까 정부에서도 인정해주었겠구나 하는 식으로 인정을 하게 됩니다. 보건복지부와 온세통신이 생기니까 구태여 다른 곳을 얘기하지 않아도 됩니다. 어디서 쓰고 있습니까 하고 물으면, 보건복지부에서도 쓰고, 온세통신에서도 씁니다, 하고 말하면 아, 그래요? 하고는 믿고 사줘요. 다른 데에 또 가면 그 회사를 엮어서 세 군데 얘기할 수도 있고, 네 군데 얘기할 수도 있어요. 이게 기하급수적으로 늘어서 지금은 고객이 한 천여 곳 가량 되거든요. 각 기업체와 공공기관, 관공서, 그리고 해외 사이트를 다 합치면 천여 곳이 됩니다.”

“나는 연변대학에서도 노트북 컴퓨터로 사이버 공간을 통해서 시와 수필 등의 문학작품 첨삭지도를 했지만, 실은 그거밖에 할 줄 몰라. 다른 것은 아무것도 못해. 그래서 하는 말이지만, 나는 지금 신사장에게서 사업에 관계된 많은 말을 들었지만, 무슨 물건을 만드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네. 가령 자동차나 선박 등은 철근이나 목재 등 재료가 가시화되기 때문에 이미지가 분명하게 떠오르는데, 신사장은 어떤 물건을 만들어 파는지 알 수가 없어. 이 늙은 컴맹에게도 좀 이해할 수 있도록 말해 주겠는가?”

황송문 교수의 말이 끝난 후에도 신승훈 사장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이때 마침 스튜어디스가 어떤 음료수를 들겠느냐고 물어왔으므로 황교수는 커피를, 신사장은 사이다를 각각 청해 들었다.

“신사장은 커피를 좋아하지 않는 것 같군. 아까부터 한잔도 하지 않는 것을 보면…”

“네, 저는 물이나 사이다가 좋습니다.”

“화투놀음의 고스톱을 아는가?”

“네, 조금 압니다.”

“그럼, 죽어도 고- 라는 말 알겠구먼. 난 죽어도 커피라네”

“말씀을 재미있게 하시는군요.”

“그건 그렇고 신사장, 제품 얘기 좀 듣고 싶은데, 어렵겠는가?”

“어려울 건 없습니다. 저희 작품은 소프트웨어라 눈에 보이는 제품이 아닙니다. 컴퓨터 안에 뭔가를 설치하고, 그 설치된 제품들을 가지고 활용하는 겁니다. 좀 쉽게 말씀드리자면, 저희들 이쪽 표현으로는 솔루션이라고 하는데, 이 솔루션이라는 게 예를 들면 회사에서 자금이나 회계를 담당하는 파트가 있어요. 그런데 자금이나 회계를 편하게 자동화시키고 계산도 편하게 잘 하려면 그런 프로그램, 즉 솔루션을 사야 됩니다. 이게 소위 말하는 이엘피 ELP(전자자원관리시스템)인데, 저희는 그런 게 아니고, 협업시스템이라는 게 있습니다. 가령 회사 내에서 의사소통 같은 것을 자유롭게 한다거나, 문서가 제자리에 있는지 쉽게 확인하는 등 여러 기능이 있습니다. 가령 서류를 찾으러 위층이나 아래층으로 오르내려 봐야 한다거나, 도장을 찍어 가지고 내려갔더니만, 반려되었다고 해서 다시 찍었는데, 사장이 출장을 갔기 때문에 삼일 동안 결재를 받지 못해서 애를 먹는 이런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서 전자문서관리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가령 어제 견적서 받은 것 어디에다 놓았느냐 거나 캐비닛 금고가 열리지 않는 등의 사태가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가 하면 문서의 낭비도 많고 그래서 저희의 그룹 솔루션이 주로 하는 게 전자문서, 또는 전자문서관리입니다. 그리고 사원들의 의사소통을 위한 통신(커뮤니케이션), 또는 의사결정을 신속히 할 수 있는 의사결정 시스템, 전자결재, 결재서류에 도장을 일일이 찍어서 올려 가는 것을 자동으로 하는 겁니다. 컴퓨터 안에서 쭉 올리면 레벨을 따라 올라갔다가 승인과정을 밟아서 그 다음에 회람을 하게 한다든가 하는 것을 모두 자동으로 처리하는 시스템입니다. 저희가 만드는 게 두 세 가지가 있습니다. 전자결재 같은 협업(協業) 전자문서 솔루션하고, 한메일 같이 편리한 메일 시스템을 회사에 그만이 독자적으로 보안이 된 상태에서 쓸 수 있도록 구축해 줍니다. 그 외에도 인터넷 사이트를 만들려면 회원으로 가입해야 하고, 게시판도 있어야 되며, 동호회나 카페도 있어야하는데, 이런 것들을 직접 구축해야 할 필요성이 있을 때 도와주는 일도 하고 있습니다.”

“기술을 도용 당하는 사례는 없는가?”

황교수가 들고있던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는 다음 이야기를 기다린다.

“소프트웨어 사업이다 보니까 도용빈도가 매우 높아요. 소프트웨어 사업의 제일 큰 도용은 설계도를 도용 당하는 경우입니다. 그렇게 되면 기술이 백프로 빠져나갈 텐데, 저희가 당한 경우는 소스코드라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한 원천 프로그램의 논리적인 소스 코드라는 것은, 가령 쉽게 얘기해서 텔레비전을 여기에서 켜려고 버튼을 누르면 이 안에서 켜라는 명령이 가는데, 이 명령을 실행시키기 위한 그 명령어를 만들어놓은 프로그램을 언어로 만드는데, 이 언어 자체가 유출되면, 즉 소스가 유출되면 기술 자체가 다 날아가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그 회사는 끝난다고 봐야지요.”

“신사장의 회사는 그 정도가 아니었는가? 언제 얼마나 당했는지 궁금하군 그래”

“도용을 당한 게 세 번입니다. 이천 이년 겨울과 그 이듬해 봄, 그리고 두어 달 있다가 초여름쯤 이렇게 세 번 당했습니다. 초기 제품은 저희 코드를 보려고 역으로 추적시키면 소스가 나올 수 있게 되어 있는 그런 코드였어요. 저희 고객의 사이트에 들어간 것을 도용했는데, 이천이년 이전의 제품은 누군가가 들어가서 암호화되어 있는 것을 풀면 원 소스가 보이게 되어 있었어요. 이를 마치 자기네 제품처럼 쓴 사례가 세 번 있었어요. 그래서 저희가 두 차례 내용증명을 보냈고 법적 대응을 강구했는데, 법정에까지는 가지 않았어요. 내용증명을 보내니까 일단 인정을 했어요. 앞으로 다시는 손대지 않겠다는 약속도 받았는데, 또 한 번은 심의위원회까지 가서 법정 바로 전단계까지 갔는데, 죽어도 아니라는 거예요. 사실 심증은 가지만, 그 소프트웨어 변형 자체를 쉽게 할 수 있거든요. 원체 변형을 많이 해놓아 가지고 그 심의위원회의 위원들도 분명히 베꼈다는 심증은 가는데, 증거를 잡을 수 있도록 만들어 놓지 않았어요. 아주 교묘히 해먹은 거죠. 그래서 계류 중에 있다가 그렇다면 법적으로 문제삼지 않을 테니 솔직히 얘길 해봐라. 우리 것을 참조했느냐 안 했느냐 그랬더니, 참조했다고 말하더군요. 그래서 결정문에다 참조는 했다, 앞으로 당신의 사업에 손해를 입히지 않겠다는 구절을 삽입하는 것으로 일단락 진 경우도 있어요.”

“해외로도 진출한 것 같은 데, 중국에는 언제부터 어디어디에 진출했는가?”

“중국엔 이년 정도 됩니다. 이천 이년 여름부터 진출하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상해부터 진출했는데, 중국은 진행을 하다가 그 해 겨울에 싸스가 터져 가지고 육개월 정도 손을 놓았어요.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이천 삼년 오월 이후니까 이제 일년 조금 지났지요. 중국은 상해, 북경, 천진, 연변에 저희와 관계하는 회사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중국 쪽에는 스무개 정도 되는데, 그 중 큰 데는 찬일 컴퓨터, 엘제케어, 한라공조, 그리고 연변 쪽에는 연변 차이나 텔레콤에 제품을 주는데, 전산센터에도 어제 계약을 했습니다. 그리고 연변자치주정부는 한국어와 중국어를 동시에 쓰게 되어 있거든요. 저희 제품이 지금 한국어와 영어, 중국어, 일본어를 동시에 쓸 수 있도록 만들어진 특허가 있어서 지금 들어가 평가단계에 있는데, 거의 확정적입니다.

“국내는 상대하는 업체가 얼마나 되는가?”

“국내는 수도 없지요. 말도 못합니다. 천여 곳이나 되니까요.

“이제야 윤곽이 잡히는군. 이제 알겠어. 알만해. 그런데 좀 더 알 고 싶은 건 앞으로의 전망이야. 처음에는 영세 중소기업에 편의를 제공한다는 기업정신을 대기업을 상대하면서도 계속 견지할 수 있는지, 그 점도 궁금하고 말야. 그 왜 있지 않은가? 개구리 올챙잇적 생각 못한다는 말!”

한동안 조용히 귀를 기울이던 황송문 교수가 만족한 미소를 빙그레 지으면서 호기 있게 질문을 던지자, 신승훈 사장도 이야기를 깊이 해 갔다.

“저희 회사는 성장이 빠른 편이거든요. 천구백구십구년에 했다가 이천년 말경에 완전히 싹 말아먹고, 정말 밑바닥까지 가다 못하여 땅속으로까지 파고 들어가다가 다시 올라온 회사입니다. 이천이년도에 정식제품의 매출이 오르기 시작해서 저희가 주력사업이라고 만든 이 제품이 출시된 지 일년 반만에 흑자로 돌아섰거든요. 흑자로 돌아선 이후 올해는 백프로 이상, 거의 이백프로 가까이 매출성장세를 보이는 상태입니다. 지금은 사실 눈도 뜰 수 없을 정도로 바쁩니다. 궁금해하시는 중소기업 쪽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저희가 처음에 잡았던 계획은 중소기업이었어요. 자금여력이 대기업만큼 없는 중소기업들은 종래의 그 수 천 만원에서 몇 억대에 이르는 그런 제품은 비싸서 엄두도 내지 못합니다. 저희들은 이것을 천만원 미만에서 최대한 이천만원 안쪽으로 혹은 수 백만원짜리 제품을 만들어 출시하고 있어요.”

“그렇게 싸게 만들어 줄 수 있는 비결이라도 있는가? 그게 가능하다면 다른 데서도 할텐데…”

“대개 원천기술이 확보되지 않은 회사의 제품들은 개발에 굉장한 비용과 시간이 들어가기 때문에 외부에서 만들어진 것을 사옵니다. 기술을 사오기 때문에 팔 때마다 로열티를 지불하잖아요. 이게 다 원가지요. 이 원가를 줄이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원가를 줄여야 싸게 팔 수 있잖아요. 그래서 저희가 대부분 다 자체개발을 했어요. 할 수 있는 것은 다해보자고 해 가지고, 남들에게 얘기하면 미쳤다고 말할 정도의 것까지 다 만들어버렸어요. 그래서 지금은 구십프로 이상이 자체적으로 개발한 것이지요. 자체 개발하지 못한 그 십프로도 로열티를 주지 않기 위해서 한번에 매절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 번에 천만원을 받던지 일억원을 받던지 팔아라. 그 다음부터는 우리가 알아서 하겠다. 이런 식으로 해서 로열티가 나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원가를 낮춤으로써 중소기업에 싸게 팔 수 있고, 성능 좋은 물건에 다루기 쉽도록 만들어 출시하되 기술지원을 해줍니다. 대개 기술지원을 해달라면 땍땍거리고 잘 안 해주는 경우가 있는데, 저희는 그렇지 않은 게 주효한 겁니다.”

“그러니까 신사장의 회사 ‘인에이지’에서는 중소기업에서 맛보기 힘든 기술을 싼값이 제공하고 있으니 초심에서 벗어나지는 않는 게로군.”

“초심을 버릴 리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또 저희 같은 회사는 그래야 살아남습니다.”

“그래, 공생공영해야지.”

“가끔 잘 쓰고 있다거나 고맙다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습니다. 그런 게 입소문도 나고, 또 마케팅도 해서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저희가 중소기업 중소기업 하지만 요새는 대기업에도 꽤 많이 팔았거든요. 앞으로는 국내 뿐 아니라 해외 다국어 기술을 가지고 있거든요. 지금은 한국어, 영어, 중국어, 일본어로만 되어있지만, 프랑스어를 넣든, 러시아어를 넣든, 독일어를 넣든 아무거나 넣어도 다 되도록 되어 있어요. 번역해서 넣기만 하면 되니까 빠르면 내년, 늦어도 내후년에는 러시아나 프랑스 쪽에도 출시를 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기업에도 물건을 팔았다면 대개 어떤 곳을 말하는가?”

“예를 들면 파라다이스그룹이라든가, 관공서로는 대한의사협회라든가, 대한상공회의소, 아니면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라든가, 정수기도 만드는 청호그룹이라든가, 삼성중공업이라든가, 엘지전자 마케팅사업본부라든가, 유니아만도라든가, 세계일보 등등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합니다. 저희가 사회복지 쪽에 관심을 갖고 출발을 하다보니까 그쪽에도 많이 팔았습니다. 한국복지재단도 그 중 하나지요. 저희 제품을 필요로 하는 이들은 ‘인에이지’를 먼저 올려놔요. 인에이지를 포함해서 다섯 개 업체를 올려놓아요. 꼭 ‘인에이지’라는 업체를 끼어서 같이 경쟁에 참여해 달라는 부탁이 와요.”

“그렇게 짧은 기간에 급성장한 게 놀라운데, 신사장은 그 까닭이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

“사실 다른 벤처기업들도 모두들 열심히 합니다. 기술력도 매우 좋고. 저도 마찬가지로 엔지니어 출신이고, 기술에 대해서도 나름대로 자부심을 갖고 있지만, 급성장의 큰 이유는 운이 좋았던 겁니다. 사업이라는 게 사람과 비용과 시간이 잘 맞아야 되거든요. 시간은 운인 것 같아요. 우선 타이밍이 맞아야 합니다.”

“물론 분주하게 살겠지?”

“그럼요. 밥은 다시켜먹습니다. 중국음식을 질리도록 먹었지요. 요새도 질리도록 먹어요. 제일 많이 먹는 게 짜장면과 볶음밥입니다. 너무 물리면 나가서 된장찌개를 사먹을 때도 있지만 나가 먹을 시간이 없어요. 처음 창업 당시에 데었기 때문에 사람은 꼭 필요할 때만 씁니다. 지금 하는 일이 넘쳐서 정말 죽겠다는 소리가 나올 때, 그때 한 명 더 뽑아요. 최소의 인원으로 최대의 이윤을 추구하자는 게 보편적인 원칙입니다. 거시적으로는 국부창출이라든지, 기술의 보편화, 고용창출 등으로 사회발전에 이바지하겠지만, 미시적으로는 저희 회사 구성원들이 정신적인 면에서나 물질적인 면에서나 보람을 가져야지요. 회사가 커지면 사람을 늘려야 하는데, 사람을 늘리면 오래된 사람의 월급이 똑같게 돼요. 그러니 우리는 그렇게 하지 말자. 회사가 커지는 비율보다 채용하는 비율을 줄여서 우리들의 파이의 크기를 키워보자는 겁니다. 그리고 기술이 사람에게서 나오기 때문에 화합이 요구됩니다. 저희 직원들의 평균 연령이 이십팔세입니다. 모두 젊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쌓이지 않도록 풀어줘야 하거든요.”

“운이 따라야 한다고 했던가?”

“사람을 잘 만난 것도 운인 것 같아요. 혜정이가 오면서부터 운이 따른 것 같아요. 계속 적자였는데, 혜정이가 오던 이천 일년에는 이억쯤 되었어요. 그 다음 해는 오억쯤 했습니다. 이천 삼년에는 10억 가까이 했구요. 올해에는 이십억쯤 되겠고, 내년에는 성장세가 계속 고속으로 가기는 어려울 것 같기 때문에 삼십억쯤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습니다.”

“요즈음 기업들이 아주 어려운 모양인데, 신사장은 어떻게 그렇게 잘 나가는지, 그 수수께끼는 아직도 오리무중이야. 말 나온 김에 한 가지 부탁이 있는데, 앞으로 돈을 벌게 되면 좋은 일을 하기 바라네.”

“좋은 일이란 어떤 것을 가리키는가요?”

“주로 문화사업이지. 미국 같은 선진국에서는 기업가가 돈을 벌게 되면 문화사업 등으로 사회에 환원하는 데, 우리나라는 그게 미미한 편이야. 지금은 큰 재벌이 아니니까 그렇게 할 수는 없지만, 십시일반으로 도울 수는 있겠지. 가령 말야, 내가 ‘문학사계’라는 문학지를 가지고 있는데, 거기에 신사장의 ‘인에이지’ 광고를 싣는 것도 문화사업에 기여하는 셈이지.”

“요즈음 문학지들이 하도 많이 나와서 모두들 적자운영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떻게 경영을 하십니까?”

“내가 무슨 돈이 있겠는가? 그저 제자들이 십시일반으로 도와주어서 만들어내고 있다네.”

“광고야 뭐 어렵겠습니까. 저도 하겠습니다. 다음 호부터는 저희 ‘인에이지’ 광고를 부탁드리겠습니다.”

“고맙네. 우연한 기회에 대단한 물주를 얻어서 나로서는 행운이야.”

“제가 오히려 감사를 드려야겠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그동안 사회복지 쪽에는 도움이 되고자 노력해 왔습니다. 저희 ‘산타나라’도 그 중의 하나인데, 아직은 때가 아닌 것 같습니다. 제가 사업에 성공하면 ‘산타나라’도 다시 살려볼 생각입니다.”

이때 앞에 나온 스튜어디스들이 여객기의 착륙 준비를 하고 있어서 두 사람의 긴 얘기는 여기에서 중단되었다.

“선생님 댁은 어딥니까?”

“중랑구 면목동이라네. 지하철 칠호선으로 사가정과 용마산 역의 중간쯤 되는 곳이지.”

“저희 회사가 그쪽이니까 제 차로 모셔드리겠습니다.”

“회사가 어딘데?”

“종합운동장 건너편입니다.”

“그럼, 송파구?”

“네, 송파구 잠실본동입니다.”

“아, 그럼 신세 좀 져도 되겠군. 그 회사 근처에서 내려주면 돼. 지하철 종합운동장 역에서 이호선을 이용하면 되니까.”

“그럼, 그렇게 하시죠.”

여객기가 인천 영종도 공항에 착륙하자 둘은 주차장으로 향했다. 황송문 교수가 운전석 옆자리에 앉으려는 것을 기어코 뒷좌석에 앉게 한 신승훈 사장은 서울로 차를 몰기 시작하였다.

잠시 동안 휙휙 지나치는 차창 밖의 풍경을 바라보던 황교수가 책가방에서 꺼낸 카세트 테이프를 신사장에게 건네면서 말했다.

“이거, 녹음띠야. 북한이나 연변에서는 이걸 녹음띠라고 하지. 내가 만든 작품이니까 가끔 들어보기 바라네.”

“카세트 테이프로군요. 선생님 작품이라면 들어야지요.”

신사장은 운전을 하면서도 그 녹음띠라는 것을 열어서 차에 부착된 녹음기에 꽂자 이내 중국조선족 특유의 노래가 흘러나온다.

“가수들의 목소리가 맑군요. 유행가라기보다는 가곡에 가깝다고나 할까요?”

“카세트 테이프가 뭔가 이 사람아. 우리말을 푸지게 해야지. 중국조선족 인민가무단 가수들이 부른 노래니까 색다른 느낌이 들 게야.”

황송문 작시에 최연숙 작곡으로 꾸며진 이 노래는 「꽃잎처럼」(황영애 노래), 「그리움」(홍인철 노래), 「눈꽃」(한선녀 노래), 「달걀생각」(이철혁 노래), 「반딧불 냇물이 흐르네」(박경숙 노래), 그리고 마지막으로 「달밤에」(안용수 노래)가 계속해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살구나무 가지로 기어오른 달이

너무도 밝아서 달빛 밟고 나서니

툇마루에 앉아서 농주 마시던 노인이

달빛을 안주 삼아 취해 보자네

바람은 산들산들 불어오고

잠이 없는 별들은 반짝이는데

노인은 잠이 들고 나만 남았네

얼근한 보름달과 나만 남았네

한동안 흥겨운 노래를 들으며 운전을 하던 신사장이 올림픽도로로 차를 진입시키면서 입을 연다.

“어딘가 패러디한 것 같은데요?”

“맞아, 수필가 윤오영 선생의 달밤을 패러디한 게야.”

“언젠가 읽은 적이 있어요.”

“그래, 기업가도 책을 읽어야지. 문학 예술이란 꽃나무 같은 것이어서 누군가가 가꾸지 않으면 안 된다네. 꽃나무를 가꾸지는 않고 꽃이나 잎을 따기만 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몸살을 앓겠지.”

신사장이 운전하는 승용차가 한동안 강변도로를 타고 가다가 종합운동장 쪽으로 진입하더니 숲이 무성한 공원 사잇길로 접어들다가 인에이지사의 사옥 앞에 멈춘다.

황교수는 신사장이 안내하는 대로 이층으로 올라갔다. 2층은 사장실로 들어가기 전에 비서나 경리로 보이는 여직원실이 있고, 그 안쪽 넓은 실내에는 30여명 남짓 되어 보이는 직원들이 컴퓨터 앞에서 무엇인가를 열심히 하고 있었는데, 더러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턱을 괴고 있는 이도 보였다.

사장실 응접 탁자 위에는 월요일자 신문들이 놓여있었다. 황교수는 그 중 눈길이 가는 신문을 펼쳐들었다. ‘리더스포럼’이라는 란에 「벤처산업을 다시 육성하자」는 제목의 칼럼이 실려있었는데, 필자는 한국정보통신대학교의 오길록 교수였다. 신문에는 이런 글들이 눈을 끌었다.

“중소․벤처기업은 붕괴되어가고 있고, 투자 및 내수시장은 거의 동면상태다. 자금난에 허덕이던 벤처기업은 대부분 문을 닫았고, 40억-50억을 호가하던 코스닥 등록기업도 요즘은 4억원 정도면 인수가 가능하다.…벤처상태를 벗어난 중소기업들도 독자 기술을 바탕으로 홀로서기를 못하고 대부분 대기업의 하청업체로 전락했다. 대기업이나 중견기업들의 사정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여러 가지 방안 가운데 가장 적절한 것이 벤처산업의 육성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우선 청․장년은 물론 노년층까지도 일단 희망을 갖게 한다. 벤처가 활성화되면 실업자도 줄게 된다. 벤처산업 육성책은 부작용도 있었지만 IMF탈출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정책이었다.…벤처산업 육성으로 부강해진 나라로 이스라엘을 꼽을 수 있다.…참여정부가 출범시 주장했던 것이 과학기술 중심사회와 동북아 경제중심시대 구축이다. 요즘 이 두 가지 항목이 잊혀져 가고 있는 듯하다.…국가의 밝은 앞날을 위해 벤처 육성을 통한 과학기술 중심사회 구상이 다시 펼쳐지길 기대한다.”고 적혀있고, 그 끝에 groh@icu.ac.kr이라는 꼬리까지 붙어있다.

“무얼 그렇게 열심히 보십니까?”

신승훈 사장이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고, 이때 마침 여직원이 녹차를 가져왔음으로 황송문 교수는 보던 신문을 내려놓고 차를 들기로 하였다.

“전자신문에 저희 회사 전면광고가 나왔는데, 한 부 드리겠습니다.”

신사장이 내미는 신문에는 하늘색 바탕에 백색과 황색, 그리고 적색의 밤톨만한 글씨들이 채워져 있었다. 황교수는 녹차를 들다말고 그 전면광고를 상단부터 하단까지 죽 훑어보기 시작한다.

“Windows 기반의 net 솔루션, G-SOLUTION으로 귀사의 Business를 업그레이드하십시오./완성도 높은 그룹웨어 솔루션, G-Ware 신비전 출시!” 이러한 글귀 밑에는 ①자체 개발된 메일 솔루션(G-Webmail) 기본 탑재 ②전자우편/사내통신/메신저/쪽지/SMS 등 강력한 의사소통 기능 탑재(메신저/SMS 옵션) ③전체 시스템 구축 시 가장 경제적인 비용으로 최대의 효율성 보장 ④한/영/중/일의 완벽한 동시 다국어 처리로 글로벌 환경의 경쟁력 향상 ⑤신속하고 지속적인 기술지원으로 업무의 연속성과 자원의 효율화 증대라는 5개 항목의 글 밑에 “도입 전 직접 단독데모 테스트를 지원합니다.” 라는 글이 백발로 드러나 보였다.

그 아래로는 “중소기업을 위한 신비전 출시”라는 글이 ‘이벤트’라는 불꽃 튀기는 글씨와 함께 노출되어 있는데, 그 아래로는 여러 솔루션 제품 사진들이 있고, 그 아래에는 각종 솔루션의 명칭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아무리 봐도 잘 모르겠어. 비행기 속에서 그렇게 교육을 받았는 데도 말야.”

“여기서 쉬셨다가 저녁 들고 가시죠.”

신사장의 말에 황교수는 머리를 가로로 젓는다.

“아닐세. 아주 분주하게 일하는데, 한가하게 있으면 방해가 될 게 빤하네. 나의 문학사계의 후원자가 되었으니 또 만날 게 아닌가. 아까 오면서 보니까 저 공원에 정자가 있더군. 거기서 농주 한 잔 하면 딱 좋겠어. 아까 듣던 그 달밤에처럼 말일세. 자, 나 그럼 가네.”

황교수가 서둘러서 사장실을 나오자, 신사장이 행길까지 배웅을 한다.

“그럼, 다음에 찾아뵙겠습니다. 잘 살펴 가십시오.”

“그래, 잘 있게. 일취월장 더욱 성공하게나.”

황교수는 지하철역으로 가다 말고 공원으로 향한다. 원두막 같은 정자가 그의 마음을 끌었기 때문이다. 공원의 정자에 오른 그는 생각난 듯이 바지 뒤 호주머니에서 손바닥만한 병을 꺼내어 그 꼬막 잔에 꼬냑을 따라 마신다.

“지옥의 밑창까지 갔었다……?”

그는 또 꼬막 잔을 비웠다.

‘신사장이 내 사위라면……’

‘혜정이가 내 딸이라면……’

그는 소설 속의 현실을 생각해 본다. 신석정 시인이 말하지 않았던가. 작품 속의 행동도 참여라고. 그렇다. 작품 속의 행동이 참여인 것처럼, 작품 속의 현실도 현실이다.

작품 밖의 현실로 돌아오면 그들이 사위가 될 수도 있고, 딸이 될 수도 있다. 그들이 땀으로 일궈낸 메시지란 뭔가? 지옥의 밑창을 뚫어야 천국에 나온다는 지론이다. 그들은 삶을 통해서 기업가는 우선 낙법부터 배워야 한다고 웅변하고 있지 않는가.

공원의 정자에서 내려온 황교수는 지하철을 타기 위해 걷기 시작한다. 수 십년 동안 닳고 닳아진 책가방을 든 채 산책하듯 걸음을 옮기면서 휘파람을 날린다.

살구나무 가지로―

신사장의 승용차에서 듣던 황교수 자신의 노래다. 해가 고층 빌딩 옆구리에 비스듬히 홍시처럼 걸려있는 하오의 풍경을 그의 휘파람 소리가 돕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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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에이지(ENAGE)는 정보화시대를 선도하는 올바른 기업으로 신뢰받는 동반자가 되어드리고자 진력하고 있습니다. 인에이지의 솔루션은 인간중심의 설계와 신뢰성 높은 기술을 바탕으로 웹메일, 메일서버, 메신저 등 메시징 및 커뮤니케이션 솔루션 그룹웨어, 문서관리, 지식관리 등 협업 솔루션 커뮤니티, 채팅, 블로그, 홈페이지빌더 등 웹 솔루션 소프트웨어 임대사업(ASP) 등 다양한 비즈니스를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업그레이드해 드립니다. 국내에 본사와 전국 20여 파트너 및 리셀러 사를 두고 있는 ENAGE는 중국(북경, 상해, 천진, 연변) 지역 지사 파트너, 태국 등 동남아, 일본 등 아시아 권역에 수출하는 새 시대의 첨단 기술로 진취성 있게 정진하는 디지털 시대의 기업입니다.